아침부터 날 분노케 하는 기사 땜에 기분이 드럽다.

위안부 누드라고?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상업적 목적 없었다" "그분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잃어버린 가치를 생각하는 기회..." "애국자는 아니지만 그곳에서 내내 눈물이 나..."

뚫린 입이라고 아무말이나 지껄여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나부다. 이런 것들은 굴비 엮듯 한 줄로 엮어놓고 재봉틀로 입을 박아버려야 한다. 

더 두려운건 이노무 영상 프로젝트니 뭐니 하는게 성공을 해서 이 천인공노할 XX 들이 돈을 왕창 벌어들이는 거다. 만약, 만약 그런 날이 오면 (안 그래도 썩 맘에 들지 않는) 이 나라 구석에서 산다는게 너무 절망적일 것 같다. 오늘 아침처럼...

우리 회사 남자 직원들부터 계몽을 시켜야겠다. (설마 이 '위안부 누드'를 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건 아니라고, 정말 아니라고... 아직도 살아계신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을 두 번 죽이는 (농담 아님 -.-) 그런 죄악은 짓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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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a 2004-02-1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기사는 보지 못했지만, 정말 별 나쁜 놈들이 다 있군요.....

Smila 2004-02-13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기사를 보았답니다. 전 무슨 이류 에로영화 제작자들이 한 짓인가 했더니, 이승연이랑 제법 큰 기획사에서 이런 황당한 짓을 벌였군요. 정말 제정신들인지....

sunnyside 2004-02-13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히 모바일 컨텐츠 서비스를 하기로 한 LGT, KTF, SKT 에서 서비스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네요. 여론이 만만치 않으니까 뒤늦게 발을 뺀 것일 테지만.. 암튼 이번 건 모의한 애들한테는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waho 2004-02-13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바일 서비스 중단은 그나마 반가운 결정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썪어도 건드려선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인터뷰 때 당당함을 보고 경악했읍니다. 독도 문제 또한 가볍게 상술로 이용하려 하는 듯 해서 씁슬하네요

조선인 2004-02-24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네티즌들의 작은 힘이 모여 최악의 결말은 피할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해요. 아예 없었으면 제일 좋았을 사건이지만 ㅠ.ㅠ
 

나의 절친한 친구는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다. 단순히 지망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드라마 시나리오 공모전에 작품도 내고 있다. 지난 번에는 그녀의 시나리오를 읽은 모 방송국 PD가 한번 만나자고 할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요즘 새로운 집필에 돌입했다. 장르는 로맨틱 코메디의 일종인데, 이번 봄에 돌아오는 드라마 단막극 공모전을 겨냥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그녀가 지금 쓰고 있는 드라마 여주인공의 모델이 바로 나다.

메신저를 하다가 우연찮게 나에게 일어난 한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 주었는데, 그만 그녀의 상상력에 발동이 걸려 버렸다. 작은 에피소드가 가지를 치고, 상상엔 또 다른 상상이 보태어져 하나의 드라마 줄거리가 탄생하고 만 것이다. 정확히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결말이 맺어지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그 친구는 도통 자기 작품에 대해 얘기하지를 않는다. 그 친구와 5년을 넘게 살았는데도, 그녀가 자기 작품을 읽어보라고 건네준건 딱 한 번 뿐일 정도이니.. 허나 중요한건 다 필요없고, 내가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움하하 ;;

내가 다니는 회사가 드라마의 주무대이고, 내가 하는 일이 여주인공의 직업이라 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회사 이름도 내가 현재 다니는 회사 이름을 살짝 패러디한 것이라, 듣고 알만한 사람은 알 수 있을 정도. 만일 이야기가 실제 드라마가 되어 전파를 탄다면 수 억원어치의 PPL 효과가 있을 터이니 너(나)두 좋고, 나(친구)도 좋은 것이라 한다. 흠... 그 친구가 지금 밥 벌어먹고 사는 일이 PPL 마케팅 일이니까 하는 말이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좋다 다 좋다. 근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

만에 하나, 아니 만에 하나보다는 더 큰 가능성으로 그 이야기가 진짜 드라마가 된다면 본의 아니게 어떤 분께 민폐를 끼치게 되어 있다. 그 어떤 분은 지금 본인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되어 신나게 타이핑되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을 테니까.

그리하여.. 그 친구가 소원대로 시나리오가 당선되어 지긋한 회사 생활을 때려칠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면에.. 진짜 드라마로 만들어져 그 어떤 분에게 죄송스런 상황이 도래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는 게 작금의 딜레마다. 

까짓거 별일 있겠는가? 설마 당선이 될라구.. 아니지. 당선은 되야지. 당선이 되어 드라마가 된다손 치더라도 본인 이야기인줄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고, 못볼 수도 있고.. 봐도 그냥 웃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 그래 그럴거야.

