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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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의 전개와 상관없이 소재 자체가 한 권의 소설을 끌고 갈 때가 있다. 소재가 특수하거나 희소할 때 가능한 일이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이 그런 경우였다. 나치, 히틀러,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때의 사람들이 그 시간의 참상에 대해 여전히 증언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직후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날 때까지는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의 서사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나치에 동조했던 사람들이 입을 열고 있다. 그 사람들은 이제 삶의 마지막에 닿아 있다.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어쩔 수 없었지만 평생 죄책감을 갖게 했던 수치스러운 기억들을 풀어놓고 있다.

 

원제 ‘Le Assaggiatrici'는 ’맛, 감정인‘ 정도의 뜻이다. 평범한 단어의 원제와 비교하면 국내 제목은 소설의 소재와 내용을 정확이 버무려 독자에게 내놓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정보가 알려졌지만 히틀러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한 지점이 있다.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독재자의 삶은 어떤 것인지 말이다.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자면 ’기미상궁‘쯤 될 여성집단을 뒀었다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실존인물의 증언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니 상상으로만 이뤄진 문장이 아니라 목소리를 풀어낸 이야기이다. 소설이라고만 말하기엔 강렬한 사실성이 마음을 울렸다.

 

‘로자’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전쟁 중 외톨이가 되어 시부모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 어느 날 히틀러의 친위대가 찾아와 ‘직장’에 차출된다. 이른바 히틀러의 ‘시식가’가 된것이다. 음식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지 아닌지를 판정하는 실험대상으로 일해야 했다. 살기 위해 먹는 음식이 죽음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 한 사람의 목숨을 위해 다수의 타인이 생명을 걸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다른 시식가 여자들과의 관계, 독일군 장교와의 사랑, 패망을 앞둔 시점의 극적인 탈출 과정이 이어진다.

 

로자는 시식가로서 함께 생활했던 엘프리데를 오랫동안 기억한다. 그녀는 신분을 속인 유대인이었다. 자신의 위태로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다른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의 가족을 위험에 노출시키면서까지 그들을 돕는다. 하지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그녀를 보호하지 않는다. 자기들의 안위만을 생각한다. 밀고에 밀고가 이어진 끝에 엘프리데와 그녀의 아버지는 수용소로 유배된다. 유대인이라는 이름은 타인을 위해 했던 모든 행동과 함께 했던 시간을 무화시켰다. 누가 악인인가. 로자는 엘프리데를 수용소로 보낸, 한때 연인이었던 나치 장교에게 말한다.

 

“당신 잘못이고말고.” 내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야.” p.343

 

로자의 아버지는 나치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었다. 그는 “세상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로자는 나치에 부역한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만, 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도 생각한다. 로자의 아버지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선택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같은 상황에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일단 용인하면 그 정권에 대한 책임을 네게도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각자가 속하는 국가 체제 덕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은둔자조차 말이다. 알아들었니? 네게는 정치적 죄악에 대한 면죄부가 없다, 로자. p.196

 

소설 속 로자의 실존 인물 ‘마고 뵐크’는 생의 끝에서 시식가로 지낸 자신의 시간을 고백했다. 70년의 시간동안 두려웠을 것이다.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볼까 싶고 한편으론 시식가로서 자신이 보낸 시간 동안 죽어간 생명들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을 것이다. 아우슈비츠에서 동료 유대인들에게 문신을 새기면서 살아남은 유대인의 실화를 담은『아우슈비츠의 문신가』도 비슷한 경우였다. 랄레 소콜로프는 독일 패망 직전 수용소를 탈출했고 나름 성공적인 생을 살았지만 죽기 얼마 전 부역자로서 자신의 삶을 밝혔다. 명백한 가해자와는 달리 목숨을 담보로 한 부역자들에 대한 단죄는 어떠해야 하는 걸까. 고민해볼 일이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역사가 있기에 더 관심을 가지고 숙고해 봐야할 것이다.

