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쉬운 패권 쟁탈의 세계사 - 육지, 바다, 하늘을 지배한 힘의 연대기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박연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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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의 공부가 아쉬울 때가 있다. 나의 경우엔 세계가를 접할 때마다 그런 마음이 든다. 고교시절 세계사와 지리가 선택과목이었다. 지리를 선택한 나는 우리 반이 세계사 수업을 할 때 지리 수업을 하는 반으로 옮겨가곤 했었다. 입시에 맞춰 특정 과목의 지식이 완전히 백지 상태로 남은 것이다. 지리에 열중하지 않았음에도 기본적인 지식의 밑그림이 머리에 들어와 있는 반면 세계사의 맥락에는 깜깜이다. 세계를 다룬 책을 접할 때면 시대 배경을 몰라 문맥을 못따라가고 매번 검색하느라 집중력을 놓치곤 한다. 세계사에 대한 체계적인 수업 과정을 흘려듣기라도 했다면 이렇게 갑갑하진 않지 싶을 때마다 그 시절의 교육과정에 눈을 흘기게 된다.


세계사를 간결하게 서술한 책을 몇 권 읽으면서 공부 부족을 메꿔보려 하고 있다. 지식 흡수력이 학생때만은 못하더라도 여러 권 읽다보면 대략의 흐름은 머리에 들어오겠지 싶어서다. 세세한 지역사 보다는 세계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책을 고르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패권 쟁탈의 세계사』(이하 『패권 쟁탈의 세계사』)는 이름에서 끌리는 책이다. 그냥 쉬운 것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쉽다니 말이다. 읽다보니 '세상에서 가장 쉬운'이란 말은 누구를 기준으로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겸손한 마음으로 이 정도의 난이도가 세계사의 '세계'에서는 '가장 쉬운' 단계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옮긴이 후기에서 말한 것처럼 "최근에는 특정한 소재를 중심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유형"의 역사가 유행인 모양이다. 연대순으로 역사를 서술한 통사보다는 하나의 소재를 중심으로 한 세계사가 눈에 많이 띈다. 예를 들면 전쟁, 여성, 식물을 소재로 서술하거나 전염병, 약, 음식, 물건, 조세제도 등과 같은 것들이 세계사를 어떻게 바꿨는지를 알려주는 식이다. 이 책의 저자인 미야자키 마사카쓰도 『돈의 흐름으로 보는 세계사』, 『공간의 세계사』, 『바다의 세계사』, 『술의 세계사』 등을 저술했다.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어느 하나로 특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대를 넓게 훑고 지나가는 통사를 읽으면서 생기는 구멍들을 작은 역사적 요소들에 집중한 책들로 메울 수 있다. 굵직한 통사의 골격에 미시사로 살을 붙여 나가는 격이다.


『패권 쟁탈의 세계사』은 '패권'의 이동에 집중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패권의 정의부터 숙고할 필요가 있다.


패권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해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나라의 지위라고 정의하지만, 그뿐 아니라 스스로 지배하는 구조의 체제를 형성·유지·주도할 책임을 가진 나라라는 의미도 더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육지, 바다, 하늘로 세계가 변화하는 가운데 각 세계의 형성을 주도하고 구조를 유지하고 질서의 중심축에 위치해 있는 나라가 패권 세력이다p.26


저자의 말에 따르면 패권은 그저 군사력에 의한 정복으로만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 힘으로 지배권을 얻었다면 그 이후에는 지배력이 미치는 지역을 억합, 착취한 할 것이 아니라 그 체제가 잘 유지되도록 주도 해야 한다. 저자는 패권국이라면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고 기여하는 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패권을 장악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다수에게 지지를 받고 전쟁을 막고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책임을 다하는 역할과 같다. 자국의 세력 강화, 또는 도전하는 자세만으로 패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239


책은 몽골 제국, 영 제국, 미국을 세계사 속에 패권을 잡은 나라로 지목하고 있다. 각각 육지의 패권, 바다의 패권, 하늘의 패권을 상징한다. 각 제국들이 힘을 모으던 시기에 비슷한 방향으로 갔던 나라들은 왜 패권을 잡지 못하고 이들 세 나라가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일까. 패권을 잡은 국가들이 스스로 만든 지배 체제가 잘 유지되도록 운영한 것이 과연 "인류에 기여"하기위해서 였을까. 자신들 국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선 피지배민을 말살에 가깝게 착취하기 보다는 살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저간의 의미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 패권국의 "인류에 기여"일까. 질문이 만발하는 대목이었다.


