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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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센다이라는 지역, 토막 살인 사건, 그리고 늙고 비루한 개를 중심으로 다섯 명의 독립적인 인물들의 삶이 교차한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화상에게 팔려간 처지의 화가 시나코, 좀도둑이지만 나름의 철학이 확실한 구로사와, 아버지가 자살한 후 신흥종교에 빠진 가와라자키, 바람남 애인과 결합하기 위해 서로 상대편 배우자를 죽이기로 한 교코, 그리고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잘린 도요타. 등장인물들은 때로 마주치고 상대편의 삶에 자기도 모르게 개입한다.

이사카 코타로는 이러한 사건들에 적당한 양념을 치는데 신흥종교와 토막살인사건, 그리고 구로사와의 순간이동술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소설은 일면 미스터리처럼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는 누구나 다른 사람의 삶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다섯 사람이 일본의 현대를 살아가는 대표적인 인물들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뚤어지고 기형적인 그들이 일본 사회의 기형적인 모습을 드러내는데는 효과적인 인물들임에는 틀림 없다. 돈에 예술이 팔리고, 욕정에 눈이 멀어 사람을 죽이고, 구조조정으로 회사에 잘린 후 권총으로 상사를 죽이려하고, 아버지가 죽자 새로운 아버지(신흥종교)에서 구원을 얻고자 하는 등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고 욕망을 이루기 위해 수단에 개의치 않는 일본 현대 사회 군상들 사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인물은 좀도둑인 구로사와이다.

 

제목인 러시 라이프(Lush Life)는 존 콜트레인의 재즈곡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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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의 전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자작나무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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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출애굽기에 메노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메노라는 7갈래로 이루어진 촛대인데 하느님을 상징함과 동시에 7일간의 천지창조를 뜻하며 유대교 축제인 하누카(봉헌절)에서 제식용으로 사용된다. 메노라는 유대인들의 손을 떠나 끊임 없이 수난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갔다가 되돌아온 후 로마 황제 티투스의 손에 들어갔다가 반달족에게 약탈 당하며 카르타고에서 벨리사르에 의해 약탈되어 비잔틴으로 옮겨진다.

비잔틴으로 옮겨진 후 유스티니안이 촛대를 예루살렘에 돌려주었다고 하나 예루살렘의 교회에서 촛대는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그 이후의 행방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촛대의 전설>은 메노라가 로마에서 반달족에 의해 약탈 당한 후 비잔틴으로 건너간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벤야민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촛대를 되찾기 위해 겪는 시험과 고난을 그리고 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망명의 피로함을 뼛속까지 겪었던 슈테판 츠바이크는 메노라의 불빛을 희망으로 삼아 유대민족이 역경을 극복하길 바랬던 것 같다.

레마르크의 소설을 읽다 보면 슈테판 츠바이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내면과 심리작용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체스>와 같은 소설을 비롯하여 전기 분야 등에서 탁월한 두각을 나타냈던 이 불우한 천재는 오랜 망명 생활과 유럽의 붕괴로 우울증을 겪다가 1942년 브라질에서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떠난다는 유서를 남기고 아내와 함께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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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리의 트렁크
백가흠 지음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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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소설을 읽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다. 등장인물들은 정신이나 육체가 기형적이고, 일어나는 사건들은 엽기적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기형적이고 엽기적인 것들을 대할 때 보통 독자는 '관망자'의 입장으로 자신을 한정 짓는 태도를 취하게 마련이다. 나는 저렇게 기형적이지 않고, 저런 엽기적 사건의 중심에 있지 않다, 따라서 나는 정상적이고 안전하다. 라는 식의 태도 말이다. 그러나 백가흠은 독자를 끊임 없이 소설 속으로 끌어 당긴다.

먼저 육체적 '기형'을 가진 인물들을 보자. <루시의 연인>의 주인공은 군복무 중 태권도 입단 시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고참들이 강제로 다리 찢기를 하는 과정에서 신경이 찢겨 장애를 갖게 된다. 대한민국 남자는 누구나 동일한 사건을 겪을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사랑의 후방낙법>의 뚱뚱한 민숙과 날씬한 유진 사이에서 독자는 민숙에게 심정적 동질감을 갖게될 개연성이 크다.

정신적 '기형'의 측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갓 스물에 네번째 아이를 임신한 철부지가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기형인 것이 확인되자 모텔에 버리고 가는가 하면(<웰컴, 베이비!>), 아이를 개와 방치하여 아사시키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어린 엄마와 아이를 납치하도록 사주하여 아이 엄마를 죽이는 사건에 연루된 바람난 미씨를 묘하게 병치시킨다(<웰컴, 마미!>). 엽기적인 사건이긴 하지만 이 사건들이 금시초문이 아니라는 것에 독자는 매우 불편하다. 신문에서 이런 사건들을 보았다면 인상을 찌푸리며 천인공노할 것들이라고 욕한 후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소설을 통해 접한 이상 우리는 외면하고 싶은 그 엽기적 사건에 한동안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은 무척 불편하다.

