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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경 연구공간 수유 + 너머 연구원, 서울산업대 교양학부 교수  /  씨네 21

언젠가 주변의 한 친구가 연구실 홈페이지에 올렸던 이야기다. 그의 절친한 친구가 우산이 고장나서 함께 학교의 우산수리점에 갔다고 한다. “고치는 데 얼마나 들어요?” 고장이 좀 크게 났던지 3500원 든다고 했단다. “3500원? 약간만 더 보태면 새로 하나 사겠다. 그냥 가자.” 망설이다 나온 두 사람. 그러나 그의 친구는 다시 되돌아가서 3500원을 주고 기어이 우산을 고쳤다고 한다. “새로 사면 이 우산은 버려야 하잖아!”

버려진다는 것, 그것은 우산으로서는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것이다. 고치면 더 지속할 수 있는 생명이 우리의 약은 계산 속에서 쉽게 중단되고 버려지는 것이다. 만약 고장난 게 우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신체였다면 어떨까? 심지어 엄청난 돈이 든다고 해도 고쳐서 “쓰려” 하지 않을까?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는 그토록 애지중지하건만, 그 신체가 남의 것이 되고, 더구나 다른 생물의 것이 되면 우리는 아주 쉽게 생각한다. 더구나 이처럼 그게 어떤 물건이나 ‘생명이 없는’ 사물이 되면, 고상한 윤리학자도 윤리학적으로 사고하길 멈춘다. 그건 윤리학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사물들은 쉽게 버려지고, 쉽게 삶을 마친다. 자신에게 허용된 것보다 훨씬 빨리. 지금처럼 물건이 흔해진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 돈 들여 수리하느니 새로 산다는 식의 생각은 너무도 익숙한 태도 아닌가! 뿐만 아니라 멀쩡한 것이지만, 유행이 지났다거나 새로운 것이 나타났다는 이유로 팔리고 버려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리하여 옷은 2년을 채 가지 못해 옷장 속에 버려지고, 자동차도 3∼4년이면 버림받는다. 옷장을 열면 옷을 걸 틈도 없이 빼곡하건만, 어느새 “입을 옷이 없네”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우리는 사물들과 결코 좋은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다. 아니, 사물들은 우리 인간들과 아주 나쁜 관계를 맺고 있다. 목적에 맞추어 만들어지고, 비용에 비추어 버려지는 그런 존재, 그게 바로 사물인 것이다. 철학자들은 인간이나 생명체와 대비되는 ‘도구’라는 말로 그런 태도들을 정당화한다. 그들에게 사물이란 인간이나 생명의 소중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지워지고 스러져야 하는 ‘배경’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사물에 대한 거대한 저주다. 물론 그것은 흔히들 말하듯 “생산력을 해방하여 물자의 유례없는 풍부함을 산출한 시대”다. 그 거대한 ‘풍요’ 앞에 우리는 또 얼마나 쉽게 매혹되고 도취되는지! 그러나 그것은 사물들에 관한 한, 극단적인 속도로 사물들의 죽음을 촉진하고 가속화하는 시대임을 뜻한다. 사람들의 손에 있는 상품들을 가능한 한 빨리 자신이 새로 만든 상품으로 대체하는 것, 그것이 사물에 대한 자본의 원칙이다. 이를 위해 유행의 형태로든, 신제품의 형태로든, 혹은 기능을 통해서든 새로운 스타일을 통해서든 사람들의 손 안에 있는 것들을 급속하게 ‘낡은 것’, ‘구닥다리’로 만든다. 사물들은 자신의 생명이 채 다하기 훨씬 전에 버려지고 폐기된다. 사물에 관한 한, ‘자연’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는 ‘죽음의 체제’요 ‘파괴의 체제’다.

‘철학’이나 ‘윤리학’이 사람들의 관계를 다루는 데서 멈춘다면, 그것은 너무도 안이한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그 ‘관계’ 속에는 이미 수많은 사물들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생산력이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투입량과 산출량의 비”로 정의되는 ‘생산성’과 결코 동일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마르크스의 그 개념은 자연에 대해, 사물에 대해 자신의 삶의 일부로 다루고 사유하라는 암묵적 권유처럼 읽힌다. 자연 내지 사물에 대해 자본주의가 생산하고 유포시킨 것과는 다른 관계를 구성하라는 강력한 권유처럼 들린다.