역사 상 가장 오래 패권을 유지했던 육지의 패권은 지금의 세계에도 그 영향이 남아있다. 저자에 따르면 건조지대에서 습윤지대로 영역을 넓혀간 육지 패권을 만들었던 지도자의 성향이 현재의 각국 지도자에게서도 보인다. 터키, 소련, 중국, 러시아의 지도자들은 과연 그러한가. 이러한 일반화의 근거가 제시되지 않아 아쉽다. 앞으로 세계 정세 뉴스를 살피면 확인해 볼 수 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건조지대에서는 권력이 군사력과 결합하기 때문에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체면이 무엇보다 중시되는 경향이 강하다.…


터키의 케말 아타튀르크,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 등 체면에 연연하는 지도자는 일일이 열거할 틈이 없다. 강대한 군사 지도자가 계속 지배해온 건조지대의 역사적 특징이다. pp.100-101


몽골의 쿠빌라이칸은 유럽과 동아시아를 육지와 해상으로 잇는 '원환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패권을 유지했다. 육지의 시대에서 바다의 시대로 전환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다 전체를 운항하는 증기선의 정기 항로가 개척되면서부터다. 미국은 공군력을 바탕으로 하늘의 패권을 점령하고 인터넷을 발판 삼아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 저자는 각 영역별 패권이 형성된 과정을 순서대로 서술한다. 책은 "유라시아의 오랜 '육지'의 역사, 대항해시대 이후 지구 표면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대양이 육지를 통합한 '바다'의 역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하늘(항공망과 인터넷)'이 세계를 연결하는 역사"를 담고 있다.


지난 5,000년 동안 세계사의 주요 무대는 육지→바다→하늘로 변화해왔다. 유라시아에서 오래 지속된 '육지'의 역사, 대양(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이 다섯 대륙을 연결한 '바다'의 역사, 항공망이 연결하는 '하늘'과 인터넷의 가상공간으로 이루어진 '하늘'의 역사 순으로 크게 바뀌어온 것이다. p.241


저자는 현재의 미국이 가진 패권에 강력한 도전자로 중국을 지목한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전략을 제시한다. 쿠빌라이 칸의 아시아 원환 네트워크에서 착안한 이 전략에 유럽을 포함시켜 육지 세계의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변화하기 어려운 구조개혁은 그대로 둔 채 정보통신 기술을 육성시켜 하늘의 패권까지 장악하려 한다는 말이다. 일본인 저자가 말하는 중국의 속셈, 우리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지적이다.


"세계사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매우 간단한 방법"을 제시하려 한 저자의 목적은 세계사 구조의 단순화로 어느 정도 성취됐다. '육지, 바다, 하늘'이라는 세 가지를 기본 틀로 나머지 역사 지식을 채워 넣으면 된다. 단 기본 틀이 아주 단순한 만큼 보충할 지식이 많다는 건 독자에게 남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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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출간 20주년 기념판) - 아동용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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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주인공이 죽었다. 암탉 잎싹은 족제비에게 순순히 자기 목을 내밀었다.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엔딩이다. 권선징악 또는 '그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결말이 아동물에서 볼 수 있는 결말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마지막은 익숙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의 그것과는 지구와 안드로메다 사이만큼 거리가 멀었다.


황선미 작가의 책 『마당을 나온 암탉』을 알게 된 건 영화 제작 소식을 통해서였다. 영화 관련 회사에서 일했던 터라 제작 중 혹은 개봉예정인 영화 라인업을 조금 일찍 알 수 있었다. 주요 제작사에서 만드는 영화의 개봉일정은 특히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2000년대 중반쯤 한국영화제작사 명필름의 라인업에 『마당을 나온 암탉』이란 영화가 등장했다. 닭이 주인공인 영화? 한국영화계에서 나름 의미있는 작품들을 제작해 온 영화사에서 만들기로 한 애니메이션이 궁금했다. 원작이 어떻길래 명필름에서 제작을 결정했을까. 일반 영화 제작과 달리 애니메이션은 제작 기간이 무척 오래 걸렸다. 제작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2005년 경, 제작에 돌입했다는 뉴스가 2006년에 나왔다. 그 후에는 개봉 라인업에 제목을 올린채 몇 년이 지나갔다. 제작 중에 엎어진 걸까? 라인업을 정리할 때마다 잠깐씩 궁금했다. 그러면서 또 몇 년이 지나고 그 사이 나는 영화 쪽 일을 그만뒀다.


잊고 있던 영화가 TV에서 나오고 있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만난 영화는 마지막 장면만 남아있었다. 체념한 표정의 암탉이 순순히 족제비에게 잡히고 있었다. 사냥꾼 족제비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이들이 보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죽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놀라웠다. 게다가 이른바 '악'으로 불릴만한 나쁜 놈의 표정은 이 작품이 기존의 아동물과 다른 지점에 있다는 걸 깨닫게 했다. 경험적으로 원작이 있는 영화는 영화보다 원작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경우는 선뜻 책을 찾아 읽기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결말을 미리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잎싹이가 아무리 알을 품는 꿈을 이룬다해도 족제비에게 목을 내놓는 순간을 다시 만나고 싶진 않았다. 또 시간이 흘러갔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출간된지 20주년이 됐다. 그동안 책은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됐고 영화로나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 스무 살 성인이 된 책은 양장본 기념판과 새로운 그림을 담은 특별판으로 거듭났다. 특별판의 그림은 윤예지 작가가 맡았다. 기존판의 김환영 작가의 그림이 좀 더 사실적이고 책의 내용을 잘 반영하는 것이었다면 윤예지 작가의 그림은 그래픽적 요소가 강하다. 성인 독자를 타겟으로 한 그림이라고 한다. 특별판 전체의 그림을 다 보진 못했지만 간결한 그림체에 해석의 요소가 더 많이 담겨있을 것 같다.


