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초상
그레이엄 그린 / 동문사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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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영국 남부 버크햄스테드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레이엄 그린은 아버지가 교장으로 있는 버크햄스테드 스쿨에 입학한다. 하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는 자퇴사유서를 남긴 채 학교에서 도망친다. 가족들은 그의 일탈 행위에 큰 충격을 받았고 6개월간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는데, 그때 그레이엄 그린을 담당한 의사가 글쓰기를 권하였다고 한다.

18세에는 공산당에 입당하지만 6주만에 탈퇴하고, 옥스퍼드 졸업 후에는 카톨릭으로 개종한다. 런던 타임즈에서 잠시 근무하다 1929년 <내부의 나>를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한다.

그레이엄 그린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본격소설과 대중소설로 구분지었는데, 본격소설에서는 신과 종교, 그리고 인간 본성 등의 철학적 주제를 탐구하였고 대중소설에서는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스파이 소설류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계가 모호했기 때문에 스파이 소설에서도 그만의 독특한 통찰력이 엿보이는 작품이 많았다.


<기억의 초상, 원제 The Captain and the Enemy>은 1988년 10월에 발표된 작품이다. 작가가 1991년 4월에 사망했기 때문에 이 작품이 그레이엄 그린이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은 다소 기이하다. 열두 살 때 자칭 아버지의 친구가 학교로 '나'를 찾아온다. 그는 아버지와 게임을 해서 이겼기 때문에 '나'를 데리러 왔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나'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모와 살고 있었다. '나'는 당시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기꺼이 '아버지의 친구'라는 대위를 따라 나선다. 대위는 철거 직전의 허름한 건물 지하실로 '나'를 데려가서 리자라는 여인에게 소개하며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도록 시킨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대위가 시키는 대로 했지만 그다지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에 따르면, 리자는 '나'의 아버지가 몸을 버려 놓은 후 차 버린 여자였다. '나'의 아버지는 임신한 리자를 윽박질러 유산하도록 만들었는데, 그때의 후유증으로 리자는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다. 그 즈음 '대위'가 리자를 만나 한 눈에 반한다. '대위'는 이런저런 사기 행각으로 먹고 살았는데, 리자에게만은 듬직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나'를 아버지에게서 빼앗아 리자에게 데려간 것도 말하자면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는데, '대위'는 사기를 쳐서 먹고 살았기 때문에 리자 곁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고, 언제 잡혀갈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리자는 아이를 무척 원했으므로 '나'를 아버지에게서 빼앗아 리자에게 데려 가 아들처럼 키우게 하면 외로움을 덜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 뒤로 리자와 '나'는 '대위'를 기다리는 생활을 한다. 대위는 이런 저런 사건들을 일으켜 경찰의 추적을 당하면서도 리자와 나에게 비교적 충실히 생활비를 보내온다.

'내'가 성년이 된 후의 어느 날, 대위가 파나마로 건너 갔다면서 큰 액수의 수표를 보내온다. '나'는 이미 성년이 되어 리자를 떠난 지 오래였고, 리자는 최근 교통사고가 나서 사망한 뒤였다. '나'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대위를 만나러 파나마로 떠난다. 한동안은 대위에게 리자가 죽은 사실을 숨길 수 있었지만 결국은 모든 사실이 들통난다. 대위는 리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그의 삶도 끝났다는 듯 모든 것을 챙겨 비행기에 폭탄을 가득 싣고 가다가 소모사와 군부에 의해 격추 당한다. '나' 역시 공항으로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한다. 모든 사고의 뒤에는 CIA와 결탁한 것으로 의심되는 퀴글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하지만 리자와 내가 지난 세월 동안 의지해 온 사람은 바로 이 거짓말쟁이에다 사기꾼이라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단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그런 것 없이도 잘 지내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라고 상상하는 바에 가장 가까운 존재는 바로 대위였다.


