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 역사, 논리, 정치 레-프리젠테이션
모니카 브리투 비에이라.데이비드 런시먼 지음, 노시내 옮김 / 후마니타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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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와 내년은 선거의 해입니다. 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 대통령 등등 굵직한 선거가 기다리고 있죠. 선거는 무엇을 하는 절차인가요? 너무 쉬운 질문인가요? 우리를 대표해서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하고 집행할 사람을 뽑는 절차입니다. 이렇게 최종적인 주권은 시민인 우리 모두에게 있지만 우리를 대신해 그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선출해서 운영하는 정치체제, 우리는 이걸 대의민주주의라고 합니다. 현재 전세계에서 꽤 그럴싸하게 운영되는 나라들은 대체로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채택하고 있죠.

자, 그렇다면 여기에서 질문입니다. 선출된 사람들이 우리를 대표한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인가요? 우리 생각을 그대로 옮기는 것인가요 아니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고려해서 더 현명하고 올바른 결정을 해주길 바라는 것인가요? 대표자는 개인인 나를 대표하나요 아니면 국민 전체를 대표하나요? 내가 일하는 회사의 사장이나 내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선생님도 내가 속한 회사나 학교를 대표하기도 하는데, 그런 대표와 정치적 대표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대체 정치적으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대표한다는 발상은 어떡하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면서,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더 잘 이해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더 나은 정치적 방향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 대표입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대의민주주의입니다. 영어로는 representative democracy, 즉 대표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뜻입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요 주제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밑바탕이 되는 중요한 모순? 긴장?이 있습니다. 바로 ‘누구를 대표로 뽑을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서민의 삶을 아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을 뽑아서 우리 자신의 이해관계를 입법과 정책에 반영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 후보에게 교통비를 물어보고 후보들은 시장에 나와서 국밥 떡볶이 어묵을 맛있게 먹죠. 하지만 동시에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을 뽑아서 대표하게 만들어야 우리의 이해관계를 더 잘 반영할 수 있겠죠? 게다가, 우리와 식견이 비슷한 사람을 선출할 거면 그 비싼 비용을 들여가며 선거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직접 하느니만 못할 게 뻔하고, 그렇다면 선거보다는 제비뽑기를 하는 쪽이 훨씬 낫겠죠. 이렇게 보면 이 두 가지 요구 사항, 즉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대표자가 돼야 한다”와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이 대표자가 돼야 한다”는 것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이 두 가지 요구가 충돌하지 않으며, 이 둘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민주주의 체제를 안정적으로 굴러가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이고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둘 중 한쪽을 완전히 포기하는 순간, 독재를 통해 시민을 억압하는 폭력이 민주주의라는 형식적 정당성을 띄고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 때 자코뱅의 공포정치나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나치즘이 역사적 사례들입니다.

이 긴장은 동시에 ‘왜 대표를 뽑는가’ 즉 대표의 기능과 존재이유에 대한 답변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의 대표는 개인으로서의 나와 공동체 전체로서의 우리를 동시에 대표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에겐 대표를 뽑을 권리가 있지만 동시에 대표를 뽑음으로써 대표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다는 것입니다. 거칠게 이어보자면, 개인인 나를 대표하는 사람을 뽑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가능한 이유는 권리가 이미 나에게 주어져있기 때문이고 또 나와 비슷한 사람이 나를 대표하는 방향을 선호할 것입니다. 반대로 공동체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면 그 대표의 결정이 나를 구속함으로써 공동체에 소속된 구성원으로 인정받게 될뿐 아니라 되도록이면 공동체 전체를 위하는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겠죠.

