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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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살림, 2019


흔히 셰어하우스라고 하면, 개인공간과 공용공간이 구분된 주택을 일컫는다. 각자의 방이 개인공간으로 따로 있고, 주방, 거실, 세탁실 등이 공용공간으로 함께 이용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베스 올리리의 <셰어하우스>는 이러한 일반적 상식을 과감히 깨트린다. 방 하나에 침대 하나의 공간을 낮과 밤이라는 시간으로 나눠 공유하는 개념이다. 공간과 그 공간에 채워진 모든 살림살이는 함께 사용하되, 시간으로 엄격히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스톡웰의 햇빛 잘 드는 아파트, 넓은 침실에 침대 하나.
공과금 포함. 한 달 350파운드. 즉시 입주 가능. 최소 6개월.
스물일곱 살의 호스피스 병원 간호사와 아파트(방과 침대) 셰어.
야간 근무하며 주말에는 집에 없음.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에서 6시까지만 집에 있음.
나머지 시간은 전부 당신 차지!
9
시부터 5시까지 일하는 사람에게 완벽한 조건.(11)


집주인은 왜 이런 광고를 냈을까? 하나의 방에 하나의 침대를 공유한다는 것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 같다. 소파, TV, 냉장고라면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는데, 가장 사적인 공간인 침대를 함께 쓴다는 것은 역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집주인 리언은 억울한 누명으로 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동생 리치의 변호사 비용을 마련해야 했고, 변호사를 만나거나, 연인과의 데이트 등으로 낮 시간동안 추가로 일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부득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야간 근무하는 시간동안 비어있는 집을 이용할 동거인을 구함으로써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이 셰어하우스의 세입자 티피는 남자친구의 새 여자친구로 인해 동거하던 집에서 당장 나와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고, 가진 돈으로는 주방 벽에 형형색색 곰팡이가 핀집이나 셰어하우스를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냥 해치워버리자. 달리 도리가 없다.
눈 딱 감고 해치워버리자. 그 길이 최선이다.
반창고를 확 떼어내듯, 아니면 찬물에 들어가거나,
집안 물건을 부쉬버린 걸 엄마한테 실토할 때처럼.(8)


그렇게 시작된 동거 생활. 이들의 첫 번째 원칙은 절대 마주치지 않는 것. 이들은 집을 교대로 사용하다 보니, 업무 인수인계 하듯, 포스트잇 메모노트를 통해 서로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전 남자친구의 약혼 소식에 충격을 받은 티피는 우연히 마주치기는 어려운 출장지에서 마주치는 전 남자친구로 인해 매우 심란하고, 과거 연애때의 기억들이 떠올라 괴로워하고 있는 가운데 심리상담 치료를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전 남자친구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스리이팅(gaslighting)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정신적 학대를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로써, <가스등>(1938)이라는 연극에서 남편이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만들고는 부인이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아내를 탓하고, 이에 아내내는 점차 자신의 현실인지능력을 의심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남편에게 의존하게 된다는 내용이라고 한다.(시사상식사전)


남자친구로부터 차이고, 쫓겨나다시피 하여 정신적 충격을 받은 티피는 셰어하우스에서의 생활을 통해 점점 안정을 찾아갈 즈음, 우연히 마주친 전 남자친구를 보며, 연애때의 기억들이 떠올라 새로운 상황에 주저하게 되고, 자신의 잘못으로 헤어지게 된 것은 아닌지 자책하는 등 괴로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로 인해 단호하게 뿌리치지 못하거나,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생긴 오해들과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버리는 사건들을 보면서 티피의 자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한편, 우유부단함이 스스로 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니 자업자득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이 모든 것이 가스라이팅의 피해결과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정신적 학대를 극복하는 과정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인지할 수 있도록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고, 스스로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당신들이 지켜온 일상의 규칙에 변화를 주고 싶다면,
재빨리, 한꺼번에 해치워야 한다고 조언하겠어요.
피해갈 도리가 없게 말이야.”(160)


무슨 일을 터무니없이 즉흥적으로 할 때의 복받치는 기쁨,
계획에 없던 일을 하면서 살아 있음을 문득 느끼는 것,
지각 있는 생각에 대해 훈계하는 뇌의 온갖 목소리를 차단해 버리는 것(269)


구원은 남이 대신해줄 수 없다.
자신을 구할 사람은 자신뿐임을 상기한다.
남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당사자가 준비가 되었을 때
옆에서 도와주는 것뿐이다.(426)


당신이 하나의 침실, 하나의 침대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면 <셰어하우스>를 펼쳐서는 안된다. 공유된 공간에서 각자의 소지품을 통해 서로의 습관과 기호를 알게 되고, 포스트잇 메모노트를 주고받으며, 셰어하우스 생활에 필요한 전달사항 뿐아니라,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조금씩 도움을 주는 과정을 통해 이들은 마주하게 된다.


