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Notes' 끌림, 제목처럼 이 책은 여행에서 적은 글들이 적혀 있는 책이다. 다른 여행서적과는 좀 다른 이 여행서적이 난 참 마음에 든다. 이 책에는 그곳에 가면 따위의 안내 같은 것은 나와 있지도 않고, 그 나라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역시 없다. 오로지 그곳에서 보고 느낀 작가의 생각만 담겨 있다. 그래서 더 좋다. 내 마음 같고, 내가 그곳에 다녀온 느낌이다.


난 여행서적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건 아마도 내가 마음먹은 대로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난 몹시 게으르다. 내가 여행을 가는 방식은 항상 준비기간이 없고 갑자기! 이다. 몇 번의 해외여행을 생각해보면 늘 그랬던 것 같다. 휴가 잘 갔다 온 내게 일주일의 기한을 두고 무조건 가야 해! 를 외치는 친구를 따라 정신없이 일주일 만에 여권 만들어 싱가포르로 그 비싼 휴가철에, 그 비싼 값을 다 치루고 첫 해외여행을 나간 이후로 늘 그랬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 한 달 전부터 혹은 미리 계획을 세워 놓으면 꼭 무슨 일이 생겨 못 가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냥 그렇다. 이렇게 이야기 하니 해외여행 무진장 나갔다 온 사람 같지만 그건 아니고 몇 번 되지 않는 여행이 그랬다는 이야기다. 하긴 계획 세워 못 간 여행까지 따지자면 제법 되긴 하지만 말이다.


여행에 대한 나의 로망에는 ‘스케치’가 포함된다. 내가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것이 여행 간 그곳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한 외국인을 보았는데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스케치북을 꺼내 맞은편에 앉은 학생들을 그리는 모습을 보며 혼자 와아~감탄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였던 것 같다. 나도 여행가면 사진이 아니라 꼭 그림을 그려봐야지 하고 마음먹은 것이. 비록 그 이유로 인해 스케치를 배운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크로키를 배운 적도 있다. 하지만 다 커버린 다음에 그림을 그리자고 하니 손이 말을 안 들어 배운 것을 제대로 써 먹지도 못했고, 막상 여행가서는 사진 찍는 것도 벅차서 그림 따윈 그릴 시간도 없었지만 어쨌거나 나의 희망사항은 아직도 여행지에서 그리는 그림이다.


끌림』의 작가 이병률은 시인이다. 그래서 그가 적은 모든 글은 시 같다. 작년에 『사랑을 만나러 길을 나서다』라는 제목의 조병준의 여행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책 역시 감성적인 문체에 혹 했는데 그 역시 시인이었다. 『끌림』을 읽으면서 내도록 그 책이 생각난 것은 아마도 둘의 시인으로서의 감성이 독자인 내게까지 통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항상 어딘가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면 여행서적을 펼친다. 비록 내가 지금 당장 떠나지 못 하지만 여행서적은 늘 그런 나의 불만을 충족시켜 준다. 그래서 나는 늘 여행서적을 읽는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도 나만의 감성적인 여행기를 적어볼 생각이다. 호호할머니가 되어 실행에 옮길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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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 정치지리의 세계사 책과함께 아틀라스 1
장 크리스토프 빅토르 지음, 김희균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나라 찾기나 지명 찾기 놀이를 하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 동생들이랑 심심할 때면 하던 놀이였는데 요즘은 조카를 데리고 그런 놀이를 한다. 하다보면 내가 모르고 처음 들어보는 그리고 예전엔 보이지 않던 나라들이 보이기도 한다. 이런 나라들이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세계사는 공부도 하고 책도 많이 읽었는데도 모르는 게 많다. 늘 헷갈리고 어렵다. 그래서 이 책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을 펼쳤을 때 왠지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텍스트로만 읽으면 매번 헷갈리고 그 나라와 이 나라가 뒤범벅되어 도대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아리송할 때가 많았기에 지도를 그려주면서 설명을 해주니 훨씬 이해하기가 쉬웠다. 더구나 현재의 정치, 지리적 세계사를 밝혀 놓았기에 말로만 듣던 분쟁지역과, 기아로 허덕이는 나라들, 각 나라의 이권과 그 개입상황이나 석유를 둘러싼 각 나라의 입장들 등등 보다 많은 세계 정보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이 책은 1부 「지정학 지도」와 2부「다가올 세계」로 나누어 역사와 세계사를 아울러 보여 준다. 1부에서는 각 대륙으로 나누어 각 나라의 정치, 경제적 상황을 보여주고 이야기 한다. 2부에서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폭력, 부정, 부패, 불안한 경제와 지구 온난화까지 다각적으로 지도와 함께 설명해 준다. 2부에서 한국과 관련하여 놀란 일은 ‘에이즈’였다. 한국이 2003년 에이즈 환자 발생 전망치에서 남부 아프리카와 같은 +10%의 전망치를 보여주었다. 아프리카를 제외하곤 +10%의 전망치를 보여준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그럼, 유럽지도부터 살펴보자. 유럽연합이 창설된 지 수십 년이 흘렀어도 ‘노르웨이’나 ‘아이슬란드’가 유럽에 속해있으면서도 유럽연합에 들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또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닌 곳에 속해 있는 ‘터키’는 유럽연합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불안한 나라라는 이미지로 인해 아직도 유럽연합의 국가들이 이웃나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모든 이면에는 종교와 인권, 정치적 상황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터키뿐이 아니다. ‘리투아니아‘와 ’벨로루시‘가 유럽연합에 가입되면서 유럽연합 안에 섬이 하나 등장 했는데 그 섬이 바로 발트 해의 홍콩이라 불리는 ‘칼리닌그라드‘이다.


