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물고기 - 연어 이야기
고형렬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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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간되어 나온 책이라고 한다. 시인의 시집을 두어권 갖고 있다. 이 책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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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2-04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인의 시집이 좀 있어요.
연어 ㅡ모천회귀 ㅡ가장 먼저 떠오르고
남대천은 원래 유명해요.
소설에도 자주 나오고요.

2016-02-04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심장이 쿵했다. 딱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책에 지나치게 얽매이고 까닭 없이 예민해지고 감상적이어서 소음에 민감하고 타인을 경계하는 경향도 있다. 책을 적당히 읽고 다른 세상도 좀 경험해야 하는데 너무 안일한 게 아닌가 싶다. 

 

 

책을 읽으면 눈빛이 맑아진다는 말에도 공감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민 선생님이 옛 글에서 엮으시면서 하신 말씀들이지만 그야 말로 병주고 약주고^^ 책 읽기의 적당함에 대한 정도를 깨달았지만 역시나 책에 대한 집착 아닌 집착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지금도 책을 펼치고 있는 내모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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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0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은 책을 오래 읽으면 눈이 침침해지고, 잠이 옵니다. 그래서 눈빛도 흐려지고... ㅎㅎㅎ 눈이 먼저 피로를 느끼면, 잠이 슬슬 오게 되요. 완전 마음먹고 밤새서 책 한 권 읽을 때가 있는데, 컨디션이 좋아야만 가능해요. 컨디션 상태가 최상이 아니면 새벽 2시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눈이 피곤합니다. ^^

안녕반짝 2016-02-06 23: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책을 조금만 읽어도 눈이 침침하고 피로해서 못 읽을 때가 허다합니다. 안경을 바꿔도 눈이 흐리멍텅한게 나이가 더 들면 책을 못 읽을까 조바심이 일 정도에요^^
 
돌풍과 소강
장 자끄 상뻬 글.그림, 이원희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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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상뻬 할아버지의 책을 거의 다 소장하고 있으면서 그만의 매력이 뭐냐고 묻는다면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익살스러우면서도 세세한 그림들이 좋고 그에 따른 풍자와 뭔가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글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그간 신간이 출간되면 구입해놓고 상뻬 할아버지가 이 그림들을 그리느라 공들였을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읽고 덮어버린다. 가끔 다시 책을 열어볼 때도 있지만 내가 보지 못한 그림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냥 좋다. 그러다 <뉴욕의 상뻬>를 읽게 되었고 작업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등등 부수적인 얘기들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나니 좀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하다. 꼬불거리고, 산만하고,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없는 그림들. 그리고 그 아래 쓰인 모호한 글들을 만나는 순간, 순식간에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이 책을 보고 있는 동안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밀려왔다. 저자의 그림과 글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안도감이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림을 보면서 단박에 이해를 할 때도 있고, 무슨 의미인지 몰라 한참을 들여다 볼 때도 있는데 그 아래 쓰인 글을 보면 더 난해해진다. 우리의 정서와 다른 것도 있고 저자의 시선에서 본 역사와 문화가 익숙하지 않기에 그런 것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조차 좋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는 나를 보고 있으면 그간 저자와 함께 한 시간이 꽤 돈독해졌음을 인식하게 된다.