이런 여러 복잡한 요소들을 동시에 고려하며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게 바로 대의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우리가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부가상품,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이 책과 함께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박상훈의 정당의 발견입니다. 학교에서 우리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핵심 중 하나가 정당 제도, 특히 다당제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습니다. 흔히 중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이유로 드는 것 중 하나가 일당국가이기 때문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정작 정당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심을 갖진 않죠. 다른 민주주의 선진국에 비해 정당가입률도 매우 낮은 편이고요. 대표 개념과 선거를 앞두고 대의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진 김에, 대의민주주의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정당에 관해서도 꼼꼼하게 알아가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권해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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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말이 사라진 날 -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한 조선어학회의 말모이 투쟁사
정재환 지음 / 생각정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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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함경남도 함흥의 함흥역. 식민지 경찰이 한 고등학생을 불심검문합니다. 기차 안에서 ‘조선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이 고등학생의 집을 압수수색한 경찰은 일기장에서 1년 전에 쓰인 한 문장을 발견합니다. ‘국어를 썼다가 선생님께 혼났다.’ 여기서 국어가 조선어를 뜻한다고 해석한 경찰은 그 학생에게 조선어가 국어라고 가르친 교사 정태진을 체포합니다. 일제시대 국어란 당연히 일본어여야 하는데, 그에 반하는 교육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빌미로 경찰은 정태진이 소속돼있던 학술연구단체 조선어학회의 회원들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해 구속, 감금, 고문합니다. 이들은 징역을 언도받고 해방이 될 때까지 옥에 갇혀있어야만 했죠. 바로 조선어학회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조선어학회는 어떤 단체였기에 일제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식민지 지역의 방언을 연구하는 단체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어째서 치안유지법 위반인 것일까요? 조선어학회의 탄생과 활동을 통해 우리 글의 역사와 독립운동의 한 장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책을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정재환의 <나라 말이 사라진 날>입니다.


2종 보통 열쇠말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열쇠말입니다.

제가 꼽은 열쇠말은 ‘조선어학회’입니다.

아마 30대 이상의 청취자라면 정재환이라는 방송인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1990년대 초중반 활발하게 활동했던 희극인이고, 이후 우리말 홍보 관련 활동으로 기억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2000년에 뒤늦게 역사를 전공으로 공부하기 시작해서 2013년에 ‘해방 후 조선어학회 한글학회 활동 연구’로 박사 학위를 얻습니다. 그 동안 여러 책을 쓰긴 했지만, 자신이 공부한 분야를 바탕으로 낸 책은 박사논문 이후로 이게 처음입니다.

조선어학회 사건이 책 소개나 홍보의 전면에 나와있긴 하지만, 이 책은 그보다 더 넓은 범위를 다룹니다. 조선어학회 사건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조선어학회가 해왔던 일을 시대순으로 죽 훑어보는 것입니다. 1800년대 후반 ‘언문’이 정부가 채택한 공식 언어로 등극한 순간에서 시작해 여러 후보 명칭을 제치고 ‘한글’이 정착하는 과정, 표준어와 맞춤법을 설정하면서 고려해야 했던 문제, 이 모든 연구성과를 집대성하는 사전 편찬 작업 절차와 해방 이후 그 완성에 이르기까지 조선어학회가 한글 연구와 확산에 기여한 바를 하나하나 짚어나가는 것이죠.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우리말과 글이 확립되는 과정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활동 중에 우리의 언어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있을까요? 물론 학교에 다니며 한국어가 공부의 대상이 될 때에는 이들의 노력이 잠깐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정치적으로 독립한 이후에도 문자와 언어가 없는 공동체로 살아갈 수도 있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우리 생활에 이들이 미친 영향은 보통 커다란 것이 아닙니다. 또한 언어가 공동체의 결속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면, 다른 어떤 문자와 언어도 아닌 조선어, 한글을 연구하는 것이 단순한 학술활동을 넘어 독립운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겠습니다.


2제 아이랑 함께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부가상품, 2제 아이랑 함께입니다.

이 책과 함께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윤계상 유해진 주연의 영화 <말모이>입니다. 우리 책에서 다루는 조선어학회의 우리말 사전 편찬 사업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른 부분이 많아서 거의 창작이라고 하고 또 평론가들에게 높게 평가받는 영화는 아니지만, 사전 편찬 과정을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게 만든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 주연배우를 좋아하신다면 더 재미있게 보실 수도 있겠고요. 이 책 안에서도 <말모이>에서 나온 여러 장면을 이야기해주고 있으니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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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학문 나남신서 1140
막스 베버 지음, 전성우 옮김 / 나남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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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막스 베버는 마르크스, 뒤르켐과 함께 사회학의 기초를 놓은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 그가 학술적으로 쓴 논문들 못지 않게 유명하고 많이 읽히는 강연록 두 개가 있는데, <직업으로서의 정치>와 <직업으로서의 학문>입니다. 이미 살아있을 당시 큰 스승으로 대우받았던 그는, 정치와 학문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당시 대학생들의 요청에 학생들에게 건넬 충고를 담아 강연을 시작합니다.

