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생 소년 랜덤소설선 4
문순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쳐 오던 문귀남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연구실을 차분히 정리하고 정년 이후의 삶을 궁리하던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53년만에 듣는 친구의 목소리. 박수돌은 1951년 2월을 마지막으로 마을에서 사라졌었다. 수돌은 자신의 배다른 동생 수천의 소식을 알아봐 달라고 하더니 곧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어버린다. 걸려온 전화로 다시 걸어보니 <하나원>이었다. 그렇다면 수돌은 당시 북으로 넘어갔다가 이제 탈북하여 남으로 내려온 것일까.

귀남은 대학 이발관으로 가서 필식을 만난다. 귀남과 필식, 그리고 수돌은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였다. 필식은 수돌이와 엮여 봤자 좋은 꼴 못 볼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면서도 둘은 옛날 함께 자란 고향을 다시 찾아간다.


전쟁이 나자 똑똑하다는 평을 받던 젊은애들이 많이 산으로 올라갔다. 그 아이들이 무장을 했고, 경찰 가족에게 해꼬지를 했다. 그러자 경찰과 군인들이 몰려와 공비토벌의 미명 하에 마을주민을 학살한다. 

마을이 소개되고, 빈 마을로 피난을 가는 와중에 주민들이 하나 둘 죽어간다. 그 와중에 귀남과 두 살 차이 나는 순자고모도 불 타 죽는다. 귀남은 순자고모를 통해 처음으로 이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터라 그녀의 죽음이 사무쳤다.

할머니가 아버지의 첩이 가져다준 음식을 달게 먹고 돌아가신다. 귀남을 몹시 아껴주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귀남은 서럽기 그지 없었다.

그런 혼란한 와중에 가장 친했던 친구 수돌이가 산으로 간다. 얼마 뒤, 수돌이는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금이빨을 뽑아내어 귀남에게 우정의 징표라며 건내준다. 그 순간, 귀남은 수돌이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버지와 마을 주민들은 백아산으로 가면 형편이 나아질 줄 알았지만 막상 가보니 그곳 역시 죽음과 삶의 줄타기를 해야하는 지옥이었다.


고향을 둘러본 귀남이 필식에게 전쟁 때 왜 수돌이를 따라 백아산에 갔는지, 총을 쏴봤는지, 사람을 죽였는지 등을 물어본다. 필식은 이상하게도 총을 갖게 된 후부터 더 무서워졌노라고 말한다. 둘은 예전 피난갔던 곳이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렸을 적 배웠던 노래를 부른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뒤, 귀남은 수돌이의 전화를 기다린다. 하지만 수돌은 전화를 해오지 않았고, 하나원은 그가 이미 퇴원했음을 알려온다. 귀남은 수돌이를 만나 그가 꿈꾸어온 세상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걸어서 하늘까지>가 읽고 싶어서 인터넷 서점을 뒤졌는데 절판이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책을 집어들었다.

다분히 자전적인 소설 같은데, 소설적 완성도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작가의 역량이 모자라다거나, 불성실했다거나 그런 이유 같지는 않다. 과거의 강렬했던 경험을 소설로 풀어내는 작업이 너무 힘들어서 급히 마무리했다는 느낌. 그런 인상을 받는다.

커트 보네거트는 <제5도살장>을 쓰는데 20년이 걸렸다. 그는 <제5도살장>을 공상과학소설 형식으로 풀어냈는데, 리얼리즘 형식으로는 자신의 경험과 마주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품 속에서 귀남이 아버지와 나누던 대화가 인상 깊어 적어 둔다.


"만약에 말이다. 만약에 너한테, 힘이 센 두 친구가 있는디, 서로 자기 편이 되라고 헌다면 너는 어쩌겄냐?"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잠시 미적거렸다.

"너라면 어찌했겄냐?"

"힘이 더 센 친구 편이 되지요 뭐."

"그렇게 되면 다른 친구가 너를 가만두겄냐?"

"안 그러면...... 아무 편도 안 되면 쓰겄네요."

"그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맘대로 누구 편이 될 수 없으니 고민이제. 아무 편도 안 들어도 세상이 가만 놔두지 않는단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다."


