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스 문도스 밀리언셀러 클럽 6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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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소리 마마』를 읽고 나는 기리노 나쓰오에게 빠졌다. 추리소설이라고 말하기도, 공포소설이라 말하기도 힘든 기리노 나쓰오만의 잔혹한 이야기는 읽는 내내 굉장히 불쾌한 기분을 들지만 그 이면에 보이는 어쩌면 내 주변에도?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소설이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 어떤 곳에선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기리노 나쓰오의 책은 연달아 읽기는 힘들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그 여운이 오래 남아 이젠 따뜻한 이야기 읽고 싶어, 사랑이야기도 좋아, 무조건 해피엔드, 해피엔드...를 외치고 싶어지니 말이다. 그럼에도  눈길이 자꾸만 기리노 나쓰오의 책으로 가는 것은 『잔학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 '무엇'을 바라는 것처럼, 어쩜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어? 하며 순진한 척하고선 또다른 잔혹한 이야기에  눈을 밝히고 읽는 것과 같다. 이건 무서운 영화를 보면서 두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무서워무서워하면서 손가락 사이로 볼 것은 다 보는 웃기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아, 이렇게 자아비판을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하필이면 지금 읽는 책이 백가흠의 신작이라 미리 자아비판을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긴 해서리;;;;;

『암보스 문도스』는 7개의 단편으로 되어 있다. 왕따, 불륜, 노숙자, 가족의 붕괴등 사회생활에서 문제가 되는 주제들을 담아 냈다. 단편이지만 하나의 단편마다 나타나는 문제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상황은 아니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거나,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에 역시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서도 역시 나는 열심히 잘 읽었다.- -;

「식림」의 마키를 보면 『아임 소리 마마』의 아이코가 생각난다. 자신없는 외모에 왕따. 그기에 혼자만 알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이 그녀들의 성격을 바꾼다. 예쁘지 않고 왕따를 당한다고 해서 모든 여성들이 그녀들처럼 삐뚤어진 심성을 가지진 않겠지만 기리노 나쓰오는 그녀들의 심성마저 외모와 동일시 해버린다. 노숙자와 한 가출 소녀의 비행을 담은「루비」는 비록 그 세계가 어떤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세계에서조차 지배계급이 존재하고 권력을 가진 자와 그 옆에서 보호 받아야만 살아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표제작인 「암보스 문도스」는  이제 더는 순진한 학생들이라 할 수 없는 어린 학생들에게 당한 한 여선생의 이야기를 다룬다. 미워하는 여선생이 독차지하고 있는 인기 많은 남선생에게서 그녀를 떼어 놓고자 하는 아이들의 행동은 기리노 나쓰오만이 상상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왕따시킨 아이를 실수로 혹은 고의로 죽이고도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의 행태를 보여준다.  

표제작과는 또 다른 불륜을 다룬 「괴물들의 야회」는 워낙 불륜이 판 치는 드라마가 많은 탓에 처음부터 이해를 하고 읽었다. 하지만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치고는 꽤 대중적이다. 그래도 정신나간 여자차럼 남자의 집에 찾아가 사키코가 하는 행동은 가히 엽기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외 가족의 붕괴를 그린「독동」,「부도의 숲」, 여자들의 일탈을 그린 「사랑의 섬」은 정말 소설 같은 소설이라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단편임에도 장편 못지 않게 탄탄한 스토리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느껴진다. 

기리노 나쓰오의 책을 읽고 나면 한참 멍해진다. 더구나 이야기의 중심에는 늘 여자들이 있다. 내 주변에서는 결코 한번도 찾아볼 수 없는 여자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혹시 내 내면에 기리노 나쓰오의 여자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겉으론 표가 나지 않는 뒤틀린 심성을 가진 또다른 나 말이다.- -;; (지킬박사와 하이드?  켁~!) 

