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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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테이크 가게 딸이라는 것이나 학력이 소소하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수치스러워한 적이 없지만, 다르다는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이런 게 사랑이지, 하고 생각했다. 다르니까 좋아하게 되는데, 달라서 닿지 않는다. 94~95쪽

가끔, 연애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한테 얘기하면 찰떡같이 알아먹질 못하고, 퉁명스럽게 ‘연애 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렇게 무뚝뚝한 사람이랑 어쩌다 6개월 만에 결혼을 했으며, 애를 둘이나 낳았을까 싶다가도 이내 포기한다. 그냥 포기하고 책이나 드라마 혹은 영화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하는 게 더 빠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을 통해 연애의 감정을 떠올려봤지만 추억으로 지나갈 뿐 생생하게 떠오르진 않는다. 당연하게도 결혼을 한 후에는 남편에게 설렘을 느끼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오히려 설렘을 느낀다는 게 어색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주인공 미쓰코와 연애를 하게 되는 남자 미야사카에 대한 동경은 있었다. 책만 읽어대고 말이 없다는 이유로 부인이 바람을 피워 이혼을 하긴 했지만 ‘독신에 건물을 갖고 있고, 서점도 물려받을 것이고, 사진을 잘 찍고, 지적이고, 앞으로는 늘 서점에 있고’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풋, 웃었지만(조건이 좋다며^^) 이내 인기가 많을 거라며 풀 죽어 하는 모습에서 늘 연애에 자신 없어 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저자의 소설 인물들 특징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미쓰코는 조건을 보지도 않고, 관계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였다면 온갖 소문을 달고 다닐 일에 대해서도 서슴없다. 멀지만 친척 신이치와 연애를 하고 신이치의 아이를 유산한 뒤 아이 때문이 아니라 헤어지지만 주주에서 함께 일하고, 나중에 신이치의 부인이 임신했을 때 함께 산부인과를 가는 일(신이치, 부인과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었기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행동한다.

일본문학을 읽었던 초기에는 다른 정서, 다른 문화, 다른 생각과 행동들이 낯설었다. 그리고 편견 없이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여전히 걸리는 부분들도 있다. 저자의 최근작들을 좋아하게 되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다보니 어떤 상황이 등장해도 ‘그러려니’가 되었다. 작품에 항상 죽음이 등장하는 것도 익숙하고, 미쓰코의 엄마가 돌아가시면서부터 ‘주주’가 시작되었다는 것, 미야사카 역시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에 고향으로 돌아와 서점을 물려받게 된다는 점들이 낯설지가 않다. 또한 이 소설의 시작이 미쓰코의 엄마를 추억할 수 있는 <지옥의 살라미 짱>이란 만화책이 등장한다는 것에 막연하게 미야사카와 이어질 거라고 혼자서 추측해 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스테이크 레스토랑 ‘주주’에 대한 자부심, 예의를 갖추지만 타인의 시선대로 살지 않는 모습, 끊임없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에 따라가려는 모습에 동경을 느꼈다. 처음에는 연애에 대한 대리만족이었다면, 점점 자신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한다는 것이 부러웠다. 주변의 환경에 순응하며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사는 것. 처음엔 소소한 이야기라고만 치부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아무래도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생각, 환경을 탓하고, 나의 선택을 탓하는 나와는 상반되는 모습이어서 그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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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민주주의를 훔쳐 갔을까? - 현대사와 함께 읽는 진짜 정치 이야기 사회 시간에 세상 읽기 1
김은식 지음, 소복이 그림 / 이상미디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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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덮고 나도 모르게 “좋은 책이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고 역사에 생생히 묻어있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 주었다. 하지만 오로지 의미 전달로만 묻히기엔 더 뜨거운 뭔가가 있었다. 너무나 쉽게 들어왔던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누군가의 피로 이뤄진 사실이라는 말을 오롯이 실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알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몰랐던, 내 생활에 급급해 잊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미안함도 쉴 새 없이 묻어 나왔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소중함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없는 상태’가 왜 문제인지도 잘 모른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야. 그러다 보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문제를 만났을 때 그것과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이유나 방법도 잘 모르게 될 수 있겠지 11쪽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모든 구성원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 각각의 생각과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 이념이라면, 그 이념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은 대화와 토론과 설득과 타협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민주주의 과정이’라는 말을 제대로 인지하니 ‘날치기’와 ‘다수결’의 폐해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의미를 알아가자 근현대사의 민낯이 보였고, 구성원을 인정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를 억압한 지도자들의 만행에 분노가 일었다.

제주 4.3사건부터 이승만 대통령의 세 가지 만행(친일파 청산 좌절, 한국전쟁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지 못함, 권력 유지를 위해 온갖 부정하고 폭력적인 방법 동원)이 이후 역사에 끼친 영향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박정희라는 사람이 일본군 장교로 해방이 되던 해에 중위를 달고 있었으므로 ‘만약 제대로 친일파에 대한 처단과 문책이 이루어졌다면 더 이상 군인으로서 그렇게 승승장구할 수 없었을 사람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친일파 청산은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보다 호위호식하며 살고 있는 그들을 보면 모든 게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사람들은 ‘민주주의는 스스로 지켜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등장해 4·19 혁명이 무색할 정도로 18년 동안 민주주의와 먼 독제체제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18년 동안 권력을 쥔 것은 잘못이지만 덕분에 잘 살게 되지 않았냐고. 그때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경제적 발전이 늦더라도 4·19 혁명으로 이뤄낸 민주주의를 잘 지켜냈다면 많은 사람들이 덜 고통 받으며 함께 갈 수 있었다는 이런 생각이 어려운 것일까? 그렇게 잘못된 지도자로 늦춰진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룬 것은 ‘평범한 대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시민들’이었다.