누군가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학살당하고, 아무 편도 들지 않았다고 총살하는 야만의 시대를 다시 글로 기록하기가 오죽 힘들었겠는가? 소설에서 종종 보이는 공백은 그런 아픔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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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법정 동서 미스터리 북스 19
존 딕슨 카 지음, 오정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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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에드워드 스티븐스는 헤럴드 앤드 손즈 출판사의 편집인으로, 아내 마리 스티븐스와 이스트 70번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 필라델피아 교외의 크리스펜에 별장도 하나 가지고 있어서 때때로 주말에는 교외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느 날, 스티븐스가 고던 클로스라는 미스터리 작가의 원고를 검토하게 된다. 고던 클로스는 실제 일어난 살인 사건의 전말을 글로 재현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다만 그는 항상 자신의 사진을 책 머리에 크게 넣어달라는 이상한 요구를 하곤 했다.

스티븐스는 고던 클로스의 원고를 검토 하다가 사진을 한 장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아내 마리와 매우 흡사하게 생긴데다가 이름도 마리 도브리였다. 게다가 그녀가 끼고 있는 팔찌를 아내가 차고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고던 클로스는 그녀가 1861년 비소를 이용하여 다수를 독살한 혐의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희대의 살인마라고 기록하고 있었다. 얼마 뒤 원고를 다시 검토하던 스티븐스는 사진이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하고 아내에게 '혹시 원고에서 사진을 빼내지 않았는지' 묻지만, 아내는 전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관한다.


한편, 별장 이웃은 유서깊은 가문인 데스파드 집안이었는데, 최근 마일즈 데스파드 노인이 사망하여 장례를 치뤘다. 마일즈 노인에게는 세 명의 유산상속인이자 조카가 있었는데 마크, 이디스, 오그덴이 그들이었다.

그런데 장례를 치룬지 일주일여 지난 시점에 마크 데스파드가 퍼팅턴 박사라는 친구와 함께 스티븐스를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 그에 따르면, 자신의 백부는 단순한 위염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독살 당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첫째, 숙부가 마신 것으로 추정되는 컵에서 비소가 발견된 점, 둘째, 간호사의 몰핀 약 병을 누군가 손댄 점, 셋째, 집에서 일하는 헨더슨 부인이 '고풍스러운 옷을 입은 여인이 숙부에게 음료를 권하는 것을 봤다'고 진술한 점 등이었다. 하지만 사건에는 묘한 점도 있었는데, 고풍스러운 옷을 입은 여인이 벽을 통과해 사라졌다는 진술이 그랬다. 어쨌든 이 진술에 의해 유력한 용의자로는 마크의 아내 루시가 거론되었는데, 그녀는 가장무도회에 참가해서 잠깐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간 적은 있었지만, 곧 돌아왔기 때문에 알리바이가 입증되어 용의선상에서 제외된다.

마크, 스티븐스, 퍼팅턴 등은 시체를 해부해 독살된 증거를 잡으려 하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납골당은 텅 비어 있었다. 사건은 점점 괴기스럽게 변해가고, 스티븐스는 아내가 이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지나 않은지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사건의 해결을 위해 수수께끼의 소설가 고던 클로스가 등장한다. 그는 완전범죄를 저지른 뒤 스스로 죄를 실토하여 감옥에 가고, 감옥에서 수많은 범죄 기록을 연구하여 범죄에 있어 일가를 이룬 기묘한 사람이었다. 그의 등장과 함께 퍼팅턴이 낙태 시술을 해준 여자가 사실은 마크의 내연녀였다는 것, 그리고 그 뒤로도 그녀와의 관계를 지속해 왔다는 점 등이 밝혀진다. 그리고 그 내연녀가 바로 백부를 간호하던 간호사였으며, 유산을 얻음과 동시에 귀찮은 아내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백부를 살해하는 음모를 꾸몄다는 것도 밝혀낸다. 하지만 그 역시 죽음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어지는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오컬트적인 반전을 준비해 두고 있기에, 독자는 지나쳤던 사소한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려야 한다.


17세기 독살범과 꼭 닮은 아내, 사라진 시체, 벽 속으로 사라진 여인, 수수께끼의 소설가의 사건 해결, 그리고 이어지는 소설가의 중독사.

