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취업정보'라는 책자를 입수하였다.작년과 올해 졸업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과 관련된 전수조사를 한 결과를 학문별로 소개한 것이다.

각 학문별로 소개를 하고, 관련 학과는 무엇이며, 졸업 후 취업 및 진학 상황, 가장 많이 취업한 직업 분야와 그 분야 종사자 총 수, 월 평균임금을 보여준다. 이 중 월평균 임금은 샘플조사한 것이다.

샅샅이 훑어보지는 못했지만, 취업 전쟁 상황이라는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래서 답답하기도 하다.

4년제 대학 졸업자 취업률은 56.4%에 불과하다. 이는 진학자와 입대자를 제외한 숫자이며, 주당 18시간 이상 근무하고 보수를 받는 자를 포함하기 때문에 실제 졸업자들이 체감하는 취업률보다 훨씬 높은 수치일 수 있다.

전문대학의 취업률은 77.2%로 4년제 대학보다 훨씬 높다. 그래서 전문대학의 각종 광고에서는 이러한 수치를 자주 인용한다. 그러나, 이는 양적인 자료일 뿐, 질까지 담보하지는 못한다. 월 120만원씩 받는 3D 사업장에 비정규직으로 100% 취직한다고 하더라도 취업률 수치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무조건 양적인 자료만이 능사는 아니다.

취직만 하면 다인가? 과연 어떤 곳에 취직을 했나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전공을 제대로 살리는 곳에 취직했는지 또한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학과별 취업정보 자료는 흥미롭다. 4년제 대학에 한해서 몇몇 학과 졸업생들의 진로를 살펴보자.  조금은 우울하다.

1. 일본어/중국어/서반아어문학 남자 졸업생들이 가장 많이 취업한 직업 분야는? 

: (해외)영업원이다. 그래봤자 10% 남짓이다.

2. 그렇다면 언어학/국문학/중문학/영문학/독문러시아문학 학과 여자 졸업생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취업한 분야는? 

: 아쉽게도 문리어학계 학원 강사다.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3. 문헌정보학 졸업생들은? (여기서 세실님 눈 번쩍)

: 다행히도 사서 및 기록물관리사가 남녀 모두 독보적 1위다. 그러나 그 비율은 30-40%대에 그친다.

4. 가족,사회,복지학 졸업생들은? (평범한 대학생님 눈 번쩍.. 아참 여기 안오시지?)

: 사회복지사가 남녀 모두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나, 월평균임금은 현저히 낮다.

5. 자기 전공을 최대한 잘 살려서 가는 졸업생들은?

: 예상하셨듯이 특수교육학, 초등교육학, (치, 한)의학, 약학, 간호학, 디자인 정도이다.  모두 80%대 이상. 전산, 컴퓨터, 정보통신 등 일부 공학계열도 비교적 전공을 잘 살리는 편이다.

6. 그렇다면 농업학은?

: 남녀 불문 5순위 안에 들어있는 직업 분류 중 '농'자가 들어있는 직업은 없다. (전문대는 그래도 '농'자가 몇개 들어간다) 점수 맞춰서 학교이름 때문에 왔다가 후회하고 있는걸까? 아니면 그만큼 전공을 써먹을 곳이 없다는 뜻인가?

7. 수학과 역시 수학 강사들을 배출하는 든든한 통로가 된다. 압도적 1위다.

순수미술 학과도 마찬가지다. 동양화, 미술학, 서양화, 회화학과 학생들 중 남자의 18퍼센트, 여자의 47.8%가 학원업계에 종사한다. 음악 분야는 작곡, 성악, 기악, 음악학을 가리지 않고 학원 강사로 가장 많이 흘러들어간다.

8. 영상예술계열 학과(공연영상, 영상처리, 예술경영학과 등) 남자 졸업생 397명이 진출한 가장 빈도가 높은 분야는 어이없게 일반영업원이다.

전문대에서 특이한 것 몇가지 :

일본어 남자 졸업생 1위 : 웨이터 ,  영어 남자 졸업생 1위 : 전기, 전자제품조립 및 검사원, 문예창작 남자 졸업생 1위 : 상점판매 및 관리인 (슬프다)

 

너무 암울한가?