1981년생인 나는 어렸을 적, 어렴풋이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전두환이란 사람이 기억난다. 내가 태어나기 약 일 년 전에, 고향에서 1시간 거리의 광주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얼마나 섬뜩했는지 모른다. 여전히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 않고, 5·18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사람들보다 역시나 더 잘 살고 있다. 이런 역사의 편협함을 보면서 분노가 치미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그런 역사를 정면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심정을 아는 것도 두려워 답답하기만 하다. 이후 1987년 6월 민주 항쟁은 ‘30여 년 이상 이어지던 군사 정부 시대가 끝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므로 현재 내가 누리는 민주주주의 대가를 치러준 수많은 분들에게 나는 그저 빚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조화를 이루고 어울려 사는 방식’이라는 말을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내 가족과도 대화를 하다 틀어지고 마음이 상하기 일쑤인데, 생각이 다른 모든 구성원과 이뤄나가는 게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권리를 주장하려면 권리를 잘 실천해야 한다. 선거에 참여하는 것, 내가 뽑은 지도자가 어떻게 하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 하다못해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고 내가 이해한 민주주의 의미를 생활 속에 녹여내는 것도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일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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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다 굿즈가 더 많다.
큰 박스가 두 개가 배송되어 깜짝 놀랐다.
굿즈를 너무 많이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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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부터 오늘까지 정신이 없는데 도착한 책!

나의 피로를 풀어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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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고백 - 사도신경으로 나의 믿음을 세우다
황명환 지음 / 두란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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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에 관한 독특한 기억이 있다. 신앙을 가지기 전이었고, 신앙을 가지고 있는 언니네와 함께 살 때였다. 방에서 혼자 잠들었는데 심하게 가위에 눌렸다. 꿈은 너무 생생한데 몸이 움직이지 않아 온 몸에 소름이 돋을 때 기억나는 건 성경책밖에 없었다. 기도를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을 때 사도신경을 읽어보라는 형부의 말이 생각나서였다. 겨우 침대에서 내려와 엉금엉금 기어가 형부의 가방을 열어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사도신경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야말로 불을 켤 용기도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평안함이 왔고, 그 뒤로 지금까지 가위에 눌린 적은 한 번도 없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요약하고 정리한 것이 사도신경이고, 이 진리가 틀림없는 것이기에 사도신경은 오늘날 모든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유일한 신앙 지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15~16쪽

 

지금은 예배를 드릴 때 습관적으로 툭, 하고 나오는 게 사도신경이다. 사도신경을 읊으면서도 분명 엄청난 고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알려고 했던 적은 없었다. 그저 나의 나약함을 외면하며 정말 사도신경을 완벽하게 믿는지 의심할 때가 더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내용을 가장 잘 압축 해놓은 진리의 기준이자 지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이론이라도 사도신경과 맞지 않으면 거부하면’된다고 말이다. 이렇게 잘 압축해 놓은 진리의 기준을 놔두고 나는 어디서 믿음을 찾으려 했는지 모르겠다. 그 사실이 참 안타까우면서도 부끄럽다.

 

그런데 많은 성도가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고백하면서도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 여기서 착각해선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미 엄청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그 믿음을 주셨습니다. 문제는 실행하지 않는 우리의 나약함입니다. 54쪽

 

결국 나의 나약함이었다. 그 나약함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언젠가 더 큰 믿음, 더 큰 능력이 생기면 순종하며 살 수 있겠지’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 기도해야 한다. “성령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이렇게 늘 기도하지 않으면 나의 나약함이 믿음까지 져버릴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지음 받았으니 그 사실을 인정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기도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무엇보다 내 안에 ‘이미 엄청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마치 처음 아는 사실처럼 감격으로 다가온다. 그것도 나에게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선물로 말이다.

 

스스로 무능하다고 탓해선 안 됩니다. 우리 자체만 본다면 무능하지만, 모든 것을 감당케 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 옆에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61쪽

 

“성령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과 동등한 ‘인격적’ 하나님입니다.” 라는 사실을 믿는다. 저자는 창세기 1장 1절을 믿으면서 성경의 다른 것은 믿지 않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령이 ‘어떤 능력이나 힘, 에너지 같은 객체가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사실, 우리를 선택하시고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를 알게 되면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초대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가톨릭과 기독교, 개신교의 의미를 알고 나면 교회가 하는 역할도 제대로 알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불거진 문제는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혼동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문제에 ‘교회의 주인’을 넣어보면 해결이 어렵지 않다는 사실도 말이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알고 있는지 여부가 인생의 성패를 가릅니다. 안타깝게도 이 단순한 진리를 모르는 미아가 세상에 가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와서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사명을 감당하며 살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가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인생을 제대로 사는 길입니다. 122쪽

 

그러므로 ‘미래적 관계에 기반을’ 둔 교제를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과거, 현재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믿는 사람들만 구별되는 미래적 관계가 아니라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교제가 이뤄져야 한다. 늘 소극적이고 현재의 관계만 중시했던 나에게 미래적 관계의 의미는 남다르다. 누군가를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갈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면 허투루 스칠 사람이 없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의 신앙고백’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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