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 교양 고전 Pick 1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임경민 옮김 / 지식여행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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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한 ‘햄릿형 인간’과 저돌적인 ‘돈키호테형 인간’ 유형을 최초로 제시한 고전

뒷표지 中


햄릿형 인간과 돈키호테형 인간에 대해 어디선가 한 번 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한쪽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느라 내내 결정을 유보하는 인간형, 다른 쪽은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행동하고 보는 인간형. ‘햄릿’과 ‘돈키호테’가 유명한 만큼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의 인간형 구분에 대한 이런 저런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정작 그 말의 출처를 확인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햄릿과 돈키호테로 인간유형을 구분한 사람은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다. 그는 1860년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궁핍한 작가‧학자 구제협회’의 대중 낭송회의 강연에서 이러한 인간형의 구분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대개 햄릿형 인간인가 또는 돈키호테형 인간인가에 대해 논하는 경우는 사람의 성향에 대해 이야기할 때일 것이다. 사고력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사람은 햄릿형으로 실천력이 돋보이는 경우는 돈키호테형으로 불린다. 누군가는 “사색적이고 우유부단한 인간”이고 다른 쪽은 “앞뒤 재지 않고 좌충우돌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투르게네프는 모든 사람이 “이 두 유형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해 있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느 한쪽에만 속하는 인물은 드물다고 말한다. 해제를 쓴 디타 뮐레로바(체코 흐라데츠 크랄로베 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말처럼 투르게네프는 “인간 본성의 기본원리”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들은 두 대척적인 경향의 극단적 표현에 불과하다. 삶은 이 두 극단의 어느 한쪽을 향해 움직이지만 그들 중 누구도 한쪽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검토하고 탐색하는 분석의 원칙이 《햄릿》에서 비극의 극단으로까지 뻗어 나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돈키호테》에서는 열정이 정반대 편에 있는 희극의 상황으로 몰려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순수한 희극이나 온전한 비극을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p.74


여기서 반전이 있었다. 투르게네프가 단지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를 빗대 인간 유형을 구분하는 목적만으로 이 글을 쓴 것이 아니었다. 투르게네프는 글에서 돈키호테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햄릿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돈키호테는 “신뢰,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 무언가에 대한 믿음”으로 전형화되는 인물이라고 평하면서 “자기희생의 완벽한 화신”으로 추앙하고 있다. 반대로 햄릿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인물”로 진단하면서 “그 자신에 관해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이 두가지 유형 중에 한 쪽에 속한다고 말하려면 한 쪽을 일방적으로 저평가해서는 안 될텐데 말이다. 왜 이렇게 기울어진 평가를 한 것일까. 디타 뮐레로바 교수의 해제에 답이 있었다.


투프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가 편찬된 시기는 러시아 사회 개혁의 시기였다. 이때는 “국가의 필요한 변화를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영웅” 즉 “새로운 인물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 당시 문학비평 분야에서 더 선호되던 햄릿 캐릭터 보다는 돈키호테에게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된 이유다. 사회적 허영심, 회의론, 이기주의를 내보이는 햄릿형 인간보다 “이상에 헌신하고 그 이상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돈키호테형 인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투르게네프의 소책자는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세르반테스의 소설에 대한 역사문학적 분석이 전혀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p.101


투르게네프는 당시의 사회 상황이 자신의 견해에 끼친 영향 아래서 자신의 사상과 이념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의 견해는 시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p.109


지식여행 출판사의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읽으면서 든 의문점이 있다. 책은 3개의 장과 해제 그리고 옮긴이의 말로 구성되어 있다. ‘2장 햄릿과 돈키호테’는 투프게네프가 쓴 글이다. ‘1장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같은 듯 다른 인생’과 ‘3장 햄릿과 돈키호테 안의 광기’는 투르게네프가 아닌 다른 저자의 글로 보인다(1장은 확실히, 3장은 아마도). 해제를 쓴 디타 뮐레로바의 인용 중 3장의 내용은 없다. 3장의 글은 두 캐릭터가 공히 ‘광기’를 표출하는 인물들임을 주장하고 있다.


