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의 콤플렉스
다이 시지에 지음, 용경식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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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발자크와 바느질 하는 소녀>를 읽고 받은 감동이 사라질 무렵 이 파란바탕의 빨간 신발이 돋보이는 표지를 마주하고 그 감동을 이어가길 바랐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야 책을 펼쳤다. 늦지 않았다. 다이 시지에가 보여 준 그 유머가 여전했고 이야기 하나마다 이어지는 엉뚱한 결론엔 웃음이 나왔다. 블랙유머의 진수를 보여 준 작품이라 하겠다.

 여기 뮈오라고 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일찌기 쓰레기 냄새와 기름 섞인 물 냄새, 인스턴트 국수 냄새가 코를 찌르는 대학 기숙사에서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에 넋을 잃는다. 불꺼진 기숙사 침대 위에서 회중전등의 떨리는 희미한 노란 불빛 아래 난해하고 추상적인 개념이 만무한 프로이드의 이론에 길고 긴 미로에서 길을 잃듯이 헤매다가 창문에서 던진 벽돌에 일격을 당한 사람처럼 프로이드에 빠져 <프로이드 뮈오>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난 후 중국에서 지독하게 어렵다는 시험에 통과하여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얻어서 화려하게 파리에 입성했는데...

 중국 최초의 정신분석가로 탄생하기까지 박사 논문을 얻기 위해 4년간 라캉식 정신분석을 받아야 했고, 다소 우스꽝스러운 일도 벌어지고 불어를 제대로 못했기에 중국어로 더구나 자신의 고향인 쓰촨성의 사투리를 쓰며 이따금 긴 독백 중에 '초자아'에 압도되어 문화혁명에 대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곤 했으니 뮈오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 지 말해 무엇하리. 그런 그가 정신분석가를 꿈해몽가 정도로 알고 있는 중국에 돌아와야만 한 이유에는 첫사랑의 여자가 있었다. 후찬. 그녀다.

 중국 감옥에서 자행되는 고문 사진을 찍어 외국에 팔아 먹었다는 죄목을 가진 그녀는 곧 사형에 처해질 운명이다. 자신의 첫사랑이 그런 지경에 빠져 있는 걸 그냥 넘길 사람이 아닌 뮈오는 그녀를 구해올 방법을 찾는다. 나름대로 조사하고 알아본 바 그녀를 구할 방법은 오로지 판사를 구워 삶는 법. 내일 사형에 처해진다 해도 판사가 원하는 것을 들어 주었을 경우 최소한 형량이 줄어들기는 한다하니 뮈오가 뭔들 못하리오. 결국 알아낸 방법은 처녀구하기. 판사 디는 마작에 미쳤지만 처녀에도 미쳤다. 이제 뮈오의 '처녀구하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다이 시지에는 블랙 유머를 사용하며 현대 중국의 생활상이나 정치의 부패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을 한다. 판사에게 원하는 것만 해 주면 아무리 법을 어긴 사람이라도 감형이 되고, 여러가지 돈키호테식 행동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중국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하나의 이야기마다 유머와 익살스러움이 가득하고 마지막 스토리의 반전은 그야말로 백미다. 그러니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은 이 재미난 소설을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면 '불행'이라고 감히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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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 신경과의사 올리버 색스의 병상 일기
올리버 색스 지음, 한창호 옮김 / 소소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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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 주변엔 유별나게 간호사가 많다. 나름대로 다들 임상 경험이 있는지라 병원엘 가면 아는 것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가족이든 친구든 누군가 병원에 입원을 해서 병문안을 가면 그때부터는 귀를 쫑긋 세우고 의사의 지시나 간호사의 설명이 올바른 건지 또는 같은 간호사로서 환자에게 대하는 태도가 제대로 된 건지 등등 관찰하기 바쁘다. 병문안가서도 저 정도인데 정말 입원이라도 하면 얼마나 까탈스럽고 아는 척(?)이 많을까? 라는 생각이 안든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여기 신경과에서 알아주는 교수님 올리버 색스가 등산을 하다가 다리를 다쳤다. 여태껏 환자들의 신경학적 심리만 관찰하고 진찰하다가 본인이 바로 그 환자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산에서 다리를 다쳐 온갖 희망과 좌절과 고통속에서 허우적대다 구사일생(?) 구조되어 최고의 외과의사에게 수술을 받은 올리버. 문제는 그 후에 발생했다.
 
