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
벤 메즈리치 지음, 황해선 옮김 / 자음과모음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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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은 Jeff Ma 라는 실제 인물이 주축이 된 MIT 출신 카드카운팅 그룹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이 카지노를 공략한 게임은 블랙잭이었다. 


블랙잭의 사전 상 용어는 '검은 가죽으로 된 큰 맥주잔' 혹은 '해적의 깃발'을 의미한다고 한다. 1440년 독일의 요한 구텐베르크가 인쇄 기술로 성경과 카드를 인쇄한 직후 1490년 경 이탈리아에서 현재의 블랙잭과 유사한 규칙의 게임이 시작되었고, 1800년대 초 프랑스에서 '21' 게임으로 완성되었다.

게임의 규칙은 단순하다. 카드를 받아서 21에 가까운 숫자를 만들면 이긴다. 당연히 21이 가장 높은 패인데, 21을 초과하게 되면 'bust'라고 하여 무조건 지게 된다. 에이스는 1 또는 11로 계산할 수 있고, 페이스카드인 J,Q,K는 10으로 계산한다. 

게임을 시작하면 베팅을 한 뒤 두 장의 카드를 받는다. 이 때 딜러는 카드를 한 장만 공개하고, 플레이어는 두 장 모두 공개한다. 카드를 더 받고 싶으면 Hit, 멈추고 싶으면 Stay를 말하며, Stay가 되면 서로 카드를 공개하여 21에 가까운 사람이 베팅 금액을 먹는다.

처음 두 장의 카드가 페어가 되었을 경우, 즉 같은 수자가 들어오면 Split 하여 카드를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내 패가 두개가 되는 셈이므로 두 배로 따거나, 두 배로 잃을 수 있다. Double Down은 카드를 한 장만 더 받는 대신 이길 경우 베팅 금액의 두 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면 MIT팀이 사용한 카드카운팅이란 무엇인가?

블랙잭은 카드게임 중 유일하게 카드를 공개하며 벌이는 게임이다. 그렇다면 아직 나오지 않은 카드는 현재 나온 카드의 종류에 따라 확률이 변하게 된다. 예를 들어 펼쳐진 카드에 에이스가 이미 두 번이나 나왔다면 남은 슈(아직 빼지 않은 카드가 든 케이스)에서 에이스가 나올 확률은 줄어든다. 

플레이어가 받은 카드와, 딜러가 딜링할 때 훔쳐본 카드를 카운팅하고, 원하는 패가 나오도록 커팅해서 끊임없이 남은 슈의 확률을 계산한다. 그리고 계산 결과 플레이어에게 무척 유리하게 되면 그 그때 베팅금액을 높이는 것이다. 비록 플레이어에게 2~3% 정도 높은 확률일지라도 베팅 금액을 최고로 높여 게임을 거듭하게 되면 카지노는 돈을 잃게 되는 것이다.


소설은 영화 <21>과 달리 미키가 MIT팀을 물 먹이는 장면이 없고, 단지 욕심 때문에 팀이 분열된다. 배신자가 나오긴 하지만 그가 누군지 밝혀지지도 않고, 카드카운팅을 그만두게 된 과정도 기술의 발전과 플리머스들의 활약 때문이다. (MIT팀이 진짜 카드카운팅을 그만 둔 것은 사실 수익이 보잘 것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구나 시스템을 이기는 꿈을 꾸게 마련이다. 도박사라면 카지노를, 투자자라면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자신의 운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으며, 근거 없는 확신에 재산의 상당 부분을 털어 넣기도 한다. 문제는 그 근거없는 확신이 요행 맞아 떨어졌을 때다. 초심자의 행운이 파멸의 전조가 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284080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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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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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맘카페에 올라온 글을 보여준다. 새로 산 경차 레이에 경유를 가득 넣고 달렸다는 얘기였다. 남편이 엔진을 내려야 한다며 자신을 타박했는데 어쩌면 좋으냐는 내용으로, 걱정하는 댓글이 다수였다. 그런데 나는 이 글이 불편했다. 레이는 휘발유차이기 때문에 경유를 주유하려면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주유를 하려해도 구멍이 맞지 않아 사이가 뜬 상태로 반은 바닥에 흘려가며 주유를 해야 할 텐데 가득 넣고 달렸다고 하니 십중팔구 거짓말이기 쉬웠다. 