소련이 망하기 전까지는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이 나라는 유럽연합에 가입하여 투자를 받는 것이 훨씬 이득이나 러시아와의 미묘한 관계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 있다. 그렇다면 왜 다들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싶어 하는 걸까? 이 책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더 나은 삶이 보장되고, 개인의 인권과 민주주의가 실현된 자유무역지대는 그다지 많지 않다. 유럽이 매혹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러시아 외교정책의중심이 있다. 유럽연합이 주변의 나라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면서 확장정책을 쓰면서 러시아와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러시아에 대해 가장 많은 투자와 원조를 하고 있고,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제 아메리카로 넘어가보자. 미국의 외교정책은 뒤로하고 미국이 ‘디에고가르시아’라는 대서양에 있는 작은 섬을 미국 군사 전략의 중심으로 사용하게 된 까닭을 보면 인도양의 중심에 있어 신속하게 분쟁지역으로 향할 수 있다. 즉 방어 전략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차고스제도의 원주민들의 삶은 사라지고 그들은 그 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들이 혹시라도 공산주의자가 되어 공산주의자들의 땅이 될까 봐 두려웠다는 게 그 이유다.


미국의 이기심은 이 뿐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말이 많은 FTA처럼 ‘전미자유뮤역지대’라고 일컫는 FTAA가 있다. 이 조약은 북쪽에 있는 부자나라와 남쪽에 있는 가난한 개발도상국을 묶는 지역연합이다. 하지만 이런 빈부 격차가 심한 나라들 사이에 이런 조약이 결성되면 피해를 보는 사람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다. 지금 남미에 사는 8천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상황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처한 상황이 전혀 다름에도 이 조약이 출범 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때문이라고 한다. 2002년 중국이 미국의 두 번째 교역국이 되면서 ‘중국’과 맞서기 위해서는 남미의 나라들이 ‘전미자유무역지대(FTAA)’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씁쓸하다.