돈키호테와 햄릿은 사내다운 전사이다. 전자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미친 사람이지만 후자는 확실히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어쨌든 두 인물은 미친 상태로 불의와의 전쟁에 나선다. 둘 다 똑같이 “무모하다.” p.84


2장의 주장과 반대되는 내용도 종종 나타난다. 예를 들어 2장의 햄릿은 “일반 백성들을 혐오”(p.52)하지만 3장에서는 “하층민들에게 신경을 쓰고 온정적”(p.89)이다. 또 2장에서는 오필리아에 대한 햄릿의 감정이 “냉소적이거나 과장되어”(p.58) 있다고 평한 반면 3장에서는 같은 인용구에 대해 “오필리아를 향한 햄릿의 사랑”의 “진실이 드러난”(p.95) 장면이라고 말하고 있다. ‘3장 햄릿과 돈키오테 안의 광기’의 저자는 누구일까. 투르게네프가 햄릿과 돈키호테의 유사성을 ‘광기’에서 찾고 싶어 쓴 글일까. 그렇다면 2장과 3장의 글에서 보이는 괴리의 이유는 무엇일까.


“한 시인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시인이 살아온 환경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 괴테 p.34


투르게네프가 인용한 괴테의 문장처럼 『햄릿』과 『돈키호테』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시대를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를 이해하기 위해선 작가가 살았던 19세기 러시아를 알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햄릿과 돈키호테를 문학의 테두리안에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학 작품으로서의 『햄릿』과 『돈키호테』를 알고자 하는 독자보다는 투르게네프가 문학을 통해 자신의 시대를 바라본 시각이 궁금한 독자에게 더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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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 기자의 가족의 발견 - 사회·문화 처음 만나는 사회 그림책 4
서보현 지음, 홍기한 그림 / 개암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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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뉴스가 발행됐습니다. 오늘의 주요 기사는 가족의 발견입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 초베 국립 공원의 끼리 기자가 코끼리 세상과는 다른 사람 가족들에 대해 취재한 특집판입니다. '집안일은 모두 함께!'와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와 같은 헤드라인의 기사도 보이고 '한 부모 가정 형섭이네'를 인터뷰한 기사도 있습니다. 암컷이 무리를 이끄는 모계사회에서 사는 코끼리가 본 2020년 한국의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요.


끼리 기자가 가장 먼저 살펴본 곳은 바로 인천 공항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여러 형태의 가족을 찾아 볼 수 있는 장소인데요. 책에서 만날 수 있는 가족들이 공항에 모두 모여 있습니다.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진 가족들이 여행을 가고 오는 와중에 공항에 모두 모였습니다. 표정도 가지가지 옷차림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족 이야기를 들려줄 모양입니다. 넓은 공항 라운지 그림을 살펴보면서 각 인물들이 풀어놓을 자기 가족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소개된 가족은 민이네입니다. 공항을 빠져나오고 있는데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민이, 현이 남매로 이뤄진 4인 가족입니다. 귀가길에 쌓여있는 집안일 걱정부터 하는 아빠를 보니 가사분담이 잘 되어 있는 화목한 가정입니다. 민이네 엄마, 아빠는 사회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에 가족 내에서 남녀의 역할 분담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해도해도 끝이 없고 매일 반복해야 하는 다양한 종류의 집안일은 가족 모두 나눠서 해야 한다고요. 책에는 친절하게 '집안일 하는 법'이 꼼꼼하게 소개돼 있습니다. 서투른 집안일이 있다면 책의 방법을 참고해도 좋을 것입니다.