얼마 전에 몹시 가난한 한 친구가 나에게 난데없이 양말을 선물했다. 아무 말 하진 않았지만, 아마 내가 구멍이 난 양말을 그냥 신고 다니는 것을 본 모양이다. 그러나 구멍이 났다고 양말을 버릴 순 없는 일 아닌가! 청바지에는 일부러 구멍을 내기도 하잖아! 그러나 그게 시각적으로 불편한 사람들도 있는 듯해서, 구멍 난 양말을 모아, 잘할 줄도 모르는 바느질을 했다. 구멍을 메워 번듯하게 양말의 체면을 세워주는 게 나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의 ‘생명’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나는 그 양말들을 다시 꿰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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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2-0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네요!^^
 

TV가 바보상자라 하지만, 그래도 나는 TV에서 많은 것을 얻는다. 시간 때우기로 채널만 빙빙 돌려대는 행태를 매일 지속하지 않는다면 난 TV로 충분한 인생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KBS 인간극장이란 프로그램은 사람들의 여러 인생, 특히 남과는 사뭇 다른 인생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즐겨보곤 한다. 저번주에 소개된 사람들은 서울대, KAIST를 각각 졸업한 한 부부였는데 그들은 답답한 도시의 생활을 다 접고 시골, 그것도 적막한 산골에 들어가서 살고 있었다. 앞 부분을 놓쳤기 때문에 갑자기 왜 이런 생각으로 이런 산골에 들어와서 사는지, 지금은 어떤 벌이가 있어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는지 그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하며 정말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며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바쁜 도시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보기 힘든 여유와 삶의 자세가 부러웠다. 니어링 부부가 한국에 와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이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 누구가 돌을 던지랴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지만 그러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kbs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엿본 그들의 생각은 이렇다.

그들이 배운 지식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나 국가가 재정을 지원하는 국립대를 다녔다는 것은  배운만큼 사회에 환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들이 배운 것을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데 사용하지 않고 썩힌다는 것도 죄라면 죄란다. 이들이 하필이면 수재 소리들으면서 좋은 학교 나온 것이 오히려 비난을 받는 조건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 그것도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러지 않는 것, 그래서 적절한  세금도 지불하지 않는 것. 아이를 낳지도 않고 늙어서 후세들에게 부양의 짐만 늘리는 것도 모두 그들이 색안경을 쓰게 하는 요인이 된다. 참된 인간의 육성이 인적자원의 개발로 변해버린 시대. 이제 우리의 배움과 지식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닌 국가와 사회에 종속되어 버린 것인가. 또 과연 그런 생활만이 국가와 사회에 정말 필요한 개인의 삶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러 의견 중 주인공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들딸을 둔 한 어머니의 글이 가슴에 와닿아 그 글을 옮겨본다. 방송은 끝났지만 그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속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이 글을 쓴 분의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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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준씨보다 두살 위인 아들과 길연씨보다 한살 아래인 딸을 둔 환갑을 바라보는 여성입니다. 치과 치료를 마치고 목요일에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이 프로를 끝까지 보고 싶어서 강원도 내 집에 가는 것도 미루고 서울에 있읍니다. 거기는 길연씨네 처럼 TV도, 인터넷도 안되고 게다가 핸드폰도 안터지는 심심산골이거든요. 사람들 반응도 보고 요즘 젊은이들 생각도 알고싶어 계시판에 들렀더니 의견이 분분하더군요. 

