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자이 미즈마루 -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안자이 미즈마루 지음, 권남희 옮김 / 씨네21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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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구입을 망설였던 것은 하루키와 함께 작업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사실밖에 모른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의 일러스트가 뇌리에 기억될 정도로 인상 깊었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하루키 답다는 자연스러움이 강해 특별히 구분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하루키와 작업한 것 이전과 이후에도 그만의 작품이 있는데 나는 오로지 하루키와 연관된 것만 보려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다. 오랜 고민 끝에 이 책을 만나보니 이런 고민도 이해가 됐고 이제라도 보게 되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물론이고 하루키의 단편집 읽기에 불을 지펴준 책이기도 했다.


 

‘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이란 문구가 모순적이면서도 가장 적확하다고 생각되었다. 그의 그림은 분명 대충 그린 것 같다. 하지만 성의가 없는 대충의 그림이 아니라 말 그대로 마음을 다해 그린 그림으로 보는 이에 따라서 달리 보일 수 있다. 색이 입혀지지 않은 그림은 산만한 스케치 같기도 하고 낙서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들여다보게 되고 금방 낯이 익어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거기에 색이 더해진 그림을 보면 굉장히 화려해서 시선이 분산되는 느낌도 있다. 설명은 할 수 없어도 일본적인 느낌이 확 나고 독창성을 요구하는 그림들에서는 그만의 색깔이 확연히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그의 그림들에 온전히 마음을 빼앗겼던 건 아니지만 내면의 세계가 굉장히 독특하고 환상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관찰하고 그린 그림에서도 내면을 통해 한번 걸러지고 난 뒤 자신만의 색깔로 탈바꿈한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말이다.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1인칭으로 그린 경쾌함’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서 기이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안자이 미즈마루라는 일러스트레이터의 평생의 결과물을 모아 놓았다. 개인적으로 그렸던 그림부터 하루키와 작업했던 삽화 및 표지들, 연재물, 엽서, 잡지 표지는 물론이고 한때 그와 작업했던 다른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색을 입히지 않은 그의 그림을 본 느낌의 세세한 과정이라고 생각되어질 정도로 그의 모든 걸 모아놓았다. 한 사람의 평생의 결과물을 고스란히 실어 놓은 책이었고 사후 출판 된 게 아쉬울 정도로 의미 있는 책이었다. 그런만큼 하루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으므로 둘의 호흡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일러스트레이션과 텍스트의 가장 행복한 콜라보레이션이었죠. (255쪽)


 

  둘의 콜라보레이션을 그때마다 확인한 것이 아닌 뒤늦게 지켜본 터라 그들만의 화학변화가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할 수는 없어도 굉장히 잘 어울렸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루키 책 속의 삽화가’라는 인식이 강했고 하루키와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흥미가 없을 거라는 무례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 무례함을 깨주는 계기가 되었고 한 사람의 삶을 그가 남긴 작품으로 보는 과정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이상하게 읽고 나면 글이 쓰고 싶어지는 소설가의 책이 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좋은 그림이 그리고 싶어진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림 그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306쪽)


 

  저 기분을 나 또한 인정하게 되었다. 정통 회화가 아닌 일러스트를 잘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내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의 매력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열심히 살았던 저자의 삶이 내 안의 감춰졌던 소망을 이끌어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충분한 자극과 귀감이 되고 있고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이국의 독자인 나에게도 이런 영향을 끼친 작가. 그가 남긴 작품들은 이 세상에 미담으로 남겨 놓은 채 편히 쉬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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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브루클린 - 사소한 변화로 아름다운 일상을 가꾸는 삶의 지혜
정재은 지음 / 앨리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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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거실 창문 한쪽을 가리고 있던 책장을 다른 방으로 옮겼다. 그 자리에 아이 장난감 서랍장이 다시 들어찼지만 긴 책장을 치우자 집안이 훨씬 밝아진 것을 느꼈다. 특히 낮에는 햇볕이 잘 들어와 남향집이라는 걸 이사 온 지 2년이 넘어서야 실감하게 되었다. 진작 책장을 치우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들 정도로 밝아진 집을 보고 있자니 기분까지 좋아졌다. 말끔해진 거실을 보면서 여유롭진 않지만 이렇게 유유자적 집이나 정리하면서 책 보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상큼함이라곤 하나도 없는 집이지만 내 맘대로 집도 좀 꾸며보고 취미 생활도 하면서 살고 싶은 욕망. 누구에게나 잠재해 있는 마음의 도피 같은 소망이 아닌가 싶다.


