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한강과 같은 것이라고. 해가 지는 쪽을 향해 그 너른 강물이 흘러가듯이, 인생 역시 언젠가는 반짝이는 빛들의 물결로 접어든다. 거기에 이르러 우리는 우리가 아는 세계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 사이의 경계선을 넘으리라. 그 경계선 너머의 일들에 대해서 말하면 사람들은 그게 눈을 뜨고 꾸는 꿈속의 일, 그러니까 백일몽에 불과하다고 말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단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내가 본 그 수많은 눈송이들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누구나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고, 결국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그 빛들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원더보이>를 연재할 무렵엔 정훈을 14살 소년으로 정해두고 있었단다. 그 소년이 캄캄한 밤에 어딘가로 뛰어가는 모습만 그려두었다. 마감을 일주일 남겨두고도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가 수업을 마치고(그 당시 한예종에 강의를 나가고 있었다고) 집으로 가는 꽉 막힌 도로에서 어떤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그때 그 음악을 듣는 순간, 눈송이, 캄캄한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눈송이(윌슨 벤틀리는 최초로 눈의 결정 사진을 찍은 과학자이다. 그는 그 눈의 결정 사진을 통해 그 많은 눈송이가 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똑같은 눈송이는 하나도 없다. 세상에 하나뿐인 눈송이, 눈송이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육각형의 대칭구조와 금세 녹아버리는 아쉬움 때문. 그래서 모두 다른 눈송이는 '특별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 눈송이가 떨어지는 모습을 창문으로 바라보다 소년이 팔을 내밀어 눈송이를 손으로 잡는 느낌을 받았더란다. 그리고 집에 가자마자 마감?! 그때 나온 음악이 바로 Rodrigo Leao의 [Final] 이란 곡이다.


 

그러니까 <원더보이>는 잡으면 금세 사라지고 마는 그 수많은 눈송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훈과 강토 형, 재진 아저씨와 선재 형이 겪은 아픈 기억들, 어쩌면 우리 모두 오래도록 간직해야 할, 잡아버리면 사라지고 마는 눈송이처럼 쉽게 잊혀질 우리의 지난 일들에 관한.

 

산울림, 작가와 만남에서

 

 

*(윌슨 벤틀리에 관한 이야기는 봄나무의 그림책

《내 동생 눈송이 아저씨》에 나온다. 어제 그림책을 보다가

왜 작가들이 다들 '눈송이'에 관한 말들을 많이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떠오른 소설, 바로 《원더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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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3-06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채홍>을 읽고있는데 어서 빨리 <원더보이>를 읽어 버리고 싶어요!
아, 리더스님때문에 채홍을 접어두고 원더보이를 먼저 읽게 생겼군요 ㅋㅋㅋㅋ

stella.K 2012-03-06 17:52   좋아요 0 | URL
이진...너어~~~! 왕삐짐이닷! 으유!

이진 2012-03-06 21:41   좋아요 0 | URL
우하하, 이럴줄 알았습니다 ㅋㅋㅋ 스텔라이모가 보면 어쩌지...하고는 조마조마하면서 글썼다구요! 이미 채홍은 다읽어갑니다!!!!

readersu 2012-03-09 14:03   좋아요 0 | URL
지금 읽고 계시나요?
마음이 따듯해질거예요^^

stella.K 2012-03-06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목욜날 갑니다.^^

readersu 2012-03-09 14:03   좋아요 0 | URL
잘 다녀왔습니까? 좋았어요?
멋진 후기 쓰시면 제게도 보내주세요^^

stella.K 2012-03-09 16:04   좋아요 0 | URL
ㅎㅎ 좋았어요.
근데 마이크 상태가 별로 안 좋아 거의 못 듣고 지나간 게 많아서요.
거기다 김연수 작가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혼자 어깨 털털거리며 웃는데
그냥 재밌었어요.
독자 질문 시간에 언제 장가갈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동안의 비결은 뭐냐고 묻기도 하고.
근데 영화출연이 트라우마는 트라우마인가 봐요. 홍상수 감독이 그 작품 가지고 프랑스까지 갔다매요? 배역이 좋았으면 가문의 영광이었을 텐데 가문의 망신이라고 막 웃더라구요.ㅋㅋ
근데 홍상수 감독의 문제의 그 영화 뭔지 아시면 알려주시면 안되나요?ㅋ
참 열심히 쓰는 작가여요. 자신도 어떻게 그렇게 쓰는지 모르겠다고 또 털털대고 웃더군요.ㅎㅎ
 
먼 곳 창비시선 343
문태준 지음 / 창비 / 201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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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도 못 읽어본 시가 너무 많다.

