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1 : 혼세편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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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세계편 3권에서 퇴마사들은 블랙서클을 물리치는 큰일을 치렀다. 그 과정에서 당한 부상을 치료하느라 대부분 미국에 남아 있었고, 연희만 백호와 함께 귀국했다. 크리스마스를 한국에서 보내게 된 연희는 블랙서클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알게 된 푸른 영의 정체, 리에 대한 복잡다단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블랙서클의 케인이 남긴 마음으로 혼란스러운 일을 겪으면서도 리에 대한 추억과 마음을 쉽게 잊지 못한다. 그게「연희의 크리스마스」단편이고 이어지는「와불이 일어나면」은 운주사의 천불천탑에 관한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천불천탑을 세워 나라의 균형을 맞춰 국운을 돌리려 했던 전설을 바탕으로, 그걸 복원하려는 일에 퇴마사들도 동참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심상찮은 일들이 벌어지고,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와불을 세우면 국운이 더 이상 새 나가지 않을지 모르지만 안 좋은 기운이 일본으로 쏠릴 수도 있다는 전설. 그걸 알고 일부러 일본에 복수하려 했던 자들과 어떤 이유에서건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으려는 퇴마사들의 긴박함이 얽혀들어갔다. 내심 우리나라의 국운이 부활하기를 기대했지만 결국 퇴사마사들의 뜻을 거를 수가 없었다. 박 신부님이 늘 고민하는 ‘자신을 포함한 퇴마사들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가. 최선을 다하면서 처음에 지녔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가 하는 데 대한 반성이고 성찰’이 있었기에 감정이 좋을 리 없는 일본일지라도 그런 피해를 끼치게 놔두는 것은 옳지 않다는 데 동의했다.

「하굣길」「터」「프랑켄슈타인」은 모두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대부분 함께 하는 퇴마사들도 우연히 어떤 곳을 지나가다 이상한 기운을 느끼거나, 주변 사람들의 부탁으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준후, 현암, 박 신부님이 그랬는데, 나쁜 아이들에게 쫓기다 추락사한 아이, 부모님 묏자리에 콘도를 세우려 했던 불효막심한 아들, 죽어가는 여인을 살리고 싶어 위험한 실험에 끌어들인 남자의 이야기는 씁쓸했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나면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퇴마사들도 늘 고뇌하고 성찰하는 것처럼, 그들이 맞서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늘 현재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사실을 무시할 수가 없다.「그곳에 그녀가 있었다」는 일본의 각료계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들을 해결하러 퇴마사들이 모두 일본으로 건너간 이야기인데, 혼세편 2권 전체에 이어지고 있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씁쓸함이 더 커지지 않을까 싶은데, 모든 것을 지켜보고 해결하는 퇴마사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내 추억이 잔뜩 담긴 책이고, 재미있어서 읽고 있는 시리즈지만 가끔씩 밀려오는 이런 씁쓸함과 허무는 어쩔 수가 없다. 이런 감정이 느껴지는 게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깊이 공감하고 빨려 들어가 퇴마사들을 놔주기가 힘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많은 분량이 남아 있음에도,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마지막을 회피하고 싶어지는 마음. 다시 읽을 수 있지 않냐는 위로를 할 수도 있지만 점점 그들을 다시 만나는 것도, 놔주는 것도 쉽지 않음을 느낀다. 이번에 완독을 하면 아마 다음에 또 읽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또 들 것 같다. 올바른 삶을 산다는 것,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항상 긴장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퇴마사들에게 깊이 이입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삶이 소설 속에나 등장한다는 사실과 자꾸만 세상의 타락한 모습만 보고 듣는 내 시야를 부정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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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필코 서바이벌! 살림 YA 시리즈
박하령 지음 / 살림Friends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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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라는 건 원래 진실을 다루는 게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방향으로 가는 거라고 했다. 17쪽


어느 날 갑자기 누명을 쓰고 왕따가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참담함으로 모든 게 싫어질 것 같다. 아무런 의욕도 없고, 나를 도와주는 이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만으로도 절망감이 꽉 차 오른다. 평범한 여고생 장서란이 꼭 그랬다. 전학 간 친구 하늬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고, 그 아이 수첩에서 가해자인 것 같은 이름의 이니셜이 나왔는데 하필 JSR이었다. 이니셜이 같다는 이유로 장서란은 하루아침에 하늬를 혼수상태에 빠지게 한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믿어주는 사람 하나 없고, 서란을 몰아붙이자 스스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로 한다.

