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티스 코드
맹성렬 지음 / 지식여행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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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 코드, 맹성렬 지음, 지식여행, 2019.


<아틀란티스 코드>는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지만 하루 아침에 물 속에 가라앉았다는 전설 속의 아틀란티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단지 신화와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 남겨진 파편들을 퍼즐 맞추듯 그러모아 아틀란티스라는 하나의 그림으로 모아 나가는 이야기이다.


아틀란티스는 플라톤이 철학적 비유의 상징으로 언급한 것으로 취급하고 전설로 취급하고 있는데, 저자는 단지 비유에 그치지 않고, 플라톤이 비유가 아닌 실제로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언급했을 것이라는 전제로, 즉 아틀란티스가 실재했을 것이라는 전제로 이 신화 같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아틀란티스가 실재했는지, 전설 속의 이야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틀란티스가 실재했다고 해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유토피아가 되지 않을 것이고, 유토피아 같은 아틀란티스의 존재가 지금의 디스토피아(?) 같은 어려운 상황들을 해결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의 이야기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을까라는 단순한 의문을 풀기 위해 희미한 조각을 찾는 저자의 집념이 놀라웠다.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저자가 고대 역사에 대해 이렇게 많은 자료를 찾았다는 점에서도 무척 놀라웠다. 전체 400여 페이지 중에서 100여 페이지가 미주로 채워져 있으니, 현재에 남아있는 자료들을 기반으로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저자의 집념이 느껴진다.


플라톤이 살던 당시의 그리스 지역은 지구 평판설을 믿고 있었고, 육지의 가장자리는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믿음으로는 지중해를 벗어난 세계가 있음을 상정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다만 아틀란티스라는 미지의 세계는 그리스 세계에서 만든 유토피아가 아니라 당시 고도의 문명을 이뤘던 이집트를 통해 전해졌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틀란티스가 이집트에 있었던 거이 아닌 이상, 다른 문명에 의해 이야기가 전해졌고 그 이야기를 플라톤이 전해들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아틀란티스 코드>는 전설의 아틀란티스를 출발점으로 그 기원을 찾아가는 추리소설과 같이 느껴진다.


이집트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대양을 건널 수 있는 항해술을 보유했다는 증거를 제시하며, 남미 문명들과의 교류가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아틀란티스가 남미의 문명을 다소 미화하여 이야기한 것이 아닌가라고 이야기한다. 아틀란티스의 기원을 찾아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파고들어가고 있어서, 한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아틀란티스의 이야기가 워낙 신화 같은 이야기이기에 그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저자도 섣불리 결론내지 않고 있다. 남미 문명과의 개연성을 짚어가며 다양한 이야기를 싣고 있어서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명명백백히 밝힐 것이라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틀란티스에 대한 모든 것이라 할 만큼 다양한 연구자료들이 있어 아틀란티스의 실재여부는 읽는 독자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만나는 아메리카 고대 문명의 이야기는 편향된 인류 문명사에 균형을 잡아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구가 편평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각적으로 자명한보편성을 띤 주장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감각적으로 그것이 옳다고 누구나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가 둥글다는 주장은
이런 공감대를 끌어내기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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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지배하는 사회 - 합리적 개인이 되기 위한 16가지 통찰
세바스티안 헤르만 지음, 김현정 옮김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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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지배하는 사회, 세바스티안 헤르만 지음. 김현정 옮김. 새로운현재, 2020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는 독일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편집자인 세바스티안 헤르만이 쓴책으로, ‘우리가 정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어떤 정보는 받아들이고, 어떤 정보는 거부하는지, 우리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진실은 어떻게 생겨나는지’(20~21)에 대한 물음에 다양한 심리 실험 사례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는 우리가 어떤 것을 옳고 틀리고, 좋고, 나쁘다 결정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감정’(9)이라는 것이다. ‘감정이 판단을 재배하는 16가지 사례에 대한 심리 실험과 연구로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런 현상이 있다는 정도로 제시한다. 그래서 감정이 판단을 재배하는 것이 당연하고, 바꿀 수 없으니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보통의 심리 실험은 1000의 결과가 아니라, 다수의 선택에 대한 경향성으로 결론을 제시하게 되고, 통제된 상황에서의 실험이기에 통제 조건이 변하면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고, 소수일지라도 분명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들도 있다. 그렇기에 심리 실험의 결과를 진실로 단정하지 않고 경향성으로 이야기하게 되는데,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는 변화가 어려우니 받아들이라는 듯 이야기를 마무리하거나, 대안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제 원인에 대한 해결책을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감정이 지배하는 상황이 발생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사례들을 접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볼 때 이른바 사후 해명이다.
즉 나중에 정당화하는 행위다.
먼저 생각을 정한 다음 이러한 직관을 확실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의식적으로 찾기 시작한다.(25)


