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희망 유재현 온더로드 6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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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쿠바, 어쩌다 나는 쿠바에 빠져버렸다.(이 글을 적다보니 쿠바 공연을 보며 쿠바이야기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지금, 인디 밴드 쿠바의 공연을 TV에서 하기에 보고 있다.) 쿠바와 관련된 책이라면 뭐든 궁금하여 손에 잡히면 바로 읽어버린다. 이 책 『느린 희망』(그린비)은 소장하고 싶었으나 도서관에서 새 책을 보자마자 읽어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동안 오래 참았는데 나중에 살까 하다가 그걸 못 견디고 결국은 빌려와 그 밤에 다 읽어버렸다. 쿠바, 역시 멋지다. 어쨌든.

제목처럼 이 책은 쿠바의 여러 단면에서 보이는 모습을 보고 지은 제목 같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쿠바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은 밝음이다. 아마 그 밝음에서 저자는 희망을 발견한 것인지 모른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보이는 희망 말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쿠바의 교육 정책이다. 교육부분에 대한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교육 정책과 높은 투자는 미국의 가혹한 봉쇄 속에서도 선진국의 수준이라고 한다. 경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의 수준이지만 교육만은 어느 선진국 못지않은 투자로 높은 교육을 실현하고 있다고 하니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이 몇 명 없는 우리나라의 산골에서는 폐교하기에 급급한데 쿠바에선 한 사람의 학생이라도 있다면 교사를 보내 교육을 시킨다고 하니 어찌 부럽지 않겠는가? 더구나 ‘모든 이들에게 교육을’ 이란 슬로건 아래 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학생이나 병원에서 지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까지 교육의 혜택을 골고루 나눠 준단다. 그런 결과 교육에 있어서만은 산악지대나 고립된 지역이라 할지라도 도시와 농촌 간의 학력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하니 그야말로 교육에 있어서는 천국이라 하겠다.    

그동안 읽은 몇 권의 쿠바 관련 여행 서적은 말 그대로 여행 서적이었다. 또한 사회주의 국가답게 아바나라는 특정 지역에서의 여행을 보여 주었기에 쿠바의 다른 지역을 알 기회가 적었는데 이 책은 짧지만 쿠바의 전 지역을 보여 준다. 내가 과연 쿠바를 다녀갈 기회가 생기기는 하겠냐마는 저자가 보여주는 쿠바의 모습은 하나 같이 매력적이다. 특히 가는 곳마다 파란 하늘과 순박해 보이는 쿠바사람들의 모습이 사회주의 국가든 미국의 경제 봉쇄로 인해 어려운 생활을 하였든 간에 활기차게 보인다. 특히 일을 마치고 밤이면 모두 나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열정적으로 춤을 즐기는 그들을 보면서 내일의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쿠바의 좋은 점만 기억하고 말하는 셈이지만 쿠바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물론 문제점들이 많다. 말레콘에서 만나는 여성들은 달러를 위해 관광객들에게 접근하고, 거리의 악사들 역시 달러를 위해 연주를 한다. 너무나 오래되어 색 바래고 무너질 것만 같은 오래된 건물들에는 통나무를 끼워 위기를 모면하고, 좁은 거리는 더러웠고, 물자는 부족하다. 그러나 그런 문제점들이 이국적인 쿠바의 정취로 인해 보이지 않는다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좋은 게 아니지만 어쩐지 나쁜 것은 기억하지 않아야만 쿠바를 제대로 본 듯 느껴진다. 이상하다.

쿠바에선 인종 차별이 없고, 교육 차별이 없으며, 자본이 없으므로 누구도 재산을 축적하지도 않는다. 사회주의국가이니 가능하겠지만 부러운 생각이 든다. 또 미국의 경제 봉쇄가 만들어 낸 유기농을 할 수밖에 없는 농업도 어쩐지 부럽기만 하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것은 사회주의 국가를 떠나서 우리가 꿈꾸는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쿠바의 느린 희망이 언제나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쿠바인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언젠가는 이루어질 테니 우린 지금처럼 느린 희망을 안고 살리라.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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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 - 많이, 더 많이! 주체할 수 없는 식욕에 관하여 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 2
프랜신 프로즈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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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저자인 프랜신 프로즈는 탐식이 인간의 일곱 가지 욕망 중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역설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탐식은 다른 질병을 끌어들이는 질병이고, 다른 욕망들과는 달리 그 대가가 온 몸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들어가는 말을 읽으면서 그렇다고 해도 먹는 것이 뭐가 그리 나쁜 건가 의문을 가졌는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 하는 한숨 같은 감탄사가 나왔다.

