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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들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평점 :
<장면들>, 손석희 지음, 창비, 2021
<장면들>은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로 저자가 JTBC 사장으로 부임하는 2013년부터 퇴임하는 2020년까지 7년여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통적인 미디어 이론인 ‘의제 설정 기능(Agenda Setting)’을 넘어 ‘어젠다 키핑(Agenda Keeping)’한 ‘장면들’을 소개한다. 우리 사회가 공분한 이슈에서 감정이 사그러들고 논리만
남은 상황에서 다른 어젠다가 존재할 때 기존의 어젠다를 계속 다루는 것이 ‘어젠다 키핑’이라는 것이다.
공분이라는 것에는 감정뿐 아니라 논리도 들어가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명분 없는 감정만 가지고 공분을 느끼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공분의 감정이 사그라들 때가 오는 것이다. 세상에는 그 어젠다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감정이란 것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쩔 수 없이 감정이라는 부분이 걷어내지고 논리만 만아 있을 때, 그때가 사실은 매우 애매한
지점이 되는 것이다. 이 어젠다를 계속 끌고 갈 것인가, 그러기엔
사람들이 너무 지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시청자들이 우리 뉴스를 떠난다면 그 어젠다를 이어 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와 효력이 있는 것일 것.(70~71쪽)
세월호 사고가 난 이후 모든 언론이 떠난 팽목항에서 JTBC가
끝까지 남아 매일 현장소식을 전한 것, 서지현 검사 인터뷰로 시작된 미투, 태블릿 PC로 시작한 국정농단 사건 등을 통해 아젠다 키핑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다. 손석희 ‘뉴스룸’의 ‘비하인드 뉴스’라
할 수 있다.
(‘문화초대석’을 통해) 6년 가까이 120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그들이 우리가 추구하는 저널리즘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문화’는 우리 일상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든, 소설이든, 노래든
모든 문화활동은 우리의 시대를 담아내는 일기와 같은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치나 사회, 경제 같은 것들보다 더 우리의 일상을 흔들기도 하고 가라앉게도 하는 것이다.(350쪽)
‘문제의식이 있어야 문제를 발견할 수 있고, 문제를 발견해야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며, 문제를 제기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376쪽)
또한 <장면들>에는 40년차 언론인으로서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과 함께 MBC를 떠나 JTBC로 옮기게 된 과정의 이야기도 전한다. 옮기는 시점에 추측성
기사가 난무했으나, 이렇다한 언급이 없어 궁금하기도 했는데, <장면들>을 통해 그 사연과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2부 저널리즘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서는 기존의 뉴스 채널과는 다른 JTBC만의 뉴스채널을 만들기 위한
고민의 흔적들과 언론과 저널리즘에 대한 그의 생각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기레기’라 불리며 조롱 받고 있는 기자들의 현실과 속내도 들을 수 있었다.
욕설과 배설의 효용이 원래 그러하듯, ‘기레기’라고 발화하는 동안은 후련하고 짜릿할 것이다. 그러나 그뿐ㄴ이다. 쓰레기 소굴이라 불리는 곳에선 쓰레기만 살아남는다. 깨끗한 모든
것은 시든다. ‘나쁜 기자’들은 어떤 모욕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한줌 권력, 공째 잿밥에 목매는 사람은 어디든 있기 마련이다. (…) “누군가에게 침을 뱉는 것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 최문선 <’기레기’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면>(한국일보, 2019.10.3.)(275~276쪽)
‘칭송’에서 ‘기레기’로 가는 과정에 조국 당시 장관을 ‘충분히 감싸지 않았다’는 이유가 들어가 있었다. 언론이 누군가를 특별히 감쌀 이유는 없으며, 그 누군가가 공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대우받고 있다면 그 부당함을 지적하면 될 일이었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277쪽)
“오늘날 많은 언론사들은 시청자나 독자에게 ‘거래할 게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는 알려주지 않을
거야, 다만 사실만 전달하게’라고 하죠. ‘우리는 정보를 제공할 뿐이니, 똑똑한 당신이 알아서 그게 어떤
뜻인지 생각하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편향되지 않았다’고 말해요.(중략) 제가 속한 사회에서도 BBC 등 소위 좋은 언론사들이 ‘아냐, 아냐, 우리는 아무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아’라고 하는 것을 볼 때가 있는데요. 저는
좋은 언론사들이 영향력을 우려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는 탓에 도리어 좋은 생각들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 책에서 사람들이 ‘편향’이라는 단어를 좀더 대담하게
생각하도록 만들려 했어요. 당연히 ‘나쁜 편향’도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멀리해야 하죠. ‘나쁜 편향’보다는 차라리 ‘편향이
없는 게’ 낫습니다. 그러나 ‘편향이 없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은 ‘좋은 편향’이에요.”
- 알랭 드 보통 (367~368쪽)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필립 티치너 교수의 ‘언론 경비견 모델
가설’이었다. 언론이 기득권의 감시견(Watchdog)과 애완견(lapdog) 노릇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려는 ‘경비견’이 된다는 것인데, 우리 사회에서 이미 기득권이 된 언론이 왜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을 대변하고,
스스로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애쓰는지 이해가 된다. 이해가 된다고 해서 그들의
행위가 용납된다는 건 아니다. 기득권이 된 언론은 민주주의의 해악임을 우리의 눈으로 목격하고 있음으로…
‘언론의 경비견 모델 가설’ – 필립 티치너 교수
1. 전체 사회가 아니라, 기득권과 영향력 있는 집단을 위해 경비견 노릇을 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기존 사회시스템을 지켜내도록 하는 것.
2. 그 시스템에 대한 모든 잠재적 침입자를 감시하고, 지배세력이 미처 알지 못한 침입자에
대한 경고음을 울리는 존재.
3. 그런데 그런 상황은 때로는 지배그룹 내의 부조화에 의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
4. 경비견으로서의 언론은 지배세력에 의존하긴 하지만 복종하지는 않으며, 지배세력 간의
불화가 일어날 경우 그 갈등을 정치화하기도 한다.
5. 이 과정에서 언론은 권력 엘리트들에게 문제 해결자를 자임하면서 권력의 현상 유지를 위한 해법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6. 결론적으로 경비견으로서 언론의 목적은 특정한 지배집단을 위해 경비를 서는 것이 아니라 지배 시스템을 지켜내는 것이며, 이 시스템에 위협이 되는 존재를 향해 짖는 것이다. 기득권화된 언론
자체가 생존하려면 그 시스템이 지켜져야만 하므로 이는 당연한 것이다.(79쪽)
최근에는 시사 주간지 외에는 일간 뉴스를 챙겨보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정치 지형에서 언론이 기계적 균형만을 맞추려고 하다보니 오른쪽에 편향된 뉴스 일색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극우적 메시지도 기계적 균형과 반론권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비중있게 다뤄지면서, 기울어진 쪽으로 점점
더 기울어지고, 우매하고 황당한 주장도 확대 재생산된다. 그것이 정치의 현실이고, 언론의
현실이니 받아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일간 뉴스를 챙겨보지 않는다. 뉴스라지만 딱히 새로울 것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멀리 바라보라는 말과 같이 우리 시대를 대표한 언론인 손석희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서
민주시민의 눈과 귀가 되고, 기득권을 감시하는 언론인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제 주관에 따라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