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의 죽음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1
막스 갈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예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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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 어릴 때는 그랬다. 명절만 되면 외화를 보여주었는데 단골로 나오는 외화가 ‘성룡‘이 나오는 거였고, 그것도 아니면 서부영화였다. 또 연말만 되면 「십계」니 「삼손과 데릴라」 같은 기원전 성서를 바탕으로 한 로마시대의 이야기였다. 「스파르타쿠스」 역시 그런 영화 중의 하나였다. 아마 서너 번은 본 기억이 나는데 스파르타쿠스로 분한 ’커크 더글라스‘의 분노에 찬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대체로 이런 영화는 잔인하다. 특히 그 시기엔 폭력과 공포, 권력투쟁에 있어서 폭력과 살인에 있어 서슴지 않고 하던 시기였기에 영화로 보여주는 장면들은 좀 걸러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동물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는 장면들은 어린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대의 이야기들에 대해 조금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끼고 있는 편이다. 한편으론 호기심이 가득하지만 말이다.^^

 

막스 갈로의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은 전체적 줄거리로 볼 때 그 영화와 아주 비슷하다. 스파르타쿠스가 갈빅스와 살생결투를 벌일 때,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한 스파르타쿠스를 갈빅스가 죽이지 않고 그 대신 로마병사들에게 달려드는 장면이나 노예들을 이끌고 로마군을 물리치던 장면, 마지막 부분에 해적에게 속임을 당하는 장면이 그렇다. 그것을 제외하곤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다.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에서는 화자가 여러 명이다. 스파르타쿠스가 죽기 전에 말한 ‘기억되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라는 말을 실현 해 준 유대인 자이르와 디오니소스 신의 여사제 아폴로니아, 그리스인 포시디오노스, 그리고 로마 최고의 권력자이자 최고 부자인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속주 총독의 부관인 살리나토르. 그들은 살아서 스파르타쿠스의 삶에 대해, 그리고 그가 이끈 전투에 대해, 그와 뜻을 같이한 수많은 노예들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로마를 두려움에 떨게 했는지 이야기 해주길 바란 스파르타쿠스의 뜻에 따라 그들은 이야기를 남겼다. 삶과 죽음을 선택한 자유인으로서 죽음을….


하지만 말하는 짐승 취급을 받던 노예들, 그렇게 살기 싫었던 스파르타쿠스가 자신을 따르는 다른 노예들과 함께 로마 군단에 맞서서 자유를 갈망하며 자유를 찾기 위해 전투를 벌이지만 솔직히 그들의 행동은 결국 로마군단과 다름없었다. 노예로 팔려와 짐승 같은 생활을 하고 결국엔 짐승에게 뜯어 먹히는 죽음을 당한 그들이었지만 자유라는 명목으로 로마인들과 똑같은 행동으로 로마인을 처참하게 죽이고 짓밟는다. 그게 과연 자유였을까?


막스 갈로는 극도의 잔인성과 최상의 정묘함이 공존하는 로마 사회를 그 시대의 일원으로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하며 글을 썼다고 하지만 너무 객관적이었던 것 같다. 그들의 행동에서 정당성을 찾기란 힘들다. 짐승취급을 받았기에 자유를 찾기 위해 그들은 일어섰지만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감정과 고뇌가 없다면 스파르타쿠스가 말한 ‘기억되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을까?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싶었던 것일까?


전체적으로 정말 잔인하다. 이 책이 영화화 된다면 온통 핏빛만 난무하는 아무 의미 없는 영화가 될 것이다. 막스 갈로는 나름대로 가장 실제 같은 소설을 만들었다는 평을 얻었지만 나는 막스 갈로의 이 정묘한 소설로 인해 그 시대의 로마군이나 노예들에게 마저 인간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 시대 로마에선 근친상간이든 동성애든 신과 함께라면 어떠한 비도덕적인 행동도 도덕적이라고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것이 로마라니! 나만 몰랐나?;;