김환영 작가는 20주년 기념판에서 어린이책 그림이 화가의 독후감이라고 썼다. 그의 말대로라면 김환영 작가의 독후감이 어느 누구의 것보다 진지한 것일 게다. 문장을 읽으면서 생각한 양계장이 작가의 그림 덕에 한층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책에 맞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양계장을 직접 방문 취재했거나 사진으로라도 연구했음이 틀림없다. 작가의 그림에는 상상으로만 그릴 수 없는 사실성이 담겨 있다. 잎싹이 알을 낳던 양계장 첫 번째 풍경이 대표적이다. 층층이 계단식으로 쌓여있는 닭장, 천장에 늘어진 전선에 매달린 노란 전구, 바닥에 쌓여있는 달걀판, 깨져 뒹구는 달걀 껍데기, 반쯤 퍼낸 사료가 담겨진 외바퀴 수레, 각각의 표정으로 사료먹기에 정신이 없는 닭들. 이 그림 하나로 저 속에 갖힌 잎싹이 어떤 상황인지 느낄 수 있었고 아무렇지 않게 깨져 흩어진 알껍질에 잎싹이 슬픔을 알 수 있었다. 김환영 작가는 이 책을 처음으로 읽은 사람 중 가장 깊게 읽은 독자임에 틀림없다. 특별판에서는 이와는 결이 다른 또 다른 화가의 진지한 독후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책 그림은, 최초 독자의 한 사람인 한 화가가 솔직하게 써 내려간 독후감이기도 하거든요. 그림이 조금 서툴더라도 글이 품고 있는 철학과 세계관을 지지하고 몰입할 때 비로소 그림은 살아서 움직입니다. p.8


황선미 작가가 책에 담은 생각은 책 출간 후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안의 다양성이 감췄던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름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전환이 절실한 이유다. 잎싹은 자신과 다른 종인 야생 청둥오리의 알을 품는다. 알에서 나온 새끼가 닭이 아닌 오리임을 알고도 자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사랑을 다해 돌본다. 자신이 알을 품는 동안 주변을 지키고 깨어난 새끼와 잎싹이 저수지로 이동할 시간을 벌기 위해 몸을 바친 나그네 오리에 대한 의리도 있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닭장을 나온 잎싹이 품고 있는 소망이었다.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 잎싹은 자신의 소망에 따라 태어난 새끼를 사랑할 뿐이다. 그것이 오리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존재를 완전히 납득하기는 어렵다는 것, 알고 나서 품으려 할 때는 때가 늦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 우선 이해하고 포용하려 노력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는 다르게 생겨서 서로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는 있어. p.87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p.163


잎싹과 족제비는 악연일까. 병든 닭이 되어 닭장을 나왔을 때부터 잎싹은 족제비에게 쫓겼다. 알을 품는 동안에도 초록머리가 자라는 동안에도 족제비는 잎싹 모자의 숨통을 조인다. 혹독한 겨울 끝 어느 은신처에서 잎싹은 눈도 못뜬 핏덩이 족제비 새끼를 발견한다. 무력한 새끼들을 보면서 잎싹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낳았던 알을 떠올린다. 미쳐 껍데기가 여물지도 못한 채 버려져서 흘러내린 알. 잎싹은 새끼를 볼모로 족제비를 위협한다. 나그네 오리를 죽였고 잎싹과 초록오리를 사냥하려했던 족제비는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신은 단지 배가 고팠기 때문에 굶지않으려고 사냥했을 뿐이라고. 이것이 자연의 순리라면 잎싹과 족제비는 관계는 운명이다. 잎싹은 자신이 먹이 사슬의 연쇄 고리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리고 자신의 알처럼 다치기 쉬운 족제비 새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자연의 순리'는 예외가 없으며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어쩌면 잔혹한 이런 모습을 아이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한 탓인지 외국에서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편집해 상영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아름답고 행복한 결말만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삶이 언제나 해피앤딩은 아니라는 사실이 숨겨야 하는 일일까. 『마당을 나온 암탉』의 가치는 자연의 순리를 그대로 보여준 데 있다. 닭은 족제비를 이길 수 없고 배부른 족제비가 재미로 닭을 사냥하지는 않는다.


잎싹에게는 알을 품는 것 외에 또 다른 소망이 있었다. 너무 뒤늦게 깨달은 소망, 초록머리가 떠나고 나서 깨달은 소망은 '나는 것'이었다. 잎싹이 어미로서의 소망 대신 날개 달린 존재로서의 소망을 먼저 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자식을 낳고 사랑하고 돌보는 삶이 아닌 자기만의 자아 실현을 목표로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에서는 이 소망이 죽는 순간 이루어지는 것으로 표현된다. 잎싹은 모든 소망을 다 이룬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아쉬웠다. '알을 품는 소망'보다 '몸이 원하는 날고 싶은 소망'을 먼저 알아차렸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다른 이야기가 됐겠지만, 잎싹의 삶을 생각할 때마다 '그랬다면…'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 미처 몰랐어! 날고 싶은 것, 그건 또 다른 소망이었구나. 소망보다 더 간절하게 몸이 원하는 거였어. p.203


