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소리 쏴 ---

아이는 구급차를

 못 쫒아왔네.

 

하이쿠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시를 읽으면 이  짧은 시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김연수의 말처럼..
매미소리가 천지를 울리다가 문득 멈춘 상태.
그 찰나적인 상태가 바로 견딜 수 없는 삶의 여백이자, 죽음의 적막이다..

 나에게도 그 조카가 있었다.
어리게만 보이던 그아이가
병원에서 나가면 엄마에게 잘할거야' 하며..
철들은 이야기를 할 때
" 그래..힘 내라..얼른 나아야지.."

그런데..그 철들은 이야기가 마지막이였다..
나중에 언니를 붙잡고 그 아이 이야기 할 때마다 내 머리에선 '엄마에게 잘할거야'하던
그 아이의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귀를 울릴 듯 매미소리가 들리다가 일제히 울음을 그치는 그 순간,앞으로 찾아올 그 모든 슬픔의 시간이 단단하게 압축된, 빈 공간이 찾아온다. 겪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잊지 못하는 순간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잊으라고 소리쳤지만,정작 나만은 아직도 그 절대적인 공허와 그 절대적인 충만의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시간은 흘러가고 슬픔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에는 가슴 쏴~한 이야기가 많다.
재미있고 우스운 이야기도 많다..
그 이야기들에 알맞게 씌여있는 문장들을 읽으면 그의 젊은날이 나의 젊은날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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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8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readersu 2007-02-18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이 포스팅을 읽고 그런 것을 조금이라도 느꼈다면..아마도 느껴지지 않을까요? ^^*
 

조카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책이다.시공사의 네버랜드 시리즈 중 하나인 [위니 더 푸우]..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읽을법한 책인데..조카가 네 살되던 해부터 그 책만 보면 좋아라 해서..몇 번 읽어주다가..그 긴 것을 다 읽어 줄려니..넘 힘들어(1혹은 2 등등.. 소제목 붙은 것..) 유아용 푸우책을 찾아서 사다 줬는데..조금 좋아라 하더니 이내 싫증을 냈다..이 책을 읽어 봤다면..그 유아책이 얼마나 재미가 없는 지 알 것이다..아마도 조카는 그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푸우가 생기게 된 스토리부터 시작하여..크리스토 로빈과 푸우의 친구들이 겪게되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재미있고..흥미롭다..더군다니 이 책의 묘미는 글에 있다..원본에 그렇게 나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번역하신 분이 굉장히 위트있게 번역을 하셔서..책을 읽다가 깔깔거리며 넘어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정말 아이들만이 이야기 할 것 같은 말투들이 너무나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뭔가 '좀'을 먹을 시간을 참지 못하는 미련한 곰딴지 푸우..능청스러운 래빗의 말투나..생각이 너무 깊어 생각을 멈추기가 너무 힘든 이요레..겁많은 쬐그만 피글렛..아울캉가..까지..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동물들은 정말 재미있고..씩씩하며..우애있고..착하다..

 알란 알렉산더 밀른은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 글을 지었다고 한다..이 글의 형식도 아빠가 아들에게 이야기 해주는 형식인데..이 책에서는 직접적인 교훈교육도 없다..읽다보면 자연스레 동화되어 배우게 되는 것이다..그러니 아직도 이 책을 접해보지 못했다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아이들에게도 좋고 어른들이 읽어도 넘 재미있다..

 


 




요즘 들어 조카를 보면 이 책의 영향이 많이 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조카가 크리스토퍼 로빈이고..다른 모든 인형들이 조카의 포리스트에 사는 친구들인 것이다..크리스토퍼 로빈처럼..윤곰돌이와 이야기를 하고..이멍멍이랑 모험도 떠나고 포순이랑은 유치원 놀이도 잘한다..집에 있는 모든 인형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지치지도 않나 싶을 정도다..