  수다스러움, 익살, 주책, 청승, 유쾌한 기분들이 모두 느껴지는 그림과 글을 보고 있으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는 것 같아 일탈의 기분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양떼의 무리 속에서 빠져나온 두 마리의 양이 다른 길로 걸어가면서 동료에게 ‘나는 너의 자유분방한 정신이 좋아.’라고 말하던 그림처럼 내 기분이 꼭 그랬다. 저자를 통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 처음에는 단지 삽화가 좋아서 저자의 책들을 모았고 그러다 큰 그림으로 보고 싶어서 신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들어가려는 매개물로 저자의 책을 기다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게 되면 오로지 작품으로 만나기를 고집한다. 자칫 사생활이나 작품의 배경들을 알게 되면 내가 생각하는 저자의 이미지가 바뀌는 것 때문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생각이 변하고 있다. <뉴욕의 상뻬>를 읽지 않았더라면 늘 그렇듯이 그의 그림을 휙휙 지나쳤을 것이고 좀 더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작품세계에 많이 투영되듯이 이제는 저자의 삶도 들여다보면서 그에 따른 깊이를 만끽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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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희망이 있다면
김경희 지음 / 호이테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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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면 일을 할 거냐는 질문을 슬슬 받고 있는 요즘이다. 한참 직장에 다닐 때 나의 꿈은 결혼해서 집에 있는 거라고 말할 정도로 조직생활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렇게 직장을 관두고 관련된 일자리가 아예 없는 고향으로 내려와 보니 경단녀라는 말을 쓰기가 무색할 정도로 지극히 평범한 주부의 모습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외벌이라 생활은 빠듯하지만 나름대로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책도 보고 리뷰도 쓰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냥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한다면 글쎄라는 의문이 붙을 정도로 나의 미래는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언니네 집에서 10년을 얹혀살다 겨우 독립했는데 2년을 직장 다니다 결혼하고 다시 언니네와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왔다. 2년을 아주 에둘러서 온 셈인데 늘 맞벌이인 언니네를 보면서 나는 다음에 맞벌이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아이가 넷인 언니네는 둘이 벌지 않으면 빠듯하다. 둘째가 돌 지나고부터 직장생활을 한 언니는 늘 귀가가 늦다. 그렇다보니 형부가 아이들을 대부분 돌봤고 엄마의 빈자리가 있는 만큼 아이들이 일찍 철이 들었다. 늘 언니를 보면 조카들을 대하는 게 너그럽고 관대하고 시야가 넓어졌으며 기회를 많이 주고 있다 느끼지만 어린 조카들이 한참 엄마 손을 그리워할 때를 기억하기에 나는 맞벌이가 두려웠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결혼하고 7년이 지나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저자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막상 사회생활을 하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두렵거나 어려움이 덜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용기 내기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미스코리아 광주⦁전남 진에 뽑혔던 경력도 있던 저자가 신부들의 드레스 피팅하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습지도 하면서 가졌을 생각을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대회에도 나갔었는데 이젠 아이 엄마가 되어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사람의 드레스 자락을 잡고 있었을 때의 눈물겨움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했다. 나라면 집에서 전전긍긍하고만 있었지 그런 아르바이트를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일단 뭐든지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사실이었다. 저자 또한 시부모님을 모시고 빠듯한 남편 월급에만 매달려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을 땐 지금의 모습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갔을 때 자신이 늘 상상하던 일에 노력을 더해 현실로 이뤄지는 것을 본 이상 그대로 멈춰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등록금은커녕 애 엄마에다 살림만 하는 사람이 대학원을 간다고 한다면 어느 누가 환영해 줄까? 주변에서 자신을 믿어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서 가능했지만 정작 전공을 살려서 지금의 희망교육센터를 만든 것이 아니라 대학원을 갔고 교수님의 권유와 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가 선택한 것이 그대로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것이 발판이 되어준다면 일단은 시도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저자가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런 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듯이 말이다.


  평범한 주부에서 타인에게 희망을 주고 강연까지 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성공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이란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므로 단순히 주부에서 멋진 커리우먼으로서의 성공이 아니라 삶을 충실하게 살아낸 여자로서 만족스런 삶아 왔고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에서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는 성공했다라고 외치고만 있었다면 금세 시들해졌을 것이다.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딸의 모습으로 살아 온 이런저런 모습들을 마치 만나서 수다 떨듯이 담담하게 말하고 있어서 성공보다는 여자의 삶을 더 지켜볼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 어떤 목표를 위해 무작정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여러 이름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간 모습이 있었기에 앞으로의 삶이 기대가 되고 허무함이 없다고 말하는 부분에 공감이 갔다.


