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밀레니얼 세대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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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다. 페이스북도 마찬가지. 소통에 관심이 없어서는 아니다. 단지 그 소통 방식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더해서 그 인터페이스를 사용해 주고받을 수 있는 내용에 의문이 들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마셜 맥루헌의 오래된 명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매체의 형식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의 내용이 결정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이미지가 주 컨텐츠를 이루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오가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 아니 그 인터페이스로 주고 받기에 최적화된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면 커뮤니케이션의 메시지의 일부일까 혹은 전통적인 메시지를 초과할 것인가.

 

다른 의문도 있었다. 타인을 의식한 글에서 자기 전시는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어디까지를 공유로 보고 어디까지를 과다 노출로 볼 것인가. 넘쳐나는 자발적인 개인의 노출을 보면서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개인들은 왜 자신의 사적 생활을 노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을까. 이런 내용으로 지인과 대화한 적이 있다. 공개적으로 자신의 삶을 전시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나의 입장에 지인은 어디까지를 전시라고 보느냐는 질문을 건넸다. 대답할 수 없었다. 여행기나 소소한 가정 생활에 대한 글을 종종 방송에 투고하는 지인에게는 ‘사생활의 전시’라는 단어가 불편했을 것이다. 당시엔 그저 얼버무리고 넘어갔지만 사실 최근까지 지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정지우 저자의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SNS 세상에 대한 질문에 정답지처럼 보인다. 저자 정지우는 ‘분노’라는 키워드로 우리 사회를 분석한 『분노사회』와 삶을 견디는 고전읽기 『고전에 기대는 시간』등의 인문적 성찰을 담아낸 다수의 책을 펴냈다. 또한 팟캐스트 <정지우의 인문학적 순간>과 <뼈가 있는 책>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제된 목소리로 전한 바 있다. 이번 책에서는 저자가 청년세대라 정의한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1부 환각세대: 우리가 원하는 것은’에서 저자는 ‘꿈’에 대한 강박과 ‘현실’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괴리를 겪는 자신의 세대를 ‘환각세대’로 규정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최악의 양극화에 시달리는 시대의 청년들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지극히 평준화된 이미지를 누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들은 ‘환각적인’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거기서 멀어질 때 박탈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소외감을 선사’하는 그 이미지에 의존하는 반면 그것을 따라잡지 못함에 좌절한다.

 

청년 세대를 절망하게 하는 이미지는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된다. 어두운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인스타그램에는 그늘이 없다. 저자는 ‘이미지와 실제 삶의 간극이 일상화되면서 어쩌면 절망과 우울, 분노가 더 극적이게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밝고 환하기만한 일상의 단 ‘한 순간’을 마치 삶 전체인 것처럼 인식하면서 청년세대의 삶은 팍팍해져만 간다. ‘삶과 이미지의 간극’을 알아보고 그 격차를 넘어서고자 고민이 필요하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긍정한다.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에 가린 시각에 비친 사회보다는 청년세대가 사회를 진단하는 통찰이 예리하다고 말한다. 윗세대에겐 이미 살아버린 시간이지만 청년들에게는 예정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앞으로 살아낼 사회에 대한 청년세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저자의 말대로 이들에게 얼마나 믿음을 갖고 귀를 기울이느냐가 중요한 이유는 청년의 문제가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시대 전체, 이 사회 전체에 대한 통찰이나 시야는 이미 기성에 진입한 존재들보다는 기성에 진입하기 이전의 존재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

사회 전체, 시대 전체, 이 세상 자체에 대해 ‘발언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는 사실 이미 이해관계에 얽혀들어 있으며, 그들의 하루하루를 지배하는 세상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고, 결국 이미 속하게 된 자신의 삶 안쪽을 향하는 시야 밖에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삶 앞에 선 청년, 자신들이 시작하게 될 삶의 조건을 그 누구보다 예민하게 응시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래서 그 누구보다 절박하게 시대 전체와 미래 전체를 마주하고 있는 청년들의 시야는 항해에 앞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항해사의 눈빛처럼 예리하고 투명하다. p.79

 

그런데 사실 양쪽에게 사회 문제란 아예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기성세대에게 그것은 자기가 믿는 사회의 정의이자 자기 정체성, 신념과 존재의 문제라면, 청년세대에게는 자기의 생존이자 사다리의 문제이고, 게임의 룰이 공정한지의 문제인 것이다. p.99

