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분투기
정은숙 지음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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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내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오른쪽 길은 무척 화려해 보였고, 그 길로 걸어가는 사람들도 다들 세련되어 보였다. 왼쪽 길은 화려하기는커녕 칙칙하고 촌스러웠으며 그 길로 걸어가는 사람들도 왠지 고지식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이미 한 발을 화려한 길 쪽으로 들여 놓은 나는, 나도 모르게 왼쪽 길을 자꾸만 돌아보았는데, 순간적으로 혹시 저 길이 내가 가야하는 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이미 보았던 것처럼 내 눈에는 너무나 멋지고 화려했기에 그 길을 가는 동안 왼쪽 길이 있었다는 것조차도 잊어버렸다.

 책을 좋아하니 책에 관한 책이라면 어떤 책이든지 관심이 많다. 이 책 『편집자 분투기』는 책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목이 암시해주듯이 편집자들의 노력과 그들의 열정이 담긴 책이다. 우리가 매일 환상의 세계로 혹은 가보지 못 한 나라를 갈 수 있고, 가슴 찌릿한 사랑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밤에도 퇴근조차 못하고 열심히 책을 만들어내는 그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 책은 편집자로서 20여년을 살아 온 저자가 온전히 경험을 바탕으로 펴낸 책이다. 기획에서부터 편집까지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많은 이야기를 해 준다. 그러니 저자의 말처럼 자신과 똑같은 길을 걷게 될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 일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출판에 관련된 서적이 별로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 출판의 '출'자도 모르면서 출판일을 하겠다고 덤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구나 한번 해 보겠다고 출판사에 들어가더라도 상냥하게 일을 가르쳐주는 선배도 드무니 이런 책이야말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힘이 되는 거다. 

책 한 권이 나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저 책 한 권 만드는데 뭐 그리 어려우랴~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 기획에서부터 텍스트, 북디자인, 헌사까지... 그 모든 것 하나하나 쉬운 일은 없어 보인다. 독자로서 책을 사면 내키는대로 책죽이기에(함부로 하는) 여념없었던 나로서는 책 한 권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보고 난 후에 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겠다고나 할까.
 
편집자로서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나 출판쪽의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지만 편집자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신념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출판편집자가 지향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말의 첫 청자聽者는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하니 편집일이 배우고 싶으신 분들은 힘을 내시길 바란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책 제목에 대한 거다. 나로서는 리뷰의 소제목도 붙이기가 힘들어서 책 제목을 그대로 적거나, 책 속에 나오는 한 문장을 적는 편인데 장편의 원고를 읽고 그 책에 맞는 그럴듯한 제목을 짓는다는 것, 그것 하나로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다. 오늘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도 제목을 그럴 듯하게 적어보리라 했건만, 나는 여전히 책 속의 문장으로 리뷰 제목을 대신한다. 살짝 지겹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너무나 잘 읽히고 재미가 있어서 이 책을 읽는 며칠이 즐거웠다.


그.리.고. 앞서 말한 오른쪽 길은 정말 멋있었다. 그러나 돌고돌아 두 길이 다시 마주쳤을 때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왼쪽 길을 택했다. 그동안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돌았나 보다. 발도 못 들여 놓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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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풀스 데이 - 하 - 데이먼 코트니는 만우절에 떠났다
브라이스 코트니 지음, 안정희.이정혜 옮김 / 섬돌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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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서 혈우병을 가지고 태어난 데이먼은 어머니에게 그 병을 물려받았다. 여자에겐 유전되지 않고 남자에게만 유전이 되는 이 병으로 인해 데이먼은 어릴 때부터 멍이 들면 수혈을 받아야만 했다. 혈우병만으로도 힘든 데이먼에게 에이즈라는 그 당시엔 잘 알지도 못하는 병이 찾아온 것은 17살 때였다. 수혈 받는 과정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생겼다. 그 당시엔 에이즈라는 병명 자체도 생소한 것이었고 치료약은커녕 원인조차 잘 모르던 때라 그런 병에 걸렸을 뿐이라 생각했던 데이먼과 가족들은 결국엔 에이즈로 인해 데이먼을 잃고 만다.