 

  낯선 땅에서 살 자신은 없지만 저자의 뉴욕 생활을 보고 있으면 따스한 봄 햇살처럼 뭔가 마음이 상쾌해진다. 마음속의 주름까지 쫙 펴지는 발랄함과 좌충우돌하면서 익혀가는 뉴욕 생활이 조금은 부러웠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저자가 미국에서만 살아온 남자와 결혼해 낯선 땅으로 간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도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을 텐데 그곳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까지 찾게 된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잘은 모르겠지만 순간이나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일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고 늘 꿈꿔왔던 일을 할 수 있는 생활. 현실적으론 어려움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겠지만 그래도 한번쯤 그런 삶을 살아봤으면 하는 부러움이 있었다.


 

  결혼생활과 일, 그리고 그 사이에서 펼쳐지는 일상들이 참 소박했다. 시장에 가서 제철인 과일을 사와 요리하고 자신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는 소소함. 문화의 다름을 조금은 툴툴거리듯 털어놓는 것까지 장소만 달랐지 사람 사는 게 별반 다르지 않음을,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알차게 채워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새롭게 발견한 음식 재료나 레시피를 소개할 때면 나도 느긋하게 따라해 봤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 재주도 없고 무엇보다 재료들이 허락하지 않음에 조금은 아쉬웠던 기억도 있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는 나중에, 좀 더 넓은 집에서 혹은 여유가 되면 하자고 못 박지만 나중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려야만 후회도 없으며, 그 나중에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소박한 저자의 일상을 보면서 그 사실을 가장 많이 느끼고 공감했던 것 같다. 결과에 상관없이 소소한 것 한 가지라도 도전해보고 조금은 알찬 삶을 일궈나가는 것. 비록 낯선 땅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그립고 그간 자신이 살아온 삶의 터전이 한없이 그리워지더라도 그런 꿋꿋함과 느긋한 마음가짐이 있다면 씩씩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저자가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초반에는 저자에게 주어진 환경이 조금은 부러워서 질투어린 시선으로 읽어 나갔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다 타인의 여유를 본보기 삼아 나의 여유를 만들면서 나와는 다른 일상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닌 내 마음의 소리에 따라 충실하고 보람되게 살아갈 때 그 삶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도움닫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더라도 일단은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나만의 일상을 만들어보고 싶다. 자, 이제 뭐부터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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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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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니 깊은 밤이었다. 저자의 단편집을 읽고 싶었는데 주문한 책이 도착하지 않아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이 책을 꺼내들었다. 이 책이라도 읽지 않고서는 뭔가 허전한 마음을 가눌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이런 이유와 시간 때문인지 마치 내가 하룻밤을 꼴딱 지세우고 잠깐 잠이 든 사이에 꾼 꿈같은 기분도 든다. 몽롱하기도 하고 밤이 보여주는 어두운 이면과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 사이에서 한껏 유영한 것 같기 때문이다.


