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 이야기 식사 食史
황광해 지음 / 하빌리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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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역사 사료들이 잔뜩 등장해서 음식에 관한 책이 아닌 줄 알았다. 그래서 조금 읽다 책을 덮었고 한참이 지나서 다시 펼쳤는데 이상하게 잘 읽혔다. 책이 잘 읽히지 않을 땐 묵히는 버릇이 있는데 잊지 않고 다시 꺼내 들어 재밌게 읽은 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처음과 달리 왜 이렇게 재밌게 읽혔을까?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고 있는 음식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오류들이 속속 드러나서 재정립하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면 고려가요 <쌍화점>의 쌍화는 만두라는 것, 그러므로 쌍화점은 만두전문점이었다는 사실과 제갈공명이 처음 만든 것도 아니며 만두라고 칭하는 종류가 엄청나다는 사실들이었다. 또한 대구탕은 대구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구 명물 육개장(쇠고기+개장국)이 대구탕으로 불렸다는 것들이다. 미나리는 또 어떤가. 더러운 물에 산다고 천대하던 미나리는 ‘충성과 겸양의 상징이’며 미나리는 성균관의 아이콘이었으며, ‘미나리를 캔다’는 표현은 ‘성균관에서 공부한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오해하고 몰랐고, 관심도 없었던 이런 이야기들이 역사 속에서 속속 드러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방향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것을 보니 재미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많이 변형되었다 하더라도 옛 사람들도 먹고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이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순조는 한 한밤중에 냉면이 먹고 싶어 신하를 시켜 ‘냉면 테이크아웃’을 하는가 하면, 조선 시대에도 ‘수유’라는 버터 혹은 치즈가 있었고 군역을 면하기 위해 그 부락으로 숨어드는 멀쩡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귤이 너무 귀해서 제주에서 진상되면 궁궐에서는 과거를 치렀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서로 받겠다고 싸우기도 하고 그런 사정이다 보니 정작 제주에서는 ‘귤나무를 일일이 세어 장부에 기록하고, 열매가 맺을 만하면 열매숫자를 기록’하는 일도 있었단다. 지금은 풍족하고 대량생산되는 시대에 살고 있고, 시대도 변해서 이런 이야기들이 상상이 되질 않지만 그에 따른 고충은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당시의 생활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마치 그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착각이 일기도 한다. 지금까지 이어 내려오는 음식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현재 우리가 먹는 음식과 비교하면 씁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얽힌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더 그렇다. 임금이 받는 수라는 민심과 정치적인 상황을 받아들여 수시로 바뀌곤 하는데 연산군의 여지(리치)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기가 찰 정도다. 내게는 뷔페에서 만나게 되는 과일로 인식되어 있는 만큼 자주 접하고 먹는 과일이 아님에도 조선시대에 그 과일에 빠져 무리하게 요구한 군주가 연산군이라고 하니 음식에도 폭군이 있나 싶어 씁쓸했다. 그가 강화도로 쫓겨난 후에야 국가 체면을 떨어뜨리는 여지 구입이 끝났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술과 관련된 문제가 다양했다는 점도 그렇고 나라의 국력이 타국에 쏠려 있을 때 관련 음식들도 슬프게 기억된다는 것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과연 현재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시대를 거쳐 가면서 변화되고 변형되어 다음 세대에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세대들은 음식과 현재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잘 상상이 되질 않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바람이 생겼다. 좀 더 건강한 음식을 남길 수 있었으면 싶었다. 지금도 건강한 음식을 먹고 있다는 인식이 부족한데 다음 세대는 캡슐 하나로 식사를 끝내는 건 아닌가 하는 쓰잘머리 없는 상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음식과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알다 보니 내가 현재 먹고 있는 음식, 구입하고 만들어 먹고 누군가와 함께 먹는 음식이 즐겁게만 기억되어도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이런 의미까지 끌어올릴 줄은 몰랐다. 좀 생뚱맞긴 해도 오늘 먹는 한 끼니에 최선을 다해야겠단 생각이 불쑥 올라온다. 저녁 시간이 다가온다. 주부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시간이다. 항상 고민과 귀찮음이 동반되는 이 일이 오늘은 좀 더 진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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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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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을 모두 읽고 덮었을 때 현실감각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책 속의 상황이 생생하게 펼쳐져 나 혼자 낯선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 같았다.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곧장 외출을 했다. 사람들 사이에 적당히 섞여 그들을 바라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 눈에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고 그저 우연히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런 사람들을 내면의 분노로 인해 없애버리고 싶은 대상으로 생각했다고 하니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실제로 실행했다. 13명의 사망자와 24명의 사상자를 낸 총기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진실이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사실 총기사건이 아니었다. 실패로 끝났지만 폭탄 테러사건이었다.’는 저자의 말에 점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섬뜩했다. 1999년 4월 20일. 내가 고 3때였고 범인들은 나와 태어난 해가 같았다. 당시 내가 총격사건에 대한 뉴스를 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렴풋이 캐시 버넬의 순교에 관한 이야기는 들은 기억이 났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부분이 미화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그 인물이 콜럼바인 총기 사고의 희생자였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럼에도 섬뜩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1999년의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과 번뇌만 잔뜩 짊어지고 있었는데, 지구 반대편에 나와 나이가 같은 에릭 해리스는 사건 일 년 전부터 ‘자신이 받은 학대의 상징’인 학교를 향해 대학살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딜런 클레볼드와 함께 사제폭탄과 총을 들고 학교로 들어가 사람들을 죽이고 다치게 했다. 나와 에릭과 딜런의 차이점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실행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끔찍한 고통 속으로 들여놨는지 공백을 전혀 좁힐 수가 없었다. 완전히 다른 존재라서? 아니면 그들이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건이 터진 후 모두가 그들의 동기를 찾으려고 온갖 것들을 목표로 삼았지만 가장 중요한 ‘왜?’에 대한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이 책은 저자가 약 10년 동안 조사하고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면서 ‘왜?’에 대한 많은 사실을 드러낸다.

