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정확히는 그제 저녁, 예술의 전당 근처의 우아한 식당에서 부서 회식을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자상한 인상의 한 아저씨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바로 황인용 아저씨. 60이 다 되셨거나 넘으셨을 나이지만 소년같은 그 모습이 어찌나 인상적이던지... 멋진 목소리 또한 여전했다. 패션감각도 여전하시고..

나는 싸인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반사적으로 메모지를 찾았고, 내 눈에 띈 것은 근사한 종이로 만든 테이블 위의 한장짜리 메뉴판(정확히는 메뉴판이라기보다 오늘의 특선 메뉴를 적은 종이). 레스토랑분들께는 죄송했지만, 황인용 아저씨 급에게 싸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드물 뿐더러 조그만 메모지 조각에 싸인을 청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메뉴판의 뒷면을 이용하기로 했다.



(절대 이런 비싼거 먹지 않았다...)

그가 잠시 외부 화장실에 나갔을 때 따라 나갔다가 그가 돌아오자 수줍게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저 영팝스때부터 팬이었습니다. 싸인 한장 부탁드립니다."

30대 중반의 한 아자씨가 갑자기 고백과 함께 싸인을 부탁하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것도 화장실 앞에서 말이다. 그래도 역시 매너리스트답게 '싸인한지 오래되었다'면서도 정성껏 이름을 묻고 어설프지만 싸인을 해주신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상기된 표정으로 테이블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어쩜 이리 입이 귀에 걸렸다는둥, 그렇게 좋아하느냐는둥. 나는 그들에게 '내 중학교 시절의 정신세계를 지배했었던 인물'이라고 적당히 과장이 들어간 말을 건네니 또다시 놀란다.

영혼이 피폐했었던  중학생 시절.  철없어서 행복하기만했던 국민학생 시절을 지나 살벌한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았던 그 시절......  좋은 선생에 대한 기억은 커녕 지금껏 제대로 기억나는 선생도 없는 그 암울했던 시절...

나에게 음악이 없었더라면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땐 시대의 대세이기도 했지만 팝송에 푹 빠져버렸고, 빌보드 차트를 외우다시피 했었다. 얼마나 공부를 등한시했으면, 지금은 S대를 나와 모 국가기관에서 잘나가고 있는 한 친구가 당시 내게 주었던 크리스마스 카드에 '제발 팝송 좀 그만 듣고 공부하자'란 덕담이 써있었을까...

가요가 지리멸렬했던 시절, 팝송은 젊은 영혼들의 마음을 후벼팠고, 라디오는 세련된 팝송들의 선율로 넘쳐났다. 그 선봉에 8시 kbs fm 황인용의 영팝스가 있었다.

저녁 8시, 빨간 내 라디오에서 척 맨지오니의 프루겔 혼 연주 'Give It All You Got'이 흘러나오고 곧이어 '황인용의 여엉~ 팝스'가 음악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오프닝을 장식하면, 나는 문을 꼭 닫고 음악세계에 빠져들었다. 공부안하냐는 부모님의 잔소리에 '음악을 듣지 않으면 공부가 안된다'는 지금 생각하면 전혀 근거없는 이론을 들이대며 끝까지 라디오를 놓지 않았다.

그때 들었던 노래들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지금도 그 시절의 노래들을 들으면 혼자 히죽 미소짓고 하는 것을 보면, 팝을 사랑했던 그 시절이 상당히 즐거웠었나보다.

어제는 예술인들로 보이는 이들과 함께 행사 준비를 위해 모인 것으로 보였다. 더이상 음악 위주의 FM에서 DJ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겠지만, 여전히 음악계, 예술계에 몸을 담고 활동을 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얼마전 파주 헤이리에 근사한 카페를 차린 모습을 사진을 통해 봤다. 운이 좋다면 그곳에서 황인용 아저씨가 직접 골라주신 음악을 그의 혼이 담긴 멋지고 근사한 스피커를 통해 들을 수도 있다. 그의 작품 해설을 직접 들으면서 마시는 커피는 얼마나 달콤할까....