 

로사의 실제인물 마고 뵐크

사진출처: https://www.spiegel.de/fotostrecke/photo-gallery-the-woman-who-tasted-hitler-s-food-for-poison-fotostrecke-95062-5.html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상황과 대비되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나치와 관련한 증언과 기록은 이렇게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인류가 어떤 일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가”가 된다. 우리는 어떤가. 부역자에 대한 고민은 고사하고 친일파 정리도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 이 리뷰는 문예출판사에서 가제본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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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머리카락 - 제5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사계절 1318 문고 121
남유하 외 지음 / 사계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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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머리카락」은 제5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이다. 작품집에는 제5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수상 작가 남유하의 수상작 「푸른 머리카락」과 신작 「로이 서비스」외에 이필원의 「고등어」, 허진희의 「오 퍼센트의 미래」, 이덕래의 「알람이 고장 난 뒤」, 최상아의 「두근두근 딜레마」 우수 응모작 네 편이 실려 있다.

 

「푸른 머리카락」

“넌 외모는 다를지 몰라도 우리 별 사람이야.” (p.37)

손지유는 전학 간 학교에서 자이밀리언 하재이와 같은 반이 된다. 자이밀리언은 유전자 변이로 ‘여성’이 소멸되어 30년 전 지구에 왔다. 지구인 배우자가 아이를 임신하면 자이밀리언은 코쿤 상태로 들어가 해수를 담수로 바꾸며 수명이 다할 때까지 바다 속에서 잠을 잔다. 자이밀리언과 지구인 사이에서 태어난 하재이는 물에 닿으면 자이밀이언 본래 모습으로 변한다.

자이밀리언에게 반감이 있는 손지유는 하재이가 자꾸 신경에 거슬린다. 다른 아이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던 하재이는 학교가 싫어서 학교에서 말을 잘 안 한다. 손지유와 하재이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사과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지구인으로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다른 나라에서 온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웃을 만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다른 행성에서 온 생명체와 이웃으로 살아가는 것을 상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웃의 영역은 빠르게 확대되는데 나와 다른 모습의 이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은 얼마나 확대되고 있을까? 다름을 차별하는 문제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 교통수단의 발달속도를 인간의 마음은 따라가지 못 하는 것 같다.

인간이 지구환경을 계속 오염시켜 더 이상 지구가 살 수 없는 별이 된다면, 그래서 우주선으로 탈출하여 다른 행성에 가야한다면, 다른 행성에서 자이밀리언과 같은 소수자로 대우를 받는다면 어떨까? 「푸른 머리카락」은 질문이 계속 이어지는 작품이다.

 

「로이 서비스」

“로이 서비스를 신청하시겠습니까?” (p.49)

 

로이 서비스는 고인과 동일한 모습에 기억을 이식한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일정 기간 동안 함께 지내게 해주는 서비스이다.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로이 서비스를 신청한다. 윤다인은 죽은 사람을 꼭 닮은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좋은 이별’을 할 기회를 주겠다니, 어른들의 위선과 상술이 조합된 장난처럼 느껴져 로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엄마에게 화를 내고 외할아버지 집을 나온 다인은 바닷가에서 한지호를 만난다. 지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간 다인은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로이 서비스」를 읽으며 장례 문화란 과거에도 현재에도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문화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유가족이 슬픔을 극복하는 것을 도와주는 서비스인 ‘로이 서비스’에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안드로이드 로이의 생각과 의견은 고려되지 않는다. 그래서 ‘로이 서비스를 신청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은 윤다인의 외할아버지에게 먼저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를 위한 ‘좋은 이별’일까? 세상과 가족들과 이별하는 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을 떠나는 당사자인데......

 

「두근두근 딜레마」

 

라오는 피아의 이상형인 가수 케이와 닮고 싶어 유전자 재배열을 했다. 하지만 피아는 다른 애에게 관심이 있다. 피아의 관심 끌기에 실패한 라오는 과학자 지아에게서 호르몬을 이용해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약을 받는다. 피아를 찾아 카페에 간 라오에게 피아가 다가온다.