조너선 화이트() 도덕성 기반이론() ‘코끼리에 탄 기수’()
거대한 코끼리는 직관적 생각, 즉 감정과 정서에 따라
움직이는 정신적 과정을 상징한다.(
)
기수의 임무는 자신이 탄 코끼리의 감정적 반응을
내용으로 채우는 것이다.
안장에 앉은 기수는 코끼리의 판단을 합리화시키고
감정적으로 인지된 내용에 대해 사후 근거를 마련한다.
이때 진실은 중요하지 않으며,
감정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근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26~27)


포퓰리즘, 즉 대중영합주의 성향의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의심스러운 선동가들이 제시하는 내용들도 마찬가지다.(
)
우리의 영혼을 뒤흔드는 그런 말들을 처음 접할 때에는
아주 깜짝 놀랄 것이다.
이를 테면 난민에 대한 나쁜 소문이나
남녀 차별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을 들으면
고통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주요 언론들이 처음으로 가짜 뉴스라는 개념을
끌어들일 때도 이와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41)


익숙함과 친숙함은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적어도 부정적인 감정을 사그라들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42)


사람들이 허위 정보를 믿도록 만드는 확실한 방법은 잦은 반복이다.
왜냐하면 친숙함은 진실과 쉽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50~51)


사람들은 신기술이 나타남과 동시에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겨나면서
신기술을 다시 밀어내려고 한다.(57)


스마트폰을 손에 든 청소년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에는
위험한 기술의 어린 희생양으로 인지될 뿐,
스마트폰의 구글맵을 사용하여 도시에서 길을 척척 잘 찾는
기특한 청소년으로 인지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전철에서 스마트폰을 손에 쥔 사람들을
화면에 사로잡힌 기술의 노예라고 생각할 뿐,
다른 형태의 책이나 신문을 읽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58)


믿음 집착’()
인간은 어떤 것을 일단 믿게 되면
자신의 입장을 바꾸는 경우가 극도로 드물다.(66)


우리가 그 거짓말 대신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히 들었을 때
비로소 거짓말의 영향력이 약해진다.(75)


거짓말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청중이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에게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77)


건강 역설’()
사람들이 건강할수록 건강 손상에 대해 더 많이 하소연한다.
지병이나 육체적 결함과 관련해서도
부정적인 잔재물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은 몸속 깊은 곳에서 나는
잡음에도 민감할 정도로 아주 건강하다.
마치 고요한 한밤중에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냉장고가 부릉대는 소리에 신경이 쓰이는 것처럼(85)


인간이 자신의 행복과 안녕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할수록
더 많은 불행을 느낀다고 발표했다.
특히 모든 행복이 갖춰진 상황에서
더욱 불행을 느낀다는 것이다.(85)


알고 싶지 않은 바람은 특히 부정적인 사건에서 강하게 드러났다.
나쁜 메시지가 삶을 위협하면 호모사피엔스인 인간은
극도로 어리석게 행동하며 불쾌한 진실을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다.(104)


하나의 견해가 강렬한 지지를 받을수록
그 견해가 근거하고 있는 사실적 토대는 부실하다는 것이다.(
)
유전자 변형 식품에 가장 투철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주제와 관련하여 가장 적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들은 자신이 이와 관련하여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117~118)


우리는 본인의 생각이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간주한다.
나아가 자신의 견해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정도라고 자신만만하게 여긴다.(119)