지은이네는 할아버지의 칠순잔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친척들까지 가족이 많은데요. 지은이가 친척들을 부르는 호칭과 지은이의 고종사촌인 은석이가 쓰는 호칭이 서로 다릅니다. 친가와 외가의 차이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여성 지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짐에 따라 가족을 부르는 호칭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호칭, 퀴즈로 정리해보는 코너도 있는데요.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다문화 가정과 한 부모 가정과 함께 입양 가족, 딩크족, 비혼 가족, 동성 결혼 가족 등이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습니다. 비혼 가족을 가족의 형태에 포함시키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아야겠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하며 가족을 이룬 사람들에 대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결혼한 가족과 똑같은 지위나 권리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동성 결혼 가족도 가족의 형태를 이야기할 때 고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러한 가족 또한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여성인 엄마, 남성인 아빠, 자녀로 구성돼야 한다는 사회 통념과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집안 일 분담, 세대 갈등, 자녀 교육 문제, 대화 단절 및 부모 의존과 같은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까지 살펴본 끼리 기자는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갑니다. 끼리 기자는 어려움이 있다해도 가족의 근본 가치는 쉽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예측을 내놓았습니다. 『끼리 기자의 가족의 발견』 은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호칭,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 가족구성원의 역할까지 두루 살펴보는 가족 안내서입니다. 가족의 형태가 바뀌는 만큼 가족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그것이 어떤 형태든 가족의 소중함은 삶의 우선순위일 것입니다. 다양한 모습의 가족 형태를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다문화 가족, 한 부모 가족, 재혼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통해 가족의 호칭, 가족 간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 가족 구성원이 해야할 일 등 가족의 모든 것을 살펴봐요. 뒷 표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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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쓰레기를 다시 쓰는 법 자신만만 생활책
이영주 지음, 김규택 그림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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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검은 비닐봉지가 나타났다. 수상한 냄새에 날파리가 꼬인다. 이름하여 쓰봉이. 누나 댕댕이와 동생 동동이가 사는 집에서 나온 정체불평의 쓰레기 봉지다. 아무데나 버릴 수 없는 쓰레기,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사계절 출판사의 자신만만 생활책 시리즈 『재활용, 쓰레기를 다시 쓰는 법』 은 한데 뭉쳐 버리기 쉬운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아이들 눈높이에서 설명하는 책이다.


사실 재활용은 어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어떤 물건이 재활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 특히 같은 재료로 만든 물건이라도 상태에 따라 재활용될 수도 있고 태우는 쓰레기로 버려야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닐의 경우, 이물질이 묻거나 스티커의 끈끈이가 붙어 있을 때는 재활용할 수 없다고 한다. 또 같은 종이 박스라도 포장용 테이프가 붙어 있으면 재활용이 어렵다. 종이에 음식물 등이 묻었을 경우도 마찬가지고. 쓰레기 분리 수거가 시작된지 꽤 오래됐지만 명확한 기준을 다 알지 못한다.



자신만만 생활책 시리즈는 일상 생활의 유용한 정보를 흥미로운 그림과 이야기로 엮어서 보여주는 시리즈다. 『책상, 잘 쓰는 법』, 『집, 잘 가꾸는 법』에 이어 『재활용, 쓰레기를 다시 쓰는 법』까지 시리즈를 따라가다 보니 생활의 달인이 될 것만 같다. 뭐 더 알게 있나 싶은 책상 정리와 집 안팎 돌보기에서도 새로운 정보가 많았다. 쓰레기 문제에 대해서는 또 어떤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지 기대됐다.



우선 다양한 쓰레기를 분류하기 위해 '신비로운 마크'를 찾았다. 다시 쓸 수 있는 물건들에는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세 개의 화살표가 있다. 모아 놓고 보니 재활용할 수 있는 쓰레기의 종류가 많았다. 플라스틱HDPE, 플라스틱PS, 유리, 비닐류, 종이팩, 종이, 페트, 캔류/알루미늄, 캔류/철 등.


종이 쓰레기가 팩과 일반 종이로 분류되는 줄은 처음 알았다. 종이를 분리 수거할 때 주의해야할 점이 많았다. 셀로판테이프는 떼어내야 하고 음료가 묻은 종이 용기는 물로 헹구어 말려 배출해야 한다. 스프링으로 제본된 책은 쇠로된 스프링 부분을 잘라내야하고 고지서 봉투의 비닐도 뜯어내야 한다. 음식물이나 오물이 묻은 종이, 화학 약품 처리된 사진 등은 재활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종이 쓰레기 버리기부터 험난하다. 그간 별 생각없이 내놓았던 치킨 포장 상자부터 마음에 걸렸다. 종이 쓰레기 분리수거가 어렵다면 책에서 댕댕이와 동동이가 말하는 것처럼 "차라리 종이를 아껴" 써야겠다. 가장 가까운 종이 아끼는 방법은 1회용 종이컵 사용하지 않기와 손수건 쓰기다. 텀블러를 가동동이처럼 외출할 땐 보온병을 들고 다니고 화장지 대신 손수건을 챙길 것!


책에는 재활용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리수거 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과 함께 각각의 물건들이 어떻게 다시 자원으로 환원되는지를 알려준다. 쓰레기가 자원화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그림을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왜 분리수거를 세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종이 재생 과정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유리병 속에 쓰레기를 넣으면 왜 안되는지 등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재활용 쓰레기의 처리 과정을 아는 일은 단순한 의무감이 아닌 이해에서 나오는 당위성을 깨닫게 한다. 분리 수거해야한다니까 하는 게 아니라 분리해야 재활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책 첫머리에 나오는 것처럼 쓰레기는 땅, 바다, 우주로 보내 눈 앞에서 치운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대 사회는 분해되는데 그 어느 때보다 오래 걸리는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제대로된 재활용 방법을 궁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그 연장선에서 우리 생물들이 안전하기 위해서 말이다.


