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강 두레아이들 그림책 2
프레데릭 백 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두레아이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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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라던 시절과 내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지금을 비교해보면 환경이 많이 파괴되었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온 들판을 들쑤시고 다니며 눈과 비를 맞고 목이 마르면 수돗물이 아닌 시냇물을 먹었음에도 20대가 될 때까지 병원에 입원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했다. 30대 중반인 내가 과거를 언급하는 것도 이젠 고리타분할 정도로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방관해도 건강에 이상이 없을 정도로 자란 나와 방관하고 싶어도 자주 아픈 내 아이들을 보면 내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연을 마구 쓴 것이 몹시 미안해진다. 언제까지 이 자연이 버텨줄지에 대한 불안감을 늘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저 인간에 의해 파괴된 하나의 강에 대해 이야기하겠지 싶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캐나다 퀘벡을 끼고 흐르는 세인트로렌스 강에 대한 이야기인데 강이 인간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고 문명에 의해 터전을 잃어버린 인디언들의 이야기가 씁쓸했다. 나부터도 과거보다 나아지는 문명에 쉽게 적응하며 살면서도 그 대가를 제대로 치르고 있는지, 문명을 만끽할 권리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냥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나 혼자 생각해봤자 이 자연을 온전히 보존하기 힘들다는 사실과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냥 무관심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더 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인트로렌스 강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고 싶은 현실을 말하고 있다. 그 강에 살아가던 ‘인디언들은 자신들이 먹을 만큼만 물고기를 잡았고, 신이 창조하신 위대한 자연 속에서 동물도 인간의 형제라고 여’기며 살고 있었다. 그런 곳에 문명의 발전을 끼고 다른 대륙의 사람들이 건너왔고 그런 인디언들마저 타락 시켰다. 인디언들은 서로 다른 유럽 국가와 손잡고 부족끼리 싸웠다. 그 안에서 동물들은 죽어갔고 자연은 피폐해져갔으며 자연을 경외하며 살았던 순수한 인디언들의 마음도 황폐해져갔다. 그렇게 자연을 파괴해가며 얻어간 것들은 돈으로 바뀌었고 강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 버렸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로 자연에게 행한 일이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피하고 싶었던 이유는 세인트로렌스 강이 머나먼 다른 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오랜 과거를 뒤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도 그런 이야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담아 버리면서도, 성실히 분리수거를 하면서도 저렇게 쌓인 쓰레기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러 가면서 가끔 개인 컵을 가져가지만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 용기들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 이렇게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이런 마음인데 내가 겪지 못하고 보지 못한 곳곳에서 벌어지는 참상은 얼마나 많을까? 물론 잘 걸러지고 보존되는 곳도 있겠지만 그런 곳보다 훼손되어 가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자주라서 실천할 곳 없는 죄책감만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세인트로렌스 강의 참상을 말하면서 책의 말미에 정녕 그 강은 생명을 잃어버린 것인지 묻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부하게나마 희망을 갖고 싶었다. 인간이 파괴한 강이지만 그런 인간이 다시 회복시킬 거라고 말이다.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이라곤 깨끗한 자연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그 강을 비롯한 자연 곳곳을 재생시켜낼 거라고 믿고 싶다. 너무 허황된 희망일까? 그렇더라도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아름다운 자연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내가 성장할 때처럼은 안 되겠지만 아이들이 덜 아프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우리에게 맡겨진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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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단도 문학동네 시인선 53
정철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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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개 같은 신념』을 무엇에 홀린 듯 읽고 난 뒤 시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시들이 묶여 나온 이 시집을 마주하면서 뭔지 모를 기대와 평안함이 있었다. 전작에서 보여준 분위기를 기대하는 것은 독자의 욕심이지만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한 것은 분은 분명한 듯하다.


  일기를 보는 듯했다. 시인의 일상을 따라 내면을 낱낱이 들여다본다고나 해야 할까? 평범한 아빠의 모습도 있고 중년 남자의 모습도 있으며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도 있다. 그 모든 게 어우러져 시인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자신임을 부인할 수 없는 수많은 형태의 나. 그런 나의 모습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 흐름에 따라가다 보니 평소처럼 좋은 구절은 없는지 기웃거리지 않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시구는 없다. 책을 읽을 때 좋은 구절을 찾으려 하고 거기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메시지를 끼워 넣었던 적도 있었다. 마음에 평안을 주는 시들만 적혀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한 사람의 삶을, 그 삶의 굽이굽이를 넘나들다 온 기분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의미부여도 어설픈 메시지도 넣지 않아서 편안하게 읽었다. 이런 읽기에 잔여물이 남지 않는다고 해서 한 권의 시집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도 아니므로, 오히려 이런 읽기가 때론 마음을 편안하고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경험한 셈이다.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시인은 시 속에 그런 경험을 자연스레 녹여냈다. 오히려 그런 차분함이 이런 삶을 살아온 본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세계의 사람 같다가도 경이롭게 바라보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나였다면 진작 나가 떨어졌을 절망과 고독 속에서 저자는 묵묵히 시를 통해 기록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가 아닌 이러한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 말이다. 눅진하게 들러붙는 그의 시, 그의 삶이 또 다른 목소리로 들린다면 여전히 지켜보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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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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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은 가르쳐줄 수 없지만 실패가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 때로 위엄 있고 심지어 존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니 인생의 보험이라 생각하고 소설을 읽어라. (21쪽)