<셰어하우스>는 사랑으로 포장된 정신적 학대(가스라이팅)가 한 사람의 정신을 어떻게 피폐하게 하는지도 그리고 있어 현재의 연인 관계에서 혹 이러한 정신적 학대 상황, 심리적 조작상황에 놓인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결코 벗어날 수 없으며, 주변 사람들과전문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음을,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부터 위로받고, 사랑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셰어하우스>를 덮는 순간, 집이라는 공간에 함께 하고 있는 내 가족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런 소중한 사람들이 없는 집이라면 리언의 말처럼 이곳은 집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너무 많은 행복을 차지해버려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갈 행복이 모자라게 됐다는 듯이.(503)


당신은 집이야”()
당신이 오기 전까지, 그곳은 집이 아니었어, 티피”(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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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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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다산책방, 2019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은 미술계의 알....이라 할 만하다. 아니, .... 미술편이다.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못>으로 출발한 미술 산책은 전율 그 자체였다. 잿빛으로 그려진 죽은 사람들과 환호하는 사람의 대비는 희망으로 보이기 보다는 아비규환의 혼란으로 보였다. 그러나 실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그린 그림이기에 당시 생존자들에 의해 작성된 사건 일지와 비교하여 그림에 담긴 것과, 담기지 않은 것을 나누고, 제리코는 왜 담지 않았는지, 보다 더 극적인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을 포착하여 그리게 되었는지, 사실과는 다르게 선원들의 근육질 몸과 실제 생존자와 그림 속 사람의 숫자가 맞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줄리언 반스의 집요함이 보이기도 했다. 작가적 관찰력으로 오랜 시간 관찰하고, 자료와 비교하고, 이를 통해 화가의 의도를 유추해 작가적 상상력까지 더해 그야말로 그림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그림은 화가의 의도도 있지만, 관객의 마음이나, 생각들을 투영하게 되고, 느끼는 대로 이해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을 통해 그러한 감상법이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 깨달았다. 흔히 별자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별자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리 열심히 하늘을 바라봐도 별을 연결한 별자리는 눈에 그려지지 않는다.


미술 작품 감상도 이와 같이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다. 작가의 제작의도 뿐만 아니라 작가가 그릴 해당 작품을 그릴 당시의 상황이나 태도 등을 알고 보니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심지어 그림에 애착이 생기기까지 한다.


평소 미술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유명화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유명작가의 유명작품이라는 것만 알았지, 더 깊게 이해하려 하지 못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었을텐데도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듯 하다.


미술 문외한에게는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에 소개된 작품들은 생소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줄리언 반스의 해박한 지식과 특유의 관찰력으로 풀어낸 설명을 접하고 나니 이 낯선 작품들이 친숙하게 다가왔다.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2을 기대하며, 사적인 미술 산책 방법에 대한 책도 출간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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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 - 기술과 인간의 만남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미래전략연구센터 지음 / 김영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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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미래전략연구센터 지음, 김영사, 2019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2015년 판 출간 이후에 계속 내용을 보완하고 새로운 과제와 전략을 추가하였으며, 2020년 판에는 기술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부제로 과학기술부터 사회문화까지 7가지 영역으로 나눠 2020년 메가트렌드를 전망하고 분석한 미래전략보고서이다.


