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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머리카락 - 제5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ㅣ 사계절 1318 문고 121
남유하 외 지음 / 사계절 / 2019년 11월
평점 :
「푸른 머리카락」은 제5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이다. 작품집에는 제5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수상 작가 남유하의 수상작 「푸른 머리카락」과 신작 「로이 서비스」외에 이필원의 「고등어」, 허진희의 「오 퍼센트의 미래」, 이덕래의 「알람이 고장 난 뒤」, 최상아의 「두근두근 딜레마」 우수 응모작 네 편이 실려 있다.
「푸른 머리카락」
“넌 외모는 다를지 몰라도 우리 별 사람이야.” (p.37)
손지유는 전학 간 학교에서 자이밀리언 하재이와 같은 반이 된다. 자이밀리언은 유전자 변이로 ‘여성’이 소멸되어 30년 전 지구에 왔다. 지구인 배우자가 아이를 임신하면 자이밀리언은 코쿤 상태로 들어가 해수를 담수로 바꾸며 수명이 다할 때까지 바다 속에서 잠을 잔다. 자이밀리언과 지구인 사이에서 태어난 하재이는 물에 닿으면 자이밀이언 본래 모습으로 변한다.
자이밀리언에게 반감이 있는 손지유는 하재이가 자꾸 신경에 거슬린다. 다른 아이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던 하재이는 학교가 싫어서 학교에서 말을 잘 안 한다. 손지유와 하재이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사과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지구인으로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다른 나라에서 온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웃을 만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다른 행성에서 온 생명체와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을 상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웃의 영역은 빠르게 확대되는데 나와 다른 모습의 이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은 얼마나 확대되고 있을까? 다름을 차별하는 문제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 교통수단의 발달속도를 인간의 마음은 따라가지 못 하는 것 같다.
인간이 지구환경을 계속 오염시켜 더 이상 지구가 살 수 없는 별이 된다면, 그래서 우주선으로 탈출하여 다른 행성에 가야한다면, 다른 행성에서 자이밀리언과 같은 소수자로 대우를 받는다면 어떨까? 「푸른 머리카락」은 질문이 계속 이어지는 작품이다.
「로이 서비스」
“로이 서비스를 신청하시겠습니까?” (p.49)
로이 서비스는 고인과 동일한 모습에 기억을 이식한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일정 기간 동안 함께 지내게 해주는 서비스이다.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로이 서비스를 신청한다. 윤다인은 죽은 사람을 꼭 닮은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좋은 이별’을 할 기회를 주겠다니, 어른들의 위선과 상술이 조합된 장난처럼 느껴져 로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엄마에게 화를 내고 외할아버지 집을 나온 다인은 바닷가에서 한지호를 만난다. 지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간 다인은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로이 서비스」를 읽으며 장례 문화란 과거에도 현재에도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문화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유가족이 슬픔을 극복하는 것을 도와주는 서비스인 ‘로이 서비스’에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안드로이드 로이의 생각과 의견은 고려되지 않는다. 그래서 ‘로이 서비스를 신청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은 윤다인의 외할아버지에게 먼저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를 위한 ‘좋은 이별’일까? 세상과 가족들과 이별하는 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을 떠나는 당사자인데......
「두근두근 딜레마」
라오는 피아의 이상형인 가수 케이와 닮고 싶어 유전자 재배열을 했다. 하지만 피아는 다른 애에게 관심이 있다. 피아의 관심 끌기에 실패한 라오는 과학자 지아에게서 호르몬을 이용해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약을 받는다. 피아를 찾아 카페에 간 라오에게 피아가 다가온다.
‘두근두근’이라며 설레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두근두근 딜레마」는 유전자 재배열, 호르몬 조작 등 유전공학을 다룬 소재가 흥미롭다. 그러나 인간이 유전자 재배열로 태어난 작품이고 타인을 호르몬 조작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가치관은 우려된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개인의 자주성과 자유를 침해하여 인간을 대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 교훈을 주어야하는 것은 아니며 주인공이 반드시 정의를 실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작가는 인류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키려고 노력하는 가치관에 대해서는 기준을 가지고 작품에 드러내야하지 않을까? 더욱이 어린이를 독자로 하는 동화라면 이야기에 담긴 가치관에도 작가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리라.「두근두근 딜레마」는 유전공학기술을 사용할 때 고려되어야할 도덕성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으나, 작가의 시각과 주인공의 갈등이 분리되지 않아 존엄이나 정의와 같은 기본적으로 지켜지기를 기대하는 가치에 대한 기준을 흔들어 모호하게 만들었다.
SF문학은 과학적 상상력을 소재로 현실의 제약을 넘어선 더 넓은 세계와 미래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문학이다. 이런 점에서「푸른 머리카락」에 실린 작품들은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생각해볼 재료가 많다. SF문학이 새로운 상상과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살아갈 세계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가치관을 담는다면 좋지 않을까? SF문학 작품이 미래 사회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상상력을 이야기에 펼쳐내는 것만큼 가치관의 폭도 넓혀나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