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이 있다. 서점에서 책을 훑어보다가 표지가 내 맘에 든다거나, 제목이 혹은 글씨체가 인상적이면 책을 넘겨보게 된다. 넘겨 보았을 때, 글자가 너무 크다거나 행간이 너무 넓으면 에이~하고 덮어버리지만 그래도...겉 모양이 번지르르하면 내용이야 어떻든 사게 된다. 무슨 내용인지는 알지도 못하고..아! 이야기의 시작은 안다..모든 책들이 미끼용으로 적어 놓는 광고 문안이 있으니까.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책 구입 조건이다.

 이 책도 그 중에 하나다. 서점에서 까만 바탕에 까무잡잡한 스페인 소녀의 무표정한 표정이 내 눈을 끌었고, '해외문학'이란 글자가 믿음을 주었으며, 문학상을 받았다고 적혀 있으니 더 이상 살펴보지 않았다. 다만, 열린책들의 글자체에 중독이 되어 있는 나로서는 두꺼운 양장과 약간 어울리지 않는 듯한 글자체와 행간이 맘에 안들었지만...구입을? 하진 않고 미루었다가 재수좋게도 빌려 읽게 되었다.

  사설이 무척 길지만..오쿠다 히데오의 <라라피포>를 구입할 때도 그랬다. 전작들을 읽어 보았으니 아무 의심없었고 오프에서 확인하지 않고(난 검증되지 않은 책은 꼭 오프라인 서점에서 눈으로 확인을 한다) 사고서는 책을 펼쳤을 때 사실 약간 당황했었다. <공중그네>나<인더풀>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내용이었으나 솔직히 야한 글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짝 당황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짜릿하면서 읽었는데 오쿠다 히데오의 <라라피포>는 이 시대의 인간상을 비틀어 보여주었기에 야한 내용이 살짝 나왔으나 재미있게 읽었었다. 아무튼..뭐..그걸 따지자는 것은 아니고..솔직히 이 책을 빌려 올 때도 난 스페인의 여류 소설가가 쓴 약간의 농도 짙은 성애장면이 나오는 책이지만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고, 베스트셀러였으며,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니 나름 문학적인 뭔가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여기서 잠깐!! 이 리뷰를 책좋사에 올리면서 내용이 좀 거시기해서 올려도 될까 고민하면서 책소개를 찾아봤다. 그런데..그문학상이라는 것이 알고보니 스페인에서는 나름대로 권위있는 '에로틱 문학작품상' 이라고 한다.- -;; 스페인이라면...이해가가고도 남음이다.) 그러나...아뿔싸!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작년에 영화 '나쁜 교육'을 접하면서 알모도바르라는 감독에게 푹 빠져 그의 작품을 모두 찾아 보면서 다시금 알게 된 나라인데 우리나라하고 너무나 다른 정서라서 영화를 보는내내 나는 얼이 빠졌었다. 그후로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왜 정열적인지 왜 이렇게 성에 대해 관대한 것인지 이해가 안 되면서도 이해하는 척 했는데(그럼에도 난 여전히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좋아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번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해 대단함을 느꼈다. 언젠가 19세 전용으로 나온 <카트린의 성생활>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은 처음부터 이런 책이니 읽고 싶으면 읽어봐라 하고 선전을 했기에 각오(?)를 하고 읽었으며, 결국은 너무 적나라하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프랑스 여자에 대해 갸우뚱거리면서 읽다가 NC-17(미국영화등급:예전의 X등급) 영화처럼  어느 정도 넘기고 나서는 식상하여 대충 넘기고 만 기억이 있는데 이 책은... 정말 사설이 길지만 ^^:;; 아무튼 이 책도 내가 보기엔 카트린 못지않다. 아니 어쩌면 더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찌하여 <19세 이상>이라는 심의를 안 달고 나왔는지 궁금하다. 저 표지 사진의 소녀를 보고 혹시라도 청소년이 구입을 한다면 그건 정말이지...- -;;  내가 너무 보수적인가? 요즘 아이들은 그 정도에는 끄떡도 안 하는가? 그렇거나 말거나 내 기준으론 우리나라도 가끔 이해하기 힘든 나라라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그럼, 책 이야기를 해 볼까? 정말 별 이야기 없다. 그래도 책에 대한 리뷰는 있어야 하니 이야기 해 보겠다.(정말 사설이 길다.- -;) 이 책의 줄거리는 오빠의 친구를 사랑하는 한 소녀가 우연히 성에 눈을 뜨고(나이 차이가 12살이고 이 소녀가 성에 눈을 뜬 나이가 15살이다. 뒌장!..뭐, 스페인이니까 이해를 하자..알고보니 롤리타는 12살이었더라..우리 춘향이는 15살이던가?) 어찌어찌하여 그 오빠 친구랑 결혼을 하지만 오빠 친구인 남편의 성적 게임에 질려 별거에 들어가는데(그 사이에 나이가 조금 든다) 아이 데리고 혼자살기 힘들어진 룰루가 그 스트레스를 엉뚱하게도 성으로 풀면서 아주 위험한 순간에 빠진다. 그러나  막판에 남편과 친구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빠져 나온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나니 정말 별것 없지 않은가? 이런 이야기는 늘 영화의 소재가 되고도 남아서 어디선가 꼭 본 것 같은 느낌을 전해주니깐 말이다. 그런데 웬 호들갑이냐고? ^^;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다. 묘사다. 너무나 리얼하고 너무나 선정적이고 너무나 변태스러운. 그러면서도 다 읽은 나는 뭐..정말 할 말이 없지만 또 이런 날 보고 '웃기시네' 할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한 내 심정은 이 책은 정말 거의 NC-17등급이다.(아, 이제 어쩌면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지도 모른다. 저 NC-17이라는 단어때문에 ^^;;)