요즘 어느 드라마에 데이먼처럼 수혈을 통해 에이즈에 걸린 아이가 나온다. 그건 물론 드라마이고 그래서 에이즈에 걸린 아이나 엄마나 씩씩하게 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혹은 우리 가족 중에 한 명이 어이없게도 수혈과정에서 에이즈에 걸린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아마도 모든 신들에게 그 탓을 돌리지 않을까? 왜? 왜? 왜?


하지만, 데이먼과 가족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에게 에이즈란 하나의 병이었을 뿐이고 이겨낼 수 있는 병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모든 가족이 긴장 속에 살아가야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태어나면서부터 이틀 걸러 수혈을 받아야만 하는 데이먼과 그걸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은 찢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가족들이 받아들이는 삶은 늘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다. 혈우병에 에이즈까지 걸린 데이먼 마저도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모습은 정상적으로 태어나 자란 나를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었다.


『에이프릴 풀스 데이』는 데이먼을 사랑한 가족들이 풀어놓는 데이먼에 대한 이야기다. 살아 있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데이먼이 세상을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부탁한 거다. 그래서 이 책엔 글쓴이가 여러 명이다. 데이먼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늘 기회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 동갑내기면서 혈우병에, 에이즈까지 가진 데이먼을 사랑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애정과 사랑을 주었던 셀레스트, 그리고 아픈 동생을 늘 지켜보았던 형들. 그 모든 가족들이 데이먼을 위해 희생과 사랑을 주었기에 데이먼 역시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끈기와 열정으로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보여 준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가족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저자인 브라이스 코트니는 데이먼이 에이즈에 걸렸을 때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호주 의료시스템에 대한 부조리와 권위적인 의사들의 세계를 솔직하게 보여 준다. 또 에이즈라는 무서운 병에 걸렸을 지라도 사랑이 있다면 극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니 우리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을 지라도 이 책을 통해 데이먼을 대하는 가족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4년 동안 자신의 병을 삶 속에 의연히 받아들이며 만우절 거짓말처럼 죽기를 바랐던 데이먼은 그 짧은 인생동안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의 삶에 대한 의지는 지금도 병마 속에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래도록 내 마음 속에 감동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데이먼 덕분에 잠시 잊었던 비슷한 삶을 살다 간 내 착한 친구 생각이 났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친구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데이먼도 그 친구도 이젠 아프지 않은 그곳에서 마음껏 뛰놀며 살 수 있을 테니 이젠 안심 하며 미소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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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아했던 것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2
미야모토 테루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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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빗소리에 혹은 우연히 바라본 파란 하늘 속에서 문득 잊었던 옛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추억이란 지나고 보면 모두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들이다. 내게 아픔을 준 친구에 대한 기억도,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웠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그랬었지,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땐 그 나름대로 행복 했었구나!’하고 너그러워진다. 그래서 추억이란 것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추억이 나에게 무슨 신선한 기분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고 희망이나 활력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1980년 초여름에서 1982년 봄까지의 이 년을 즐겨 회상한다. 그 이 년의 추억 속에 푹 젖어드는 것이 좋은 건지 아니면 새벽의 빗소리가 좋은 건지, 또는 둘 다인지 도무지 알 수 없긴 하지만…….    p6


화자인 요시의 담담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미야모토 테루의『우리가 좋아했던 것』은 말 그대로 ‘좋아했던’ 것을 이야기 한다. 이제는 가질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이제는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것. 누구나 한번쯤은 지난 추억을 생각할 때 그런 ‘좋아했던 것’에 대한 추억이 하나쯤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보다 조금은 젊고, 조금 무모하고 용기가 있던 그 시절에 말이다. 요시의 말처럼 희망이나 활력을 주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추억이란, 좋았던 것이든 나빴던 것이든 그렇게 앞으로 살아갈 나날들에게 작은 미소를 던져준다.


