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골 의사가 썼다는 글입니다.

성폭행의 고통은 이리 쓰고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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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루에 경험하는 희노애락의 양은 어느정도 일까?

어제 신문에 어떤 할일 없는 친구가 영혼의 무게를 달았더니 (아마 죽기 전후의 몸무게를 비교한 것 일테지만..) 십 그램 정도가 나가더라는 기사를 읽었다.

그 무게를 달았다는 과학자나 그 기사를 쓴 기자나 딱 그 수준이 그 수준인데, 하기는 희노애락의 절대량을 재보고 싶은 나도 어쩌면 그 수준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도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사는 한 이 네가지의 무게중에서 애(哀)의 절대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삶을 살 수 밖에 없겠지만,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가만 생각해보면 기쁨이란 얼마 지나지 않아도 내성이 생겨서 금방 둔감해 지지만, 슬픈이란 그보다 몇 배나 여운이 길게 남는 법이다.

오늘 아침에 고등학교 3 학년 여학생이 상해 진단서를 끊으러 왔다.

어제밤에 성폭행을 당하고, 오늘 아침에 산부인과에 들러서 체액을 채취한 다음, 우리병원으로 몸의 외상에 대한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다. 굳이 여기에다 그 여학생의 아픔에 관한 이야기를 옮겨적고 싶지는 않다.

내가 레지던트 일년차 시절이었으니, 이제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일이다, 나는 그당시에도 지금처럼 그만두는 것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의업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전공과목을 다른과로 바꾸는 것에 대해 고민했었다), 더우기 이미 나는 그 전년도에도 다른 전공을 선택해서 트레이닝을 받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외과로 전공을 바꾼 전력이 있어서, 만약 또 그랬다가는 사회 부적격자로 낙인이 찍힐까봐 꾹 참고 견디고 있을 때였다.

그만큼 나는 의사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사실 이 직업이 내게 가져다준 고(苦)는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나는 26살에 의대를 졸업한 이래, 지금까지 단 한해도 가운을 벗는 상상을 해보지 않은 날이 없었고, 실제 삼년전에는 그것을 실행에 옮겨서 가운을 벗고 육개월 동안 환자를 보는 않은적도 있었지만, 결국 다시 지금의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하여간 그렇게 고민이 많았던 젊은시절에, 나보다도 더 고민이 많은 환자를 만났다.

그녀는 그때 나이가 20 살 이었다, 그 힘들던 외과 레지던트시절 삼일동안이나 수술실에서 못 나오다가, 삼일만에 겨우 수술실을 나와서 짜장면 한그릇 먹고 막 눈을 붙이려는 순간에, 응급실에서 페이져가 울렸다.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몸은 천근만근인데, 전화를 걸어보니 염산을 마신 환자가 응급실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속으로 "죽으려면 그냥 아무도 안보는데가서 조용히 목을 매지. 염산을 마셔서 나까지 죽이려 드느냐"는 원망이 저절로 튀어 나왔다, 응급실에 내려가보니 상황이 기가 막혔다.

우선 환자 나이가 겨우 20살 이었고. 더 기가 막힌일은 그녀가 임신중이라는 사실 이었다. 그녀는 6개월전에 성폭행을 당했었고. 그후 임신을 해서 혼자서 고민을 하다가, 자살을 하려고 염산을 마신 것 이었다.

사람이 염산을 마시면 그 결과는 그야말로 참혹하다, 먼저 구강 조직이 타버리고, 두번째로는 식도가 녹아 버리는데, 이때의 식도 손상은 무서운 합병증을 초래한다, 그나마 소위 양잿물과 같은 알카리에 입은 손상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이제 일단 염산을 마신 이상 이제는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식도가 다 늘어붙어 버리는 것이다, 이제 그녀는 살아 남는다 하더라도 평생 음식물을 삼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 눈이 부실만큼 예뻤다, 만 20세의 푸르름을 그대로 간직한 사회 초년병의 그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누군가가 끔찍하게 망쳐 놓은 것이다, 일단 응급조치를 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한 집중 치료를 받은 후, 그나마 생명은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망가져 버린 식도는 이제 어떤 음식물도 통과를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 2주간은 혈관 주사를 통해서 영양을 공급했지만, 사람이 그렇게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다, 그녀는 입원한지 이주째 되는 날, 수술실로 옮겨졌고 우리는 그 희고 고운 배를 명치끝에서부터 10센티정도를 절개해서 소장에 구멍을 뚫고 소장내로 호스를 집어 넣었다, 그리고 호스의 반대편은 절개한 상처를 통해 밖으로 연결했다, 이제 그녀는 배를 통해 소장으로 연결된 호스로 미음을 투여받으면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수술을 하고나서 상처가 악화되었다, 소장으로 들어가있는 관을 타고 소화액이 바깥으로 흘러 나온 것이다, 강렬한 산도를 가진 소화액은 상처주변의 피부를 녹이기 시작했고, 결국 그녀의 배에 길게 남겨진 칼자국 위에는 소화액이 입힌 화상 같은 커다란 흉터까지 덧붙여졌다.