그 외 말 많은 중동의 석유를 둘러 싼 전쟁, 종교를 둘러 싼 분쟁, 핵 문제들이 지도 위에서 펼쳐진다. 또 아시아에서 중국의 위치와 티베트에 대한 압박, 일본과 이웃 국가들과의 해결되지 않은 해상 분쟁에 대해서 보여주고, 아프리카로 넘어가서는 천연자원이 풍부함에도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는 아프리카, 세계화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아프리카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아프리카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며 어떤 것부터 해결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먹고사는 것부터 해결해야 하는지, 질병 퇴치가 우선인지 교육이 앞서야 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홍수나 전쟁이 우선인지 이 모든 것에 해답은 없다. 다만 그들 나름대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 '아프리카 개발을 위한 새로운 협력관계(NEPAD)'가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나아갈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뿐이다.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말을 하자면 끝이 없다. 내가 여기에서 밝힌 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면 수많은 문제들이 얽히고설켜서 각 나라의 입장만 생각하느라 바쁘다. 더구나 이번 한번만 읽은 것으로는 이 책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책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볼 일이다. 그러다보면 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제 조카들과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나라 찾기, 지명 찾기 놀이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 나라는 기근이 들렸지, 이 나라는 분쟁지역이야, 이 지역은 송유관이 지나가고 있어 따위의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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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
김원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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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김원일 선생의 『마당 깊은 집』을 읽었다. 그러나 『마당 깊은 집』을 제외하곤 한동안 김원일 선생의 글은 읽은 기억이 없다. 언젠가부터 한국 문학에 소홀했고, 소문이 많이 난 소설이라고 해도 굳이 읽어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마당 깊은 집』을 읽은 후로 나는 해방 전후나 6.25에 관한 이야기, 혹은 나라는 다르지만 한 가족의 인생사나 성장소설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 박완서 선생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와 그 시리즈 2편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고,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같은 소설 역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또 은희경의 『새의 선물』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요즘 들어 우연이라면 우연하게도 한국 소설을 자주 읽게 되었는데 이 책 『전갈』이 나왔을 때, ‘비극적인 운명을 지닌 삼대의 가족사’라는 소개 글에 주저함 없이 선택하여 읽은 것도 김원일이라는 이름과 삼대의 가족사라는 내용에 끌렸기 때문이다. 역시 관록을 가진 작가라 요즘 나오는 가벼운 글들에 비하면 비록 비극적인 소설이라도 훨씬 읽는 맛이 났다.


『전갈』은 화자의 할아버지가 태어나 살았던 일제강점기부터 화자가 살고 있는 현재까지 백 년에 걸친 가족사가 화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폭력조직에 몸담고 있는 화자 강재필이 폭력과 관련하여 감옥살이를 하고 나오면서 독립운동을 한 할아버지의 생애를 글로 남기고자 한다. 그 작업이 폭력조직과의 결별을 뜻하는 것은 아니나 그 세계와의 결별을 암시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생애를 글로 남기는 작업이 그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어느 책상물림의 한가로운 족보 정리이듯 여겨지자 할아버지의 생애 정리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허망한 생각을 갖게 된다.


강재필에게 가족은 부끄러운 존재들이다. 독립운동을 한 할아버지 역시 알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관동군 731부대에서 하수인 노릇을 하였고, 그 속죄로 좌익의 길로 들어섰다가 당국에 요주의 인물로 찍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중국어 통역관 노릇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소일하면서 생을 마감한다. 그에 비하면 더 보잘것없는 아버지 강천동은 몸집만 클 뿐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화자인 강재필과 많이 닮아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강간하여 아내로 들여앉히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강재필과 고향으로 온 어머니는 사고로 사람을 죽인 강천동이 감옥살이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정신병 초기 증상을 보이며 방구석에서 꼼짝 하지 않는 아버지를 보고 공포심에 사로 잡혀  마흔 살도 못 되어 요양소에서 거식증으로 죽고 만다.


그런 가족 상황에서 강재필은 중학교 때 이미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폭력배로 성장하고 있었다. 물려받은 것이 분명한 ‘유전인자’로 인해 폭력적 성격을 가지게 되고, 그런 가족사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역시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를 이어 되풀이 되는 그들의 인생은 서로 다르면서 닮은꼴로 삼대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김원일 선생은 삼대에 걸친 가족사에서 할아버지의 독립운동과 이념의 갈등, 아버지가 산업 현장에서 보여준 현대 산업의 그늘진 모습과 최근 문제가 되었던 성인 게임장 ‘바다 이야기’를 내세워 아들에 이르러는 삼대의 역사와 사건을 보여 준다. 이 책 『전갈』이 돋보이는 것은 그런 역사적 사실 속에서 삼대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것이다. 분명 사실이 아닌 소설임에도 사실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힘, 그게 김원일 선생의 관록이 아닐까 싶다.


읽고 나니 왠지 꿀꿀한 마음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특히 할아버지가 관동 731부대에 있을 당시, 하얼빈의 천당과 지옥의 차이를 하얼빈 상류층 생활과 근교에 있던 관동 731부대의 비교로 설명한 작가의 인용문이 기억에 남는다. 가난과 부는 과연 대물림인가?


