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웨어 판타 빌리지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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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 전에 닐 게이먼 원작의 <스타더스트>를 본 적이 있다. 원작은 미처 읽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느낌이 온다. 현실의 세계와는 다른 어느 곳, 뭔가를 찾아나서는 사람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을 사고파는 마켓,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 비슷하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라는 소설이 있다. 그 책에도 지하세계가 나온다. 그러나 그 세계는 비교적 현실적이다. 읽어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책이 문득 생각난 것은 아마도 지하라는 공통된 장소 때문이고, 그곳으로 온 사람들의 대부분이 지상에서의 힘든 일을 당하고 더는 그곳에서 살아갈 수 없었기에 피해왔다는 설정 때문일 것이다. 또 어제 읽은 기욤 뮈소의 『사랑하기 때문에』도 보면 지하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노숙자들이 현실에서의 도피를 꿈꾸기 때문에 지하로 찾아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네버웨어』는 우연히 지하세계로 빠져들었다는 것이 위의 두 책과 다르지만 지상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같은 점이 있다.

여기 리처드라고 불리는 평범한 남자가 있다. 그에겐 아름다운 약혼녀가 있고, 그의 사회생활에서도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어느 날 길에 쓰러진 소녀를 구하면서 그의 생활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여기서부터 갑자기 이 책은 판타지 소설이 된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미 영화에서 보아왔듯이 우리의 미래엔(어쩌면 지금도 실현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과연 그런 일을 당한다면 그 공포감이 얼마나 대단할까? 또 그런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나 될까? 차라리 판타지 소설인 것이 다행이다.^^;

뉴욕의 지하 하수도엔 흰색 악어 왕이 산다. 베를린의 지하도시엔 공포의 무서운 곰이 살고 있고, 캘커타의 지하엔 검은 호랑이가 살고 있다. 그리고 리처드가 살고 있는 이 도시 런던의 지하에는 멧돼지를 닮은 괴수가 살고 있다. 런던은 원래부터 지상과 지하의 두 도시로 나뉘어져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렇다. 그곳에서 지하세계를 통합하려다 실패한 포르티코 경의 가족이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하고 딸인 도어(Door)만이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된다. 딸은 복수의 길을 나선다. 천사 이슬링턴이 가족을 살해한 배후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찾기 위한 험난한 길이다. 이런 경우, 항상 등장하여 방해하는 악당들이 있겠지, 바로 크루프가 벤더마가 그들이다. 그들, 크루프와 벤더마의 악행은 이미 오래 전 기원전부터 시작한다. 트로이를 불태우고, 흑사병을 일으켰으며, 십여 명의 황제와 오십 명의 영웅을 죽인 악당 중의 악당이다. 그렇다면, 도어는 그들을 물리치고 천사 이슬링턴을 만날 수 있을까?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판타지 소설엔 음모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천사를 찾아가는 길이 쉽지도 않다. 더군다나 언제 어느 곳에서 그 지독한 악당을 만날지도 걱정이다.

어쩔 수 없이 지하세계로 내려간 리처드가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존재가 있었던 지상으로 다시 나가기 위해 도어 일행과 함께 천사를 찾아다니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판타지 소설의 매력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정말 환상적인 것들을 경험하게 되니 말이다. 쥐나라 말을 하는 사람과 쥐나라 대왕,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카라바스 후작, 온기를 빼앗아 자신의 생명력을 얻는 여인 라미아가 있는가 하면, 지하세계 최고의 경호원인 헌트의 활약과 수도사들과의 게임도 빠질 수 없다.

마침내, 천사 이슬링턴을 찾은 도어와 또 마침내 지상으로 복귀한 리처드의 최후의 선택은 이미 예견했지만도 놀랍다. 하지만 아이가 힘든 모험과도 같은 여행을 하고 나면 쑥쑥 자라듯이 어른인 리처드 역시 그 과정을 통해 진정한 어른이 되었던 것. 그러고 보니 이 책은 지극히 평범한 삶의 일상에 지친 어른들에게 딱 맞는 판타지 소설인 듯하다.

삶이 권태롭다고?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그럼, 리처드와 함께 지하세계로 여행을 한번 떠나보는 것은 어떨지? 단, 목숨을 걸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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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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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로 나는 책읽기를 그만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정독을 안 하고 다독을 한다. 라는 그럴 듯한 핑계를 대며 일 년 동안 200여 권의 책을 읽었다. 그런데 도대체 난 뭘 읽은 걸까? 생각해보면 나의 독서기는 순전히 now!! 바로 그 순간뿐이었다. 그 찰나적인 순간이 지나면 나는, 다 잊어버리고 만다. 그게 책읽기의 순서마냥,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처럼 깡그리, 싹, 다, 어김없이…….