사랑을 다해 키운 초록머리가 자기 인생을 찾아 떠나고 홀로 남은 잎싹은 기억을 붙잡고 산다. 그녀는 많은 기억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세상은 순리대로 돌아가고 주위의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렇기때문에 현재를 즐기고 현재를 집중해야 한다. 잎싹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현재를 치열하게 느끼며 산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것들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앞싹은 모든 것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야만 했다. 간직할 것이라고는 기억밖에 없으니까. p.171


책을 알게 된 후 읽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애초 우려했던 대로 눈물 천지가 된 독서였다. 잎싹과 초록머리가 헤어지는 장면에서, 잎싹의 목숨이 끊어지는 장면에서 순식간에 눈앞이 뿌예졌다. 눈물과 함께 솟아난 감정은 복잡했다. 슬프기도 했고 화도 났으며 부럽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느끼게 될 감정의 폭은 얼마나 넓을까. 이렇게 다양한 의미와 감동을 담은 책을 읽은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될까. 아이들에게만 추천하기엔 아까운 책, 『마당을 나온 암탉』은 나에게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같은 책이다. 안다고 생각해서 더 알아보려 하지 않은 담고 있는 가치가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큰 친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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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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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는 경부선과 경인선이 만나는 지점이고물자와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경성의 길목이었다. p.107


황석영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에 눈길을 두게 만든 한 문장이다. 소설이 배경이 된 '영등포', 그 장소에 이끌려 책을 들었다. 이젠 떠났지만 내가 나고 자란 곳이다. 지금 시대는 고향의 의미가 크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따라 혹은 거주 조건에 따라 수시로 이주하는 삶을 산다. 그럼에도 40년 가까이 산 동네 이름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건 유년기의 기억이 흩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게다. 공기 중에 항상 희미하게나마 기차 철거덩 거리는 소리가 들리던 동네, 오갈데 없는 노숙자들이 곳곳에 누워있는 풍경이 일상인 역주변, 80년대까지 다다미 깔린 2층이 있는 적산가옥이 있던, 홍수가 지면 침수를 걱정해야 하는 동네, 기억 속 영등포의 과거가 책에 들어 있었다. 함께 자란 오랜 친구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어린 내가 등장하는 오래된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책은 발전소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하는 이진오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아파트 십육층 높이, 사십 오 미터 상공에서 위장 파산 후 해외로 공장을 옮긴 사측에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자리를 잡았다. 폭 일미터 남짓에 열여섯걸음 쯤 되는 공장 굴뚝 테두리 위의 생활이다. 이진오는 아무도 없는 적막한 하늘 위에서 꿈인듯 환상인듯 자신을 찾아온 친구와 가족들을 만난다. 그는 "지상에서의 시간을 벗어났고 굴뚝의 일상은 이미 현실이 아니게 되었다." 강화 출신의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이 일거리를 찾아 오면서 영등포 생활이 시작된다. 마포 나루에서 처음 기차를 본 이백만은 달리는 무쇠덩어리에 매료되고 유달리 좋았던 손재주 덕어 영등포 철도 공작창에 일자리를 잡는다.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삼대의 시작이다.


'영등포'라는 장소는 이야기의 배경으로 또는 주요 사전의 소재로 소설 속에 녹아있다. 철도와 인연을 맺은 이백만은 가족을 이루고 아들, 손자, 증손자에 이르도록 영등포에 삶의 터를 두었다. 영등포 역을 중심으로 한 주변 일대가 옛 지명으로 등장한다. 영등포 시장, 문래동 방향에 있던 방직공장, 당산, 옹기말 그리고 나의 옛집이 있던 고추말까지. 영등포는 '진등포'라고 불릴 정도로 진 땅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여름 장마가 오래가면 마당 하수도를 근심스럽게 바라보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영등포의 침수는 이백만 가족에게도 큰 사건이었다. 이백만이 일하러 나간 사이 삽시간에 집과 동네가 물에 잠긴다. 다행히 이백만의 아내 주안댁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한다. 영등포가 도시로서 거친 역사가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영등포를 지나는 철도가 놓인 때는 일제 강점기였다. 경부선, 경인선 등의 철로가 지나가는 자리의 땅은 강제로 몰수되고 철도건설 노역에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됐다. 일제 수탈을 위한 기반 시설 공사에 조선 인민이 희생되었다. 때문에 의병들의 공격 목표가 됐었다고 했다. 조선인의 피땀으로 지은 시설물이 조선 사람들을 황폐하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 결국 조선인이 파괴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이 된 것이다.