 어느날, 매번 읽어만 주다가 한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조카때문이다..이 녀석이 이 책을 들고 오더니,거의 열페이지나 되는 그 빽빽한 책을 숨도 안쉬고 30분동안 읽는 것이 아닌가? 말을 시켜도 대꾸도 없다..다 읽고 난 뒤에 이야기를 해보랬더니 줄줄 이야기까지 한다.그러더니 더 궁금하면 나보고 직접 읽을랜다. 이야기가 넘 길고 다 이야기 해줄려니 힘든대나..해서 소리내며 읽었더니 눈으로 읽으란다..자기처럼..^^;;..그래서 그럼 빌려줘 고모가 집에 가서 읽어보고 갖다 줄게 했더니..절대로 안 된단다..자기가 그 책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빌려줄 수가 없다고..흠흠..그래서 몰래 가져와서 읽었다..ㅋㅋ...눈치 빠른 녀석, 다음 날 우리집에 오더니 [위니 더 푸우] 책 내 놓으라면서 고모가 가지고 간 줄 다 안다나 ..^^;;

 이 책은 절판이 되었다..그러나 이 책과 같은 <푸우코너에 있는 집>은 아직도 판매 중이니..푸우 이야기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원본의 재미를 꼭 한번 느끼게 해 주심이 어떨지..ㅎㅎ 이 책에 티거는 나오지 않는다..^^..<푸우코너~>에 나오는지는 확인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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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애인
가브리엘 마츠네프 지음, 조용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고르는 기준이 북디자인과 글씨체라면..좀 웃기는 일이겠지만 언젠가 스폰지에서도 확인하지 않았던가? 남자가 여자를 혹은 여자가 남자를 처음 볼 때 가슴이니,다리니 그런 곳이 아니라 모든 남자들이, 또 모든 여자들이 제일 처음 볼 때는 다들 얼굴부터 본다고. 그 이론을 책에다 결부시키고자 함은 아니지만 나의 경우에는 거의 70%는 북디자인과 글씨체,그리고 제목이다. 그 후에 작가를 보고 책을 넘겨본다. (물론 이것은 검증되지 않은 작가의 책인 경우 그렇다) 이 책 <거짓말하는 애인>은 표지디자인도 눈에 확! 들어오지만 제목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좋았고 글씨체까지 한 몫하면서 내가 바라는 세 가지 요소를 다 갖추었기에 주저없이 골랐다고 봐야겠다.

 이 나이 많은 작가가(나로서는 처음 대하는..) 이십대 초반의 주인공을 내세워 소설을, 그것도 연애소설을 썼다는 것이 너무나 존경(?)스러웠는데 이야기가 참으로 흥미로워 읽는내내 즐거운 책이었다.

 

사랑의경험에 아직 한계가 있는 스물두 살에 불과하지만, 이폴리트는 여자들이 행복한 현재에 얼마나 만족하지 못하는가를 관찰할 수있는 기회를 이미 경험했다. 같은 또래 남자들과 말을 해보면 주된 화제 - 그가 고전문학을 공부하는 소르본 대학의 교수들은 '회귀성화제'라고 표현하겠지만 - 가 미래에 찾아올지도 모르는 먹구름을 미리 걱정하며 행복한 현재를 망치는 여자들의 성향에 대한 것이었다.

 

첫 장부터 여자들을 다 아는듯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상상으로 인해 끊임없이 불만을 갖는 것이 모든 여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라 이야기 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조금 불만이었지만 남자, 여자를 떠나서 아무리 이 작가가 여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라 이야기 한다해도 내가 보기엔 그건 딱히 여자들만의 공통된 특징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 남자들을 나는 숱하게 보았으니 말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래티시아와의 사랑이 그녀의 질투와 끝없는 트집으로 끝이 난 이폴리트에게 신비로운 여자, 엘리자베스가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신비로운 그녀는 이폴리트에게 몸과 마음으로 열정과 애정을 다한다. 그러나 이폴리트는 정말 우연하게, 정말!!! 우연하게 본 엘리자베스의 일기장에서 전혀 상상하지 못한 그녀의이중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그후 이폴리트는 그녀의 일기를 훔쳐보면서 엘리자베스의 거짓말을 추적해가는데...