 

결국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 그러나 한편으로는 분리되어 보이는 문제들 또한 넓은 차원에서는 이어져 있고 뿌리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인식에 계속해서 도달해야 한다. p.114

 

‘2부. 젠더에 대하여: 여성에 관해 덜 말해질 때란 결코 오지 않았다’는 페미니즘 이슈를 다룬다. 남성 저자, 특히 청년 세대의 남성이 말하는 젠더에 대한 시각이 새로웠다. 흔히 젊은 남성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리며 젠더에 대해 또는 페미니즘에 대해 거의 반감에 가까운 감정을 가진다고 여겨진다. 인류 역사 내내 지속됐던 가부장 문화에 기초한 정체성의 문제를 인식하려 하지 않고 전엔 가지고 있었다고 믿었으나 이제는 빼앗긴 것같은 권리에 집착하는 것이다.

 

최근 청년 남성의 분노는 ‘공정’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젊은 남성들이 화가 나는 이유는 ‘남성과 여성의 경쟁’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문제의 근본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근본적인 뿌리는 가부장적인 문화구조다. 그 속에서 형성되고 강요받는 정체성이다. p.150

 

젠더 문제에 대한 저자의 제안은 ‘이해’다. ‘혐오와 매도’를 내세우기 전에 ‘끊임없이’ 이해하라고 주문한다. 젠더에 대한 논의는 기성세대에게는 체념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일깨운 인류 절반의 인식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남성성’에 대한 뿌리깊은 믿음도 쉽게 해체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청년세대는 젠더문제의 해결을 향한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더더욱 저자의 제안이 유효하다. 적대적 인식보다는 ‘이해’를 전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혐오와 매도 그리고 몰이해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끊임없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하기 싫어서 이해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어떤 잘못의 대가를 치른다면, 그것은 이해하지 않은 일의 대가가 될 것이다. 이해하지 않은 일, 손쉽게 증오한 일, 속 편하게 이해를 포기하고 혐오를 택한 일에 대한 결과는 그리 우습거나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p.151

 

사회 전반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 ‘3부. 개인과 공동체: 우리는 서로 뒤섞이는 바다’에 이르러 인스타그램의 사생활 노출에 대한 질문의 답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었다. 책 전반에 걸친 청년세대에 대한 분석은 그들과 SNS의 관계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했다. 청년세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그 문제점, 기성세대와의 차이 등을 알 수 있었다. 청년세대와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선 ‘이해할 수 없음’을 전제해서는 안 된다. ‘이해를 거부’하지 않되 어떤 점을 ‘용납’하기 어려운지를 이야기해야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때 ‘상호 이해’를 위한 전제가 마련될 것이다.

 

무언가에 대한 이해 자체를 거부하는 형식의 담론은 결코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이런 점에서는 이해가 가능하되 이런 점에서 용납해서는 안 된다’라는 식의 언술 행위가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p.284

 