새로운 것과 낡은 것, 즉 두 개의 세계를 뜻한다는 '암보스문도스'. 이제  그 섬뜩하고, 우울하고, 기괴한 기리노 나쓰오의 세계에서 탈출하여 좀더 밝은 세상과 조우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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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함께한 그해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박광자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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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토 파실린나의 책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책은 『기발한 자살여행』이다. 작년 초 이 책을 읽었을 때가 기억난다. 우리나라에도 ‘자살’ 인구가 늘어나고 있었다. 특정한 관계도 아니면서 오로지 ‘자살’을 위해 모여 같이 자살하기도 하고, 자살사이트에서는 자살을 위한 방법까지 소개되기도 했다. 아직까지 그런 사이트가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그런저런 이유로 ‘자살’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지던 그런 때였다. 그래서일까? 핀란드라는 나라의 소설이라는 것도 특이한데, 책 제목까지 독특하여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걸까? 궁금해 하며 읽었다. 처음 블랙유머로 가득한 그 책을 읽으며 웃음이 나기보다는 우리와 다른 문화에 한참 어이없어 했다. 더구나 핀란드 인들의 이름이 어찌나 독특한지 자살여행에 참여한 신청자들의 이름이 헷갈려서 무지 힘들었지만 작가 특유의 문체에 ‘아르토 파실린나’란 이름을 내 머릿속에 각인시켜준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 『토끼와 함께한 그해』를 펼쳤을 땐, 이미 파실린나의 유머와 위트를 각오한 참이었다. 또 어떤 엉뚱한 이야기로 날 즐겁고 어이없게 할 것인가? 하는 기대부터 했다나. 역시, 기발하다. 핀란드라는 나라의 문화가 우리와는 다르다는 이유도 포함이 되겠지만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데도 은근한 웃음을 자아낸다니.

『기발한 자살여행』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는 이 책에서도 여행을 한다. 하지만 동반자는 사람이 아닌 토끼다. 전작의 경우 많은 사람들과 이 나라 저 나라로 자살하기에 좋은 장소를 찾아 돌아다니면서 참가한 여행자들의 사연을 풀어낸 것이라고 하면, 이 책은 토끼와 함께 핀란드의 북쪽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즐겁게, 혹은 황당하게 풀어냈다. 작가 소개에 보면 파실린나가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전에 벌목 인부를 비롯해 농사꾼, 고기잡이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고 나온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선 신문사와 편집인으로서 활동을 했다고 나오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경험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토끼와 함께한 그해』의 주인공 카를로 바타넨은 40대의 신문기자이다. 한여름의 출장은 바타넨과 동료인 카메라맨을 지치게 했고, 돌아오는 길에 눈앞에 펼쳐지는 핀란드의 아름다운 풍경 따윈 관심도 없었다. 두 사람 다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절망한 남편들이었고, 두 사람은 별 것도 아닌 일로 말다툼을 벌인 상태라 아름다운 저녁 길을 차로 달렸지만 고통스런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어린 토끼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에서 몸을 일으켰고, 운전 중이던 카메라맨은 작은 물체를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놀란 토끼는 앞 유리에 부딪치고 숲으로 날아가 버렸다. 기자는 토끼가 걱정되어 숲으로 가고, 카메라맨은 이곳에서 지체하면 헬싱키로 가지 못한다며 신경질을 내며 기자에게 돌아오라 소릴 지르다가 혼자서 가 버린다. 다리가 부러진 토끼를 본 기자는 토끼를 안은 채 시냇가에 앉아 어찌하여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다가 이젠 혼자서 국도로 내려가 지나가는 자동차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바타넨의 진짜 마음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길로 심술궂은 아내도, 그럴 듯 해보이기만 하는 직장도, 비싼 헬싱키의 집세도 다 잊어버리고 토끼와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 여행에서 바타넨은 주거침입자로 몰리기도 하고, 산불에 휩싸여 진화에 참가하기도 한다. 또 시체와 밤을 새기도 하고, 외무부 만찬에 참가하기도 한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웃음을 자아내게 하지만, 교회에서 토끼를 본 목사가 토끼를 잡기위해 벌이는 행동은 그야말로 한 편의 코미디였는데, 파실린나의 유머가 엿보이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그는 산장에 침입한 곰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몇 날 며칠 설원을 헤매다가 국경을 넘은 지도 모르고 소련 땅으로 들어가 체포를 당한다. 그곳에서 그는 2개월의 감방 생활을 마친 후 헬싱키로 이송되는데 바타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가 토끼와 여행을 하면서 지나온 지역들에서 올라온 22가지의 어이없는 범죄(?) 혐의였다. 그러나….