저자는 자료 출처에 대해 ‘내가 멋대로 지어낸 문장은 없다.’고 했다. 차라리 사실이 아니었음 싶은 이 사건은 있는 그대로의 일이었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생생하고 촘촘해서 당시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는 착각이 들었지만 당혹스러웠다. 에릭과 딜런의 행동은 어떤 식으로든 이해를 요구할 수 없지만 충동적인 게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영민함을 범죄로 끌어들인 에릭은 많은 기록을 남겼다. 홈페이지와 일지에 세상에 대한 분노와 심지어 살인에 대한 예고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한 학생의 부모가 끈질기게 에릭을 예의 주시할 것을 경찰에 알렸지만 방관했다. 그리고 사건이 터졌을 때 관련 기록을 삭제했고 은폐하려 했다. 나중에 그 모든 사실이 밝혀졌지만 적어도 그런 살상이 일어나지 않게 조금은 예방할 수 있었다는 안타까움이 내내 마음에 맴돌았다. 하지만 총격 직 후 에릭과 딜런이 자살함으로써 책임과 비난을 향할 대상이 없어져 버렸다. ‘콜럼바인 사태의 경우, 총기 제공자를 제외하고는 재판을 받을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처럼 사건은 혼돈 그 자체였다. 언론과 경찰, 유가족과 부상당한 학생과 부모, 가해자의 부모까지 모두 얽혀들어 진흙탕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의 책임은 붕 떠버렸다. 혼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는데도 ‘왜?’ 에 대한 답은 여전히 없었다.

 

그런 와중에 ‘FBI 요원으로 왔지만 임상심리학자로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는 퓨질리어가 에릭과 딜런이 남긴 기록을 보며 순차적으로 ‘왜?’에 접근해 가는 과정이 흥미로우면서도 섬뜩했다. 그는 에릭과 딜런이 남긴 모든 기록과 자료를 반복해서 보며 날카로운 분석을 한다. 에릭이 분노와 우월감으로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과정을 밟으며 서서히 범죄자로 발돋움 하는 것과 달리 딜런이 강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지만 실천력이 없었던 아이였다는 것. 여러 과정을 거쳐 결국 둘은 총을 들고 학교로 들어가 대학살을 실행했고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에 다다랐다.