저자 스스로는 자신이 청년세대를 지나쳤다고 말하지만 독자에게 그는 누구보다 청년세대를 대표한다. 우리 사회에서 청년세대와 기성세대가 이 책에서 다룬 주제들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싶다. 청년세대에게 귀기울여야 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책을 읽듯이 곰곰이 듣고 있을 수 있을까. ‘이해’하기 위해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청년세대에게 이 책이 자기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핍진하게 다뤘다고 여겨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성세대로서는 그들에게 귀 기울여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러한 ‘귀기울임’이 언젠가 ‘이해’에 가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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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 (완역판) - 그리스도 이야기 현대지성 클래식 10
루 월리스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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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벽돌을 쌓아 만든 듯 한 영문이미지가 떠오른다. 이어 전차에 올라탄 필사적인 표정의 배우 찰턴 헤스턴이 자동으로 따라온다. 너무도 유명한 영화 <벤허>를 대표하는 인상들이다. 1959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본 기억은 없다. 전차 경주 장면 일부와 병에 걸린 두 여자가 신비로운 치유를 경험하는 장면 정도가 생각날 뿐이다. 아마도 <주말의 명화>를 시청하던 시절의 기억이 아닐까 싶다. 60년 전 영화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2016년 최신의 그래픽 기술을 동원한 리메이크작은 이전 영화 흥행과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한 성적을 냈다. 액션물로 기억된 이 영화의 원작 소설 제목에 ‘그리스도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렸다는 것을 안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영화 <벤허>를 말할 때 전차 경주 장면을 빼놓을 수 없는 것처럼 루 월리스의 『벤허』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제외한다면 의미가 없는 소설이다. 현대지성의 완역본으로 만난 소설은 영화 영상으로 다 담아내지 못한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동방박사의 입을 통해 그리스도의 진실한 의미를 설명하고 그것이 세속적인 구원과 얼마나 다른지를 역설한다. 아마도 저자는 자신이 알게 된 그리스도교의 참의미를 소설이라는 외피 속에 담아 독자에게 가깝게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월리스 자신은 (종교에 귀의하게 되었다는) 이 이야기를 부인하며 자신은 무신론자라기보다는 기독교에 대해 별 관심도 없었고 무지했으며 벤허를 쓰기 전에는 성지에 가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벤허』를 집필하게 된 동기는 당시 미국에서 유명한 불가지론자였던 로버트 잉거솔 대령과의 만남이었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 아내와 가족들과 늘 교회에 나가기는 했어도 정작 기독교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데에 충격을 받은 월리스는 그 일을 계기로 기독교에 대해 공부하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 나온 것이 바로 『벤허』였다. p.809

 

이야기의 주인공은 유대인 유다 벤허다. 유복한 집안의 자손이었지만 로마인 친구 메살라의 모함으로 갤리선 노잡이 노예로 전락한다. 자신과 가족의 망가진 삶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벤허의 서사는 동방박사와 그리스도의 이야기와 겹쳐진다. 힘을 기른 벤허는 자신의 복수와 더불어 로마의 압제에 맞서 유대인을 해방시키고자 한다. 선지자의 예언에 따라 그들에게 온 ‘유대의 왕’을 앞세우고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울 준비를 한다.

 

정치적인 왕으로서 유대인들의 왕이 될 메시아는 그들의 도움으로 세상을 무력으로 정복할 것이며, 유대인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영원히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바리새파, 또는 정치적으로 말하면 분리주의자들은 성전과 회랑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꿈보다도 훨씬 원대한 희망을 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꿈은 이 세상을 정복하는데 그쳤지만 그들의 꿈은 땅은 물론 하늘까지 뻗었다. 말하자면 대담하게도 그들의 불경스러운 이기심은 멈출 줄을 모르고 전능한 하나님마저 사실상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부려 먹으려고까지 들었다. p388

 

‘유대의 왕’ 그리스도는 벤허를 비롯한 유대인의 생각대로 유대인의 구원만을 위해 온 존재였을까. 저자는 이집트 출신 동방박사 발타사르의 입을 통해 그리스도와 구원의 의미를 밝힌다.

 

구원은 정치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네. 통치자와 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려봤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차지하게 될 뿐이니. … 오시게 될 그분은 영혼을 구원하시게 될 것이라네.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이 땅에 오시어 정의를 세우심을 의미한다네. p.399

 

벤허와 유대 민족이 그린 이상은 세속적 구원 즉 정치적 구원이었다. 로마인과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하고 유대인의 자유를 되찾는 일 말이다. 유대인의 나라를 세워 자신들을 구원한 자가 왕이 되어 다스리는 왕국이 원하는 전부였다. 그러나 메시아로서 지상에 온 그리스도의 구원을 모든 사람의 영적 구원이었다. 특정한 일부를 위한 구원이 아닌 전 인류를 세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일이었다. 유대 민족은 자신들의 왕국 이상의 것은 꿈꿔 보지도 않았고 그러므로 원할 수가 없었다. 꿈꿔보지 못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이 아무리 메시아의 축복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삶에 스미지 못했다.

 

우리가 이룩한 모든 결과들은 저절로 예정된 것이고, 저절로 예정된 것들은 모두 깨어 있는 꿈속에서 만들어진다. … 우리가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노동 자체 때문이 아니라 꿈꿀 기회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꿈은 늘 단조로운 일상에 들어 있어서 듣지 못하고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사는 것은 곧 꿈꾸는 것이다. 오로지 죽어 무덤에 묻힌 후에야 꿈이 사라진다. p.596

 

예수는 십자가에서 처형당한다. 자신과 민족을 구할 왕이 속수무책으로 스러진 후 벤허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지하교회를 건설해 교세를 모으는데 힘을 쏟는다.