그래도 정혜윤PD(어쩐지 PD라는 직함을 꼭 집어넣어야 이름이 완성 되는 것 같다;;)의 이 책『침대와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만의 프라이드가 있었다. 나름대로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밑줄 긋기와 옮겨 놓기도 열심히 했고, 책을 읽고 나면 잘 못 쓰는 서평도 읽은 티를 내기 위해 꼬박꼬박 썼으며, 친구들에게 책 읽은 표도 무진장 낼만큼 내고 다녔다. 그런데……정혜윤PD가 내 코를 완전 납작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도대체가 나는 무엇을 읽은 것일까? 『브루클린 풍자극』의 폴이 택시기사이면서 책을 좋아하는 박학다식한 남자라는 것은 기억이 나는데 체중이 20킬로쯤 평균치를 초과한 올챙이 배가 나온 남자라는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 읽어주는 남자』를 너무나 감명 깊게 읽고선 만나는 친구들마다 읽어보라고 권유했으면서도 '그'가 황달에 걸려 길거리에서 구토를 하다가 '한나'의 도움을 받은 것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를 쓴 실비 제르맹이 카프카의 단편 「석탄 통에 걸터앉아」를 인용하며 쓴 문장은 기억조차 없으며, 누군가에게 들은 셈으로 치던 제랄의 사랑고백을 나 역시 큰소리로 다 읽고 나서는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이렇게 멋진 문장을!! 나는 왜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 왜? 말 그대로 좌절!!

그러자 이젠 얄밉기 시작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본 그는 대체로 잘 탄(?) 갈색 피부를 가져서 섹시해보였고, 산뜻한 헤어스타일은 문체에 드러나듯 통통 튀는 듯 했으며, 나보다 젊기까지 했는데(누군들 나보다 안 젊겠냐마는;;), 글마저 이렇게 예쁘고 질투 나게 잘 쓰니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싶었다. 흥! 콧방귀가 나왔다. 그럼에도 글이 얼마나 예쁜지 말을 시켜보고 싶었다. 글처럼 말을 한다면, 그래서 글이 말이 되고, 말이 글이 되는 여자라면 난 내가 여자임에도 그녀를 사랑해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찬 상영 중인 '인생, 그것은 단파 라디오였다'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트뤼포 걸과 그녀 사이에 끼여 우주로 날아가 보고 싶었다. 뭐 어쨌든;;(트뤼포 걸의 헌사는 또 어찌나 멋진지;;)

이제 백번 해도 소용없는 질투는 그만하고 책이야기나 해보자. 그의 책에 대한 호기심은 그야말로 다방면이다. 칼 세이건의 토성에서 우울을 이야기 하다가 수잔 손택의 에세이에서 발터 벤야민의 고백을 끄집어내고,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게 다예요』를 모든 문장에 넣어 복창을 하는가 하면, 『하이 피델리티』식의 리스트를 만들어 나도 어디 한번? 하고 따라하고 싶게 만든다. 쉼보르스카의 시를 읊다가 백가흠의 신문 단신 속 바탕화면 같은 이야기를 하고, 다시 쉼보르스카의 시로 마무리 지을 줄 아는, 또 원본 책보다도 더 재미있게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기도 한다는 정혜윤PD의 깊고 넓은 책사랑은 그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 더구나 그는 시집은 시집대로, 인문은 인문대로 정혜윤식으로 만들어낼 줄 아는 마술사이니 그의 그런 재주가 책을 읽는 내내 부럽기만 했다.

이제 나도 그처럼 책을 읽어야 하나? 그게 아니면 수박 겉핥기 같은 나의 책읽기를 이쯤에서 포기해야 하나? 갈팡질팡하다보니 12월이 끝날 무렵, 올해 읽은 책들을 죽 늘어놓고 난 올해 이렇게 많은 책을 읽었소! 하고 자랑질 할 꿈에 부풀었던 나는,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하는 깨달음만 얻었다.