이 책은 한마디로 삶에 찌든 한 평범한 40대의 직장인이 집과 회사, 그리고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에서 탈출한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한 삶은 도시가 아니라 자연과 벗을 삼아 살아갈 때 비로소 그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핀란드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과 더불어 현실을 비판하는 수고도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 능청스레 파실린나가 풀어 놓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비록 범죄자(?)로 몰릴망정 나도 바타넨과 함께 핀란드의 풍경을 맛보며 자연의 삶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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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가지 그림안에 실수들이 우글우글 - 어디가 틀렸지? 1
다니엘 게리에 지음, 류재화 옮김 / 토마토하우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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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만 관심이 많고 동화책이라곤 그림만 훑어보는 것으로 책을 덮어버리는 막내조카는 읽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거나 그게 지겨우면 만화책을 들여다보는데, 아직 유치원생이니 만화책이라도 들여다보는 게 어디냐며 어른들은 기특해 하지만 고모인 내 눈엔 영 거슬려서 동화책을 사주어도 별 효과가 없다. 그래서 만화책을 사 줄 때면 가능하면 학습효과가 있는 만화책으로 사 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만화책의 효과는 나름 있어 간혹 이 녀석이 천재가 아닌가 할 정도로 엉뚱한 질문을 해대어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지난번에 『분실이 고블린의 모험』이라는 책을 보내 준 적이 있었다. 글자는 거의 안 나오고 그림으로만 되어 있는 '퀴즈'와 '숨은 그림 찾기' 그림책이다. 나름 생각하기를 이런 책은 좋아할지도 몰라 하며 건네줬는데, 대단한 집중력을 보였다. 급기야는  책에 구멍난다 그만 쳐다봐라 했는데, 잘됐구나 하고 나를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고모, 고모, 같이 찾아봐!! - -) 물론, 이 책을 동화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동화책이든 아니든 책을 들고 들여다본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

이 책은 집중을 요하는 책이다. 멋진 그림 안에 들어 있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을 찾아내는 것인데, 그 그림이 주는 전체적인 주제와 의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 정답을 맞힐 수가 없다. 예를 들자면 유로 마크 10개를 찾아라 하고 나오는데 달러와 유로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유럽의 날」같은 그림에서 정답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어떻게 보면 그림만으로 많은 것을 알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자, 그럼 실수가 우글거리는 그림 안으로 들어가보자.

「공룡박물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웃기는 일이 많다. 오토바이를 닮은 '모토사우러스'란 이름의 공룡이 전시되어 있고, 맘모스가 화석이나 뼈가 아닌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전시되어 있기도 한다. 또 강아지에게 공룡뼈를 던져주는 장면에서 풋!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요동치는 바다」에서는 어떠한가? 노젓는 배에 매달려 수상스키를 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다 밑이 달이라도 된양 착각하며 국기를 꽂는 사람도 있고, 침몰한 폐선에 인어공주가 폼잡고 앉아있다. 또 바다 속 잠수함에서 전망 망원경을 보는 선장이라니. 「뒤죽박죽 공항」은 더 웃기는 실수가 많다. 화성으로 가는 비행기가 있는가 하면, 기장이 종이컵으로 통화를 한다. 외계인은 집이 그려진 티켓을 내밀며(아마도 집에 가게 해 달라는 거겠지?) 티켓팅을 기다리고 있고, 고대 이집트 글씨가 새겨진 유물이 트레이너에 실려 나온다. 그외 「해적선이다」,「인도거리」등등 많은 그림 안에 실수들을 찾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게 이 책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단순하여 한번 재미가 들면 정신없이 빠져든다. 옆에서 뭐라해도 정신놓고 집중을 한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주위가 산만하여 책에 집중을 잘 하지 못하는 아이가 보면 틀림없이 재미를 붙일 거라 생각한다. 내 조카처럼 말이다.

우글우글에 재미를 붙인 조카는 바글바글과 북적북적은 어디있냐고 졸라대는 바람에 시리즈 세 권을 다 구입해야만 했다. 착한 고모는 그래, 그렇게라도 책을 읽다보면 책과 친해지겠지 하며 갖다바쳤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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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머니
이시다 이라 지음, 오유리 옮김 / 토파즈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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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머니』, 이시다 이라의 작품은 이 책으로 세 권 째 읽는다. 처음에 읽은 『이케부쿠로 웨스트게이트 파크』를 꽤 재미있게 읽은 탓에 무척 기대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살짝 실망스럽다. 복잡하거나 재미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일본의 거품 경제니, 금융완화정책이나 헤세이(平成) 대불황 같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솔직히 한국의 경제 사정도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는데 일본의 거품 경제나 금융완화정책 따위에 무슨 관심이 있었겠냐 말이지. 더군다나 주식이라니, 오호~