그녀의 치료는 일년차인 내 담당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녀의 아픈 사정에 깊은 동정심을 가졌었지만, 그 속에는 아마도 "곱고 아름다운 여자아이의 갈라진 운명에" 대한 어떤 특별한 안타까움이 더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치료했고, 아울러 그녀와 친해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내내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치료를 하기위해 상의를 벗겨도,, 벌겋게 부어오른 상처에 소독약을 발라도, 심지어 못먹어서 말라비틀어진 가느다란 팔에 수액공급을 공급하기 위해 컷 다운(피부를 갈라서 혈관을 꺼집어내는 일)을 했을 때에도 그녀는 그야말로 얼음장처럼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심지어, 수술후 삼 주째 되는날 임신중인 아이를 유산시키기 위해 산부인과 분만실로 옮기는 중간에도,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은색 마이마이에 연결된 헤드폰을 귀에 꽂은 채 내내 음악만 듣고 있었다. 결국 정신과에 컨설트를 했고, 나도 주치의로서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그녀는 말을 잃어 버린채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그렇게 두달후 상처가 좋아진 다음 그녀는 배에 호스를 꽂은 채 퇴원했다 나는 결국 그동안 그녀와 친해지는데 실패를 한 것이다. 그녀가 퇴원한 이후에도 나는 한참동안 그녀를 떠 올렸다.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첫 인상과, 나중에 음식을 먹지 못해 창백하게 메말라버린 나중의 모습.그리고 상처받은 사슴처럼 세상으로 향하는 창을 닫아버린 그 안타까운 이미지가 묘하게 겹쳐져서, 내게 상당히 오랫동안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재입원을 했다, 퇴원후 외래에서 진료를 받다가 이제 배안의 호스를 제거하고 식도를 새로 만들어주는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것이다. 이제 그녀의 운명은 바람앞의 등불이 된 것이다. 사람은 호스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으면서 사는데는 한계가 있다, 식물인간처럼 에너지 소모가 전혀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게 사는데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경우 도리없이 식도를 재건해야 하는데, 그녀처럼 식도가 협착이 되어버린 환자는 협착된 식도 대신에, 목에서 위장까지 연결되는 다른 통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요즘은 좀 다르지만, 그때는 일단 배를 열어서 대장을 일부 짤라낸 다음. 목을 절개해서 식도 입구에 한쪽 끝을 연결하고 다시 다른 쪽 끝은 위나 소장에 연결해 주는 수술을 했다,

그렇게하면 연결된 대장이 식도를 대신해서 음식물을 위까지 운반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수술은 대단히 위험한 것 이었다. 당시 내 경험으로는 5명을 수술해서 한명이 살았었고, 교과서적으로도 생존률이 대단히 낮은 수술이었다, 일단 식도와 대장이 연결되면 , 그 두장기의 성질의 차이 때문에 연결부위가 녹아 버리기가 쉬운데, 이 연결부위가 녹으면 가슴속으로 염증이 진행되고,나중에는 가슴에 고름이 차서 어마어마한 결과를 초래한다,

대개 이 경우 환자는 가슴으로, 배로 고름이 흘러 내리고, 그냄새 때문에 사방 20미터에는 사람이 접근이 곤란 할 정도로 몸이 썩어 들어가면서 죽게된다. 이제 그녀가 그 운명의 시험대에 선 것이다, 불과 몇 달만에 그녀는 거의 미이라가 되어 있었다.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산다는 그녀가 그동안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이제 그녀는 그 가냘픈 몸으로 20% 의 확률앞에 혼자 선 것이다. 나는 수술전에 보호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그녀에게도 수술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다만 위험도는 적당히 낮춰서 설명하고 보호자와 본인의 서약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녀는 타인에게, 특히 남자에게는 차갑고 냉정했다,

수술이 시작되었다. 무려 12시간 반에 걸친 대수술 이었다, 먼저 배를 개복해서, 대장을 적당한 길이로 짤라내고, 짤려져 나간 부분들은 원래대로 다시 봉합했다, 그리고 30센티 정도 길이로 짤라놓은 대장을 목을 절개한 다음 식도에 연결했다, 그리고는 다시 가슴옆을 길게 절개해서 폐를 옆으로 밀어 젖히고, 심장 뒤로 공간을 만든 다음 그쪽으로 한쪽 끝을 내려서, 소장과 연결했다.