소설이나 인문 책 같은 것은 그냥 마구 사대지만

시집만큼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유는 잘못 사면 영~ 내 취향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워낙 쉽고 감성적인 시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쓸데없이 까다로운;;

그리고 하나 더 핑계를 대자면,

시집만큼은 한 권을 사서 그 시집의 시를 다 읽고 음미한 후에 다른 시집을 사자고.

시집마저 사재기 하여 책꽂이에 모셔두면 안 된다고.

 

 

 

 

장석남 시인의 시집을 사고 난 바로 다음날 문태준 시인의 시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 내 블로그엔 문태준 시인의 시를 소개한 것이 없는데

그동안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을 안 했었다.

워낙 토속적이고 내 감성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해서인지.

근데!!

와, 나도 그동안 시집을 많이 읽었나보다. 이젠 시가 점점 이해(설마?)가 되고 있다.

아직도 좋은 시보다는 내 맘에 들어오는 시를 '좋은' 시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문태준 시인의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와ㅡ와ㅡ와ㅡ 내가 왜 그동안 문태준 시집을 제대로 안 읽었지? 했다나.

 

 

요며칠 머릿속이 뒤숭숭했더랬다.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왠지 뭔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스스로 후벼파고 있었다.

한데 오늘 아침에 문태준 시인의 시집을 펼쳐 첫 시를 읽는 순간,

아- 하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 시구때문에.

 

 

누군가 들고 가는 양동이 물처럼

한번 또 한번 출렁했다

서 있던 나도 네 모서리가 한번 출렁했다.

출렁출렁하는 한 양동이의 물

아직은 이 좋은 징조를 갖고 있다

 

 

출렁출렁, 마치 곧 쏟아버릴 것 같은 위태한 모습에서

내 뒤숭숭한 마음을 보았다고나 할까,

한데 다행스럽게 쏟지 않았다. '서 있던 나도' '한번 출렁했'지만

그래서 혼자 위안 삼았다. 그래, '아직은' '좋은 징조'

 

 

이어 읽는 시들마다 어찌나 맘에 와 닿는지 시도 읽는 '때'에 따라

다가오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시집을 처음 받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어느 것 하나 지나치지 못했다. 이런 시,

 

 

주인도/내객(來客)도 없다/겨울 아침/오늘의 첫 햇살이/흘러오는/

찬 마루/쪽창 낸 듯/볕 드는 한쪽/몸을 둥글게 말아/웅크린/들고양이/

여객(旅客)처럼/지나가고/지나가는/집 _빈집

 

 

그리고 이런 시구들

 

 

눈초리/시린/모색(暮色)_산 그림자와 나비

흰 종이에 떨구고 간 눈물자국 같은 흐릿한 빛이 사그라진다_망인(亡人)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먼 곳은 생겨난다/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_먼 곳

여러 번의 오후는 여름 위에/여러 번의 여름은 일생(一生)위에/

이처럼 쏟아진다 할밖에/얼마나 울었는지 두 눈이 질펀하네_언제 또 여러번

쌓인 것을 오후에 허물었지요/슬픔에 붙들렸으나 숭고한 일일이었어요_일일2:숭고한 일

'꽃들'이라는 말의 둘레라면/세상의 어떤 꽃인들 피지 못하겠는가_꽃들

이제 겨우 이별을 알아서/그때 내 앉았던 그곳이 당신과의 갈림길이었음을 알게 되었지요_나는 이제 이별을 알아서

 

 

이렇게 모든 시를 채 읽기도 전에 쿵쿵거리며 시가 내 맘에 들어올 줄이야.

문태준 시인의 시가 이렇게 감성적이었어? 혼자 되내이다가 집에 있던 시집들을

다시 펼쳐봐야겠구나, 내가 읽어내지 못한 시를 찾아야겠구나, 싶었다.