이 문구는 왠지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 에 삽입된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77711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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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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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차례로 무너지던 1995년 무렵을 일단 정치적으로는 형식적 민주주의 시대의 출발로, 경제적으로는 개발독재가 종언을 고하면서 한국 자본주의가 스스로 재생산구조를 갖추게 되는 시기로,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사회 변혁에 대한 열정으로 지식인의 머릿속에서만 형성되어온 민중이 걷잡을 수 없는 소비사회의 적나라한 대중으로 휩쓸려들면서 욕망에 얽혀가는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시작된다. 총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졌는데, 백화점에 매몰된 박선녀라는 이름의 룸싸롱 마담, 일본군대에 충성을 다하다가 해방 후에는 미군에 충성을 다하면서 한몫 잡는 김진, 청와대의 강남 개발 계획에 맞춰 모래땅을 몇바퀴씩 돌리며 땅값을 뻥튀기 해 한 몫 챙기는 심남수, 광주에서 주먹으로 일어나 서울 조폭계를 평정해 한 시대를 풍미하는 홍양태와 강은촌, 그리고 지금은 성남이 된 광주 단지에 집 한 칸을 마련하기 위해 천막을 치고 애를 쓰는 부부와 그들의 딸 임정아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느 시점에서인가 서로를 잠깐씩 스쳐 간다. 그들의 에피소드를 담담히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마치 한국사회가 파국을 맞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95년도는 묵시록 같은 한 해였다. 그 해, 동아리 신입생 중에 서초동에 사는 친구가 가입을 했다. 게다가 그 친구의 아버지는 국방부 고위간부였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 후배는 우리 동아리의 이름을 잘 못 알고 있었다. 역사 동아리인줄로 알고 가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왠일인지 제대로 된 이름을 알고도 탈퇴 하지는 않았다. 

그 해 어느 날, 뉴스에서 분홍색 백화점이 거짓말처럼 무너지는 장면이 방송 되었다. 그 친구는 다급하게 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가끔 가는 백화점이라고 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집에 계셨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하니까 뉴스 속 백화점이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 건물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 다리도 무너지고 대구에서 가스도 폭발했다. 발전만 외치면서 대충대충 덮어 왔던 것들이 한계에 다달아 여기 저기서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 재벌들이 형성된 과정이 서양의 역사와 어떻게 다른지 독특한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서양의 부르조아지는 자유로운 노동력을 얻기 위해 봉건지주 및 왕권에 맞서 혁명을 일으켰고, 피의 혁명을 통해 '자유'와 '평등'을 쟁취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념에 실천적이고 역사적인 성격이 깃들어 있는 반면, 우리나라 재벌들은 일제시대 때 땅부자가 별다른 저항 없이 부패한 정권과 결탁하여 독점 재벌이 되었기 때문에, 부르주아적 의식이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봉건지주적 양태를 종종 보인다는 것이다. 예전의 사회구성체 논쟁이 얼핏 떠오르면서 약간의 반발도 들었지만, 일견 공감가는 대목도 있었다.


교육부 관료가 '민중은 개, 돼지'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그 역시 '개, 돼지' 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텐데도, 상부구조의 수호자를 자처하다 보니 의식은 재벌의 그것을 탑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관료는 발언 직후 자신을 쉴드 쳐주는 자들이 없다는 데에 매우 당혹해 하며 자신 역시 '개, 돼지' 였음을 자각했을 것이다.


황석영의 소설을 읽으면 항상 착찹한 심사가 한동안 먼지를 일으킨다. 그래서 일정 주기가 되면 그의 소설을 찾게 된다. 착찹해 하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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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인의 만찬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2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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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의 여배우 제인 윌킨슨이 포와로에게 색다른 의뢰를 하는데, 그 내용은 '남편 에지웨어 경과 이혼할 수 있도록 에지웨어 경을 설득해 달라'는 것이었다. 제인 윌킨슨은 머튼 공작과 결혼하고 싶었는데, 에지웨어 경이 이혼해 주지 않아 골치를 썩이고 있었던 것이다.