그들이 1999년 4월 20일로 점점 향해가는 과정과 사건 전 후의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과 혼란이 이 한 권의 책에 촘촘하고도 낱낱이 드러나 있다. 비극의 보고서이면서, 잘 짜인 소설처럼 흡인력 있게 정점을 향해가는 이 기록 앞에 당황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사건이 터졌을 때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 변화와 제각각의 대응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인간군상을 철저히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사실들이 은폐되고 혼란을 야기시켰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대로 믿었고,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했으며 그 틈을 이용하려는 기회주의자들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부상자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은 고통 받고 있었다(원치 않은 부상을 입고도 자신의 삶을 잃지 않으려 했던 패트릭의 이야기는 이 비극을 경멸이 아닌 숙연함으로 만들기도 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은 이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처음에는 사건 자체가 궁금했다. 그러다 이 일이 일어난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정점을 향해 가는 이 보고서가 어떻게 마무리 될지 궁금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건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이 책이 알려주길 바랐다.

저자는 탄탄한 구성 속에 냉철한 기록이 섬세하게 녹아들도록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철저한’ ‘자기반성’을 이끌어 내고 있다. 두 소년의 마지막 모습으로, 남겨진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이 책은 끝이 나지만 수많은 질문과 상상, 그리고 남겨진 메시지가 이를 대변한다. 이 사건을 면밀히 관찰한 내 마음에 가장 깊이 새겨진 메시지는 ‘도와줘야 한다.’였다. 이 사건을 마주하고 수많은 내면의 변화를 겪었는데 내게 남겨진 메시지에 나 역시 놀랐다. ‘FBI는 구체적인 경고 신호의 목록을 작성’했고 ‘한 가지 사항을 지적했다. 거의 모든 경고 신호를 보이는 아이는 공격을 계획하기보다는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준에 딱 들어맞는 아이는 가둬둘 것이 아니라 도와줘야 한다.’는 부분이 강렬하게 새겨졌다. 어쩌면 딜런은 에릭과 같은 사이코패스가 아니었기에 도와줬다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에릭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에릭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미친 것도 아니었다. 사이코패스는 이와는 다른 별개의 범주’ 라고 말한 것처럼 이런 증상을 보인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여전히 어렵다. 에릭이 남긴 섬뜩한 기록을 보고 있으면 과연 도움이라는 것이 통할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분명 강력한 원인은 에릭의 사이코패스와 딜런의 우울증 때문이지만, 그 하나의 원인만 사건의 동기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결정적인 고비가 된 사건이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다단한 이유 혹은 본성, 환경, 시스템 그리고 유려하지 않았던 상황도 포함되기 때문이다(이는 퓨질리어의 냉정한 분석을 받아들였 뿐, 두 소년의 행동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동의어는 아니다.). 또한 누군가 그들에게 관심을 더 기울였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몇몇은 그들의 위험을 감지했고 알렸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이 사건을 통해 많은 부분이 재조명되고 정비되었지만 이후에도 총기 사고는 일어났고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 내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이 일을, 적어도 조금은 알아차릴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에릭과 딜런을 봐도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여전히 나와 우리가 그런 이들과 마주했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충분치 않다. 많은 변화와 노력이 따라야 한다. 그것은 누군가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일 때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말들이 모호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이야기하는 내 시선 또한 그럴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그럼에도 더 이상의 관찰자와 방관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도와야 한다’는 메시지가 들어왔다면 도울 준비를 마련해야 한다. ‘폭력으로 향하는 과정은 여기저기 놓인 표지판을 따라가는 점진적인 길이’라면 그 표지판을 선한 것들로 바꾸고 때론 단속하고 도움의 손길도 내밀어야 한다. 우리가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사실을 인정하되 방치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극단적인 ‘왜?’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할 수 있지 않을까? 내면의 분노가 타인의 생명을 해하지 않도록 방향을 틀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모호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남겨진 이들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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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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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작가의『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를 읽지 않았더라면 이 책의 존재도 몰랐을 것이다. 책이 너무 좋아서 위화 작가의 팬이 되기로 결심하고 책장을 뒤지다 이 책을 발견했다. 언제 책장에 들인지도 기억도 나지 않은 책이어서 결심하고 찾아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더 오랫동안 내 책장에 숨겨져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 또한 독서에는 인연이 있다고 했으니 6년 전에 처음 만난 위화란 작가를 이제야 제대로 만나고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인연이 신기할 따름이고 또 한명의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내가 처음 만난 위화 작가의 작품은『4월 3일 사건』이었다. 저자에 대한 어떠한 배경지식도 없었기에 모호했고 다른 작품을 더 읽어봐야 그의 문학세계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자나 작품에 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읽기에 무리가 없는 작품이 있는가하면 위화 작가의 작품은 배경지식을 알고 나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이 중단편집을 읽고 느꼈다. 다시『4월 3일 사건』을 꺼내 읽으면 당시에 모호하고 몽롱했던 부분들을 좀 더 또렷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저자의 에세이를 통해서 자신의 문학세계는 물론이고 성장과정에서 드러나는 중국 역사의 배경과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모두를 담고 있어서 이 소설들을 읽는데 도움이 되었다.