주임교수께서 수술을 하는데, 수술실에는 수술시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주임교수님의 손이 심장뒤로 들어가서 박리를 시작 할때는 심장이 눌리면서 맥박수가 120회를 넘어서고, 혈압이 급상승을 하기도 했고, 아래쪽에서 대장을 짜를때는 속의 내용물이 배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황급히 거즈로 장 주변을 수십겹의 거즈로 둘러싸기도 했다.

수술용 장갑을 낀 내손도 그녀의 배속을 헤집고 있었다. 그녀의 소장과 대장은 배속에서 꺼집어내져서 조교수의 손끝에서 봉합되고 있었고, 나는 일년차라 위쪽 식도 연결팀으로 가지 못하고, 아래쪽에서 대장을 자르고 이어주는 일을 보조했다, 그때 수술용 장갑의 얇은 두께를 넘어 그녀의 장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은 내내 나를 묘한 슬픔에 빠지게 했었다.

그리고 무려 12시간 만에 수술이 끝났다.. 수술후에도 나는 1년차로서 중환자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그녀의 상태를 체크하고, 한시간마다 혈액 검사를 하면서 인공호흡기의 계수를 조정했다,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가 밸런스가 맞지 않을 때 빨리 교정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항상 누군가가 옆에서 지켜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 임무였었다, 수술후 의식은 몇 시간만에 돌아왔지만, 상태가 안정 될 때까지 숨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어야 했다, 의식이 있는 사람이 인공 호흡기가 밀어넣는 숨을 그대로 받아 마시고, 기계가 마치 빨대로 빨아 들이듯이 내 가슴에서 공기를 빼내 갈때 내쉬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녀를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해 그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나는 그동안 끊임없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고, 그녀는 필담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 했는데. 그녀가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자기의 마이마이를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그녀의 마이마이에 담긴 테입이 김광석의 "다시부르기" 음반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몇달 째 반복해서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증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가 달린 채로, 그녀의 귀에는 김광석의 노래가 담긴 마이마이 해드폰이 꽃혀 있었다.

드디어 수술 후 7일째 되는 날이 왔다, 이제 선고가 내려지는 날인 것이다. 수술후 7일 째는, 방사선실에서 목을 통해 조영제를 흘린 후 가슴 사진을 찍는 날이다, 만약 대장과 식도를 이은자리가 녹아버렸다면 사진에서 조영제는 가슴으로 흩어져 보일 것이고, 수술부위가 잘 아물었다면 조영제는 목에서 소장까지 곱게 잘 흘러 내릴 것이다, 방사선실에서 주사기로 조영제를 투여하고 "슛"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결과는 다행히 성공이었다,,

조영제는 새지않고 곱게 흘러내려서 소장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기쁨이 박수를 쳤고, 그녀는 드디어 다음날부터 물을 먹기 시작했다, 무려 8개월만에 처음으로 목으로 무엇인가가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컵에 담긴 물을 빨대로 빨아 마시면서,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펑펑 울었다. 누구도 감히 말릴 수 없을 정도로 서슬이 시퍼렇게 울었다. 나는 그렇게 곱게 생긴 사람이 그렇게 절절하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곡을 하듯 그렇게 울었고, 오랜 인공 호흡기 때문에 쉬어버린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메아리처럼 그렇게 병실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그야말로 둑이 무너진 것 처럼 눈으로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입으로는 목마른 아이처럼 한 컵의 물을 순식간에 다 마셔버렸다. 그녀는 물을 계속 요구했고,나는 간호사에게 내 허락없이 한방울의 물도 더 주지 말것을 지시했다. 물을 더 마신다고 안되는 것도 아닌데 왠지 물을 더 주면, 계속 그렇게 울음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수술 후 12일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그로부터 이주후부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물을 먹기 시작한 날, 그렇게 펑펑 울고 난 다음날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날부터 그간 먹지 못한 것, 말하지 못한 것이 봇물이 터져나온 듯,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의 가장 가까운 이야기 상대가 되었다. 결국 병동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내가 그녀와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 그녀가 병실에서 내내 들었던 음악이 바로 여기에 링크한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라는 곡인데, 나는 왜 그녀가 왜 내내 이곡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는지를 짐작 할 것 같았지만 더이상 묻지 않았다. 아마 그녀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누군가가 어느날 갑자기 자기를 벼랑에서 밀어 버린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그후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 그리고 그녀의 요청으로 밖에서 한두번 밖에서 저녘을 같이 먹기도하고. 둘이서 덕수궁을 산책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가끔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그녀도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우리는 서서히 서로를 잊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대로 서서히 절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내게도 이제 그녀는 더이상 손을 내밀지 않으면 금방 죽을 것 같은 갸날픈 소녀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 퇴근하자마자 그녀가 내게 보냈던 편지들을 꺼냈다, 그러고보니 그녀는 몇 년전까지만 해도 한번씩 내게 편지를 보냈고, 나도 답장을 했었다.