7가지 영역은 사회(Social), 기술(Technology), 환경(Environment), 인구(Population), 정치(Politics), 경제(Economy), 자원(Resources) 분야로 영어 알파벳 앞글자를 따서 STEPPER 전략이라 부른다. 다루지 않는 영역이 없다 할 정도로 다양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


사회(Social) : 문화, 노동, 복지, 교육, 양극화, 사회이동성
기술(Technology) : 빅데이터, 인공지능, 블록체인, 자율주행, 드론, 생체인식
환경(Environment) : 환경생태, 저탄소사회, 스마트시티, 사이버 보안
인구(Population) : 저출산, 고령화, 다문화, 미래 세대
정치(Politics) : 행정, 민주주의, 한반도 통일외교, 통일한국의 정치 체제
경제(Economy) : 소재/부품, 핀테크, 공유경제, 창업, 지식재산
자원(Resources) : 에너지 전환, 자원, 통일시대의 국토교통, 농업 르네상스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STEPPER 전략을 제시하기에 앞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들과 이들이 변화시킬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4차 산업혁명의 대표하는 ABCD 기술을 소개하고, 각 기술의 발전과정과 현재의 기술수준을 진단하고, 이러한 기술로 인해 변화될 미래상을 전망하고, 해당 기술의 발전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들이 변화시킬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A: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B:
블록체인(Blockchain)
C: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D:
데이터
(Data)

인간은 과거 산업혁명 이전에는 일과 생활의 공간이 일치된 직주일치 사회였으나, 산업혁명을 거치며 이들이 분리된 직주분리 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현재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다시금 일과 생활 공간이 재결합하고 있으며, 사적소유에 기반한 직주일치가 아닌 코워킹, 코리빙 등 공유를 기반으로한 직주일치가 된다고 진단한다.


직주일치의 의미가 과거 산업화 시대 이전과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의 가치와 취향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코워킹이나 코리빙과 같이
직주공간의 일치를 추구하면서도 공간을 타인과 공유하는 새로운 개념의 일터와
주거지의 공유문화를 만들어 갈 것으로 보인다.(128)


또한 과학 기술의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고 기술이 도입되어 확산되는 과정에 대한 종합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기술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 것인가?
첫째, 해당 기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과학 기술의 원리와 핵심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균형적이고 중립적인 관점을 갖기 어렵고 기술 낙관론자들이나
기술을 마케팅하려는 기업들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
둘째, 기술이 사회에 도입되어 확산되는 과정에 대한 종합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159~160
)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부분은 자본주의의 변화와 민주주의의 변화를 다루는 부분이었다.


자본주의는 현재 성장 임계점에 도달했으며,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변화될 것이라 진단하고 있다. 전통적 자본주의의 본질인 소유개념이 공유를 통해 변화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변화가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전통적 자본주의를 떠받쳐온 소유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인터넷의 발달 덕분에 굳이 물건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135)


민주주의에 있어서도 블록체인 기반으로 직접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있다는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익명성, 분산성, 투명성, 보안성으로 인해 블록체인 투표 시스템에 도입되면 효율성, 익명성, 안정성이 담보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표 시스템은 입법부 혁신도 가능하며, 국민 주권 대표 기관으로 온라인 하원을 구성할 수 있다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입법부의 혁신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대의제 대표 기관인 국회는 현재 대리인의 실패 또는 왜곡으로
정택과 법률에 국민 전체의 의견이 아닌 이해관계자의 특수 이익을 반영하며
신뢰를 추락시켜왔다.
그러나 블록체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통한다면 국민 주권 대표 기관으로
온라인 하원을 구성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상하원 제도가 갖는 협치의 장점과
직접민주주의의 장점을 동시에 구형한 수 있을 것이다.(
)
O2O
국회가 운영된다면 가상공간에서 국민이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확인하고
평가할 수 있어 여러 문제에 대한 통제가 가능해진다.
특히 규제를 통한 합리화는 강제적이지만,
개방을 통한 공유는 자율적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383)


국민투표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제도이나, 시간적, 비용적 비효율성으로 인해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데, 블록체인 기술은 이러한 시간적, 비용적 비효율성을 제거함으로써 국민투표를 통한 직접민주주의도 실현가능해 보인다. 물론 대의민주주의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이고, 여론조사라는 표본조사 방식으로 여론을 형성하는 것을 국민들이 직접 제안 정책에 대해 투표를 하여 가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STEPPER 전략은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을 다루고 있고, 각 영역에서의 현재 상황과 4차 산업혁명 대표 기술로 인해 변화될 미래 모습을 전망하고, 이에 대한 전략도 제시하고 있으니, 각자가 관심있는 영역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또한 방대한 영역을 다루는 만큼 압축적이고 개괄적인 부분도 있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변화될 사회 모습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에 유용하다.