 사실, 스페인은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동성이나 여장 남자 그리고 성에 대한 이해가 우리하곤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에로티즘이 스캔들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은 거의 제로라고 한다. 마약이나 섹스, 성이야기 따위는 거의 문화적 현상일 뿐이다. 우리나라도 요즘 많이 보여준다곤 하지만 스페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뿐이다.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보면서 그걸 알았으면서도..그걸 잊어버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책을 넘긴 후에 어쩔 수 없이(정말 어쩔 수 없이?) 읽은 것은 '그래서 어쨌다는건지' 가 궁금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할련다. 아무튼 책이나 영화에서 내가 당황하는 부분은 항상 이런 것이다. 우연히 아무 정보도 없이 접한 책에서 너무나 적나라한 묘사가 나왔을 때..'뭐야~짱~ㄴㅏ'와  '헉! 이게 뭐야? + +' 라는 반응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라라피포>는 두 번째 경우였지만, <룰루의 사랑>은 첫 번째 반응이었으며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참 어려운 책이었다.

 문학(文學)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룰루의 사랑>은 나름대로 '에로틱'한 것을 언어로 표현해 내어 스페인에서는 권위 있는 '에로틱 문학작품상'을 받은 작품인데다 그 상을 받은 책들 중에서 유일하게 작가가 유명세를 탔고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하니 도대체!!! 궁금하신 분은 읽어보기를 바란다. 단, 19세 이상이면 좋겠다.- -;; 난 문학이라는 것에 '에로틱'이 들어가는지 몰랐기에 문학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장면에서 어떤 정도의 묘사가 문학적인지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후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읽었는데...앞부분의 그 느끼함(?)을 넘어서면 왜 나보코프의 <롤리타>하고 <룰루의 사랑>이 그 문학이라는 것에서 어떤 차이가 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쓸데없이 말만 많았지만 책읽기에 있어서 편식은 그다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주로 소설만 좋아하는 편이라 늘 소설 위주의 책읽기를 해 왔는데 요즘은 많이 반성하고 있고 다른 장르의 책들도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한 장르의 책에도 편견을 가지고 읽지 않는 책을 둔다는 것은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생가한다. 그래서 늘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는데...적다보니 괜히 자기합리화 시킨 것 같은..- -;;; 아무튼!!! 좋은 책을 많이 읽자는 말로 끝을 낸다. 이 책이 재미있었냐고 물으신다면...각자의 취향이라고 대답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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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훈의 우리말 편지 1
성제훈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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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쓴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다. 왜냐하면 월마다 눈에 거슬리는 글자들이 나올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쓰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띄어쓰기를 제대로 했는지 내가 쓴 글자가 그 월에 적절한 글자인지 내가 쓰고도 장담할 수 없음이다. 그럼에도 용감하게 리뷰를 쓴다. 별수 없다. 틀리면 고쳐야지. 그래야 발전하는 거다.