사람이란 이렇게 대책없이 상황에 빠져들기도하고, 또 어떨때는 영 새삼스럽다는 듯이 갑자기 생경하고 어색한 몸짓으로 손사래를 치기도 하는것이다. 나는 오늘 또 누군가의 우연찮은 불행을 매개로 그녀를 기억해 냈지만, 그녀는 아마 신문을 볼 때마다, 혹은 잡지를 읽을 때마다, 어떤 단어 하나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두번 다시 기억하기 싫은 그 끔찍한 투병 생활을 떠올리면서, 마지막으로 나를 기억해 낼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면 그녀에게 있어서 내게 대한 기억 역시 반드시 잊어버려야만 하는 커다란 상처중의 일부였던 셈이다,

2004/12/02 시골의사

쿠키뉴스 김상기기자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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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4-12-14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내내 눈시울을 붉히면서 읽었습니다. 너무나 절절한 사연, 너무도 가슴 아픈 사연을 너무도 조마조마한 사연이기에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 소녀 이제는 모든것 잊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엔리꼬 2004-12-16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저도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았네요... 지금쯤은 그때 일을 후회하고 있을까요?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동경에 출장다녀온 직장 동료가 아침부터 나한테 따지듯이 묻는다.

"아니, 남자들은 원래 다 그래요?"
"네?"
"이제 돌을 갓 지난 아기도 있고 결혼한지도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러고 싶어요?"

뭔 일이더냐 하고 긴장해 있는데, 찬찬히 설명한다.

직장에서 일본으로 출장 겸 여행을 몇명이서 갔는데, 그 중 남자 하나가 기어코 스트립쇼를 보겠다고 가이드를 졸라서 결국은 스트립쇼를 보고 왔다는 것이다.

"저는 이분법적으로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혈액형으로 사람 나누는 것도 상당히 싫어하잖아요..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이렇다는 구분은 별로 안좋은 것 같아요.. 남자도 그런거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나같이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라고 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렸지만, 생각할수록 기가 차다.

개인적으로 스트립쇼를 가겠다는데 별로 말릴 생각은 없다. 다양성을 추구하고 존중하는 세상에서 다양한 성적 욕구를 풀겠다는데 말린다고 될 일인가?
그런데 내가 열받은 것은 이러한 상황이다.

말은 직장이라고 했지만 내 직장은 엄연히 국가기관에 속한다. 말이 출장이지, 4박 5일에 공식 방문 일정은 하루뿐이고 나머지는 여행하는 것이다. 근속년수 많은 사람들 위주로 해마다 일부를 해외여행시켜주는 것이다. 결국은 나랏 돈으로 출장보내주고 여행까지 시켜주는 것인데, 이 사람은 필경 나랏돈으로 스트립쇼까지 봤을 것이다. 게다가 같이 간 정부부처 사람까지 함께....

스트립쇼를 본다면 몰래 몰래 혼자서 볼 수는 없나? 그걸 같이 간 3명의 유부녀 여직원들도 자세히 알 정도로 떠들고 다녀야 했나? 남자들 컴퓨터에 이상한 사진 띄워놓고 여직원들 보여주고 싶어하는 사람들 있다던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이 일도 그런 것과 성격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닐지... 왠지 자기가 스트립쇼를 보러 간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는 것은 아닌지... 그 속마음이야 모르지만.

난 이 일이 있기 전부터 그 사람을 싫어했다. 남자직원이 소수인 우리 직장에서, 특히나 적은 우리 부서에서 몇 안되는 남자들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절반이다.

여자들이 같은 여자를 싫어하는 이유의 카테고리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안다만,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가장 싫은 범주의 남자들은 바로 마초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 사람도 당당히 이 그룹에 속한다. 자세한 것은 언급하기조차 싫다.

가장 열받는 일은 이 남자가 자신의 옛 추억을 이야기한 것이다.