가장 먼저는 소설의 소재가 어떠한 것이든, 독자의 예상을 깨고 일그러짐으로 진행시키든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 저자가 겪은 문화대혁명과 직업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었던 시기를 지낸 저자의 작품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모두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소설들은 저자의 문학 색깔이 달라진 1990년대 이후에 쓰인 소설이라 실험적이고 심연을 거니는 듯한 모호함은 적었다. 현재 읽고 있는 위화의 또 다른 소설『재앙은 피할 수 없다』는 1980년대에 쓴 소설이라 그런 세계를 철저히 마주하고 있는 반면 이 소설은 소재와 구성이 참신하기도 했고 갑작스런 비극과 극단적이기까지 한 결말에서도 뭔지 모를 수긍을 하게 만들었다.


12년 전에 받은 편지로 기억의 다름을 경험하는 독특한 연애 이야기도 있고, 살인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낯선 사람들끼리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건의 이면을 추측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설마 결론이 이러할까라고 추측한 순간 정말 그대로 끝이 나버려서 잠시 시간이 정지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부부의 이야기도 있고 아이를 귀하게 키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의 또 다른 부부의 당황스러움과 묘한 삼각관계를 이야기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만나면서 중국 소시민들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본 기분이 들었다. 여섯 편의 이야기로 중국 전체를 들여다봤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그만큼 그들의 삶을 섬세하게 녹여낸 저자 덕분에 그런 착각이 드는 것이다. 모두 색깔이 다르고 놓인 상황이 다르고 삶의 방향이 다른 것이 삶이라고 말하는 듯,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난 시간이었다.


흥미로운 여섯 편의 단편을 지나고 나면「나의 문학의 길」이란 제목의 저자의 글쓰기에 관한 글이 나온다. 저자의 에세이를 통해 이미 접한 내용이지만 마치 소설을 읽고 난 독자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듯 그의 문학의 길은 찡하고 가슴 벅차고, 문학을 사랑하는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무엇이 있다. 그래서 그의 단편들로 다양한 삶을 들여다보고, 저자의 글쓰기에 관한 글로 그의 문학세계를 알고 나면 다른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요즘 위화 작가의 작품에 빠져 있다. 6년 전에 겨우 한 권을 읽었으나 최근에 3권을 읽었고, 중단편집과 장편소설을 동시에 읽고 있으며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다른 작품도 읽어볼 생각이다. 이왕이면 출간 순서대로 읽어볼 생각이고 그의 문학세계를 맘껏 유영한 뒤에 신작을 기다리는 작가 대열에 올려놓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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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0-07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반짝님, 추석연휴 잘 보내셨나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스노우캣의 내가 운전을 한다 - 본격! 운전툰 스노우캣 시리즈 (미메시스)
스노우캣(권윤주) 글.그림 / 미메시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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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에 관한 책이니 운전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04년에 1종 면허를 따고 그 이후로 한 번도 운전을 해보지 않아서 장롱면허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운전을 못할 때의 불편함을 너무 많이 경험했기에 꼭 해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그냥 무섭다. 모든 차들이 나를 향해서 올 것 같고, 로터리는 죽어도 못 돌고, 직직만 할 것 같아서 운전은 아직 엄두도 나질 않는다. 주변에서 이런 나를 보고 막상 하면 정말 편한 게 많다고 해서 마흔 전에는 도전해보마 했지만 잘 모르겠다. 그래서 스노우캣의 이 책으로 용기를 얻지 않을까 해서 오자마자 읽어버렸는데 글쎄, 용기는 차치하더라도 운전이 그렇게 무서운 것만은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았다.