그러나, 그가 산에서 다리를 다쳤을 때 어떠했는가부터 알아보자.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교수다. 사고를 당한 후 고통이 오자 그는 침착하게 자신이라는 환자를 두고 의사 입장에서 그 다리를 관찰해본다. 침착하게 결론을 내리고 환자를 보는 순간, 그 환자가 자신임을 깨닫고 어쩌면 내가! 불구의 몸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그 후로 그의 머릿속은 온갖 상상들이 날개를 단듯 날아다닌다. '2년 전에 이곳에서 사고가 난 멍청한 영국인이 일주일 후 얼어죽은 시체로 발견 되었다더라''해질녘까지 무슨일이 있어도 나는 사람들 눈에 띄어야 한다''아냐, 내려갈 수 없을 거야''아! 내게 우산이 있어 그걸로 부목을 만들면 돼. 그래 난 구조될 수 있어'그러다가 톨스토이도 생각나고, 칸트의 음악도 들리며, 급기야는 저녁 어스름에 들리는 교회의 미사곡이 자신을 위한 장송곡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물론, 올리버 색스가 아니라 나라고 해도 그런 상황에선 온갖 상상들이 날 괴롭혔으리라. 하지만 신경과 교수인 올리버 색스는 얼마나 많은, 그동안 보아왔던 그런 경험의 사람들이 생각났을 것인가?
 
수술 후 올리버 색스는 이제껏 자신이 관찰만 해 오던 그런 환자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 그의 다리가 <형식적이고 사실적인 의미에서 그곳에 존재했다. 시각적으로 거기에 있었지만, 생명력을 지니고, 알맹이 있게 현실적으로 거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다리는 실제 다리가 아니었으며, 결코 현실성을 갖는 다리는 아니었다. 내 앞에 놓여있는 단순한 겉모습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실을 빼내어도 고통이 없었고, 걷고자 생각해도 자연스럽게 걸어지지가 않았다. 내 다리는 이곳에 있는데 남의 다리가 내 몸에 붙어 있는 듯한 느낌! 그런 뜻하지 않은 경험도 놀라운데, 끔찍한 간호사를 만나고  병원시스템의 불합리화, 회진이라는 시간에만 나타나는 담당의, 더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도 그대로 들어주지 않는 의료진들...등등 의사로서 환자를 대할 때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환자가 되면서 경험하게 된 것이다.
 
다리가 있으되 다리가 없는 사람인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의사답게 모든 예를 들면서 철학적으로 혹은 꾸밈없는 일기형식으로 임상기록을 써내려 간다. 그가 수술 후 느낀 많은 경험들, 고통과 불안과 희망과 좌절의 반복 속에서 소생하고 회복하고 이해하는 순간까지 철저히 환자가 되어 환자로서의 절차를 그대로 밟은 것이다. 그러한 임상 기록이 나중에 올리버 색스라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고는 이야기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의료진들이 한번쯤 환자가 되어 봐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환자 입장에서 이해하고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다리를 다쳐보지도 않았고 더구나 깁스 같은 것도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올리버 색스의 경험이 전혀 낯설고 설마?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올리버 색스가 예로 든 다른 사람들을 봐서는 틀림없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라는 느낌! 조금 끔찍해지지만..올리버 색스가 그 사건(?)을 해결하고 여행이 끝난 느낌으로 철학적 사상의 본질을 운운하며 써내려간 이 책은 가히 올리버 색스다운 임상기록이라 하겠다. 
 