 이야기의 끝은 한 편의 반전드라마 같다. 읽는내내 왜 그녀는 애인인 이폴리트에게 이렇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는걸까? 그리고 이폴리트는 과연 언제쯤 그녀에게 진실을 요구하며 그녀를 버릴 것인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끝이 안 보인다. 그녀는 끝없이 거짓말해대고, 그는 끝없이 그녀의 일기장을 훔쳐보면서 분개하고 의심하고 화를 낸다. 결국엔 어떻게 되었냐고? 직접 읽어보시길...^^;

 엘리자베스의 일기를 보면 여러 책에서 나온 괜챦은 문장이나 친구들과 이야기 한 대사들 중에서 친구가 멋지게 대사를 한 부분을 마치 자기가 이야기하고 자기 생각이 그런 것처럼 적어 놓는다. 친구들과 만나서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나 이폴리트가 해 준 이야기인데도 너무나 당연하게 엘리자베스 자신의 생각인 듯 적어둔 일기를 보며 이폴리트는 화를 내는데, 사실은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대부분 책에서 본 좋은 글귀를 적어 두었다가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많이 써 먹는다. 조병화님의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라든가 '밤은 외로운 사람들의 어쩌고' 하면서 은근히 조병화님의 것이 아닌 내 것인 양 써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외에도 노트 한 권 빽빽하게 여기저기서 주워 모아 놓은 좋은 글귀들을 많이 써먹었었다. 심지어는 만화책에 나온 대사까지..^^;; 그럼 나도 거짓말쟁이가 되는 건가? 아무튼...

 이폴리트가 여기서 화가 나는 이유는 일기장이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 일기라는 것은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 질 수 있는 매개체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진실인 양 거짓말들을 적어 놓았고 그러고도 모자라 그녀가 내 뱉은 모든 이야기들이 일기장에선 또 다른 이야기로 기록되어 이폴리트를 헷갈리게 했으므로 그녀의 이중적인 생활에 치가 떨렸을 것이다. 이해한다.

 그러나 이 책은 여자들이 보면 굉장히 기분 나쁠 것이다. 아니 기분이 나쁘다. 그러나 나처럼 소설이니까 하며 소설로만 본다면 분명 흥미롭다. 그만큼 속도감이 있고 재미도 있다. 그러니 기분이 나쁘더라도 연애하는 여자들은 읽어보면 좋겠다. 아니, 남자들도 읽어보길 바란다.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의심병 생겨서 갈라지게 될지도..ㅋ^^:;;

 난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이 거짓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같은 여자로서 엘리자베스를 이해는 하면서도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공감이 안 간다. 또 이폴리트 역시 속았다는 것에 동정심이 가지만 나중엔 다 알면서도 모른 척, 그 응큼한 속이 얄미웠다. 그러니...남자든 여자든..연애할 때는 솔직하게 하자. 내숭떨다가 거짓말 속에 파 묻히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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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하정임 옮김,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전 세계 양심에 경종을 울린 펜과 사진의 힘' 뒤표지에 나온 광고중 한 문언이다. 언젠가부터 이런 논픽션에 관심이 가기 시작해서 요즘 꽤 많은 실화들을 접하고 있는데 언제나 실화는 감동적이면서 가슴아프다. 이 책은 죽음을 무릎쓰고 엄마를 찾아 5만 리의 위험한 길을 떠난 온두라스의 한 소년의 이야기다. 그 소년이 지나온 길을 따라 가며 저자가 보고 겪고 들은 이야기를 적었다. 그 이야기 속엔 불법 체류를 할 수 밖에 없는 사연과 중앙아메리카에서 미국까지 그 위험한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이주민들의 고통이 담겨 있다. 읽는동안 내 나라에서, 내 가족들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란 걸 모른 채 살고 있는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감히 '천국'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몇 해 전 태국에 있는 친구의 언니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도 불법으로 태국에 건너와 일을 찾는 미얀마나 캄보디아인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엄청나게 싼 임금탓에 수퍼마켓에서 계산하는 직원외에 물건을 비닐봉투에 담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아니고 둘 씩이나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그뿐아니라 웬만한 한국 가정엔 가정부를 두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가정부가 미얀마나 태국 주변 국가에서 돈 벌러 온 불법체류자였다. 그들이 받는 월급은 우리 돈으로 기껏해야 15만원. 그걸로 고국에 있는 동생 학교보내고 살림에 보태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돈은 겨우 만 원 남짓이다. 물론 이건 태국의 예를 들어서 한 이야기지만 자국보다 더 나은 나라에 가서 돈을 벌어 오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어느나라에나 마찬가지로 다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예전에 미국과 일본에 불법으로 건너간 것도 그렇고, 요즘 중국 동포들과 동남아 사람들이 그들 나라보다 좀더 낫다고 생각하고 그 명목으로 한국행을 택해 건너오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미래의 어느날에는 나라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세계 어느나라마다 그런 현상이 있었지만 난 이 책을 들춰보기 전까지는 그 현실에 대해  너무나 몰랐었던 것 같다. 오래전부터 멕시코인들이 미국으로 가기위해 위험을 무릅쓴다는 이야길 들었으나 그런 것은 그저 돈을 벌겠다는 어른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엔리케처럼 엄마를그리워하다가 엄마를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그 위험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이 여정을 따라가지 않았다면 평생을 몰랐을 뻔했다.