순수 학문들(인문학, 자연과학, 예능학)은 싸그리 통폐합을 해야 마땅한가? 아니면, 점점 커져가는 사교육계의 핵심 주역으로 키울 수 있도록 오히려 더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오늘은 머리가 아프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실 2005-01-27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딩동댕동. 맞습니다.3번 문항. 눈이 동그랗게..반짝반짝~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런데..사서가 아니면 갈데가 없으니..원~ 어여 빨리..모든 초,중,고에 사서교사가 의무적으로 생겨야 할텐데...그러면 저도 전직을~ 흐흐

2005-01-27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5-02-02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은 이미 버렸다... 한표.
 

내가 자주 가는 우리집 옆 슈퍼마켓은 24시간제로 운영된다. 카운터를 보는 여직원도 교대로 돌아가면서 일한다. 요즘같이 추운 날 출입구 옆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근무하는 여직원들은 주로 중소기업에서 단체로 맞춰 입는 군청색 잠바를 입고 있다.

그런데, 아무 관심없이 지나치기 마련인 카운터 직원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한 명이 있다. 주로 카운터를 보는 여직원은 평범하다못해 펑퍼짐하고 못생겼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으나 이 여직원은 그야말로 출중한 외모를 지녔다.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군청색 잠바를 입어도 스타일이 산다), 목소리면 목소리. 자연스런 긴 머리는 또 어떻고.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물론 옅은 화장 이외에는 치장을 하지 않은 모습이다. 이 정도의 자연스러운 매력을 풍기는 외모를 지닌 여성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바구니를 들고 계산을 기다리시는 한 아주머니는 연신 '참 곱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같이 일하는 남자 직원은 한 번이라도 말을 더 걸려고 수작 걸기 바쁘다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나도 이쁜 여자를 보면 정신 못차리는 스타일인지라 그 여직원이 있는 날이면 물건 사는 척 하면서 힐끗 힐끗 쳐다보기에 바빴고, 어쩌다가 눈이 마주치면 죄지은 듯 고개를 훽 돌리며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그런데 이 직원을 보면 드는 생각이 어이없게도 '기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마운 느낌마저 드니 이게 웬일인가.

물론 그리 높지 않은 학력에 따로 익힌 기술도 없으니 흘러 흘러 여기까지 들어왔겠지.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손님 장바구니에 든 상품들 바코드에 찍는 일이 대부분인데 재미는 또 있겠나. 이 일을 자부심 느끼면서 하는지 당장에 때려치우지 못해 안달인지는 몰라도, 일단 그 외모에 이런 일을 최소 몇개월동안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룸싸롱엔 대한민국에서 이쁘다고 하는 애들은 다 모였다고 하지 않나? 굳이 그런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요즘은 조금이라도 이쁘게 생기면 연예계니 모델이니 외모로 한 몫 하려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이들의 직업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학벌도 딸려, 외모도 받쳐 줘, 마음만 크게 먹으면 어디 가서 외모로 벌어먹을 수 있는 길이 널려 있는데. 그것도 박봉인 카운터일보다 재미도 있고 크게 돈을 모을 수 있는 일이 많고 많을텐데.

이 환락의 시대에 아직도 공장에서 조립 생산 활동하면서 열심히 일하거나 외로이 슈퍼마켓 카운터를 지켜내는 젊은이들이 갑자기 이뻐 보인다.

그 직원이 내 글을 본다면 분노할 지도 모르겠다. 외모가 정신을 지배하냐고, 자기는 자기 길을 묵묵히 갈 뿐인데 니가 뭔데 기특하다느니 고맙다느니 운운하는가 라고. 그렇지만 고마운 마음이 드는건 사실이다. 앞으로도 계속 물건사면서 힐끗 훔쳐볼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레져 2005-01-26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두 슈퍼마켓의 이쁜 아가씨를 보면 넋이 나갑니다. 게다가 상냥하기까지 하면...금상첨화지요. 서림님의 고운 글도 좋구요, 그 여직원이 꾸준히 그곳에 있어줘서 더 좋구요~ ^^

깍두기 2005-01-26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계속 물건사면서 힐끗 훔쳐볼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ㅎㅎㅎ 서림님, 전 갑자기 님이 아주 좋아질려고 합니다^^

엔리꼬 2005-01-2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여자분이 그러신데 남자인 저는 어떻겠습니까? 이건 남자의 본능이라서 결혼 유무와는 관계도 없습니다.
깍두기님~ 유부녀와 유부남끼리 서로 너무 좋아하면 비극이 됩니다. 적당히~ 적당히~

세실 2005-01-2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솔직하십니다 그려~ 흐흠. 하긴..저도 뭐...울 도서관 공익이 4명이 있는데 그중 한명이.... 일이나 생김이나, 과묵함이나...아주 똑 떨어지네요....그러면...그저 흐뭇해서 바라본답니다~

털짱 2005-02-06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진 글이라 뒤늦게 추천 한방 날립니다.^^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트 앞에 오늘자 C 일보 몇개가 놓여져 있다. 요즘들어 가끔 이런 짓거리를 하곤 하는데, 아마도 일종의 판촉용이 아닐까 예측해 본다.