어느 홈쇼핑 채널의 조악한 화면에서 제품의 효능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을 더이상 보고 싶지는 않다.  풍부한 지식과 좋은 매너, 특유의 재치와 멋진 목소리를 유익하게 활용했으면... 그를 통해 세상에 덜 알려지고 숨어있는 보석과 같은 노래들을 멋들어지게 소개받고 싶다.

 

* 나에게는 추억이 있는 그 시절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겠다. 아직 내가 잠들지 않았으니 오늘은 5월 17일이라고 믿고 싶다. 이 촐싹대고 붕 뜬 글이 18일에 쓴 글이 아니라 생각하니 마음속에 있는 부담은 조금 더는 느낌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ooninara 2005-05-18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저도 황인용아자씨 좋아아하는데..
요즘 예전의 스타들이 조악한 홈쇼핑 게스트로 나오는거 보면 마음이 짠~~하죠?
돈은 얼마나 받고 하는건지...

날개 2005-05-1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인 받은거 코팅해놔야겠습니다..^^ 축하드려요~

마냐 2005-05-1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촐싹대고 붕 뜬게...정말 좋아요. 님이 좋아서 폴짝거리는 모습이 보이는 거 같아 덩달아 신나잖아요. 추억도 함 꺼내주고...^^

암튼, 뜬금없지만....^^;; 그린야채를 즐겨먹는 현대인들의 고급샐러드....라는 설명은 좀 깨는군요.

엔리꼬 2005-05-18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아마 그 광고가 허리 디스크 제품이었을텐데... 실제로 그 분이 그 제품을 사용해서 나았기 때문에 광고를 하지 않았을까... 그냥 그렇게 생각해버렸습니다.
날개님.. 안그래도 코팅 생각 했었어요.... 감사합니다.
마냐님... 파주에 가면 볼 가능성도 크지만 이렇게 갑작스런 만남이라 더 뜻깊었어요.. 저도 '그린야채를 즐겨먹는 현대인들의 고급샐러드'라는 표현보고 웃긴다고 사람들한테 이야기했어요... 근데 너무 비싸지 않나요?
 

무려 3,692만원.....

아무리 외서라지만...

정가는 26,000원밖에 하지 않는데 파는 것은 왜 이리 비싼지.

책은 역시 알라딘에서 사야..

 

[외서] Gung Ho! Turn On the People in Any Organization (Hardcover) 수입음반
켄 블랜차드 저 | William Morrow & Co | 1997년 10월
중이미지보기
크게보기
정가 : 26,000원
판매가 : 36,926,500원(5% 할인)
: 3,692,650원 (10% 지급) + +   안내
4만원이상(도서/음반/DVD/Gift) 구매시 YES포인트 2천원 추가적립안내
[신용카드] 추가적립/할인 혜택을 확인하세요 안내
판매중 | 판매지수 : 7 | ISBN : 068815428X | 페이지 : 187
주문수량
 
발송예정일 : 4일 이내 (근무일 기준 5~7일 이내 상품 수령)
해외직수입도서로 주문 후 취소 및 반품이 불가능합니다.
     (단 파본이나 오발송인 경우 제외)
카트에 넣기 리스트에 넣기 바로 구매하기

 

 


댓글(8)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5-05-15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노부후사 2005-05-15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거 하나 사면... 그래포인트가 엄청나겠군요. ㅋ

엔리꼬 2005-05-15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헉2
에피님... 아마 금이나 다이아몬드를 뽀너스로 주지 않을까요?

LAYLA 2005-05-15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케이 캐쉬백도 엄청나겠군요 하하하 ^ㅆ^

마태우스 2005-05-15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책인가봐요!! 적립금이 삼백대라니....^^

엔리꼬 2005-05-15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 저거 안사고 캐시백 안받으렵니다... 내일이면 고쳐질련가요?
마태우스님.... 음, 저게 경영서로 알고 있는데, 저걸 읽고 깨달음을 얻어 성공한다면, 그 정도의 값은 하지 않을까요? 100억 버는데 저 정도 가격쯤이야...

하이드 2005-05-16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up. error desne~ Aladdin, You win!

엔리꼬 2005-05-1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고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스 하이드님 여행 잘 다녀오세요. 화이팅입니다...
 