어쩌면 잘난 척, 내가 그동안 시를 쫌, 읽었거든 하고 싶기도 하지만

이 좋은 시를 이제서야 좋다며, 좋다며.

그러다가 이 시에서 멈칫, 한참을 읽고 바라보며 멍 때리다가 그만 시집을 덮어버렸다.

더 읽었다간 왠지 눈물 날 것 같아서.

 

 

이제는 아주 작은 바람만을 남겨둘 것/흐르는 물에 징검들을 놓고 건너올 사람을 기다릴 것/

여름 자두를 따서 돌아오다 늦게 돌아오는 새를 기다릴 것/꽉 끼고 있던 깍지를 풀 것/

너의 가는 팔목에 꽃팔찌의 시간을 채워줄 것/구름수레에 실려가듯 계절을 갈 것/

저 풀밭의 여치에게도 눈물을 보태는 일이 없을 것/누구를 앞서겠다는 생각을 반절 접어둘 것

_오랫동안 깊이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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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는 한국문학을 죄다 읽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찾아 읽으려고 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당연하거니와 신인 작가의 책들도 가급적이면 한 권이라도 접해보려 한다. 그 중엔 맘에 쏙 들어오는 작가도 있고 취향 탓으로 돌리며 내려놓는 작가들도 있다.

 

지난 해부터 한국문학을 읽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소년'들이 눈에 들어온 것. 물론 그 이전에 《개밥바라기 별》의 준이가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청소년 문학 작가가 아닌(청소년 소설엔 당연 소년, 소녀가 나온다.), 내로라 하는 문학 작가들이 '소년'을 내세워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 짧은 기억으로 치자면 은희경 작가의 《소년을 위로해 줘》를 시작으로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 한창훈 작가의 《꽃의 나라》,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은 황현진 작가의《죽을만큼 아프진 않아》, 최근에 나온 김연수 작가의 《원더보이》까지. 모두 최소 열다섯 살인 중학생부터 많아야 열아홉인 십대 소년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박민규 작가도 계간지 《문학동네》에 1984년을 시작으로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데 올해 안에 책이 나올 것 같다.


(재미있는 것 하나 더, 천명관 작가가 이번에 낸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1980년대가 배경이다. 김연수 작가의《원더보이》도 70년대 이야기도 나오지만 주인공 정훈의 배경은 80년대이다. 한창훈 작가 역시《꽃의 나라》의 배경이 70년대 말에서 80년까지다. 한데 박민규 작가의 연재 역시, 시대 배경은 80년대다. 네 명의 작가 모두 1963년에서 1970년까지의 태생들이고 그 시대를 경험하고 살아온 작가들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과거의 이야기를 들고 나왔으니, 80년대에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거나 꼭 한번 기억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선 검색을 했더니 얼마 전에 경향신문에 나온 기사에 80년대를 추억하는 작가들에 써놓은 기사가 있었다. 움움, 그럼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던것??(^^) 아무튼 그 기사에서 문학평론가 김영찬 씨가 말하길 "자신을 형성한 뿌리를 성찰하고 싶은 작가들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과거를 돌아보고자 하는 경향들이 있다”고 밝혔다. 박신규 창비 문학팀장은“성장소설이 독자들의 호응을 받으면서 과거가 소재로 호출된 점도 있겠지만, 판타지와 차별화되는 리얼리즘에의 향수가 아닐까"라고 말했단다.)


한데 또, 예판 중인 김영하 작가의 책 역시 주인공이 소년이라는 설정이다. 이쯤 되면 왜 다들 갑자기(가 아닐 수도 있지만 우매한 독자로선 소년들의 등장이 의아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소년을 주인공으로 글을 쓰는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굳이 알고 싶지는 않다. 그게 그냥 흥미로울 뿐이다. 세상은 넓고 다양한 소년들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 각설하고 읽은 책을 위주로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 등장하는 소설 세 권을 골라봤다.