차를 사고 첫 주행을 나갔는데 안전벨트를 착용했음에도 미착용 벨이 내내 울려서 내릴 때 보니 옆 좌석에 턱하니 꽂아놨다는 얘기를 듣고 빵 터졌다. 얼마나 긴장하고 떨렸으면 운전하는 내내 벨이 울리는데도 원인을 몰랐을까? 차가 작아 착각했다는 핑계도 귀여워서 운전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을 더 만나고 싶었다. 주차 연습을 하려 마트 주차장에 출근하는 것도, 운전 중에 손을 움직일 수 없어 히터를 못 틀어 떨었던 것도, 후방 카메라 달면 주차 올킬이라는 말에 바로 후방 카메라를 다는 일이며 운전을 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군분투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때론 순간적인 판단과 순발력을 발휘해야 하는 게 운전이라서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는 태도를 보며 나도 저렇게 진지하게 대하면 운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주 가는 작은 우체국에서의 이런저런 다정하고 따뜻한 경험들이 가장 좋았고, 무엇보다 운전할 때 ‘사람이 먼저다’라는 부분에서 공감하면서도 선거 문구가 떠올라 웃음이 났지만 중요한 메시지인 건 사실이었다. 보행자가 안심하고 건널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경험부터 다른 운전자와 소통하는 것까지 운전을 하게 되면 배울 것 투성이지만 차근차근 하게 되면 큰 문제될 게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꿀 팁은 초보운전을 과감히 인정하고 예쁘고 웃긴 문구보다 정말 급하게 흘겨 쓴 문구에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 놓을 때 짠해서 다른 운전자가 양보해 준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초보운전 사실을 모르고 도로에 나갔을 때가 더 위험하고 불안하다는(운전하는 사람, 타 운전자 모두) 것도 말이다.

이래놓고 언제 운전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 남편이나 아는 사람에게 절대 배울 생각이 아닌 제대로 연수를 받아볼 생각이지만 솔직히 아직도 자신이 없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게 아닌 운전면허증이 있으니 그걸 다시 살려보자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임해보려 하지만 역시 마음을 잡기가 쉽지 않다. 운전을 진짜 하게 될 때 이 책을 다시 꺼내들고 마음을 다 잡아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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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운전을 안이하게 하는 사람들이 무서워요. 그들의 사소한 실수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여러 운전자들이 피해를 겪습니다.

안녕반짝 2017-06-25 22:25   좋아요 0 | URL
그래서 더더욱 운전에 용기가 없어집니다^^
 
책이 입은 옷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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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에 걸맞은 표지는 내 말이 세상을 걸어가는 동안, 독자들과 만나러 가는 동안 내 말을 감싸주는 우아하고 따뜻하며 예쁜 외투 같다. (25쪽)

 

하지만 안에 있는 것을 감추는 가면일 수도 있다. 독자를 유혹할 수도 기대를 저버릴 수도 있다. 합금처럼 속일 수도 있다. 진실과 거짓, 겉모습과 현실 사이의 대립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29쪽)

 

 

저자의 이름만 보고 책을 바로 구입한 터라 책 표지도 제목도 유심히 보지 않았다. 그리고 책 제목을 멋없게 번역하면 ‘표지’라는 데서 오는 인식의 변화가 저자의 글을 통해 서서히 오는 게 신기했다. 대놓고 표지에 대해, 전 세계에 번역되고 포장되어 나가는 자신의 책 표지에 대해, 그리고 표지가 갖는 여러 가지 의미와 솔직한 느낌을 말하고 있기에 국내에서 이 책이 번역될 때 표지와 추천사 혹은 역자 후기 같은 글을 싣기도 굉장히 조심스러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기꺼이 이 책을 국내의 독자들과 만나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생각도 말이다.