설악산으로 워크샵을 가서 늦게까지 방에서 기타를 치고 논 적이 있었는데, 그 기타로 옛 민중가요들을 연주하고 크게 불러제낀다. 그러면서 옆 동료랑 하는 말이, 우리 기관에서 민중가요 동호회나 하나 만들까? 이런다. 그러더니 자기가 예전 90년도 무슨 가두투쟁때 자기 학교 투쟁의 우두머리였느니 어쨌느니 떠들어댄다.

그때까지 그 사람을 잘 몰랐었지만, 그 이후로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신뢰는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후 그 사람의 일상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예전에 학생운동했다고 그렇게 침이 마르게 자랑을 하는 사람이, 현재는 이렇게 생활을 한다? 그의 정치적 견해는 어떤지 모르지만, 사상적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아직 대학생때의 열정을 가지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자랑스럽게 후일담을 떠들어 제끼는 그와 룸싸롱 아가씨를 찬양하는 발언을 마구 하는 그 사람이 동일인물이라?

아픈 과거를 팔아먹지 마라! 당신에게는 이제 추억거리가 되고 자랑거리가 될지 모르지만, 당신의 과거에 대한 평가는 당신의 현재의 평가와 그리 다르게 가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다오.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는 과거 순수했던 학생들의 행적을 욕먹이는 과오를 저지르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라..

너희 같이 과거만 알고 현재를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지금의 일부 386들이 이렇게 욕을 먹지 않느냐? 제발 그 더러운 입으로 과거를 말하지 말아다오..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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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12-0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한 술자리에서 보란 듯이 민중가요 불러제끼는 인간 중에 진짜로 데모질해본 사람 많지 않더이다. 울 회사에도 그런 사람 하나 있는데, 하도 목에 힘주길래 슬쩍 알아봤더니 2학년 1학기까지 노래패하다가 관둔 한량이더군요.

(그런데요, 전 서림님이 남자분이라는 걸 늘 깜빡하고 깜짝 놀라곤 한답니다. ㅋㅋㅋ)

sooninara 2004-12-2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증나는 스타일이군요..그냥 냅두세요. 그런사람은 아무리해도 철이 안들어요.
 

 

누워서 책보기 희망하셨지요?

바로 이렇게 설치하세요...

팔 아픔에서 해방시키는 둥근 아크릴판, 눈 나빠짐 방지하는 형광등이 있습니다.

 

아, 그리고 조립식 완구 받침대가 눈에 띕니다.

여러분, 이제 느긋한 책읽기에 도전해보시죠...

[사진은 퍼왔습니다.]

 

 

아~ 이번 작품은 실제로 27,000원에 판매가 되는  작품입니다. 어디서 살 수 있는지는 묻지 마세요. (몰라요.. 흑흑)

책 방향으로 스탠드 하나만 켜두면 좋겠네요..

이건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서 만든 아이디어 상품이기도 합니다.

두 제품 모두 책 한장 넘기기 위해서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화나 술술 읽히는 소설보다는 철학책이나 영어, 독어 원서와 같이 한 장 넘기기도 힘든 책을 볼 때 유리합니다.

음, 그런데 한장 넘기기도 힘든 책을 이런 자세로 본다면 바로 잘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사진도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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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4-11-2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편하겠다.. 위에꺼는 책 넘기기 넘 힘들겠고, 아래꺼는 정말 쓸만하군요..

판매가 되는거란 말이죠.. 찾아봐야겠다~~ ^^*

노부후사 2004-11-24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아래 것은 정말 탐나네요. 찾아봐야 겠어요. 혹 파는데 아시면 갈춰주시어요.

엔리꼬 2004-11-24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편리할 것 같긴 한데,, 쓰다 보면 거추장스럽지 않을까 의문입니다.

urblue 2004-11-24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책장 넘기기 무지 싫을 것 같습니다.

조선인 2004-11-24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째거와 비슷한거 실제로 본 적 있어요. 전신마비 환자가 쓰는 건데 끝에 고무가 달린 막대기를 입에 물고서 책장을 넘기더군요.
 

지난주 마태우스님의 서재에 헌혈증을 모집한다는 글이 실렸다.

그래서 열혈 헌혈회원은 나는 당장 헌혈증을 보내기로 하고, 우표와 편지봉투를 수소문했는데... 우표는 190원짜리 딱 한장 있었다. 그래서 편지봉투에 헌혈증 몇장을 넣고 봉해서 주소 적힌 곳으로 보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5g까지는 190원이고 5 g넘으면 돈을 더 추가해야 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5-25g은 220원, 25g초과 50g까지 240원이다.) 그러나 뭐 헌혈증 몇장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무게가 나가면 얼마나 나갈까 하는 생각에 그냥 보냈다.