 

그 말과 태도와 소박한 기도에 벤허는 새로운 느낌의 감동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실제적이고 가깝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 그것도 단지 유대인만 사랑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모든 이방인마저 다 사랑하는 아버지시다. 중간에 중재자가 전혀 필요없는, … 온 우주의 아버지시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왕 대신 구원자를 보내 주실 것이라는 견해는 벤허에게 빛처럼 새롭게 다가왔을 뿐더러 너무도 명백해서 그러한 것이 더 큰 선물이며 하나님의 본성에 훨씬 더 들어맞는다고 생각되었다. p.651

 

소설 『벤허』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벤허라는 인물이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책이 전달하는 종교적 의미를 하나의 종교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인간적인 기준을 내세우며 행하지 않은 약자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라는 메시지는 모든 인류에게 공히 해당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 맞습니다. 지금 제가 한 것과 같은 일(유대 율법으로 금지된 일)을 말과 모범으로 매일 가르치시는 그리스도의 제자랍니다. 세상은 사랑이라는 말을 오래 전부터 알았지만 참으로 이해하지는 못했지요. p.720

 

제정 초기 황제 티베리우스 치하 레반트 지역을 생각하며 『벤허』를 읽는다면 세계사 속 그리스도교의 태동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 차원을 생각해본다면 세속의 구원에 치중한 지금의 종교에 대해 돌아보고 구원의 시원적 의미를 새겨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작가가 직접 등장해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대목이 고색창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종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드는 작가의 이야기 재주는 인정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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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코스모스 - 우주를 향한 새로운 질문
데이비드 아이허 지음, 최가영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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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이후 35년의 공백을 채우다."

알렉스 필리펜코, UC버클리 천문학 교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이후 35년 동안 이뤄진 천문학 연구를 정리한 책이다. 『코스모스』를 읽은 독자로선 반갑기 그지없다. 2017년 출판된 책이 미디어가 띄운 『코스모스』열풍 덕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칼 세이건의 인문적 과학을 얼마나 가깝게 구현했는가가 독서 포인트가 될 것이다.

 

데이비드 아이허(David Eicher)는 ‘최고 권위의 천문학 월간지 <에스트로노미(Astronomy)> 편집장’이며, ‘다수의 천문학 교양서를 펴낸 저술가이자 칼럼니스트’다. 스스로를 ‘코스모스 키즈’로 소개한 저자는 ‘열다섯 살의 나이에 아마추어 천문가를 위한 잡지’를 창간했고 ‘이를 계기로 칼 세이건 교수와도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저자가 ‘들어가며’에서 소개하는 세이건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는 『코스모스』한국어판 서문에서 앤 드루얀이 소개하는 일화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칼 세이건은 어린 천문학도의 노력을 격려하고 북돋워주는 자상한 선배였다. 십 대 학생의 편지에 수 회에 걸친 답장을 하고 책이 나왔을 때는 잊지 않고 우편 배송했다고 한다.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느꼈던 인간애는 평소 생활에서도 다름없었다. 또 학자로서 천문학의 대중화에 힘쓴 부분에 대한 저자의 평가에도 공감했다.

 

당시 칼 세이건은 보수주의자와 질투 어린 동료 학자들로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고 있었다. 어떤 이는 그가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학자로서의 신념을 저버렸다고 했다. … 하지만 칼 세이건은 보통 사람들이 과학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그리고 다른 학자들도 할 수 있는 딱 그 정도 일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했고 다른 이들은 하지 않았다. pp.13-14

 

『뉴 코스모스』라는 제목은 『코스모스』와의 비교를 불가피하게 했다. 35년 동안 더 우주에 대해 더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많을지 핵무기를 손에는 인류의 미래를 한없이 근심한 『코스모스』의 전망은 지금에 와서 어떻게 달라졌을까. 저자가 말하는 35년 전 천문학의 모습이다.