  나도 무언가를 하고 싶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고, 빠듯하게 출근해서 퇴근하는 그런 일은 갖고 싶지 않다. 무언가 머릿속에 그려지긴 하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으므로 무엇이든지 기회가 되면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기회조차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환기하게 되었으므로 호시탐탐 주어지는 기회에 시도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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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 1살인 아이 둘을 키우면서 과연 책을 읽을 수 있을지 늘 불안했다. 독서는 나에게 쉼 그 이상의 의미라 책을 가까이 할 수 없다면 나의 일상이 원활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찌어찌 아이 둘을 보면서 100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대부분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읽었지만 부족한 잠만큼 아이들에게 신경써주지 못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읽은 책 중에서 좋았던 책들을 읽은 순서대로 추천해 볼까 한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날까? ㅜㅜ)

 

 

 


1. 반 고흐 인생수업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팍스러운 사람, 불쾌한 사람일 거야. 사회적으로 아무런 지위도 없고, 그것을 갖지도 못할, 요컨대 최하 중의 최하급. 그래, 좋아. 그것이 정말 사실이라고 해도, 언젠가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괴팍한 사람, 그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그의 가슴에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겠어. (124쪽)

  빈센트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의 삶에 대한 나의 생각은 스스로 생각한 저 문장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삶의 비극에서 탄생 된 그림은 감탄하게 만들지언정 그의 삶을 위로하기보다 그냥 불행했던 한 사람의 삶으로 치부해버리곤 했다. 간단히 말해 그의 그림과 삶을 밀접하게 접목시키기보다 그림의 탄생 배경만 조금 알려하고 그림 따로, 그의 삶 따로 놓고 보았다는 말이다. 빈센트가 살아 온 삶은 한 사람의 삶이라고 치부하기에 너무 우울했기 때문이었다. ​

  빈센트의 그림이 좋아서 블로그 이름에까지 그의 이름을 넣었음에도 그간 나는 제대로 그의 삶과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에 관련 된 책을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곤 하는데, 워낙 책이 다양한지라 내 마음을 울리는 책을 만나는 일도 드물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꺼내들었음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건, 책이 다양한 만큼 책의 질도, 글쓴이의 열정의 다름을 몇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빈센트의 삶을 등한시하던 나의 과오가 조금은 앎과 이해로 전환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먼저는 그에게서 인생을 배웠다는 저자의 접근 방식이 좋았고, 깊이 들여다보니 빈센트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2. <십이국기> 시리즈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낯선 이가 나타나 위험에 처했으며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허락을 하라고 말한다면 과연 그 상황을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말로만 한다면 무시하고 지나쳐 버리겠지만 내가 속해있던 일상이 무너지고 다른 세계의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생물들이 나타나 위협한다면 낯선 이의 말을 듣고 따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요코가 그랬다. 교무실에서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게이키라는 낯선 남자에게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 이상한 생물들에게 쫓기다 전혀 다른 세계로 흘러들어와 버렸다. 그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주고 자신의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정체를 알 수 없는 게이키란 남자와도 떨어져 버렸다. 그야말로 갑자기, 엄청난 재앙이 닥친 것처럼 낯선 세계에서 혼자가 된 요코.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절대 견디지 못했을 것 같다.​
 
  요코가 혼자가 되어 경험한 세계의 색깔은 어둠이었다. 서서히 그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사람들이 살고 어떤 나라가 형성되어 있는지 알아가게 되지만 그 모든 일을 경험하는 요코의 시선에 비친 세계는 어둠이었다. 꼭 흑백 꿈을 꾸는 것처럼 빛이라곤 없는, 암흑의 세계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이유로 자신이 이러한 일을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그 이유를 찾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가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10대 소녀의 몸으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종종 만나는 사람들(늘 요코의 뒤통수를 쳤다.)에 의해 그 거대한 세계를 알아간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와 의지와 목적이 필요했다.

장르소설을 그다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나임에도 꽤 두툼한 책을 순식간에 읽어버렸을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다. 인간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를 그리다보니 용어라든지 각 나라의 특징과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생명들에게 조금은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장르불문하고 완성도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그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1992년도에 일본에서 출간되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재 읽어도 낯선 느낌이 없었고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이 시리즈를 꼭 완독하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퇴마록』이후로 이런 장편 장르소설에 매료된 게 오랜만이라 개인적인 기대감이 큰지는 모르나, 현실을 잊고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갈 정도로 흥미로워 나야말로 다른 세계로 빠진 것 같았다.