가끔 역사소설은 저자에 따라 보는 눈이 달라서 읽을 때마다 같은 이야기임에도 뭔가 다른 부분을 느끼게 되어 헷갈리지만 실재와 허구를 적절히 버무려내는 솜씨들은 정말 탁월하다. 그래서 재미는 있다. 잔인해도. 단, 내용면에서 살짝 실망스러웠고 원서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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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결혼한 소녀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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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귀여운 조카는 책을 몹시 좋아한다. 일단 재미있는 책에 빠져들면 옆에서 무슨 소릴 해도 듣지를 않는다. 내가 집에 놀러 가면 만사를 제쳐두고 ‘고모’하며 달려오는데 달려오지 않는 날은 필시 책에 빠져 있는 중이다. 그 날도 ‘고모 왔다’하고 들어갔는데도 소파에 앉아 책읽기에 열중이다. 약이 올라 ‘고모 왔다고!’ 소릴 쳐도 들은 척도 안 한다.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기에 아는 척도 안 하냐 하며 들여다보니 아주 재미있는 일러스트로 『사자와 결혼한 소녀』라고 적혀 있다. 처음 보는 책이라 궁금해진 나는 그 옆에 비슷한 일러스트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비비원숭이』라는 책이 보이기에 조카 옆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어? 근데 첫 이야기를 읽고 나니 이건 어린이 책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어린이 책이 아닌 것 같은데?” 하자 듣는 시늉도 안 하더니 하는 말 “난 이것보다도 더 두꺼운『위니 더 푸우』도 읽었다고” 한다. - -; 뭐 그건 그렇지만…. 에라, 모르겠다. 재미있으면 읽어라 하고선 나 역시 비비원숭이에 몰입했다.


이 책들은 아프리카의 두 나라, 짐바브웨와 보츠나와에서 구전되는 민담들을 엮은 책이다. 우리네 이야기와는 다르게 조금 황당한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표지와 본문의 깜찍한 일러스트가 말해주듯 흥미롭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알랭 마방쿠의 『가시도치의 회고록』이 생각났는데 그 이윤 아프리카라는 공통점과 이 책 내용의 대부분이 가시도치처럼 말을 하거나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간교한 토끼, 멍청한 사자의 이야기부터 생소한 아프리카의 문화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의 설화나 이솝우화와 닮은 듯하면서도 아프리카 특유의 풍속이 들어 있어 신기하고 황당하며 웃긴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비비원숭이』에 나오는 「뿔닭 아이」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프리카 여인네의 아픈 마음을 잘 묘사했는데 뒷부분에서 아이를 낳아 잘난 척하는 둘째 부인의 배속에 들어간 뿔닭이 하는 행위는 꽤 섬뜩하다. 「냄새나는 소녀를 상냥하게 대한 할머니」나 「두 명의 나쁜 친구」,「못된 삼촌들」의 경우는 우리의 권선징악과 닮아 있다. 남에게 해롭게 하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제목도 재미있는 「왜 코끼리와 하이에나는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살까」와 「어떻게 이상한 동물이 아가씨 자리를 차지했다가 구멍에 떨어졌는가」같은 이야기는 아프리카이기에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머리에 자란 나무」는 김언수의 『캐비닛』에 나오는 심토머가 잠깐 생각나기도 했는데 필요할 땐 뭐든 다 해줄 것처럼 굴다가 막상 제 배를 채우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하는 인간 군상을 잘 표현해 주었다.