『재활용, 쓰레기를 다시 쓰는 법』의 쓰봉이는 속을 비우고 정말 버려야 하는 쓰레기만을 담은 채 매립지로 향했다. 댕댕이와 동동이가 썩지 않는 쓰레기를 꼼꼼히 골라냈기 때문에 잘 분해될 수 있다고 하면서. 쓰봉이가 남긴 부탁을 생활 속에서 유념한다면 쓰레기 처리와 환경 문제 해결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물건을 사기 전에 버리는 일 생각하기', '쓰레기를 줄이는 물건 사기'. 특별한 마크가 붙어 있는 물건을 사면 환경에 도움이 된다. 어떤 마크들인지 책에서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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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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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게 엄마를 부르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어떻게든 엄마의 주의를 끌려한다. 장난감들을 흩어놓고 침대를 흔들고 라디오를 만지작거린다. 그렇게 방이 시끄러워도 엄마가 알아채지 못하자 자기 방의 칠판에 쓴다.


죽지 않았어. 

p.42


티나는 1년 전 버스 사고로 아들 대니를 잃었다. 겨울 캠프에 갔던 아들은 두 명의 인솔자와 열네 명의 아이들이 사망한 사고의 희생자가 됐다.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커리어 덕분에 슬픔을 잊어가던 티나는 몇 주 전부터 꿈을 꾸기 시작한다. 아들의 꿈, 자신을 구해달라며 손을 내미는 아들의 꿈 말이다. 이미 죽어 장례를 치른 지 오래다. 티나는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하지만 의심에만 머무르기엔 아들의 목소리가 너무나 또렷하다. 혹시 아이가 정말 살아있는 건 아닐까. 어떻게 하면 확인할 수 있을까.




딘 쿤츠의 장편소설 『어둠의 눈』은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엄마와 아이의 죽음을 덮으려는 거대 권력의 이야기다. 근작 『위스퍼링 룸』을 읽으면서 액션 스릴러물의 대가를 만난 듯했다. 약자의 정의를 쫒아 거대 권력에 맞서는 여성영웅 서사가 인상적이었다. 스티븐 킹과 나란히 서스펜스 소설의 양대산맥으로 불린다는 말이 수긍이 갔다. 딘 쿤츠의 『어둠의 눈』은 40년 전에 씌인 소설이다. 1981년에 처음 출판됐고 1996년 초판을 수정한 개정판을 냈다. 초판 출간시의 세계는 냉전 중이었고 개정판이 나올 즈음엔 냉전은 종식돼 있었다. 소설 속에는 생물학 무기 개발 경쟁과 국가 권력에 희생되는 힘없는 개인의 이야기가 맞물려 있다.


거대 권력은 자신들만의 대의를 위해 진실을 숨긴다. 권력의 장벽 뒤에 약자의 희생은 가려진다. 정부가 어긴 규칙,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책에서 국가 권력 남용의 사례로 ‘웨이코 포위전(1993)’과 ‘루비 리지 사건(1992)’이 등장한다. 미국 사람들에겐 이 사건들이 국가 권력의 폭주를 대표하는 사건인 모양이다.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에서는 이 일들로 인해 국가의 보호를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자구책을 모색하는 가장이 등장한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상상은 실제 세계에서도 소설 속에서도 믿을 수 없지만 존재하는 현실이다.


“대니의 죽음에 뭔가 있군…… 스카우트 단원들이 모두 죽은 게 이상하긴 하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진실은 달라. 그 버스 사고…… 거짓말이지?” p.190


“… 이건 국가안보 사업이라고, 친구. 아주 큰 사업이란 말이야.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규칙을 어길 수도 있어. 결국 정부가 만든 거니까.” p.192


“… 웨이코 포위전을 생각해보세요. 아이들도 다 죽었습니다. 루비 리지 사건에서는 FBI가 쏜 총에 열네 살 짜리 소년이 죽었죠. …… 아무리 좋은 정부라 해도 덩치가 커지면 아주 못된 상어 같은 놈들이 어두운 물살에 숨어 휘젓고 다니게 마려이에요. 우리는 이런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티나.” p.257


귀신이 나타날 것 같은 심령물의 분위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전직 국가 기관 출신의 변호사가 등장하며 액션물이 되는가 싶다가 오컬트 소설로 마무리된다. 현실에 기초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독자로선 생뚱맞은 결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코로나19’의 등장을 40년 전에 예견해 세계적인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홍보에 책을 집어든 독자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코로나19를 예견했다기 보다는 냉전시대에 군비경쟁의 일환이었던 생물학 무기 개발이 소재로 등장할 뿐이다.