 중앙아메리카, 브라질과 멕시코 사이에 끼어 있는 가난한 나라들 온두라스,콰테말라등 라틴계 아메리카인들의 처절한 삶은 그 모든 것이 정치적 부패와 가난함에 기인하다고 본다. 더구나 어린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여자들의 삶은 특히 더 그렇다. 제대로 배우지 못해 아는 것이 없고 그런 상황에서 돈을 벌어다 주는 남편이 집을 나가거나 이혼을 당하면, 혼자 아이를 맡은 그들은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다. 그래서 그들이 택하는 가장 손쉬운 돈벌이라는 게 미국으로 건너가 불법체류를 하며 돈을 버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겨진 아이들은 졸지에 엄마를 잃어버린 고아나 다름없는 아이가 되는 거다. 차라리 고아였다면 포기를 할텐데 고아가 아닌 고아일 수 밖에 없는 그 아이들의 삶이란 짐작하지 않아도 뻔하다.

 엔리케 역시 이혼한 엄마가 엔리케를 온두라스에 두고 미국으로 돈을 벌러갔다. 엄마 라우데스는 자기가 없어도 가족들이 엔리케와 누나를 잘 보살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떠나는 엄마들 모두 생각하듯이 딱 2~3년만 돈을 벌어 온두라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라우데스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2~3년이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국하고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삶이라는 게 늘 그렇듯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음으로 그만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다른 문제가 발생하였으므로 가족과의 약속은 점점 그 신빙성을 잃어갈 뿐이었다. 또 온두라스의 고향에선 그 나름대로 떠나온 집 근처에  엔리케의 아버지가 살고 있고, 외할머니와 이모들이 살고 있었지만 엄마만큼 엔리케를 돌보지는 못했고 엔리케는 엔리케대로 자신의 모든 불행을 엄마 없는 탓으로만 돌려버렸다. 결국 엄마가 돈 벌러 가고 없는 아이들이 최후에 선택하듯이 엔리케마저도 미국으로 엄마를  찾으러 갈 결심을 한다. 헤어진지 11년이 지난 후에 말이다. 

 그 여정이 우리가 생각하듯이 돈을 주고 브로커를 사서 뚝딱하고 미국으로 가는 것이라면 무슨 걱정이겠냐마는 온두라스에서 미국을, 그것도 돈도 없는 가난한 아이에겐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위험한 일이었다. 뒤에 그들이 말하는 미국에 대한 생각은 '자기들의 고국보다 훨씬 덜 계급 지향적이고, 초라한 옷을 입어도 업신여기지 않으며 걱정없이 금목걸이를 하고 다닐 수 있다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만큼 중앙아메리카의 치안은 그야말로 무방비상태다. 그러니 그런 곳을 통과해서 미국으로 가야만 하는 여정은 목숨을 담보로 가는 여행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물열차를 그것도 지붕에 올라타야하는 위험한 일은 고사하고 가는 곳곳의 도시에서 부닥치는 이민국 직원과 부패한 경찰들, 갱단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강도와 강간, 폭행뿐 아니라 살인까지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그들에게 엔리케와 같은 이주민들은 짐승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아무리 이주민들을 보호해주는 주민들과 단체가 있다하더라도 말이다. 더구나 기껏 그 위험을 이겨내고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까지 가서 눈앞에 미국을 바라보고 있어도 미국으로 들어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엔리케가 미국을 가려하는 이유는 오로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그 그리움으로 엄마를 만나지만 그건 그것으로 또다른 문제를 낳는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왜 그런 모든 위험한 일을 감수하고 미국으로 가려하는 것일까? 왜? 그 대답은 아마 우리도 알고 있다. 오래 지나지 않은 과거, 우리 부모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해 주었던 '가난의 대물림, 배우지 못한 서러움'에서 내 자식만은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고...