기술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관점으로 4차 산업혁명을 바라봐야 한다.()
인간이 발명하고 개발한 모든 기술의 궁극적 목표와 지향점은 인간이().(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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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 헌터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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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 헌터,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밝은세상, 2019


<사이코 헌터>인간사냥이라는 사이코패스적 반인륜 범죄를 다루고 있다. ‘인간사냥이란 단어만으로도 잔혹함과 혐오감이 느껴진다. 실제 이런 일이 사이코패스에 국한된 이야기일까 싶기도 하지만, 그동안의 역사를 통해서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인간사냥보다 더 잔혹한 전쟁, 인종말살, 생체실험 등을 벌였음을 알고 있다.


인간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답을 얻고도 남는다.
무차별적인 살인, 어떤 전쟁이든 어떤 군대든, 어김없이 벌어지는 온갖 수탈 행위,
성난 군중들의 집단 폭행, 공개 처형을 지켜보는 구경꾼,
기괴하고 병적인 데다 유혈이 낭자한 일들에 대한 집단 호기심까지
……(216)


<사이코 헌터>는 두 개의 살인 사건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레미와 디안을 번갈아가며 사건을 조망한다.

올해 36살의 레미는 4년전 회사사장의 아내와 한 번의 일탈로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쫓겨나 빈털터리로 거리 노숙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목격한 폭력사건에서 부유한 남자를 구해주게 되고, 사례의 뜻으로 그 남자가 소유한 성의 정원사 일자리를 제안받는다. 그렇게 성에 도착해보니, 그는 정원사가 아닌 인간사냥의 표적이 되었다. 레미는 속았다. 가족이 없는 노숙인을 고르기 위한 자작극이었던 것이다.


또 한 명의 주인공 디안은 올해 서른 살의 사진작가로 세벤느 산맥의 숲을 사진으로 담고자 출장 오게 된다. 그곳 산장에서 마주한 동네 사람들, 그들이 동네에서 발생한 어느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그들은 그 사건의 살해범으로 의심되는 청년과 시비가 붙어, 집단구타하는 과정에서 청년이 급소를 맞고 숨지게 된다. 이 과정을 목격하게 된 디안은 이 사냥꾼 무리로부터 쫓기게 된다.


레미를 포함해 인간사냥의 표적이 된 사람은 4명으로 이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들이다. 노숙자인 레미,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불법 체류자 사르한,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체첸의 일반시민 에이야즈와 함자트.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찾는 이 없을 집단 기억 상실의 희생자들’(170)을 표적으로 선택된 것이었으며, 이들은 함께 이 사냥터를 탈출하고자 쉴 새 없이 달린다.


디안은 살인사건의 목격자로서 살인자들로부터 쫓기게 되는데, 이들에게 잡히면 본인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숲을 벗어나고자 쉴 새 없이 달린다.


레미 일행과 디안은 살인자들로부터 벗어날 듯 벗어나지 못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된다. 치밀하게 설계된 인간사냥터와 숲 속을 훤히 알고 있는 무리부터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보여준다.


<사이코 헌터>는 인간사냥, 목격자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살인이 아닌 사회적 살인과도 같은 차별과 배제를 통한 투명인간 만들기, ‘집단 기업 상실의 희생자만들기로 바꿔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일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차별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사이코 헌터>에도 세 계층의 사람들이 있다. 쾌락을 위해 인간사냥을 서슴지 않는 최상류층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중산층, 그리고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노숙인, 불법 체류자와도 같은 하층민. <사이코 헌터> 세계에서의 삶은 가혹할 정도.


하층민이 중산층으로, 중산층이 상류층으로 오르기는 유리천장으로 어렵고, 중산층은 사소한 실수나 한 번의 일탈로도 언제든 모든 것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 물론 상류층은 유리바닥이 있어 결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불법 체류자 신분이라는 불안함 속에서 6년간 꾸준히 일을 하며 돈을 모으고, 고국에서 가정을 이룰 꾼을 꾸던 사르한, 어린 시절 편집증과도 같은 증상으로 사람들로부터 스스로 고립시켰으나 사진을 통해 점점 관계 맺기를 시작하고, 사진작가라는 어엿한 직업도 갖게 된 디안. 이들은 중산층을 향해 천천히 힘겹게 오르던 중 우발적 살인과 우연한 살인목격으로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게 된다.