친구.. OO! 걱정말구 열심히 써바! 뒷 감당은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넌 이번에 꼭 되어서 봉급쟁이 집어치고 니 하고 싶은거 하며 살 수 있을겨. 니 잘되면 나한테 한턱 쏜다고 했지? 기억하고 있을 거구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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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2-09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저도 당선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님은 주인공이 되시는 게 좋지요? 제가 그 남자라면 저도 굉장히 좋아할 것 같은데요? 그러니 그 남자분도 아마 좋--아하실 겁니다. 그 드라마, 기대가 되요!

sunnyside 2004-02-1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까요? 부디 그래야 할텐데요.. ^^ 그럼 우리 모두 온에어의 그날을 기다리며... 기도합시다. (-.-)

찌리릿 2004-02-15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이 이야길 언제 한번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만 되면 증말 좋겠네요. ㅋㅋㅋ
그런데 무슨 에피소드인지 진짜로 궁금하네요. 저한테만 살짝 알켜주세요~~ 그리고 그 남자가 누군지도...
회사이름은 인터넷서점 '지니' 아닐까여? ㅋㅋㅋ

nutmeg 2004-03-1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이 글을 내가 왜 이제서야 봤을까? 빨리 알려줘~, 남자 주인공 나도 아는 '그' 사람인가요? (음.. 사실은 "내가 아는 '그들' 중의 한 명인가요"라고 물어야 정확하려나..)

sunnyside 2004-03-18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예린님이 아는 분일까요? 모르는 분일까여~~~? (전 사실 친구 대본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두려움에 떨고 있슴다. -.-)
 

요건 지난주에 봤던 영화 카게무샤다.

너무나도 유명한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작이며,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작품. 내돈주고 산 몇 안되는 DVD 중 하나이다.

혼란스런 중세 일본을 통일하겠다는 야망을 품은 영주 신겐은 타고난 용맹과 카리스마로 적들의 외경과 아랫 사람들의 충성을 한몸에 받는다.

이러한 영주에게는 카게무샤라 불리우는 그림자 무사가 있는데, 이들은 영주와 닮은 꼴을 하고는 영주가 없는 곳에서 영주 행세를 한다. 적들에게 긴장감을 주고, 부하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함이다.

천한 도둑에 불과했던 한 사나이가 신겐과 닮았다는 이유로 카게무샤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불의의 사고로 신겐이 죽고, 호시탐탐 빠져나갈 궁리만 하던 도둑은 3년 동안 신겐 대신 영주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 받는다. 한 밑천과 3년 후의 자유를 약속받는 대가로.

그리고는 3년 동안 신겐의 말투, 신겐의 생각, 신겐의 용병술까지 배워나가면서 도둑은 점점 신겐과 비슷해진다. 전투 현장에서는 날아드는 화살 속에서도 '산(山)'이라 불리웠던 신겐을 생각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무사히 3년이 지나고, 도둑은 처음처럼 볼품없는 행색으로 영주의 궁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사이 커다란 변화가 일었다. 신겐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한때 도둑이었던 그 사나이는 자신의 군사들이 처절하게 패배를 맞는 전투 속으로 뛰어 들어가 죽음을 맞는다. 피로 물든 강에는 신겐의 교시가 씌여진 깃발과 함께 그의 주검이 둥실 떠 내려가고 있다.


▶ 첫장면. 세 닮은 꼴의 대화. 영화의 기본 줄거리를 알지 못하면, 뭐하자는 얘긴지 이해하기 힘들다.

 

 

 

 

 

 


▶ 카게무샤의 악몽. 긴장과 초조... 늘 신겐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강박관념을 표현한 듯.

 

 

 

 

 

 


▶ 무모한 신겐의 아들은 영주가 되자마자 대군을 이끌고 이웃 영토로 쳐들어간다. 신겐의 영혼이 무지개가 되어 이들에게 경고를 내리고 있건만...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상적 영웅에 대한 묘사는 일본의 작품들을 따라가기 힘들 듯. 거친 듯 강렬한 색감도 인상에 남는데..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피가... 피가... ^^; 아무래도 옛날이다보니 요즘 피처럼 실감이 나지 않아 피칠갑 하는 많은 장면들에서 약간 깬다는 것, 정도이다.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워낙 거창한 영화이니만큼 생각은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다. 카게무샤는 왜 적들의 십자포화 속으로 달려 갔을까?