사자와 결혼한 소녀』 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는 조카와 내가 신기해하며 좋아하던 이야기가 「눈먼 남자가 새를 잡다」이다. 눈이 멀었지만 탁월한 청력과 느낌으로 새를 잡고 속임수 쓰는 친구에게 일침을 가하던 눈먼 남자의 활약이 신기해 조카는 연방 눈이 멀었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신기해했다. 「친구에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에는 염소와 표범이 친구로 나온다. 둘은 친한 사이였으나 표범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결국 자기 새끼를 잃고 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들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우리 설화처럼 교훈적이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거다. 이런 교훈은 이제 식상하기도 하지만 이 책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아프리카라는 지역 때문이다. 덥고 메마른 땅에서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물이 있는 강가에서 사는 것이다. 그 삶이야 말로 축복받은 삶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움이 나기도 한다. 또 비쩍 마른 몸매보다는 살이 통통 오르고 피부에 윤이 나는 사람이 사람답고 잘 산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이야기면서 달라 보이는 것은 그런 문화적 차이가 주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는 짐바브웨 출신으로 작년에 본 적이 있는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시리즈의 작가이다. 그 책을 제목만 보고 도서관에서 몇 번 빌려볼 생각을 했는데 결국 빌리지는 못했지만 이 책들을 읽고 나니 꼭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자와 결혼한 소녀』의 경우는 판매수익이 모두 짐바브웨 사람들을 돕는데 쓰인단다. 아이들을 포함한 환자들에게 쓸 의약품을 사기 위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병원에 도움을 준다고 하니 많이 사보길 바란다. 아프리카 문화도 알고, 좋은 일도 하고 이거야말로 민담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조카와 나는 그 날 두 권의 책을 다 읽었다. 어른이 읽는 책이든 아이가 읽는 책이든 재미있게 읽었다면 그다지 상관은 안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에겐 좀 무리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조카가 재미있다고 이야기하는 우화들을 보니 다 동물과 관련된 이솝우화 같은 이야기들이었으니 스스로 알아서 아이들이 좋아라할 만한 이야기에만 관심을 가진 것 같아 안심을 했다나. 참고로 이 책은 어린이도 같이 읽어도 좋다고 나와 있긴 하다.^^ 이제 아프리카의 문화로 빠져들어 보자. 새롭다. 흥미롭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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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걸어라 -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얻은 인생의 교훈들
조이스 럽 지음, 윤종석 옮김 / 복있는사람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여행서적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은 여행서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깝다. 다르게 보면 종교적 색채가 보여 종교 서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읽어본 바에 의하면 그다지 종교적이지 않다. 꼭 종교가 있어야만 순례길을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내 인생의 여정이 궁금해질 그때, 누구나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가는 길‘ 이다.


여느 여행 서적과는 다르게 이 책은 여행의 정보 따윈 나오지 않는다. 표지 안쪽에 순례길의 약도가 나와 있긴 하지만 지명만 보여주는 그다지 쓸모없는 약도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내 인생이 되돌아보게 되고 내가  그 길을 직접 간 것은 아니지만 꼭 다녀온 느낌이 든다.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깨달음을 받는다면 나도 조만간 가서 내 인생의 고민에 대해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 가서 말이다.


느긋하게 걸어라』 순례길을 걸었던 저자가 그때 받은 인생에 대한 교훈과 깨달음을 25가지의 주제로 정리한 것이다. 주제별로 읽어보면 글 내용 하나하나가 아주 매력적이어서 나도 여행을 다닌다면 이런 방법의 여행기를 시도해봐야겠다 고 생각했다. 물론 잘 될 거란 보장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25가지 주제만 보아도 사실 무얼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알 만하다. 그 자체로도 깨달음을 받고도 남음이다. 하지만 어찌나 일목요연하게 그 주제에 맞게 글을 잘 썼는지 어느 것 하나 빠트릴 문장이 없다. 정말, 이 책안에는 인생길이 있다.


이 길의 유래와 연관된 전설을 이야기 하던「역사의 정기를 받으라」로 시작하여 예비훈련을 준비해야 한다는「준비하고 떠나라」, 늘 목적지와 일의 성취에만 매달려 빨리빨리 서둘러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라던「느긋하게 걸어라」, 모험은 마음을 열고 위험을 감수하는 자세에 달려 있으니 모험에게 도전장을 던져보라던 「삶이 위대한 모함임을 잊지 말라」, 삶이란 현재이며, 현재가 아닐 때가 없다던「현재를 살라」, 내 몸은 내가 사랑해야 함을,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과 친구가 되어 거기서 배워야 한다는 멋진 지혜를 가르쳐 준「몸에 귀를 기울이라」 아, 정말 이 정도만으로도 인생이 뭔지 보인다.