솔직히 어린 아이에게 독창적인 꿈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일반적으로 어린 아이들에게는 부디 남들처럼 무리와 어울리고,
섞이고, 튀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평범한 아이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아니면 친구들보다 뛰어난 아이가 되어주거나.(111)


중소기업에 다니며 아내와 딸과 함께 단란하고 부족할 것 없는 가정을 이루고 있는 레미는 사장부인과의 단 한 번의 일탈로 회사도 잃고, 가족도 잃고 노숙자로 전락하고 재기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세벤트 산맥의 마을 사냥꾼 무리인 동네 약사 롤랑 마르공, 산장 주인 위그, 그들의 친구 세브렝 그라네와 그의 아들 쥘은 취미로 사냥을 즐길 정도로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비 끝에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고 발각될 경우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두려움에 시신을 유기하고, 이를 목격한 목격자 마저 살해하고자 한다.


삶은 야만적이다.
눈곱만큼의 자비도 허락지 않는다.
가혹할 정도로.(65)


반면 상류층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인간사냥이라 주장하는 불법 체류자와 그냥 사냥이었다고 주장하는 경찰최고위층과 친분이 두터운 상류층의 증언 중 어느 것을 믿을 것인가? 그들에게는 재산과 사회적 네트워크라는 유리바닥이 있어 결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말리에서 밀입국한 불법 체류자의 증언과
어마어마한 토지를 소유한 부호의 증언 사이에서
진위 여부를 비교하는 건 애초부터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316~317)


이처럼 <사이코 헌터>살인이라는 렌즈 대신 투명인간이라는 렌즈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 보았을 때도 여전히 가혹하고 잔인하다고 한다면 비약일까?

<사이코 헌터>의 마지막장을 넘겼을 때 디안이 사력을 다해 도망치며 되뇌는 원점에서 다시 반복되는 이야기”(258)가 잔상으로 남아 현실 사회에서도 반복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진다. 악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아 보인다.


양심의 가책을 벗어던진 살인범은
무고한 시민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기 때문이다.(320)


양심의 가책을 벗어던진 차별과 배제는
무고한 시민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기 때문이다.


인간사냥꾼들과 이들로부터 벗어나려는 레미, 사르한, 에이야즈, 함자트, 디안의 결말은 직접 확인해보길 권한다. 결말을 섣불리 예단하지는 말자.


샤르한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레미는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행운을 빌어, 이 친구야
…….”(269)


인간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답을 얻고도 남는다.
무차별적인 살인, 어떤 전쟁이든 어떤 군대든, 어김없이 벌어지는 온갖 수탈 행위,
성난 군중들의 집단 폭행, 공개 처형을 지켜보는 구경꾼,
기괴하고 병적인 데다 유혈이 낭자한 일들에 대한 집단 호기심까지…… - P216

솔직히 어린 아이에게 독창적인 꿈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일반적으로 어린 아이들에게는 부디 남들처럼 무리와 어울리고,
섞이고, 튀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평범한 아이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아니면 친구들보다 뛰어난 아이가 되어주거나. - P111

삶은 야만적이다.
눈곱만큼의 자비도 허락지 않는다.
가혹할 정도로. - P65

말리에서 밀입국한 불법 체류자의 증언과
어마어마한 토지를 소유한 부호의 증언 사이에서
진위 여부를 비교하는 건 애초부터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 - P316

양심의 가책을 벗어던진 살인범은
무고한 시민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기 때문이다. - P320

샤르한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레미는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행운을 빌어, 이 친구야……."
- P269

원점에서 다시 반복되는 이야기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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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안에 살다 - 박경득 산문집 인문학과 삶 시리즈 1
박경득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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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안에 살다, 박경득 지음, 클북, 2019


<문장 안에 살다>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대학생 시절 한 선배가 조언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선배는 내게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했다. 삶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대로 실천하려 노력하며 살아가라는 의미였다.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의미는 주어진 상황논리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좋아지고, 감정, 감성 등도 메말라간다는 뜻으로 이해했었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어언 20여 년이 지났으니, 그간 잊고 살았는데, 다시금 떠오른 것이다. 과연 나는 생각하며 살았는지, 사는 대로 생각했는지 반추하는 계기가 되었다. 직장에서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느라, 혹은 가정에서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하느라, 삶에 대해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던 건 아닌가 싶었다.