찝찝한 마음이 있긴 했지만 저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표를 어디서 사야할 지도 모르겠고, 이것 때문에 근무시간 중 차 타고 멀리 우체국까지 간다는 것도 여러가지로 힘들었기 때문에 그냥 눈딱 감고 강행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일요일에 회사 옆에 있는 우체통에 넣으려고 우체통을 찾았는데, 하필이면 그날 우체통에 빨간 페인트를 덧칠하고 주의 경고딱지가 붙어있더라.. 에고. 지금 이거 넣으면 넣다가 페이트 묻겠다.. 하고 포기하고는 집에 가는 길에 우체통 있으면 넣어야지 했었다.

그런데 가방 속에 넣은 것을 잊어버리다가 화요일 저녁때 겨우 생각나서 부리나케 부쳤는데, 매일 오후 2시에나 수거를 한단다.. 이거 언제쯤이나 도착하나 마음 졸였는데, 수요일에 바로.. 이제 헌혈증을 안보내도 된다는 이야기가 떠도는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엔 선물 발표까지..

그래서 마태우스님 글에 댓글로 제가 보낸 사실을 알렸고, (속으로 나도 선물 받을 수 있는데...라고 생각도 하고...흐흐 ) 늦게 보낸 나를 원망하며 속상해했다.

어, 이상하다. 내 것은 아직도 도착을 안했나보다... 나도 선물 주지! 잉잉... 거렸는데,, 오늘 오후에 반송되어 돌아왔다.

무게 초과란다. 음........... 아니 이게 얼마나 무겁다고, 이거 때문에 우체부 아저씨 많이 힘들까봐 여기도 중량 제한이 있냐 싶었다..... 기본 요금 190원이면 사연이 많아 편지지 많이 쓰는 그런 사람들은 기본요금을 넘어서는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데, 매번 중량을 잴 수도 없는 것이고.... 어느 정도 기본적으로 용량이 많을 정도라도 기본요금안에서 해결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지....

어쨌든, 헌혈증을 받고 난감해하는데, 며칠 전부터 헌혈증을 급히 원한다는 옆팀 사람의 메신저 대화명이 생각났다. 안그래도 헌혈증 보내고 거기서 필요없다고 하는 바람에 김도 좀 새고, 이 소식 듣고 동료 줄껄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 거기 전달!!

아무튼..현혈증 나눠줄 때가 기분이 가장 좋다..

다음엔 '나의 성분헌혈기'를 올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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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4-11-22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 그럼 편지봉투 하나하나마다 무게 달아 확인해 본다는 얘기네요? 그럴 시간까지 있단 말인가!!!

엔리꼬 2004-11-23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날개님 반갑습니다....

마태우스 2004-11-23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몇장이라구요. 3장을 보낸 분이 3등인 걸로 보아 님이 2등은 할 수 있었을텐데요. 상품이 문제가 아니라 님의 정성이 되돌아와서 아쉽네요.......

비발~* 2004-11-23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일이 그렇게 되었군요. 오늘도 나가면서 들어오면서 손집어 넣어 우체통 확인했는데... 마태님 말씀대로 정성이 되돌아와서 안타깝습니다.

엔리꼬 2004-11-24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닙니다. 제 불찰이죠... 신경쓰게 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세실 2004-11-26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220원이 기본으로 알고 있거든요. 바뀐것...

그 헌혈증 다른 분을 위해 쓰셨다니 좋군요. 전 태어나서 이제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결혼하기 전에는 체중 미달...지금은 과체중....호호호.

사실 제가 겁이 무진장 많답니다.

이번에 시내 나가면 할까봐요. 아줌마의 배짱을 보여주지요. 저도 좋은 일에 쓰고 싶네요. 서림님 화이팅~

sooninara 2004-12-21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무게를 다 재는것은 아니겠죠. 요즘은 우편요금이 220원이랍니다.
 

몇 년 전 나는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혼자서 마음먹었다.