친절한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에게 여행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들의 친절은 친절로서 받아들이라 하고,(모르는 사람들의 친절을 받아들이라) 여행을 하다보면 불시에 몰아치는 기후 변화와 순탄하지 못한 길, 화장실의 사정과 입에 맞지 않는 음식에 대한 불평. 그런 모든 역경에 굴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여행길의 목적지에 도달하여 쾌감을 느낄 것이다.(역경에 굴하지 말라) 또 여행 도중에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면 그 자체로서 그 아름다움을 즐기라 하며,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면 삶이 편안해짐을 알게 된다. 이외에도 많은 좋은 주제들로 저자는 여행과 삶에 대한 깨달음을 전해준다. 여행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 그래서 사람들은 도피하듯 그렇게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내가 제일 감동적으로 읽은「내려놓으라」에 대한 깨달음에는 ‘무엇이든 귀한 것일수록 움켜쥐지 말고 그것을 든 손을 감사함으로 펴라. 그럴 때 삶은 훨씬 순탄해진다.’라는 멋진 말이 있다. 지금 내 상황과 아마 잘 어울렸기에 그 글들이 내 마음 속에 훨씬 더 다가 온지도 모르겠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내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움켜쥐고 사는지 깨닫게 되었다. 분명 서울 올 때는 여행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온 것 같은데 어느 새 주체하기도 힘든 만큼의 짐들이 나를 옭매고 있는지 이렇게 많은 짐들 때문에 내가 꼼짝달싹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 공간의 운치와 평화, 편안한 침대, 푹신한 의자, 좋은 책이 빼곡한 책장, 즐겨 듣는 음악, 건강식품을 넣어 둔 냉장고와 찬장, 언제나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전화와 컴퓨터. 생각하면 할수록 안락과 편의의 욕망이 나를 더 잡아끌었다‘ 이런 편안함에 길들여져 있어 그것들에게 미련을 둔 내가 한심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나의 이런 깨달음도 이번에 이사를 할 기회가 없었다면 몰랐을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편안한 공간을 두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드는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번에 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작정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훨씬 자유롭다. 내려놓음의 결과가 이렇게 편안한 것을 그동안 나는 왜 몰랐을까?


나는 대체로 느긋한 사람이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무슨 일이든 반드시 결과를 보기 위해 무리해서 서두르고, 그 결과가 나쁘면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며, 끊임없이 불필요한 것들을 사다 모으며 집착하고, 모험을 두려워하며, 역경은 피해가려고만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길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나는 잘 걸어 온 것일까? 앞으로도 잘 이겨내며 걸어갈 것인가? 해답은 없다. 그러나 방법은 알았으니 이젠 용기를 좀 낼 때인 것 같다. 모험 속으로 뛰어들 용기, 역경에 굴하지 않을 용기 말이다.


매일의 삶이 곧 순례요 모험이다. 그 길을 한번 느긋하게 걸어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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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는 대로 피터 레이놀즈 시리즈 1
피터 레이놀즈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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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조카랑 같이 살며 자라는 모습을 옆에서 본 경험이 있어 아이 키우는 것에 대해 엄마들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안다고 자신한다. 아이랑 같이 살면서 느낀 것은 아이들이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거다(나도 아이였을 때가 분명 있었을 텐데 언제부터 그 사실을 잊고 살았을까?) 그래서 내 생각대로 아이에게 강요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어른들의 선입견이란 이제 글을 깨우치기 시작한 아이가 곰들'에' 비밀이라고 아이 딴엔 똑똑한 척하며 적었는데 그걸 보자마자 틀렸어 곰들'의' 비밀이지 하고 지적해줘야 성이 찬다. 처음에 나도 그랬다. 아이가 좀 틀린 글자를 쓴다든가  'ㄹ'을 뒤집어 쓸때면 그게 아니야 하고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아이가 자라면서 스스로 고쳐 쓴다는 걸 알고선 얼마나 대견해 했는지...

그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무를 그리는데 이게 나무인지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거나 딴엔 열심히 뭔가를 그렸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뭐야? 에게게 비웃기 보다는 그 그림이 무어든 아이가 이건 뭐뭐야 하고 말하면 칭찬부터 해주었다. "와~ 정말 멋지구나! 어쩜 그런 생각을 다했니?"