<조대리의 트렁크>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업에 실패한 사내가 아내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트렁크에 유기한다. 그 사내는 주인공인 조대리에게 자신이 동창이라고 말한다. 조대리 역시 그런가보다 했었지만 사실은 알지 못하는 사내였다. 백가흠은 왜 그 사내가 자신이 조대리의 동창이라는 거짓말을 하게 했을까? 그런 엽기적인 사건을 저지른 기형적 인물이 독자인 당신과 무관한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집나온 아이들이 노숙자나 다름 없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동전 한닢까지 흡혈귀처럼 빨아먹는 <매일 기다려>나, 몸을 주고 에어컨을 파는 도둑과 관음증적 환상에 세월을 보내는 <장밋빛 발톱>, 데이트 폭력의 극단을 보여주는 <굿바이 투 로맨스> 등 백가흠 소설은 어느 것 하나 쉽게 읽히는 소설이 없다. 그 소설들이 불편한 이유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작가의 시선이 우리 사회의 외면하고 싶은 추악한 현실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현실 속에 독자인 내가 '관망자'가 아닌 '참여자'로서 존재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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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 설월화雪月花 살인 게임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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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7명의 친구들 이야기이다. 이들은 모두 T대학으로 진학하여 우정을 이어가는데 어느 날 마키무라 쇼코라는 여학생이 손목을 그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쇼코는 일기를 써왔기 때문에 자살한 이유도 적혀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지만 일기는 며칠 전에서 멈춰 있었고, 이렇다할 고민도 적혀 있지 않았다. 가장 괴로워한 것은 쇼코의 남자친구 도도 마사히코였다. 

검도부 소속인 가나이 나미카가 쇼코가 자살한 날 그녀의 방 문을 두드렸을 때 인기척이 없었고 잠겨있었다는 진술에 따라 사건은 자살로 종결 처리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옆 방에 사는 학생이 그 직전 쇼코의 방 문을 열었을 때 잠겨있지 않았다는 진술이 추가 확보되고, 방바닥에 흘린 피를 닦아낸 흔적이 있다는 경찰 감식 결과도 나와 사건은 타살로 초점이 맞추어진다.

한편 검도시합 결승전에서 석연치 않게 패배한 나미카는 쇼코가 자살한 이후 검도 연습도 하지 않고 친구들과도 소원하게 지낸다. 은사인 미나미사와 마사코의 집에 모여 설월화 게임(설월화가 적혀 있는 카드를 골라 차나 다과를 마시는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그날 나미카가 차를 마신 후 쓰러진다. 그녀는 청산가리에 중독되어 사망한 것이었다.

설월화 게임은 누가 차를 마시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미카가 쇼코를 살해한 후 죄책감에 자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 하지만 쇼코의 방에서 비소가 든 화장품 병이 발견되고, 설월화 게임 카드가 모교에서 도난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나미카 역시 타살된 것이 분명했다.

 

1986년도에 발표된 작품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두번째 작품이자 가가 형사 시리즈의 출발이다. 부제는 <雪月花 살인게임>이다. 1985년에 발표된 공식 데뷔작 <방과 후>와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보인다. 가가 교이치로는 어머니가 집을 나간 이유가 아버지가 경찰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사토코라는 여성에게 고백을 하면서 가가는 경찰의 꿈을 접고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방과 후>의 수학 교사 마에시마가 살인 사건의 범인이 학생들이었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너희들에게 이제 가르칠 것은 없어'라고 말하며 교사를 그만두는데, 가가 교이치로가 교사를 그만두고 형사가 되는 과정이 <방과 후>에서 설명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방과 후>와 <졸업>은 모두 인간의 냉혹한 측면이 가감 없이 그려진다. <방과 후>에서는 자신의 수치스러운 장면을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계획 살인을 저지르는 고등학생이 등장하고, <졸업>에서는 출세를 위해 자살에 실패한 여자친구의 손목을 세면대에 다시 집어 넣는 비정한 남자친구가 등장한다. 교사와 경찰이라는 두 개의 직업이 대비되는 점이 흥미로운데, 교사가 '가르침'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는 직업이라면 '경찰'은 이미 벌어진 사건을 파헤쳐 사후적으로 바로잡는 직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교사라는 직업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비정한 인간 본성'에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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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에서 범인은 도도 마사히코이다. 쇼코가 여름 여행에서 남자들과 문란한 성관계를 가진 후 성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도도 마사히코에게 고백한다. 도도는 그녀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행동한 직후, 만약 쇼코가 성병에 걸렸다면 자신과 사귀었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말한다. 이에 절망한 쇼코가 손목을 그어 자살하는데 이는 미수에 그친다. 도도 마사히코가 쇼코의 방으로 갔을 때 그녀는 아직 살아있었다. 하지만 향후 자신의 출세에 지장이 있을 것을 우려한 도도는 쇼코의 손을 다시 세면대에 집어넣어 그녀가 죽도록 방치한다. 방에 침입한 방법은 형상기억합금으로 문고리를 변경해 놓은 덕분이었다.