 

  철저히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 소설을 읽노라 말하면서도 이런 책을 만나면 괜히 허리가 곧추 세워진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의 신작 산문이 나왔으니 한 번 읽어볼까 하며 펼쳤다가 예기치 않은 현실감각을 깨우고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한 충고와 함께 좀 더 진지하게 삶을 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매체에서의 인터뷰와 강연 대담을 모은 책인데 저자의 생각만 일방적으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현 사회를 말하고 그 안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지 작가의 시선을 들려주었다.


 

  작가의 시선에서 말하고 있기에 글쓰기와 책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작가는 무슨 책을 읽고 얼마나 읽으며 어디서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을까란 단계를 뛰어 넘어 문학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며, 팍팍한 세상살이 가운데서도 왜 글을 읽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키기도 한다. 단순하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작가가 아니라 ‘표현력을 독점했다는 게 맞는 말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소설을 쓴다는 것은 예전에 자기가 읽었던 것에 대해서 응답하는 것’이라며 자신만의 작가 세계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대책 없는 낙관을 버리고,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성급한 마음을 버리고, 냉정하고 비관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두루뭉술하게 희망을 가지거나 기다리라는 말보다 현실을 함께 인지하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뭔지 모를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위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위로가 내게 곧장 닿지 않고 다른 세대 혹은 나와 먼 누군가에게만 닿는다면 그것 또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책을 좋아하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다가도 멋진 작품들을 만나면 좌절하다 독자로 남겨져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탈출구 없는 번복의 연속성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나의 두려움을 간파한 듯 ‘글쓰기는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우리를 해방 시키’며, ‘잊고 있던, 잊고 싶었던 과거를 생생하게 우리 앞으로 데려다 놓’으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좀더 강해지고 마음속의 어둠과 그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힘을 잃’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일단 첫 문장을 적’으라고.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빤하지만 설렌 말도 잊지 않고 말이다.


 

저는 글을 잘 쓰는 것은 기술의 문제도 아니고, 기법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순간에 인간이 고요하게 자기 서재, 아무도 침입해오지 않는 고요한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대면하고 정작하게 쓴 글에는 늘 힘이 있고 매력이 있어요. (121쪽)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늘 고민하고 좌절하는 가운데서도 왜 그렇게 시간을 할애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지 몰랐다. 최근에야 그 일을 내가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며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다 저자를 통해 그 시간이 오롯이 나와 마주하는 시간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소설이 그저 재미있어서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작용을 우리가 평소에는 의식하지도 못하고 의식할 필요도 없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소설의 가장 멋진 점 아닐까요? 소설은 적어도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160쪽)


 

  철저하게 독자의 입장에 있다 생각하고 작품을 대할 때 순수하지 못하고 오만하게 대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책을 좋아하면 할수록,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순수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내 취향은 섬세해지고 더 예민해지고 있었다.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잘 모르는 바로 그것을 내놓으라’는 게 문학 독자의 욕망인 것처럼 보인‘다는 저자의 말에 좀 더 너그럽고(?) 편견 없이 문학을 대하겠노라 다짐했다.

 

 

  갈수록 살기가 팍팍해지는 현 시대에서 소신껏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현실은 인지하되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묵과해버렸기가 더 쉽기에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게 나의 모습이었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현 시대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거기서 글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저자에게 이전보다 더 한 신뢰감을 보태게 되었다. 그의 글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변화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닌가! 그렇기에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경외감이 더 높아져 가지만 우선은 타인이 아닌 내 자신을 진솔하게 바라보겠노라는 진부한 다짐을 하며 오늘을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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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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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짙은 안개를 경험한 적이 있다.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올 것 같아 두려움을 주는 안개였다. 길을 건널 때조차 무서울 정도로 짙은 안개 속에서 내 존재가 굉장히 나약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앞으로 내게 펼쳐질 인생이 그렇게 불투명하다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불안했다. 그러다 그런 안개가 걷히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내 눈에 비친 모든 정경을 빨아들이곤 했다. 생뚱맞게 안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런 안개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어버린, 탐정이었던 남자. 퍼즐의 조각을 맞추듯 몇 개의 단서를 가지고 자신의 과거를 찾아 나선다. 탐정 일을 했던 주인공이었기에 마치 추리소설처럼 단서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찾고 예기치 않은 반전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아닌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그가 기억을 잃어버렸고 그 기억을 찾고 있다는 사실만 인지할 뿐 철저히 과정의 책이었다. 과거를 잃어버린 남자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고 내면이 텅 비어진 채 마주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에 당황했다. 그래서 그는 고뇌하고 방황하며 과거를 되찾는 것만이 자신을 찾는 게 아님을 깨달아 가는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나는 한 번도 그 페드로 맥케부아였던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다. (중략) 그러다 차츰차츰 허공을 떠돌고 있던 그 모든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130쪽)