오랜만에 아주 묵직한 한국 문학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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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 벌레 이야기
이청준 지음, 최규석 그림 / 열림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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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괴사건이 보도되었을 무렵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조카를 만났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고모 입장으로 궁금한 게 많아 이것저것 두서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물어보았다. 학교는 누구랑 가니? 혹시 혼자 다닐 때도 있니? 혼자서는 절대로 다니지 마라. 낯선 사람이 뭔가를 물어보면 대답도 하지 마라 등등 생각해보면 참 웃기는 질문이지만 딴엔 조카가 걱정이 되어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이 어이없는 질문과 권유(?)는 도통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세상이 험악하다느니 나쁜 사람들이 많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단도직입적으로 이제 세상 속으로 들어간 아이에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빙빙 돌려 말할 수밖에. 당연히 나라도 못 알아들을 말이었다.- -;) 조카의 무관심으로 유야무야 되어버렸지만 모르는 사람은 다 나쁜 사람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조카가 가여울 뿐이다.


벌레이야기』는 이청준 선생이 1985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십 여 년이 지난 작품인데도 이렇게 공감하는 것을 보면서 이청준 선생의 문체는 둘째로 치고, 강산이 바뀔 만큼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아이들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여전하다는 것이 안타깝다. 유괴와 살인,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야기를 이청준 선생은 특유의 시선과 문체로 풀어냈다. 그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신의 사랑 앞에 사람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과 권리란 무엇인가. 이 소설은 사람의 편에서 나름대로 그것을 생각하고 사람의 이름으로 그 의문을 되새겨본 기록”인 것처럼 피해자가 된 엄마가 절대자인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어 벌레로 전락하는지를 고통스럽게 보여준다.


아이가 실종되고, 차츰 주변의 관심에서 멀어질 무렵, 엄마가 잡을 수 있는 희망은 당연히 모든 종교일 것이다. 부처님께 불공드리고, 예수님께 기도드리고, 그 어떤 힘든 일이라도 엄마니까 당연히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상황에서 이웃집 여자인 김 집사의 도움은 절대자인 하느님에게 의지해서 실종된 아들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주검으로 발견되고 범인이 잡히지 않았을 때, 절대자인 하느님에 대한 엄마의 원망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이를 찾아내기 위해 기도드리고 하느님을 찾았건만 주검으로 변해 돌아온 아이를 보며, 더구나 범인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아들만 주검으로 돌아온다면 어느 엄마인들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을까. 하지만 범인이 밝혀지고 잡히자 엄마의 마음은 복수로 가득해진다. 내 아들은 죽었는데 범인은 이제 법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보호를 받고 있으니 어찌 엄마의 마음이 편할 것인가. 복수와 원망으로 가득한 엄마에게 이웃집 여자 김 집사는 이젠 ‘용서‘ ’동정‘이란 말로 엄마에게 다가온다. 잡힌 범인을 심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며 오직 절대자인 하느님만이 심판할 수 있다며 사람에겐 오로지 남을 용서할 수 있는 의무밖에 없다고 설교한다. 결국 김 집사의 간곡한 권유에 엄마는 범인을 용서하기로 하고 그를 찾아간다. 하지만, ’용서‘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용서를 하러 간 그 자리에서 엄마는 용서 대신 배신감을 느끼고 돌아온다. 그 배신감은 곧 엄마를 절망 속에 빠뜨렸고 급기야는 분노하고 만다.


그래요.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 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집사님 말씀대로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어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그를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 있어요?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내게서 그걸 빼앗아 가버리신 거예요. 나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p90>                 


이것이야말로 신의 사랑 앞에 사람은 무엇이고, 인간의 존엄과 권리란 과연 무엇인가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내가 엄마였어도 어쩌면 똑같았으리라. 엄마가 아닌 하느님이 용서를 할 생각이었으면 엄마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든 자기 숨이 끊어지는 고통의 순간이 지속되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 줬어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 동정해야 한다. 따위의 말로 희망을 갖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결국 엄마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아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는 벌레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벌레 같은 존재 말이다.