 언젠가 검색을 하다가 성제훈의 우리말 편지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검색을 한 이유는 '왠''웬'이 자꾸 헷갈려서 였던 것 같은데 저자가 아주 쉽게 설명해 주어 그후론 그 글자에 대해서만은 헷갈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글을 쓴 사람이 이렇게 유명한 사람일 줄이야...

 앤 페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책을 쓴 앤 페디먼은 편집자인 까닭에 책이나 신문에 난 오타나 잘못된 월 혹은 적절하지 못한 글자들만 보면 이 책의 저자처럼 두고보지를 못한다고 했다. 그걸 읽으면서 와~대단한 사람이다 했는데 성제훈 역시 그 '꼴'을 그냥 두고보질 못하는 사람이다. 그 덕분에 내가 모르는 우리말, 무심코 쓴 외래어들을 보며 화들짝 놀라 국어공부 다시 해야겠구나 뭐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우리말 편지는 사계절로 나누어 그 계절에 맞게 적절한 글자들과 내용을 분리했다. 나는 봄과 여름 편을 읽었는데 저자가 예를 들어 써 놓은 비를 멈춰주세요 에 쓴 단어들을 보며 경악을 했다. 분명 우리말이라고 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단어라곤 겨우 두어 개뿐이었기 때문이다. '각다분하다''가살스럽다''어리보기' 이 단어들도 우연히 읽게 된 1930년대의 우리 소설 덕분에 알게 된 것인데 '더그매'라든가 '강밭다''비사치다''치롱구니'등등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도저히 알아챌 수도 없는 단어들을 보며 나의 우리말 실력에 기막혀 했다나...

 우리말 편지에는 보통 사람들이 헷갈려하는 글자들이 나온다. 고향이 경상도라 뭐든 센 발음에 강한 나는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안 고쳐지던 것이 '~게요'였다. '그렇게 할께요'가 아니라 '그렇게 할게요'가 맞는 것인데..난 오랫동안 '~게요'를 '~께요'라고 쓴 것이다. 또 표준말에 익숙하지 못하니 딴엔 표준말 쓴다고 쓰는 말을 글로 쓰다보면 웃지 못할 실수를 한다. 오래 전에(한번 지적 당한 후 그 글자만은 절대로 실수를 안 한다나?^^;) "내가 날라다니는 꿈을 꿨어요" 하고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때 친구가 "날라다녀?" 하고 코멘을 남겼는데도 내가 뭘 실수한 지 조차 몰랐었다. '날라''나르다'라는 동사에서 온 활용형이다. 그러니 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꿨어요'하고 썼어야 했던 거다. 하긴 어디 그 뿐이랴. '던''든'의 차이라든가 '그리고 나서''그러고 나서'를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바램'과 '바람'의 차이는 또 어떻고... 

 그동안은 글을 쓰면서도 그냥 되는 대로 입에 나오는 대로 써왔기에 잘못 된 것인지 아닌지도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조금씩 알게 되니 너무나 많은 오류들이 보인다. 더구나 알게모르게 쓰고 있는 일본말은 왜 그리 많은지...세계 기록 유산에도 올라간 우리 <한글>, 그 옛날 언문이라 불리며 사대부 선비들에게 구박을 받았지만 세계 어디에도 <한글>만큼 우수한 문자가 없다. 또 <한글>로 쓸 수 있는 글자는 11,172자로 우리가 말로 할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다 적을 수 있다고 하니 어려운 한자를 넣어 글을 쓰야만 유식하다는 편견은 이제 버리자.

 저자의 우리말에 대한 작은 사랑이 많은 이들로 하여금 우리말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당장 고칠 수는 없겠지만 알게된 우리말에 대해서는 두 번의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기도 하다.

  