포와로는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라 생각하여 에지웨어 경을 만나 보기로 한다. 그런데 에지웨어 경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매우 뜻밖이었다. 이미 6개월 전에 제인 윌킨슨에게 '이혼해주겠다'는 의사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의아해하며 돌아온 포와로는 다음 날, 에지웨어 경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비서와 집사는 제인 윌킨슨 양이 택시를 타고 와서 에지웨어 경을 살해한 뒤 돌아갔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곧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진술이 나오는데, 제인 윌킨슨은 에지웨어 경이 살해된 시각에 13명의 손님들과 만찬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자 제인과 비슷하게 생긴 용모로 제인을 흉내내는 칼로타라는 여배우가 용의 선상에 오른다. 하지만 칼로타 역시 베로날 과용으로 사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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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인의 만찬> 역시 '알고 보니 그랬다더라'와 산만한 구성이 조합되어 별로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크리스티의 작품 중 몇몇 작품은 뛰어나지만, 크리스티가 A급 추리소설가에 들지 못하는 이유는 수수께끼 풀이 게임을 독자와 공정하게 진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난이 극에 달한 작품이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이다. 원작은 <Lord Edgware Dies>이고, 최근에 출판된 책은 <에지웨어경의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사건의 실상은 이렇다. 제인 윌킨슨은 머튼 공작과 결혼하여 부와 명예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머튼 공작은 남편이 죽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는, 매우 보수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에지웨어 경이 '이혼해주겠다'는 편지를 보내온다.

제인 윌킨슨은 이미 에지웨어 경을 살해할 궁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편지를 받지 않은 것으로 한다. 그녀는 에지웨어 경이 이혼해주지 않아 화가 난다는 듯이 그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공공연히 이야기를 떠들고 다닌다. 그렇게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면 오히려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제인 윌킨슨은 자신을 기가 막히게 잘 흉내내는 여배우 칼로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칼로타가 만찬장에 가서 자신을 완벽히 연기하면 1만 달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칼로타는 이에 응해 만찬장에 가서 제인 윌킨슨을 연기하고, 제인 윌킨슨은 에지웨어 경을 찾아가 살해한다.

그리고 곧바로 칼로타에게 베로날을 먹여 살해한다. 칼로타가 동생에게 쓴 편지에 '1만 달러가 걸린 장난'에 대해 씌여 있었지만, 편지 한 장을 뜯어 내면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그런 제안을 한 것처럼 읽힌다는 것을 깨달은 제인 윌킨슨은 편지를 없애지 않고, 일부를 뜯어내기만 한다. 반듯하게 찢겨지지 않고 울퉁불퉁하게 뜯어진 이유는 she 부분의 s를 뜯어내 he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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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후 너는 죽는다 밀리언셀러 클럽 9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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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6시간 뒤면 스물 다섯이 되는 하라다 미오가 시부야역 부근을 걷고 있을 때, 젊은 남자가 다가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미오는 약속이 있어 바쁘다고 했지만, 남자는 '약속은 취소될 것'이라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했다. 남자의 말대로 미오의 친구는 약속을 잊고 있었다. 평소 약속 같은 것을 좀처럼 잊지 않는 친구였기 때문에 남자의 말에 무게가 실렸다.

케이시라는 이름의 그 남자는 자신이 비일상적인 사건을 예지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지금 막 예지한 내용은 '미오가 6시간 뒤 죽는다' 라고 했다. 미오는 섬뜩해졌다.

미오는 최근 자신의 주변에 나타난 스토커가 범인일 것이라 생각하여 케이시와 함께 경찰서로 향한다. 스토커가 의심되어 신고할 당시 담당 형사 사와키를 만나 봤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래서 둘은 누마타라는 이름의 스토킹 의심남의 집에 직접 찾아가 보기로 한다. 하지만 누마타는 고향으로 돌아간 뒤였다.

한편, 최근 여성이 살해된 두 건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특이한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두 사건 모두, 여성이 살해되기 직전에 자칭 예언자가 접근했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케이시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 시킨다.

이러한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미오는 자신이 살해되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케이시와 함께 칼을 막을 수 있는 방인복을 빌리고, 최후의 순간을 맞이할 장소로 건축중인 빌딩을 택한다. 마침내 빌딩에 사와키 형사가 도착하는데, 칼을 들고 미오를 향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와키 형사였다.

케이시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살해 당한 뒤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또다른 여성이 살해당하는 예지를 보고 그녀에게 경고했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미오 역시 첫번째 살해당한 여자친구의 친구였다.