 

‘두근두근’이라며 설레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두근두근 딜레마」는 유전자 재배열, 호르몬 조작 등 유전공학을 다룬 소재가 흥미롭다. 그러나 인간이 유전자 재배열로 태어난 작품이고 타인을 호르몬 조작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가치관은 우려된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개인의 자주성과 자유를 침해하여 인간을 대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 교훈을 주어야하는 것은 아니며 주인공이 반드시 정의를 실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작가는 인류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키려고 노력하는 가치관에 대해서는 기준을 가지고 작품에 드러내야하지 않을까? 더욱이 어린이를 독자로 하는 동화라면 이야기에 담긴 가치관에도 작가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리라.「두근두근 딜레마」는 유전공학기술을 사용할 때 고려되어야할 도덕성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으나, 작가의 시각과 주인공의 갈등이 분리되지 않아 존엄이나 정의와 같은 기본적으로 지켜지기를 기대하는 가치에 대한 기준을 흔들어 모호하게 만들었다.

 

SF문학은 과학적 상상력을 소재로 현실의 제약을 넘어선 더 넓은 세계와 미래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문학이다. 이런 점에서「푸른 머리카락」에 실린 작품들은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생각해볼 재료가 많다. SF문학이 새로운 상상과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살아갈 세계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가치관을 담는다면 좋지 않을까? SF문학 작품이 미래 사회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상상력을 이야기에 펼쳐내는 것만큼 가치관의 폭도 넓혀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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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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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가운데 앉은 소크라테스가 왼손으로 하늘을 가르키며 오른 손을 독배 쪽으로 뻗고 있다. 독배를 건네는 젊은이는 차마 소크라테스를 바로 보지 못해 얼굴을 돌리고 주변 사람 모두 침통해마지 않은 표정이다. 그 가운데 소크라테스만이 결연한 표정으로 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의 표지 그림이다.

 

현대지성 클래식으로 플라톤의 대화편이 출간되었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대화편들인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이 한 권으로 묶여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이어 <크리톤>과 <파이돈>은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고발에 이은 소송 끝에 죽음에 이르는 순간을 묘사한 작품이다. 조국 아테네를 위태롭게 한다고 고발당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결백함을 논변하고 투표를 거쳐 사형을 선고받는 과정을 다룬 것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다. <크리톤>은 사형 집행 전까지 돌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철학자에게 절친한 친구 크리톤이 탈출을 권고하면서 벌어지는 대화를 다룬다. <파이돈>에서는 노철학자가 독배를 들기까지 주변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와 죽음의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향연>은 소크라테스 생애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대화편들과는 결이 다르다. 소크라테스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 시인 아가톤이 경연에서 우승한 기념으로 열었던 연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룬다. 전자의 세 권이 비극적 분위기를 띠고 있는 반면 후자에서는 생의 활력이 넘치는 소크라테스, 지혜로 가득한 철학자의 빛나는 한 순간을 느껴볼 수 있다.

 

이번에 출간된 현대지성 판은 무엇보다 매끄러운 번역이 좋았다. 플라톤의 저작들은 수없이 번역되어 왔지만 그리스어 원전 번역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대표적으로 숲출판사와 정암학당의 플라톤 전집일 것이다. 이 두 출판사의 번역이 좀 더 학자적 태도에 가까운 번역이라면 현대지성의 책은 독자의 읽기를 훨씬 많이 고려한 번역이다. 원전 번역을 읽으면서 문장이 난해할 때면 고대 그리스어를 현대의 한국어로 맞바꾸는 작업이 어려웠기 때문이라 짐작했다. 서로 다른 언어의 단어에 포함되는 개념들이 같을 수는 없고 문맥이나 언어구조의 문화적 차이도 존재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원전번역을 읽으면서 앞선 문제들이 번역자의 노력에 따라 어느 정도는 해소될 수 있다는 믿음이 들었다. 그 동안 읽으면서 나의 문해력을 탓하곤 했던 고전들을 박문재 역자의 번역으로 읽어 보고 싶어졌다.