엘리베이터에 사람을 미리 태우고 모두 안쪽벽을 향해 서있게 한 후 새로운 사람이 탓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관찰 했더랍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처음엔 어리둥절 하더니 다른 사람과 똑같이 안쪽 벽을 향해 서더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과 똑같이 하려는 경향이 있나봅니다. 지금 범준씨와 길연씨를 안좋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이들 부부가 다른 사람처럼 안쪽을 향해 서지 않고 문쪽을 바라보고 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부부가 문쪽을 향해 서있는 것을 보고 영혼이 깨어 있는 젊은이들이로구나 하고 느꼈읍니다. 이들은 문을 향해 서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몇층을 지나가고 있고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게시판 글에 보면 비난의 이유중 하나가 공부시키느라 그많은 투자를 했는데 사회환원을 안하고 이기적으로 자기네 좋은대로 산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들이 오래 못견디고 곧 서울로 올거라는 예언도 많더군요. 나는 이들이 설혹 산골 생활을 접고 도시로 돌아간대도 무언가 결과물을 갖고 오리라고 봅니다.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서 불과 2년밖에 안 살았지만 백여년이 넘도록 한국의 나까지 감동하며 읽게 만든 '월든'이라는 사색의 결과물을 남겼읍니다. 경제학 교수였던 니어링 부부도 50여년을 농사일을 하며 살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읍니까. 그가 그의 지식을 사회환원한답시고 대학교수로 계속 남아있었다면 몇십년이 지나서 한국의 한 여성에게까지 감동을 주는 책을 쓰지는 못했을 겁니다. 영혼이 깨어 있는 사람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다 자기 몫을 하게 되어 있읍니다. 포도 농사를 지어 당장 포도를 과일로 팔 수도 있고 즙을 내어 쥬스로 팔아 돈이 되게 할 수도 있읍니다. 내가 보기에 범준씨네는 포도로 술을 담아 오래 묵혀 아주 향기로운 값비싼 포도주를 만들려나 봅니다. 충분히 익을 때까지 우리 그냥 지켜만 봅시다. 길연씨는 영혼이 맑고 범준씨는 누구보다도 영혼이 깨어 있는 분 같아 믿음이 갑니다.

길연씨네나 범준씨 부모님의 생각은 어떨까 어른들의 생각도 궁금하신 모양인데 이들 또래의 자식을 둔 부모 입장인 나의 생각을 말해볼까요? 나는 내 아들이 고3일때 과외공부는 커녕 공부하는 아들 방에 먹을 것 갔다준답시고 들어가서는 아들과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었어요. 콘베어 벨트에 올린 자동차들 처럼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중학교, 고등학교에,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남들 가니까 그냥 점수에 맞는 아무 대학교에 가는 것 말고 콘베어 벨트에서 뛰어내려와 그냥 좀 놀아봐라. 네 인생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네 소질이 어디에 있는지 세상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구경꾼 입장에서 세상을 두루 구경하고 생각이라는 걸 한 연후에 대학을 가던지 스님이 되던지 하고 싶은 걸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었읍니다. 그런데 내 아들은 아직 콘베어 벨트를 타고 일류대학나와 일류회사에 다니고 있읍니다. 그러면서 시골가서 펜션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합니다. 아마도 시골에 있는 내 집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아직 결혼을 안했는데 회사에서 늦게 돌아와 엎어져 자기도 바빠 마누라 얼굴 볼 수도 없는데 결혼은 해서 뭘하겠느냐고 합니다. 콘베어 벨트에서 뛰어내리는 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다. 길연씨 부부처럼 남들이 어떻게 서있던 문쪽을 향해 서있을 수 있는 지혜와 뱃짱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길연씨가 산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컨베어 벨트를 타고 있다면 아마도 저같은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길연씨가 도시에서 살면서 살아주기를 기대한 것같은 어떤면에서는 축복받은 삶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읍니다. 40년전에는 정말 흔하지 않던 여기자에, 해외주재기자에, 미국유학에, 예술가에, 대학강사까지..... 그러나 오십이 지나 강원도 심심산골에 터를 잡아 민둥산에 묘목을 심으면서 땅을 가꾸기 시작해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아름다운 숲이 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도시에서 한 일보다 사회와 국가와 인류에 더 큰 일을 했다고 생각하며 무엇보다 그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연씨 부부는 함께 일궈나가니 산골인들 무엇이 두렵겠읍니까? 나는 나이들어 온전히 혼자서 산골생활을 해왔는데. 길연씨 이번 방송일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곳 생활이 여의치 않게 되면 연락주세요. 저의 동네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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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1-11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 참,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건 말건......

전 그 프로 한 회도 빠트리지 않고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렇다고 환상을 가지고 본 건 아니고요.

마음먹기에 따라 참 다양한 삶이 가능하구나 생각하고 좋았는데......

추천하고 퍼갑니다.^^

sooninara 2005-01-1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생각도 있군요..전 안봐서 몰랐지만..국립대 나온 사람이 사회에 돌려주지도 않고 아이도 안낳는것을 욕먹다니..지금이 무슨 히틀러시대입니까? 우수 유전자를 남겨야 한다는것이 웃깁니다..그럼 저같은 사람은 어쩌라구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는것도 재미는 있군요..