투표 전에 느끼는 개인적인 딜레마는 선거 때마다 계속 존재한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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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게 돈을 쓰는 최악의 방법
아른핀 콜레루드 지음, 손화수 옮김 / 리듬문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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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게 돈을 쓰는 최악의 방법, 아른핀 콜레루드 지음. 손화수 옮김. 리듬문고, 2019



누구나 살면서 로또에 당첨되는 상상을 한 번 이상은 해 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당첨금을 어디에 쓰면 좋을 지 친구나 가족과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있다. 적어도 나와 내 주변인들에게 들었던 상상 속에서는 당첨금을 쓰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나를 위해 평소엔 엄두도 내지 못 했던 고가의 사치품 혹은 집이나 자동차처럼 정말 목돈이 들어가는데 쓴다면 당첨금을 다 쓰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조차 않을 테니까


 

하지만 로또 당첨금을 단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좀 더 공익적으로 가치 있게 쓰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다소 엉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상상이 <가치 있게 돈을 쓰는 최악의 방법>에서 흥미롭게 펼쳐진다. 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책을 쓰는 작가 아른핀 콜레루드는 70년대 노르웨이 시골에서 성장한 자신의 어린시절을 투영하여 로또 당첨을 둘러싼 시골 마을의 순박한 이웃들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보통의 어느 날 저녁, 프랑크와 엄마는 로또에 당첨되었다. 금액은 무려 30억원. 로또 당첨이 알려진 이후 프랑크는 학교에서 전교생으로부터 엄마는 가족과 동네 이웃 혹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당첨금을 나눌 수 없는지 추궁을 당한다. 프랑크가 받은 요청사항은 저학년들에게 필요한 살색 색연필, 런던으로 수학여행 가기, 스키장 설치 등 소소하거나 다소 엉뚱한 것들이었지만 엄마에게는 먼 친척의 병원비, 알지 못하는 이의 생활고 해결을 위한 생계비 지원 등 훨씬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 요청들이 많았다.  



넘치는 요청에 견디다 못한 엄마는 1억이 넘는 상금을 걸고 마을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을 뽑는 친절경진대회를 연다. 신문에 기사가 실리고 시골 마을은 들썩이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상금을 노리고 누구에게나 드러나게 착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초반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입었다. 무료로 잔디를 깎아 주는 사람, 굴뚝을 청소해 주는 사람, 페인트 칠을 해주는 사람, 심부름을 대행 해 주거나 심지어 파리를 잡아주는 아이 등 마을엔 착한 일을 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착한 일을 한 사람들이 방해 받기 시작하고 마을은 친절경진대회를 열기 전보다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프랑크의 엄마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이 습관이 되는 아름다운 마을을 꿈 꿨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상금을 노리고 착한 일을 하며 남들보다 돋보이기 위해 방해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가치 있게 로또 당첨금을 쓰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 마을을 최악으로 만든 것이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에서 도망치듯 프랑크와 엄마는 일주일 간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에도 프랑크의 친구들은 마을 소식을 계속 전해주는데 상황은 갈수록 안 좋아진다. 무리하게 마을을 청소하던 고령의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아이들을 위해 미니 골프장을 만들었던 농장에 불이 나는 등 좋지 않은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과연 마을과 프랑크 가족은 평온을 되 찾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지게 되면 무슨 일을 할까.
햇살이 환할 때는 남들의 시선이 있으니 모두들 착한 일을 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어둠의 옷을 입고 나쁜 짓을 한 후에 재빨리 몸을 피하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254)


 

목적없이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희생과 친절을 진정한 승자로 남기며 다행히 소설은 즐겁게 마무리 된다.

로또 당첨이라는 극적인 상황 뿐 만 아니라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심사숙고한다는 핑계로 고민은 길어지지만 결국 개인의 경제적 득실만을 따지고 있는 소설 속 거짓된 어른의 모습이 내 모습은 아닌지 소설을 다 읽고 반추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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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일기
박명호 지음 / 인타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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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일기, 박명호 지음. 인타임, 2019


<만주 일기>는 소설가 박명호가 만주 지역을 방문하고,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인들과 교류하며 겪은 이야기와 생각들을 기록한 책이다. 만주 여행기이기도 하고, 한국 문학인과 만주 문학인의 교류사이기도 하고, 만주를 무대로 살아간 사람들의 역사서이기도 하다. 130여 페이지 분량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얇지 않고, 묵직한 울림을 준다.