소설가가 쓴 산문집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소설가는 무릇 거짓말장이다. '앞으로 내가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해보이겠소!' 라고 선언하고 써내려간 소설은, 읽다보니 진짜 같아서 감동도 하고 재미도 느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설가가 '앞으로 내가 참말을 해보이겠소!' 라고 선언하고 산문집을 쓴다면?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은 해외여행이 활성화 된, 특히 동남아로 나가는 여행객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시기에 작가가 동남아 비행기편에 승선하는 스튜어디스와 스치듯 만나 인연을 맺으며 시작된다. 그때부터 작가는 <젊은 날의 초상>의 영훈처럼, 스튜어디스에게 습작하듯 연서를 보낸다. 마치 나중에 엮어서 책을 내려고 한 것처럼. 


사색의 깊이가 깊지 않다 보니 생활의 냄새가 제거된 다양한 경험을 나열하게 되고 과잉된 자의식을 장식으로 곁들인다. 진짜 작가가 경험한 것인지 소설가의 뻥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는 어느 순간부터 신선함을 잃는다. 


연서는 모두 감각적이고 관능적이다. 회를 곁들여 일본주를 마시고, 베토벤과 비틀즈를 듣고, 이름난 고찰을 돌아다니며 꽃놀이를 하고, 때때로 바다낚시에 심취하는가 하면, 제주도든 일본이든 내키는대로 여행을 하는 자신의 멋진 모습을 '그녀에게' 들려준다. 물론 '미당'에 대한 - 전두환에 대한 헌사를 바친 바로 그 미당 - 헌사도 빠뜨리지 않는다. 

물론 그 이야기들에 역사나 생활의 냄새가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 그저 관능.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흉내낸 산문집이다. 

책 한권 분량이 되어갈 무렵 여자는 작가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런데 그때 건네는 말이 압권이다. 이 산문집 전체가 '레이의 경유 주유' 이야기로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열대에서 떠나오면서 비로소 제 몸과 마음이 너무 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더이상 제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느껴지지도 않구요. 너무 그쪽으로 옮겨간 모양입니다."


작가는 이 말을 헤어지자는 말로 이해한 후, 책 한 권 분량도 채웠겠다 쿨하게 이별을 받아 들인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239136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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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는 여자
김미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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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 17일 오후 4시경, 히말라야 로체 정상에 첫발을 디딘 한국 원정대원 중 하나가 아이젠에 걸려서 눈 밖으로 튀어 나온 서바이벌 키트를 발견한다. H.H라는 이니셜이 세겨져 있는 알루미늄 통을 본 대원은 삼 년 전 로체 남벽 코스로 단독 등정을 떠났다가 실종된 하훈의 물건이 틀림없다고 단언한다. 

서바이벌 키트를 열자 그 안에서 손바닥만한 종이 한 장이 나왔다. 거기에는 하훈이 1997년 5월 21일 MM이라는 여자에게 보낸 연서가 들어 있었다. 김인호 기자가 이 내용을 신문지상에 실었고, 얼마 뒤 제이라는 여자가 김인호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제이라고 밝힌 그녀는 MM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미목이 하훈을 처음 만난 것은 횡계에 있는 별장에서였다. 하훈은 별장지기의 조카였다. 미목이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을 때 하훈이 도움을 주었고, 이 일을 계기로 둘은 친해진다. 서로에게 강렬하게 끌리던 둘 사이에 정념이 싹 터 결국 관계를 맺게 되자 운명의 시계가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 미목은 결혼한 여자였다. 

둘은 몇 번인가 도덕률에 따라 관계를 정리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별장지기의 상갓집에서 다시 재회한 둘은 자신들이 서로의 운명임을 인정하고 남편에게서 도망쳐 강원도로 숨어든다.