문장 안에 사는 삶이란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생각거리를 가지고 산다는 의미로 들려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문장과 함께 생각과 함께 사는 삶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렇게 문장 안에 살기위해서는 생각거리와 함께 관찰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고, 마음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문장 안에 살다>는 교사로 30년간 재직한 저자가 퇴직 후에 인문학을 접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책을 통해 얻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일상에서 마주한 생각들이 담겨 있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작은 생각들을 붙잡아 문장으로 완성한 것을 보면서, 저자의 일상에 대한 관심과 관찰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저자의 어린 시절 추억을 들을 땐 덩달아 나의 어린시절도 떠올라, 웃음지으며 추억여행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문장 안에 살다>는 글의 호흡이 짧다. 과장된 수사 같은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간단명료해서 시를 읽는 것 같다. 생각이 깊지 않으면 말이 길어지고, 글에 멋을 부리면 과장된 수사가 많아질 것이니, 생각과 관찰에 대한 저자의 내공이 깊게 느껴진다.


내 삶의 여정에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발견해서 다행이다.
정답처럼 친절하게 적혀 있는 책 속의 많은 사실을 발견하는 기쁨은 크다.(
)
가끔씩 쓰는 즐거움도 괜찮다.
쓰다 보면 내 속에 있던 묵혀져 있던 것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서 좋다.
내가 그들을 끄집어내고 새롭게 정리해서 좋다.(16)


글쓰기 지도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그냥 쓰라고.” 나는 이 말에 이의를 달지 않기로 했다.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환상을 품고
길을 나서지 않고 주저앉아 있는 건 바보다.
하얀 바탕의 자판을 마주하는 두려움도,
여백에 볼펜 끝이 멈추어 있는 순간조차도
꼬마 병정처럼 또각또각 글이 굴러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167)


책을 친구로 두면서 내 하루는 천천히 흘러간다.
이 친구들은 느긋하게 나를 마주하며,
내 미적거림도 잘 참아주는 편이다.
자기 생각을 슬며시 드러내지만 강요하지 않는 그들이 편하다.(199)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세상을 글로 풀어서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면 모든 사실이 눈으로 볼 때보다 더 예쁘다.
파란 하늘에 구름 한 덩이.’
나는 글로 기억할 때 하늘과 구름을 더 진하게 느낀다.
그래서 어떤 날은 내 한 줄 메모지에서 기억과 풍경을 그대로 건져낸다.(231)


소설과 산문을 읽는 즐거움 중에는 평소의 일상생활 중에 사용하지 않던 단어들을 마주할 때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몰랐던 단어들이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고, 어감이 좋은 순우리말을 만나게 되면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문장 안에 살다>에서 만난 음전’(58)동그나미’(160)는 또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음전 : 말이나 행동이 곱고 우아함, 또는 얌전하고 점잖음.
동그마니 : 사람이나 사물이 외따로 오뚝하게 있는 모양

<문장 안에 살다>를 읽고 나니, 일상을 흘려 보내지 않고, 관찰과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며 살아가고자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나를 보며 위로보다는 채찍을 사용하는 편이다.
나를 들여다보는 방법을 몰라서 잘 살펴보지도 않는다.(
)
나에게 필요한 것은 더 솔직해지는 것이다.
속마음까지도 흩트리지 않는 것은 속마음을 늘 관찰하는 것이다.
나를 잘 보는 것이다.(85)


그래, 어차피 운명이라면, 내 운명이라면 이 운명조차
온전히 내 것으로 더 뜨겁게 감싸 안아보자.”(213)


나는 충분히 세상이나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살았다.
지나고보니 별 의미가 없다.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보다
나자신에게 먼저 당당한 사림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앞으로의 삶은 나를 위한 삶, 내 몸과 마음의 만족을 위한
가장 이기적 인간이 되고 싶다.(214)


누군가를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렵다.
내 마음조차도 나 자신과 공감의 조화를 이루기가 힘들었다.
마음 상태는 수면 아래 있는 모래와 같다.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을 때는
위에 있는 물이 어지간히 살랑거려도 움직이지 않는다.(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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