그동안 만주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아서 <만주 일기>를 통해 만주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기록된 정사로서의 만주 역사도 흥미로웠지만, 만주를 무대로 살아간 우리 한민족과 만주족의 기록되지 않은 역사 이야기들도 무척 흥미로웠다. 기록되지 않는 일상을 살아내 역사를 만든 일반 민중의 삶의 이야기는 과거의 무용담 처럼 흔히 부풀려지기도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는 정사에는 없는 사람 냄새가 짙게 배어 있어 웃음과 감동이 있다.


우리에게 만주 하면 떠오르는 것은 독립군개장수이다.
만주는 우리에게 두 번의 단절이 있었다.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천 년 이상의 단절이 있었고,
해방 뒤 이념의 대립으로 50여 년 단절의 시기가 있었다.
역사에는 정사가 있고 야사가 있듯이
문학에도 기록문학이 있고 구비문학이 있다.
독립군 이야기가 기록문학이고 정사라면
개장수 이야기는 야사이고 구비문학이다.(26)


<만주 일기>는 만주의 서쪽 항구도시 단동과 후금의 수도인 심양(봉천)을 시작으로 만주의 동쪽(북간도) 지역인 연변, 훈춘과 북쪽 지역인 목단강, 길림, 하얼빈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다. 각 지역의 역사 만큼 지명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도 담겨있다.


심양의 옛날 이름이 하늘을 받들다는 뜻의 봉천(奉天)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째서 하늘을 받들다는 도시에서 그 정반대의 뜻을 지닌
해가 침몰하는(
沈陽)’ 이름이 되었을까.
심양이라는 이름에는 한족들의 배만민족주의가 담겼다.
사실 그들은 봉천뿐만 아니라 만주라는 이름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주를 아예 3등분하여(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
동북3또는 동북이라 한다.(30~31)


북간도라는 명칭은 참 특이하다.
두만강 이북 지역은 여진족의 금나라()의 고향이다.
그들이 중국을 지배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살던 곳은
봉금정책으로 비워두고 신성시했다.(
)
조선 쪽에서 사이섬(間島)에 간다 하면서
사실상 강 건너에 가서 농사를 지었다.
청이 망하면서 많은 조선인들이 사이섬 북, 곧 북간도로 건너갔다.
그래서 북간도가 된 것이다.(85)


이도백하는 백두산의 도시다.
백두산을 가려면 무조건 이 도시를 거쳐야 한다.(
)
이도백하는 백하(白河)라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모두 백하라고 하는데
하천이 너무 많다 보니 순번을 부여해 투도(일도), 이도, 삼도..
십팔도, 이십 몇 도까지 있다.
백하는 이도백하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모든 하천을 뜻하기도 한다.(90)


만주 대륙에서 발원한 고조선, 고구려, 부여, 옥저, 발해에 대해 우리의 역사로 인식하지만 그 만주 지역에 대해서는 우리 땅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고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또한 그 만주 지역에서 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는 조선족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갖지 못했던 것 같다. 이는 이문재 시인이 <우리는 섬나라 사람>이라는 시에서 이야기하듯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는 대륙에 위치하지만 분단의 상황으로 섬나라처럼 떨어져 있어서 생각이 갇힌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섬나라 사람>
여기는 섬나라다.
반도가 아니다. 삼면이, 삼면만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이 형용모순이 우리의 지독한 현실이다.
여기 섬의 북쪽을 보라.
반도의 남쪽을 섬으로 만든 북해는 바닷물이 없는 이상한 바다,
민간인이 접근할 수 없는 죽은 바다다.


<만주 일기>의 마지막에 안중근 장군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한 하얼빈에서 동북아평화를 위해 폭력적인 통일과 동화, 강제가 아닌 개별성을 인정하는 분열과 연합으로 유럽연합과 같은 동북아연합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섬나라처럼 갇힌 생각의 틀을 깨주었다.