미야모토 테루는 네 명의 남녀에게 각자의 짐을 하나씩 짊어지게 하고 그 짐을 그들이 어떻게 풀어내는지 보여주고 있다. 당나귀에게 한 발을 들여 놓고 딴 곳을 바라보는 요코를 포기했다가 다시 끌어안는 당나귀의 마음은 요코의 방황을 끝내고 그 상처를 다듬어 주며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다. 또 세 사람의 우정과 헌신으로 불안신경증이란 병을 이겨내고 의대에 진학하여 자신의 꿈을 펼칠 준비를 하는 아이코, 그런 아이코를 요시는 사랑하지만 서로의 행복을 위해 아이코를 떠나보내는 요시의 마음은 사랑하니까 떠나보낸다는 고리타분한 말이 진정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두 여자(요코와 아이코)와 두 남자(요시와 당나귀)의 우연한 동거는 그 우연만큼 다행히도 우리가 늘 보던 그런 관계 속에서의 삼각관계 따윈 일어나지 않고 각자 짝을 맞추면서 시작된다. 처음 보는 남녀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동거의 생활을 한다는 것이 내 머리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위 말하는 한 눈에 반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서서히 여물어가는 그런 사랑. 그래서 그 추억들에 대해 감히 ‘좋아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꿈을 위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상대가 좀 더 나은 행복을 선택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야말로 가족이상의 배려이고 사랑이다. 그런 배려와 사랑이 있었기에 네 명의 남녀는 보다 나은 선택을 했고 이 년의 동거생활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미야모토 테루의 『우리가 좋아했던 것』은 담담하게 읽다보면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는 청춘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살포시 웃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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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의 여인에 대한 찬양
스티븐 비진체이 지음, 윤희기 옮김 / 해냄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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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밀란쿤테라의『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났는데 언제 읽었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린『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생각해냈다는 게 참 이상했다. 얼마나 오래 전이었나? 내용도 생각 안 나고 그저 밀란 쿤테라하면『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나고  헝가리든 체코든 소련이든 혁명이든 그런 것과 관련된 것들을 읽게 되면 또 밀란 쿤테라가 생각이 나고 그래서 이책을 읽으면서 밀란 쿤테라가 생각이 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동아일보기자의 서평에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난 그 내용이 잘 생각 나지 않으므로 밀란 쿤테라가 정치적 상황의 탈출구로서 에로스를 이용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이 책『연상의 여인에 대한 찬양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자유로움과 사랑을 받아 온 안드라스가 엄마나 엄마의 친구들, 고모에게 받은 사랑을 당연하게 여김으로서 그 자신 역시 직접 만나는 사람이나 얘기로 전해 들은 사람 모두를 사랑하고 존중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두 살때 아버지를 청년 나치당원에게 잃어버리고 어머니와 단 둘이서 살면서도 부족함이 없이 이 세상이 천국인양 살아 온 것은 어머니의 사랑과 주변의 환경이 그에게 행복한 감정을 선사하면서 그런 감정을 가졌을 테니 어머니와 같은, 고모같은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게된 것일 수도 있다.

 열두 살에 미군장교에게 몸을 파는 백작부인의 나체를 보고 '저도 이제 다 컸단 말이예요'하고 대꾸하고.'담배 천 개피' 로 부대에  온 금발의 모차르트양에게 흥정을 하는 아이. 그 뒤 또래의 여자아이들과의 데이트는 서로의 무지로 애만 쓰는 '사랑에 관한 한 자기처럼 서투르고 재주도 없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은 자기처럼 수영을 못하는 사람과 함께 깊은 물에 들어가는 일과 같다. 그러다 물에 빠져 죽지는 않을 지라도 아마 대단한 곤욕을 치를 것은 뻔하다' 고 단정해버린다.

 그즈음 첫사랑이기도 한 마야부인을 만나면서 안드라스의 여자에 대한 접근하기 위한 유혹의 말들은 그 나름대로 고심을 한 것이지만 위트있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저 결심했어요. 오늘 당신에게 나와 사랑을 나누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면 그냥 다뉴브 강에 빠져 죽고 말겠다고 말이에요'라든지 마야의 사촌인 클라리에게 '저를 탐해보세요'라고 능청을 떨기도 한다. 그 뒤로 안드라스는 맘에 드는 여인에게 '당신을 덮치고 싶군요' '내 사랑을 받아주신다면 이 아름다운 골동품, 이 재떨이를 그대에게 드리겠습니다.' '당신 아세요? 제가  한번도 이탈리아 가정에 식사 초대를 받아보지 못했다는 걸 아세요?'  하며 접근을 한다..