1937년에 발표된 <화형법정>은 작가의 특기인 밀실살인에 오컬트적 분위기를 덧씌워 괴기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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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스 문도스 밀리언셀러 클럽 6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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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식림>


150cm의 작은 키에 뚱한 외모의 미야모토 마키. 의약품과 화장품을 취급하는 '프랭탕'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동료 료코는 마키에게 고압적으로 굴었고, 사사키는 마키에게 "땀 냄새가 난다"며 면박을 주었다. 집에서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부모님 집에 오빠 내외가 얹혀 살기 시작했는데, 슬슬 조카가 커감에 따라 마키의 방을 탐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키는 어렸을 적 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1984년, 마키는 윗집 사는 스즈키라는 여자를 따라가서 어떤 문장을 시키는 대로 읽은 기억이 났다. 과자회사 협박사건의 범인들이 돈을 놓아둘 장소를 마키에게 읽게하여 녹음한 뒤, 이를 과자회사에 들려주었다는 것을 깨달은 마키는 자신이 중요한 사건에 개입되었었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그 뒤 마키의 태도가 변한다. 일터 동료들에게 받은 만큼 돌려줬고, 학창시절 자신을 놀렸던 동창에게 쏘아붙여주었다. 조카를 놀렸던 아이에게는 몰래 다가가 자신이 진짜 엄마라고 속삭여 아이를 공포에 떨게 만든다.


<루비>


노숙자면서 양복을 입고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도키오. 어느 날 루비라는 아가씨를 만난다. 그녀는 하룻밤 재워주는 댓가로 몸을 팔았다. 노숙자 그룹의 리더 이안이 루비와 자고 난 뒤 도키오의 차례가 왔다. 도키오는 루비가 노숙자들의 노리갯감이 되는 것은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루비에게 도망치자고 제안한 다음 날, 루비는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는다. 노숙자들이 모여있는 자리로 가보니 루비는 태연하게 머리를 감고 있었다.


<괴물들의 야회>


여성지 작가 미네기시 사키코는 다구치 유사쿠라는 남자와 9년째 불륜중이다. 그는 아내를 버리고 사키코에게 오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을 번번히 어겼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사키코가 다구치의 집에 찾아가 모든 것을 폭로하며 뒤집어 놓는다. 하지만 정작 다쿠치의 식구들은 사키코에게 떠나 줄 것을 요구할 뿐, 큰 충격을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전박대를 당한 뒤 누군가 다가와 "기분 풀렸어?"라고 묻는다. 다구치였다. 사키코는 그가 정말 자신이 9년 동안이나 사랑한 남자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사키코는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을 뿐 정작 그사람의 아픔에는 무관심한 루이코의 집에 찾아간다.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사키코는 목 메달아 자살한다.


<사랑의 섬>


야마모토 쓰루코, 요시에, 나오코 세 여자는 매년 타이뻬이, 서울, 상하이 등지를 골라 여행을 다니고 있다. 어느 날, 세 명의 여자가 진실게임을 한다.

먼저 나오코가 자신은 아버지에게 강간당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좋아했었다며 피학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다음으로 요시에는 자신이 레즈비언적 성향이 있음을 고백한다.

쓰루코는 어떤 섬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은 돈을 주지만 하룻밤은 성노예로 전락하는 섬에 대해. 나오코와 요시에는 이를 농담으로 받아들인다. 쓰루코는 올해도 해외여행 경비를 위해 섬에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부도의 숲>


아이코는 유명한 소설가 기타무라 게이치로의 딸이다. 기타무라는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그런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가 시인 아카기 쇼키치와 재혼한다.

기타무라 게이치로가 죽자 출판사에서는 아이코에게 회고담을 쓰도록 권유한다. 중요한 문학사적 자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코는 회고록을 쓸 생각이 없었다.

어느 날, 자신의 나이가 어느새 어머니가 이혼하던 시기의 나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이코는 주위 어른들이 자신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를 겨우 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독동>


절에서 어머니와 계부, 남동생과 살고 있는 게사코는 가족들이 싫었다. 특히 계부는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게사코는 절에 독초를 심었다. 그 독초로 무엇을 할 생각이라기 보다는 심는 것 만으로도 분이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추레한 남자가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다. 그 남자는 게사코가 독초를 심은 이유를 알 것 같다며 돈을 주면 아이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아이가 울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죽는다고 했다.

게사코는 아이를 빌린다. 계부가 멀리서 다가오자 아이만 두고 자리를 뜨자 곧 아이가 울었다. 아이에게 다가서던 계부가 즉사한다. 아이를 다시 아버지에게 데려가려던 게사코는 아이가 잘 따라오지 않자 위협한다. 아이가 울어버린다.