사실 그는 누가 천하를 통일하든 아무런 관계가 없다. 신겐이든 이에야스든 노부다가든 어느 누구도 그 한 입 풀칠하고 사는 데 보태준 이가 없었다.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계속 그렇게 빌어먹고 훔쳐먹고 살다가 한 생애를 마감했을테고, 세상의 주인이 누군지는 영영 몰랐을 터이다.

그러던 그가 신겐의 카게무샤였다는 이유 하나로, 신겐의 손주를 자신의 손주처럼 신겐의 부하를 자신의 부하처럼 여기다 끝내는 장렬하게 최후를 맞게 된다. 그러한 과정이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과도한 정체성이 빚어낸 비극이다. 

카게무샤는 날아오는 화살 사이를 달릴 이유가 없었다. 이후에 신겐 부하들의 몰살 소식을 듣고 가슴 아팠을 순 있지만, 거기까지면 카게무샤로서의 임무는 완수를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신겐의 큰 그림자가 그에게는 버거웠던 것이다.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지 않고서는 신겐 행세조차 할수 없었던  거다.

결국 영화는 죽어서도 3년 동안 적들을 속이고, 부하를 속였던 아주 아주 커다란 영웅의 이야기다. 한 도둑이 그 영웅의 그림자 무사가 되었지만, 영웅의 그림자에 압도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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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뒤늦게 보게 되었다. 장준환 감독의 2003년 데뷔작인 [지구를 지켜라!].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온 주인공 병구는 오랜 준비 끝에 외계인의 수장 격인 강만식 사장을 납치하여 강원도 외딴 산골에 감금한다. 병구와 병구를 돕는 서커스 소녀 순이는, 강 사장이 외계와 교신하는 것을 막기 위해 머리를 삭발시키는가 하면, 텔레파시 능력을 파괴하기 위해 때밀이 수건과 물파스로 모진 고문을 가한다.

한편 이들을 쫓는 형사들의 추격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병구의 아픈 과거와 강만식 사장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대 여섯번의 폭소와 한 번의 전율, 그리고 한번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영화였다. 특히 처음엔 잘 드러나지 않던 사회비판적 메시지는 영화가 종반으로 치닫을 수록 점점 크게 울린다.

이렇게 중층적인 구조를 가진 영화니, 홍보 / 마케팅을 맡은 이들이 얼마나 고심하였을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결국 가장 대중적인 코드인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워 관객몰이를 해보려 하였으나... 가벼운 코미디 영화를 보려했던 관객들의 기대와는 딴판으로 영화가 전개되고, 어이없어하는 관객들의 외면 속에서 영화는 참담한 흥행 실패를 기록하게 된다. 

영화는 일찌감치 극장에서 내려졌으나,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작품상, 대종상 3개 부문 수상 등 평론가와 영화매니아들의 찬사 속에서 '저주받은 걸작'의 대열에 오르게 된다. 우찌되었던 나같은 이들에게도 그 명성이 전해졌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병구가 완전무장했을 때 모습. 외계인들의 텔레파시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저 모자를 꼭 착용해야 한다.

 

 

 

 

 

 


▶ 물파스의 성분이 외계인의 능력을 파괴한다. 눈, 발등, 그리고 거시기 부위가 그들의 약점. 흡수를 빠르게 하기 위해 때수건으로 피부를 약간 벗겨낸다.

 

 

 

 


▶ 태초에 인류가 어떻게 생겨났는가? 외계인은 자신과 닮은 꼴의 인간을 만들었으나, 인간은 자신의 타고난 사악함으로 인해 두번째 멸망의 위기를 맞는다.

 

 

 

 

 


▶ 어떠한 찬사도 부족하지 않을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백윤식. 특히 그의 외계어 연기는 압권이었다.

 

 

 

 

 

 


▶ 결국 눈물을 빼게 만들었던 엔딩 크레딧 장면. 이 비슷한 장면을 영화 '필라델피아'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본적이 있다. (감독도 안봤다고는 말 못할걸.. 거의 똑같으니까)

 

 

 

 

영화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결말을 맺을 수도 있었다. 만일 원래의 러닝 타임에서 마지막 10분만 잘라냈다면 보다 처절하고 현실적인 파국을 맞았을 것이다. 즉, 강사장의 꾀임에 넘어간 병구는 마지막 혈전에서 패배하여 죽음에 이르고, 강사장은 그 자리를 유유히 빠져나가는 것... 만일 그랬다면 영화는 병구로 대표되는 피억압자와 강사장으로 대표되는 억압자들의 갈등과 넘을 수 없는 대립 관계를 끝간데까지 몰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평단은 더 열광했을지도 모르고, 영화는 아주 싸늘한 여운을 남겼을 거다.