그래서 우리 탐구의 모든 끝은,
우리가 출발했던 곳에 도달하는 일이며
그곳을 처음 보는 것처럼 인식하는 일이다.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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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여우 여우비
이성강 원작, 하은경 글 / 예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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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천년여우 여우비는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의 사랑이야기입니다. 그 사랑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줍니다. 어쩌면 식상할 이야기에 작가는 영혼이 머물다 환생하는 카나바의 세계라든가 영혼이 없는 그림자를 등장시켜 판타지와 여우비의 모험을 그려 냅니다. 그래서 이 책엔 우리가 전설로만 들었던 무서운 구미호가 나오지만 전혀 무섭지 않으며 오히려 여우비가 보여주는 사랑에 감동하게 된답니다. 그럼 여우비를 만나러 가 볼까요? 

흰눈으로 뒤덮인 숲속에 여우비란 이름을 가진 여우가 살았습니다. 엄마 여우가 죽은 줄도 모르고 마냥 기다리던 여우비에게 저 먼 별에서 온 요요친구들이 찾아왔지요. 물론 요요들은 여우비를 만나러 온 것은 아니었지만 어린 여우였던 여우비를 보는 순간 지구를 떠날 생각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직 어려서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 영원히 이별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여우비는 갑자기 없어진 엄마를 기다리면서도 곧 요요들과의 생활에 적응을 했습니다. 이들은 오순도순 때로는 티격태격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어느 날 산중턱 마을이 끝나는 자리에 있는 폐교에 캠프 온 아이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우비가 사랑하게 된 금이도 만나게 되지요. 그러나 여우가 어떻게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겠어요? 더구나 여우비는 천 년을 산다는 구미호였는데 말예요. 금이를 만난 다음부터 요요들은 갑자기 짜증을 부리는 여우비에게 사춘기라고 놀려댔지만 그게 뭔지 여우비는 몰랐어요. 하지만 금이를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얼굴이 발그스레해졌지요.

 금이와 친구가 되고 싶어하던 여우비는 학교에 가기로 결심했답니다. 여우가 어떻게 학교엘 가며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느냐고요? 여우비는 구미호랍니다. 구미호는 둔갑술에 능하므로 인간으로 변하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지요. 다행히 금이도 여우비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그러나 주희는 그게 못마땅했지요. 갑자기 나타난 여우비가 금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아 심술이 났어요. 여우비를 혼 내 줄 궁리를 하다가 잠을 설치던 주희는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여우비가 얄미워 이불을 가로채다가 여우비의 꼬리를 보고 말았어요. 놀란 주희가 소리를 쳤지만 그땐 이미 여우비가 꼬리를 감춘 뒤였답니다. 이제 주희는 여우비를 의심하게 되고 여우비는 조심하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구미호 사냥꾼이라는 남자가 나타났어요. 그가 지니고 다니는 부적은 여우비를 아프게 하여 둔갑술을 풀리게 만든답니다. 여우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여우비가 인간이 되려면 누군가의 영혼을 가져야만 한답니다. 여우비가 영혼을 가지면 그 누군가의 생명은 사라지고 말게 되지요. 드디어 그런 순간이 왔답니다. 과연 여우비는 그 사람의 영혼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여우비는 인간에게 '진실된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여우든 사람이든 그 사랑을 지닌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여우비는 깨닫게 해 주었지요. 여우비를 통해서 내 어린시절의 일들이 생각나고, 마음을 나누었던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지금 내 주변에 '진실된 사랑'을 주는 친구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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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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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다른 이들은 그와 같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
-노발리스

난 원래 노벨문학상을 탄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라고 이야기해봤자 이유같지도 않지만 아무튼 난 노벨문학상을 탔다고 하면 읽을 생각도 안한다. 분명 여러날 동안 그 책에 빠져 정신없이 그 책에만 몰두하여 머리를 쥐어뜯어리라는 걸 알고 있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대로 읽을 수 없다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일은 상당히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는 마음의 양식은 아니더라도 일단은 책을 읽고 뭔가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 책을 잡는데다가 재미와 흥미도 원하는 것이므로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알 수 없는 어려운 책들은 몇 장 읽지도 못하고 포기해 버리고 만다. 사실 이런 성격은 뭐든 쉽게 쉽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아무튼...