한가지 먼저 이야기할 것은 내가 골프를 안치겠다는 것과 골프치는 사람이 잘못 하고 있다는 말은 동일한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골프 예찬가들의 말은 이렇다.
'열심히 일하고 난 후 주말 새벽에 드넓은 잔디밭가서 골프를 한 게임 치고 나면 몸도 마음도 아주 상쾌하다. 내가 친 공이 컵 속으로 쏙 빠져들어가는 그 느낌 그것 때문에 즐긴다. 골프가 무슨 운동이냐고 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운동이 되는지는 안 쳐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간혹 로비를 위해서 정치인들이 골프장에서 만난다던가 내기 골프하는 사람들 때문에 골프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데 골프 그 자체로는 정말 신사적이고 멋진 스포츠가 아닐 수 없다. 골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돈이 적게 든다. 물론 초기 장비 구입비용이 들긴 하지만 일주일에 3-4번 가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가 한번 가는 것인데, 그 정도의 비용은 다른 운동을 하는 것과 비교해서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비용 조달이 힘든 사람이 하면 문제일지 몰라도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 가끔 나가는 것으로 귀족 스포츠라며 좋지 않은 눈으로 보는 시각은 편치 않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나도 대학 1학년 '레저스포츠'란 과목에서 골프를 배웠고, 골프공이 클럽에 짝짝 맞아서 뻗어가는 그 손맛 또한 일품이란 걸 안다. 물론 야외연습장에서 배운 것이지만 허리운동도 되고 숨도 가빴다. 게다가 당시에는 골프공 가득 담긴 한 바구니가 단돈 '오백원'이었다.

또한, 박세리나 박지은이 우리 국민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고 있는지(그런데 진짜 박찬호나 박세리가 큰 힘을 주고는 있는건지 의심스러울 때는 있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한 가지 생각하지 않은 것이 있다. '골프를 친다는 것'과 '한국에서 골프를 친다는  것'은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한국에서 골프를 친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스포츠를 넘어선 것이다. 날로 늘어나는 그 많은 골프 인구들이 모두 스포츠로서의 골프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골프를 즐기는 사람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계급이 되었다. 웬만한 권위나 명예나 부를 가지고 있는 집단에서 골프 모임이 없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 집단에서 골프를 치지 않으면 이상한 눈초리를 받는 것을 피하기 힘들다.

골프를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품격이 떨어져 보인다고 생각한다. 골프는 이제 있는 사람들만의 자존심을 넘어섰다. 그들의 문화를 따라가고 싶은 사람들이 안간힘을 써서 공유하고자 하는 문화가 되었다. 비즈니스와 접대를 위해 배우고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럭셔리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배운다. 골프는 이상하게 변질된 거대한 공룡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골프가 무슨 죄가 있는가? 골프가 없었더라도 상류층은 다른 매체를 통해서 그들만의 동질의식을 고취시키는 스포츠와 같은 것을 만들었을 것이다.

오히려 가장 큰 문제는, 골프치는 사람들이 제대로 모르거나 알고도 입을 닫고 있는 사실은, 그것이 지극히 반환경적인 운동이라는 사실이다.

넓은 자연환경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산과 나무를 훼손하고, 그 푸르름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농약을 뿌리며, 얼마나 많은 산사태와 토사유출과 지하수 오염을 유발하는지, 얼마나 많은 천연기념물들이 제 보금자리를 잃는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이제는 서민들의 보금자리 바로 옆까지 치고 들어온 그 골프장. 그들의 럭셔리함을 유지하기 위해 이 좁은 땅덩어리가 말라죽어 가고 있다. 영국의 드넓은 초목지대에서 생겨난 골프는 결국 우리 땅의 맥락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골프라는 스포츠가 가진 장점과 어느 사회에든 불가피한 '그들만의 문화'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로 인해 우리의 생활터전이 훼손되는 것 때문에 나는 반대한다.

폭발적으로 불어나는 애호가들의 숫자에 맞추기 위해 우리는 또 엄청난 땅을 골프장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골프장 건설 찬성론자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 고귀한 이름 '경제'를 들먹인다. 아름다운 골프장 하나에서 얼마나 많은 관광객과 외화를 불러들이는지 아느냐고. 그리고, 이 불경기에 지역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아느냐고. 이제는 콧물 달고 다니는 시골의 초등학생들도 골프를 배운다. 박세리 언니처럼 훌륭한 골프 선수가 되기 위해서...

골프가 진정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대중적인 스포츠가 되는 그 날. 그 날은 바로 우리나라 땅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골프가 도입 초기의 정신을 되살려 극소수 계급 그들만의 스포츠로 남아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내가 아는 교수님은 외국 유학시절 골프 치시기를 좋아했다. 힘든 유학시절 미국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가끔 골프를 치는 것은 당시 부유하지 않은 교수님에게도 심적 부담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신 다음, 골프를 딱 끊으셨다. 주위 교수님들이 아무리 가자고 협박해도 막무가내였다. 미국에서 골프를 친다는 것과 한국에서 한다는 것의 차이는 너무 커서 감당할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것이 재정적 이유나 시간적 여유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진정한 의미의 골프 애호가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골프를 친다는 개개인의 취미나 선호의 문제를 넘어서서 이미 내가 사는 이 사회와 어떻게든 관련이 되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내가 아직까지 골프를 치지 않을 수 없는 집단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것을 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름대로 기득권층인 국회의원들의 이러한 골프장 건립 반대운동은 반갑다. 이재오, 김문수 의원의 이름을 보니 더더욱 반갑다. 진정으로...