  기억을 잃어버린 현재의 나에게 다시 존재감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쉽지 않은 일처럼 그는 안개 속을 거닐 듯 몽롱했고 자주 길을 잃었다. 그의 내면과 시선을 따라 가고 있지만 정작 나조차도 내 존재의 유무에 대해 자주 생각했고 자주 넘어졌다. 나는 주인공처럼 기억을 잃어버리지도 않았기에 그런 기억을 찾아 헤맬 일도 없었지만 어정쩡하게 나의 기억을 떠돌던 이런 저런 생각들이 더 혼란스럽게 했다. 나는 누구이며, 나를 지배하고 있는 기억 속의 내가 진정한 내가 맞는지, 그게 진정한 나라고 인정할 수 있는지 주인공을 좇으며 내 모든 것을 뒤집어 보게 되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 (183쪽)


  과거의 ‘나’만큼 나를 진실하게 말해주는 것은 없다. 어떠한 과정으로 채워졌던 간에 미래를 향해 내딛는 중요한 발걸음이 될 수 있는 게 과거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기억과 단서가 정확하지 않기에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진정한 ‘그’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 과정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옮긴이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그의 기억이 그를 한 집단과 이어주는 끈이라는 사실, 그의 기억의 모험이 그 인물 자신을 초월하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낸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세계’를 온전히 만끽하지 못했지만 안개 속을 헤매다 빠져나와 보니 형태는 그대로지만 조금은 달라진 내 자신을 만난 기분이었다.


  주인공처럼은 아니더라도 한번쯤 나를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공정한’까지는 아니더라도 ‘관찰자의 목소리’인 내면의 소리와 함께 한발짝 떨어져서 스스로를 관찰해 본다면 적어도 옳지 않은 안개 속을 헤맬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런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더라도 그냥 내 자신을 한번쯤 되돌아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미래의 나를 걱정하며 좀 더 나은 나를 만들어 가려는 시도로 생각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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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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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해있는 이 시간과 공간을 지나치고 싶어 아무렇게나 보내버릴 때가 있는 반면, 눈과 마음에 새기고 싶어 기웃거리는 순간들이 있다. 전자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 집에서 뒹굴 거릴 때고 후자는 내가 잊고 있던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봤을 때다. 그러다 눈과 마음에도 새겨지지 않을 때, 그 풍경을 글로 꾹꾹 눌러 쓰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닌, 오로지 나 혼자 간직하기 위해 쓰는 글 말이다.


  꼭 그런 기분이 느껴지는 글을 만났다. 눈과 마음에 더 깊이 새기기 위해 꾹꾹 눌러 쓴 글. 사적인 것 같으면서도 시인으로서의 시선이 있었고, 종종 그런 시선을 따라가지 못해 깊숙이 들어가지 못해 겉돌기도 했지만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글. 소설가 김연수가 ‘나만 좋아했으면 싶은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국내에(혹은 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와 산문, 그리고 산문시가 묶여있는 책이었다.


  꽤 얇은 책임에도 완독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들일 정도로 집중이 잘 되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려 노력할수록 딴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의 내면은 아름답지(?) 못한 것인지 자책 아닌 자책을 했다. 분명 글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못했기에 나의 내면 탓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읽고 싶을 때 책을 펼쳐서인지 마치 다른 계절의 나를 만나는 양 천천히 읽어 나갔다. 그래서 전체적인 느낌이 어떠했는지, 어떤 부분이 아름다웠고 어떤 부분이 나를 겉돌게 만들었는지 자세하게 설명할 순 없다. 그럼에도 내 안에 남겨진 메시지보다 결을 만들듯 내 시간 속에 새겨지는 그 순간들이 그냥 좋았다.


나는 워즈워즈처럼 바다보다는 호수가, 흰 눈 덮인 험한 산봉우리보다는 완만한 초록의 산이 좋다. (61쪽)


  이런 구절을 보면서 어쩜 나와 취향이 똑같은지 감탄하게 되고, 나보다 앞서 살아간 살아갔지만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흔적을 좇는 것도 좋았다. 괜히 사색에 잠겨 평범한 풍경을 세세하게 들여다보기도 했고, 내가 속한 이 공간과 시간들이 지극히 평범한데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맛보기도 했다. 거기서 저자의 위대함을 느꼈다고 하면 너무 오글거리는 찬사일까? 설명할순 없지만 분명 시인의 시선을 느꼈고 보통 사람인 나와 다름에서 오는 삶을 대하는 태도도 본 것 같다. 아주 짧은 찰나일지라도 삶의 지난함에서 맛본 조금은 특별한 경험이랄까? 도통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시선을 맛보았다는 말을 이렇게 장황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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