한편, 나미카는 검도 시합 결승 때 자신이 약물에 중독되어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범인은 뜻밖에도 고등학교때부터 친하게 지낸 와코와 하나에였다. 와코는 형이 운동권이었기 때문에 변변한 직장에 취직하기가 어려웠는데 마침 나미카의 결승 상대가 미시마 그룹 총수의 딸이었다. 하나에는 남자친구의 취직 자리를 얻기 위해 고등학교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나미카의 스포츠드링크에 약을 탔던 것이다.

나미카는 도도가 쇼코의 사망과 관련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도도를 협박해 와코나 하나에를 비소에 중독시켜 테니스대회에서 자신이 맛보았던 절망감을 똑같이 맛보게 하기로 결심한다. 설월화 카드를 훔쳐내 도도와 짜고 그들을 비소 중독 시키려 하지만 도도는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나미카를 청산가리에 중독시켜 사망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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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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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서 약을 받아 먹으며 매일 구타 당하던 시봉과 '나'. 처음에 약을 받아 먹었을 때는 매스껍고 어지러웠지만 이제는 약을 먹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불편하다. 자신들을 '시설의 기둥'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양말을 포장하고, 반장이기 때문에 다른 환자들을 대신해 사회복지사에게 사과하는 이들은 딱히 자신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저 때리면 맞고, 약을 받아 먹고, 사과를 대신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숙자 아저씨가 자신은 억울하게 시설에 끌려왔다며 매일 같이 종이 쪽지를 돌맹이에 밥풀로 붙여 바깥에 던져댄 덕분에 한달 뒤 경찰이 들이닥쳐 원장을 비롯한 시설 직원들이 잡혀간다. 졸지에 사회로 내팽개쳐진 둘은 딱히 갈데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시봉의 집으로 간다.

시봉의 집에는 몸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시봉의 여동생과, 여동생에게 빌붙어 사는 경마광 안경 쓴 남자가 살고 있었다. 무언가 돈벌이를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안경 쓴 남자' 말을 옳다고 여긴 시봉과 '나'는 대신 사과해주는 일을 하기로 한다.

사과를 대신해주고, 만약 사과할 일이 없다면 죄를 짓게라도 만들어 사과할 상황을 만들던 이들은 '대신 사과하려면 대신 죽을 수도 있느냐'는 사과 대상의 한 마디에 잠시 지체된다. 하지만 '안경 쓴 남자'가 자기들 대신 이미 사과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안 이들은 누군가 죽어야 계약 이행이라는 단순 논리에 의거해 '안경 쓴 남자'를 목메달아 죽이고 만다.

잡혀갔던 사회복지사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 과거 시설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에 대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시봉과 '나'를 납치한다. 원장이 남긴 일기장을 회수해 오라는 그들의 말에 '나'만 풀려난다. 되돌아가지 않으면 시봉이 죽을 걸 알면서도 '나'는 시봉에게 죄를 짓기로 마음 먹고 자살을 시도한 시봉의 여동생을 찾아 병원으로 간다. 병원비를 내지 않고 야반도주한 둘은 집을 향해 걷는다. 그 길이 집을 향한 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가 창의적인 소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매력을 가졌던 이유는 정신병원에 대한 충실한 조사(혹은 경험)과 소설적 형상화 때문이었다. <사과는 잘해요>는 매우 조악한 소설이다.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연상시키는 초반 분위기에 푸코의 <감시와 처벌>, 그리고 카프카의 <심판>을 적당히 버무린 이 소설은 모든 것이 비평의 용이함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기계적인 소설이며, 소설적 형상화의 수준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약을 통해 순응을 내면화시키는 점, 의사 가운과 군화라는 뻔한 상징, 폭력의 명분 찾기용 사과 행위, 전도된 죄지음과 사과 등등 새로울 것이 전혀 없다. '안경 쓴 남자'를 목메다는 섬뜩한 행위나, 시봉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내버려두고 도망치지만 아무런 죄의식도 없는 점 등은 어떤 알레고리로 읽기에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 놀랍게도 작가는 문예창작과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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