어쨌거나 오늘, 그를 만나러 간다. 말을 글처럼 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내가 트뤼포걸과 그녀 사이에 끼여 우주로 날아갈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확인해서 뭘 어쩌자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불안하다. 정말 그가 말을 글처럼 하는 멋진 여자라면 나는 어떡하지? 상큼 발랄한 그의 젊음에 주눅이 들면? 아, 가지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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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12-18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만나 기로하셨어요? 알았으면 나도 갔을텐데...
책이라는 게 그렇죠. 아마도 정혜윤 PD는 리더수님이 기억하고 있는 걸 기억 못하는 지도 몰라요. 너무 자책 마시고 좋은 리뷰 많이 올려주세요.^^

readersu 2007-12-18 17:09   좋아요 0 | URL
^^;;;출판사 사옥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답니다. 저쪽 동네 이벤트에 되어서리; 좋은말씀 힘이 됩니다^^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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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 한강을 생각하면 오래 전에 읽은 『내 여자의 열매』가 생각난다. 그 소설집으로 난 한강을 처음 만났던 것 같고, 표제작인 「내 여자의 열매」를 읽으면서 소통하지 못하고 외로움에 서서히 식물이 되어가는 한 여자의 삶을 보며 아주 묘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 후, <이상문학상>을 받은 「몽고반점」을 읽게 되었을 때 뭐랄까? 그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내 여자의 열매」가 워낙 인상이 깊었던 터라 한강이 원래 이런 글을 썼었던가 싶었다. 그래서 작품의 깊이와 작가의 의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형부와 처제의 정사라는 조금은 도발적이고 선정적인 그 작품을 읽으며 문학상에도 이젠 '문학적'인 것보다는 '판매량'이 중요한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뭐…그땐 그랬다.

『채식주의자』가 나왔을 때, 여태 나온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이라고 생각했다.「몽고반점」을 읽었던 터라 굳이 읽어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어쩜, 나는 매번 그다지 읽고 싶지 않았던 책들에 감동을 하는 걸까?) 그런데 「몽고반점」을 두고 쓴 연작소설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했다. 그래? 그냥 소설집이 아니란 말이지. 그렇다면 읽어봐야겠네. 그래야「몽고반점」의 그 에로틱한 상황을 이해해야하지 않겠어? 하는 그런 생각으로 말이다. 누군가는 충격적이라 했고, 누군가는 한강이 다시는 이런 소설을 못 쓸 것이라고 악담(?)을 했다.

그렇게 첫 이야기인「채식주의자」를 펼친 순간, 난 갑자기 「몽고반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남자, 형부의 이해할 수 없었던 비디오 작업과 영혜의 알 수 없는 동조가 「내 여자의 열매」의 아내의 외로움을 떠올리게 하면서 말이다. 인간의 갑작스런 이상 행동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채식주의자라고 불리게 된 영혜도 마찬가지다. 그 끔찍한 꿈을 꾼 후로 고기를 입에 댈 수조차 없고, 딴 사람이 된 듯 변했지만 그 원인엔, 딸을 다치게 했다고 개를 매달고 죽을 때까지 오토바이를 몰던 아버지와 영혜를 이해하기보다는 너무나 평범하던 아내의 갑작스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남편과의 관계가 숨어 있다. 또 아무도 날 이해 하려하지 않는다고 내뱉는 영혜의 말에 부모도, 남편도, 언니마저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다만 어느 날 변해버린 영혜에게 왜? 라는 말만 할 뿐이다. 왜? 왜? 왜?

모두 3부로 나뉘어져 있는 『채식주의자』는 바라보는 시선이 다 다르다. 어느 날 채식주의자로 변한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채식주의자), 정신병원에 다녀온 몽고반점을 가진 처제를 바라보는 형부의 시선(몽고반점), 그리고 세상의 고단한 짊을 모두 짊어진 듯한 언니의 시선(나무 불꽃)이다. 각기 다른 시선으로 보이는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육식(다른 동물을 먹어치우는)을 한다. 그리고 내가 이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누군가를 공격하고, 그렇게 공격당한 자는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그런 인간의 욕망에 환멸을 느끼는 영혜는 육식을 거부함으로써 공격하지도 공격받지도 않으려 한다. 그리고 서서히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으로 발달하게 된다. 그러고선 급기야 햇빛만 있으면 되는 식물이 되어간다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른다.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영혜는 벌떡 일어서서 창을 가리켰다.
모두, 모두 다 물구나무서 있어.
(…) 
어떻게 내가 알게 됐는지 알아?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열에 들뜬 영혜의 두 눈을 그녀는 우두망찰 건너다보았다.
나, 몸에 물을 맞아야 하는데. 언니, 나 이런 음식 필요 없어. 물이 필요한데.  p180