 

 

원더보이》의 정훈은 열다섯 살이다. 과일 행상을 하는 아버지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 사고가 나고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혼수상태에 있던 정훈은 깨어나면서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갖게 된다.《원더보이》의 소년은 굉장히 순수하다. 내용상으로 열여덟까지의 삶을 보여주는데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인지 또래의 탈선 따윈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가 없고 아버지를 잃어 슬픈 소년의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읽으면 읽을수록 소년에게 관심이 간다. 아빠를 향한 정훈의 아픔이 이해가 되고 가엾기도 하면서 옆에 있으면 안아주고 싶다. 잘 자랐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왠지 그 생각처럼 잘 자랄 거라는 믿음도 생기고.

그 믿음때문이었을까, 소설 속 정훈은 씩씩하다. 걸핏하면 눈물을 뜩뚝 흘리지만 조금씩 세상을 이해하며 성장한다. 그러고 보면 김연수 작가의 장점이자 단점이 인물들의 '착함'이라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어쩌면 김연수 작가의 성격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인데 그의 작품엔 그 아무리 나쁜 인간이라도 읽다 보면 이해를 하게 된다. '그래 , 너도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일 뿐이로구나.' 그래서 김연수 작가의 《원더보이》를 읽고 나면 뭔가 벅찬 감정이 생기면서 알 수 없는 희망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만다는.

그런 반면에 한창훈 작가의 《꽃의 나라》속 주인공 열일곱 살의 '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과거 독재자 집권의 소년상이었다. 시절이 하 수상하고 돈과 권력, 비리만이 난무하던 시대. 폭력=힘을 말해주던 때였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던 소년은 항구가 있는 고향에서 좀 더 큰 도시 고등학교로 유학을 온다. 그건 일종의 탈출이었다. 지속적인 긴장과 블편함을 주던 가부장적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피해 온 도시에서 그는 또 다른 폭력과 마주한다. 학교와 사회가 드러내는 폭력. 가정에서의 폭력이 고스란히 사회의 폭력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뒤에 온 국가의 폭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거대한 국가의 폭력 앞에서 한낱 고등학생인 소년은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힘이 없는 소년은 그 아픔을 그대로 머릿속에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한창 호기심과 그 또래의 고민들로 꽃피워야 할 시기에 소년은 국가의 폭력 앞에서 무력했다. 그렇다면 그런 경험을 하고난 후, 소년의 삶은 어떠했을까?

한창훈 작가의 《꽃의 나라》는 굉장히 현실적이다. 마치 그때의 상황을 한 소년의 눈을 빌어 보는 것 같다. 폭력에 노출된 소년이었지만 그 소년의 마음을 멍들게 한 것은 국가였다. 그때 그 시절을 보내온 많은 소년, 소녀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일, 그래서 《꽃의 나라》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멍해지면서 아, 이 소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앞서고 만다. 《원더보이》의 정훈에게서 희망을 찾았다면《꽃의 나라》의 소년 '나'에게는 미움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음이 당연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소년, 시대를 훌쩍 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하지 않은 소년 아름이. 김애란 작가의《두근두근 내 인생》에 등장하는 소년 아름이는 열일곱이다. 《원더보이》정훈의 열일곱과도 다르고,《꽃의 나라》'나'와도 아주 다른 소년이다. 아버지를 잃지도 않았고, 거대한 폭력과 마주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소년의 삶은, 앞의 두 소년이 가졌던 삶의 무게만큼 버겁다.

아름이의 부모는 아름이와 같은 나이에 덜컥 아름이를 가진다. 부모의 나이가 된 지금 아름이는 아버지보다 어른 같다. 아름이는 조로증을 앓고 있었다. 빨리 늙는 병. 그러니까 《두근두근 내 인생》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인 셈이다. 아픈 소년, 하지만 아픈 척을 하지 않는 씩씩한 소년. 하나도 슬프지 않은 척 위장하고 있었지만 아름이의 모든 말엔 아픔과 슬픔이 들어 있어 가득. 마음을 콕콕 쑤시게 했다.