조선일보 (음마, 이름 나와부렀네)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이러한 판촉 전략에 콧방귀를 뀌어야 하지만 나름대로 공짜중독증이 있는 나는 싫어하건 말건 이런 기회는 놓치지 않는다. 아, 그렇다고 판촉전략이 먹혔다는 것은 아니다. 당분간 조선일보를 내 돈 주고 사는 일은 없을테니.

조선일보를 싫어하지만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의 혐오주의자는 아니다. 그건 조선일보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를 화장실에서 뒷 닦는 데조차 쓰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혐오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건 적을 알아야 나를 안다는 모토로 공부하듯이 꼼꼼히 적진을 탐색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나, 그럴 만큼 투쟁적이지 못하다. 게다가 문자중독이 있어서 붕어빵 겉봉투에 쓰인 것까지 읽어야 성이 차는 내가 따끈따끈한 신문을 그냥 넘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그래도 시사저널에서 쓴 한겨레신문 관련 기사(내부 사정이 너무 어렵다는..)를 본 직후라 마음이 좋지 않았었는데, 많이 찍고도 남아돌아 이렇게 공짜로 판촉활동까지 벌이는 조선일보가 여간 얄미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광고지는 얼마나 많은가? 집으로 배달되는 한겨레신문에 광고 전단지는 2-3일에 한번씩 끼워져 있을까 말까인데, 이 놈의 신문에 기생하는 오늘치 광고지는 자그마치 8장이다. 그나마 오늘은 화요일이라 적은 편이었을 것이다.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 전품목을 50% 세일한다는 희소식은 이런 광고 전단지가 아니었더라면 절대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며, 모 백화점에 몇만원 이상이면 사은품을 준다는 것은 한겨레만 구독한다면 알아내기 힘든 고급(한겨레 입장에서는 고급, 다른 신문 입장에서는 일상) 정보이다.  결국 신문 소비자들은 신문의 논조가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면 동네 돌아가는 소식 알기 위해서라도 대형 신문사 제품을 선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미친다.

역시 인터넷 신문과 종이 신문의 차이는 확연하다. 인터넷 신문에서 그 신문의 기사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종이 신문에 없는 기사가 실리기는 한다) 기사의 배치를 통해 신문이 주장하는 오늘의 포커스를 알 수 있고, 광고를 통해서 또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자 조선일보 1면엔 광화문 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도발적으로 질문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정조와 노무현이 비슷하다는 발언을 했었고, 박정희가 한글로 쓴 현판을 정조의 글 짜깁기한 것으로 바꾸려는 데에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글을 1면과 5면을 통해, 그것도 모자라 사설까지 동원해서 이야기한다.

'사람들' 칸에는 하버드대에 입학한 여학생의 사진을 크게 싣고 하버드대 합격 이유를 집중 조명한다. 맛있는 공부 라는 섹션까지 발행하면서 학습지 회사의 광고 자리를 마련한다. (사실 이는 한겨레도 마찬가지다. 방향은 조금 다르겠지만)

국민의 함성이란 단체(공동대표 지만원)는 기사 아랫면에 크게 광고를 내서 '김정일 제거는 시간문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김정일은 중증 자폐증 환자입니다', '문제를 풀 줄 아는 60대와 둘러엎을 줄만 아는 40대 아이들', '노무현은 왜 시체같은 김정일만 사랑할까?'와 같은 자극적인 문장들로 가득 채웠다.