<암보스 문도스>


초등학교 여교사 하마사키는 교감과 불륜 관계이다. 그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몰래 쿠바의 <암보스 문도스> 호텔로 여행을 떠난다. 새롭고 낡은 세계, 즉 양쪽의 세계를 뜻하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 하마사키 반의 한 아이들이 산에 놀러갔다가 한 아이가 실족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귀국 날 그들의 불륜이 폭로되고, 교감은 사표를 낸 뒤 자살하고 만다. 하마사키는 사고에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조사를 한다.

죽은 아이가 살해된건지, 아니면 실족한 아이의 구조를 일부러 지연시켜 죽게 만든건지,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실종사건을 일으켜 이목을 집중시킨 뒤 자신과 교감의 불륜을 폭로하려 한건지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었다. 그때의 아이들은 중학교에 진학한 뒤, 5학년 때 느꼈던 흥분 따위는 잊어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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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이면 아이가 발레를 배우러 홈플러스 문화센터에 간다. 한 시간 배우는 건데도 꽤 좋아한다. 그러면 나는 그 시간 동안 서점에서 느긋하게 책을 고를 수 있다. 평화로운 시간이다. 보통은 두 권씩 책을 사는데 한권은 미스터리책, 한권은 순수문학책, 이렇게 산다. 이 책도 그때 산 책이다.

작가 기리노 나쓰오는 에도가와 란포 상과 일본 추리 작가 협회 상,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가로 여성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빼어난 작가다. <암보스 문도스>는 미스터리와 기담, 우화가 섞인 소설집으로 밤에 자기 전에 한 두편씩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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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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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나리 군락지를 끼고 있는 한 촌읍에 조그만 여자애가 살았다. 여자애 이름은 오산이. 아버지는 가죽점퍼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멋쟁이였고, 엄마는 보기드문 미인이었다. 집성촌 끝자락에 살던 그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일찌감치 바람 나서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오산이의 친구 남애 역시 집성촌 끝자락에서 아버지와 함께 가난하게 살았다. 남애 아버지는 술이 취한 밤이면 담벼락에 세워놓은 항아리 속에 들어가 노래를 불렀다.

어느 날, 둘은 물장구 치다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벌거 벗는다. 산이는 남애의 등에 있는 푸른 반점에 매료된다. 남애는 푸른반점을 부끄러워 했지만, 산이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산이는 남애를 사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잠시 뒤, 남애가 산이를 세차게 밀어내고 집으로 가버린다.

집으로 찾아간 산이에게 남애는 칼을 쥐어주며 닭의 목을 치라고 종용한다. 칠 수 없다면 가버리라면서. 산이가 닭의 목을 내리쳐 피가 사방에 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 남애는 산이를 만나주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오산이가 '꽃을 돌볼 여종업원 구함' 이라는 쪽지를 보고 화원으로 들어간다. 화원 주인은 말을 못했지만 사려깊은 사람이었다. 화원 주인은 산이를 채용하기로 결정한 뒤 간단한 인수인계를 해주고 농원으로 돌아간다. 대신 수애라는 이름의 동갑내기 아가씨가 화원으로 온다. 수애는 화원 주인의 조카였고, 휴가를 갔다 온 터였다. 둘은 곧 친해져 방을 함께 쓰는 사이가 된다.

산이가 사는 방 주인여자는 딸만 셋을 두었다. 큰 딸은 피아노를 치고 싶어했고, 막내 딸은 산이를 예쁘다고 생각해 산이 얼굴을 그리는 귀여운 아이였다. 하지만 주인여자의 남편은 툭하면 손찌검을 하고 아이들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패악질 중간중간 아들타령을 곁들이면서.

그동안 산이의 생일이 지나가고, 엄마로부터 편지가 온다. 엄마는 편지에 '이 어미를 안락사시켜다오'라고 썼다. 


화원에서 일하는 동안 두 명의 남자가 산이에게 관심을 나타낸다. 한명은 최현리라는 이름의 도시적인 이미지의 남자였다. 그는 온몸에서 자신감이 넘쳤다. 아무 여자에게나 데이트하자고 청할 정도로 뻔뻔하기도 했다.

다른 한명은 꽃을 찍는 남자였다. 그는 바이올렛 꽃을 찍으러 화원에 왔는데, 산이에게 더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바이올렛이 이렇게 시시한 꽃인 줄 몰랐다면서 산이 사진만 열심히 찍는다.

