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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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읽고 기억에 남긴 중국소설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이다. 왠지 무협지 같은 느낌을 받았던 제목의 소설이었다. <문화혁명기>시대에 가족을 위해 한평생 피를 팔아 생활하는 허삼관의 인생역정을 이야기하는 책이었는데, 분명 심각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피식거리며 나오는 웃음과 은근한 감동은 중국소설에 대한 내 선입견을 바꾸어 놓았다. 그 후 또 다른 <문화혁명기>를 이야기 하던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역시 웃음과 감동이 섞여 중국소설에 대한 흥미를 한층 더해주었다. 더구나, 이 소설 하진의 『기다림』또한 <문화혁명기>의 시대이다. 그러나 하진의 『기다림』은 다른 중국작가들처럼 정치적이지 않다. 소설의 배경은 많은 중국소설에 등장하는 <문화혁명기>시대이지만 말이다. 그건 아마도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 살면서 영어로 글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신, 몇 권 읽지 않은 중국소설들과 비교했을 때, 하진의 『기다림』은 <문화혁명기>를 살아가는 그 시대의 상황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등장인물의 복잡한 심리가 잘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하진이 풀어 놓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늘 듣던 이야기처럼 익숙하고 그 상황이 짐작이 된다.

 기다림, 어떤 사람이나 때가 오기를 바라다. 라는 뜻이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때가 오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쩌면 희망을 말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희망, 그렇다면 기다림 끝은 늘 희망하던 것처럼 다 잘되는 것일까? 사실, 불행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기다림의 끝은 행복일 것이라고 다들 믿을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래서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떠난 사랑을 기다리고, 내게 올 행복을 기다리고, 소설 속 우만나처럼 린이 아내와 헤어져 나와 살게 될 그 행복한 날을 기다리고….

육군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인 쿵린은 부모에 의해 사랑 없는 결혼을 한다. 흑백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그럭저럭 괜찮은 여자라고 생각하고 약혼을 받아들였으나 직접 약혼녀를 본 린은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약혼녀인 류수위는 40대로 보일 만큼 겉늙은 데다 신중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전족을 한 젊은 여자였기 때문이다. 약혼을 파기하고 싶었던 린은 부모를 설득하지만 “얼굴이 밥 먹여주더냐?“라는 아버지의 한마디에 결국 결혼을 하게 되고 만다. 하지만 육군병원에 근무하는 린은 고향에 있는 아내와 늘 떨어져 지내고, 아이 하나를 낳은 뒤로는 거의 별거 상태였으며 고향에 다니러 가서도 자기 방에서 혼자 잤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아내가 사촌이라도 되는 양 대했다. 그래서 부모가 죽고 딸 화가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가족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므로 자신의 삶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면에는 우만나라는 간호사가 있었다.

유부남이 애인이랑 공공연하게 연애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두 사람의 아내를 둘 수도 없었던 그 시대에 린이 우만나와 지낼 수 있는 기회란 결혼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혼이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질질 끌던 이혼은 급기야 17년이란 세월을 보낸 후, 법적으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혼할 수 있는 18년째가 되어서야 이혼을 하게 된다. 우만나와 린에겐 길고도 긴 기다림 끝에 고대하던 행복의 날이 온 것이다. 하지만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행복은 순간이다. 처음 우만나를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들은 이미 사라져버렸고, 우만나에 대한 린의 마음은 린 자신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우만나를 처음 만났을 때 결혼을 했다면 달랐을까? 내가 정말 우만나를 사랑하긴 한 것일까? 온갖 회의와 혼란스런 감정이 린을 괴롭혔지만 한숨을 내쉬는 일밖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이야기는 린이 아내와 이혼을 결심하지만 이혼하지 못하고 지내는 17년 동안 린과 우만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담담히 그려냈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와 이혼하고 만나와 결혼을 한 후, 일어나는 린의 감정들을 잘 묘사해냈다. 그리고 마지막 “저는 너무 행복해요, 여보. 이렇게 집에 오셨잖아요.” 라고 말하는 수위의 한마디로 결국,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기다림은 린과 만나의 기다림이 아니라 아내 류수위의 기다림이라는 걸 말해준다.