*현재 0권부터 6권까지 총 8권의 책이 출간되었으며 모두 재밌게 읽었고 다음 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

 

3. 행복한 그림자의 춤

 

해외문학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이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았더라면 순순히 찾아서 읽었을까? 이름도 태생도 생소한 작가이기에 더 그러했고 어떤 계기가 되었든 저자의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이 책에 실린 첫 단편을 읽는 순간부터 저자의 작품을 좋아하게 될 거란 예감이 들었고 좀 오랫동안 읽은 셈이지만 조금 새로운 저자의 단편들에 빠져들었다. 장편도 마찬가지겠지만 요즘 들어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삶에 밀착되어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면 재미를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뚝뚝 끊기는 느낌도 싫고, 결말이 대부분 모호하게 끝나, 단편을 읽는 게 영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조정래 작가 선집을 통해 단편에 대한 편견을 깨게 되었고 그 뒤로 종종 단편을 읽어왔지만 최근에 들어서야 단편의 매력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1950년대부터 15년 동안 써 온 글을 모아 처음 낸 단편집이라고 했는데 몇몇 시대적 배경을 제외하고는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다. 오히려 나에게 생소한 캐나다 작가의 작품에다 캐나다를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더 매력 있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뭔가 특별할 것 같은 일들도 있지만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묘사가 좋았다. 그런 이야기들을 마주하고 있자니 어느새 내가 피하고자 했던 삶에 더 한 발짝 다가간 느낌이 들었고 지난하게만 생각했던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문구를 이 소설들을 통해 이제야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4. 오베라는 남자 

 

표지 속의 좀 까칠해 보이는 저 아저씨의 이야기를 읽다 울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사람의 온기로 따뜻함을 느낄 줄 몰랐다. 책은 늘 곁에 두며 읽고 있지만 내 마음 속에 와 닿는 책을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무방비 상태로 오베라는 아저씨(호칭이 좀 애매하긴 하나 할아버지보다 아저씨가 나을 것 같아 그렇게 부르려고 한다.)의 이야기를 읽고 뭔가 정신이 똑바로 차려지고 자세까지 올곧아지는, 잔잔하면서도 포근한 마음을 느꼈다. 푸석푸석한 마음을 녹여 나를 좀 더 두루뭉술하고 여유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할 시간이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만약’과 같은 말들을 곱씹는다. (380쪽)

  오베 아저씨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 또한 이 말에 가장 큰 공감을 했다. 늘 내 곁에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표현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것에 미안했고,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 어느새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없음에 잠시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오베 아저씨를 만나고 나서 내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따뜻함과 가슴 먹먹한 찡함인지! 오베 아저씨와 이웃들이 함께 만들어갔던 이야기를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듯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위로받고 웃고 고마워하는 이 마음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내 주변에 오베 아저씨 같은 사람도, 그를 변화시켰던 이웃들도 없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하면 설렌다. 그래서 타인과의 만남에 두려워하지 않고 좀 더 마음을 열기로 했다.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살 용기가 없다면 적당한 섞임을 즐기고 그들과 관계 맺는 것을 즐거워하기로 말이다. 오늘은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내 마음 먹기에 따라 그런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괜히 가슴이 벅차오른다.

 

5. 읽어가겠다

 

책을 펼치기 전 목차를 이토록 오랫동안 들여다본 적이 얼마만인지! 스물세 편의 소설 목록을 보면서 내가 읽은 책은 여덟 권, 읽다 만 책은 한 권, 읽진 않았지만 소장하고 있는 책은 세 권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내가 읽은 책들 이야기도 궁금했고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서 어떤 책을 먼저 꺼낼지도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소개되었던 오에 겐자부로의『아름다운 애너밸 리 싸늘하게 죽다』를 꺼냈고, 다소 이야기의 중심을 못 잡아 집중력이 흩어질 수도 있었는데 줄거리를 먼저 알게 되어서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 내가 읽지 않은 책 내용을 먼저 알아버리는 걸 누구보다 싫어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직접 읽지 않고는 그 느낌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개의치 않아 하면서도 맛깔난 소개글이 있으면 더 구미가 당기는 것이다.