 

어느 날, 꽃을 찍는 남자와 우연히 재회한다. 남자가 산이에게 떠듬떠듬 고백한다. 산이는 그 고백 때문에 신열에 들뜬다. 

신열에 들뜬 그 시기에 산이 방 옆에 세들어 사는 청년이 불을 질러 자살을 시도한다. 전기기타를 치는 청년을 집안에선 탐탁치 않게 여겼다고 했다. 어느 날 밤인가는 경찰이 권하는 오토바이를 얻어 탔다가 겁탈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머리를 자른 산이가 예전에 남애 살던 집에 찾아간다. 남애는 수녀가 되었고, 그 집은 남애의 고모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신열이 내릴 무렵 산이는 남자를 찾아가지만 정작 남자는 산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무언가에 홀린 듯 산이가 최현리에게 전화를 건다. 최현리가 산이를 겁탈한다. 정신나간 것 처럼 거리를 배회하던 산이가 포크레인에 제 몸을 던져 살과 뼈를 상하게 하다가 포크레인 아가리 안으로 들어가더니 으깨진 팔꿈치를 감싸며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는 양을 하다가 눈물 젖은 얼굴을 푹 수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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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부터 간단히 버림받는다. 여자애에게 있어 아버지의 부재는 곧 '남성과의 관계맺기'를 배울 기회가 박탈되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최초로 욕망을 느낀 친구 남애 역시 산이를 밀어내는데, 그 과정에서 생명을 앗는 처참한 결단까지 요구받는다. 하지만 피가 튀는 그 행동 이후에도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가중처벌이다.

어머니는 생일날 먹는 미역국과 굴비를 차려준 뒤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나버린다. 생일날마다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게 성인이 된 산이는 아버지의 오토바이로 상징되는 도시로 나가, 어머니가 생계를 꾸렸던 미용일로 밥벌이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다. 그녀는 피로감을 느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은 이미 경험된 지옥이다.

그녀는 출판사 오퍼레이터를 욕망한다. 가능하다면 글도 써보고 싶다. 하지만 출판사는 그녀를 거절한다.


좌절된 욕망을 안고 그녀가 찾아간 곳이 화원이다. 말을 못하는 주인과, 역시 말을 못하는 화초들이 그녀를 받아들인다. 농원에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있다. 그들 역시 한국'말'을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녀는 화원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수애라는 친구를 사귄다. 하지만 수애가 친밀한 행동을 보이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 그녀를 밀어낸다. 그녀는 타인과 관계맺는 방법을 모른다.


바이올렛 꽃을 찍으러 왔다가 그녀의 사진을 찍은 남자가 고백하자 그녀는 신열에 들뜬다. 자신을 '예쁘다'고 말해주고, '의미 있는 사람' 이라고 알아봐준 최초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타인과 관계맺는 방법을 거의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남자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시효가 짧은 고백이었거나, 거짓고백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남자는 바이올렛 꽃도 별로라고 했다.


다른사람의 안위는 잘도 지켜주는 경찰이, 산이에게는 폭력을 가하려 한다. 요행 경찰의 폭력은 피하지만, 최현리의 폭행은 피하지 못한다. 그는 산이의 욕망을 '안다'고 했다. 산이도 잘 모르는 욕망을 그는 어떻게 그리도 잘 알까.


폭행당한 산이가 자신의 몸에 해를 가하다가 포크레인 아가리로 들어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노트였다. 무언가 끄적이려던 그녀는 곧 중단한다. 글쓰기가 그녀에게 구원이 되지 못함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얼마 전 다섯살 난 여자아이가 친아버지에게 발을 밟혀 걷지 못하는 상태에서 생활하다가 등을 짓밟혀 갈비뼈가 부러져 죽는 사건이 있었다.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지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어쩐지 세상 사는게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숙 소설을 읽으면 서럽고, 아프고,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나를 발견할 때 묘한 위로를 느낀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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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삶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3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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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로마 외곽의 빈민촌 피콜라상하이에서 태어난 톰마소는 말초적인 욕구 충족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창녀들이 몸을 파는 모습을 엿보며 자위하고, 동성애자 담임선생에게 몸을 팔아 돈을 벌려 하며, 촌에서 올라온 순박한 올리브 장수에게 시비를 걸어 돈을 우려낸다. 그것이 톰마소와 친구들의 일과이다.