 

여야 의원 30여명 'NO 골프' 선언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4.11.18 11:54 45' / 수정 : 2004.11.18 12:47 56'


 


▲ 무분별한 골프장 증설에 반대하는 열린우리당 안민석, 한나라당 고진화, 민노당 천영세의원 등 여야 30여명의 의원들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NO) 골프'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여야 의원들이 정부의 골프장 증설 방침에 반대하며 ‘노(No) 골프’ 선언을 해 눈길을 모았다.

앞으로 골프채를 절대 잡지 않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한 의원은 모두 30명. 열린우리당이 안민석(安敏錫) 의원 등 12명, 한나라당이 이재오(李在五) 의원 등 8명,민주노동당은 천영세(千永世) 의원 등 소속 의원 10명 모두가 포함됐다.

이들은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토를 후손에게 제대로 물려주기 위해국민의 한 사람으로 대규모 골프장 건설 계획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 무분별한 골프장 증설에 반대하며 골프를 치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골프장으로 인해 ▲토사유출과 산사태 ▲지하수 고갈과 농약 오염 ▲산림 훼손 등 환경이 파괴되고 인근 주민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런폐해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골프장 무더기 허가를 추진하고 있어 국민 갈등이 더욱증폭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사회단체와 골프장 예정지 주민들이 ‘골프장반대공동대책위’를 구성, 시위등을 통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음도 지적했다.

이에 따라 골프장 신규허가 계획을 잠정 중단한 뒤, 골프장 건설이 경기 부양과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정부측 주장과 경제적 실익 없이 환경을 파괴하고 국민 갈등만 부추긴다는 시민단체 등의 주장을 토론을 통해 엄밀히 검증해야 한다는것이다.

안민석 의원은 “현재 국내에 262곳의 골프장이 운영 또는 건설 중인 상황에서 230여곳의 골프장이 추가돼 500여곳이 되면 전 국토의 0.5% 이상이 골프장으로 잠식될 것”이라며 “의원들의 ‘노 골프’ 선언이 정부가 골프장 증설계획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No 골프 선언 의원 30명 명단

강혜숙 김원웅 김재윤 김재홍 안민석 우원식 유승희 이경숙 이목희 이철우 제종길 한명숙 (이상 열린우리당 12명)

강기갑 권영길 노회찬 단병호 심상정 이영순 조승수 천영세 최순영 현애자 (이상 민주노동당 10명)

고진화 김문수 김영숙 김재경 배일도 심재철 이계진 이재오 (이상 한나라당 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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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11-1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회의원들이 어쩌다 한번 괜찮은 일 했네요.

무분별한 골프장 증식, 정말 문제입니다.

저 아는 이는 아이가 아토피가 심해 할 수 없이 용인으로 이사해 호전되었는데,

집 앞에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다시 아토피가 심해졌답니다.

심증은 농약살포 때문이라 생각되는데,

마땅히 입증할 방법도 없고, 또 이사하자니 막막하고, 속만 끓이고 있대요.

마태우스 2004-11-18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안치는 이유는 환경파괴보다, 비싸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랍니다. 아마 평생 안칠 것 같네요...

엔리꼬 2004-11-1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조선인님은 직접적인 피해자이시군요.. 아토피라 정말 속상하겠어요.. 저희 아이들은 엄마가 아토피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아직까지는 걸리지 않았는데... 주의 또 주의 해야겠습니다...

마태우스님... 님은 확실히 아웃사이더라니깐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마세요..

조선인 2004-11-1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 제가 아니라 '저 아는 이'요. 제 표현이 영 미숙했네요.

엔리꼬 2004-11-20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잘못 읽었군요.... 히히

sooninara 2004-12-21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골프장은 섬과 같습니다. 색은 녹색이고 물이 있으니 자연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지만..

물은 엄청 필요하고, 벌레 곤충은 못 살게 다 죽여버리니 섬과 같답니다.

한국에선 골프장이 안맞지요. 산이 많은 지형상 다 깍아버려야하고..

그래도 골프장이 늘어가기만 하니..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