ㅇ 시간의 마법사


플롯 라이터로 일하는 미쿠는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아버지가 폐암으로 사망한 뒤, 미쿠는 도쿄의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낮에는 사무를 보고 밤에는 극본을 습작했는데, 23살 가을에 쓸만한 작품을 하나 완성했다. 결말을 남겨둔 시점에 미쿠는 등장인물이 그녀의 분신 같이 느껴져서 본래의 결말 대신 해피엔딩으로 처리했다. 그 작품은 최종 심사에서 2위를 했고, 심사위원은 '행복한 결말이 무리한 전개'라고 평했다. 만약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자연스러운 결말로 처리하고 1등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오는 그 뒤로도 열심히 작품을 썼지만 좀처럼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최근에는 돈도 점점 떨어지면서 자신감도 고갈되는 중이다.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 하나를 맡게 되는데, <20세기 노스텔지어>라는 프로그램의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1972년 오키나와 반환이라든가, 1976년 록히드 사건이라든가 하는 등의 연표를 만들던 미쿠는 문득 1982년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미쿠는 꼬박 하루 동안 실종 되었다가 신사 뒤쪽 방공호에서 발견된 적이 있는데, 아무리 떠오리려 해도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미쿠는 고향집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심한다. 재충전 후 다시 시작해 볼 결심이었다. 

고향의 신사 뒤쪽 방공호에 간 미쿠가 아홉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만난다. 여자아이는 자신을 아사오카 미쿠라고 소개한다. 무척 귀엽고 예쁜 아이였다. 미쿠는 과거의 어린 자신에게 밥을 사주고 예쁜 옷을 사입힌다. 20년 전의 자신과 친해진 뒤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똑같이 하니 쌍둥이 같았다. 어린 자신과 좋은 추억을 잔뜩 만든 미쿠는 어린 미쿠에에게 돌아갈 시간이라고 말한다. 어린 미쿠는 '이렇게 예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기뻤다'고 말해준다. 미쿠는 과거로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지금의 나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o 사랑에 빠지면 안되는 날


남자를 수시로 갈아 치우는 미아가 심심풀이로 야마하 케이시를 만나 미래에 대한 예언을 듣는다. 야마하 케이시는 다음 주 수요일에는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충고한다. 사랑에 빠지만 무척 슬픈 일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다음 주 수요일이 왔고, 미아는 길을 걷다가 트럭에 한 남자가 치어 죽는 것을 발견한다. 의식을 잃으려던 미아를 한 남자가 부축해 준다. 미아는 흥분이 가라앉을 동안 그 남자와 함께 있었는데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자는 자신을 야마기시 신고라고 소개했다. 미아는 신고에게 점점 빠져들어가 야마하 케이시의 경고를 잊고 사랑에 빠지고 만다.

어느 날, 신고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또 다른 인격은 자신이 스즈키 히로시라고 했다. 미아는 트럭에 치어 죽은 남자의 혼이 신고에게 씌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실은 정 반대로 드러난다.


o 돌 하우스 댄서


프로 댄서를 지향하는 고사카 미호는 오디션에서 번번히 미끄러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기량이 꽤 늘어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될 수준이 되었다. 룸메이트 아사카와 함께 여러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미호는 때때로 데자뷰 현상을 경험한다. 미호는 자신이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예견하는가 하면, 룸메이트 아사카를 도와주다가 자신만 슬퍼지는 장면도 보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 덕에 취직을 하는 미래도 예견한다. 미호는 점점 춤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이 안타까왔지만 데자뷰 현상은 미호가 프로 댄서가 되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았다.

어느 날, 미호가 곰인형 마스코트를 산 박물관을 떠올린다. 미호는 그곳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본 기억이 났다. 부랴부랴 돌 하우스 뮤지엄에 간 미호는 그 날이 박물관의 폐관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뮤지엄 안에는 총 일곱개의 모형이 있었는데 그것은 미호가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슬퍼하고, 다시 힘을 내어 회사에서 혼자 춤을 추고 하는 장면들이 담겨져 있었다.

미호가 고등학교 때 이곳에서 모형들을 보았고, 그때는 자기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가 나중에 데자뷰 형태로 기억을 떠올린 것이었다.