빈익빈 부익부의 시대. 한겨레는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공룡 조선일보는 후세에 대대로 번창할 것인가? 구경한번 잘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깍두기 2005-01-26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 덕분에 구경 잘했습니다. 저런 뻘짓이 먹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니....하긴 전 세계가 그런 판이라 별로 쪽팔릴 것도 없고, 실천이 따르지 않으니 제 말도 공허하기만 합니다.

sooninara 2005-01-26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저도 c일보 보고 있는데..광고지는 정말 많아요.ㅠ.ㅠ

엔리꼬 2005-01-26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 가끔 구경시켜 드릴께요. 생각도 하고 말이라도 하니 다행 아닌가 라고 혼자 생각하며 위로합니다.
수니나라님 / 저번에 님의 서재에서 c 일보와 관련된 글 읽었어요... 보급소 분들 이야기.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가끔 지역에 새로 개업한 찜질방이나 통닭집 소개 찌라시라면 환영할텐데 여긴 그냥 학원이나 상가분양 광고가 많네요.... 나랑 관계가 먼..
 

며칠 전 식사 후 사무실 멤버들이 앉아 과일을 깎아먹으면서 나눴던 말.

A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2시간만에 주파할 수 있대요."

나 "아, 그건 요즘 도룡뇽 소송이라고 그거 있지요? 지율스님이 단식하시는.... 그 천성산이 뚫려야 가능하답니다. 요즘 지율스님이 그것 때문에 단식을 하고 계시죠"

B "그런데 그 스님.. 의문이 드는 게 진짜 단식하는거 맞을까?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있다던데, 그리고 지금까지 몇십일을 단식한다는데... 그게 가능할까? 외부 접촉 끊는게 너무 수상하지 않아요?"

C "우리 신랑도 그러더라고요.. 저거 쇼 하는거 아니냐고... 사람이 어찌 저렇게 안먹고 살 수가 있냐고.."

B "맞아요.. 수상해요."

나 "지금 80 몇 일째입니다. 지금 육체는 거의 생물학적으로 볼 때 죽은 목숨이라고 합니다. 굶어 죽는 사람들, 굶어 죽는게 두려워서 일찍 죽는 거지, 스님처럼 죽을 각오를 하고 계신 분들은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고 봐야지요..."

D "전 단식하고 있는게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맞는 것 같아요.."

소귀에 경읽기라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천성산이 어떻고, 도룡뇽이 어떻고 설교를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나마 이 자리에서 빨리 터널이 뚫려야지 경제적으로 이득이 된다며 스님을 탓하지 않은 것을 차라리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건지...

 

내 인생은 나와 뜻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생각이 보편적인 사람들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는지, 이른바 비주류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실망하고 나 혼자만의 성을 쌓고 지냈던 적이 많았다.

그나마 대학 시절은 나의 전성기였고, 중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친하게 지내고 맘에 맞는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친하다는 것과 나와 생각을 같이 한다는 것은 여전히 달랐다. 지금까지도 자주 만나고 있는 대학 친구들은 나와 참 많이 다른 사람들이다. 정치 토론은 시도하지도 않을 정도로.... 그 당시 함께 신나게 활동했던 사람들은 지금 보니 나와 너무나 다른 견해와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어 또 다시 좌절, 실망하고 발길을 끊었다.

직장 생활도 실망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할까에 관심이 쏠려 있는 직장 사람들과 갓 졸업하고 여러 공상에 잠겨 있는 나는 어울리기가 힘들었다. 결국 공부를 한다는 핑계를 대고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학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같은 책을 보며 공부를 했으며, 인간관계에 어느 정도 만족한다. 그러나 여전히 배고프다.

나와 맞는 사람들을 찾지 못한 원인엔 나의 게으름도 한 몫 할 것이다. 항상 내 주위에 필연적으로 있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 외에는 시야를 넓히지 못했다. 내가 찾아 나서지 못하고 내가 그런 사람들을 모으려 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기야 몇 번 시도를 해봤지만 나는 또 실망하고 도망가고 말았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난 완벽을 추구하고 있는 듯 하다. 나와 성격도 비슷하고 사상도 비슷하고 정치적 색깔도 똑같아야 하고, 추구하는 가치며 살아온 배경도 비슷하길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기나 할까... 그리고 오히려 똑같은 사람이면 발전도 없고 재미도 없지 않을까? 참으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사람 좋아할 줄 모르는 한 소심맨의 투덜거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이건 이론적인 이야기이고, 여전히 사람과의 관계에 배고프다. 그것이 알라딘까지 흘러 들어온 이유일 수도 있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05-01-24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지기가 단식하는 동안 참 많이 들었던 얘기지요.
옆지기는 소금 대신 1리터 물병에 된장을 푼 뒤 체에 걸러 물만 마셨는데,
이걸 시비를 걸며 단식이 아니라 다이어트 아니냐 농짓거리하는 인간 많았죠. -.-;;

물만두 2005-01-24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런 게 얘기 거리가 된단말인가요?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보면 모르나 참... 화나네요...