꿈과 같은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 미목은 친정 오빠와 남편에게 발각되어 집으로 끌려간다. 미목은 한동안 친정집에 감금당했다가 남편에게 '양도' 되는데, 남편은 그때부터 미목을 육체적으로 학대하기 시작한다. 물론 강간과 같은 성적 학대도 빠뜨리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남편이 폐건물로 미목을 데려간다. 주먹질 끝에 성적 학대가 이뤄지려던 그 때 미목이 송곳 같은 물건으로 남편을 찌른다. 남편 영준은 그 자리에서 숨진다. 미목은 친구 제이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제이는 폐건물에 불을 놓아 증거를 인멸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 미목은 그러나 하훈을 만날 수 없었다. 하훈은 등반을 위해 네팔로 떠난 뒤였다. 부랴부랴 뒤를 쫓아간 미목은 베이스 캠프에서 로체 남벽을 올라가는 하훈을 검은 점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폭풍우가 몰아쳐 하훈은 실종되고, 미목 역시 인근 말을에서 하염없이 슬퍼하다 자살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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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무미건조하게 재구성해보면 섬뜩하다. 


안정된 삶을 위해 결혼하여 윤택한 삶을 누리던 한 여성이 어느 날 야성적인 산악인을 만나 한눈에 반한다. 며칠 만에 둘은 몸을 섞게 되고, 부정한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지 않은 채 1년 여 간 밀회를 이어간다. 둘은 미사리 카페촌에서 만나 달콤한 술잔을 기울인 후 모텔, 차 안 가리지 않고 관계를 맺는다. 그러다 마침내 둘은 남편에게 어떠한 공식적인 이별 통보도 하지 않은 채 야반도주하듯 사라져 또 몇 달을 지낸다. 그 후 분노한 남편의 육체적 학대에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여자는 오랜 친구를 시켜 시체를 방화하여 증거를 인멸한 후 해외로 도피한다. 내연남이 죽자 돌아갈 곳도 사랑할 사람도 없어진 여자는 자살이라는 폭력적 결말로 인생을 마친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게 재밌는 거겠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에 히말라야 설산 이미지와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양념으로 더했다. <모짜르트가 살아있다면>은 풋풋한 맛이라도 있었는데, <자전거를 타는 여자>는 너무 식상하다. 그런데 왜 제목이 자전거를 타는 여자일까. 미목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고 말은 하지만, 딱 한 번 탔다가 자빠지는 장면 밖에 안 나오는데...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21294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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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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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스콧 캐리는 195센티미터에 달하는 거구로, 미국 중년 남성이 흔히 그러하듯 양껏 먹고 운동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욕실에 있는 체중계는 가급적 피해다니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몸무게가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몸무게가 꾸준히 줄기 시작하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웃에 사는 절친한 친구이자 은퇴한 의사인 밥 엘리스와 상의를 해봤지만 그 역시 뾰족한 해답은 제시하지 못했다.

한편, 스콧은 이웃에 사는 '미시와 디어드리' 부부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 집에서 키우는 개가 자꾸만 스콧의 잔디에 실례를 하고 갔기 때문이다. 스콧은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지만 디어드리 쪽에서 가시 돋힌 반응을 보여 진전이 없었다. 그 부부는 최근 새로 식당을 열었는데 보수적인 마을 주민들이 '공공연히 레즈비언임을 공표한 그들'을 적대시 했고, 디어드리는 스콧 역시 그런 부류라고 지레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스콧은 몸무게가 점점 줄어들었지만 외관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다시 말해 근육과 같은 여타 기관은 정상 작동했기 때문에 신체 능력이 좋아지게 되었다. 예전과 달리 몸이 가벼워진 스콧은 마을에서 매년 개최되는 '터키 트롯' 마라톤 경주에 참가하기로 한다. 경기 직전 스콧은 유력한 우승후보인 디어드리에게 내기를 제안하는데, 내기의 내용은 '만약 스콧이 이긴다면 자신의 집에서 디어드리 부부가 함께 식사를 하고, 그렇지 못하게 되면 디어드리 부부의 개가 어떤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스콧의 튀어나온 배를 본 디어드리는 코웃음을 치며 응낙하고 잠시 뒤 경기가 시작된다. 예상대로 스콧은 자신의 가벼워진 몸에 비해 195센티의 거구를 지탱하던 심장과 근육을 적극 활용해 우승에 거의 근접한다. 하지만 결승지점 직전에 디어드리가 넘어지고, 스콧은 그녀를 일으켜 세워 우승을 양보한다. 이 장면이 마을 신문에 실리게 되어 디어드리가 운영하는 식당이 홍보 효과를 얻게 된다. 망하기 직전의 식당은 기사회생하여 몇 개월 간의 예약이 꽉차게 된다. 또한, 스콧과 디어드리 부부의 관계도 친밀한 이웃의 그것으로 발전한다. 