플레져 2005-01-12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극장 프로를 즐겨봅니다. 길연씨 범준씨의 삶을 만날 수 있어 좋았어요.

나라면 과연 하루종일 흙일과 집을 돌보고 나의 먹거리를 챙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품었지요. 일단은 아니오입니다. 저는 자신 없어요. 아직은 도시가 좋은 것이 아니라 도시를 떠나는 것이 불안해서이겠지요. 혼자 낙오되는 것 같은 기분 때문에... 허영과 욕심은 아무나 버릴 수 없어요. 물론 그걸 버렸다고 해서 우상화 되거나 특별한 올가미가 씌워지는 것도 싫습니다. 그들의 삶을 침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왜 엉뚱한 의도로 몰아세우는지... 저도 추천하고 퍼갑니다!

엔리꼬 2005-01-1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그렇죠 환상은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봇대로 이를 쑤시는건 말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니나라님/ 그들이 아이를 낳을 예정인지 안낳을 예정인지는 파악이 안되었습니다. 다만 이전에 다른 프로그램에서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시청자 평이 그랬어요...

플레져님/ 오래간만입니다. 저도 자신없긴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에 대한 이 꿈틀거리는 욕망을 저버리는 것은 당분간은 견디기 힘들 것 같습니다. 우상화는 저도 반대합니다. 다만 너무 아름다워보였어요..

icaru 2005-01-26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방송은 못 보았지만...님의 이 글....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걸요~ 요전에 스콧니어링의 자서전을 보았던 터라...더더욱 그렇네요...

방송 보고 게시판에 비판적인 평을 했다는 분들~ 이 경우 ...배운 것을 사회에 환원 운운은... 좀 이해가 안 되네요...>,<

엔리꼬 2005-01-2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연히 몇편만 보게 되었어요... 이해가 안되지만 참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공로는 있지요.. 후후
 

 http://triton.tpd.tno.nl/gigazoom/Delft2.htm



(사진은 링크 참조)

네델란드 응용 과학 연구 기구(TNO)는 16일(현지 시간), 세계 최대의 디지탈 사진이 완성했다고 해서, 웹 사이트에 http://www.tno.nl/gigapix 게재했다. 데르후트의 거리 수준을 촬영한 사진으로, 표준적인 해상도(300dpi)로 인쇄하면(자), 옆은 6.67미터, 세로는 2.67미터에 이른다. 화소수는 24억 8722만 화소(7만 8797×3만 1565 픽셀)로, 데이터의 사이즈는 7.5 GB에 이르렀다.

 줌을 반복해 가면(자), 차의 등록번호표까지 읽어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사진가의 막스·라이안즈씨가 성공한 10억 9301만 화소(http://www.tawbaware.com/maxlyons/gigapixel.htm )가 최대였다고 말한다.

 데르후트 공과대학의 옥상(지상 약 100미터)에 전동 삼각을 설치해, 합계 600매의 사진을 촬영. 이것들을 1주일에 걸려 이어 대면시켜 거대 파노라마 사진을 완성 시켰다. 카메라는 니콘의 일안레플렉스·디지탈카메라 「D1x」를 사용. 사진의 사이즈가 4 GB이상이 되면(자), 기존의 화상 포맷에서는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개량을 더하는 것으로 극복했다고 한다.

 사진에는, 상반신이 없는 보행자가 비쳐 있는 등 「괴현상」도 볼 수있다. 1시간 12분걸려 600매의 사진을 촬영했지만, 1매 촬영하고 나서 다음의 사진을 촬영하기까지 9초 걸리기 (위해)때문에, 사진안에 「시차」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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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4-12-16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라운 사진이더군요.. 차안이 다 들여다 보여요..+.+

마태우스 2004-12-17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용법을 잘 몰라서....차 안을 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

sooninara 2004-12-28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_ 열심히 눌러보면...재미있네요^^
 

한 시골 의사가 썼다는 글입니다.

성폭행의 고통은 이리 쓰고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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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루에 경험하는 희노애락의 양은 어느정도 일까?