일본소설에 비해 중국소설들은 대중적이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아직은 우리나라에 젊은 중국 작가들의 글이 많이 소개되지 않았고, 중국의 현대적인 이야기보다는 지나간 한 시대적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이 소개된 까닭에 그렇게 보이는 면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하진의 『기다림』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으면서 지나간 한 시대의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등장인물의 심리적 표현을 섬세하게 잘 나타내주어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리고 위화와 다이 시지에, 쑤퉁에 이어 내겐 하진이라는 또 한 명의 중국 작가를 알게 되었으며 중국소설의 또 다른 면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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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2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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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스포일러를 담았음. 주의 요함>
 

우선, 작가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 덕분에 나는 신윤복의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 것이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매번 건성이었던 것 같다. 신윤복의 그림만 봐도 그렇다.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치고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김홍도는 김홍도대로, 신윤복은 신윤복대로 그림을 보면 볼수록 서양의 유명 화가들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뻔했던 사실이다.(아부 같지만, 진짜다.^^;)

팩션은 늘 재미있다. 오래전부터 해오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에 만약, 이라는 가정(假定)을 붙여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니 말이다. 더구나 이 소설은 그림을 넣고 글을 썼는지(아마도 그렇겠지) 그림으로 인해 더욱 실감이 났다. 또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하다고 하고 싶다.(아, 또 아부하는 꼴이 되었다;;) 아직, 작가의 전작을 읽어보지 않아 그의 첫 번째 소설 역시 얼마나 재미있는지 난 잘 모르지만, 『바람의 화원』만을 두고 봤을 때는 확실히 속도감이 난다. 다만, 윤복의 형 영복이 어느 틈엔가 빠져버려 조색공으로 성공을 알 수 없게 되었으니 그 점은 좀 아쉽다. 의도적이었는지 작가가 모르고 빼먹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눈물겨운 분투'로 만들어 낸 붉은색도 아니고, 황색도 아닌, 누구도 보지 못했고, 만들지 못했던 그 색은 과연 어디에 쓰였을까?(혹시 신윤복의 쌍검대무?^^;) 2편 뒷부분에 한번쯤 얼굴을 들이밀어도 될 텐데 나오지 않는다. 아우를 위해 희생한 형, 그런 형이 있어 소설 속의 신윤복은 더욱 빛이 났을 것이다.

『바람의 화원』은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이야기다.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에서 또 결코 그 실력을 잴 수 없는 뛰어난 화원으로서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마지막 남녀의 관계에서 말이다. 여자라 생각하고 보니 신윤복의 그림이 더 살갑게 느껴진다. 김홍도가 이야기 했듯이 그림에서 주체가 되는 여자, 그 아름다운 색채, 그리고 여자라는 가정(假定)은 정말 놀랍다. 더구나 그 둘의 그림까지 덤으로 보며, 그림을 비교하고 해설까지 곁들여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일석삼조다. 

이야기는 김홍도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신윤복을 처음 보던 날, '복숭아처럼 발간 두 뺨, 꼭 다문 살찐 입술…….' 그 이미지를 떠올리며 그게 사랑인지 아닌지 되새기는 김홍도가 오래 전 신윤복과의 만남에서부터 소설은 시작한다. 모든 팩션은 그렇듯이 가정(假定)에서 비롯되므로 추리적인 요소가 들어간다. 이 소설 역시 죽은 사도세자의 용안을 그린 그림을 찾는 것과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오래 전의 살인, 그 살인의 희생자인 서징의 딸, 신윤복의 복수 등등이 어울려 긴장감을 더해준다. 더불어 기생 정향과 신윤복, 김조년과의 야릇한 관계 설정까지, 하나의 책에 이렇게 많은 설정임에도 어느 것하나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일까? 읽다보면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특히, 이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 김홍도와 신윤복의 내기였을 것이다. 대작이라 할 수 있는 그림, <씨름>과 <쌍검대무> 두 장의 그림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그림 속 인물과 행동 하나하나에 그렇게 많은 의미들이 들어 있을 줄이야‥.