 

4월은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프로야구가 시작하는 달. 국민학교 시절부터 꿈과 희망을 선물했던(정말?) 프로야구는 20년 넘도록 나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이다. 최근 몇 년동안 꼴찌를 차지했던 롯데 자이언츠가 5연승이란 행진을 하고 있어 올해는 흥분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야구의 묘미는 무얼까? 야구를 즐기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야구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야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직접 찾아간 야구장의 드넓은 잔디(인조도 있다)를 배경으로 선수들이 멋진 플레이를 펼치고, 함께 응원도 하고 야유도 보내는 재미로 야구를 좋아한다. 야구 규칙이나 선수들의 면모를 알지 못해도 무조건 재미있다. '땅' 소리 나면서 외야 관중석으로 쏙 빨려 들어가는 홈런공을 보고 있노라면 스트레스가 쫙 풀리는 짜릿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 분들은 매일매일 TV에서 중계하는 야구경기나 응원하는 팀이 없을 경우 흥미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경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또 한 부류는 좋아하는 야구팀이 있어 그 팀을 응원하는 재미로 야구를 즐기는 경우다. 주로 자신의 연고지 팀을 응원한다. 다들 알다시피 5공화국의 3S 정책의 하나로 도입되면서 지역색을 가장 강하게 가지게 된 스포츠가 바로 프로야구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각 지역 스포츠신문의 1면은 지역의 연고팀과 관련된 뉴스가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부산이 연고지인 롯데가 11대 1로 삼성에게 지더라도, 부산에서 발행되는 스포츠신문에는 "마해영 1점 홈런포"와 같은 1면 기사가 나가는 경우다. 자신의 연고지에 소속된 프로야구팀의 우승은 그 지역의 경사로 알고 지역의 발전으로 혹시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기 쉽다. 그러나 해태의 예를 보면 알겠지만 그것은 헛된 지역주의의 꿈일 뿐이다.

이들 중에는 물론 야구 그 자체의 묘미를 알고 즐기는 사람들도 많지만, 야구팀을 응원하면서 자신의 애향심을 높이고 자부심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오죽했으면 얼마 전 롯데의 이대호가 극적인 만루홈런을 쳤을 때 '울 뻔 했다'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이들의 단점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죽을 쑤고 있을 때는 관심도가 뚝 떨어진다는 점이다. 요 몇 년 사이 부산이 그랬다. 부산 사람들은 요 몇 년동안 야구 이야기를 하기 싫어했다. 야구의 침체는 경제 침체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하긴 몇 만명이 매일 야구장을 찾으면서 여기저기서 푸는 돈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음 부류는 스포츠로서 프로야구를 즐기는 경우다. 야구가 축구나 배구, 권투와 다른 점이 있는데, 이 점에 묘미를 느끼는 경우다. 각각의 스포츠는 나름의 매력이 있고, 그러한 매력들은 스포츠의 인기 순위를 좌우한다. 물론 스포츠는 문화적 배경과 혼합되기 때문에 각국의 인기 스포츠가 모두 다르긴 하다.


아마(고교) 야구와 프로 야구는 겉보기엔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가 있다. 아마 야구는 단기전이다. 토너먼트이기 때문에 결승전까지 가봤자 대여섯 경기를 1주일 정도에 끝내면 대회가 끝난다. 그러므로 총력전이 될 수밖에 없어 몇몇 초고교급 투수들은 싱싱한 어깨를 혹사당한다. 1회전부터 결승전까지 모두 한사람이 던진 학교도 있을 정도로. 여기서는 경기 운용의 묘미가 많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도 아마야구는 나름의 풋풋함과 어설픔으로 프로야구와는 또 다른 맛을 낸다.


프로야구는 다르다. 1년에 150경기 이상을 치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을 어떻게 잘 쓰는가가 중요해진다. 선발투수들은 선수 보호 차원에서 4-5일만에 등판을 하게 되고(염종석 선수의 경우 어깨부상의 후유증으로 하루 100개를 던지고 나면 힘들어서 며칠 동안 앓는단다), 투수들의 업무는 분업화되어 중간계투, 마무리투수와 같은 보직을 가지게 된다. 구원투수를 내세울 적당한 시기를 정확히 판단해야 하며, 축적된 데이터를 참조하여 각 투수나 타자에게 강한 선수를 내세운다.

