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가 짜낸 참기름
S는 K대학의 전기전자공학부 학생이었다. S는 명문대에 진학할 만큼 명석했고, 해병대에 자원할 정도로 건강했다. 전역 후 S는 택배물류센터에서 일했다. 일주일도 버티기 힘들다는 곳에서 S는 반장이 인정할 정도로 버티고 또 버텨서 학자금까지 마련했다. 스물두 살 S에게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높았던 자신감이 깊은 좌절이 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S는 복학 후 해병대 정신으로 밤을 새우며 엉덩이에 진물이 날 때까지 공부했지만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계속되는 좌절과 누적된 피로 탓에 ‘수업 듣는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오늘 하루는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학교에 가는 날보다 가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자주 쉬었지만 S는 피로를 회복하지 못했고, 두 번의 학사경고를 받아 제적되고 말았다. S가 우울증을 얻은 것도 이때였다.
제적된 후 한동안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두문불출하던 S는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정상궤도로 복귀하려면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년 동안 공부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우울증 탓이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에게 뇌졸중이, 어머니에게 암이 동시에 찾아왔다. S는 이때부터 부모님을 대신해 참기름을 만들어 거래하는 식당으로 배달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S도 30대 중반이 되었다.
두 해 전 미술관에서 ‘마이너리그 서양미술사’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던 적이 있다. 강연목표는 서양미술사에서 빛나는 장면을 연출한 거장들도 알고 보면 중심으로부터 먼 가난하고 지질한 비주류였음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S는 이 강연에 와준 청중의 한 사람이었다. 며칠 전 우연히 S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그림 몇 장을 내게 보였다. 세밀한 필치로 정교하게 그려진 초상화였다. 놀랍게도 모두 S 자신의 그림이라고 했다.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 그린 것이라곤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S는 내 강연을 들은 후 비주류인 자신도 그림을 그려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S가 말했다. “늘 주변인이었기에 그저 남들처럼 사는 것이 꿈이었고 그 꿈이 무너진 것이 많이 아팠어요.”
고흐도, 프리다 칼로도 남들처럼 살지 못했다. 고흐는 지독할 정도로 가난해 결혼도 못했다. 프리다 칼로는 큰 사고로 원하던 아이를 갖지 못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도 없었다. 나는 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 인간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묻게 된다. 꿈이 무너진 삶에서 희망이란 자기 고통을 말하고, 쓰고, 그리는 것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말해지고, 쓰이고, 그려질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란 남들처럼 사는 삶이 아닌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깨를 짜서 기름을 내고, 무너진 꿈을 살펴 그림을 그리는 것, 거기에 인간의 구원이 있다.
2017.11.7 매일신문에 실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