  유영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알고 싶지 않은, 혹은 들여다보기 거북한 세계를 본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두툼한 책을 읽고 있던 마리에게 다카하시가 말을 건네므로 이 이야기가 시작된 건 차치하더라도, 매춘에 관련된 부분은 어둠의 이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 내면에 간직한 비밀을 최소화 하면서 어둠을 이겨내고 끈질기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정당하지 못한 일과 얽혀있을 땐 어서 아침이 오길 바랐다. 아침이 밤의 이야기를 흔적 없이 지워주길 바랐고 이왕이면 그런 밤이 이야기가 지속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럼에도 마리와 다카하시의 만남은 흥미로웠다. 오래 전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그들은 우연히 마주쳤고 밤부터 새벽까지 장소를 달리하면서 여러 번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장소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치 그들이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난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겨우 하룻밤인데도 연속성의 다양함에 밤의 또 다른 면을 본 것 같았다. 서서히 마음의 경계를 풀어가는 마리의 변화가 눈에 띠였고 놀기 좋아하는 그저 그런 젊은인 것 같았던 다카하시의 단단함이 의외였다. 그래서 마리를 기다리겠다는 다카하시도, 그런 그에게 많은 걸 털어놓고 다가가는 마리의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우리가 서 있는 지면은 말이지, 단단해 보이지만 조금만 무슨 일이 있으면 밑이 쑥 꺼지고 그래. 한번 꺼지면 그걸로 끝장이야. 두 번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못해. 저 아래 어둑어둑한 세계에서 혼자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 (189쪽)


  어쩜 우리는 위태하게 지면을 딛고 겨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 될 정도로 밤이 가져다주는 예민함과 두려움을 소설 곳곳에서 보았다. 마리와 늘 비교되는 언니 에리의 이야기가 그랬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아름다운 에리는 텔레비전 화면 너머로 건너가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의 묘사가 답답했다. 마치 영화를 보듯이 시선을 따라가는 앵글 때문이 아니었나 싶은데 의미를 알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진부했고 무언가 툭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불안감을 동반했다. 무척 다른 자매기에 그 둘의 이야기가 활발하게 전개될 거란 예상을 뒤엎듯이 마리는 밤을 서성이고 있었고, 에리는 잠에 빠져 있었다.


  마리를 통해 자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도무지 둘의 관계를 좁힐 수 없을 것 같고 에리가 다시는 이 세계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다. 마리가 경험한 그 밤을 통해 실은 에리와 가까워지고 싶었음을, 항상 그녀 곁에 에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이 실현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다.


인간은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사는 게 아닐까? 그게 현실적으로 중요한 기억인지 아닌지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아. 그냥 연료야. (중략) 소중한 기억도, 별로 소중하지 않은 기억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기억도, 전부 공평하게 그냥 연료. (202쪽)


  이 모든 이야기가 기억의 연료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하면 너무 허무하다. 하지만 모든 기억이 공평한 연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구별되는 기억이 있고, 그 기억에 따라 변화할 수도 정체할 수도 삶의 바탕이 될 수도 있다고 믿기에 밤을 배경으로 펼쳐졌던 이 모든 이야기가 축적되길 바랐다. 세상과의 엉킴이든 사람과의 만남이든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밤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통해 낮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낮과 밤의 개별성 때문에 동일함을 바랄 순 없지만 부디 쓸쓸함으로 내면을 채우지 않길 바랐다. 그 누가 되었든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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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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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3년째 1월과 3월 사이에 하루키 책을 중독된 것처럼 읽어댄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그러했고 올해는 특별히 인식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 시발점이 된 건『안자이 미즈마루』책 때문이었다. 우연히 읽게 되었고 책 속에서 하루키의 단편「오후의 마지막 잔디밭」이 언급되어서 마침 그 단편이 실린『중국행 슬로보트』가 있기에 꺼내 읽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느긋하게 그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면서 하루키의 책이 더 읽고 싶어졌다. 에세이를 꺼내들었지만 집중이 되질 않아『렉싱턴의 유령』을 꺼내 들었고 그야 말로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하루키 단편에 중독되어 버린 것이다.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기이하면서도 하루키 다운(하루키 다움을 명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분명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인데 하루키의 글을 통하면 정말 일어난 일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속한 세계의 이야기가 너무도 평범하고 밋밋하게 느껴진다. 이 이야기들에 비하면 내가 하고 있는 자잘한 고민들, 일상, 심지어 마주하고 있는 책조차 현실의 경계를 넘어 아득한 과거가 되어 버린 기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저택에서 본 유령, 갑자기 정원에서 나타난 녹색 괴물의 청혼, 같은 반 친구에게 왕따를 당하고 인생이 바뀌어 버리고, 기이한 파도의 휩쓸림을 경험한 남자 들의 이야기, 옷만 잔뜩 남기고 떠나버린 아내, 사촌 동생을 통해 꺼내게 된 추억까지 그들의 내면 깊숙이 꺼내 올려진 이야기는 잠시 다른 세계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할 것 같은 그들의 속내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어? 이게 아닌데!’라고 말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순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개연성이고 뭐고 무엇에 홀린 듯 이야기를 따라가고 당연하게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결말이 궁금해서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각각의 다른 이야기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임에도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내면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고독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이야기 속에는 모두 고독한 인물들이 있었다.