이청준 선생은 이 가슴 아픈 소설에서 용서와 구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철학적으로 무게감 있게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당신 같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하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 주었다. 나라면? 글쎄….  





이 책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소설에서처럼 영화도 아이를 잃은 엄마의 처절한 마음을 표현한다고 한다. 전도연의 연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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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전 - 한국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여덟 인생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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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늘 흥미를 돋운다. 같은 여자로서 나와는 다른 삶을 산 그들 혹은 나는 해보지 못한 일들을 그들은 해내는 것에 대한 동경심이랄까, 아님 위안이랄까. 요부가 되었거나 위인이 되었거나 혹은 죽을 고생을 한 여자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늘 나를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 『여자전(女子傳)』은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여덟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내 어머니와 같은 나이 혹은 내 할머니와 같은 세대를 살아오신 그 분들의 인생을 엿보면서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이란 자기하기 나름이고 내가 아무리 힘든 일에 부딪혀 좌절 속에 빠지더라도 살아가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어떤 환경 속,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내가 그걸 이제야 알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매번 이런 여자들의 인생을 엿볼 때면 나와는 다른 그들의 삶에서 내 삶을 유추해보다가 이내 잊어버리기 일쑤였으면서도 매번 이런 책을 찾아 읽고 그들의 삶속에서 나를 찾아보다가 또 잊어버리고를 반복하게 된다.


삼천포의 잘 사는 집 딸로 태어나 소공녀처럼 자라다가 아버지와 오빠를 찾으러 지리산에 올라갔다가 빨치산이 된 고계연 할머니, 그녀는 사상이 뭔지 이념이 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쪽발이 동상에 의해 거의 다 잘려나가고 국군에게 붙잡혀 모진 일 다 겪고 풀려났지만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경찰관들의 감시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면서 자식들 낳아 보란 듯이 키웠다. 그 긴 세월동안 고계연 할머니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는지는 이 짧은 글에도 숨이 턱턱 막히지만 할머니는 그걸 이겨낸 것이다. 또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일본군 위안부로 가게 된 김수해 할머니의 탄식과도 같은 한마디 한마디는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이야기는 열네 살에 오빠들을 따라 중국 팔로군에 들어가 죽음의 강이라 불리던 황하강을 건넜던 윤금선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내가 그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얼마 전에 읽은 『대장정』이란 책 때문이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홍군이라 불리던 중국공산당들의 행동에 대해 진짜일까? 하는 의문을 조금 가졌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쓴 책이니 그들을 우호 하는 글을 쓴 게 아닐까 했다.(반공교육의 결과는 이처럼 무섭다.- -) 그런데 윤금선 할머니의 증언을 들으니 그들의 행동이 정말이었던 거다. 그들이 대장정 전에 정해 두었던 규칙들을 팔로군들 역시 그대로 지켰기 때문이다. 아무튼 윤금선 할머니는 그 후에 기공사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꼿꼿하게 기공 수련을 하는 모습과 내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면 육체도 그에 따른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나.

 

그 외에 한 달의 인연으로 생긴 딸과 함께 평생을 수절하며 지상엔 없는 한 남자를 사랑한 여자 최옥분 할머니, 스스로 기생이며, 황진이이고, 혁명적 예술가라고 칭하던 천생 춤꾼 이선옥 등 그들의 태생과 나이, 환경, 삶은 달랐지만 여자로 살면서도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강인하고 지독하게 살아온 그들의 삶이 펼쳐진다. 그들 모두 시대를 잘못 타고났지만 그 모든 수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혹은 삶의 대한 긍정과 희망을 안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결국은 그들이 그 모진 삶에서 승리자가 된 셈이다.

 

저자인 김서령은 인터뷰 전문 칼럼니스트이다. 그녀가 찾아간 여덟 명의 여자들 중에 50년 넘게 종갓집을 지켜오고 자신을 키워주신 숙모 김후웅 할머니의 이야기도 있다. 이데올로기와 분단, 일본의 침략과 같은 한국의 근 현대사를 몸으로 겪으면서 그 수난을 헤치며 살아온 할머니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삶의 지혜와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내 인생은 얼마나 편하고 안락한 것인가?

 

작은 일에도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현대의 여자들에게 이 책 『여자전(女子傳)』은 힘을 내라며 건네주는 박카스 같은 활력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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