공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왼손 투수에는 오른손 타자가 강하고, 타격이 부진한 이유 뒤엔 타격폼을 어설프게 변화시킨 시도가 있으며, 주자가 1, 2루에 있을 때는 3루측으로 번트를 대야 하며, 무작정 홈런치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주자를 루상에 많이 보내는 것이 유리하며, 투수의 투구 패턴을 간파하여 도루를 실행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

부상선수만 없다면 오늘 경기나 내일 경기의 용병술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그래서 그렇게 한 시즌을 치루는 프로축구의 경우와는 달리, 프로야구에서는 매 경기에서 매번 다른 용병술과 작전을 구사해야 하고 다양한 변수가 나타나 재미를 증폭시킨다. 이런 맛을 아는 팬들은 그야말로 야구의 진정한 맛을 아는 사람들이다.


야구는, 특히 프로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라고 부르고 싶다. 야구는 무수한 숫자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스포츠다. 축구가 기껏해야 득점, 어시스트, 골키퍼의 경기당 골허용률 등의 순위가 나오는데 그쳐 기록의 스포츠라 부르기는 어려운 반면, 야구는 한 경기만 끝나도 수많은 숫자의 조합이 만들어지고 그 데이터들은 각 영역별로 순위로 매겨진다.


투수 부분에서는 방어율, 탈삼진, 승률, 다승, 세이브, 홀드 등의 순위가 매겨지며, 타자 부분에서는 타율, 최다안타, 도루, 타점, 출루율, 장타율, 홈런 등의 타이틀이 있으며, 포수를 평가하는데 있어서도 도루 저지율이란 숫자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안타를 치느냐 마느냐에 따라 하루하루 뒤바뀌는 타격 순위를 지켜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물론, 시즌 종반 각 부분의 타이틀을 얻기 위해 타격 1위를 달리는 타자를 경기에 출장시키지 않는다던지, 억지로 승리투수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5회 말 2사에 선발투수를 바꾼다던지 (야구를 아는 사람은 대략 무슨 소리인지 안다.)하는 부작용도 나오지만, 이런 묘미가 야구의 잔재미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숫자 놀음으로 어느 선수는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하고, 어느 선수는 훨씬 좋은 조건으로 다른 팀에 팔려가기도 하며, 홈런왕이란 이름으로 광고세계에 진출하기도 한다. 또, 누구는 초라한 성적 때문에 야구판을 떠나서 어떤 음식점을 차릴지 고민도 하며, 작년 대비 20% 임금삭감이란 시련을 겪으며 2군으로 내려가기도 한다.


100년이 넘는 프로야구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 집적하고 있는 데이터들은 우리와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작년 일본에서 건너간 이치로가 수립한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은 메이저리그 역사를 다시 쓰게 했으며, 일본인들의 자부심을 드높였다. 통계가 많이 축적되어 있는 만큼 100년 이상의 기록을 깬다는 것은 때로는 위대한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몇 년 전 최다경기 연속출장 신기록을 세우고 스스로 기록을 중단시킨 볼티모어의 칼 립켄 주니어는 그가 보유한 숫자의 위대함에 겸손한 인간미를 더해 온 미국인들을 감동시켰다.


미국 MLB 중계를 보면 아래 자막으로 퀴즈를 내곤 하는데, 그 퀴즈는 한국의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저스 구장에서 가장 많은 3루타를 만든 매리너스의 타자의 순위는 어떠한가? 1970년 이후 뉴욕 양키스를 대상으로 가장 많은 승리를 엮어낸 투수는 누구인가? 맘만 먹으면 무궁무진한 데이터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물론 흥미 없는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숫자일 뿐이지만.


남편이 휴일에 외출도 마다하고 집에서 야구 중계를 보고 있을 때, 넌지시 물어보라. 넋 놓고 야구를 수동적으로 보고 있다면, 그것은 시간 때우기와 다름 아니다. 그러나 야구를 분석적으로 바라본다면, 오묘하고도 신비로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탐험자가 될 수 있다.


* 다음 페이퍼 제목 예고 : 야구와 나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깍두기 2005-04-29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어릴적 동생들과 우리가 아는 야구용어가 몇개나 되는지 연습장에 적어보던 기억이 나는군요.