중세 종교 문화에서 탐식은 정욕을 불러들이는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란 본능적으로 먹어야만 살 수 있지만 그 먹는 것이 지나치다보면 또 다른 본능인 성욕이 발동하여 ‘충동‘이라는 죄를 불러들이게 된다는 말이다. 일리가 있다. 어떤 사람은 배가 부르면 딴 생각을 하기도 하니깐. 하지만 좀 먹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중세 교부들이 일곱 가지 대죄에 탐식을 집어넣은 것은 과도한 식사를 말하는 것보다는 술에 탐닉하는 것을 가리켰다고 한다. 성 바실리우스의 말을 들어보면 그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음식을 삼킴으로써 미각은 언제나 탐식을 꾀어 내게 되고, 안에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솟아오르는 부드러운 체액으로 몸을 살찌우고 쾌락에 빠뜨린다. 이로 인해 결국엔 광란의 성교 빠지게 된다.”(p23) 즉, 중세의 탐식은 음식이라기보다는 술의 탐닉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 요한이 술에 취해 누이를 강간하고, 훈 족의 아틸라는 술에 취해 잠을 자다 코에서 피를 흘리며 수치와 불명예 속에서 죽어 갔다. 이런 음주에 의한 탐닉이 탐식이라는 욕망에 의해 야기되었으므로 탐식이야말로 일곱 가지 대죄 중에 분명히 포함되어야 한다는 교부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나는 고기의 불결함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욕망의 불결함이 두렵다.”라고 했다. 또 그는 참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먹느냐임을 강조했다. 즉 긴장을 풀고 몸의 욕구를 채우며 즐길 때에만 ‘죄‘가 된다는 거다. 그래서 중세의 수녀들은 ’성스러운 거식증‘이라 불리는 창의적이고 혐오스러운 온갖 자발적 고행을 탐닉하듯 행하여 스스로 기아에 빠짐으로써 자신의 몸에 벌을 가했다. 그런 것들이 그들이 주장하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던 거다.

이 책을 읽다보면 솔직히 반발이 생긴다. 아무리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거려도, 보슈의 「최후의 심판」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읽어도, 브뤼겔이 탐식이야말로 사후에  당할 고통이 아니라 지금 현재 세상에서 내보이는 징글징글한 추함이라고 강조하고, 스펜서가 「요정 여왕」에서 효과적이고 혐오감 자아내는 글로 탐식에 대해 놀라울 만큼 극단적인 표현을 했대도 말이다.

물론 중세의 주장들은 그 시대의 이야기일 뿐이다. 현재의 사람들이 맛을 찾아다니고 먹는 것에 집착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양상하고는 많이 다르다. 현재의 탐식은 ‘죄’보다는 ‘병’이다. 물론 그 시대에도 과식이 ‘병’을 불러오고 결국은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모른 것은 아니었으나 현재에 와서 온갖 다양한 질병을 야기하는 음식의 위력에 사람들은 사실 많이 움츠려있다. 살이 찌지 않으려고 운동하고 소식한다. 그런 것들이 오래 전 교부들의 주장처럼 지옥에 빠지지 않기 위해, 먹는 자가 먹히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 그 시대와 다르다. 그러므로 현 시대에서 탐식이야말로 일곱 가지 대죄 중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대죄라고 보기엔 틀린 주장이 아닐까 싶다.

 

프랜신 프로즈는 이야기 한다. 탐식의 역사적 변화를 살펴보면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이르렀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고 그리하여 저자가 주장하는 육체의 욕구와 영혼의 허기 사이의 관계와 갈등을 나는 다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현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탐식을 하기보다는 적절한 식사 습관으로, 죄를 짓기보다는 병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정도만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만으로도 나는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배가 고프다. 이 책을 읽고도 이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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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에 이르는 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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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 하필이면 이런 때에 사이코 패스들의 책과 영화를 봤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읽고 보는 내내 ‘사람’이란 정말 무서운 존재라는 걸 확인하는 꼴만 되었다.

