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을 통해 체코에서 직접 공수해 온 마리오네뜨 부부 (부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직접 고르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그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어느정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아직까지는 장난꾸러기 아이들 때문에 제대로 빛을 발하지는 못했지만 얼마 뒤 한번 제대로 움직여보리라. 기대하시라..


이 놈 역시 체코산 피노키오다. 이것이 나름대로 수작업이다보니 엄청 비싸다. 무려.... 나무로 만들어서 꽤 묵직하다. 따라서 힘이 좋아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한번 줄이 꼬이면 제대로 풀기가 힘들어서 꼭 교수형 당한 모양이지만 저렇게 높은 곳에 올려놨다. 아래 보이는 저 놈 손에 들어가는 날엔 끝장이다.


 이 인형은 옆지기가 프랑스 갔을 때 부탁한 것이다. 나는 조작의 용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누누히 전달했건만 찾기 힘들다는 이유로 이 뚱뚱하고 몸이 뻣뻣한 할머니를 골라왔다. (사실 할머니인지 할아버지인지 구분이 안간다.)  잘 만들어서 장식용으로는 멋지지만 활동성이 떨어진다. 관절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나이가 드는 건 인형도 마찬가지인가보다.

마리오네뜨 멋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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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2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제 헝겊마녀인형은 지우길 잘했네요.
설마 그새 보신 건 아니죠?
피노키오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아, 근사합니다.^^

2004-10-29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4-10-29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눈엔 할머니로 보이네요.
그런데 사진 속의 아가 정말 귀엽네요. 돌 때인가요? 지금은 몇 개월?

엔리꼬 2004-10-29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헝겊마녀인형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런데 왜 지우셨는지...
아니 꼭 비싼것만 근사하란 법이 있나요? 이것들은 한번 움직이기도 부담스러워요..
헝겊인형은 어디서 구하셨는지? 국내에서는 온라인으로 파는 것은 잘 못봐서요...
아들이 크면 인형극이나 보러 다녀야겠다...
조선인님..
반가워요.. 님 쓰신 글의 보이지 않는 애독자랍니다. 음.. 마로보다는 작고요..(마치 직접 본 것처럼..) 이제 20개월 접어들어갑니다. 저건 돌사진이고요... 약간 사진빨이긴 하지만 실제로도 귀여워요.. 나중에 한번 올려야지...

2004-11-05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oninara 2004-12-21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멋지구리합니다..그리고 아래 사진은 아드님인가요?

아이들 손에 들어가면 남아나지 않겠어요..ㅋㅋ
 

오늘 인터넷으로 사이트 끄적거리다고 전지현에 관한 기사를 봤다.

전지현이 지금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한 달 코스로 갔는데, 명품 배낭만 제외한다면 한류열풍 연예인같지 않게 티 안내고 다니고, 의외로 엽기적인 그녀 영화 속 인물과는 반대로 성격이 차분하며 조용하게 공부만 하더라..  뭐 이런 내용이었다.

그런데, 기사 중에 '전지현은 여느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쉬는 시간이면 콜라에 햄버거를 사먹으며 잘 어울려 다녔다.'라는 문장을 보면서 곁가지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연예인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을 가끔 너무나도 바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삶을 사는 일반인들을 동경하지는 않을테다. 그런데, 연예인의 특권이 무엇인가? 바로 언론의 스폿라이트 아닌가?

이런 상상을 해본다.

연예인들이 정말 자기만의 독특한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누구처럼 연예생활과 카레이서 생활을 같이 하는 것도 멋지겠지만, 아무래도 내 맘대로 생각하니 아래와 같이 내가 선호하는 쪽으로 독특하다면 더욱 멋지겠다.

유니세프니 사랑의 장기기증운동이니 하는 것처럼 협회측에서 먼저 홍보대사를 제안하여 일년에 몇번 얼굴이나 비춰주고 한두번 봉사하러 잠깐 가는 얼굴마담역할보다는, 그 사람이 선택해서 뭔가 사회에 공헌이 되는 일에 힘을 쏟는다면 참 좋겠다.