2005-04-29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4-29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구 이젠 안 보게 되네요.
옛날 구덕운동장에 대학야구 보러갔던 기억나요.
인간들이 야구 보러 가서 그렇게 술을 마시더구만요.^^

엔리꼬 2005-04-29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요즘 1등 몇번 먹으셨습니다. 감사^^ 재미있는 놀이 하셨군요..
로드무비님... 지적 감사합니다.(서재손님에게만) 저희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구덕운동장이 있습니다. 국민학생때는 그 뒤편 공터에서 야구도 하고 그랬는데요, 지금 가보니 온통 차들로 꽉 차 있더군요... 추억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Phantomlady 2005-04-30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 '야구와 나'라는 詩가 생각났습니다. 전 야구팬과 축구팬의 아웅다웅이 넘 잼있어요. 그치들은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야구는 스포츠가 아니다 ^^

하이드 2005-04-30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어제 얼핏 봤을때 분명 미스하이드 이름이 있었는데! 빼버리신거야요?

하이드 2005-04-30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야구장 갔다가 완전 미치는 줄 알았어요 ㅜㅜ 흑. 6연승이라니, LG팬들보다 롯데팬이 더 많았고, 응원도 장난 아니였습니다. 파도도 심판석 뒤 가운데맨 위부터 저 멀리 외야까지. 쭈우욱- 제가 백만년만에 바로 '그날' 부터 야구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때 계속 롯데 꼴찌였죠. 정말 역시나!구나 화났는데, 요즘은 한경기 할때마다, 아, 진짜 잘했으니깐 질때가 되었는데, 하며 불안불안합니다. 어제도 오늘쯤은 질꺼야 하면서, 맘 편히 봤는데, 역전승이더군요. 이대호를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귀에 아른아른합니다!

하이드 2005-04-30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또 하이라이트 보고 있어요. 어제꺼 koreabaseball.or.kr에서 볼 수 있지요. 흐흐
 

저번에 본가에서 대대적인 짐정리를 한 후 가져온 내 물건들 중에 상장들이 눈에 띄었다.

국민학생 시절부터 고등학생 시절까지 받았던 각종 상들. 대부분은 개근상이나 임명장, 모범상 따위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각종 글짓기 상.. (사진을 클릭하면 크기가 늘어납니다.)



요즘도 그러는지 몰라도 그 당시엔 여러 대회를 많이 했나보다.. 그러니 나도 1년에 1-2번은 꼭 우수상을 탔지.

글짓기 대회 명목도 다양하다. 올림픽의 날, 자연보호, 과학문고 읽기, 개교기념일 축하, 통일, 반공도서, 국어순화 운동....

그 중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유일한 상은 반공도서 독후감 대회~  이랬던 어린이가 커서 반공정신이 희박하기로 소문난 아이로 컸으니 참~~

83년도 즈음의 반공교육이 거세긴 했나보다. 나같이 순진하고 사회에 관심없을 수 밖에 없는 국민학생이 3회에 걸쳐서 KAL기 폭파사고를 낸 소련놈들을 이렇게 비난하는 일기를 쓰다니....



 "이 북극곰아!"   당시 국민학교 6학년의 일기에서 나오기 힘든 이런 문장들이 모이고 모여 반공글짓기의 무대에서 빛을 발했겠지? 아니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북괴와 소련 악당들에 대한 증오의 마음을 잘 표현만 했다면 심사위원들이 보기에 좋은 글이 아닐 수 없었을꺼야.