 이렇게 보면 이 소설이 돈주앙쯤 되는 남자가 나와서 여자를 바꿔가면서 쾌락을 일삼는 이야기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만약 그랬다면 이 소설이 세계적으로 400만 독자를 사로 잡을 수가 있었겠는가? 물론 이 소설은 한 헝가리소년의 십 대시절에서 이십 대초반까지의 성장소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대의 급변하는 불안정한 유럽의 전쟁과 침략속에서 탈출구로 여자를 선택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인 상황이나 정치적 불안에 위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해냄 출판사의 광고카피처럼 "인생은 전부 섹스는 아니지만, 섹스는 인생이다." - 애인없는 젊은 남자와, 사랑을 아는 여자에게 바치는 소설 -이란 문구가 다 읽고나니 살짝 거슬리기는 했지만 뭐, 어떠랴! 독자들이 읽어보면 좋은 책인지 나쁜 책인지. 외설인지 문학인지 알 수가 있는 것을.      

 이 책은 영문으로 나온 지 40년이 지난 책인데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그 상황을 소화해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는 꽤 재미있었다. 이제 밀란쿤테라의『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읽어야겠다. 읽은 지 15년은 더 된 것 같은데... 기억나는 내용이 혁명을 제외하고는 생각나지않는 것이 그 당시엔 뭔 책인지도 모르고 읽었던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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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앤 아버스 - 금지된 세계에 매혹된 사진가
퍼트리샤 보스워스 지음, 김현경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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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실비아 플라스의 영화를 우연히 보았다. 그녀가 시인인지 뭔지도 모른 상태에서 영화를 보고 난 후, 한동안 실비아 플라스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나와 있다는 걸 알고 구입하였는데 아직도 읽어보질 못했다. 다이앤 아버스, 애석하게도 난 그녀의 이름도 처음 들어 보았다. 하긴 내가 모르는 유명인들이 어디 한 둘 이겠냐마는 왜 하나같이 멋지고 개성 있는 여자들은 자살을 하는 건지, 아니면 자살을 했기 때문에 그런 개성이 드러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이앤 아버스 역시 씁쓸하다. 실비아 플라스 만큼은 아니지만 말이다. 


1923년 뉴욕의 부유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위대하고 슬픈 예술가’가 되길 꿈꾸다가 1971년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한 다이앤, 그 사실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었다. 더구나 다이앤이 사진가로서 그 당시에 금기시되는 것들을 사진으로 찍었다는 것이 아주 강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쌍둥이나 장애인, 나체주의자, 왜소인, 바보, 난쟁이와 같은 인습을 무시하는 존재들에게 흥분을 느낀 그녀의 ‘공감‘을 느껴보고 싶었다.


이 책, 금지된 세계에 매혹된 사진가『다이앤 아버스』는 3부로 나뉜다. 그녀의 출생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 ‘위대하고 슬픈 예술가’가 1부에 나오고, 남편인 앨런과 함께 패션 사진  작가로서의 다이앤의 이야기를 다룬 ‘패션 사진기’가 2부에, 마지막으로 다이앤의 독창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금지된 것들의 이상한 나라’가 3부에 소개된다. 서문과 인용문을 빼고도 400페이지가 넘는 글이 저자인 퍼트리샤 보스워스가 인터뷰한 200여명의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매 페이지마다 소개되는 인터뷰를 보노라면 한 편의 다큐프로를 보는 것 같다. 실제로 이 책으로 다큐를 만든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저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유명한 다이앤 아버스의 작품을 하나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사진은 비밀에 대한 비밀이다. 사진이 더 많이 말할수록 그것을 보는 사람이 아는 것은 더 적어진다.”라고 다이앤이 살아생전에 이야기 했다던가? 그녀의 전기에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 가족들로 인해 우리는 다이앤의 작품을 볼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다이앤을 볼 수 있으므로 아쉽지만 그걸로 위로를 삼아야 한다.