 부모가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모두 잘못되는 법은 없다. 그건 동양이나 서양이다 매 한가지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엄마 없는 가정의 아이들이 늘 이렇게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너무나 간단한 이유때문일 거다. 엄마없이 돈을 풍족하게 쓰는 것 하고 엄마와 같이 가난하게 사는 것하고 물어보나마나한 질문이지만 결국은 '사랑'이다.

 이 책은 중앙아메리카의 해체된 가족들에게 있어 가족이란 존재와 이주민들의 삶, 그리고 미국의 이주민에 대한 대처들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그렇게 하여 엄마랑 엔리케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라고 끝나는 픽션이 아니라 그 현실에서 또 어던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논픽션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그들을 위해 바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세계 어디에서든지 고국을 떠나지 않고 가족들과 헤어지지않고 살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게될 날을 기원하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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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
조이담.박태원 지음 / 바람구두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사람을 동경(憧憬)하는 일이란 어떤 것일까? 저자인 조이담씨는 박태원을 정말로 좋아했나보다. 물론 학생들이 연예인을 좋아라하는 것을 보면 그 정도를 이해하고도 남지만...

 모두 3부로 나뉘는 이 책은 제 1장에서 경성 만보객이었던 박태원을 주인공으로 '신 박태원 전'을 선보이고 제 2장에서는 박태원이 지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는 소설을 저자가 읽으며 구보씨가 걸어 다닌 거리를 구보씨와 같이 걸어다니며 주석과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해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은 구보와 이상의 경성 산책이라 하고 그 당시 이상과 박태원이 걸어 다녔을 만한 곳들의 사진을 설명과 같이 실었다.

 그리 푹 빠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난 우리 나라의 근대에 관심이 많다. 지금처럼 문명화 되지않은 도시 생활이란 어떤 것인지 무척 궁금하고 과연 그런 시대의 삶도 지금 우리와 얼마나 다를까?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곳으로 날아가면 그 곳에서 살 수나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한다.  그렇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면 그 시대의 삶이란 지금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에서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1장인데...1장을 다 읽고나서 '한위건'이나 경성에서 제일 이뻤다는 '이덕요'에 대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그리고 박태원네와 이덕요, 한위건의 관계가 마치 소설처럼 드라마틱하여 무한한 궁금증을 가지게 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여기저기 검색해보았는데 경성 제일의 미모를 가진 덕요의 사진은 구할 수 없었지만 한위건의 모습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1장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 저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즉 허구. 실존 인물을 두고 허구로 만든 이야기였던 것. 모든 이야기가 사실인 걸로 믿고 정말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와~했던 난 약간의 실망을 금치 못했지만 저자의 이야기에 홀딱 넘어갔으니 그 점만은 높이 평가할련다. 

 1920~30년대의 경성에도 댄스홀이 있었고, 백화점이 있었으며 호텔도 있고, 카페도 있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그 시대에도 있었다는 사실...넓은 광화문 도로는 그 시대에도 넓다고 생각했고, 하릴없는 룸펜들은 카페를 전전했으며 그때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 다들 고생을 했단다.하긴 따지고 보면 겨우 70년 80년 전이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내가 20대의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을 보면 강산만 변했지 사람의 마음은 세월이 가더라도 변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성숙해질 뿐이지...

 옛날이라 그런지 26살 먹은 구보씨가 한없이 늙어보이고 영감같아 보이지만 그가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가 다 겪어 온 것들이고 삶이다. 앞으로 또 50년이 흐르고 100년이 흘러 서울의 거리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지만 나는 미래보단 늘 과거로의 여행이 늘 흥미롭고 신기하기만 하다. 조만간 박태원의 '천변풍경'을 읽어 볼 예정이다.

 

덧: 이 책에는 서비스 팩이 있다. 이 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 곳으로 난 시간이 없어 훑어보지 않았지만 흥미로운 경성의 모습을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저자의 숨은 노력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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