철도가 놓이면서 강제로 땅을 빼앗기고, 부역에 끌려나와 고생하고, 가족이나 친척이 살해당한 조선 백성들은 전국 곳곳에서 열차 운행과 철도공사를 끈질기게 방해하기 시작했다. 이맘때에 국권을 빼앗기고 나라가 망하여 일어나게 된 의병들도 철도를 주요 공격의 목표로 삼곤 했다. p.79


그러니 어찌 철도가 조선 사람의 피와 눈물로 이루어지지 않았겠는가. p.83


책은 이진오의 고공 농성 과정 사이 사이에 이백만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을 엮어 넣고 있다. 증조부모인 이백만과 주안댁, 조부모 이일철과 신금이, 아버지 이지산과 윤복례의 삶이 신화처럼 펼쳐진다. 특히 주안댁과 신금이 이야기가 특별했다. 인천 바닷가 출신의 주안댁은 홍수로 고립된 남편을 땟목을 만들어 구하고 사람이 깔린 짐마차를 거뜬히 들어올릴 정도로 장사다. 무뚝뚝하면서도 생활력 강한 주안댁은 어려웠던 시절 어떻게든 가족의 삶을 꾸려나갔던 어머니들의 모습으로 느껴졌다.


이일철의 아내 신금이는 당시 보통학교까지 나온 엘리트 여성이었다. 방직공장에 취직했다가 공산주의 운동을 하는 이이철을 통해 그의 형 이일철과 맺어졌다. 그런데 신금이는 좀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신기라고 할 법한 눈이 있었다. 그녀는 사람의 미래 또는 마음을 보는 능력이 있었다. 미래에 시동생이 될 이이철을 만났을 때 그의 몸에서 감옥의 창살이 드리울 줄무늬를 봤다. 가제본에서 다 읽지 못한 그녀의 삶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철도 직원이었던 이일철은 월북한 사람으로 나온다. 월북하는 아버지를 따라 나섰던 아들 이지산은 반공포로가 되었고 한 쪽 다리를 잃는다. 이들이 그렇게 된 이유 또한 책의 후반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윗 세대는 일제의 수탈에 맞섰고 그 자손인 현재의 이진오는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항해 노동운동을 한다. 이진오의 어머니 윤복례는 농성현장을 찾아 아들을 격려한다. 아들이 위험을 무릎쓰고 하고 있는 행동, 노동 운동의 의미를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꼿꼿한 말을 굴뚝 꼭대기에 위태롭게 선 아들에게 할 수 있기까지는 대체 어떤 세월이 있었던 걸까. 월북한 시아버지 때문에 겪었을 서슬퍼런 공포, 불편한 몸이 된 남편을 대신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을 고난의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아들에게 이런 당당한 말을 건넬 수 있다니.


"노동 투쟁은 원래가 이씨네 피에 들어 있다. 너 혼자 호강하며 밥 먹자는 게 아니구, 노동자 모두 사람답게 살아보자 그거 아니겠냐?"

"한두달 새 내려올 생각 아예 마라. 쩌어 예전부터 지금까정 죽은 사람이 숱하게 쌨다."

그녀가 하는 말은 큰 할아버지 이백만과 할아버지 이일철과 아버지 이지산이 늘 입에 달고 쓰던 말이었다. 그 말은 이진오의 어머니 윤복례도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동의했고 자신의 생각이기도 한 말이었다. pp.155-156


고공 농성을 시작하던 때 공장 굴뚝에 올라간 이진오가 현수막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난간에 붙잡아 맨 현수막을 안쪽에서 바라보는 이진오의 눈에 글자들이 거꾸로 보인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이진오의 농성이 그리고 조금 더 낫게 살기 위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노동자들의 노력이 모두 거꾸로 된 글씨처럼 허망해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하장보동노용고 지저각매할분'이라는 글씨는 농성의 이유를 밝히는 제목답게 크게, '!직복원전 계승조노'라는 글씨는 소제목처럼 그 아래 작게 썼다. 이진오는 그것을 올려다볼 사람들의 세상 반대쪽에서 거꾸로 보이는 글씨를 읽을 수밖에 없었다. p.12


가제본만 읽은 터라 책의 후반 내용은 알지 못한다. 책의 나머지 반에는 이일철이 월북하게 되는 사연, 이이철이 옥사하게 된 이유, 이지산과 윤옥례가 맺어지게 된 과정이 담겨 있으리라. 작가는 이진오의 고공농성의 끝도 알려줄까. 『철도원 삼대』가 풀어놓는 영등포와 철도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 우리의 삶과도 이어질 그 마지막이 얼마간 희망적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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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오페라
캐서린 M. 발렌티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작지만 물이 많으며 쉽게 흥분하는 '지구'라는 이름의 행성"의 한 구석, 잉들랜드. 숙취로 쓰러져있던 물이 가도 한참 간 글램록 스타 데니시 얄로(예명: 데시벨 존스) 앞에 물고기플라멩고가 나타난다. 오묘한 색깔의 물고기 눈과 플라멩고를 닮은 새다리로 서있는 그는 지구의 마지막을 경고한다. 자신은 우주 어딘가 멀리서 왔으며 대니가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에서 인류 문명의 지각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외계의 구성원들이 지구 자원을 소멸시키겠다고 말이다.