*혹,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외에 기타등등..틀린 부분이 있더라도 이해를...차차 나아지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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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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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관한 책을 다룬 이 冊은 작가의 추억이 담겨 있다. 어린시절 누나의 책꽂이에 꽂힌 '소월시집'을 본 이후로 그에게 있어 책이란 인생이다. 그래서일까? 거의 십 년에 걸친 공간 이동이 이 책에 있음에도 얄미운 생각은 안 든다. 책이란 자고로 오래도록 읽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베스트셀러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 책이 불온서적이든 십 년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읽던 베스트셀러든 지금도 그 책이 궁금하다면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김남일의 이 冊안에는 그런 책들이 가득하다. 소설가인 작가의 책을 소설로 만나보지 못하고 산문집으로 먼저 알게 되어 매우 유감이지만 이렇게 또 한 사람의 우리 작가를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冊은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선 작가와 책과의 인연을 다루었다. '아주 오래된 농담'처럼 그렇게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헌책방에서 찾은 조세희의 '난장이' 시리즈를 구해 읽었던 그 즐거움과 원고지에서 부터 시작한 글쓰기가 타자기를 거쳐 워드 프로세서로 이제는 컴퓨터로 쓰게 된 과정이야말로 글쓰기 도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2부에선 이제는 사라진 불온 서적에 대한 이야기다. 마르크스 평전이 아무렇지도 않게 출간되는 요즘에 불온 서적이라는 말조차 낯설게 느껴지지만 작가의 청년시절(이러고보니 작가가 꼭 할아버지 같지만..이해 하시라~!)을 생각해본다면 그 시대에 김지하를 읽고, 김산을 알고 '시뻘건'  무크지 '실천문학'을 읽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 지 알고도 남음이다.

 3부에서 작가는 '쓸데없이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많은 작가들이, 글을 쓴다고 하는 사람들이 써 낸 책에 관한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김남일은 '쓸데없이'라는 말을 사용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쓸데없는 책들이 나에겐 많은 도움을 준다. 읽어보고 싶은 책이 한두 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래 남이 읽은 책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것은 나뿐 아니라 책읽기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일 것이다. 그런고로 그가 추천하는 바오 닌의 '전쟁의슬픔'에서부터 레이 황의 '1587 만력 1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 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하며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자서전',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과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라다크 '오래된 미래'까지 나의 리스트를 꽉꽉 채워주었다.

 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의 슬픔을 달래는 방법을 두고 작가는 자신이라면 도저히 그렇게 못 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김남일 역시 이덕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시효가 지난 책들을 세상에 내 놓으면서도 어쩌랴! 하고 이해를 바라는 그의 느긋함이란...평생 딱 세 권의 산문집을 내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처럼 이 책이 그 바람의 토대가 확실히 되어 '산'과 '길'에 대한 책을 세상에 내 놓을 그 날을 기다린다. 느긋한 그의 심성으로 보아 꼭 그의 바람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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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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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인류학자]를 읽고 관심이 있어 찾아 본 책이다. 앞서 읽은 책보다 더 많은 사례들이 나오지만 그 못지않게 감동적이다. 뇌신경이라는 부분에 대해 아니, 이 책에 대해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주위에서 가끔이라도 보는 특이한 사람들에 대해 좀 더 따뜻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내 어릴 때 외가 옆집에 우리가 말하는 '바보'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를 놀린 적은 없었던 걸로 보아 장사를 하는 그의 집이 어느 정도 잘 살았기에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항상 창가에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던 그 남자는 당시 우리에겐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그 모든 것이 외모에서 비롯 된 것이지만...

 그래서인지 21장에 나오는 시인 레베카의 이야기는 많은 사례들 중에서도 내겐 참 감동적이었다. 열 아홉이나 먹은 여자인데 행동은 어린아이였던 레베카. 외모나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조롱 당하며 살아왔지만 레베카는 따뜻하고 정열적인 여자였다. 레베카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우둔한 여자애' '바보' '굼벵이'라 사람들이 불렀지만 레베카는 멋진 시적인 재능을 갖춘 저능아였다. 할머니가 정성으로 읽어 준 모든 이야기들과 시들을 레베카는 머리 속에 다 기억하고 있었으며 자연의 경치를 보며 그것을 즐길 줄 알고 표현 해 낼  슈 있는 그런 여자였다. 그런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결함 저 너머에 있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여전히 외모에서 보이는 인상으로 그들을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엄청난 오류인가? 다들 긴 병엔 장사가 없다라고 한다. 하지만 난 레베카의 이야기를 읽고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다. 정상적이지 않은 뭔가 이상하고 튀는 행동을 하는 그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 보아주고 그들이 그 세계에서 살아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사랑'이 있다면 평생이 걸릴지라도  '기적'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지금도 고향 그 집 앞엔 그 남자가 의자에 앉아 창 너머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멍하게 쳐다보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검은 머리가 이젠 하얀 머리로 바뀐 채...이제 난 그 남자를 보아도 무서워하거나 하진 않을 것 같다. 대신에 따뜻하게 웃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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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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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에 책을 읽을 때마다 난 감탄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지 또 그 상상력이란 얼마나 치를 떨게 하는지. 누군가 마르케스의 <백 년동안의 고독>이 생각난다고 하면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적은 것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백 년동안의 고독>따윈 머리가 아플 것 같아 읽을 생각도 안했으니 당연히 이 책도 읽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자꾸만 눈에 띄인다. 어떤 이는 읽은 뒤에 무척 우울했다하고 어떤 이는 읽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던 차에 거짓말같이 이 책들이(3권) 내 앞에 나타났으니 안 읽을 수 없었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실에 근거한 '허구'일 수 있지만 어쨌든 '소설이잖아' 할 수 있기에 읽고나서도 조금은 마음이 진정된다.

