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베를린 연대기 - 발터 벤야민

 

<읽는 직업>을 읽는데 이 책이 언급이 되어서 바로 주문했다.

배송이 늦어져서 어제야 도착한 책!

정말 궁금하다.

 

 

 

 

알다시피 벤야민의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은 벤야민 생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못했다. 그는 이 원고를 출간하기 위해 처음 탈고한 1933년 이후 1939년까지 수정을 거듭해 분량을 3분의 1 이상 줄였고, 의미심장한 서론까지 덧붙였다. 하지만 세 군데 넘는 출판사에서 하나같이 "글이 어렵다"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다행히 벤야민은 사후 한나 아렌트에 의해 명예가 회복되었고, 책은 20세기 산문의 고전이 되었다.


『읽는 직업』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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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하여 팀 켈러의 인생 베이직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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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가 이토록 죽음을 숨긴다는 것은 모든 문화 중에서 우리야말로 임박한 죽음의 불가피성을 부정하며 산다는 뜻이다. 17쪽

 

죽음은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한 끗 차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되도록 부정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직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언젠가는 닥치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미루고 있는 듯하다. ‘알베르 카뮈 같은 실존주의자들은 죽음이 최후의 상태라는 사실이 삶을 부조리하게 만들며, 이 사실을 부정하려고 쾌락과 성취에 몰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역설’했듯이 죽음이 곧 닥칠 일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대부분이 당연히 주어지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죽음이 오는 시기를 알 수 없다면, 죽음을 향해 가는 우리는 어떤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T. S. 엘리엇은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라 죽음이 곧 끝이 아닐까 봐 그게 우리는 두려운 것이다”라고 했다. 32~33쪽

 

저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과거 어느 때 못지않게 도덕주의로 흐르면서 타인에 대한 비판을 일삼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죄’ 때문이고, 벌하고 추방하는 방식은 종교의 정결 의식과 놀랍도록 비슷하다고 했다. 즉 ‘인간은 도덕적 반사(절대도덕, 죄와 심판, 죄책감과 수치심의 벌 등에 대한 신념)’를 버릴 수 없다고 했는데, 하나님과 천국과 지옥에 대한 기존의 기본 신념을 버렸고, 회개하거나 은혜와 용서를 베풀 수 있는 유구한 자원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마치 레이더망에 걸리길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 도덕주의에 어긋난 행동을 보이면 신랄하게 비난하는 이유가 설명되는 것 같다. 하지만 회개와 은혜, 용서를 베풀 수 있는 유구한 자원을 알고 있는 나에게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자는 죽든 살든 결과와 무관하게 늘 죽음을 이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기에 이제 죽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리를 지금까지보다도 더 행복하고 더 사랑받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뿐이다. 42쪽

 

그렇다고 태연하게 늘 죽음을 이길 수는 없다. ‘죽음은 본연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비정상적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울라고 할 뿐만 아니라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을 알면서도 그의 무덤 앞에서 슬퍼하고 노하시기까지 하셨다고 말한다. 바울도 슬픔 뒤에 ‘소망’이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소망이 바로 예수님이 정복하신 ‘죽음’이라는 사실을 믿고 부활에 동참하는 것이다. 저자는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되 깊은 소망을 품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죽음’을 우리 앞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게 되거든 당신을 거기로 인도하신 분이 목자이신 예수님임을 잊지 말라. 그분이 당신을 위로하시며,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했을 힘과 깊이와 성장을 여러모로 더해주신다. 그러니 그분의 임재를 감사하고, 자기연민을 물리치고, 기도로 그분을 구하라. 110쪽

 

죽음을 앞둔 이를 위해 기도할 때나, 추도 예배를 드릴 때 시편 23편을 자주 인용하는 것을 목도했다. 그 말씀에는 ‘애통하는 이들을 위한 위로가 총망라 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제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의미가 좀 더 가까이 와 닿는 것을 느낀다. ‘죽음’이 더 이상 추상적인 일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죽음과 같은 절망과 고난과 어려움은 산재해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의 임재를 기억하려 한다. ‘모두에게 버림받으신 채 홀로 죽음을 맞이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늘 내 곁에 계신다는 사실처럼 든든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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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10주년 개정증보판)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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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다. 한 권의 책을 마주할 때 대략 걸리는 시간을 예상하며 책을 읽었고 두려움이 없었다. 그랬던 독서가 요즘에는 흔들리고 있다. 기억력도 기억력이지만 엄청난 흡인력이 아니면 온전히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훌쩍 줄어들었다. 그만큼 독서집중력을 끌어올리기가 갈수록 힘이 들었는데, 이유를 나이탓으로 돌렸다. 그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집중력이 나이탓도 있겠지만 ‘뇌는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며 과거 방식을 스스로 바꿔 스스로를 새롭게 정비하는 능력’ 즉 가소성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식이 주로 대화를 통해 교환되던 구어 문화에서 문자 문화로 이동했으며, 쓰기가 생각을 표현하는 주된 매개체가 되었다. 이 변화로 인해 궁극적으로 지구상 모든 이들의 생활과 뇌가 바뀌었으므로 이는 혁명이라 할 수 있었다.