이 강연에서 그는 전근대 사회와 근대 사회 사이의 차이와 전문화되고 파편화된 근대 사회에 대한 베버의 진단, 그 속에서 학문의 기능과 역할이 변화하는 과정, 사회의 다른 영역과 학문 사이의 차이, 그에 대응해 학문에 임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 등 아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그래서 보통 베버의 세계관 전체를 아주 짧은 글 안에 응축해서 보여준다고 평가하죠. 이런 주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더 많은 정보를 알아보는 것도 좋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우리에게 좀 더 가깝고 현실적인 주제로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좋겠죠. “대체 우리는 공부를 왜 하는 것일까요?”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입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꼽은 키워드는 ‘그냥’입니다.

이런 고전을 읽는데 키워드가 생각보다 김빠지는 단어라서 놀라셨나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게 바로 막스 베버가 주장하는 사람들이 공부하는,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공부를 ‘그냥’ 해야 하는 이유는 공부가 더 이상 진리를 찾는 작업이 아니게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옛날 공부하는 사람들은 숭고하고 거창한 것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공부란 물건이나 노동 용역과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직업으로 삼는 대학교수들도 지식을 팔아서 월급을 받는 것이고요.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돈을 많이 버는 기회가 주어지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 둘이 이어지는 것은 순전히 우연입니다. 대학교수뿐 아니라 어느 직업을 갖게 되든 마찬가지죠. 베버는 이런 경향을 ‘미국적 현상’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독일 또한 곧 이렇게 바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이제 공부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에, 더 나아가서 별 도움을 주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그냥’ 해야 합니다. 공부가 진리를 찾는 활동이며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고 기대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베버는 ‘선지자’나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근대적이고 합리적인 사회에 알맞지 않는 태도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죠. 공부의 초점은 이해와 분석입니다. 그래서 공부는 ‘문제를 이렇게 해결해야 한다’는 방향, 즉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지 않고, ‘이 문제는 이렇게 생겨먹은 것이다’라는 사실에 관해서만 이야기해줍니다. 또 그런 태도를 지니고 있어야만 정확한 이해와 분석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버의 논의를 따라가다보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그냥’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그냥’은 아닙니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공부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에 초점을 맞춘 공부는 내가 마주한 문제에 관해 합리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이렇게 다른 요인 없이 그 자체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그 동기가 거의 없는 데다 매우 어렵기까지 하다는 점에서 베버에게 공부란 일종의 부르심, ‘소명’에 가깝습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애드온 서비스,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 김영민의 <공부란 무엇인가>를 추천드립니다. 혹시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읽어보신 적이 있나요? 2018년 경향신문에 실려, 추석 명절에 일어나는 갈등을 위트있게 풀어낸 것으로 인터넷을 강타했던 칼럼인데요. 이 외에도 감각적인 글솜씨로 유명한 김영민은 서울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중국 고대 정치사상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교수의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대학생으로서 공부하는 방법’을 정리한 책이 바로 <공부란 무엇인가>인데요.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미리 엿보고 싶은 중고등학생 청취자들에게, 그리고 공부의 의미를 되찾고 그 방법을 다시 되새겨보고 싶은 학부모 청취자 여러분들께 베버와 함께 이 책을 조심스럽게 권해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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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 -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한 철학자 클래식 클라우드 25
줄리언 바지니 지음, 오수원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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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이라는 철학자를 아시나요? 그리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 잘 모르실 겁니다. 이름은 들어보셨더라도, 그의 철학은 잘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흄은 철학계에서는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철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견해에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철학자들의 철학자라고 할까요? 2000년대 초반 영어권 대학의 철학과 교수들에게 “당신의 견해는 어떤 철학자에게서 영향을 받았는가?”라고 물어본 설문조사에서, 흄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 비트겐슈타인 등등을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흄의 저서는 영어 원문으로 읽어도 어렵기로 유명하고, 학자들이 쓴 논문 몇 편을 제외하면 한글로 된 읽을 만한 자료는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그 와중에 영국의 철학 연구자이자 에세이스트인 줄리언 바지니가 데이비드 흄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며 그의 철학을 소개하는 책을 펴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흄을 좋아하는 제 입장에선 정말 가뭄에 단비같은 소식이었는데요. 또 예비고1을 위한 교양 특집을 끝맺기에 적절한 책이라고 생각해서 한 번 가져와봤습니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그리고 그는 어떤 주장을 했기에 철학의 역사에 남았고 철학자들의 철학자로 추앙받고 있는 것일까요?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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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데이비드 흄’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흄의 생애와 철학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키워드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입니다. 18세기 1700년대 유럽의 지적 발전, 즉 계몽주의 운동의 중심지는 두 곳입니다. 