아무튼, 당시에 희한했던 기억 하나. 책읽고 독후감 쓰기 숙제때 대략 줄거리 쓰고 감상 몇줄 쓰기만 했는데도 성적이 꽤 잘 나왔었다. 그때부터 내가 자만하지 않았나 싶다.   대충 써도 글은 나온다..... 그걸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국민학교 시절이 좋은 시절의 끝이었다. 공부 별로 안했는데도 성적이 제법 나왔다... 그걸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난 여러모로 국민학교 시절에서 더이상 한발자욱도 가지 못했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5-04-17 0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3년도에 국민학생이셨다니요.....제 학번이83학번인뎅...헉--;;
반공 글짓기 상장 무쟈게 많군요..반공소년^^
저와 같은 종씨인 님! 한밤중에 뵈니 더욱 반가워요^^

LAYLA 2005-04-17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저도 북극곰에서 웃었습니다. 저 또박또박한 글씨체..연필자욱...^^

엔리꼬 2005-04-17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 여우님 ~ 저는 90학번이예요....7살밖에 차이 안나네요.... 아.. 반공 글짓기 상장은 저거 중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름이 공개가 되었네요.. 저도 반갑습니다.... 안주무시고 뭐하시나요..
LAYLA님.. 파란여우님은 83학번이신데, 님은 83년에 태어나지도 않으셨지요? ㅋㅋ 아마 북극곰은 언론에서 썼던 말이 아닐까 추측도 해봅니다.

BRINY 2005-04-1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북극곰아!] 에서 웃고 갑니다.

울보 2005-04-17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추억에 잠겨보고 갑니다,,,

깍두기 2005-04-17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모범 소년 같은 글씨로군요

엔리꼬 2005-04-17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제가 봐도 웃겨요....
울보님... 그저 추억에 잠기시면 안되고요, 제가 글짓기 상 많이 탔다는거 자랑하는거니깐요.. 거기에 감탄을 하셨어야지요.. ㅋㅋㅋ
깍두기님.. 제가 좀 범생이었어요... 국민학교 시절부터요..

파란여우 2005-05-13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가지 정정 합니다.
교장 선생님이 저와 종씨였군요^^. 그날 음주 댓글이었나봐요..히히^^

sooninara 2005-05-18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잘쓰셨네요^^ 북극곰들은 이젠 뭐하나??
칼기 폭파는 워낙 큰 사건이라서..전 국민학교때 똘이장군 보고 컸는데요..
북한 사람들은 전부 늑대얼굴인지 알았다가 아니란걸 알고 엄청 놀랐어요^^
 

 우리 할머니. 우리 아버지의 어머니.


할머니는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가서 아들 딸 하나씩 낳으셨다. 신의주에서 목재업을 크게 하시던 할아버지는 간단한 수술을 받으시다가 감염이 되어 젊은 나이에 어이없게도 돌아가시고 만다. 그 때 할머니의 나이는 22살. 졸지에 홀로 되신 할머니께서는 해방 후 친척들과 함께 공산당 정권을 피해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피난오셨다. 수중에 남은 재산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바닥났고, 할머니는 고된 생활전선에 뛰어드신다.


소학교 출신의 젊은 과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코흘리개 아이들을 위해서 온갖 굳은 일을 다 하셨단다. 최근에 들은 바로는 영화배급업에도 손을 대셨다고 한다. 현재의 영화배급과는 차원이 다른 일을 하셨겠지만,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영화보기를 즐기시는 이유가 여기 있었던 모양이다. 열심히 일하신 덕인지, 돈버는 수완이 좋으셨는지 할머니는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시대의 흐름을 통찰하는 능력(몸에 배인 생존전략과 눈치)을 가지신 덕에 아들 딸을 돈 잘 벌 수 있는 대학 학과에 입학시키셨다.


시대를 고되게 살아오신 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할머니는 보수적이시다. 또한, 자나 깨나 자식들의 성공을 바라신다. 물론 여기서의 성공은 경제적 부의 축적이다. 아직도 손자인 내가 치과의사가 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신다. (난 치과의사가 되고 싶지도 않고, 그럴 능력도 없었지만...) 또한, 금강산길이 열렸을 때, 한번 가서 구경하고 오시라고 권해 드려도 북한 공산당 놈들이 어떻게 할지 두려워서 절대로 가시지 않겠다고 하신다. 휴전한지 몇십년이 지났고, 남북 정상이 포옹했고, 개성공단에서 냄비가 생산되어 남쪽의 백화점에서 팔리는 시대이지만, 아직까지도 북쪽에 대한 할머니의 마음은 얼음처럼 차다.