인기있는 발라드 가수지만 대안에너지 환경연대의 회원으로 적극 참여를 하며 개발과 양산 초기에 있는 수소가스 자동차를 비싼 값에 구입하고 다니면서 홍보한다던가, 요즘 새로 뜨는 영화배우가 '동물원의 역습'과 같은 책을 감명깊게 읽고 동물원 뜯어고치기 시민연대에 가입한 후 직접 동물원 가서 실태조사도 하고 항의방문도 하는 것이다...  어느정도 잘 나가는 한 배우는 몸의 이유라기보다는 철학적 이유로 육식을 거부, 채식주의를 전파하고 책도 내고 강연회도 개최하고 모임도 만든다.

상상만 해도 참 재밌지 않나? 현실적 제약은 많지만 말이다.

물론, 정치적 커밍아웃을 한 민주노동당의 오지혜, 봉준호 외의 여러 사람들도 있고, 직접 참여연대에 방문했던 자우림과 같은 친구들도 있다. 그렇지만 적당히 정치색을 띄면서, 너무 개인적 취미도 아닌 위와 같은 공익적 시민사회 활동에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유명인은 좀 색다르지 않을까?

유행만 좇고 무뇌아처럼 획일화되어가는 그쪽 계통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의 뚜렷한 소신과 신념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본의 아니게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선도할 수 있다면 참 멋질텐데... 유명인의 지위를 역으로 잘 이용하는 전략인 셈이다. 내가 유명인이라면 이런 일을 더 잘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하려던 것도 유명인이 되서 못해버리는 경우가 생길까?

에구... '너나 잘해라' 라는 말이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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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후사 2004-10-29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전지현이랑 수업을 같이 들은적이 있었어요.
"전지현 떳다" 하니까 건물 전체가 술렁거리면서 난리가 났었죠.
기억키로 전지현은 청바지에 청재킷 그리고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는데 옆에 친구로 보임직한 여학생과 얘기하고 있었어요.
그 모습이 그냥 평범한 여대생 - 쓰고 보니 조금 이상하네요. ^^'' - 이더군요.
새삼 텔레비전의 위력을 절감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엔리꼬 2004-10-30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학교에 최진실이 '질투' 촬영하러 온 적이 있어요.. 다들 어찌나 좋아했는지...
음.. 세대차 느끼는군...

sooninara 2004-12-21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질투..최수종.최진실 주인공이었죠? 역쉬 30대와 20대는 달라요..
 

오래간만의 술자리.
어쩌다가 이야기는 주례 이야기로 옮겨갔다.

지도교수님의 20년 전 결혼식 주례는 요즘 뜨고 계시는 천주교계의 이단아 함세웅 신부님이었고, 자신의 15년 전 결혼식 주례는 그 유명한 김승훈 신부님이라는 다 알려진 이야기를 늦깎이 입학생인 한 선배는 자랑삼아 또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그랬다.
"아! 저도 제 결혼식때 천주교계의 태두를 주례로 모실 수 있었는데, 그냥 평범한 분으로 했습니다"라고.

다들 궁금해서 누구냐고 묻는다.
"원래 그 신부님의 형이 저희 아버님 친구분입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자주 뵈었고, 몇몇 가족들이 동반 여행갈 때 동행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답니다. 주일이면 숙소였던 콘도 방에서 그 신부님께서 직접 미사를 집전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교회법에 어긋나는건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 신부님께 연락을 했으면 흔쾌히, 아주 흔쾌히 주례를 봐주셨을텐데..."

"아, 글쎄 누구냐고..."
"아, 네. 그 분은 박*(일명 빠콩) 신부님이십니다."

"(허걱)......"
"야,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 연구회 멤버들 주례는 완전 좌우 합작이었겠네... 큭큭"

유명하지만 많은 욕을 받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안다는 것은 참 곤혹스러운 일이다.

주위 사람에게는 참 다정다감하다. 게다가 어찌나 어린 조카를 아끼시는지, 그 모습만 보면 참 좋다. 그러나 그 신부님께 사적 유감은 없지만, 객관적으로 엄청 싫어한다. 그래도 그 분을 싫어한다는 것이 혹시나 그 분의 형, 그러니까 아버님 친구분께 누가 되지는 않을까, 명색이 천주교 신자인데 하느님의 사제를 그리 미워해도 되나? 별별 소심한 생각이 다 든다.