오늘 영화를 보고 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 속에서 사이코 패스라고 진단 내려진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오싹해지면서 갑자기 세상 살기가 참 무섭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언제 내가 그런 생각했어? 하고 사라져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시공사)는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작가들이 쓰는 트릭에 한두 번 속아 본 것이 아니라 나름 긴장하며 절대로 그들의 반전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혼자 다짐을 하며 읽었건만 너무나 어처구니없게도 난 마지막에 울부짖으며 소리치는 문장을 읽고서야 허걱~! 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럴 수가!!!

작년에 읽은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이후로 이런 트릭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감쪽같이 속이다니, 아니 속아 넘어가다니 말이다.

뭐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자신이 저지르는 죄에 대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사이코 패스’라고 일컫는데 현대사회에 와서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한국에도 연쇄 살인범이 나오고 단지 제 기분이 나쁘다고 자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고서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는커녕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친구에게 살짝 혐오스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 들어서일까 그 장면을 읽을 때는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 나는 거의 구역질이 날 만큼 소름이 끼쳤는데 그러면서도 책을 놓지 못하고 읽었다. 어쩌면 나도 그런 이야기를 즐기는 사이코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 -;

얼마 전에 읽은 기류 미사오의 책에서 신체 훼손과 시간(屍姦)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것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그런 책을 읽고 나면 늘 그런 생각을 한다. 정말?

 

살육에 이르는 병』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이잖아. 소설. 설마 정말 그런 인간이 있겠어? 정말? 헷갈리거나 말거나 ‘멀쩡한 사람도 다시 보자‘가 이 여름 내내 밑줄 쫙 긋고 기억해야 할 문장인 듯하다.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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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질입니다.
이곳에 리뷰 올려 받은 선물이지요.

한국 문학 많이 사랑하라고 주신 선물인듯합니다.^^

6월엔 생일이 있는 달이라 이 달에 들어오는 책선물은 무조건 생일 선물로 친다지요.

이 멋진 생일선물 주신 알라딘과 네 곳의 출판사.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이 잘 읽겠습니다. 근데 오늘보니 알라딘마을에 제 서재가;;;;;;;민망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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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4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readersu 2007-06-15 10: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책 속에 묻혀보는 게 소원인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ㅎㅎ 더불어 저도 축하드립니다. 행복하세요.^^

red7177 2007-06-14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랑하셔도 됩니다.^^

readersu 2007-06-15 10:47   좋아요 0 | URL
오케이~^^

이매지 2007-06-15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책만한 선물이 없겠죠? ^^
축하드려요^^

readersu 2007-06-22 00:46   좋아요 0 | URL
이매지님 감사합니다.^^
답 댓글도 참 일찍 달죠?ㅎㅎ

산도 2007-08-13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같이 됐네요. 늦었지만 축하~!
(근데 사실 주요출판사의 주요 신작들임에도 풍성하다는 생각보다는 좀 빈곤하다는 생각이...)

readersu 2007-08-16 18:03   좋아요 0 | URL
그래도 좋았답니다. 읽고 싶었던 책이 몇 권 있었던지라..
같이 되었었군요..주드님이 누구신지 슬슬 궁금해집니다.^^
 
걸프렌즈 - 2007 제31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홍 지음 / 민음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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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을 읽고 가슴 싸하게 남는 뭔가를 원한다면 이 책을 읽지 말라고 하고 싶다. 이게 뭐야?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따위의 생각이 들 것 같으면 더더욱 읽지 말기를 권유한다. 처음부터 아니다 싶으면 집어던지시길. 어쨌거나 한국 소설도 이젠 변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좀 가볍고, 유쾌하고, 즐겁고, 자기중심적으로 말이다. 그러니 너무 가볍잖아,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 말도 안 돼. 라는 생각이 든다면 시대에 뒤쳐지는 사람이란 얘길 듣기 딱 좋다.


일찍이 박현욱은 두 명의 남편과 두 집 살림을 하는 인아를 등장시켜 이런 일이 어떻게! 말도 안 돼 라는 ‘‘을 독자들로 하게끔 만들었고(아내가 결혼했다), 정이현은 발칙하고, 도발적인 현재를 살고 있는 은수를 내세워 도시의 삶을 선보이며 까칠하지만 ’바로 내 이야기야‘ 하는 내용의 소설을 발표하여 한국판 치크리트chick-lit 소설을 등장시켰다(달콤한 나의 도시). 또 오현종은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에서 스파이라는 직업을 등장시켜 적어도 ’‘를 황당하게 만들었다(난 아직도 007이 진짜 스파이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 이런 소설들은 그동안 한국 문학을 이끌고 오던 이념과 경제, 정치와는 다르게 나, 혹은 너를 주제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그래서 기존의 소설들에서 느껴지던 무게감과 읽은 후 한동안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씁쓸함이 사라지고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되어 버리자 어? 너무 가볍잖아 하는 반응을 내 보이게 된 것이다.