슬픔은 단순히 멀리 두고 극복할 대상이 아닙니다. 슬픔보다 기쁨이 훨씬 좋다고 강조해서도 안 되고, 기쁨에 관한 밝은 책들만 읽혀서도 안 됩니다. (36쪽)
 
  그러다『플랜더스의 개』소개글을 읽다 이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현대문학이 아닌 고전을 읽는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던 나인데 ‘단순히 멀리 두고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니! 저자는 ‘슬픔’이라고 했지만 내가 피하려고 했던 것이 현실의 ‘슬픔’임을 알고 있었기에 도피행각을 하다 예기치 않게 그 대상과 맞닥트린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나의 ‘슬픔’은 과연 무엇인지, 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랫동안 피하려고만 했는지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문학을 읽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란 의문과 함께 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려버렸던 것 같다. 내 안에 무엇을 담고 있었기에 나는 피하고 있었고 문학을 방패삼아 우연히 혹은 서서히 극복하려고 했던 것일까? 조금이나마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슬픔’이라는 실체를 알게 되자 이 책을 만난 것이, 그리고 그동안 수많은 책들을 만나왔던 시간들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일이 내게 주어진 숙제 같았다.

 

6.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 딱 드는 생각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라고 따끔하게 훈계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훈계가 잔소리처럼 늘어지거나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었다면 내 마음에 찔림을 받고 공감하면서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대해야 하는지, 또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가야 하는지를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흐트러진 자세를 고칠 정도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일은 세상을 바라보는 대신 하늘의 일을 좇는 것이다. (14쪽)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나보다 나은 사람을 바라볼 때 마주한 이 문장을 보며 부끄러움과 동시에 위로를 얻었다. 성경을 멍하게 읽고 있을 때
‘성경에 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다면 겸손하고 단순하게 믿음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22쪽)’는 문장 앞에서 다시 정신을 차리곤 했다. 또한 내게 닥친 고난을 원망하고 싶어질 때면 ‘불안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때야말로 축복의 순간이다.(54쪽)’ 라고 말해주니 내가 이 축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고 있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미래가 없다.(61쪽)’라고 따끔하게 말한다. 그러니 이 책을 허투루 읽을 수도 없었고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데 억지로 읽을 수가 없어서 정말 마음이 심란하고 힘들 때 펼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똑바로 살라고(?) 말하고 있는 이 책이 가장 도움이 되었을 때는 불안한 내 마음을 잠재울 때였다. 둘째 아이의 중요한 검진을 앞두고, 혹은 이유 없이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 때, 내가 처한 상황에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고, 내 존재 자체가 무의미할 때 이 책을 펼치면 위로가 되었다. 나를 정신 차리게 해주었던 ‘거룩한 조언’들에 이어 ‘위로’를 해주는 기도를 대할 때면 한없이 마음이 평안해졌다. 모든 것은 주님 안에 있으며 불안해하는 것은 내 마음일 뿐이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품게 되자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게 닥친 크고 작은 고민들과 불안한 마음이 이 책장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것 같아서 책만 바라보아도, 기억하고 싶은 구절에 붙인 메모지만 보아도 마음이 먹먹해지는 것이다.

 

 

7.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

 

먹먹한 마음을 부여잡고 핸드폰 메모장을 꺼내 유언장 쓸 것, 한 달에 한 번 가정예배 드릴 것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 외에 당장 생각나는 게 없어서 이 두 가지만 썼는데 유언장은 실행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20대 때 노트에 유언장을 쓴 적이 있었는데 쓰다말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때와 달리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가 둘씩이나 있는 내가 유언장을 쓰기란 그때보다 더 어려울 것임을 알기에 실행을 미루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은 암이라는 병 때문에 죽음을 앞두고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많은 당부를 남겼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러기가 참 쉽지 않은데 이런 담담함이 어떻게 나올까 싶었다.
 