그동안 우리 그림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 기회에 제대로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특히 신윤복의 그림은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포인트처럼 칠한 소매끝동의 파란색과 개나리빛 저고리, 빨간 치마, 요염한 기생들의 모습과 아름다운 각색의 저고리와 치마.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신윤복이 정말 여자인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자꾸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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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2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readersu 2007-09-03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정말 놀라워요.^^; 전 내도록 읽으면서도 그 장면에 가서야 알았다는;;;; 근데 보면 볼수록 정말!! 여자인게 아닌가 싶어요. 그림이 정말 좋아요.^^

2007-09-03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readersu 2007-09-03 01:03   좋아요 0 | URL
아하하;;암튼 술술 잘 넘어가는 책이었어요. 근데 얘기해주었을 때 반응이 은근히 궁금해요.ㅋㅋ
 
이런 사랑
필립 베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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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탈리아 피렌체 아르노 강 산타 트리니타 다리 아래쪽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루카 살리에리라는 스물아홉 살의 남자였고, 이틀 전에 그의 연인 안나 모란테가 실종신고를 한 상태였다.

프랑스 소설은 언제나 종잡을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프랑스 소설을 좋아하지만 간혹, 생각지도 못한 스토리에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건 아마 문화적으로 정서가 달라서이겠지.

여기 한 남자가 죽었다. 그 남자에겐 연인인 여자가 있다. 그러나 그 연인이 모르는 또 다른 남자가 한 명 있다. 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관계가 무슨 관계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소설 좋아하는 나 역시 미리 알아버렸으니까. 그렇다고 이 책이 여기서 끝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자. 그랬다면 프랑스의 여러 권위 있는 문학상 후보작에 오르지도 못했을 테니 말이다.

세 명의 화자가 등장하여 자신의 입장에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재미있는 것은 죽은 루카가 첫 번째 화자로 나온다는 거다. 뒤이어 안나와 레오가 바통을 이어받아 이야기를 한다. 사람이 죽었으므로 이야기의 전개는 죽은 루카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 부모님과 연인인 안나, 그리고……. 여기서 진실을 모르는 사람은 안나 밖에 없다. 나중에 그 진실을 알게 되지만 과연 제대로 알게 된 진실일까?

내가 견뎌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레오 베르티나는 내 얼굴을 알고 있었다. 루카가 사진을 보여주었다. 내가 누구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나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의 존재조차 몰랐는데. 다시 한 번 불균형. 다른 취급. 레오 베르티나는 알 권리가 있었고, 나는 우롱당하는 역할이다.

이 사실은 어떤 대지진을 예고하는가?  <p210>

『이런 사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독백 형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지는 않는다. 옮긴이의 말처럼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깔끔한 문체' 보여준다. 하지만 그 문체가 글과 너무나 딱 맞아떨어지니 화자들이 겪는 고통이 그 나름대로 모두 공감이 간다. 절제되고 담담한 문체는 금방금방 바뀌는 화자들처럼 순간적으로 빠져들게 한다. 특히 안나의 입장에서 안나를 이해하다보면 사랑하던 연인의 죽음과 배신에 쉽게 감정이입하여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안나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죽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시 한 번 칼을 꽂아야 한다. 그러는 김에 나에게도.   <p184>