그래도 미워하기로 했다. 91년 그의 활약상, 정국 반전의 주역임을 아는 나로서 어찌 그를 좋아할 수 있겠는가? 결혼식을 안하면 안했지, 어떻게 그 분을 주례로 모실 수 있는가? 주례사 하다가 주사파 이야기 나오면 어쩌려고...

요즘 다시 스타가 되셨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이 엄청 욕을 한다. 그러나, 최소한 같이 욕하지는 않는다. 그게 나 나름대로의 행동 제약방식이다. 야, 나도 너무 이성적이다.

나중에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그때도 여전히 아무런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냥 맨날 하는 그 소리, "내가 전향시킨 주사파 몇 명이나 돼.", "주사파 걔들 북한 김정일 지령받고 돈받았어."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절대로 앞에서 싫은 소리 못하겠다...  생김새가 무서워서 그렇냐고? 그럴 수도 있다. 어차피 깊이 있는 논쟁은 이루어지지 않으니깐?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래도 사적인 만남 아닌가? 앞으로 개인적 대면은 평생동안 없기를 간곡히 바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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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27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콩 신부님은 한때 무척 존경했던 신부님이에요.
좋아하던 사람이 이상하게 변한 모습 보면 인생이 무섭습니다.

노부후사 2004-10-27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콩 신부 정말 밥맛이에요. -ㄴ-;;
한때 가톨릭 신자였지만 지금은 그때 관두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슴다. 한국에서 종교를 갖는다는 건 신을 믿는 행위 이상의 무엇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예컨대 돈이라든지...

엔리꼬 2004-10-27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 아, 존경하실 정도였군요... 마태님도 말씀하셨지만 선민의식이 있는건지.. 끊임없이 언론에서 주목받고 싶어하는 듯한 인상을 받아요.
Epimetheus님 .. 음.. 종교인이 다 그렇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어딜 가나 잘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으니깐요... 저도 가끔 성당가는 종교인이긴 하지만 여러 비뚤어진 모습에는 아주 불만이 많지요.
 

나에게 있어 신문보기는 인터넷 시대라는 지금까지도 꽤 중요한 버릇으로 남아있다. 신문의 잉크냄새만 맡아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퍼지는 알러지 환자도 있음을 TV에서 알았지만, 난 그 잉크 냄새를 즐기는 족속이다.

아침에 갓 발행된 신문을 읽지 못하면 하루종일 찝찝한 기분이 든다. 그러고는 늦은 밤이든 며칠 지난 후가 되었든 모든 면을 뒤져본 후에야 신문을 버린다. 신문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각종 미디어가 있어도, 우리 집에 배달된 신문의 모든 면을 손수 뒤지지 않으면 뭔가 할 일을 다 못 끝낸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특이한 강박증에 가까운 버릇은 어린 시절부터 길러진 것이다.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마도 국민학교 고학년때부터 신문을 읽었던 것 같다. 어렸을 적부터 현재까지 부모님께서 받아보시는 신문은 c일보. 지금이야 그 신문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만, 그때야 그런 게 어디 있었나? 그때 신문은 세상과 통하는 흔치 않는 통로이자 지식의 보고였다.

일찍 일어나시는 아버지는 아침마다 화장실을 가시면서 배달된 신문을 항상 가지고 들어 가셨고, 어느 정도 훑으신 다음에는 마루에 던져 놓으셨다. 늦게 일어난 우리들은 신문 쟁탈전을 벌이지만 결국은 스포츠 면을 비롯한 알짜배기 지면은 장남이 차지하고, 우리 남매는 재미가 떨어지는 나머지 부분부터 보는 경우가 많았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까지 우리 삼남매는 나눠진 신문을 각자 펼쳐놓고 쪼그려 앉아 읽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곤 했다.

당시에는 헤드라인은 물론 기사의 많은 부분까지 한자로 표기되어 있었다. 지금이야 상상도 못하지만 스포츠면의 선수 이름까지 한글 표기 전혀 없는 한자였다. 프로야구에 심취했던 나로서는 김시진(金始眞)이니 김봉연(金奉淵)이니 윤동균(尹東均)이니 하는 지면에 실릴만한 선수들의 한자 이름을 읽어내야 했다.