이 책을 조카가 읽고 레이먼을 따라 흉내를 냈다. 나도 '느끼는 대로' 그려볼 거야. 하며 이건 하늘 느낌이고, 이건 사랑 느낌이고, 이건 엄마 느낌이고 물론 고모 느낌의 그림이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말이다.- -;;

누군가 나를 인정해준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만큼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슬픈일임에 틀림없다. 의기소침해지고 우울할 일이다. 그러나 정말 아닌 것을 멋지다고 해서도 안 되겠지만 나는 그렇다. 어른이라면 그런 것을 지적해주고 고치길 바랄 수도 있지만 아이들에겐 칭찬과 격려가 많으면 많을수록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동생 마리솔이 자신의 구겨진 그림을 가지고 가서 그림이 좋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레이먼은 '느끼는 대로' 그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정녕 몰랐을 거다. 형의 비웃음에 '느끼는 대로'가 아닌 완벽하게만 그릴려고 했으니 자기가 원하는 그림은 절대로 못 그렸을 테니 말이다.

이 그림책을 덮고나니 파트리크 쥔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가 생각난다. 쌩뚱맞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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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죽음의 가면 기담문학 고딕총서 2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김정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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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딕스러워 보이는 표지는 보면 볼수록 이 책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에드거 앨런 포, 추리나 공포소설을 좋아한다면 그의 단편을 하나쯤은 읽은 경험이 있을 거다. 이 책 『붉은 죽음의 가면』에 나오는 여러 단편들이 많은 소설에 인용되고, 영화로도 제작되었기에 읽다보면 어디선가에서 읽은 듯, 그런 이야기를 아는 듯, 느낌을 받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일생은 알려진 대로 술과 마약, 도박 등으로 스스로 자신의 삶을 무너뜨리며 살다가 거리에서 쓰러져 죽음을 맞이한 불운한 작가였다. 친부는 아니었지만 부유한 양부 밑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자랐으나 주벽과 도박으로 그의 삶에서 어쩌면 탄탄대로로 나아갈 수 있었던 자신의 길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었다. 그런 그의 삶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써내는 많은 단편들이 공포스럽고, 괴기하며 환상적이었다. 그랬기에 문학적으로 새로운 평가를 받아야 할 그는 당시 청교도적인 사상이 지배하고 있던 미국에서 거의 한 세기에 가깝도록 인정을 받지 못했으니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는 그의 단편들처럼 불운했다.


알고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를 쓴 기류 미사오는 ‘작가의 말’에 에드가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을 예로 들면서 인간이란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의 쾌락을 위하여 불안과 공포를 잊으려 춤을 춘다고 했다. 포는 이렇듯 죽음 중에서도 생매장이나 고문, 살인 같은 괴기스런 글을 많이 써서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온갖 방법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결국 그 모든 글들은 인간의 과도한 고통이 주는 분노와 광기를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는 거다.


가장 유명한 「검은 고양이」의 끔찍한 신체 절단과 「어셔 가의 붕괴」와 「아몬티야도 술통」에서 보여 준 생매장, 「구덩이와 시계추」의 고문 장면, 복수의 잔혹극이던 「폴짝-개구리」, 「베레니체」「리지아」「엘레오노라」에서 보여준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라든가 「윌리엄 윌슨」같은 도플갱어 이야기는 현 시대에서도 끔찍하고 읽기 힘든 소재들이다. 그럼에도 이런 모든 이야기가 문학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그가 그런 공포와 고통의 완성도를 자신의 생활에서 비롯한 것이라 할지라도 재미보다는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인간 본연의 감정을 잘 살려냈기에 가능한 것일 거다.


대체로 이런 소설은 더운 여름밤에 읽어주는 것이 마땅하다. 한 글자, 한 글자씩 정독하며 포가 말하려는 ‘고통’을 몸으로 느끼며, 가끔은 어디선가 들리는 작은 소리에 오싹해 하면서 말이다. 난 이런 공포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그저 소설일 뿐이기에 가끔 긴장이 필요할 때면 포의 소설을 집어 든다. 그러니 지금 삶이 지루하다면 포의 단편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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