그런 서란의 용기가 대단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좌절하거나 쉽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는데 서란은 자신을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방법을 모색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 자신에게 악플처럼 쏟아진 종이비행기를 옥상에서 날리면서 결코 이 싸움에서 지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서란이 눈물겨울 정도였다. 조금만 살펴보면 서란이 하늬의 전학, 교통사고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소문은 자기가 믿고 싶은 방향으로 가는 거라고 했다.’는 말이 참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내가 경험하고 인지하고 있는 타인을 향해 다른 소문이 들려왔을 때 과연 나는 어떻게 했던가? 용기 있게 믿어주지 못했고, 우왕좌왕 하며 시류에 쓸려가도록 내버려둔 때가 허다했다. 그래서 서란의 용기가 당연한 건대도 대단하게 여겨졌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를 보는 시영에게서 내 모습을 가장 많이 본 듯 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부른다. 그래서 거짓말을 늘 패거리로 다닌다. 108쪽

서란이 왕따 당하는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하늬가 그렇게 된 이유를 캐가는 과정은 한 편의 추리소설 같았다. 여자아이들과의 만만치 않은 밀당부터 시작해서 구슬리고, 정보를 알아내고, 과감히 시도하고, 진심을 다하는 모습까지, 정말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절절하게 배어났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을 때는 서란의 그 고독한 싸움이 아니었다면 많은 아이들이 상처받고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는 사실을 보며 섬뜩하기까지 했다. 정작 당사자들은 회피한 상태에서 반성은커녕 서란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웠다. 그게 잘못을 드러내지 않는 가장 편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는 과정까지 또 다른 피해자인 서란이 동분서주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했다. 그럴 용기도 없고, 문제를 정면 돌파 하지 못하는 통찰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어서였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일에 거짓말이 보태지고, 부풀려지고 사람들이 소문으로 믿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른들조차도 도와주지 못했고, 잘 드러내지 않았으며, 마지막에 아이들을 화해시키러 나오는 과정에서도 매끄럽지 못했다. 자식을 키우고 있다면 가장 기본적인 생각, 내 자식이 귀한 만큼 다른 아이도 귀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좀 더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서란이 동분서주해서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아이들이 화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음에도 결국엔 어른들의 손을 거쳐야 했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학교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임에도 개인을 탓하고,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또한 이런 상황이라면, 내가 학부형이었대도 뚜렷한 방법을 모른다는 사실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막막했는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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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읽은 책

28. 앵무새 죽이기 - 하퍼 리 _544쪽 _6,021쪽

29. 기필코 서바이벌! - 박하령 _184쪽 _6,205쪽

30. 자전거 도둑 - 박완서 _184쪽 _6,389쪽

31. 최민식 - 최민식 144쪽 _6,533쪽

32. 강아지 복실이 - 한미호 35쪽 _6,569쪽

33. 낯선 사람들이 만날 때 176쪽 _6,745쪽

34. 도쿄 셀렉트 북 _312쪽 _7,057쪽

35. 멋진 서커스 32쪽 _7,089쪽

36.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 - 피터 홀린스 _192쪽 _7,281쪽

37. 예수는 누구인가? - 조정민 _152쪽 _7,433쪽

38. 변신, 카프카 단편선 - 카프카 190쪽 _7,623쪽

39. 퇴마록 세계편 3 - 이우혁 _560쪽 _8,183쪽

40. 퇴마록 혼세편 1 _이우혁 _504쪽 _8,687쪽

41. 내일을 여는 창 언어 -실비 보시에 132쪽 _8,819쪽

42. 동물들의 장보기 -조반나 조볼리 32쪽 _8,851쪽

 

43.~45.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3 - 도스토옙스키 _1,604쪽 _10,455쪽

46. 율법과 복음 - 김형익 _232쪽 _10,687쪽

 

 

-4월에는 정신없이 읽은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니 4월이 다 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4월에는 5,210쪽을 읽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독자모니터로 먼저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새롭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시작으로 <앵무새 죽이기>와 같은 고전을 읽을 수 있어서 뭔가 후련했다.