 

 

저자는 책의 표지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민자로서 살아왔을 때 옷이 자신에게 부여됐던 의미를 말하면서 콜카타 친가에서 보았던 사촌들의 교복 이야기를 했다. 어딜 가든 확실한 소속감이 없던 환경 탓에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적당한 옷을 골라 입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간혹 시달릴 때면 차라리 교복 같은 유니폼을 입는 게 더 간단하지 않을까’란 고민을 하고, 대부분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표지도 유니폼이 좋은 해결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이다.

 

 

표지는 책에 하나 혹은 두 개의 정체성을 부여한다. 내용과는 별개의 표현 요소를 보여주기도 한다. 책이 말하는 것이 있고, 표지가 말하는 것이 있다. 이 때문에 표지를 좋아하지만 책을 싫어할 수도 있고, 반대로 책을 좋아하지만 표지를 싫어할 수도 있다. (29쪽)

 

 

약 삼천 권에 육박하는 우리집의 책들을 내 책장에 들였을 때 표지의 비율을 어느 정도 두었을까? 상황에 따라 다르기에 정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40퍼센트 이상이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구입하기를 망설였던 책도 표지가 예쁘거나 맘에 들면 구입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말마따나 ‘책등보다는 표지를 보는 게 훨씬 인상적이다. 보통 책장에 한 줄로 꽂힌 책들은 신중하고 다소 소심해 보인다. 배경으로 위안이 되지만 밋밋하’게 보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반면에 표지들은 외향적이고 쾌활하고 특별하다. 표지는 우리의 관심을 요구한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를 봐.’ 라는 문장을 읽고 읽으려고 꺼내놓은 책들을 책상 위에 나란히 펼쳐봤다. 그랬더니 정말 제각각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고 더 읽고 싶게 만드는 것 같았다.

 

 

저자는 책의 표지가 가진 실존적인 의미를 벗어나 좀 더 현실적인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표지는 미적인 목적보다 상업적 목적이 더 크다. 표지가 책의 성공 혹은 실패를 결정한다.’는 말에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수많은 책 가운데서 독자의 선택을 당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표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도 좋아하는 작가라 그의 모든 책을 다 소장함에도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구입하지 않는 책이 있는 것을 보면 ‘상업적 목적’을 완전히 벗어난 구매도 없다는 것이 증명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상업적인 목적이 주류가 되어 드러나는 아쉬움에 대한 저자의 가감 없는 이야기가 읽는 동안 조금은 조마조마했지만 한 번쯤 되짚어봄직한 주제라 독자의 입장에서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또한 책을 막 펼쳤을 때 저자의 글보다 추천사나 비평을 먼저 읽는 게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아 좋아하지 않고, 작품의 분량과 맞먹는 해설이 실린 책을 만날 때면 곤욕스러워 한다. 그럼에도 그런 걸 진지하게 내 취향에서 고려하지 않고 출판계의 흐름과 형식이 그러하므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책을 펼치자마자 작가의 사진과 이력, 책 소개를 보며 읽기도 전에 내 멋대로 판단하고 편견을 가짐에도 그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저자는 어릴 적 도서관에서 표지도, 어떠한 정보도 없이, 책을 읽어야만 알 수 있었던 ‘발가벗은 책의 침묵, 그 미스터리가 그립다.’고 했다. 책의 표지로 굉장히 다양한 세계의 이야기를 펼쳐놨지만 저자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겉모습보다 책으로 먼저 만나고 싶다는, 만나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잠시라도 그런 독서를 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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