이제 남은 문제는 스콧의 몸무게가 점점 줄어드는 것 뿐. 스콧은 자신의 몸무게가 0에 수렴하는 순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날에 대한 준비를 시작한다.


우리 모두는 중력의 지배를 받는 존재들이다. 다시 말해 법칙과 규율에 얽매인 존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일부 소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법칙과 규율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기도 한다. 스티븐 킹은 공포소설계에서 그러한 인물이 <나는 전설이다>의 리처드 매드슨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이 책은 2013년에 사망한 리처드 매드슨에 대한 헌사가 바쳐졌다) 

제는 Elevation으로 2018년도 작품이며, 스티븐 킹이 자신의 소설에서 인용한 많은 문구들에 대한 각주를 함께 읽으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193599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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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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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도시 > 


'내' 가 처음 고도에 발을 들여놓은 건 일곱 살 무렵의 봄이었다. '나'는 벚꽃놀이 명소인 고네가이 공원에서 아빠와 헤어져 길을 잃는다. 울고 있던 '나'에게 한 아주머니가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아주머니는 어두워지면 요괴가 나오는 길이니 한눈 팔지 말고 가라고 했다. 비포장인 그 도로 양쪽엔 집들이 있었지만 도로쪽으로 현관을 낸 집은 한 집도 없었다. 무서움을 참고 집으로 돌아간 뒤 '나'는 가끔 그 길에 대해 생각했다. 그 길은 어쩐지 비밀스럽고, 은밀한 느낌을 주었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 나는 이 내밀한 이야기를 친구 가즈키에게 털어 놓는다. 가즈키는 그 이야기에 무척 흥미를 느꼈는지 함께 가보자고 했다. 어렵사리 입구를 찾아 '그 길'에 들어선 '나'와 가즈키는, 그러나 목적지인 고네가이 공원으로 나가지 못한다. 길을 잃은 것이다.

'그 길'에서 유일하게 출입문을 낸 찻집에서 만난 청년 렌은 '나'와 가즈키가 오면 안되는 곳에 왔다면서 걱정을 했다. 그곳은 고도, 귀신의 길, 죽은자의 길, 혼령의 길, 나무그림자의 길, 신의 통행로 따위로 불리는 곳이며, 바깥 세계와는 다른 공간이었다.

어쨌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렌과 함께 동행한 '나'와 가즈키는 중도에 고모리라는 남자와 맞닥뜨린다. 렌과 고모리는 원수 사이라 싸움이 벌어졌고, 이 와중에 가즈키가 사고로 죽는다. 렌이 고모리를 도끼로 해치운 뒤 '나'와 렌은 가즈키를 살려내기 위해 '비의 사원'으로 향한다. 렌은 '나'에게 고모리와 얽힌 은원 관계, 그리고 왜 고도에서 나갈 수 없는지 이야기 해준다.