미호는 이 박물관을 누가 만들었는지, 돌 하우스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았는데 관장은 자신의 숙모가 단 한명의 마지막 입장객을 위해 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마지막 선물을 주는데 상자 안에는 여덟 번째 모형이 들어 있었다. 거기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아이가 있었다. 매우 평온해 보이는 그 모형을 건내주면서 관장은 숙모가 한 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말을 전해준다.


o 3시간 뒤에 나는 죽는다


케이시 덕분에 목숨을 구한 미오는 언젠가 다시 케이시를 만나고 싶다는 바램을 실현시키기 위해 결혼식장에 취직한다. 5년 동안 열심히 일한 어느 날, 미오는 초대 손님 명부에서 케이시의 이름을 발견하고 흥분한다. 하지만 미오와 케이시를 만난 순간, 케이시가 예지를 본다. 그것은 3시간 뒤에 본인이 사망하는 예지였다. 예지라는 것은 미래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예지에 비춰진 장면을 바꿀 수 있을까? 둘은 필사적으로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o 에필로그 : 미래의 일기장


'나'는 퇴근길에 골동품 가게에서 다이어리를 하나 산다. 그 다이어리는 앞부분을 조금 썼기 때문에 매우 싼 값에 살 수 있었다. 다이어리를 열어보니 '오늘 골동품 가게에서 다이어리를 사서 집에 와서 열어보았다'는 내용이 씌여 있었다.

다음 날, 직장에서 떠안고 있던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어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와 다이어리를 펼쳐 보니 또 자신이 겪었던 일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나'는 이 다이어리가 미래를 예언하는 다이어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세번째 날, 미래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서 다이어리를 펼치니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내일은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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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이 나쁘지는 않다. 개똥철학같은 이야기일지라도, 그마저도 잊고 사는 요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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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외인종 잔혹사 -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주원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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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부터 '진보'라는 말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 단어는 보수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프레임의 덫에 걸려 전혀 다른 뜻으로 변질되어 가는 듯 하다. 진보 내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수구보수진영은 '진보 = 친노 = 종북 = 빨갱이' 라는 단순 무식한 프레임을 무한반복하여 읊조리고 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국민들의 뇌리에 이와 같은 도식이 아로 세겨지는 날이 올 것 처럼.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무식한 바람은 점차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진보의 뜻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 2.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 이 두 가지 뜻은 자의적으로 풀어 놓은 것이 아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진보를 입력하고 사전 검색 후 나온 결과를 그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


갑자기 왜 '진보' 라는 단어의 뜻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가 하면, 어느 순간 '진보를 자처하는' 진영 내부에서도 '진보'의 뜻에 대해 헤깔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진보를 곧 퇴폐적인 성향이나 건강하지 못한 정신상태와 동일시하는 부류가 생겨났다. '역사적 합법칙성'은 인식 불가능한 것이라는 패배주의는 '자본주의에 의해 피폐화된 인간군상들의 총합'이 '진보 세력'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망상을 낳게 한다.


<열외인종 잔혹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총 네 명인데 면면을 살펴보자. 장영달은 탑골공원이나 시골 읍내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군복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다니며 꼰대짓을 하는 부류이다. 윤마리아는 다국적 제약회사 글로벌 유나이티드의 계약직으로 데이비드교라는 신흥종교를 믿고 있다. 김중혁은 노숙자이고, 기무는 게임방 무전취식을 일삼는 자퇴아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첫째,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 않다는 점이고(윤마리아도 사실상 무급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다), 둘째, 이 사회의 모순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코엑스몰에서 벌어진 양머리들의 테러를 목격하고 휘말려 드는데 결론은 다소 생뚱 맞다. 김중혁이 양머리 보스로 오인 받아 기무의 총에 맞아 죽는 것이다. 경찰과 언론은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고 하고, 사건에 휘말린 이들 역시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제 다시, '자본주의에 의해 피폐화된 인간군상들의 총합'이 '진보 세력'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망상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러한 망상의 가장 큰 폐해는 억압받는 자들끼리의 총질을 신나게 보여주고 새로운 '총체성'을 보여주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건강하지 못한 인간군상들의 모습과 진보는 전혀 관련이 없다. 진보는 새로운 사회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자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위한 의식적인 노력의 총합을 일컫는다. 최하층계급인 노숙자로 전락한 뒤 어느 날 갑자기 반란을 일으킨다? 밥 타러 가기도 귀찮아 하는 정신상태의 그들이? 이것은 기존 진보세력에 대한 대단한 모욕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소설의 외피를 뒤집어 쓴다한들, 그 이야기는 진보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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