어제 신문에 어떤 할일 없는 친구가 영혼의 무게를 달았더니 (아마 죽기 전후의 몸무게를 비교한 것 일테지만..) 십 그램 정도가 나가더라는 기사를 읽었다.

그 무게를 달았다는 과학자나 그 기사를 쓴 기자나 딱 그 수준이 그 수준인데, 하기는 희노애락의 절대량을 재보고 싶은 나도 어쩌면 그 수준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도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사는 한 이 네가지의 무게중에서 애(哀)의 절대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삶을 살 수 밖에 없겠지만,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가만 생각해보면 기쁨이란 얼마 지나지 않아도 내성이 생겨서 금방 둔감해 지지만, 슬픈이란 그보다 몇 배나 여운이 길게 남는 법이다.

오늘 아침에 고등학교 3 학년 여학생이 상해 진단서를 끊으러 왔다.

어제밤에 성폭행을 당하고, 오늘 아침에 산부인과에 들러서 체액을 채취한 다음, 우리병원으로 몸의 외상에 대한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다. 굳이 여기에다 그 여학생의 아픔에 관한 이야기를 옮겨적고 싶지는 않다.

내가 레지던트 일년차 시절이었으니, 이제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일이다, 나는 그당시에도 지금처럼 그만두는 것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의업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전공과목을 다른과로 바꾸는 것에 대해 고민했었다), 더우기 이미 나는 그 전년도에도 다른 전공을 선택해서 트레이닝을 받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외과로 전공을 바꾼 전력이 있어서, 만약 또 그랬다가는 사회 부적격자로 낙인이 찍힐까봐 꾹 참고 견디고 있을 때였다.

그만큼 나는 의사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사실 이 직업이 내게 가져다준 고(苦)는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나는 26살에 의대를 졸업한 이래, 지금까지 단 한해도 가운을 벗는 상상을 해보지 않은 날이 없었고, 실제 삼년전에는 그것을 실행에 옮겨서 가운을 벗고 육개월 동안 환자를 보는 않은적도 있었지만, 결국 다시 지금의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하여간 그렇게 고민이 많았던 젊은시절에, 나보다도 더 고민이 많은 환자를 만났다.

그녀는 그때 나이가 20 살 이었다, 그 힘들던 외과 레지던트시절 삼일동안이나 수술실에서 못 나오다가, 삼일만에 겨우 수술실을 나와서 짜장면 한그릇 먹고 막 눈을 붙이려는 순간에, 응급실에서 페이져가 울렸다.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몸은 천근만근인데, 전화를 걸어보니 염산을 마신 환자가 응급실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속으로 "죽으려면 그냥 아무도 안보는데가서 조용히 목을 매지. 염산을 마셔서 나까지 죽이려 드느냐"는 원망이 저절로 튀어 나왔다, 응급실에 내려가보니 상황이 기가 막혔다.

우선 환자 나이가 겨우 20살 이었고. 더 기가 막힌일은 그녀가 임신중이라는 사실 이었다. 그녀는 6개월전에 성폭행을 당했었고. 그후 임신을 해서 혼자서 고민을 하다가, 자살을 하려고 염산을 마신 것 이었다.

사람이 염산을 마시면 그 결과는 그야말로 참혹하다, 먼저 구강 조직이 타버리고, 두번째로는 식도가 녹아 버리는데, 이때의 식도 손상은 무서운 합병증을 초래한다, 그나마 소위 양잿물과 같은 알카리에 입은 손상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이제 일단 염산을 마신 이상 이제는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식도가 다 늘어붙어 버리는 것이다, 이제 그녀는 살아 남는다 하더라도 평생 음식물을 삼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 눈이 부실만큼 예뻤다, 만 20세의 푸르름을 그대로 간직한 사회 초년병의 그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누군가가 끔찍하게 망쳐 놓은 것이다, 일단 응급조치를 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한 집중 치료를 받은 후, 그나마 생명은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망가져 버린 식도는 이제 어떤 음식물도 통과를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 2주간은 혈관 주사를 통해서 영양을 공급했지만, 사람이 그렇게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다, 그녀는 입원한지 이주째 되는 날, 수술실로 옮겨졌고 우리는 그 희고 고운 배를 명치끝에서부터 10센티정도를 절개해서 소장에 구멍을 뚫고 소장내로 호스를 집어 넣었다, 그리고 호스의 반대편은 절개한 상처를 통해 밖으로 연결했다, 이제 그녀는 배를 통해 소장으로 연결된 호스로 미음을 투여받으면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수술을 하고나서 상처가 악화되었다, 소장으로 들어가있는 관을 타고 소화액이 바깥으로 흘러 나온 것이다, 강렬한 산도를 가진 소화액은 상처주변의 피부를 녹이기 시작했고, 결국 그녀의 배에 길게 남겨진 칼자국 위에는 소화액이 입힌 화상 같은 커다란 흉터까지 덧붙여졌다.