97~98쪽

문자가 혁명적이었던 만큼 나의 뇌 구조를 바꿀 만큼 혁명적인 등장은 무엇일까?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변화를 모두 겪어본 나로서는 아무래도 스마트폰의 등장이 아닌가 싶다. 10년째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나와 처음 접해본 통신기기가 스마트 폰인 현재의 아이들과의 차이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스마트폰이 가져온 변화는 엄청나다. 저자는 뇌의 가소성과 다양한 실험을 근거로 인터넷과 기술 발전으로 왜 장시간 집중할 수 없는지를 다양한 시선에서 접근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지식을 함양하는 존재에서 전자 데이터라는 숲의 사냥꾼이나 수집가로 진화하고 있다. 229쪽

이 책을 읽은 느낌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를 방해하는 것은 스마트폰이다. 광고 메시지와 SNS 업데이트, 자질구레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쉼 없이 알람으로 울리고 있다. 그것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한 권의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되고, 그만큼 집중력은 떨어지고 있다. 단순히 무언가를 하기 위해 준비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생각했는데, 불필요한 일들이 끼어들면서 버려지는 시간들이 많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느꼈다.

‘독서는 깊은 사고의 형태로 자리 잡’은 만큼 ‘숙련된 독서가는 고요한 사고를 지닌 사람이지 소란스러운 사고를 지닌 이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독서의 매력을 알고 있기에 지금껏 종이책만을 고집했었다. 매리언 울프는 “온라인에서 무엇을 읽을 때 우리는 깊은 독서를 가능케 하는 기능을 희생시킨다고 한다. 우리는 정보의 단순한 해독기로 되돌아간다. 깊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읽을 때 형성되는, 풍요로운 정신적 연계 능력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203쪽)” 라고 했다. 책보다 더 오래 붙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읽는 뉴스 기사는 가독성과 판단력을 흩트렸고, 알고리즘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영상의 향연에 빠져있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있기 마련이다. 이런 습관에 익숙해져 있다 책을 펼쳤을 때 집중력이 떨어지고, 깊은 독서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더 나은 뇌”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저 ‘다른 뇌’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243쪽

저자는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의 사용으로 우리의 시각적 예리함, 스크린이라는 추상적 공간에서 나타나는 사물과 또 다른 자극들을 재빠르게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시켜왔다고 말한다. 그럼으로 우리는 더 나은 뇌가 아닌 다른 뇌를 지니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의 부모세대, 현재의 나, 그리고 자녀세대의 뇌 구조가 동일하지 않으며 내가 집중력을 자꾸 잃어가는 이유, 그리고 이미 영상세대인 자녀세대에게 나의 경험으론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의 기억이 온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조셉 드루는 “기억을 하는 뇌는 기억을 처음 형성하는 그 뇌가 아니다. 오래된 기억을 현재의 뇌가 이해하기 위해 기억은 업데이트되어야 한다(309쪽)”고 말한다.

어쩌면 뇌는 자기 세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화하고 있는데, 그 사실을 크게 인지하고 못하는 게 나 자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나를 산만하게 하고 자꾸 어긋나게 한다면 다시 돌아갈 필요성도 있다. 저자가 이 긴 책에서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날로그라는 느낌이 들었다. 깊이 사고 할 수 있고, 집중력을 기를 수 있는 것은 독서처럼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 혹은 공간이라고 말이다. 뇌는 이렇게 변해왔고, 변하고 있지만 훈련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듯이 정보의 홍수에 헤매며 생각을 차단시키는 게 아닌 생각하고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저자도 이미 경험했듯이 이 책을 쓰기 위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지만 결국 이전의 나쁜 습관(알림 서비스, RSS 리더기)으로 돌아갔다고 고백했다. 미국인의 여가형 독서시간이 2018년에는 16분으로 하락했다고 하는데, ‘뇌의 소모’를 낳는 것으로부터 도피가 먼저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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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두신 노래 - 온 세상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생각
샐리 로이드 존스 지음, 제이고 그림,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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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정작 하나님은 그분이 손수 지으신 것들 가운데 무엇을 최고로, 무엇을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것으로 꼽으실까요? 바로 ‘당신’이에요. 29쪽


감히 내가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 한마디가 존재의 이유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나는 하나님께 지음 받았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이 땅에 발붙이고 우뚝 설 이유가 되어준다.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을 때 이 사실은 다시 나를 살린다. 단지 매일 자각을 못하고 있을 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한 적이 없다.


‘죄’란 무엇일까요? 죄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려는 거예요. 하나님에게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34쪽

‘죄’에 대해서 이렇게 간결하게 말해주다니. 이 문장들을 읽는 동안 내가 최근에 지었던 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내가 죄를 짓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긴 것이 아니라, 내가 죄를 짓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문장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뻐서였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도 감사했다.