그들의 악행은 점차 조직적인 범죄 양상을 띄어 가는데, 여행객의 짐을 훔쳐 장물아비에게 넘기거나 차를 훔쳐 타고 몰려다니며 주유소를 털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절친했던 렐로는 전차사고로 불구가 되고 다른 친구들도 일제 검거로 체포된다.

겨우 체포를 면한 톰마소가 다른 동네에서 이레네라는 아가씨를 만나게 된다. 썩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톰마소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이레네 역시 톰마소가 싫지 않았다. 그러나 톰마소가 이레네를 대하는 태도에서 신사적인 면을 찾긴 어려웠다. 처음 영화관에 데려간 날, 톰마소는 이레네의 몸을 더듬고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하는 등 그녀를 함부로 대했다.

어쨌거나 톰마소는 그녀에게 구애하여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기타를 멋드러지게 칠 줄 아는 친구를 대동하고 그녀에게 세레나데를 불러주러 간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에 휘말리고 마는데, 그 동네 사는 건달같은 우편배달부가 끈질기게 톰마소를 욕보이려 하자 화를 참지 못하고 칼을 휘두르고 만 것이었다. 톰마소는 체포되어 형무소에 갇힌다.


제2부


형무소에서 나온 톰마소는 자신의 집에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두 동생인 티토와 토토가 병으로 죽은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었지만, 아버지가 깨끗한 이나카세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이레네와 재회하여 다시 사귀게 된 것도 좋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운명은 톰마소의 편이 아니었다. 징병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결핵 판정을 받은 것이다. 톰마소는 포를라니니 병원에 강제로 수용된다.

그곳에서 톰마소는 베르나르디니라는 활동가의 죽음에 대해 듣게 된다. 톰마소는 생전 처음으로 타인을 위해 무언가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되고, 실제로 굴리엘미와 페초라는 공산당 세포의 도피를 돕게 된다.

톰마소는 병원 퇴원 후에도 공산당 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지부를 찾아가지만, 간부들이 횡령을 모의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어찌어찌 공산당에 입당은 하지만 톰마소의 생활에는 변화가 없었다. 예전처럼 극장에 가서 호모를 겁박으로 돈을 우려내 데이트 자금을 만들었고, 순진한 이레네에게는 손찌검을 하며 못되게 굴었다.

그러던 중, 피콜라상하이에 큰 물난리가 난다. 구조대원들은 마을 지리를 잘 알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톰마소는 주저하지 않고 구조에 참여하여 마을 사람들을 구조한다. 그날 물에 흠뻑 젖어 감기가 걸린 톰마소는 결핵이 악화되어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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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마소의 삶은 책 제목처럼 매우 폭력적이다. 그런데, 조금만 주의깊게 보면 톰마소 주위에는 본이 되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부모세대는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뿐 자식 교육에 관심이 없고, 심지어 몸을 팔아 돈을 벌기도 한다. 선생은 학생을 성적으로 남용하여 욕망을 채우는 변태이고, 창녀들은 동네 아무곳에서나 몸을 판다.

그런 톰마소가 이레네를 만나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찰나이기는 하나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이 제시된다. 하지만 '또 다른 삶' 역시 학습과 준비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는 성당에 가서 신부에게 '결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답변에 만족한다. 로마카톨릭으로 대표되는 기존 질서에 편입되기 위해서 톰마소는 신부에게 '필요 서류'를 물을게 아니라, 미사와 세례로 표현되는 제의에 참여했어야 했다. 하지만 톰마소는 그러지 않았다. 

다음으로 톰마소는 이레네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할 줄 몰랐기에 성적 대상으로만 대했다. 세레나데를 부르러 갔다가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더라도 톰마소의 '또 다른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2부에서 톰마소가 집에 돌아왔을 때 톰마소는 번듯한 아파트에서 또다시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깨끗한 주거환경과 주변의 점잖은 이웃들 덕에 자신도 중산층에 편입되었다는 환상을 품게된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결핵요양병원으로 팽개치고 만다.

병원에서 톰마소는 공산당 활동가 베르나르디니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사망한 사람이었다. 톰마소는 그가 몸담았던 공산당에 가입하지만 그곳은 이미 협잡꾼과 부패한 자들이 득실거렸다. 이 점은 매우 상징적인데, 작가는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이 그 이데올로기의 깃발 아래 모인 사람들의 정당성까지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작가는 민중이 순진함과 폭력성 모두를 지닌 존재이며, 그들이 비참한 삶에서 탈출하도록 돕는 것은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영웅적 행동을 통한 각성'임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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