그녀의 치료는 일년차인 내 담당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녀의 아픈 사정에 깊은 동정심을 가졌었지만, 그 속에는 아마도 "곱고 아름다운 여자아이의 갈라진 운명에" 대한 어떤 특별한 안타까움이 더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치료했고, 아울러 그녀와 친해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내내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치료를 하기위해 상의를 벗겨도,, 벌겋게 부어오른 상처에 소독약을 발라도, 심지어 못먹어서 말라비틀어진 가느다란 팔에 수액공급을 공급하기 위해 컷 다운(피부를 갈라서 혈관을 꺼집어내는 일)을 했을 때에도 그녀는 그야말로 얼음장처럼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심지어, 수술후 삼 주째 되는날 임신중인 아이를 유산시키기 위해 산부인과 분만실로 옮기는 중간에도,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은색 마이마이에 연결된 헤드폰을 귀에 꽂은 채 내내 음악만 듣고 있었다. 결국 정신과에 컨설트를 했고, 나도 주치의로서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그녀는 말을 잃어 버린채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그렇게 두달후 상처가 좋아진 다음 그녀는 배에 호스를 꽂은 채 퇴원했다 나는 결국 그동안 그녀와 친해지는데 실패를 한 것이다. 그녀가 퇴원한 이후에도 나는 한참동안 그녀를 떠 올렸다.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첫 인상과, 나중에 음식을 먹지 못해 창백하게 메말라버린 나중의 모습.그리고 상처받은 사슴처럼 세상으로 향하는 창을 닫아버린 그 안타까운 이미지가 묘하게 겹쳐져서, 내게 상당히 오랫동안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재입원을 했다, 퇴원후 외래에서 진료를 받다가 이제 배안의 호스를 제거하고 식도를 새로 만들어주는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것이다. 이제 그녀의 운명은 바람앞의 등불이 된 것이다. 사람은 호스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으면서 사는데는 한계가 있다, 식물인간처럼 에너지 소모가 전혀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게 사는데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경우 도리없이 식도를 재건해야 하는데, 그녀처럼 식도가 협착이 되어버린 환자는 협착된 식도 대신에, 목에서 위장까지 연결되는 다른 통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요즘은 좀 다르지만, 그때는 일단 배를 열어서 대장을 일부 짤라낸 다음. 목을 절개해서 식도 입구에 한쪽 끝을 연결하고 다시 다른 쪽 끝은 위나 소장에 연결해 주는 수술을 했다,

그렇게하면 연결된 대장이 식도를 대신해서 음식물을 위까지 운반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수술은 대단히 위험한 것 이었다. 당시 내 경험으로는 5명을 수술해서 한명이 살았었고, 교과서적으로도 생존률이 대단히 낮은 수술이었다, 일단 식도와 대장이 연결되면 , 그 두장기의 성질의 차이 때문에 연결부위가 녹아 버리기가 쉬운데, 이 연결부위가 녹으면 가슴속으로 염증이 진행되고,나중에는 가슴에 고름이 차서 어마어마한 결과를 초래한다,

대개 이 경우 환자는 가슴으로, 배로 고름이 흘러 내리고, 그냄새 때문에 사방 20미터에는 사람이 접근이 곤란 할 정도로 몸이 썩어 들어가면서 죽게된다. 이제 그녀가 그 운명의 시험대에 선 것이다, 불과 몇 달만에 그녀는 거의 미이라가 되어 있었다.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산다는 그녀가 그동안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이제 그녀는 그 가냘픈 몸으로 20% 의 확률앞에 혼자 선 것이다. 나는 수술전에 보호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그녀에게도 수술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다만 위험도는 적당히 낮춰서 설명하고 보호자와 본인의 서약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녀는 타인에게, 특히 남자에게는 차갑고 냉정했다,

수술이 시작되었다. 무려 12시간 반에 걸친 대수술 이었다, 먼저 배를 개복해서, 대장을 적당한 길이로 짤라내고, 짤려져 나간 부분들은 원래대로 다시 봉합했다, 그리고 30센티 정도 길이로 짤라놓은 대장을 목을 절개한 다음 식도에 연결했다, 그리고는 다시 가슴옆을 길게 절개해서 폐를 옆으로 밀어 젖히고, 심장 뒤로 공간을 만든 다음 그쪽으로 한쪽 끝을 내려서, 소장과 연결했다.