  왕따를 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침묵으로 견디고 스스로 깨닫는 고통을 경험한 이야기를 아주 사소한 곳에서 툭 털어놓게 만든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얼음사나이라고 불리는 남자와 결혼해서 남극여행을 추진하고 그곳에 평생을 갇혀 있을 거란 예감을 하는 여자의 쓸쓸함은 고독함을 넘어 우울할 지경이었다.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남자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여자는 옷 중독에 걸려 엄청나게 많은 고가의 옷을 사들인다. 갑자기 사고로 죽은 아내가 남긴 옷을 처분하면서 다시 외톨이가 되어 버린 남자는 가여웠다. 태풍의 파도에 휩쓸려 친한 동네 동생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는 기이했다. 바다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는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물들의 내면의 서걱거림이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혹은 스스로 마음에 고독과 외로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했던 사연들이 때론 측은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 세계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궁금해졌다. 그런 경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기도 하고 자포자기 하거나 순응하듯 받아 들이지고 때론 이겨내려는 노력도 보였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있기 전과 후에 남겨진 그들의 내면은 사건 자체에 대한 심경의 변화는 있을 지라도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삶에 대한 변화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여부를 알 수 없다는데서 오는 지난함이 있었다. 마음속에 고독을 키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있었고 꼭 변화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그렇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세상을 좀 더 가까이 느끼고 정감 어린 시선을 느끼기를 바랐다면 나의 욕심일까? 오랫동안 간직했던 이야기를 훌훌 털어냈듯이 삶의 무게, 내면의 고독, 세상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좀 덜어내 주길 바랐다.


나를 괴롭힌 것은 지루함이 아니었다.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건 그 반복성이었다. 그런 반복 속에서 어쩐지 나 자신이 반복되는 그림자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110쪽)


  요즘의 내 생활이 꼭 그런 것 같다. 그나마 반복성을 달래주는 것이 독서였는데 그 책들마저 반복의 연속성이란 생각이 가득했다. 하루키의 기묘한 단편들을 읽으면서 반복되는 그림자를 조금 떨쳐낸 기분이 들지만 그 이후에 어떤 나를 마주할지 걱정이 되면서 설레기도 하다. 부디 이전보다 더 고독한 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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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22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는 세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들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합니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이러한 니힐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그 무의미한 반복을 긍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일이 벌어지지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세상의 허무를 의미있는 세계로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가령, 독서의 반복도 그냥 독서의 반복으로만 그치지 말고 독서 목록을 작성하고 서평을 쓰고 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가면 무의미한 반복이 새로운 의미있는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지요. *^

J.Haruki 2018-12-01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직접 쓴 글이신가요, 서평 좋습니다