뭔가 웃기는 코메디의 시작같다. 캐서린 M. 발렌티의 책 『스페이스 오페라』의 설정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연주해야 하는, 범우주적 대향연!"이라거나 "짜릿하고 기발한 상상이 폭발하는 포복절도 코믹 SF"와 같은 홍보 문구의 의미를 깨닫는데는 채 2페이지도 필요하지 않았다. 책은 기상천외한 상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상상 불가한 인물(혹은 외계생물)이 등장해 얼핏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당연하다는 듯 풀어나간다. 영화에서도 자주 보기 힘든 상상의 외계인들을 떠올려보기 위해서, 작가가 설명하는 장면이 어떤 것인지를 그리기 위해서 집중력이 필요했다. 즐거운 상상이 가득한 책이 이렇게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것임을 처음 깨달았다.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가졌다면 남들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하는 일들이 종종 머리 속에 떠오르는 독자라면 쉽게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난 그런 독자가 아니었다. 지구인에게 일상적인 지구환경 이외의 것들을 책 읽는 내내 상상하는 것만으로 현기증이 일었다. 책은 그야말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보다 「루니툰」"의 세계였다.


데시벨 존스가 울며 겨자먹기로 출전해야 하는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는 전 우주의 존재들의 생존 가능성을 검증하는 장이다. 한 번의 퍼포먼스로 그 행성에게 주어지는 우주 자원의 분배와 생존 여부를 결정한다. 당연히 무대에 오르는 팀은 그 행성을 대표할 만한 실력을 갖춘 아티스트여야 하겠다. 그런데 당락을 결정하는 심사위원이 외계 생명들이다. 그들의 심미안은 전우주적이다. 일개 행성 거주자들의 오감에 좋은 음악이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의 심사위원 귀에도 좋으리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가요제 개최 위원회는 지구를 특별히 배려하는 차원에서 우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음악인의 목록을 보냈다. 그런데 여기에 또 지독한 함정이 있었으니, 데시벨 존스의 밴드를 제외한 나머지 가수들은 이미 고인이었던 것. 인기있었던 때가 언제인기 가물거리는 데시벨 존스에게 준비된 무대는 전 인류의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가요제의 평가 기준은 무엇인가. 데시벨 존스는 어떤 산을 넘어야 인류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애초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가 만들어진 계기는 지적 생명체와 '고기'를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오로지 소비하고, 호흡하고, 배설하고, 소란을 일으키고, 번식하고" "지독하고 본능적인 혐오감"만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고기'. '고기'들은 우주선을 만들 정도의 기술은 있지만 "초월성도 없고 영혼도 없"었다. 인류가 '고기'로 분류되지 않기 위해서는 데시벨 존스가 "소름키티고, 근사하며, 찬란하고, 흠잡을 데 없이 지성체다운" 무대를 보여줘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인류는 정말 '고기'가 아닌 '지성체'일까. 과연 인류는 전 은하계의 모든 행성이 하나의 문명으로 합쳐지려는 노력에 상응할만한 평화와 화합의 존재일까.


그대들의 작은 행성에 사는 이들은 이와 같은 리듬을 멈추게 하지 않을 만큼 친절한가? 노래꾼들과 이야기꾼들과 비단옷을 입는 사람들을 짓밟지 않을 만큼 친절한가? 그런 짓을 하는 것들은 괴물이라서 그래. 예술을 말살하고, 책을 태우고, 음악을 금지하고, 귀가 있는 존재들에게 "그 시끄러운 소리 좀 꺼 버리라."고 소리치고, 하늘에 대고 진실을 노래할 수 있을 만큼 자신만의 세계에서 눈을 돌려 바깥세상까지 또렷하게 볼 줄도 모르는 것들은 다 괴물이야. 그대들이 사는 곳은 언제 어디서나 음악이 울려 퍼질 만큼 좋은 세상인가?

그대들에게는 영혼이 있는가? p.162


'반짝이펑크족 글램록 메시아'이자 '천상의 글램록 쓰레기 색마'인 데시벨 존스가 인류 대표 아트스트로 선발된데엔 음악성 외의 이유가 있었다. 우주의 화합을 목적으로 한 가요제에서 노래를 부를 가수라면 '화합'과 '공존'의 의미 정도는 알아야 하겠다. 데시벨 존스는 자신의 밴드 앱솔루트 제로스가 겪은 부침에서 '차별'과 '배제'의 고통을 배웠다. 밴드 멤버는 파키스탄 계 나이지리아인과 웨일스계 스웨덴인의 자손인 데스와 일본인과 프랑스인 혼혈인 캐나다계 유대인이었던 미라, 터키 난민 출신 오르트였다. 밴드는 하루 아침에 인기의 정점에 올랐다. 그리고 또 하루 아침에 몰락했다. 불법체류자 강제 추방령에 동요하던 미라가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데스와 오르트는 미라의 죽음 이후 하락의 세월을 살았다. 영국 땅에 살면서 최고의 인기를 몰아가던 그룹이 외국인에 대한 '차별'에 꺾인 것이다. 영국의 관료들은 그들을 '영국인 밴드'가 아닌 '잡탕족 밴드'로 부르며 경멸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들의 목숨도 데스의 목소리에 달렸는걸. 인류가 살아남아야할 가치를 증명할 단 한 사람이 데시벨 존스인걸.