열일곱, 한창 들뜨고 행복할 나이,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었)을 상처 혹은 사랑이 찾아올 나이, 세상 모든 것에 '두근두근'거릴 그 아름다운 나이의 소년 아름에게 미래는 미래일 뿐 희망도 미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설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그만큼 비슷한 소재를 가진 책들이 많다. 그런 책들을 찾아 읽으며 비교해보는 재미도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한 방법이다. '소년', 앞으로 얼마나 많은 소년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 대처하며 성장할지 모르지만, 비슷한 듯 하면서도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소년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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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2-27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더수님~~~저는 김연수에게 끌리지 않아 아직도 그의 책은 거들떠도 안 보는데
님 때문에 결국 읽으려고 맘 먹었어요,,"그러고 보면 김연수 작가의 장점이자 단점이 인물들의 '착함'이라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라는 글 때문에요.
다른 분들이 김연수 글에 대해서 썼을떄도 "함 읽어봐?" 였는데 오늘 글은 아니네요,,
읽어볼래요,,,ㅎㅎㅎㅎㅎ

readersu 2012-02-28 10:17   좋아요 0 | URL
김연수 작가의 글이 예전엔 좀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특정(저같은) 독자들은 좋다고, 열심히 읽었죠. 모두 이해하긴 어려워도 그가 내보이는 문체는 정말 좋거든요. 물론 악한 사람도 안 나오고.. 요즘은 소년도, 어른들도 소설이라고 해도 어찌나들 악하고 나쁜지...ㅎㅎ 그래서 어떤 친구는 김연수 작가가 소설 속에 정말 '악한' 사람을 한 명 그려봐도 좋을 것 같아. 근데 다들 너무 착해, 라고 하더라구요(근데 작가가 그런 것을 거부하는 듯??) 암튼, <원더보이>는 정말 좋아요^0^(물론 어느 책이든 안 좋겠냐마는)

요즘 뉴스에 보면 자살하고 탈선하고 나쁜짓만 하는 아이들만 계속 내보이는데 세상엔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 그런 아이들 이야기만 가득한 그런 세상이면 좋겠어요.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아이들에게마저 고통을 안겨주는 시대이긴 하지만도.. 우리 이제 희망을 좀 찾아야...올해는 반드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진 2012-02-27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젠가부터 청소년 문학을 꺼리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제게는 <소년을 위로해줘>도 있고, <두근두근 내 인생>도 있고,
<원더 보이>까지도 책장안에 들어있군요. 이 중에서 두근두근 내 인생만 읽었는데
이 작품은 청소년 문학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기에 좋았던 것 같아요.
원더보이도 괜찮겠죠? 한사람님의 인용문구를 읽어보니 참 좋던데,

readersu 2012-02-28 10:25   좋아요 0 | URL
소이진 님 안녕?^^
굳이 '청소년'이라고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문학을 하는 작가와 '청소년' 문학을 하는 작가들이 사실 좀 나뉘어져 있어요. 그런 걸 보면 위에 언급된 작가들은 그냥 문학하는 작가들.. 청소년 문학 에 넣긴 좀 아니죠. 한데 그런 분들이 '소년', 그러니까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쓰시니까 왜 다들? 그랫어요^^
<원더보이>도 소년이 나오긴 하지만 청소년 문학은 아니에요. 좋은 문장이 너무 많아서 통째로 필사하고 싶을 만큼^^ 따뜻한 소설이에요. 짠하면서도ㅡ

2012-03-05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5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장석남 시인보다는 언젠가부터 장석남 아저씨(!)라고 부르게 된,

그래서 그가 시인인 줄 몰랐던? 암튼 2010년에 나온 시집, 《뺨에 서쪽을빛내다》 을 시작으로

장석남 아저씨의 시를 읽게 되었으니 이젠 아저씨가 아니라 장석남 시인이라고나 할까;

 

 

새 시집이 나왔다.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저 핑크 어쩔거야! 사진이 좀 이상하게 나왔다.

원래는 아주 옅은 인디언 핑크다. 저 사진의 핑크보다는 훨씬 예쁘다.

새 시집 소식 듣자마자 주문. 간만에 시집을 샀다. 좋다.

근데 저 판형과 글자와 종이는 아직도 낯설다. 새로운 것 좋아하는 사람인데 참, 적응이 안 되는;;

 

 

 찍는 위치에 따라 색이 다 다르군(-.-) 이건 그래도 조금 비슷한 색, 이보다 더 옅음;

 

시인의 소개가 매우 짧은 뒷표지. 근데 저 'ㄱㅇ'은 뭔 뜻이지??