 세 권으로 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한 권씩 따로 읽어도 그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어차피 세 권이 묶여서 나왔으니 가능하면 연작으로 읽어주는 것이 좋겠다. 첫 번째 이야기인 <비밀노트>는 두 아이 즉, 루카스Lucas와 클라우스Claus의 이야기다. 알파벳의 위치만 다른 똑같은 이름인 쌍둥이 두 아이는 전쟁으로 잠시 외할머니댁에 맡겨지는데 '마녀를 닮은 할머니'가 아닌 '마녀라 불리는 할머니' 밑에서 온갖 고생을 한다. 그 중 하나인 '최악의 상황을 이겨내는 훈련'은 읽는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너무나 천연덕스런 그 아이들의 모습에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그 어린 것들이 정말 그랬단 말이야? 하다가 그래 소설이지 했다가 sbs의 그 기막힌 프로그램을 떠 올리며 아냐 가능해 있을 수 있는 일이야 하며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치와 해방군이 등장하는 현실의 상황들이 루카스와 클라우스에게 도덕성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절실히 보여주기는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그들의 폭력적이고 작은악마같은 행동들에는 이해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책을 놓지 못하고 읽었는데 내가 나머지 두 권의 책을 읽은 이유 역시 이 <비밀노트>에 있다. 그들의 끝이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비밀의노트>가 나온 후 2년 뒤에야 나온 두 번째 이야기 <타인의 증거>는 둘이면서 한 몸이나 다름없는 두 아이가 자신들의 아이덴디티를 극복하고자 헤어진 후의 이야기다. 클라우스는 국경을 넘어 남의 나라로 떠나고 고향엔 루카스만 남게 된다. 첫 이야기에서 존재하지 않던 아이들의 이름이 나오고  클라우스를 떠나보낸 고통이 마음에 남아 있지만 여전히 죽은 할머니의 집에서 야채밭을 가꾸고 밤엔 카페에서 하모니카를 불면서 생활하는 루카스의 이야기다. 전쟁은 끝났지만 국경에 접해있는 루카스의 마을은 폐허나 다름없고 분위기는 무겁기 그지없다. 그 속에서 루카스는 아버지의 아이를 낳은 여자를 데려와 살고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자식처럼 키운다. 또 남편의 죽음으로 방황하는 도서관 여직원 클라라에게 마음을 주고, 서점주인과 동성애자인 당 간부,그리고 불면증을 가진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타인의 증거>에선 이 모두가 주인공이다. 루카스를 중심으로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을 갖고 산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장애를 가진 마티아스가 자살하고 클라우스가 나타나면서 <타인의 증거>는 갑자기 미궁속으로 빠진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다. <50년간의 고독> 마르케스의 제목과도 닮은 이 책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클라우스가 등장한다. 그렇지만 화자는 '나'다. 루카스인지 클라우스인지 헷갈리고 어리둥절하다. 그러다 큰 제목이 생각난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말인지 중반으로 갈수록 점점 꼬이지만 그제야 우린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의 진실? 두 아이의 엇갈린 운명과 루카스가 클라우스이고 클라우스가 루카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말이다. 그 진실을 드디어 알게되면서 <비밀의 노트>와 <타인의증거>가 뒤죽박죽되고 결국은 <50년간의 고독>이란 제목이 나오게 된 배경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큰 한숨이 나온다. 이런 책은 처음이었다. 책을 덮으면서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것도 조용히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알 것 같다.

 매번 소설을 읽으면서 난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가 나온다. 이 책 역시 루카스와 클라우스 곁에서 그들의 엇갈린 인생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두려워했다. 하필 <비밀의 노트>를 읽고 그 무거움에 마음 졸이고 있을 때 sbs에서 하는 <야생의 아이들>이란 프로그램을 보았다. 아이들이 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 아이들을 보면서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마음을 이해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이 책은 올해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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