"…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자들은 멸종된 게 아니라 너희들이 멸종시킨 거야. 육식동물이라는 이유로 말이지. 사자들은 육식동물인데다 너희처럼 생기지도,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않으니까 너희한테 위험한 존재였겠지. … 더구나 너희들은 사자들이 먹기 좋아하는 물질로 만들어졌으니까."

"… 하마는 어떻게 됐어? 도도새는? 기린은? 게네들은 초식동물이라서 너희 종족이 존속하는 데 전혀 위협이 안되는데도 똑같이 말살해 버렸어. 한 마리도 남김없이. 그 외에도 라코타족과 크리족과 호주의 원주민 태즈매니아족처럼 비슷한 사례들이 아주 많지. 이제 … 형편없는 변명이라도 제발 해주겠니? 너희는 마지막 사자나 하마나 도도새나 마야니 농부의 목을 베기 전에 그들에게 노래할 기회는 줘 봤니? 박자를 정할 시간은 줬어? 자기 목숨을 걸고 춤출 기회는? 단지 먹고 새끼를 낳고 햇볕 아래 누워서 부른 배를 두드리며 죽고 싶은 열망 외에도 더 많은 게 있다는 걸 너희한테 증명해 보일 기회를 그들에게 줬냐고?" p.317


인류는 야만스럽다. 현재까지 보여준 행태는 그랬다. 자신들과 다른 존재를 살육하다 못해 절멸시켰다.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도 단지 그렇게 할 수 있으니 했을 뿐이다. 다른 존재의 가치를 알아보려는 노력도 없었다. 그런 면에서 외계인들은 자비롭다. 인류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줬으니까. 단 그들이 펼쳥놓은 멍석이 아주 정의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죽은 생명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와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개체도 우주 속의 삶을 함께할 수 있는 일원으로 인정하는 다양성을 지녔다. 하지만 그런 지각력이 있다고 해서 착하기까지 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은하 사회도 여전히 사회고 "사회는 쓰레기 같은 거"니까. 노래만으로 통과할 수 없는 시험이 포함돼 있는 초고난이도의 가요제가 펼쳐진다.


삶은 아름다우면서도 또한 어리석다. 이 말을 늘 마음에 새기고 절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한, 우주의 역사와 한 행성의 역사와 한 생물체의 역사는 화면에 가사가 나오는 간단한 노래이자 따라가기 쉽게 반짝이면서도 간간이 평화로운 빛이 감도는 유익하고 친절한 거대 디스코볼이 된다. p.416


"무슨 소린지 도통 모"를 수도 있다. 난데 없이 전 지구인 앞에 한 날 한시에 외계인이 나타난다. 물고기와 플라멩고 새를 닮았다는 게 대체 어떻게 생겼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우주선은 스테이크 한 조각과 우유를 마시고 자라난다. 온 집안의 물건들을 흡수해서 쑥쑥. 전자렌지의 액정은 우주선 계기판이 된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너구리판다가 네온 빛깔의 거대한 산호초를 닮은 성간 우주선을 조정한다. 책에 펼쳐진 '스페이스'는 상상 불능의 세계였다. 읽은 것을 머리 속에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기능이 멈춘 것 같았다. 책 홍보에 따르면 <라라랜드> 제작진이 이 호화로운 우주대잔치를 영화화하려고 준비중이란다. 책을 읽으면서 가늠하기 가장 어려웠던 외계의 기준에 부합하는 음악성이 무엇인지는 시각화의 천재들이 만든 영화 개봉 후에야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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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러62 Vol.5 : 바이러스 케플러62 5
티모 파르벨라.비외른 소르틀란 지음, 파시 핏캐넨 그림, 손화수 옮김 / 얼리틴스(자음과모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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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러 62e 행성으로 떠난 여행의 막이 내렸다. 6권의 책에 걸친 질문과 호기심의 시간이었다. 지구로부터 1200광년 떨어진 케플러 62로 간 아이들, 그 아이들에겐 전 인류의 운명을 담은 임무가 주어져 있다. 황폐한 지구를 대신할 인류의 터전을 닦는 일이다. 위험해진 지구를 떠나 인류구원의 임무를 띤 아이들이 우주여행을 떠난다. 현재와 같은 환경 파괴가 계속된다면 지구 이외의 삶을 터전을 찾는 일은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다. 핀란드와 노르웨이의 작가 티모 파르벨라, 비외른 소르틀란의 케플러62에 등장하는 케플러62e는 거문고자리에 실제로 존재하는 행성이다. 책은 생명이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지구형 행성으로 탐험대를 파견하는 설정이다. 놀랍게도 탐험대는 십대의 아이들이며 선발 방식은 게임이다.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선 아이들의 상상력이 더 필요할 지도 모른다. 이야기 속 아이들은 실제로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 남는다. 다만 아이들이 맞닥트린 위험들이 새로운 행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데 이 책의 반전이 있었다.