그런데... 영화는 그리 결론지어지지 않았다. 강사장은 진짜 외계인이었다(!) 인류의 유전자를 재배열하여 타고난 자기 멸망의 유전자들을 없애보려 하였지만, 끝내 이루어질수 없음을 알고 지구를 파괴해 버린다. '서로를 파괴하는 종족들이 사는 유일한 행성'인 지구를... 이는 무슨 말인가? 억압자 / 피억압자와의 대립이 구조의 문제가 아닌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내재한 문제라는 얘기다. 강사장과 같은 억압자가 문제인 게 아니라, 인간들은 처음부터 그렇게밖에 될 수 없는 종자들이라는 얘기다. 

물론 장준환 감독이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대입시켰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또 한 번의 반전, 그리고 '황당함'이라는 영화 전반의 기조에 걸맞는 판타지스러운 결말을 위해 그리 하였을 것이다.

어차피 영화란게 꿈이고 환상인 것을... 병구는 가여이 홀로 죽어갔는데 세상엔 아무것도 바뀐게 없다면 얼마나 쓸쓸하였겠는가? 병구는 죽었고, 그래서 지구도 사라졌다. 그것이 차라리 잘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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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내가 '환장'하며 보는 자연 다큐멘터리, 그 중에서도 특히 생태 다큐멘터리를 이번 설에도 TV에서 볼 수 있었다. KBS 1 에서 오전 11시경에 방영한 '신년특집, 지구환경대기행 삼부작'이 그것이다.

첫날 부침개를 만드느라 러시아 캄차카 편을 놓치고, 둘째날 순다 편과 셋째날 아오테아로아 편을 보았는데.. (설겆이를 제쳐두고!) 역시나 보는 내내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의 순다 열도와 뉴질랜드(뉴질랜드를 '길고 흰 구름의 나라'라는 의미의 마오리어인 '아오테아로아'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희귀 생물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두 나라는 비슷했지만, 살펴보면 큰 차이가 있었다.

순다 열도는 적도 생물의 마지막 낙원이라 불리는 곳으로, 전세계 생물종 17%가 서식하는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한다. 바닷속엔 온갖 기묘한 물고기와 조개, 산호초들이, 뭍에는 원숭이, 오랑우탄, 악어, 코모도 등 수많은 생물종들이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한편 뉴질랜드는 과거 대륙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부터 약 800년 전까지 포유류가 없었다. 대륙에서 그 거리가 상당하였던 관계로 과거의 뉴질랜드엔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조류들만이 서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조류들은 자신들이 당도한 섬에 천적이 없었기에 날아서 도망갈 필요가 없었고, 먹이는 풀이나 벌레면 그만이었으므로 먹이감을 구해 멀이 갈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뉴질랜드의 새들은 점점 몸집이 커졌으며 다리는 굵고 튼튼해졌다. 또한 날개는 퇴화되어 비행이라는 본래의 목적에는 맞지 않게 되어버렸다. 심지어 키가 3m, 몸무게 200kg에 이르는 거대한 새(역시 날 수 없는)가 불과 몇 백년 전까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아오테아로아'는 날 수 없는 새들의 천국이 된 것이다.

결국 두 곳의 환경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극과 극이었던 셈이다. 순다 열도 생물들의 다양함과 기기묘묘함은 치열한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산호초와 똑같은 생김으로 자신의 몸을 변형시킨 물고기, 주위 환경에 따라 몸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오징어, 높다란 나무 위에서 재주 넘는 긴코 원숭이들은 포식자가 득실한 환경 속에서 종을 유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여왔고,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반면 뉴질랜드의 날지 않는 새들은 천하태평 걱정이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풀이 돋아 있고, 사랑하는 달링과 귀여운 자식들은 둥지에서 아비를 기다린다. 그래서 삼년에 한 번, 단 하나의 알을 낳는 새들도 종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인간과 함께 들어온 담비, 족제비 같은 포유류 때문에 이러한 새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당연히도 난 순다 열도의 화려함보다도 뉴질랜드의 순박한 새들에게 더 정이 갔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외양을 바꾸고 재주를 키워온 순다의 동물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마치 중국 서커스단의 소녀가 도저히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을 것 같은 자세로 묘기를 부릴 때 신기하기보다는 '얼마나 고되게 훈련을 했으면.. 얼마나 혼나면서 배웠으면 저런 묘기를 부릴 수 있는 걸까?..'생각하며 안쓰러웠던 기억과 비슷하다.

뭐, 우리 사는 것도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으리라. 살아 남아라, 이겨라, 자신만의 전문성을 키워라,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루에도 수없이 우리를 생존경쟁에 몰아넣는 외침들에 우리는 점점 제 몸 색깔을 바꾸는 물고기처럼 그렇게 본래의 자기 모습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휴... 그래서 난 자연 다큐멘터리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면서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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