 

술술 읽히는 문장이라고 해서 플라톤이 풀어낸 소크라테스의 사상도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담긴 논변은 자칫 한 눈을 팔면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맥락을 놓치게 되고 <파이돈>에서 다루는 영혼불멸설과 상기론은 상상력을 동원해야 이해할 수 있다. <향연>에서 다루는 지혜에 이르는 길에 대한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집중력과 형이상학적 세계에 대한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플라톤이 써낸 소크라테스가 실제의 소크라테스와 얼마나 닮았는지 알 수 없듯이 내가 이해한 플라톤이 실제의 플라톤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대화편으로 만나는 소크라테스는 불의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보편적이라 생각하는 정의를 추구하며 올바른 정의를 깨닫기 위한 지혜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또 그의 제자 플라톤은 존경하는 스승의 목소리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자신을 숨긴 사람으로 느껴졌다. 스승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마음에서였는지 혹은 스승의 후광 속에서 자신의 사상을 더 잘 내보이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플라톤의 노고로 우리는 소크라테스라는 철학자를 잃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적어도 이 책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에서 보여지는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이기 보다는 소크라테스 그 자체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남기고 싶은 문장들

 

우리 두 사람 모두 대단하고 고상한 무엇에 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자기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착각하는 반면에,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르지만 내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착각하지는 않는 것을 보니, 내가 그 사람보다 더 지혜롭기는 하구나.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적어도 이 작은 것 한 가지에서는 내가 그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것 같아보이는군. p.20

 

아테네 사람들이여, 죽음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비겁함을 피하는 것입니다. 비겁함은 죽음보다 더 빨리 달려오기 때문이지요. p.54

 

여러분을 비판하는 자들을 사형에 처해서, 자기 삶이 올바르지 않다고 누군가가 비판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면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가장 고상하고 쉬운 길은 여러분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선량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직접 관심을 갖고 스스로 그렇게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p.55

 

이제는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기 위해 떠나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오직 신神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p.59

 

친애하는 소크라테스여,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치 있는 삶이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를 관조하는 삶일 거예요.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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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미래 직업
양서윤 지음, 김윤정 그림 / 개암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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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초등학생이 직업을 갖게 될 즈음엔 어떤 세상이 되어 있을까. 부모 세대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삶과 사회는 공상과학 영화가 현실이 된 수준이다. 누구나 이동 중에도 필요한 정보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이런 발전 속도라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살아갈 세상은 지금의 어른의 사고로는 재단할 수 없는 세계가 될 것같다.

 

개암나무에서 나온 『나만 알고 싶은 미래직업』은 어린이들의 미래를 그려보기 좋은 책이다. 공상과학 소설을 읽으면서 펼쳐보는 미래 세계가 상상을 자극한다면 좀더 과학적 근거에 충실한 이 책을 읽으면서는 구체적인 생활로서의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다.

 

책에는 미래에 등장할 법한 20가지 직업을 소개한다. 가상 현실 디자이너, 3D 프린터 패션 디자이너 웨어러블 로봇 공학자, 인공지능 사이버 보안 전문가, 자율 주행 자동차 엔지니어 등은 기술 분야의 직업이다. 생태 복원 전문가, 푸드 테크 전문가, 사이버 농부, 우주 쓰레기 관리인, 바이오매스 에너지 전문가, 곤충 요리사 등은 환경과 먹거리에 관련된 직업이다. 실버 케어 로봇 전문가, 소프트 로봇 개발자, 존엄사 관리 전문가, 뇌-컴퓨터 연결 과학자 처럼 노령화 사회에 필요한 직업들도 있다.

 

 

 

 

각각의 직업인들이 하는 일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직업과 유사하다. 현재의 직업들에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인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등의 IT기술이 접목되어 있다. 예를 들면 지금은 지구상의 곳곳을 여행할 때 그 역할을 하는 여행 가이드가 우주 여행 시대에는 우주여행을 안내하는 식이다. 물론 우주여행 가이드는 여행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는 물론 우주에 대한 지식을 겸비해야 할 것이다. 또 우주공간에서 생존하는 법과 우주선 조종법에 전문가여야 함은 물론이다.