편하게만 살아온 나의 입장에서 볼 때 할머니의 보수적 성향은 못마땅한 것이지만, 할머니를 이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고통의 60여년 세월이었다고 생각하면 그렇다고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남편과 사별한 지 무려 63년째. 상상할 수도 없는 긴긴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시면서도 악바리처럼 아이 둘을 키우고 대학공부까지 시키신 그 힘. 재혼은 물론 변변찮은 연애도 안하시고 지금껏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시느라 푹 쉬시지도 않는 할머니의 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내가 생각할 때는 할머니의 힘은 '천주님'에 대한 신앙에서 나온다. 사별하신 후 이웃의 권유로 신의주에서 성당을 다니신 이래, 지금도 힘이 부치시지 않으시면 새벽마다 성당에 다니시는 열혈 신자이시다. 항상 묵주반지를 끼고 다니시고, 틈만 나시면 기도를 하신다. 그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할머니의 중심을 잡아준 것은 눈 앞에 아른거리는 어린 아들 딸들과 손자 손녀의 모습이었겠지만, 그 뒤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것은 신앙이라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기복신앙이란 표현으로 우리나라 종교와 기도 방식을 폄하했던 나이지만, 할머니와 같은 삶을 살아오신 분들께 나의 어줍잖은 비판은 사치로 느껴질 뿐이다.


어떻게 하면 할머니 인생을 이용해서 페이퍼 하나 더 쓸까 고민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할머니께서는 손자를 위해서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시고 계실 것이다. 자식 잘되기를 소원하는 기도라서 내 입장에서는 크게 부담스럽지만, 기도를 하는 순간이 할머니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일 거라고 생각하니 또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한다.


최근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하셨다.

교황과 동갑내기인 우리 할머니에게 이 사건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될까 생각하면 두렵기만 하다. 84년 교황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누구라도 그랬듯이 서울 여의도 광장까지 달려가서 맞이하셨던 우리 할머니. 어쩌면 그 길고 긴 60여년 동안 교황님은 할머니의 연애 상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철없는 젊은이들의 일회용 사랑이 아닌 고귀한 영혼의 짝사랑이 아니었을까. 할머니의 가녀린 영혼을 쓰다듬어 주시는 모든 신부님, 수녀님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님, 하느님까지 모두 연인이었을 것이라.

내가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던 어린 시절부터 교황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던 요한 바오로 2세. 그를 대체할 누군가가 뽑혀 그의 자리에 선다는 것도 너무나 낯설기만 하다. 신앙심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는 내가 이럴진대, 27년 동안 변치 않는 믿음과 존경과 사랑을 보냈던 할머니의 상실감은 측정 불가능하리라.


그런 동갑내기 짝사랑의 대상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나는 할머니께 안부 전화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교황님이 위독하다는 뉴스를 들으시고 얼마나 많은 기도를 올리셨을까? 그 많은 기도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셨을 때 얼마나 힘이 빠지셨을까? 상심하셔서 건강이 더 나빠지시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가까이 일산 고모댁에 계셔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였는데, '모나카' 한 상자 사들고 조만간 안부인사 드리러 가야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날개 2005-04-08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22세때 홀로 되셨으면 정말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서림님이 할머니께 잘해드리셔야 겠네요..^^

BRINY 2005-04-08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2세때 홀로 되셨다니...1년전에 돌아가신 큰 이모께서 생전에 [나는 네 나이 때 애들 데리고 혼자 되었는데]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마냐 2005-04-08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하면...할머니 인생을 이용하야...........아, 서림님의 촌철살인 감각은 낭중지추처럼 삐져나옵니다.

엔리꼬 2005-04-08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잘 해드려야 하는데, 쩝 마음뿐입니다....
BRINY님, 예전엔 어찌 이런 고통들이 많았는지요.. 요즘은 부모가 애 하나 키우기도 힘들어 하는데 말입니다.
마냐님.. 짧은 문장에 어려운 사자성어를 두개씩이나.... 그런데 이건 사실이예요... 흑흑

파란여우 2005-04-10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핀란드 물의를 두 번다시 일으키시지 않을걸로 알고 있습니다.(흠!!!!)
할머니를 일찍 여읜(사실은 태어나기전에 돌아가셔서) 저는
이 글을 읽으며 마음이 짠해집니다.
낙엽처럼 바삭바삭하고 따듯한 할머니 손을 만져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