장석남 시인 시집 꽤 많이 냈다. 산문집은 두어 권밖에 안 되나? 추천시들 엮은 책도 있던데..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제목이 나오는 시는 〈저물녘_모과의 일〉이다.

 

저물면 아무도 없는 데로 가자

가도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고요의 눈망울 속에 묻어둔

보석의 살들 ㅡ 이마 눈 코

깨물던 어깨,

점이 번진 젖, 따뜻한 꽃까지 다 어루어서

잠시 골라 앉은 바윗돌아 좀 무겁느냐?

그렇게 청매빛으로다가 저문다

 

결국 모과는 상해버렸다

 

아우, 시 좋다! 뭘 아는 것도 없으면서 괜히 좋다!^^;

 

 

 

시인의 말,

 

"마침 몸살이 와서 발은 만져보니 차디찬데 이마는 뜨겁다.

(…)

뭐니 뭐니 해도 내 생에서 시경(詩境)으로 출타한 것이 인생의 큰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뭉뚱그려

제쳐 놓는다. 하, 그게 스물다섯 해가 되었다니! 뭐 밥그릇 수를 밝혀서 미담 제조 하려는 말은 추호도 없으나

그간 건너온 징검돌들의 면모가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

다 몸뚱어리 쑥떡거리는 내용들이다.

나는 아직 어는 경계 안으로도 들어서지 못했다.

하긴, 출타는 들어서는 게 아니니까.

다행이다. 아프다.

(…)

 

그의 이번 시집은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유독 '물'이 많다.

왜 '물'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으나 이전에 그가 낸 산문집의 제목들 때문인가?

그걸 의식해서인지 그냥 괜히

어, 바다도 물, 꽁꽁 언 호수도 물, 눈도 녹으면 물, 폭우, 흙탕물, 장마,

먹던 물, 밥물, 한 모금 넘긴 술, 울음, 우물 등등(아, 그만해야겠다, 괜한 엉뚱소리 ㅋ)

암튼, 나도 갖다붙이긴 잘한다마는;;;

 

순전히 첫 시로 등장하는 〈의미심장(意味深長)〉이라는 시 때문!

 

돌 위에도 물을 부으면

그대로 의미심장

 

내게 온 소용돌이들이

코스모스로 피어 흔들리는

병후(炳後) 문밖에

말뚝이 서넛 와 있다

 

오늘 밤 내 머리맡에는

티눈 같은 웃음들이 모일 것 같다

길 잃은 웃음들이, 막차 놓친 웃음들이

갈데없이 모일 것 같다

 

찔레 넝쿨도 바람 불면

그대로 의미심장

 

이 시를 따라 한다면

'물'이라고 우기는 것도 '그대로 의미심장'한 것이라고^^;;;

 

 

시들 훑어보다가 반가운 이름 발견. 김도연 작가.

언젠가 한번 본 적이 있는... 아니, 두 번 봤던가? 암튼, 괜히 반가운^^(의미심장)

시인들은 동료 작가나 시인들에게 오마주 형식으로 시를 잘 쓰는 것 같아.

지난번에 읽은 강정 시인의 시에도 동료를 위한 시들이 제법 있었던 것 같은데...

암튼, 핑크 표지를 보니(움 장석남 시인과는 전혀 안 어울리듯 하지만 시들은 잘 어울린다)

봄이 오려나 보다, 봄인가 보다. 그런 마음이 든다.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시집 들고 봄바람 한번 나도 좋겠다.

한동안 이 좋은 시들과 즐거울 시간들!!!

 

바람과 더불어

ㅡ하나

 

동구 귀퉁이에 이빨이 빠져 물러난 접시 하나

접시 속에 다급한 사랑으로 괴어 있는데

 

나무라지 않고

달 지네

 

달 지는 언덕

드렁칡 위에

달리아 꽃 절창이네

 

관광버스에서 울긋불긋 내리는 가을

노을 속에서

붉게 짖는 사과들

 

이빨 빠져 물러난 접시 속에

다급한 사랑으로 괴어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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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2 2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3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림과 관련한 책엔 늘 관심이 많다.

어렵지 않으면, 내가 이해할 정도만 되면 무조건 읽어보고 싶다.