 

1980년대에만 해도 우리는 암흑 에너지가 무엇인지, 암흑 물질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블랙홀의 성질도 확실한 증거 없이 짐작만 하는 것이 전부였다. 태양이 어떻게 죽어갈지, 지구 생태계가 어떤 종말을 맞을지도 세세히 알지 못했다. 달 탄생의 비밀을 설명한다는 가설들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화성과 금성의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명황성은 여전히 어엿한 행성이었고, 우리 주위에 별(항성) 또는 그 별들을 수많은 행성들이 공전하는 다른 항성계의 존재는 감도 잡지 못했다. p.15

 

우주적 시간의 개념으로 눈 깜짝 할 시간보다 짧은 35년 동안 우주에 대한 인류의 지식은 큰 진보를 이뤘다. 우주의 처음과 끝을 그리고 그 안에서의 인간 존재의 위치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바라보게 됐다.

 

뉴 코스모스에서의 우리는 우주의 과거와 미래, 크기, 모양, 나이를 한층 성숙해진 관점으로 바라본다. 지금의 우리는 우리 은하 부근에 행성이 몇 개나 있는지 대충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 은하가 ‘막대 나선 은하(barred spiral galaxy)' 구조로 되어 있으며 250만 광년 후에는 안드로메다 은하(M31)와 한 몸이 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우주에는 수없이 많은 은하가 있으며 각각의 은하에 블랙홀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도 이제는 상식이다. 은하의 거리 척도는 지구의 그것과 차원이 다르며, 그 척도로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운 광막한 공간이 우리 은하 안팎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는 것도 우리는 이제 잘 알고 있다. p.18

 

데이비드 아이허는 과학적 언어로 천문학의 질문들에 대해 현재까지 밝혀낸 지식을 설명한다. 책의 각 챕터들은 지구의 달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화성의 기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금성은 왜 스스로 얼굴을 갈아엎으며, 어떤 천체는 왜 ’행성‘이고 어떤 것은 왜 ’왜소행성(矮小行星, dwarf planet)'일까? 우리 태양은 앞으로 어떻게 변하고 지금으로부터 50억 년 뒤에 우리 태양계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바다가 끓어오르기 전까지 지구의 생명체들은 언제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를 서술한다. 또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 우주의운명, 우주에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 외계 문명의 존재‘에 대한 연구결과도 제시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태양계는 50억년 후에 종말을 맞는다. 그렇다고 인류에게 똑같이 50억년의 시간이 남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태양이 행성상 성운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부풀어 올라 지구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약 10억년이다. 게다가 태양계와 가까운 안드로메다 은하가 초속 120킬로미터의 속도로 접근해오고 있다. 40~50억년 후에는 우리 은하와 충돌해 하나의 거대은하를 이룰 예정이다. 두 은하의 충돌시점에 생존유무가 불확실하지만 인류는 그 거대은하의 이름도 벌써 지어놓았다. ‘밀코메다(Milkomeda)’라는 아름다운 이름.

 

우주에 관심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외계인의 존재가 아닐까 싶다. 책에 따르면 인류가 외계 생명을 만나는 일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될 것 같다. 빅뱅 이후 우주는 나날이 팽창하고 있다. 외계 생명이 존재할만한 은하들도 서로간의 거리가 하루가 다르게 멀어지는 것이다. 현재로서도 가 닿기엔 먼거리인데 우리의 기술이 유인 우주선을 띄울 수 있을 미래 어느 시점에는 빛의 속도로도 가 닿을 수 없게 되리라 예상된다. 우주여행의 환상을 가능하게 하는 웜홀의 존재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 설사 웜홀이 있다하더라도 그 엄청난 물리적 소용돌이를 견뎌낼 물체를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에 지성을 가진 인류의 존재가 우리밖에 없다고 믿는 것은 오만이다. 우주 어디엔가 사고를 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들과 소통하며 우주의 신비를 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칼 세이건이 드러냈다면 데이비드 아이허의 우주는 그와는 다른 지점에 있다.