 

이 책의 장점은 미래 직업을 소개하면서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생활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이 초등학교 시절에 어떤 경험을 하면서 해당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를 알려준다. 그 직업을 갖기 위해선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 지와 어떠한 인접 분야에 관심을 갖고 협업을 해야하는지도 친절히 설명한다.

 

사이버 농부는 도시 내에 인공환경을 조성해 농작물을 재배하는 직업이다. 사이버 농부가 관리하는 스마트 팜에서는 사물인터넷과 로봇을 활용해 병충해를 사전에 차단하여 유기농 농작물을 수월하게 재배할 수 있다. 사이버 농부가 농장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선 자연 과학은 물론 전기, 전자와 관련한 기초과학 지식이 필요하다.

 

책에 소개된 직업들을 실생활에서 만날 때가 되면 우리는 깨끗한 환경과 인간 중심적인 사회에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기술들을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어른들의 또다른 숙제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소외와 차별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기술이 실현되는 유토피아를 향하길.

 

한발 일찍 미래를 그리고 준비한다면 누구나 자신의 꿈을 더 쉽게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미래 유망 직업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내 꿈을 이루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수 있지요.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에 유망할 새로운 직업을 소개하고 있어 여러분이 더 큰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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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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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과 리틀 엔젤, 천사 형제 가족의 시끌벅적한 이틀 간의 이야기다. 토요일과 일요일, 하루는 장례식, 하루는 생일파티. 한 인생의 마지막을 애도하고 또 한 인생이 시작했던 날을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근데 이 가족이 이상하다.

 

멕시코 출신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다.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는 멕시코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성장한 사람이다. 소설에서처럼 아버지가 멕시코인 어머니가 미국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미국 땅에서 사는 멕시코인의 심리 묘사가 세밀하고 구체적이다. 미국인들이 멕시코 이민자를 대하는 태도와 불법체류자로 사는 일 또 시민권을 땄지만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따돌림당하는 것이 그들의 처지다. 멕시코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미국인에 대한 열등감이 모든 등장인물에게 배어있다.

 

수많은 가족들이 한 번의 장례식과 한 번의 생일파티를 위해 모여든다. 떠들썩하고 욕설이 난무하고 누구와 누구는 머리끄덩이를 잡는 싸움도 불사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추파를 던지고 손잡고 사라지는 커플도 있다. 급기야 총잡이까지 등장한 가운데 이야기는 정점을 향해간다.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이런게 멕시코 스타일일까.

 

적응하기 힘들었다. 아프다는 빅 엔젤은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가족들 앞에서 떵떵거렸다. 모든 일을 자신이 중심이 되어 처리하려는 빅 엔젤, 가족들은 뒤에서 그를 욕하면서도 고분고분 따라주었다. “타인은 지옥”인 것처럼 가족도 지옥인 것처럼 느껴졌다. 빅 엔젤의 배다른 동생 리틀 엔젤은 모처럼만에 만난 가족을 보며 자신이 이들을 떠난 이유를 새삼 깨달았다.

 

가족의 유산이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끝없는 드라마를 만들어내는군. 그가 시애틀에 사는 이유가 이거였다. 가족. 가족이란 너무 복잡하기만 하다. p.139

 

가족이란 게 있으면 책임감도 참 많이 따라붙는다. 수천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어야 겨우 살만해 지는 것이다. p.148

 