아리, 요니, 마리에를 비롯한 개척자 일행이 도착한 행성의 자연환경은 지구 못지 않다. 오염되지 않은 공기와 초원, 울창한 삼림에 풍부한 물까지 일견 완벽해보이는 이곳 케플러62e. 걸림돌이 있다면 그곳에 살고 있는 선주민이다. 털없는 곰을 닮은 그나메르 족과 사람보다 큰 여치 형상의 초원족. 행성의 선주민과의 공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을까. 아이들이 타고 떠난 우주선은 1492년 콜럼버스가 인도대륙을 찾아 떠날 때 탔던 배들의 이름을 땄다. 새로운 행성에서 우리 인류는 또다른 콜럼버스가 될 것인가. 4권이까지 보아온 케플러로의 여행은 아이들이 개척자라는 이름의 살육자가 되는 길을 따르는 듯 보였다. 앞서 초원족과 조우했던 마리에는 그들의 선의를 믿는다. 다른 일행들은 낯선 존재들을 신뢰해야 할 지 선뜻 판단하지 못한다.


개척자 일행 안에서 분열이 일어난다. 뭔가를 숨기는 듯한 지휘자 올리비아의 행동때문이다. 의문스러운 캡슐의 정체를 숨기고 무기에 등록된 생체 정보를 몰래 변경한다. 그녀는 '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 각자의 특기를 발휘해 살아남아야 하는 이 때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는 왕이라니. 올리비아는 공생의 방법을 찾기 보다 폭력을 앞세우는 인간을 회의하면서도 해결방법은 그 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들은 독자에게 올리비아의 판단에 대한 생각을 묻고 싶었을 것이다. 나보다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의 지시가 나의 생각과 다를 때 특히 그 결과가 파괴적일 것이 자명해 보일 때 어떤 선택을 해야할 지를 묻고 싶었던 듯하다. 올리비아와 같은 수동적인 판단에 안주하는 것으로 책임을 피할 수 있을 것인지 말이다.


왜, 인간은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걸까? 서로 죽이고 파멸시키는 것 외에는 진정으로 다른 방법이 없는 걸까?

『케플러62 VOL.5』 p.43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실패의 연속일 뿐이다.

『케플러62 VOL.5』 p.121


초원족이라 불리는 대형 여치를 닮은 종족들과 마리에의 생각은 올리비아와 다르다. 폭력을 폭력으로 혹은 할 수 있다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빠른 방법을 옳다고 생각하는 그 반대편에 초원족과 마리에가 있다. 마리에는 세계적인 게임 및 군수산업 수장의 딸로 태어났다. 부족한 것 없이 누리고 살았고 돈으로 친구까지 살 수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는 폭력을 믿지 않는다. "KILL THEM ALL"을 가훈으로 삼은 집안 내력과는 반대 방향으로 간다. 일견 차가워 보이는 마리에 안에 숨겨진 따뜻함을 초원족이 알아봤을 것이다. 지구를 파괴한 힘이 케플러62e를 위협하자 마리에는 괴로워 한다. 초원족은 엄청난 에너지의 근원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또한 파멸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지목된다. 자신의 힘으로 초원족과 행성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좌절한 마리에는 초원족에게 도움을 청한다. 마리에의 머리 속에는 초원족의 목소리가 울린다.


선한 힘을 믿어야 한다. 오직 선한 힘만.

희망을 가져라.

『케플러62 VOL.6』 pp.78-80


무엇이든 지배하려는 왕 앞에서 '선한 힘'과 '희망'이 의미가 있을까. 이야기 속에서는 물론 의미가 있다. 의미가 있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긴 시간을 두고 볼 때 의미있는 일이 단기적으로 고통뿐일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럼에도 선함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희망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이 손 잡을 수 있어야 탐욕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위험을 앞두고 서로의 손을 잡은 마리에와 아리처럼.


마리에가 손을 내밀었다. 아리는 마리에의 손을 덥썩 잡았다. 두 사람의 손은 바짝 말라 있었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길을 걸어온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따스했다.

『케플러62 VOL.5』 p.94


정세랑 작가는 이 책을 추천하면서 "이 책을 읽을 어린 SF 독자들이 경험할 짧지만 강렬한 몰입이, 어쩌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채널예스, http://ch.yes24.com/Article/View/41591) 『케플러62』는 어린이 또는 청소년 도서라고만 분류하기엔 아까운 책이다. 세계를 선과 악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인간이 복잡한 존재이고 모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게임 중독, 환경 문제, AI의 폭주같은 현재 또는 근 미래에 대두될 수 있는 문제를 흥미진진하게 다루면서도 잊지 말아야할 존재에 대한 존중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말한다. 등장인물 묘사는 아기자기 하지만 그 귀여운 인물들이 마주하는 환경에 대한 묘사는 서늘할 때가 있다. 그림과 내용의 조화가 탁월하다. 글에 맞춰 그림을 끼워 넣은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문장과 함께 간다. 그림이 이야기를 대신하기도 한다. 글쓴이와 그린이의 협업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아이들이 한 번 읽고 재밌어 하는 책과 자꾸 보면서 생각을 다시 해보는 책은 다르다. 『케플러62』는 후자다. 한 눈에 내용을 일별 할 수 있는 책도 아니거니와 등장인물의 심리도 숙고해봐야 한다. 생각하는 책읽기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어렵지 않다.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재미를 느끼는 과정에서 아이의 생각하는 시간까지 길어지는 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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