15살의 나이에 앨런을 만나 18살에 결혼한 다이앤은 평생 배우가 되기를 꿈꾸면서 궁여지책으로 사진을 찍는 앨런에게 사진을 배운다. 결혼 후 그들은 같이 패션지의 사진을 찍지만 수입도 적었고 그다지 열정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는 일을 선택한 것은 둘이 별거를 하면서부터다. 그러나 ‘먹고 사는 것이’ 문제였던 그들은 앨런이 낮엔 스튜디오를 하고, 밤엔 연기 선생인 미라 로스토바에게 스튜디오를 내주며 배우 수업을 받을 때도 다이앤은 계속해서 패션지의 사진을 찍었다. 서로에게 거리가 생기고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기임이 확실했는데도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둥글고 어두운 눈에, 똑같이 음울하고 경계심 많은 표정을 띤 쌍둥이’처럼 살았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이앤은 그즈음 앨런과 리젯 모델의 가르침으로 자신이 원하는 사진들을 서서히 찍기 시작했다. 부랑자, 머드 쇼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고, 휴버트 프릭 박물관에서 기형인들의 모습을 찍었다. 다이앤은 매번 새로운 상황에 접근할 때마다 아주 수줍고 겁에 질렸지만 그 두려움에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하기도 처음엔 어려워했으나 새로운 챔피언이자 멘토인 마빈 이스라엘을 만나 그가 더 큰 도전과 힘든 과제를 받아들이도록 자신의 재능을 믿어주고 죽는 날까지 곁에 있어주겠다고 자극과 압력을 가한 덕분에 그런 부탁마저도 쉬워했었다.


1967년 3월 6일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뉴 다큐먼트’사진전은 다이앤 인생의 정점이었다. 호평과 혹평이 쏟아짐에도 그녀는 전시관에 매일 나가 사람들의 반응을 엿들었다.  호평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혹평을 하였기에 그 이후 그녀는 점점 더 우울해졌다. ‘뉴 다큐먼트’전이 있은 뒤로 다이앤에게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전화와 전국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 왔고, 그녀의 작품을 싣게 해 달라고 많은 사진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러다가 비바라는 여배우의 사진을 스냅샷으로 찍어 실은 후에 ‘기형인들의 사진가’라는 명성이 더 굳어졌는데 다이앤은 그것이 과장되고 부적절하다고 생각했으며 크게 낙담하였다. 그즈음 다이앤은 먹고 있던 항우울제의 복용을 중단하고 있었기에 쉽게 짜증을 내고 아주 많이 우울했다.


1971년 7월 26일 다이앤은 그 날 거리에서 마주친 사진가 월트 실버에게 자신이 감기에 거릴 것이며 뉴욕을 떠나 이사할 생각이라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27일 피터 슐레징거와 마빈이 여러 번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28일이 마빈이 다이앤이 살고 있는 웨스트베스로 건너갔을 때 다이앤은 칼로 손목을 긋고 죽어 있었다. 일기장은 7월 26일자로 펼쳐져 있었고, ‘최후의 만찬’이라고 흘려 쓴 글씨가 적혀 있었다.


다이앤의 초상 사진들은 1963년대 대공황기의사회적인 관심사에 묶여 있던 다큐멘터리 사진이, 1950년대 이후 심리적이고 개인적인 접근을 하는 데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다이앤이 죽은 후 1년 뒤인 1972년 다이앤의 사진은 미국 사진가로는 처음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되었고 그해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회고전에는 무려 25만 명이라는 경이적인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다이앤의 생애 오십여 년 동안 사랑과 행복으로 충만하던 때가 있었고, 고통으로 힘들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소녀에서 여자로 또 엄마로서 살아오는 동안 과연 그 무엇이 그녀를 우울 속에 빠뜨렸는지는 다이앤만 알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다이앤이 많은 사람들이 보려하지 않으려는 것들을 찍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내가 나의 눈으로는 절대 보지 못 했을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두고두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금지된 것들의 세상에서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는 다이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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