복잡다단한 가족의 이야기에는 쉽게 밝혀지지 않는 비밀들이 얽혀있다. 중간 중간 언급되면서 궁금증을 자아내다가 어느 순간 그 내막이 밝혀지는 구조다. 어머니가 용서하지 않는 빅 엔젤의 과오가 무엇인지, 엔젤 형제를 웃게 하는 “앵무새”에 관한 비밀이 무엇인지, 빅 엔젤의 아들과 조카에겐 무슨 일이 있었건 건지, 리틀 엔젤과 사돈 글로리오사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 주의깊게 읽지 않으면 대체 이 사람들이 난데 없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게 될 때가 있다. 결국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아하, 그런 거였어”하는 감이 온다. 독자의 호기심을 유지하기위해 일부러 이런 구조를 택한 것이겠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에서 과연 효과적이었을까 싶다. 앞쪽 대화에서 한 번 언급된 “앵무새”를 거의 끝에서 설명하니 기억력이 딸리는 나 같은 독자는 앞쪽 “앵무새”에서는 어리둥절하고 뒤쪽 “앵무새”는 새로울 뿐이었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은 말기 암환자 빅 엔젤 가족의 화합을 그린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삶의 마지막에 선 그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점에선 동생 리틀 엔젤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바꾸려던 형제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쪽을 택한 것 같다. 세상을 구하기 보다는 자신과 가족을 더 돌보기로.

 

“나는 특별한 놈이 아니야. 그냥 한 여자의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빠였지. 일하는 남자였고.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는데.” p101

 

"나는 떠났어. 나 자신을 뭔가 대단한 존재로 만들고 싶어서. 내가 세상을 바꿀 거라 생각했지.“

“그래서 어떻게 됐냐, 아우야?”

“아무것도 안 바뀌었어.” p.423

 

두 형제는 알게 모르게 공통점이 있었다. ‘메모하기’ 말이다. 빅 엔젤은 ‘나의 멍청한 기도 제목들’이란 이름의 수첩에 자신이 감사하게 여기는 일들을 적어간다. 죽음을 앞둔 그가 적어가는 고마움들은 바로 그 자신이 되어 간다. 동생 리틀 엔젤은 가족들의 이름을 수첩에 적는다. 처음엔 잘 모르는 인척들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 수첩은 빅 엔젤을 중심으로 펼쳐진 큰 세계를 펼쳐 보였다. 동생에게 형의 새로운 모습을 알려준 것이다.

 

그의 친구 데이브는 한때 그에게 자그마한 몰스킨 수첩 세 권 세트를 선물하면서 거기다가 감사할 거리들을 적으라고 말한 적이 있다.

“뭘 감사하라는 건데?”

(…)

“다 네가 정하는 거라니까, 엔젤. 좋아하는 마음이 진심이야? 없으면 안 된단 생각이 드냐?” pp.104-105

 

빅 엔젤은 수첩들을 다시 숨기며 말했다.

“이것들은 나야.” p.289

 

그(리틀 엔젤)의 주머니에 있던 자그마한 수첩. 그것은 빅 엔젤의 우주를 상징했다. 이름을 잇는 선들, 그 선들은 너무 복잡해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형을 떠나보낼 때가 다 되어서야 불현듯 드는 깨달음은 자신이 빅 엔젤의 참모습을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p.315

 

빅 엔젤은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가족을 위험에서 지켰고 아버지와는 다르게 가족을 버리지 않았다. 한때 아버지에게 배운대로 아이들을 학대했지만 그 일을 사과하고 가족들을 하나로 모았다. 가족들은 각자의 결함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 모두가 모두를 사랑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모래알같은 그들이 얼마간 기댈 수 있는 의지처가 되어 준다. 빅 엔젤의 아내 페를라는 가족을 ‘사막’의 ‘물’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몸 둘레에서 이는 불꽃을 느끼고 보았다. 비로소 자신이 왜 아직 죽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자신의 각성을 즐기기 위해 살아 있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아직 살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가족을 단합시키기 위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살려 했던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알게 되었다. p.487

 

가족은 헤어졌다가도 다시 만나는 법이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마치 물처럼 말이다. 이 사막같은 삶에서, 가족이란 바로 그 물이었다. p.70

 

실패하기도 죄를 짓기도 한 인생이다. 사랑했고 한 눈도 팔았다. 누군가를 돕고 도움을 받기도 했다. 완벽하지 않은 삶이지만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빅 엔젤은 자신의 인생을 마지막까지 긍정했다.

 

“좋은 인생이었다.”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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