모든 감동이란 첫 경험에서 일어난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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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소를 생각한다
존 코널 지음, 노승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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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생각한다, 존 코널 지음. 노승영 옮김, 쌤앤파커스, 2019


<소를 생각한다>는 아일랜드의 농사꾼이자 작가인 존 코널이 글쓰기를 위해 고향집에서 아버지를 도와 목장을 운영하며 겪은 일화들을 기록한 책이다. 소설가의 좌충우돌 목장 일기이기도 하며, 작가의 고향인 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1만 여년을 인류와 함께한 소의 역사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나는 가축을 단순한 짐승이 아닌 훨씬 소중한 존재로 여긴다.
가축은 역사의 피조물이요, 과거를, 우리의 과거를 담는 그릇이다.
나는 가축의 유전자와 몸에서 소뿐 아니라 주인인 농부들의 경주를 본다.
그 속에서 이야기들에 얹힌 이야기들을 본다.
작가와 농사꾼 중 어느 하나를 택할 필요는 없다.
둘 다 될 수 있다. 나는 농사꾼이자 작가이다.(319~320)


인간과 함께한 소의 역사는 프랑스 라코스 동굴 벽화에 새겨진 소와 이집트 록소르 신전(테베)에 새겨진 소의 이야기부터 진화론에 결정적 아이디어를 제공한 로버트 베이크웰의 동종 교배법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또한 아일랜드 목축, 유럽 목축 역사 뿐만 아니라 호주와 미국의 목축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또한 신화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소와 피카소의 작품 등 회화에 남겨진 소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단지 단백질 공급원으로서의 소가 아니라, 1만 여년을 인류와 함께한 소에 대한 모든 것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풍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인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소는 1500년 가까이 인류의 동반자였기 때문이다.
유전학자들에 따르면 집소의 기원은 이란의 들소 한 무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록스 또는 위르라 불리는 이 들소 품종은 현재 멸종했지만,
한때는 위풍당당했을 것이다.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와 더 이전의 쇼배 동굴 벽화에
남아 있는 소 그림이 바로 오록스다.(29)


소들은 성격이 저마다 다르다.
어떤 소는 착하고 어떤 소는 못됐고
어떤 소는 교활하고 어떤 소는 게을러터졌다.
기질도 다르고 기분도 변한다.
가장 순하던 녀석이 동료를 못살게 굴고
가장 다혈질이던 녀석이 송아지들이랑 놀아주기도 한다.
소의 세계에서는 인종주의가 없으며,
품종과 색깔이 달라도 서로 잘 지낸다.(27)


<소를 생각한다>는 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 농경 사회인 아일랜드의 전통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다. 자신의 땅에 스스로 이름을 붙였다는 점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내가 소유한 것에 이름 짓기를 통해 애착을 가질 수 있으니, 땅을 기반으로 하는 농부에게 땅에 이름을 짓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땅에는 이름이 있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이웃들도 모두 자기네 땅에 이름을 붙였으니까.
그 이름은 대대로 전해 내려왔다.(21)


농사란 어깨에 죽음을 짊어지고 왼쪽에 질병을,
오른쪽에 정신을, 앞쪽에 새 생명에 대한 기쁨을 데리고서
생존과 함께 걷는 일이다.(
)
우리가 아는 것은 땅뿐()
땅은 우리를 먹여 살리고 풍요롭게 한다.
땅은 우리의 생계 수단이다.
다른 생계 수단은 알지 못한다.
버치뷰가 이곳의 이름이다.
여기가 우리 집이다.(22)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가지만 그 생명의 경이로움과 소중함을 일상적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생명의 경이로움과 소중함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목도할 때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소를 생각한다>는 소와 양을 기르는 농장의 이야기이다 보니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죽임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빈번하다. 탄생의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 글을 읽는 것 만으로도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물론 죽음을 목도하며 안타까움과 함께 소중함도 일깨워준다. 물론 농장일을 하며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도 새삼 깨닫게 된다.


나는 스물아홉 살이고 송아지를 직접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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