안녕반짝 2018-12-01 00:20   좋아요 0 | URL
네~ 직접 썼지요^^ 벌써 2년이 넘은 리뷰네요~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 온전한 나를 위한 혜민 스님의 따뜻한 응원
혜민 지음, 이응견 그림 / 수오서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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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읽고 싶고 리뷰도 쓰고 싶은데 둘째 아이가 자꾸 깼다. 너무 자주 깨서 순간 짜증이 올라와 투정 부리는 아이를 번쩍 들어 무릎에 앉힌 후 ‘이럴 거면 자지마!’ 하고 버럭 화를 냈다. 아이는 자다가 무슨 봉변이냐는 표정으로 눈을 말똥말똥 떴다. 순간,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라 아이를 얼른 안고 등을 토닥이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 아이를 안고 있으니 태어나자마자 많이 아팠을 때가 불현듯 생각났다. 건강하기만 하라고 기도하고 기도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자 눈물이 핑 돌았다. 책 읽는 것, 리뷰 한 편 쓰는 게 너보다 소중하겠냐며 미안한 마음을 토로해 보았지만 내 행동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그리고 깊이 잠들지 않는다고 냈던 짜증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잠시 내가 감사를 잊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꼭 기억해줘. 네가 큰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나에겐 너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충분해. (38쪽)


  잠시 나를 잊을 때가 있다. 외출을 즐겨하지 않은 내가 거의 집에만 틀어박혀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소모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나에게 ‘네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을 해준다면 순식간에 울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나란 존재에 대해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며칠 전 대대적인 책장 정리를 하면서 쓰지 않는 물건을 다 꺼내서 과감하게 버리는 작업을 했는데 10년 이상 보관해 둔 편지들도 포함되었다. 세 박스나 되는 편지함에는 꾹꾹 눌려진 편지가 어마어마했다. 기억나지 않은 군인아저씨들과의 편지를 먼저 버리고, 이름이 쓰이지 않은 편지와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들의 편지를 버렸다.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연애편지를 꺼내 읽으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 받았고 소중한 존재였다는 걸 알자 내 자신이 새롭게 보였다.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지 마세요. 올라온 생각은 내가 조정할 수 없는 많은 외부 환경에 의해 잠시 일어난 구름이지 내 본래 성품이 아니에요. (243쪽)


  하루에도 수 만 가지 생각을 하며 산다. 그 생각을 나눌 이가 없을 때는 그것이 세상의 시각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더 닫게 된다. 그래서인지 현실과 몽상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나를 부정하고 변화시키려는 게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는 것처럼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는 글을 통해서 내 마음 속을 그대로 들여다보았다. 잔잔함을 유지한 채 수면위로 아무것도 띄워 보내지 않은 줄 알았는데 실은 잔 물결이 쉼 없이 일어나고 있음을, 그 물결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랐다는 것을, 나중에는 그런 움직임이 호수 밑바닥을 뒤집을 만큼의 내공을 가질 수 있음을 깨달아갔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구걸하지 말아요. 내 실력이 쌓이면 저절로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무의식중에라도 관심을 구걸하고 있다고 느낄 때 ‘내 실력을 더 길러야지.’하고 마음먹으세요. (151쪽)


  책을 읽다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을 때면 바로 실행했다. 남편에게 ‘당신을 사랑해요.’가 아닌 ‘당신이 필요해요.’라고 문자를 보냈고, 연락이 뜸한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이에게 사랑한다 말해주었고, 부모가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이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사실도 배웠다. 종교를 떠나, 그렇고 그런 위로의 책이라는 편견을 떠나, 깊이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내게도 와 닿았음을 느꼈다. 선(善)하게 사는 것. 이왕이면 그 선함이 타인에게도 전해지는 것. 그렇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의 온갖 욕망과 불손하고 거침없는 생각들이 쓸려가길 바랐다. 이 차분한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데 노력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좀 더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마음의 소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일단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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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20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불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