하나는 프랑스 특히 파리이고, 나머지 하나가 에딘버러와 글래스고로 대표되는 스코틀랜드입니다. 이 두 계몽주의의 성향은 매우 다릅니다. 프랑스 계몽주의는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 기반한 진보주의적 역사철학을 핵심으로 삼는 반면,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는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며 그 해결 방안의 집합체인 전통의 가치를 긍정하는 보수주의적 역사관을 밑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흄의 철학은 바로 이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가치관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두번째는 습관입니다. 이 책에서도 강조하듯 흄의 철학은 보통 회의주의로 분류됩니다. 아무리 널리 퍼져있고 강한 믿음이라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고 그냥 그렇게 믿은 경험이 많이 쌓인 결과 즉 습관이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습관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연결 관계, 자아의 존재와 영속성, 인간의 자유, 외부 세계의 존재, 신의 존재, 다른 사람이 전해준 지식의 참과 거짓 등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믿음입니다. 단어가 어려우니 조금 더 일상적인 용어로 바꿔보면, 원인이 있다고 반드시 결과가 일어나는 게 아니고, 자아는 허상이며, 우리가 보는 것과 외부 세계가 일치한다고 말할 수 없고, 신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확실히 이상하고,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라고 시작하는 말은 일단 거르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흄이 중요한 이유는 이런 아이디어가 단순히 주장에서 그치지 않고 정교하고 독창적인 논증과 함께 제시됐다는 점입니다. 이런 논증이 재해석되면서 흄은 철학자들의 철학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을 잘 보여주는 평가가, 흄보다 한 세대 뒤의 철학자인 칸트가 했던 말이죠. “나는 흄 덕분에 독단의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세번째는 공감입니다. 흄은 철학의 역사에서 거의 최초로 도덕적 판단에서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철학자입니다. 이 생각은 아주 유명한 사실-당위 구별 논증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도덕적으로 나쁜 행위 자체를 아무리 뜯어봐도 그 안에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특성이 객관적으로 존재하진 않지만, 그 행위가 우리에게 강한 불쾌감을 일으키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도덕적 판단은 즐거움과 불쾌함이라는 개인의 내밀한 감정에 좌우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의 즐거움이나 불쾌함을 추정하고 상상하는 능력도 있습니다. 이게 바로 흄이 생각하는 공감입니다. 이 능력을 통해 특정한 행동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 다른 사람과 합의합니다. 흄의 이 공감 개념은 한편으로는 감정을 상상과 연결지어 지적 능력과 감성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다른 한편으로는 객관성을 상호주관성으로 설명함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규칙에 합의하고 사회를 이루며 살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흄이 우리에게 남긴 철학적 유산을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습관, 공감 이 세 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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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애드온 서비스,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이 책과 함께 추천드리는 책은 데니스 라스무센의 ‘무신론자와 교수’입니다. 이 책에서도 여러번 등장하지만, 흄의 유산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받아들인 사람은 애덤 스미스입니다. 국부론의 저자이며 경제학의 창시자로 알려져있는 바로 그 애덤 스미스죠. 살아있는 동안엔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자 가장 친한 친구로 평가했고, 학문적 교류와 우정은 흄이 죽는날까지 계속됐습니다. 라스무센의 무신론자와 교수는 이 둘의 우정을 큰 줄기로 삼아서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지식인 사회의 풍경을 꼼꼼하게 그려냅니다. 한국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하지만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탄생시킨 시대의 풍경을 이 책을 통해 감상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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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의 탄생 - 끔찍했던 외과 수술을 뒤바꾼 의사 조지프 리스터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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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중반 영국. 상처가 난 부위를 도려내거나 잘라내면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보다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열심히 썰고 깎았습니다. 하지만 수술의 기술은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마치 푸줏간에서 고기를 다루듯 인체를 다뤘고, 수술하는 의사에 대한 대우도 백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두 가지였습니다. 수술을 할 때 아프다는 것 그리고 수술 부위가 썩어들어가며 패혈증에 걸려 죽는다는 것. 첫번째 문제는 1840년대에 마취기술이 개발되면서 해결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발전은 두번째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마취 기술 때문에 더 많은 부위에 수술을 감행하면서 수술 부위가 썩을 가능성도 훨씬 높아진 것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인체가 썩는’ 현상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헤매고 있었습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외과의사로 활동하던 조지프 리스터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전하기로 합니다. 아버지가 발명한 개선된 현미경으로 인체 조직을 들여다보며 연구를 시작하고, 미생물에 관한 새로운 관점인 파스퇴르의 균 이론을 수술에 적용해보기로 합니다. 대학병원의 외과의사로서 후배 의사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널리 전파하려 의료인력 양성제도 개혁에도 관여합니다. 리스터는 자신의 연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획기적인 수술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을까요? 이 과정을 다룬 책 린지 피츠해리스의 수술의 탄생에서 그 결과를 확인해보세요.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당연히 살균이 되어야겠죠?