 

그 이후로 수많은 UFO 목격담이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과학적인 정밀조사 결과 실제로 외계인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과정에서 인류가 깨달은 것은 역설적으로 이 사례들을 보고한 우리 인간을 향한 자아성찰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뭔가를 본다. 이것이 결론이다. p.416

 

우주는 어마어마하게 매우 몹시 넓다. 그래서 우주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더라도 깨닫는 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구는, 적어도 인간에게는, 매우 특별한 곳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터전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고향이니까. pp.416-417

 

과학에 대해, 천문학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진 독자가 아니라면 35년 전의 지식과 현재의 지식간의 간극이 얼마나 큰 것인지 또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 힘들다. 저자가 『뉴 코스모스』에서 펼치는 우주는 칼 세이건보다 과학적이다. 칼 세이건의 책이 과학적 인문서라면 데이비드 아이허의 책은 ‘과학책’이다. 기본적인 천문학 용어와 물리 지식이 바탕으로 한 읽기를 한다면 저자의 의도에 더 가깝게 갈 수 있을 것이다. 숫자에 약하고 기초 물리학에 문외한인 독자라면 칼 세이건의 책이 보여준 문학적 향기에 대한 기대를 접고 우리 우주의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독서에 집중하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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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장폴 뒤부아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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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같은 날들이었다. 경이로운 그 4년간 나는 오로지 행복을 속성연마하고 집중 실천하는 데 몰두했다. 매일,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여전히 살아있다는 기쁨을 맛볼 수 있기까지 28년을 기다려야 했다. 달리면서 호흡을 고르고, 자유롭게 숨 쉬고, 두려움 없이 수영하고, 그날 하루가 마치 그림자가 붙어 다니듯 나와 함께 있는 것 말고는 다른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기쁨, 그래서 밤이 와도 그 상태 그대로 그냥 좋은, 불안하게 삐걱거리던 그 땅에서 멀리 떨어져 무념무상의 평화로움에 취해보는 그 기쁨을 누리기까지 그 긴 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모든 게 어긋나 흔들리던 그 땅에서 나는 도망쳤다.(p.11)

 

장폴 뒤부아 장편소설 『상속』은 화자인 폴 카트라킬리스가 가족과 집으로부터 도망쳐 4년간 이어온 행복한 나날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폴 카트라킬리스는 의사면허가 있고, 낡은 자동차와 요트를 소유한, 플로리다 마이애미 하이알라이에서 뛰는 바스크 펠로타 프로선수단에 속한 펠로타 선수였다.

폴 카트라킬리스는 툴루즈에서 태어나 ‘온종일 뇌조각을 응시하는 할아버지, 쇼트팬츠 차림으로 유사 홀아비생활을 하는 아버지, 자기 남동생과 준 부부관계에 있는 어머니, TV연속극을 켜놓고 자기 누나 품에 안겨 잠들길 좋아하는 삼촌’을 보며 자랐다.

할아버지와 외삼촌과 어머니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가 자살로 사망했다는 부음을 받고 폴 카트라킬리스는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자살 내력과 가족의 유품이 그대로 남아있는 툴루즈 집으로 돌아간다.

폴 카트라킬리스는 펠로타 선수로 플로리다에 정착해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구단과 선수조합의 충돌로 펠로타 경기가 쇠퇴하면서 그의 생각은 빗나간다. 그는 ‘현실적인 밥벌이’를 위해 아버지의 의원을 이어받고 아버지를 계승한다.

 

가족으로부터 상속받는 것이 재산만은 아니다.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유전자와 자라온 환경과 경험은 인간의 뇌에 삶을 결정하는 행동방식을 형성한다. 인간은 유전자와 성장 환경과 유년의 경험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장폴 뒤부아 『상속』의 폴 카트라킬리스는 자신이 원하는 삶과 가족에게 이어받은 삶 사이를 오가며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물이다. 그는 가족 유전자 가운데 최악의 것이 자신의 유전자에 이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에 끊임없이 두려워하며 도망쳤다. 원하지 않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의사라는 직업과 가족의 유산을 이어받지만 펠로타 선수로 지내온 날들을 지워버리기 힘들다.

폴 카트라킬리스의 말은 유전자와 성장 환경과 유년의 경험의 영향에서 벗어나 개인이 삶을 자유로이 선택하는 일의 지난함을 드러낸다.