내 관심 분야가 증권이라든지 주식 같은 것이었다면 재미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쉽게도 난 정치나 경제엔 그다지 흥미가 없고, 돈에 대해서도 별다른 관심이 없는 탓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조금 지루했다. 조작이든 뭐든 주식으로 돈을 왕창 버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태반인 현실을 두고 볼 때 아무리 소설이라도 뭔가 뜬구름 잡는 기분에 씁쓸한 생각도 들고(아, 내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나보다 소설인데;;;) 소설이라는데 전체적으로 주가와 경제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은 편이었던 것도 별로이고, 주인공인 백수 시라토가 주가에 눈을 뜨는 과정을 그린 앞부분은 약간의 사적인 이야기를 제외하면 거의 경제서적 같았다. 그렇다고 시라토처럼 공부를 하면 돈을 벌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언젠가 소설처럼 쓴 자기계발서적을 읽은 적이 있는데 만약 이 책이 소설로 분류되기보다는 경제서적으로 분류된다면 훨씬 쉽게 읽히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했다. 하지만 작가인 이시다 이라에겐 찬사를 보낸다. 나름대로 주가조작, 금융사기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대충이 아니라 이거 경제서적 아니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것은 작가가 그만큼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결과이니, 이러한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라면 앞으로는 더 독특하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다양한 분야의 소설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작가임이 틀림없을 테니 말이다.

이야기는 그렇다. 사실, 알고 보면 정말 별 것 아니다. 경제적인 숫자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진짜 별 볼일 없는 소설이었을 수도 있다. 그만큼 흔한 소재이고, 뻔한 소재인 탓이다. 어느 날 백수인 시라토에게 돈 많은 노인이 접근을 한다. 이유는 노인이 젊었을 때와 성격이 비슷하다는 이유다.(정말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노인은 뜬금없이 아르바이트나 하라며 시라토를 채용하고, 그동안 백수로 별 볼 일 없이 빠찡코에서 하루 종일 살다시피 지내던 시라토는 졸지에 노인의 비서가 되어 주가 공부를 하고, 노인의 복수를 위해 거대 은행과 5주간의 머니게임을 벌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가 살짝 나오고, 노인이 주가조작을 할 수밖에 없는 과거가 감초처럼 나와 감성을 자극하며, 행동의 합리화를 시키면서 마지막에는 어이없는 노인의 배신과 역시 드라마 같은 극적인 결론이 기다린다. 그래서 이 소설은 극적이고 역동적인 면에서 소설보다는 드라마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진 이유도 내가 느낀 그대로 그 드라마틱한 것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경제관념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내가 온갖 불평에도 이 책을 놓지 않고 읽은 것은 이시다 이라에게 보이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또한 이 책은 경제 이야기에서 살짝 지루함을 제외하면 무척 쉽게 읽히고, 재미까지 있는 소설이다. 더구나 요즘 우리나라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 노숙자나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 변액보험 같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그런 글에서 내가 처음 읽은, 나름대로 재미있었다고 생각하는 『이케부쿠로 웨스트게이트 파크』의 경쾌한 문체가 보였기 때문이다.

한 작가의 작품 중에 처음으로 읽은 작품이 마음에 들면 그 사랑이 오랫동안 지속이 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시다 이라의 이 작품이 내 취향과는 달라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나름 가벼운듯하면서 진지한 이 작품에서 그의 개성을 맘껏 경험했으니 ‘천지가 뒤바뀌는 책’은 아니었어도 앞으로 천지가 뒤바뀌는 한 권의 책이 나올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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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그게 뭔데? 낮은산 키큰나무 4
베르트랑 페리에 지음, 이선주 옮김, 조승연 그림 / 낮은산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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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참 그렇다. 결혼도 안 했고, 아이에 대한 애착도 그다지 없지만 자식이 뭔가 실수를 했다고 소리부터 지르는 부모는 딱 질색이다. 결혼한 사람들은 너도 애 낳아서 길러봐라 소리치는 것은 예사 라고 하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아이든 어른이든 소리 지르고 때려서는 가르치지 못한다. 그런 것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볼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위해서도 부모 자신을 위해서도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 대책 없이 아이부터 낳는 어른들이 싫다. 어쩌면 그래서 난 아직도 혼자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렇다면 이런 책을 읽지 않으면 되는데 그게 또 눈길이 가니 어쩔 수 없다. 입에서 욕이 나오면서도 읽는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혹시 내가 어릴 때 부모에게 맞고 자랐나?(- -) 아, 그건 또 아니란 말이지. 학교 다닐 때 선생에게 맞은 기억은 나는데 결코 부모에게 맞은 적은;;; 그런데 왜 이런 책에 호기심이 많은 걸까? 결혼도 하지 않았고, 그러니 아이도 없는데, 유독 아이들이 상처받거나 아이 하나 제대로 못 키우는 어른들을 보면 화가 난다. 그냥 무조건 말이다.