 오르한 파묵은 달랐다. 그가 <내 이름은 빨강>의 저자이고 그 책은 읽는 사람들마다 강추하는 작품이었기에 그런 그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뿔싸! 너무 믿었나보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 멋진 도입부와 함께 흥미를 보이며 몇 장을 읽다가 난 좌절해버렸다.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이다. 읽고 또 읽으면서도 머릿속은 뒤죽박죽. 그래,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인데..그렇지 뭐..역시. 어쩌고 하면서 장장 일주일이 넘도록 책을 들고 있었다.(아..그 시간이면 최소한 다섯 권의 책을 읽을 기간이다.) 그런데, 그런데말이다. 그 지겨운 앞부분을 넘어서자마자(나린박사 등장!!!) 난 이 책에 빠져 들었다. 오! 이럴수가, 아, 그렇구나!

 읽는 사람마다 자신이 느끼는 주제는 각각 다르다고 생각한다. 총탄이 쏟아지는 전쟁소설에서 사랑을 읽을 수도 있는 것이고, 공포소설에서 인간미를 엿볼 수도 있으며, 연애소설에서 인생을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 <새로운 인생>에서 오스만이 자난을 만나고 그녀가 들고 있던 책을 읽게되면서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인생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만 결국 이 책의 요점은 자신의 삶, 그 삶이 주는 의미. 그게 새롭든 아니든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오스만의 인생 여행을 읽을 수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되는 우연들, 인생을 바꾸게 한 책의 저자가 아버지의 친구이며 철도공무원이던 르프크 아저씨이고, 자신과 결혼한 아내가 사실은 그 책을 처음 읽었던 그때, 자신의 집 맞은 편 빈 아파트에 새로 이사온 집의 그 딸이었다는 것을,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과 <새로운 인생>이라는 카라멜의 우연성. 그외 그 여러가지 우연들 속에 오스만의 인생이 고스란히 들어 있으며  난 이렇게 이 책을 읽으며 우연 속에 들어 있는 인생을 읽었다. 그러나 오르한 파묵은 그것이 옳은 해석이었다거나 틀렸다고도 하지 않는다. 즉, 내가 이 책에서 인생을 읽었듯이 이 책의 해석과 해결은 이처럼 독자인 내 맘인 것이다.

 또, 오르한 파묵은 이 책에서 1980년대 터키의 시대적 배경을 보여준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오스만이 겪고 보는 터키의 시골마을에 침투해 있는 '거대 음모'들은 전통적인 가치들을 겨냥한 서구문명으로 인한 터키 근대의 상처들을 꺼집어내면서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닌 터키의 지역적 특성을 이용해 방황하는 그들의 삶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일 수도 있는 문제이기에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가는 오르한 파묵의 의도에 굉장히 호감을 가졌다.

 오르한 파묵의 이 책은 아주 주의깊게 정독을 해야만 하는 책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 생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말이다. 문장 하나하나에 숨어 있는 단서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어버린다면 오르한 파묵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으로 이 책은 내게 다독이 아니라 정독의 중요함을 일깨워 준 책이 되겠다. 그리고 이 책은 이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한번 제대로 정독해야 할 책으로 남았다. 아마도 유명 문학작품이란 그래서 인정을 받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스만은 <새로운 인생>을 비유할 데 없는 순간에(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 맛 볼 수 있는 행복(죽음)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새로운 인생이란 무엇일까? 현재의 내게 그것은 '비유할 데 없는 순간에(좋아하는 작가의 리스트에 한 사람의 작가를 추가하게 되었음을 깨달을 때) 맛볼 수 있는 행복(충만)'이라고 말하겠다. 넘 쌩뚱맞은가?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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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 인류 최후의 에덴동산, 아마존 오디세이
정승희 지음.사진 / 사군자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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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꼭 읽어보겠다고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시간에 쫓겨 결국 읽지 못하고 돌려준 적이 있었다. 반납하면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지 내 언젠가는 그 책을 읽어보고 말 테야. 뭐 아직까지도 난 읽어보지 못하고 있지만 이 책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를 읽은 지금,  왠지 그 책을 읽어줘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앞선다.