  당장 내게 앞으로의 생이 3개월 혹은 6개월뿐이라고 한다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상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런 일이 꼭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데서 오는 불안감과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각각의 살아온 삶이 다르고 성정이 다르듯이 이 책 속에서도 자신의 죽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모두 달랐다. 내가 과연 저 사람들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면 과연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까? 전혀 가늠할 수 없었지만 부정도 하고 원망도 하고 절망에 빠지다 결국엔 죽음을 받아들일 것 같았다. 그리고 신변정리를 하면서 내 삶을 되돌아볼 것 같지만 과연 그런 시간이나마 내게 주어질지 의문인 게 삶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책 속의, 대부분 고인이 된 분들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슬프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눈물이 참 많이 났다. 호스피스 병원의 기록이니 분명 이런 감정을 끌어낼 것 같아서 이 책을 가까이 두면서도 읽기를 한참을 미뤘었다. 그러나 이 책을 만나고 읽은 게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가까이의 사람이(나를 포함) 만약 암 판정을 받아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꼭 호스피스 병동에서 작별 인사를 하게끔 만들어 주고 싶었고, 금세 무감각해지겠지만 앞으로 내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기로 다짐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반짝하고 드는 마음이 아니라 꼭 지키겠다는 결심이 드는 다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내 삶을 관망하는 게 아닌 그 안으로 뛰어들게 결심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막연한 기대는 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가고 순응하는 수밖에. 내가 이 책을 읽고 힘겹게 받아들인 결론이다.

 

8. 1cm art

 

 

원작을 익히 알고 있기에 실재의 인물대신 곰 군, 백곰 양, 바다코낄 군이 등장하는 명화라니! 그 앙증맞음에 빵 터졌고 곁에 머물고 있는 진심을 드러내는 짤막한 글에 깊이 공감했다. 나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문장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는 동안에 아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지만 뒤페이지가 너무나 궁금해서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읽기에만 한정되지 않은, 그림을 보고, 직접 참여도 해보고, 상상도 해보는 시간들을 거치면서 일상이 예술이 되는 게 거창하지 않다는 걸 느낀 셈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참신하고 산뜻하면서 공감을 이끌어 내면서 적당한 무게감을 주는 글과 그림을 생각해 냈을까? 이런 글과 그림을 그리는데 엄청나게 치열했을지도 모르지만 제 3자 입장에서 바라본 바로는 뭔가 여유롭고 기분 좋은 자극을 시켜주는 것 같아서 편안했다. 한 때 사회라는 정글 속에서 나도 좀 독창성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내가 원하는 독창성이란 한 순간에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늘 자극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의 전환과 시선을 시도하지 않은 채 텅 비어있는 내 안에 것을 쥐어짜려고만 했으니 결과물은 나오지 않고 괴로웠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씁쓸해지기도 했다.

하루는 지나간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하는 것처럼 하루도 시간 에너지에서 다른 에너지로 변하는 것일 뿐이다. (87쪽)

  조금만 생각의 전환을 시도하면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었던 일상이 특별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이런 글들이 더 와 닿았던 건 경험에서 비롯되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진심이 느꼈기 때문이다. 타인의 경험, 타인의 생각을 포장한 것이 아니라 깊이 사색하고 곱씹으며 뱉어내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을 떠돌아다는 수많은 생각과 단어들이 쓰잘데기 없는 것들이 아니며, 작은 것 하나를 붙잡고 끄집어내어 다듬고 좀 더 들여다본다면 또 다른 새로움을 만날 수도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았다. 모호한 말 같지만 그렇게 끄집어 낸 것들이 꼭 창작물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쉽게 용기내지 못했던 것, 게으름 때문에 미뤄뒀던 사소한 것들까지 무한했던 것을 유한한 것으로 만드는 시도가 어쩌면 굉장히 쉬울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9.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학교가 파한 텅 빈 운동장에서 질리도록 철봉 매달리기를 한 뒤 예기치 않게 찾아온 어둠. 동네 언니 오빠들과 한참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데 우리 엄마만 밥 먹으라고 부르지 않을 때의 적막감. 햇살은 나른하고, 마당에 널어놓은 벼들은 바싹 말라가고, 부모님이 돌아오실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해 놓으라고 시킨 일들을 시작도 안했을 때의 불안감. 잊고 있었던 이런 감정들이 이 시집을 읽으면서 되살아났다. 표현할 수 없었던 깊은 내면에 감추어진 슬픔. 저자는 이런 슬픔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주하고 있었고 그 슬픔을 끄집어내어 시를 쓰고 있었다.