가끔 난데없이 나쁜 생각이 떠오르곤 하죠? 그러면 나쁜 생각이 떠오르는 게 죄일까요? (…) 중요한 것은 생각이 아니에요. 그 생각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해요. 예수님은 그런 나쁜 생각에 귀를 기울이시지 않았답니다. 71쪽

이 말씀을 읽고 얼마나 마음의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나쁜 생각을 제어하면서 살고, 이 생각을 드러내 버린 게 범죄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든지 보통 사람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여겼는데, 그러면서도 나쁜 생각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 죄책감이 많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사탄이 속삭이는 나쁜 생각을 물리치셨다. 나는 하나님께 지음 받았으므로 얼마든지 하나님께 의지하면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나쁜 생각이 들 때에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라고 말하곤 한다. 앞으로는 그 말에 더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가장 기뻐하신답니다. 194쪽

내가 기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걸 안다. 그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당연히 나도 기뻐해야 하는데, 늘 나에게 관심을 쏟느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알게 되었으니, 그 일을 기쁘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이 지금처럼 좋았던 적이 없다.


이 책의 제목과 구성만 보고 다소 산만하게 퍼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짤막한 글과 그림이 분산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하나씩 읽어나갈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쉽고, 간략하고, 적확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예배를 참석하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이 책은 쉽고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에게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죄, 복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에둘러 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고 느꼈다.

내가 신앙을 막 접했을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 앞에 나의 짧은 생각을 들이댈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오랜 시간 돌고 돌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신 것도, 이 책을 지금 만나게 한 것도, 내가 알지 못하는 앞으로의 일도 모두 하나님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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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아 吾友我 : 나는 나를 벗 삼는다 - 애쓰다 지친 나를 일으키는 고전 마음공부 오우아 吾友我
박수밀 지음 / 메가스터디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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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은 욕망하는 나와 본래의 나가 끊임없이 충돌하며 중심을 잡아가는 고정이다. (…)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에 따라 살다 보면 끊임없이 ‘남의 시선에 맞춰 사는 나’가 있을 뿐이다. 34쪽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에 더 쏠릴 때가 많다. 그래서 현재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지 못하고 과분한 것을 보면서 방향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다행히도 타인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인다는 기분이 들 때 이 책을 펼쳤다. ‘나는 나를 벗 삼는다’는 이덕무의 호 ‘오우아거사’처럼 어지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부터 선해야 마땅히 좋은 사람은 좋아하게 되고 악한 자는 싫어하게 되어 선한 자는 자연히 가깝게 되고 악한 자는 절로 멀어진다. (…) 말하자면 돌이켜 내 자신에게서 구할 따름이다. 64쪽


‘나의 맑음’은 주변 모두를 깨끗이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쏟아내는 짜증과 불평을 돌이켜보면 나는 변하지 않은 채 다른 이들이 바뀌길 바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사고방식과 어떤 문제에 당면했을 때의 해결 방향으로도 내면의 농도는 쉽게 드러난다. 그런 드러남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성취는 중단 없는 끈기와 열정이 빚어내는 결과물이다. 지겹다고 해서, 지친다고 해서 단념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 처음의 열정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원하는 바에 가까워질 수 있게 될 것이다. 108쪽

내가 하고 있는 일, 좋아하는 일, 그리고 그 안에서 생기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도 뭔가를 이뤄놓은 건 없지만 모든 면에서 나는 참 늦된 사람이었다. 둔하고, 늦고, 뭔가를 꾸준히 하지만 감정에 휩쓸리기 일쑤라 다른 이들보다 조금 빛을 본 적도 있었지만 그것도 이내 사그라지고 말았다. 그렇다보니 내 때가 언제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고사하고, 하루살이처럼 그날그날을 겨우 견디며 살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열심히 없고, 오로지 내 몸 편할 대로 휘둘리는 모습이 참 부끄러웠다.

저자는 나를 벗 삼아 나를 찾아 가다보면 삶의 태도가 바뀌고, 욕망을 다스리며 당당히 혼자서 가는 길을 갈 수 있게끔 선인들의 지혜를 모아 놓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단념이 빠른 터라 나를 겨우 벗 삼기는 했지만 삶의 태도가 바뀌는 부분에서부터 덜걱 거린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내가 어떻게 변화되겠냐 싶다가도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이뤄낸 평범한 사람들을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꼭 무엇이 되겠다고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려는 것 하나만으로도 변화가 이뤄져야 함을 느낀다.


이덕무는 말하길, 가장 뛰어난 사람은 가난을 편안히 여기나, 가장 못난 사람은 가난을 부끄러워 해 감추기도 하고 가난에 그대로 짓눌린다고 했다. 242쪽

여전히 나는 가난에 짓눌려 있다. 하지만 물질적인 가난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가난, 생각의 가난, 관계의 가난 속에 허덕이고 있는 이때에 부끄럽지 않다면 당당하고 편하게 여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문제는 가난을 마주 보지 못하고, 스스로 부끄럽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나를 가장 짓누르는 가난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난을 어떻게 여길 것인지가 이 책을 통해 내가 받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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