그리고 언니는 영혜를 바라보며 자신의 고단한 삶을 돌아본다. 그 역시 자식인 지우만 없었다면 어느 찰나 일상으로 이어지는 끈을 놓아버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채식주의자가 되어 버린 아내를 바라봐야 하던 제부, 갑자기 육식을 거부함으로써 가족에게 고통을 주며 정신병원에 갇히는 동생, 처제를 이해하는 듯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참지 못하고 예술혼(?)을 불태우던 남편, 그들 나름대로 각자 고통을 안고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역시 그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도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하는 언니, 그 자신임을 알 것이다. 그래서 그녀로선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랄 뿐이다. 꿈, 깨어나면 모든 것이 잊고 마는 꿈 말이다.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p221

그래, 꿈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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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앵거스 - 사랑과 꿈을 나르는 켈트의 신 세계신화총서 7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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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거릿 애트우드의 『페넬로피아드』와 쑤퉁의 『눈물』에 이어 세 번째로 읽는 <문학동네>의 신화총서 시리즈다. 여태 나온 신화총서들 가운데 내가 전작을 읽은 작가들의 것은 의외로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내 친구처럼 신화 시리즈에 깜빡 넘어가지는 않지만 관심이 있던 터라 나올 때마다 관심을 가지긴 하지만 올 초에 『무게』를 읽어보려고(굉장히 얇다. 금방 읽을 줄 알았다) 도서관에서 빌려서는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반납한 기억이 있어 이 책도 사실 다시 읽기가 두려웠었다. 그런데 신화라면 깜빡 넘어가는 그 친구가 나오자마자 사서 읽어보더니 너무 재미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친구를 믿는 셈치고 읽었다. 역시 친구는 믿어야 한다.^^

 『꿈꾸는 앵거스』는 켈트 신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숱하게 들어봤어도 켈트 신화는 낯설기만 해서 도대체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그러나 제목에 나오듯이 뭔가 꿈꾸듯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내용을 가진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더구나 이 책을 쓴 작가는 내가 조카랑 재미있어하며 읽었던 『이리저리 움직이는 비비원숭이』와 『사자와 결혼한 소녀』를 쓴 작가가 아니던가? 더 앞서 『넘버원 명탐정 에이전시』시리즈의 작가이니 친구를 믿고, 작가를 믿고 읽으니 그 즐거움은…….(딴소리만 자꾸^^;;;)

앵거스의 탄생 신화를 앞부분에 보여주고 뒷부분의 단편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해석으로 글을 썼다. 그래서 앵거스라는 공통점을 두고 과거와 현대가 공존한다. 지난번에 읽은 『페넬로피아드』도 그랬고, 『눈물』도 그랬지만, 작가들의 재해석은 꽤 흥미롭다. 전해 내려오는 신화를 두고, 혹은 그 작은 이야기를 모티브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일은 신화에 무지한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신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꿈꾸는 앵거스』도 마찬가지다. 그냥 켈트 신화 그대로를 읽었다면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물론 여기선 각자의 취향에 따라 개인적인 차이가 나기는 한다. 나는 제대로 된 신화이야기보다는 쉬운 이야기를 좋아하므로 이렇게 다르게 생각하며 쓴 소설들을 좋아한다) 그런데 작가는 앵거스라는 신화적 인물을 두고 과거와 현대 어느 곳에든 앵거스를 존재케 했다.

신랑의 비밀을 궁금해 하는 신부에게 나타나 그의 비밀에 관한 꿈을 꾸게 하고(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 그러나 그는 아직 여기에 있다), 늙어 죽을 때까지 같이 살 거라 생각했던 형이 캐나다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동생에게 형은 잠을 청해서 앵거스를 만나보라고 한다. 그 꿈에서 앵거스가 캐나다에 있는 형에 대한 소식을 전해줄 것이라고(우리 형), 또 추리 소설을 쓴 작가답게 움찔하는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한다(다른 소년이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님을 알다).

그리고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어 한 이야기는 마지막 이야기다(나 그대의 꿈을 꾸네). 얼마 전에 읽은 조경란 작가의 『혀』의 일부분이 살짝 생각나기도 한 이 단편에는 '자각몽'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해피엔딩이다. 물론 모든 단편들이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이 단편을 읽고 나면 왜 많은 사람들이 앵거스를 만나려고 하는지 알게 된다.