2007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홍의『걸프렌즈』(민음사)는 21세기다운 연애 방식을 보여준다. 한 남자를 사랑하는 세 여자들의 우정, 질투 그러면서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이미 이 도발적인 작가 이홍의 ‘’빨에 넘어간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가 가능한 일이란 말이냐? 읽으면서 내도록 던지게 되는 이 의문부호가 마지막에 가서 설마? 라는 어처구니없는 말로 끝이 났다하더라도 허허거리며 하긴 셋이나 넷이나 뭐 하는 넓은 이해심이 생기고 마니 말이다.


물론 이홍이 콩다방, 별다방을 등장시키고 맥도날드에서 버거킹으로 넘어간 사연이나 이젠 맥도날드도 가고, 버거킹도 가고, 피자헛도 가고 KFC도 갈 수 있다. 취향이다. 라는 말을 늘어놓았을 때 우린 이미 그의 ‘‘빨에 얽혀 들어가고 만 것인지도 모른다. 취향이잖아? 너도 그렇잖아? 하며 능청스럽게 독자를 끌고 들어가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 가능하지 않겠어? 해 버리니 할 말이 없다.


이야기는 이렇다. 피겨스케이팅의 감미로운 스핀 같은 혀끝에 넘어간 한송이는 외모도 학벌도 모두 지극히 평범한 남자인 유진호와 우연히 사귀게 되자 연애상대라고 생각했지 결혼상대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호와 사귀면서 그가 사귀고 있던 다른 여자 진과 보라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한송이는 살짝 질투한다. 진호 몰래 그녀들을 만났는데 너무나 쿨하고 멋진 여자들이 아닌가?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하여 만나게 된 송이는 어이없게도 진과 보라와 연적은커녕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더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합리화 한다. 이건 비슷한 취향을 가진 여자들이 한 남자를 공유한 것뿐이라고. 오호라~


“그렇지? 모든 사람은 결핍이 있잖아. 그런데 왜 그 결핍을 보완하기 위해 섀도는 세 가지를 바르면서 여러 사랑을 함께하면 안 된다고 강요하는 거지? 왜 꼭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다 채울 수 있다고 자만하는 거지? 사실 그럴 수 없잖아. 내가 미처 채울 수 없는 부분, 다른 사람이 대신 채워주면 어때서? 난 상관없다고 했어. 누구를 만나든 말든. 솔직히 말해서, 여럿 사랑하는 게 전혀 가능성 없는 일이 아니잖아? 왜, 여행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옷은 이것저것 입으면서, 책도 이 책 저 책 읽고 싶은 거 읽으면서, 음식도 한 가지만 먹으면 입에 물린다고 난리면서, 그런 게 사람의 욕망이란 걸 뻔히 알면서,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은 절대 안 되는 건지, 왜 그게 용납되지 않는 건지, 정말 모르겠더라고“ (p119)


그들은 진호 몰래 자주 만나지만 서로가 만나는 사실을 아무도 진호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모르는 진호는 셋이 같이 있는 줄 모르고 보라에게 전화해서 만나자 하고 송이에게 바로 전화해서 오늘 약속이 있다면서 물어보지도 않는 말을 둘러댄다. 그걸 옆에서 서로 눈치를 채면서도 아무도 묻지도 아는 척도 안 한다. 아, 이 발칙한 여자들이라니. 한 남자를 두고 싸우고 질투하고 저주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여자끼리 남자도 공유할 수 있는 시대다. 허, 어이가 없지만 뭐 취향이니까.


어떤가? 변화하는 한국 소설이 보이는가? 이 발칙한 연애 소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맥도날드나 버거킹이나, 피자헛이나 KFC나 닭을 먹다가 질리면 햄버그를 먹는 거고, 그게 질리면 피자를 먹는 거지. 다 취향 아니겠는가? 취향. 무거운 문체가 좀 버겁다면 이젠 이 능청스러운 문체에 빠져보시는 건 어떨지. 집어던질 거라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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