깍두기 2005-01-24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님의 수척하신 얼굴 사진으로 한번만 봤어도 그런 말 못했을텐데 말입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리네요. 앞으로 가끔 놀러와도 되지요?

엔리꼬 2005-01-24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요... 그런데 된장을 풀고 물만 마셔도 좋은가봐요? 잘 몰라서...
물만두님/ 충분히 얘기거리가 되고도 남습니다. 발끈하지 못하는 제가 한심할 뿐이지요...
깍두기님/ 반갑습니다. 자주 놀러 오세요... 자주 와도 글이 업데이트 잘 안되서 낭패를 보시긴 하겠지만요... 저도 이벤트 참가했습니다.
 





이 책은 1976년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딱다구리 그레이트북스 총 100권 중 한 권이다.

내년이면 펴낸지 30년이 되는 이 책은 내가 어렸을 적 즐겨 읽던 책이다. 우리 아이가 커서 한글을 읽을 나이가 되어 이 책을 보여주면 구닥다리라고 인상찌푸리지는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세로쓰기는 아니지만 속지는 빛이 바랬다.

값을 보라, 한권에 290원....

이랬던 동서문화사.. 요즘 심심찮게 사원 모집 광고를 신문지상에서 많이 본다. 구직자들의 원칙 하나가 갑자기 떠오르는데, 자주 구인 신문광고를 내는 회사는 뭔가 문제점이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절대 지원하지 마라! 아마 여러모로 장사가 잘 안되서 기존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회사를 빠져나가는 모양이다.

당시 편집위원 즉, 그레이트북스라는 어린이 전집을 담당했을 것으로 보이는 그들의 면모를 보라. 김동리, 박목월, 천경자, 홍사중......

또 한가지.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쿠오레'라는 이름의 동화책은 없다. 그 사이 모두  '사랑의 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나보다. 쿠오레는 이탈리아어로 사랑 또는 마음이라고 한다. 로드무비님도 이런 이탈리아 뜻을 아시고 블로그 이름으로 지으신건지, 아니면 이 책이 감명깊게 남으셔서 그러신건지 궁금하다.

집 이사를 하다가 찾아낸 책들 가운데 기억에 참 많이 남는 책 한권을 기념으로 찍어본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5-01-19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추억의 딱따구리 문고... 근데 저는 왜 저 책을 못봤을까요???

로드무비 2005-01-19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짚모자 개구리가 너무 예뻐요. 색상도 좋고...
쿠오레 제목 보고 달려왔습니다.
어느 날 책 주문하면서 충동적으로 방 만들다가 머리속에 남아있는
그리운 책 제목으로 문패를 내걸었습니다.
거기 나오는 곱추 소년이 자기 방을 거의 작은 도서관으로 꾸미잖아요.
그게 너무 인상적이었나봐요.
'사랑의 학교'라는 식상한 제목보단 쿠오레가 훨씬 예쁜데 말이죠.
책을 참 깨끗하게 잘 보관하셨네요. 부럽습니다.


2005-01-19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엔리꼬 2005-01-20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님도 딱따구리 문고 보셨군요... 반가와요... 어린이용은 딱따구리고... 어른용으로도 전집을 냈었는데, 혹시 그건 모르시나요? 세로쓰기 하얀 표지였습니다.
로드무비님... 쿠오레가 덜 식상하죠... 알라딘 닉네임으로도 참 좋을 것 같아요... 쿠오레.. 곱사등이 넬리는 두번째 그림(뒷 표지)의 철몽 맨끝까지 올라가는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개구리... 마리오네뜨의 나라에서 같이 건너온 겁니다. 이쁘죠? 헤헤

CREBBP 2014-03-0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생각나서 인터넷 뒤져봤더니 아직도 소장하신 분이 계시네요.
어느날 집에 가보니 엄마가 버렸더라구요. 아들 주려고 했는데..
저 책과 함께 성장을 했는데.. 다른 책들도 사진이라도 좀 봤으면 좋겠네요.
...마르고 닳도록 읽은 책도 있고, 아예 안 읽고 그대로 화석이 된 책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