『행복, 그게 뭔데?』 제목만 보아도 내용이 짐작될 정도다. 더구나 이 책의 표지를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어딘가를 치려하는 큰 주먹과 주먹에 비해 너무나 작은 아이가 두려운 눈길로 내려오는 주먹을 바라보고 있고, 주변은 온통 빨간색이다.

아버지를 ‘때리는 자’라고 지칭하고, 어머니를 ‘옆 사람’이라고 부르는 아이. 얼마나 무섭고 슬프면 ‘통로가 수없이 나 있는 큰 건물 안을 걷고 있는 기분’이라고 이야기 할까. 아이는 이미 오래 전에 그들의 가족관계가 끝났다고 말한다. 아니, 가족이라고 이어주던 그 뭔가도 사실은 애정이라곤 조금도 없었다고 말한다.

아주 오래 전, 어느 날 저녁, 때리는 자, 옆 사람과 함께 연못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다. 나는 하늘 저 위의 달을 바라보면서, 나중에 저기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러라거나, 안 된다거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내 구석에 틀어박혀서 아예 달을 잊어버리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p43>

아이는 부모에게 맞는다. 부모는 이유가 있지만 아이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만 그러고 사는 건지, 다른 아이들도 맞고 사는 건지조차도 모른다. 때리면 맞고, 맞아서 아프면 운다. 그리고 부모의 한탄은 늘 똑같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 책은 소설이다. 그럼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작가가 상처받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쓴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이지만 실화와 다름없다. 텔레비전 폭로 프로그램에서 많이 보던 아이와 엄마와 아버지다. 어쩌면 내 주변에도 있을지 모르는 아이다. 혼이 날까봐, 그래서 또 맞을까봐 겁이 나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는 그런 아이 말이다.

그렇다. 나는 완전히 캄캄하고도 끔찍한 자포자기 상태에 있다. 그건 나쁘다. 그래, 나쁘다. 자신의 삶을 얘기할 때는 긍정적이어야 한다. 약간 뒤로 물러나 사건들을 바라보아야 하고 재미도 곁들여야 한다. 하도 많은 청소년들이 절망해 있다 보니 흥미를 일으켜 줘야 하는 것이다. 있잖아 있잖아……요렇고 저렇고……알록달록 요란스런 말들. 강인하면서도 괴짜! 솔직히 말해 나도 그러고 싶다. 흥미로운 녀석인 척해 보이기. 뭔가 폼이 나는, 잘생기진 않았는데 그래도 뭔가 아주 괴짜!
그렇게 못할 것도 없지 뭐.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바로 그래서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냥 그런 척일 뿐이니까. 웃음은 지나가 버리지만, 암흑은 그렇지 않다. 암흑은 지나가지 않는다. 나는 바로 암흑 깊숙한 곳에 있고, 그곳에선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 어디에도. <p76>

세상엔 다양한 부모들이 있다. 아이를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키우는 부모가 있는 가하면(하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마음을 다 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마는) 아이를 사랑한다지만 과연, 그게 아이를 위한 일인가 싶은 부모도 있다. 또 어른이라고, 아이보다 강자라는 생각으로 무조건 복종하게 하고, 억누르며 가르치려 하는 부모도 있다. 부모라고, 다 제대로 된 부모는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작가는 끝을 해피엔드로 끝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결국 이 소설의 결말은 독자들 몫인 것이다. 아이는 과연 어떻게 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오후 3시 베이커리』(소년한길)가 떠올랐다. 아버지에게 맞고 살지만 긍정적인 아이 장훈, 제대로 된 가정은 아니지만 그 관계를 묵묵히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는 아이 상윤, 이야기는 다르지만 따뜻함이 번져오는 그 책과 따뜻함은커녕 처음부터 끝까지 화가 나는 이 책은 그렇지만 둘다 나름대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할 때면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 『행복, 그게 뭔데?』의 아이.  ‘정답은 없다. 정답 대신 엄청난 슬픔이 밀려온다. 너무나 선명한 슬픔.’ 이라고 생각하는 아이, 그럼에도 해줄 수만 있다면 그 아이를 암흑 속에서 꺼내『오후 3시 베이커리』의 바이러스를 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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