‘언덕이 튼 살 같은 안개를 부여잡고 있을 때’ 라던가 ‘골목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두운 골목, 사실 사람의 몸에서 그림자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것은 노래다 울지 않으려고 우리가 부르던 노래들은 하나같이 고음(高音)이다’라고 말하는 시구를 읽고 있으면 책상 앞이 아닌 현장에서 시를 쓴 느낌을 받았다. 출산을 하고 튼 살을 가져본 나는 그 틈을 안개로 묘사하는 시인에게 감탄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과 집이 유난히 멀어서 막차에 내려서 집으로 갈 때면 늘 유행가를 목청껏 부르고 가던 내 모습이 떠올라 마치 같은 기억을 가진 타인이 존재하는 게 아닌가란 착각이 일 정도였다. 어둠을 꾹꾹 밟아 나가고 곳곳에 묻어 있는 슬픔과 남들에게 잘 보이지 않은 고독을 시인은 찾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찾아내는 것들이 신기해 시를 읽어나갔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이 시집을 아껴 읽게 되었다.

 

10.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책 제목이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 것도 잠시, 입 안에 머금으면서 다시 읽어보니 참 좋은 제목이라며 혼자 감탄했다. 단순히 ‘나를 만드는 것들’이 아니라 ‘내 안에서’라는 말 때문에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내 안에서 과연 나를 만들 만한 재료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다. 누구보다 내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알고 있지만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우유부단하며 한결 같을 수 없기에 그런 재료가 내 안에 들어있다고 자각할리 만무하단 뜻이다. 그래서 더욱 더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 책의 원 저자가 애덤 스미스라는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국부론>의 저자로 유명했고 나 역시 <도덕감정론>이란 책이 있는지도, 애덤 스미스가 생의 마지막까지 고치고 고쳐가며 완성한 책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거기다 250년 전에 쓰인 책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다. 또 한 번 고전의 묘미를 느꼈고 도덕적인 면을 강조하는 이 책이 팍팍한 현 시대를 살아가는데 오히려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기본 바탕에는 선한 본성도 있다.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기도 한다.’고 했다. 이 선한 본성을 출발점으로 공정한 관찰자와 끊임없이 마주하면 자기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특히나 요즘 같이 경제도 어렵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줄어드는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건 자칫 고리타분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의 말마따나 공정한 관찰자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인생을 살아갈 때 과연 행복할까란 질문을 던져보면 답이 나온다.

 

11. 시를 쓴다는 것

 

 

한동안 늙는다는 게 서럽고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지 두려운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기나긴 세월을 열심히 살아낸 이들의 초연한 모습을 보면서 나이 듦에 대해, 내면에 켜켜이 세월을 담아낸다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이 더해졌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예술로 승화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시인은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시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명확한 기품을 가지고 있었다.
 
실은 ‘내 안에 언어가 있다’,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안에 있는 언어가 매우 빈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어휘도 얼마 안 되고, 경험도 적다, 이런 게 아니고, 제 바깥에 있는 일본어를 생각하면 그것은 참 거대하고 엄청나게 풍부한 세계로구나 싶었던 거지요. (41~42쪽)
 
  이런 생각과 시선을 갖는 다는 것. 그리고 시에 녹여낸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특히나 번역된 시는 공감하기 힘든 경우가 태반인데 이런 시선과 더불어
‘그저 행갈이가 된, 활자로 인쇄된 시 형태만이 아니라, 이런저런 형태로 사라지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확산돼나가기를 바랐던(37쪽)’ 노력이 고스란히 외국독자인 나에게도 와 닿았던 게 아니었나 싶다.

일본어로 ‘시’는, 행갈이를 해서 쓴 시작품이라는 의미와, 또하나 시정時情(poesie), 이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제 시작품은 상당히 힘을 잃었고, 시정은 시작품뿐만 아니라 게임이라든지 만화, 영화나 텔레비전 같은 것에도 스며 있다고 생각합니다. (149~150쪽)
 
  시정이라는 게 멀리 있는 게 아님을, 내가 마주하고 겪고 있는 것에도 시정이 들어 있음을, 어쩌면 시인의 말마따나 ‘일종의 갈증’이 아닐까란 공감을 해보면서 새로운 눈으로 일상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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