고도와 현실 세계는 통로를 통해 이어져 있지만 아무나 그곳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렌의 어머니는 고도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고도에 들어와 렌을 낳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렌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면서 호시카와라는 남자에게 렌을 맡긴다. 얼마 후 렌은 우연히 자신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남자가 사망하자 그를 살려내기 위해 유골함을 훔쳐 고도로 들어왔다. 비의 사원으로 간 어머니는 남자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완전한 형태로 살려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남자는 어머니에게 잉태되어 렌으로 태어나게 된다. 어머니는 렌이 장성하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모습이 되자 렌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장성한 렌은 현실 세계에서 고도로 들어온 고모리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고모리는 현실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그 중 하나가 렌이었다.


비의 사원에 도착한 렌과 '나'는 가즈키를 원래대로 살려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즈키는 고도에서 살아갈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열흘만에 현실로 돌아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고도에서의 기억을 망각에 부치고 살아간다.


< 야시 >


어느 날, 이즈미는 동창 유지의 권유로 야시에 가게 된다. 야시가 열린다는 장소에는 시장이 설 것 같지 않았지만 숲으로 들어가니 정말로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장사치들은 요괴나 유령들 같았고, 파는 물건들도 특이했다.

잠시 뒤 헌팅캡을 쓴 노신사와 친해진 이즈미와 유지는 납치업자의 가게로 간다. 그리고 유지가 야시에 온 이유를 알게 된다.


유지가 어렸을 적에 동생과 함께 야시에 온 적이 있었다. 야시에서 현실로 돌아가려면 특이한 조건이 있었는데 무엇이든 한 가지를 사야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지와 동생은 돈이 없었다. 

납치업자의 가게에서 유지는 어쩔 수 없이 '야구를 잘하는 능력'을 사게 된다. 값으로 치뤄야 할 댓가는 동생이었다. 유지는 이 모든 것이 꿈일 수도 있고, 꿈이 아니라면 돌아간 뒤에 부모님과 함께 동생을 데리러 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보니 동생은 아예 존재한 적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그 뒤로 유지는 실제로 야구를 잘 하게 되었고 고시엔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하지만 동생을 댓가로 얻은 능력이었기에 유지는 못내 괴로웠고 마침내 동생을 찾기 위해 야시에 다시 오게된다.


납치업자에게서 동생을 되사려 했지만 유지가 가진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즈미는 유지가 이번엔 자신을 댓가로 치르려는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유지는 오히려 이즈미에게 동생을 사달라고 한다. 댓가는 바로 유지 자신. 유지는 현실 세계에 염증을 느껴 이곳에 오게되었기 때문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문제는 납치업자가 동생이라고 지칭한 아이가 진짜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 어쨌든 납치업자의 말을 믿고 거래를 끝내고 동생을 건내받으려는 순간 야시에서 사귄 헌팅캡을 쓴 노신사가 재빨리 칼을 꺼내 납치업자의 목을 벤다. 


유지가 야시장에 처음와서 동생을 넘긴 직후, 동생은 납치업자의 가게에서 탈출해 아무 가게에나 들어갔다. 거기서 동생은 '젊음'을 댓가로 '자유'를 산다. 그리고 노신사가 된 유지의 동생이 납치업자의 목을 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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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일본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으로 이세계(異世界)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이야기이다. 이세계물의 성공을 위한 첫번째 조건은 독자가 납득할 수 잇는 룰의 정립이다. 현실세계와는 다른 또 다른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룰을 독자가 받아들일 때 호러소설로서 기능한다. 만약 룰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면 공포는 내면화되지 못하고, 환상은 헛소리로 전락한다.


<바람의 도시>에서 나오는 이세계인 고도에서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고도에 속하는 것은 현실 세계로 나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비의 사원에서 살려낼 수 있는 것은 조건이 따라 붙는다는 것. <야시>의 원칙 역시 두 가지다. '야시'에서는 무언가를 사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과, '야시'에서는 공정하게 장사를 해야한다는 것. 


<바람의 도시>에서는 렌과 가즈키가 고도에 귀속되고, <유지>에서는 납치업자가 '공정'을 위배했기 때문에 그의 목을 벨 수 있었다. 납득할 만한 룰과 복선, 그리고 반전으로 잘 읽힌다. 하지만 걸작의 반열에 올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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