내겐 ‘코로나19’와 관련된 ‘우한’에 대한 부분보다 예상치 못한 재난을 만난 후 일상을 그리워하는 주인공 티나에 대한 묘사에 더 마음이 갔다. 우리 곁에도 사회적 타살이라 불릴만한 재난에 희생당한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희생자들의 남은 가족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티나에게 일어났던 ‘비논리적인 일’이, 진실을 담은 ‘비논리적인 일’이 우리에게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의 한가운데서 평범하게 식사를 즐기며 평범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오래오래 편안하고 평범한 삶을 기대할 만반의 이유를 갖고 싶었다. …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모르고 있다. 티나는 자신과 이들 사이에 절대로 메꿀 수 없는 엄청난 차이가 벌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p.265


"알아요. 하지만 이 세상은 비논리적인 일로 가득하죠. 그 비논리적인 일이 진실이고요. 이번 일 역시 그렇죠.“ p.282


티나는 주변을 맴도는 비현실적인 아들 대니의 존재를 통해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진실이 따로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해할 수는 없었어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끈질기게 쫓은 끝에 아들을 찾을 수 있었다. 숨겨졌던 진실과 함께. 우리 주변에도 우리가 알아채주길 원하는 어둠의 눈들이 존재한다. 비록 대니의 그것처럼 강렬하진 못하지만 현실이 외면하는 진실, 큰 힘에 짓눌려 희미해진 삶들이 있을 것이다. 외면당한 현실과 희미해진 삶에 담긴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있죠, 마치 …… 밤 자체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밤과 그림자와, 어둠의 눈이요.”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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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 서양철학사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니체와 러셀까지
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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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교과서로 사용되었’다기에 읽어볼 용기를 냈다. 의문이 생겼다. 824페이지의 책을, 그것도 읽기 어려워하는 철학사 분야를 왜 굳이 없는 용기와 시간을 끌어 모아가며 읽으려는 걸까. 벽돌 같은 책과 며칠을(사실은 약 2주간을) 씨름하며 깨달았다. 내겐 인간 존재가 어떻게 ‘생각’이란 것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음을. 과거 어느 순간 움튼 생각들의 씨앗이 어떻게 이어왔고 얼마나 다양한 사고의 방법을 모색해왔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또 지금의 내 생각은 사고의 지도 중 어느 지점쯤에 위치하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정리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거다. 그 한 번쯤의 시간이 『틸리 서양철학사』와 함께 왔다.


이 책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미국 각 대학의 철학과 역사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교과서로 사용되었고, 일반 독자들에게도 내용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인정받으며 꾸준히 사랑받았다. 책 날개 저자 소개 中


부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니체와 러셀까지’로 알 수 있듯이 『틸리 서양철학사』는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의 서양철학의 흐름을 다룬 책이다. 인간 사유 역사의 거의 대부분을 아우르고 있다. 철학사 분야 중에 가장 유명한 책이라면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러셀의 책은 분량이 약간 더 많고(1,056페이지), 다루는 시대가 『틸리 서양철학사』보다 조금 앞쪽에서 끝난다. 러셀은 자신의 전공이었던 분석철학까지를 다루고 틸리는 러셀 이후의 실증주의까지를 다룬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러셀은 철학사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자신의 논평을 상당부분 제시했다. 즉 “내가 보기에는”, “내 생각에는”과 같은 문장이 많다. 반면 프랭크 틸리의 책은 철학자들의 주장을 요약, 정리해 서술해 제시한다. 철학사에 대한 개략적인 지식과 맥락을 가지고 있다면 러셀의 책을 보면서 자신의 의견과 견주어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객관적으로 서술된 틸리의 책을 먼저 보면서 사상사의 지도를 그린 후 러셀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주관적인 견해가 크게 부각된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가지기 위해선 내 생각의 바탕을 먼저 준비해야겠기 때문이다.