필립 베송은 '내 작품들은 거의가 내면의 독백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일은 등장인물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며 외부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라고 했다. 이 소설은 스토리상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너무나 뻔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쉽게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은 사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그들의 고통과 상실감이 제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길게 이야기 하지 않아도, 침묵을 지키고 있어도 뚜렷이 드러나는 '내면의 독백', 그래서 필립 베송의 말처럼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들의 독백에 빠져 주변의 모든 상황은 정지되고 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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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리의 트렁크
백가흠 지음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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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백가흠이란 작가에 대해 처음 알았다. 등단 한지 벌써 6년이 지난 작가임에도 그의 존재조차 몰랐음에 스스로 놀라워했지만 아마 알았어도 나는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을 것 같다.(- -) 지난번 은희경 작가의 강연회에서 사회를 맡은 백가흠 작가를 처음 보게 되었을 때 받은 느낌은 모범생 같은 단정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한 작가가 쓴 소설이 온통 신문 사회면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새 소설집이 나온다고 하기에 무척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읽게 되었다. 다행이라면 전작에 대한 이야기와 이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읽었다는 점이다.

 세상은 늘 내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눈에 보이고, 내가 믿는 것,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만이 사실로 느껴진다. 그래서 TV에서 보여주는 고발성 프로그램이나 현장 취재 같은 프로그램을 접할 때마다 과연, 저런 세계가 존재한단 말인가? 의문을 품기도 한다. 왜냐하면 내가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않은 일이란 현실감이 없기 때문이다. 의심이 많은 남자와 헤어지지 못해 애를 태우고, 집 청소는 뒤로 한 채 쓰레기 같은 곳에서 생활을 하거나, 장애가 있다고 아이를 감금하다시피 키우는 부모들 등등.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을 TV에서 보았을 때의 당혹감이란 솔직히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딴엔 얼굴을 찌푸리고 뚫어지게 쳐다보아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저런 미친 놈! 이나 저게 엄마야? 따위의 욕이나 해댈 뿐. 

지난주에 기리노 나쓰오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기리노 나쓰오가 누군가? 불편하고 괴기스런, 다르게 이야기 하면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내어 독자로 하여금 불쾌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작가다. 백가흠의 소설을 읽으니 문득 기리노 나쓰오가 생각났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내보이고, 우리가 모르는 저편의 삶을 집요하게 파헤쳐서 아무도 알기를 원하지 않는 일들을 태연스레 끄집어내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해 고통 받게 하는 것이 꼭 닮았다. 나는 가능하면 우울한 이야기를 읽은 뒤엔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한 책을 읽고 싶어 하는 편이다. 책에 몰입하는 편이 아닌데도 그렇다. 그런데 이번에 어찌하여 한 주 내도록 조금 우울하고 찝찝한 이야기들만 읽었다. 욕이 나오지만 한쪽 구석에선 마음이 싸해진다. 세상이 뭐 이래? 저런 인간들이 있단 말야. 정말? - - 각설하고,

모두 아홉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조대리의 트렁크』는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다. 아니, 정상적이란 말은 나를 기준으로 한 것일 뿐,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낯선 그 세계를 훔쳐보는 재미는 관음증에 걸린 사람마냥 떨렸으며, 그 재미에 빠지니 정신없이 빨려 들어간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둠 속에 갇힌 사람들 같다. 집착함과 완전한 소유야말로 진실한 사랑이라 착각하고(굿바이 투 로맨스), 우연히 만난 한 소녀에게 늙은 노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주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고(매일 기다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사고, 아이를 감금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는 그녀들(웰컴, 마미!),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는 모텔의 옷장 속에 숨어 엿듣고, 엿보고, 또다른 어린 부모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아이를 버리고 도망간다(웰컴, 베이비!).