 아마존은 지구의 마지막 오지이며, 살아있는 화석, 인류 최후의 에덴동산이라 불린다. 그 크기는 대자연 그 자체이며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 아마존 강에서 내뿜는 산소는 지구 산소의 10분의 1을 차지하며 곤충군은 어마어마하여 아마존에 사는 곤충과 벌레의 무게를 합치면 그곳에서 서식하는 척추동물의 무게를 능가할 정도라고 한다. 그런 곳에서 수 천년 동안 살아온 인디오들 역시 자연 그 자체이다. '소유'도 없고, '욕심'도 '과잉'이란 것도 없다. 그저 그곳에서 자연의 법칙대로 살아왔기에 권력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는 그런 자연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아마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로 만난 아마존은 식인종에 아나콘다에 미개해 보이는 부족들의 무시무시한 것들 뿐이고, 책에서 만난 아마존의 기억은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다. 그 책을 처음 읽으면서 느낀 점은 아마존에선 그들의 삶터와 환경을 지키기 위해 굉장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구나! 였다고나 할까.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은 이 책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에서도 소개했듯이 자신들의 이익과 욕심을 위해 그들의 땅을 빼앗고 삶마저 바꾸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아마존은 레비 스트로스의 첵 제목처럼 <슬픈 열대>이다. 그러나 그런 아마존에서 저자인 정승희 감독은 나름대로 아마존을 사랑하고 아끼며 자신의 열정을 불태운다. 적어도 <슬픈 열대>가 아닌 '자연스럽게 사는 법' '마음의 평화'를 얻는 법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정승희 감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KBS 도전 지구 탐험대> 촬영 감독이다. 우리는 그의 노력과 고생 덕분에 집에서 편안하게 아마존의 곳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애벌레 '모호이'를 씹어 먹는 부족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고, 생전 처음 보는 아마존 부족들의 원시인과 같은 생활상에 놀라워하기도 했었다. 그 모든 것에 저자의 고생과 스텝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린 <동물의 왕국>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피>에서 보여주는 더빙 방송이나 봐야 했을 것이다.

 이 책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에는 정승희 감독의 10년에 걸친 아마존 인생이 들어 있다. 모두 4부로 나누어 아마존에서 '나'를 발견하는 과정과 아마존에 중독된 이유, 그리고 아마존에서의 생활, 마지막으로 인류 최후의 에덴동산이라 일컫는 '싱구' 부족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아마존에서 '나'를 발견하기 위해 정승희 감독은 인디오들이 자신을 '충'이라 부르기까지의 과정에서부터, 부족들마다 한국의 라면 봉지를 매달아 두기 위해 나름 애쓴 흔적들, 그가 노팬티로 귀국한 사연, 아마존 아래 흐르는 검은 강 '마약', 20불에 자존심을 건 내용까지 모두 이야기 한다. 또 그가 아마존에 중독될 수 밖에 없는 이유에는 달콤 쌉싸름한 애벌레 간식부터 자연에서 생긴 병을 자연의 힘으로 치료하는 방법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가 소개하는 인류 최후의 에덴동산인 '싱구' 부족의 생활상은 그야말로 우리를 수 천년 전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러나 아마존의 인디오들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아마존의 밀림이 문명인들의 끝없는 욕심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것과 같이 과거 문명인들의 침략으로 수많은 아마존 인디오들이 학살 당하고 자본의 노예가 되어 가면서 문명에 의존하는 인디오들이 점차 늘어나고,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정승희 감독은 그런 아마존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두려워 한다. 지구의 마지막 오지 아마존에 인디오들이 살지 않는다면 아마존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분개한다. 그래서 그는 빌고 또 빈다. 욕심 많은 문명인들이 인디오들을 내버려두기를, 더이상 문명의 이름으로 아마존을 훼손시키지 말기를, 그래서 그들이 이류 최후의 에덴 동산이 아닌 인류의 영원한 에덴동산에서 아름다운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살기를 말이다. 

 인간의 참된 미래란 과연 무엇일까? 문명에 물들지 않고, 비록 원시적이라 할지라도 그들만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며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사는 아마존 인디오들의 삶이야말로 참된 미래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옷을 벗고 자연으로 돌아가진 못할지언정 그들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배운다면 우리 역시 영원한 에덴동산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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