"앵거스는 사랑의 신이자 젊음의 신이며 꿈의 신이기도 했다. 그를 본 사람은 누구나 그를 사랑했다. 예외는 없었다. 그들은 앵거스가 지나는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자기들의 연인이 될 남자나 여자의 꿈을 보내달라고 청하곤 했고, 앵거스는 언제나 그렇게 해주었다.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p137

오늘 밤부터 앵거스를 기다릴 일만 남았다. 사랑과 꿈의 신 앵거스, 나 그대의 꿈을 꿀 것이니 내게도 언제나처럼 그렇게 해주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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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선 그냥 그저그런 자기 계발서려니 했는데 차례에 나온 소제목들을 보니 확 끌어당긴다. 그래서 빌려간 친구를 닥달하여 뺏다시피 하며 읽었는데...뭐라고 해야하나? 문화척탄병이라 불리는 두 남자의 글빨에 너무 웃겨서 어이가 없다.-.- 복수는 나의 것이 아니라는 제목처럼 진짜 복수는 나의 것이 아니라 너의 것이니 알아서 해라? 암튼 당하고만 살지말고 당장 복수하라 부축이는 이 책을 넘겨보면 복수의 정의부터 마음가짐과 11계명까지 나온다. 그런데 가관인 것이 이제 마음을 굳게 먹고 복수를 다짐하며 복수의 대향연을 펼칠 생각으로 마음이 부풀었는데 경고가 나온다.

   
  절대로 따라하지 마세요.  
   

푸핫!  제대로 된 명언이다.(-.-)

한 예로 들자면 이런 거다.
한 여자의 남친이 커다란 LCD를 사서는 엄청  크고 좋은 거라고 막 자랑을 한다. 여친으로서 안 가 볼 수 없어서 보러갔다. 그 모니터로 둘이서 영화도 보고, 쇼핑몰도 구경하고 즐겁게 잘 보냈는데 손톱이 긴 여친이 잘못하여 살짝, 아주 살짝 긁었다. 자세히 안 보면 보이지도 않는 자국이었다. 근데 난리가 노발대발 생난리가 난 거다. 이에 여친은 너무나 열이 받아 문화척탄병에게 '어찌하오리까?' 물어본다. 도대체 남친엔 여친이 내가 중요한 겁니까? 그깟LCD가 중요한 거랍니까? 

문화척탄병은 말한다. "우선, 망치나 야구배트를 들고 가서 남친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중요해? LCD가 중요해? 그러면 남친이 "너 왜 그러냐?"내지는 대충 넘어가려할 겁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누가 더 중요하느냐고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마지못해 "네가 더 중요해"라고 할 겁니다. 그러면 "그렇지?"하고 되물으신 다음 가지고 간 연장으로 LCD를 박살내십시오. 그리고 바로 도망치십시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친에게 붙잡히면 안 됩니다. 근데 LCD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 남친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연장으로 남친을 가격하십시오. 그렇다고 죽여서는 안 되고 붙잡혀서도 안 됩니다. 요점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귀하의 고결한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겁니다. 남친은 모니터가 부서지는 것보다는 손톱 자국 하나에 감사를 할 것입니다."

이런 식이다. 읽다보면 맞아!!하는 생각도 들지만 왠지 무섭다. 통쾌한 생각이 들긴하지만 남친과는 영영 이별해야 할 것이며, 회사에선 사표를 내야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끌리는 구석이 있다.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착한탓이다. 나도 그렇게 막 살아봤으면 좋겠다.- .-

10시에 하는 드라마를 안 보기 시작한 지 꽤 되었는데 (일찍 자는 습관이 들었고, 그 시간에 주로 책을 읽는다.진짜!-아, 물론 잠드는 경우가 더 많지마;;) 지난 주 딴 짓을 하다가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를 우연히 봤다. 권상우가 나오는 드라마인데. 그 드라마에 나오는 한 못된(?) 여자가 눈에 확 들어온 것이다. 아무리 지네 아빠 백화점이고, 제 멋대로인 성격이라지만 어쩜 그리 못되게 구는지 기가 막히더라마는...근데 내 눈엔 그 막돼먹은 모습이 이상형으로 보였다.-.-;;;;그래서 생각해봤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나의 성장 과정에서 부족한 뭔가가 있었나? 요즘 들어 내가 너무 격한 책들만 읽었나? 등등. 아직도 원인분석을 하진 못했지만...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억수로 당하고만 살았나보다. 복수가 하고 싶은 가 보다. 쿨럭! 

내게 복수는 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고 싶다. 어쨌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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