다행히도 국민학교 때 천자문 서예를 배운 적이 있어서 한자에 나름대로 익숙했기에, 신문에 나오는 새로운 한자 읽기에도 재미를 붙였다.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반드시 부모님께 여쭤보면 정확한 답변을 해주셨으니 나의 한자실력은 쑥쑥 늘어났다. 지금도 이건 선동렬의 선(宣)자이지 의(宜)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도, 유두열의 유(柳)씨와 테니스 선수 유진선의 유(兪)씨, 유남규의 유(劉)씨가 모두 다른 집안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신문의 덕이다. 대학시절, 시험기간에 옆에 앉은 친구들에게 내 답안지를 보여준 유일한 경험도 '한문' 과목 시간에 일어났으니, 그 신문에 크게 고마워해야 할까? 물론 당시 다른 신문을 구독했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겠지만..

c 일보의 풍부한 컨텐츠(당시엔 컨텐츠란 말은 없었지만)는 어린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특히 단행본으로도 여러 권 편집되어 나왔던 꼭지 중 하나인 이** 코너를 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시사 문제와 맞닿아 있는 토픽 선택과 그 토픽과 관련된 동서고금의 관련된 모든 자료를 압축하여 보여주는 그 지식의 향연에 매혹되었다. 하루가 채 안되는 그 짧은 시간동안 한 주제에 대한 서적을 다 뒤지는가? 책을 뒤진다고 되는 일인지? 자료조사원이 몇 명씩은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후 그 코너의 제목 삽화가 펜에서 컴퓨터로 바뀐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듯이, 자료수집은 컴퓨터로 했다는 기사를 얼핏 보았고, 그래서 그 의문은 풀렸었다. (그런데 지금도 의문이다. 그 시절에 컴퓨터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인터넷도 없었는데 말이지..)

당시 각종 지방신문들은 중앙신문인 c와는 말 그대로 게임이 되지 않았다. 중앙지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빈약한 기사거리, 조악한 편집상태와 종이의 질, 별로 관심도 없는 지역 이야기(당시만 하더라도 애향심은 별로 없고, 서울로 뜰 생각만 했다)으로 도배한 지역 신문들과 비교하면 독보적 우위를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87년 민주화의 광풍이 몰아쳤었고 89년 전교조가 기지개를 펴면서 우리 사회에 다른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지만, 입시에 매달린 범생이 고등학생에게 더이상의 사회학적 상상력은 주어지지 않았다. c일보를 바라보는 범생이의 눈은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했다.

89년 고3 여름, 1면엔 대문짝만하게 임수경의 북한 잠입, 탈출 소식을 전했고, 급기야 반공 애국청년 서림은 부르르 떨었다. "결국엔.... 그런데 이 새끼들이 미쳤나?". 그에 앞선 봄 무렵, 대학가요제로 유명한 '따라지 대학교(당시 부산에선 그렇게 불렀다)'에선 학생들이 선량한 전경을 불태워 죽였단다. "이 미친 놈들..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려나..."
c 일보의 논조와 일치되었던 그때의 그 상황들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신문과 함께 했던 우리 삼남매. 국민학교때부터 허공에 한자를 쓰는 특이한 취미를 가졌고 바둑을 즐겨했던 장남은 우리 어머니 표현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이과생으로 1등만 도맡아 했고, 매년 초 신춘문예에 큰 관심을 보이던 막내는 문예창작과로 진로를 정한다. 나? 나는 신문 잉크 중독증에 빠졌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이렇게 나와 인연을 맺었던 신문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구독했던 신문과는 대척점에 있는 신문을 보기 시작한다. (시리즈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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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후사 2004-10-27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척점에 있는 신문이라... 그렇담...?

엔리꼬 2004-10-27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탄을 기대하세요... 지금 구상중입니다... 왜이리 글 한편 쓰기가 힘이 들까요..

sooninara 2004-12-2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안에 2탄을 써주시지요^^
 

 

저 멋진 나무결과 깔끔한 디자인에 반해버렸다.

작고 앙증맞기까지한 저 기계(기계라고 부르기도 어울리지 않는다)에서 어떤 아기자기한 소리가 나올 것인지 설레기까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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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1-26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라디오에 홀딱 반하신 님을 뵈니...윤광준의 책 소리의 황홀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