외과의사 조지프 리스터는 의학과 과학의 역사에서 무균수술법을 확립하고 보급한 사람으로 이름이 남아있습니다. 아마 이 사람이 없었다면, 저를 포함해서 방송을 듣고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중 상당수는 어렸을 때 넘어져서 까지거나 베이거나 찢긴 상처 때문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큰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을 겁주려고 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균에, 수술하는 의사의 손에 묻어있던 균에, 수술 도구인 칼이나 집게나 튜브에 서식하던 균에 감염돼 수술 부위가 제대로 아물지 못하고 썩어들어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보기 흉한 정도에 그치면 다행인 수준이고, 이 부위의 심각한 부패가 혈관이나 신경을 따라 인체의 다른 부위에 영향을 줘 대개는 목숨을 잃는 사태로 끝맺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19세기, 1800년대 유럽에서 널리 행해진 수술 전후의 풍경입니다.

이 책 수술의 탄생은 조지프 리스터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 시기 의학의 현실과 발전을 다룹니다. 이 발전에서 핵심 쟁점은 의학과 생물학의 접목, 즉 수술 절차와 관리 방법에 균 이론을 도입할 것인지 여부입니다. 미생물의 개념조차 잡혀있지 않았던 때이기 때문에, 부패에 관한 이론은 화학으로 다뤄야 하는지 생물학으로 다뤄야하는지부터가 일단 문제로 부각됩니다. 또한 만약 균 때문에 상처에 부패가 생긴다면 그 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 균이 부패라는 특정한 현상을 일으키는 생화학적 과정이 무엇인지도 설명해야 했고요. 또한 균 이론에 기반해서 수술 부위의 살균을 철저하게 하더라도, 기존에 비해서 분명히 적기는 했지만 사망자는 여전히 발생했기 때문에 이 문제도 설명 내지는 해결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방법에 따라 수술을 받았어도 모두가 죽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운 이론에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거는 것도 리스터를 포함한 당시의 의사들에게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의학의 역사에서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리스터가 무균수술법을 개발했다고 해서 의료계의 모든 풍경이 뿅 하고 바뀐 것도 아니었고, 이 방법이 기존 의료계의 관습을 완전히 타파할 정도로 완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즉, 보여주고 증명하는 게 과학적 발전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 그럼에도 리스터를 비롯해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이런 과학자와 의사들 덕분에 과학이 구불구불하지만 진보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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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방금 전 패러다임 전환의 과정을 또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것은 언젠가 이 비슷한 과정을 우리가 한번 본 적이 있다는 걸 의미하겠죠? 방송을 꾸준히 오래 들어온 청취자 여러분이시라면 지난해 스티븐 존슨의 ‘감염도시’라는 책을 읽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제가 그 책의 키워드로 꼽은 것이 바로 ‘패러다임’이었는데요. ‘감염도시’의 주제 또한 사람들이 병을 다루는 관점이 바뀌는 과정을 콜레라 대처법을 사례로 들어 보여주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아직 읽어보지 못하셨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저희와 같이 이미 읽어보셨다면 피츠해리스의 ‘수술의 탄생’과 나란히 놓고 다시 한번 읽어보시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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