주임교수께서 수술을 하는데, 수술실에는 수술시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주임교수님의 손이 심장뒤로 들어가서 박리를 시작 할때는 심장이 눌리면서 맥박수가 120회를 넘어서고, 혈압이 급상승을 하기도 했고, 아래쪽에서 대장을 짜를때는 속의 내용물이 배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황급히 거즈로 장 주변을 수십겹의 거즈로 둘러싸기도 했다.

수술용 장갑을 낀 내손도 그녀의 배속을 헤집고 있었다. 그녀의 소장과 대장은 배속에서 꺼집어내져서 조교수의 손끝에서 봉합되고 있었고, 나는 일년차라 위쪽 식도 연결팀으로 가지 못하고, 아래쪽에서 대장을 자르고 이어주는 일을 보조했다, 그때 수술용 장갑의 얇은 두께를 넘어 그녀의 장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은 내내 나를 묘한 슬픔에 빠지게 했었다.

그리고 무려 12시간 만에 수술이 끝났다.. 수술후에도 나는 1년차로서 중환자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그녀의 상태를 체크하고, 한시간마다 혈액 검사를 하면서 인공호흡기의 계수를 조정했다,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가 밸런스가 맞지 않을 때 빨리 교정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항상 누군가가 옆에서 지켜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 임무였었다, 수술후 의식은 몇 시간만에 돌아왔지만, 상태가 안정 될 때까지 숨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어야 했다, 의식이 있는 사람이 인공 호흡기가 밀어넣는 숨을 그대로 받아 마시고, 기계가 마치 빨대로 빨아 들이듯이 내 가슴에서 공기를 빼내 갈때 내쉬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녀를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해 그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나는 그동안 끊임없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고, 그녀는 필담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 했는데. 그녀가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자기의 마이마이를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그녀의 마이마이에 담긴 테입이 김광석의 "다시부르기" 음반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몇달 째 반복해서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증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가 달린 채로, 그녀의 귀에는 김광석의 노래가 담긴 마이마이 해드폰이 꽃혀 있었다.

드디어 수술 후 7일째 되는 날이 왔다, 이제 선고가 내려지는 날인 것이다. 수술후 7일 째는, 방사선실에서 목을 통해 조영제를 흘린 후 가슴 사진을 찍는 날이다, 만약 대장과 식도를 이은자리가 녹아버렸다면 사진에서 조영제는 가슴으로 흩어져 보일 것이고, 수술부위가 잘 아물었다면 조영제는 목에서 소장까지 곱게 잘 흘러 내릴 것이다, 방사선실에서 주사기로 조영제를 투여하고 "슛"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결과는 다행히 성공이었다,,