그건 아마도 그림에 대해 잘 모르니까,

어떻게든 많이 읽어야만 한다는 강박감 때문인지 모른다.

그림을 보고 감상을 말해주는,

혹은 좀더 전문적으로 그림과 화가에 대해 말해주는 책들이 많지만

찾아 읽다보면 항상 우리나라 작가들의 책이었는데

이번엔 독일의 미술사가이자 사진작가의 책이다.

그가 화가들이 그림에 담았던 실제 장소를 여행하며 그 화가와 그림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여행과 그림, 그리고 화가. 뭔가 독특한 느낌.

문학 작가의 책을 들고 작품 속 장소로 여행을 가는 것과 비슷.

글이 아닌 눈에 보이는 그림 속 장소를 직접 가는 일은 꽤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19세기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어 다피트 프리드리히가 그린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본문 166쪽)를 보자. 그림 속 풍경은 언뜻 보기에는 매우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장소에 가보면 실제 풍경과 그림 속 풍경이 무척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리드리히는 자신만의 눈으로 자연을 관찰한 후 새로운 풍경을 창조해낸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살았던 작센과 뵈멘 지방을 자주 산책하면서 스케치를 한 후 여러 장소를 합성해서 그림을 완성했다. 그는 “화가는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보이는 것도 그려야 한다. 만일 자기 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주요 흐름이었던 고전주의 미술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매우 급진적인 생각이었다.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는 이 같은 프리드리히의 생각이 잘 반영된, 그의 내면 풍경을 보여주는 풍경화다.


카스파어 다피트 프리드리히, 이름도 길어라. 아무튼 이 화가의 그림, 좋아한다.

뒷모습, 확 펼쳐진 풍경. 근데 그 풍경들이 합성한 그림이라니! 어쩐지 좀 환상적이긴 했어.

그래서 더 좋아하게 된 걸까? 암튼 기대되는 책.




 

 

이 책 한번 읽어볼래? 하는데 작가 이름을 보는 순간, 헉.. 망설이고 말았다.

그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안 읽진 않았다. 증언을 담은 책도 읽었고

소설로 나온 책들 읽은 기억이 난다. 근데 이 책은 과연, 읽을 수 있을까, 싶었다.

왜? 작가의 전작이 워낙 쎄서(!), 솔직히 그의 문체를 대면하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한데 읽어보기로 했다. 읽다가 덮어버리더라도 일단은 읽어보기로.


그건 얼마 전 티비로 본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고

일본대사관 앞에 서 있는 평화비 소녀상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반짝거렸기에.

이상도하지, 이 책을 읽으려고 그랬나..

며칠 전부터 유난히 할머니들 소식이 눈에 띄더라니...


《다시 오는 봄》은 한국 문단이 거의 외면해왔던 이야기를 철저한 자료 조사에 기초해 사실적으로 재구성한다. 2010년 방한한 양석일은 자신의 소설세계와 더불어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밝힌다. “일본에선 시바 료타로처럼 권력을 대변하는 영웅 이야기를 주로 쓴 소설가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작가라면 모름지기 약한 자,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 한?일 간의 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역사를 제대로 보고 그것이 현대에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를 살펴 양쪽이 가진 편견을 조금이라도 바로잡고 싶다.”
양석일의 소설은 어둡다. 독자는 너무나 쓰라리고 고통스런 이야기를 들이미는 작가의 작품 앞에서 당혹감을 느낀다. 소설을 읽는 것도 쉽지 않지만 끔찍한 실상을 대면하고 글로 쓰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이다. 그러나 양석일은 “써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쓸 수밖에 없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내면에서 일어났다”고 말한다. 《다시 오는 봄》 역시 그 필연적 의지에 따라, 우리 곁에 놓인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은 독자들에게 피 묻은 손을 내민다.


옮긴이의 이 글만 봐도 솔직히 걱정이다. 작가의 소설이 어둡다고, 당혹감을 느낄거라고

그도 말하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작가의 '필연적 의지'가 부디 통하길 바라며..

그리고

제목과 표지의 산뜻함처럼 돌아오는 봄,

이 봄엔 할머니들에게 부디 행복한 소식이 전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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