저자는 철학사가 ‘철학 이론의 단순한 연대기적 나열과 설명이 아니라’고 말한다. 각각의 이론들간의 상호 관계, 그 철학이 유래한 시대적 상황과 함께 이론을 정립한 사상가 개인에 대한 연구의 종합이라고 설명한다. 철학 이론을 알기 위해선 시대와 사회와 사람을 포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많은 학문 분야에 적용되는 말이겠지만 특히 생각의 역사를 연구하는 ‘철학사’에선 각별히 주의해야할 전제이다.


철학사는 각각의 세계관을 그 고유한 상황에 놓고, 그것을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지적‧정치적‧도덕적‧사회적‧종교적 요소와 연결지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인간의 사색의 역사에 나타나는 발전의 궤적을 추적하고, 철학이라고 불리는 정신적 자세가 어떻게 등장하며, 제공된 상이한 문제와 해결책이 어떻게 새로운 물음과 대답을 자극하는지를 보여주며, 각 단계에서 어떤 진보가 이루어졌는지를 규정해야 한다. p.17


틸리는 철학사를 서술함에 있어 ‘저자가 자신의 사상을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견지한다. 철학사 자체가 ‘자신의 최고 비판자’이므로 역사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오류와 모순’이 드러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역사가는 자신의 비판을 자제하고 ‘직전과 직후의 체계와의 비교’와 ‘그 선례와 결과’ 그리고 ‘그것이 펼치는 발전상’을 그 철학의 ‘목표와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저자의 이러한 철학사 저술의 기준이 잘 구현되어 있다. 각 철학 사상을 소개할 때마다 해당 철학의 중요성이 무엇인지, 그 철학의 주요한 물음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이어 철학자의 사상을 요약 정리한 후 그 철학의 가치와 역사적 의의 등을 서술하고 있다. 각 철학 사조의 내용만 읽어서는 알기 어려운 전후 철학 사조와 주고받은 영향 관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에 대한 평가와 소피스트의 의의를 예로 들어보자. 탈레스가 철학사에서 중요한 이유를 한 줄로 요약하면서 단락을 시작한다. 또 궤변론자라는 소피스트의 별명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명쾌하게 제시한 후 그들이 사상사에 미친 영향을 서술한다.


탈레스의 중요성은 철학적 물음을 정면으로 제기하고 신화적 존재를 언급하지 않으면서 그 물음에 답했다는 데 있다. p.42


몇몇 후기 소피스트들의 허무주의적 가르침뿐만 아니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적대적인 비판 때문에, 사상사에서 소피스트 운동의 중요성은 오랫동안 잘못 판단되었다. 헤겔과 그로트(Grote)가 이 사상가들에 대하여 공정한 평가를 내리려고 시도한 이후에야, 그들에 대한 올바른 자리매김이 이루어졌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선한 것도 있었고 악한 것도 있었다. p.89


탈레스가 신화에서 자연의 세계로 생각의 눈을 돌렸고 소크라테스는 인간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중세에 이르러 사고의 중심은 다시 신 중심으로 돌아갔고 르네상스에 인본주의가 도래했다. 근대의 철학자들은 비록 신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사고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켰다. 그 모든 생각의 갈래들을 정리한 책이 놀랍다. 글자만 읽기에도 벅차다.


저자가 펼쳐놓은 사상의 가닥들을 더듬더듬 따라가기도 힘들었다. 따라갔다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앞에 서술한 대목을 후대 학자가 언급하면 또다시 생소했다. 철학자 아도르노가 말했다. “쉽게 요약될 수 있다면 철학이 아니다.”라고. 철학 읽기의 어려움에 대한 위로의 말이다. 수많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간략하게 요약한 책만 읽어서는 그 생각들을 다 따라잡기 어렵다. 배경 지식이 될 책들을 어느 정도 읽은 그리스 로마 시기의 철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반면 중세와 근대 철학에 대한 독서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보니 어렵기 그지없었다. 현대 철학은 말 할 것도 없고.


『틸리 서양철학사』는 1998년 『표준서양철학사』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던 책의 2판이다. 과감하게 표준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 서양철학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 책으로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철학사라는 윤곽을 대략 맛보았다. 이후의 보완 독서가 얼마나 충실한가에 따라 철학사는 내게 선명하게 또는 흐릿하게 남을 것이다. 숙제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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