조영제는 새지않고 곱게 흘러내려서 소장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기쁨이 박수를 쳤고, 그녀는 드디어 다음날부터 물을 먹기 시작했다, 무려 8개월만에 처음으로 목으로 무엇인가가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컵에 담긴 물을 빨대로 빨아 마시면서,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펑펑 울었다. 누구도 감히 말릴 수 없을 정도로 서슬이 시퍼렇게 울었다. 나는 그렇게 곱게 생긴 사람이 그렇게 절절하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곡을 하듯 그렇게 울었고, 오랜 인공 호흡기 때문에 쉬어버린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메아리처럼 그렇게 병실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그야말로 둑이 무너진 것 처럼 눈으로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입으로는 목마른 아이처럼 한 컵의 물을 순식간에 다 마셔버렸다. 그녀는 물을 계속 요구했고,나는 간호사에게 내 허락없이 한방울의 물도 더 주지 말것을 지시했다. 물을 더 마신다고 안되는 것도 아닌데 왠지 물을 더 주면, 계속 그렇게 울음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수술 후 12일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그로부터 이주후부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물을 먹기 시작한 날, 그렇게 펑펑 울고 난 다음날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날부터 그간 먹지 못한 것, 말하지 못한 것이 봇물이 터져나온 듯,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의 가장 가까운 이야기 상대가 되었다. 결국 병동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내가 그녀와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 그녀가 병실에서 내내 들었던 음악이 바로 여기에 링크한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라는 곡인데, 나는 왜 그녀가 왜 내내 이곡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는지를 짐작 할 것 같았지만 더이상 묻지 않았다. 아마 그녀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누군가가 어느날 갑자기 자기를 벼랑에서 밀어 버린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그후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 그리고 그녀의 요청으로 밖에서 한두번 밖에서 저녘을 같이 먹기도하고. 둘이서 덕수궁을 산책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가끔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그녀도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우리는 서서히 서로를 잊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대로 서서히 절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내게도 이제 그녀는 더이상 손을 내밀지 않으면 금방 죽을 것 같은 갸날픈 소녀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 퇴근하자마자 그녀가 내게 보냈던 편지들을 꺼냈다, 그러고보니 그녀는 몇 년전까지만 해도 한번씩 내게 편지를 보냈고, 나도 답장을 했었다.

사람이란 이렇게 대책없이 상황에 빠져들기도하고, 또 어떨때는 영 새삼스럽다는 듯이 갑자기 생경하고 어색한 몸짓으로 손사래를 치기도 하는것이다. 나는 오늘 또 누군가의 우연찮은 불행을 매개로 그녀를 기억해 냈지만, 그녀는 아마 신문을 볼 때마다, 혹은 잡지를 읽을 때마다, 어떤 단어 하나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두번 다시 기억하기 싫은 그 끔찍한 투병 생활을 떠올리면서, 마지막으로 나를 기억해 낼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면 그녀에게 있어서 내게 대한 기억 역시 반드시 잊어버려야만 하는 커다란 상처중의 일부였던 셈이다,

2004/12/02 시골의사

쿠키뉴스 김상기기자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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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4-12-14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내내 눈시울을 붉히면서 읽었습니다. 너무나 절절한 사연, 너무도 가슴 아픈 사연을 너무도 조마조마한 사연이기에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 소녀 이제는 모든것 잊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엔리꼬 2004-12-16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저도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았네요... 지금쯤은 그때 일을 후회하고 있을까요?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하늘에 계신” 하지 말아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우리” 하지 말아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 하지 말아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지 말아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지 말아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지 말아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말아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 말아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 말아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 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 말아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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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하는 주의 기도문’ 네티즌 화제 만발
 
주기도문(主祈禱文, Lord's Prayer)은 성서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친히 가르쳐준 기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미사나 예배 때마다 주문처럼 기계적으로 외우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세태에 대한 반성일까. 최근 인터넷 기독교 관련 커뮤니티와 개인 블로그를 중심으로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라는 글이 두루두루 퍼지며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루과이의 작은 성당의 벽에 써 있는 기도문을 옮긴 것이라는 이 글은 어떤 거창한 신학적 담론이나 강해를 담은 것은 아니다.
그저 주기도문에 나오는 각 구절을 인용하면서, 내 삶이 입에서 나오는 기도문에 부합되는지 성찰하게 하는 한마디를 더하는 형식으로 돼 있을 뿐이다.
네티즌들은 “이 글을 읽고 주기도문의 참뜻에 부합되는 마음가짐이나 행동을 해왔는지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아이디가 ‘바람’인 네티즌은 “구절구절이 송곳처럼 나의 마음을 찌른다”며 “한가지씩 한가지씩 자신있게 기도바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수호천사’는 “주의 기도를 드리면서 묵상의 시간을 가지고 나에게 해당되는 구절이 얼마나 되나 체크하게 됐다”며 “습관적으로 열 번을 외우는것 보다 한 두 번 만이라도 묵상하며 기도를 드린다면 정의롭고 이해와 나눔이 넘치는 교회가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좋은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한다"는 많은 네티즌들이 다른 커뮤니티와 게시판으로 부지런히 ‘펌질’을 하고 있어 이 글은 더욱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최현정 동아닷컴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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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1-1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처음 읽어요.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