<퇴마록>을 다시 시작했지만 감기로 두 권 읽고 의욕이 꺽여버린 상태고, 신앙 도서를 읽고 싶어 두란노 서포터즈에 선정되어서 두 권의 책을 읽었다. 모두 내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굉장한 책들이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월초가 되면 책을 주문하는데 어제 미리 주문을 해뒀다. 5월에는 또 어떤 책들을 읽게 될지, 어떤 책을 읽을지 기대가 된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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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복음 - 속박에서 자유로 가는 여정
김형익 지음 / 두란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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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복음을 구분하는 바른 지식은 성경 전체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영광스런 빛이며, 이 지식이 없다면 성경은 봉인된 책에 불과할 것이다. _19세기 루터교 목사 C.F.W.월터


그동안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고백했지만 내 신앙은 왜 정기적으로 기복적인지, 죄에 물들 때면 죄책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자괴감에 빠지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오로지 나의 믿음과 의지부족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고백을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다시 신앙으로 돌아오곤 했지만 늘 명쾌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깊은 고민도 하지 못했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절실히 깨닫고 내가 처음 복음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깊은 충격과 은혜에 동시에 빠졌다.


신앙은 의지가 아닙니다. 신앙은 신앙입니다. 율법과 복음을 혼동하면 의지로 신앙생활을 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다 성취하신 율법의 요구를 내가 내 순종과 의지의 노력으로 다시 채우려고 함으로써 자기 의를 쌓게 되는 것입니다. 41쪽

여기서 의지를 오해하지 말라고 했다. ‘의지가 신앙을 대치하고 복음을 대신하게 된다는 의미’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구분하지 못해 제대로 된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된 ‘율법과 복음’은 과연 무엇일까? “율법은 ‘이렇게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말하는 반면, 복음은 ‘내가 너를 위해서 다 했다. 그러므로 너는 살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율법은 명령이고 복음은 약속이기에 ‘율법은 우리가 행해야 할 내용이고, 복음은 우리가 믿어야 할 내용’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율법은 우리가 완전히 지키기 어렵다. 나처럼 기복신앙과 죄책감이 밀려왔던 건, 율법에 얽매어 죄를 뒤집어쓰고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복음의 큰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에서 온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요구에서 자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구분해야 한다. 내가 성취할 수 없는 율법에서 자유하게 해주셨음에도, 그 사실에 무지하고 스스로 왜곡해서 진정한 복음을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으면서도 이제야 깨달았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참담했지만, 과연 나만의 문제인지, 모두가 함께 깨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이 책에서는 끊임없이 해준다.

우리는 하나님의 첫 번째 계시인 율법이 우리의 실상, 곧 우리의 실패와 절망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이 두 번째 계시니 복음을 믿게 하는 최적의 준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복음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40쪽

진지하게 성경을 연구하지 못하고, 읽지 못해서인지 내게는 율법과 복음을 구분하는 것조차도 처음엔 버거웠다. 그리고 율법에서 자유로워졌다면 멋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란 편협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율법을 제대로 구분하고,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였다면 과거의 율법에 자유롭지 못한 ‘나’로 돌아갈 일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변할 수 없는 사실인 것처럼, 죄가 신자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변할 수 없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더 이상 죄가 신자인 ‘나’를 주장하고 지배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어야 할 육신을 지니고 있기에 죄로 가려는 본성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자연적인 본능도 비정상적인 욕망으로 바꾸는 죄의 성질 때문이다. 구원은 확실한데 “우리가 ‘이미’와 ‘아직’사이의 종말론적 긴장이라고 하는 과정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때에는 우리 몸도 영화롭게 변하겠지만, 지금은 썩고 노화될 몸을 입고 사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 모든 말들이 오해와 논란의 소지가 있다면, 짧은 식견으로 제대로 전하지 못한 나의 부족함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율법과 복음’에 대해 생각하고 구분 짓고, 나의 잘못된 과거의 생각들을 뒤집느라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거기다 마지막 장 ‘복음 설교의 회복을 위하여’ 부분에서는 ‘복음이 선명하게 선포되어야’하는 설교에 대한 부분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번영신앙과 율법주의에 얽매인 기복신앙과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믿고 순종하는’ 윤리 설교를, 목회자라면 하지 말아야 하고, 성도라면 구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설교’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스스로도 정리가 안 된다. ‘율법과 복음’을 구분 짓고, 율법에 자유롭고 복음의 기쁨으로 가려는 과정 때문인지 지금껏 나의 신앙을 돌아보느라 바쁘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잘못된 복음을 어떻게 바로잡고 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나의 내면이 갈아엎어지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도중 몇몇의 지인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그리고 선물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괴감에 빠졌던, 복음을 전하는 어려움에서 일단 내 스스로 자유로워졌다. 나처럼 죄에 발목이 잡혀 기복적인 신앙으로 고민하는 이들과 복음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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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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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책과 번역이 다르다고 해서 처음에는 갸웃,했으나 번역을 비교해보고 깜짝 놀랐다. 마치 현대소설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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