 

내가 이 지경으로 불행해진 원인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무엇이든 제대로 결정을 내기거나 선택하지 못한 탓이라고, 나처럼 우유부단한 사람들, 자꾸만 결단을 뒤로 미루고 일을 질질 끄는, 말하자면 겁쟁이들은 자기 잘못을 감면받으려고 매번 운명을 탓하고, 죽음, 망령, 헌팅턴 병을 이유로 내세우고, 심지어 작은 애벌레들까지 끌어들여 구실로 삼는다고,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고 일러주었다.(p.351)

 

폴은 원한 적 없는 상속을 포기할 수는 없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집을 매각하고 다시 한 번 도망 칠 수는 없었을까? 장폴 뒤부아의 『상속』은 가족이라는 관계에 맞물린 삶의 방식에 저항하여 개인이 자유로운 삶을 찾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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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우리에게 필요할까요? 물음표로 배우는 세상 7
실비 보시에 지음, 클레망스 랄르망 그림, 이정주 옮김 / 개암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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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선사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과 매우 가까이 있어요.

종교는 사람들이 먹고 입는 것부터

삶의 발향과 가치관까지 결정짓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왜 종교를 가지고, 신이 있다고 믿는 걸까요?

신이 있다면 우링게 무엇을 알려 주고 싶은 걸까요?

전 세계의 주요 종교를 하나하나 알아 가면서

우리의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 봐요!

뒷표지 중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세상의 기원과 인간의 근원을 보는 시각이 종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역사는 해석하는 방향까지 판이할 수 있다. 종교가 다를 경우 당면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짐은 물론이다.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의 종교는 몇 가지일까. 다양성으로 따지자면 역사상 어느 때보다 복잡하지만 막상 주변에서 마주치게 되는 신의 모습은 한정되어 있는 듯하다. 종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종교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종교가 우리에게 필요할까요』는 세계의 종교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책이다.

 

 

책은 종교가 무엇이고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또 사라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로 카프제 유적을 들고 있다. 죽은 사람의 뼈를 가지런히 매장한 행위에서 죽음에 대한 인류의 남다른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서술이다. 이 유적은 또한 아프리카에서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나간 인류사의 한 부분을 증거하기도 한다. 기원전 10만여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 카프제 유적에서 사피엔스가 종 발생의 초기부터 종교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본문에서는 종교와 관련한 주제를 짧게 다루면서 각 주제의 포인트가 될 만한 내용을 따로 빼서 다루고 있다. 지식책의 특징이기도 한 이러한 부분은 아이들이 전체 내용을 훑어 읽을 때 모르면서도 스쳐 지나갈 단어들을 확인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 책에는 ‘샤머니즘’, ‘랍비’, ‘빅뱅’ 등의 단어를 주서술의 맥락에서 읽고 각 단어의 뜻을 별도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어휘 확장에 도움을 받을 수을 수 있는 주효한 부분이다.

 

종교의 종류에 대한 소개 이후엔 개인과 종교의 관계를 다룬다. ‘내 종교를 선택할 수 있나요?’, ‘종교를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나요?’, ‘신을 믿지 않아도 되나요?’와 같은 장은 특정 종교를 무심코 믿거나 종교 활동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관심을 두었으면 하는 부분이다. 내가 믿고 있는 종교가 나는 어떤 관계이고 나의 종교가 이 세계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종교에 대한 객관적인 눈을 가지지 못하는 일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인류역사에서 편협한 종교의 위험성에 대한 증거는 차고 넘치지 않는가.

 

책의 마지막 장은 특히 의미 깊었다. ‘우리에게 올바른 종교는 무엇인가요?’는 다양한 종교가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면서 공존할 수 있을까의 문제를 다룬다. 종교의 문제도 결국 인간 사이의 문제다. 인간에 선행하는 종교가 의미가 있을까. 인간다운 삶을 위한 믿음을 가지는 일이 종교라면 인간과 인간의 상호 공존을 도모하는 일이 종교의 역할이 아닐지.

 

우리는 모두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있어요. 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종교를 선택하지 않아도 좋아요.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의 종교와 신앙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거예요. 종교 또한 그 사람이 가진 가치관이기 때문이지요. 나의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그르다고 여긴다면 서로를 존중할 수 없을 거예요. 내가 중요한 만큼 타인도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해요. p.66

 

종교에 대한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인류가 다 알지 못하는 형이상학의 세계를 어린이들에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무슨 종교를 가져야 할까?’를 질문하는 아이가 있다면 『종교가 우리에게 필요할까요』를 먼저 권해준 후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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