또, 군대에서 다리가 찢어져 불구가 된 청년의 생존 문제(루시의 연인)나, 의사라는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도 결혼에 실패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P의 인생이나(로망의 법칙), 사업에 실패한 남자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택한 행동과 아픈 노모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 조대리가 살아야 하는 삶은(조대리의 트렁크) 장애인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나 그저그런 평범한 사람의 삶조차도 파헤쳐 알고 보면 비루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끔, 소설보다 현실이 더 무섭고 끔찍하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약한 자는 끝없이 강한 자의 노리개가 되고, 살아 낼 희망이 사라진 상황은 늘 지옥 같은 삶을 살게 한다. 아무 죄의식 없이 일을 저지르고 잘못을 깨닫지도 못한다. 그런 일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데도 우리는 모른 척 하며 살아 간다. 그래야 내 삶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지만 그외는 정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애써 생각해 낸 것이라곤 이건 소설이잖아. 라는 회피 뿐이다. 엽기적이라면 엽기적일 수 있는, 그러나 너무나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들을 태연스레 써 낸 백가흠 작가, 너무도 반듯하게 생긴 그가 남들이 다 피하고 다니는 문제를 이야기 삼아 글을 쓴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다. 그리고 나 역시  '소설 속 인물들의 운명이 다하지 않고, 영원히 그들과 그녀들 모두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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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 스티커 갤러리
카롤 암스트롱 지음, 김현숙 옮김 / 소년한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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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유독 모네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건 아마도 여러 번 이야기 했듯이 인상파 화가들에 관한 드라마를 보고 나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드라마에서 화자로 나온 모네의 인상이 아주 깊었던 데다, 그가 만든 정원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모네는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야외에서 스케치를 한 후에 화실로 돌아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를 빛의 화가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모네는 야외에서 작품을 완성시켜 살아 있는 듯한 그 생생함이 돋보이게 한 화가였다.


『모네』는 스티커 북이다. 얼마 전에 <빛의 화가, 모네>전을 보러가기도 했었는데 그곳에서 본 그림들도 있고, 내가 모르는 그림들도 많이 있다. 그 그림들을 주제별로 정리하고 빈 액자를 두어 그곳에 스티커를 붙이도록 하였다. 그림에는 힌트가 적혀 있어 모네의 그림을 잘 몰라도 혹은 관심이 없어도 쉽게 찾아 붙일 수 있게 했다.

이 책은 그림을 좋아하는 조카에게 선물을 했는데, 아이들이란 일단 스티커 북이라고 하면 관심이 다른 책보다 두 배는 더 많은 것 같다. 열심히 읽고 보더니 스티커를 찾아 붙였다 떼었다 한참을 가지고 놀았다.

주제별로 나눈 갤러리엔 설명이 달려 있어 그림에 대한 이해력을 높여주기도 했다.「야외에서 그리기」에 들어 있는 그림들은 모네가 살던 파리 근교 아르장퇴이유 마을에 있는 강의 배를 그린 ‘아르장퇴이유의 요트 경주’를 비롯하여, 자신의 아내 까미유를 모델로 그린 그림들 ‘정원의 여인들’, ‘점심식사’ 등을 볼 수가 있다.

지베르니의 근교로 나가 그림그리기를 즐겼던 모네는 프랑스 북부 해안과 지중해로 그림 여행을 떠났다. 그때 본 「해변과 시골」풍경이 담긴 갤러리엔 ‘건초더미’. ‘포플라 나무’, ‘푸르빌 절벽에서의 산책’ 등을 볼 수 있다. 이 그림들은 빛과 날씨의 변화에 따른 야외 풍경의 색들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지베르니의 정원」모습이 담겨 있는 갤러리엔 ‘수련’을 비롯하여 ‘지베르니의 일본식 다리’, ‘봄’, ‘수련:구름’ 같은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여 준다. 모네는 정원 가꾸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지베르니에 있는 집 정원에 아름다운 꽃들을 가득 심고, 정원 너머에 있는 늪이 있는 땅을 사서 연못을 만들고 수련을 키웠다. 우리가 아름다운 수련 그림을 볼 수 있는 것도 모네의 정원 가꾸기 덕분인 것이다. 그 후 모네는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연못 정원을 그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 스티커 책은 아이들을 위해 나온 것이지만 모네를 좋아하는 나에게도 유익한 책이었다. 다른 책에서 볼 수 없었던 많은 그림들이 있었기에 모네의 그림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모네, 점점 더 그 매력에 빠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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