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스톰레이지 제우미디어 게임 원작 시리즈
리처드 A. 나크 &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지음, 구세희 옮김 / 제우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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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즈샤리가 몰락한 이후 새로운 수도 다르나서스는 두번째 세계수인 텔드랏실 위에 건설되었다. 나이트엘프는 대사제 티란데 위스퍼윈드에 의해 다스려졌는데, 최근 다르나서스에 여러가지 문제가 생겨 조속한 해결이 요구되었다.

첫번째 문제는 텔드랏실이 점차 약해진다는 것이었고, 두번째 문제는 에메랄드의 꿈으로 들어간 말퓨리온 스톰레이지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첫번째 문제의 해결은 대드루이드 판드랄, 타우렌 최초의 드루이드 하뮬 룬토템, 그리고 신실한 나날렉스 등 드루이드들이 모여 텔드랏실을 치유하는 주문을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드루이드들은 모든 힘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텔드랏실이 치유되고 있다는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자 지쳐갔다.

두번째 문제인 말퓨리온이 깨어나지 못하는 문제는 머리에 뿔이 돋아난 드루이드 브롤 베어멘틀과 대사제 티란데 위스퍼윈드가 에메랄드의 꿈으로 직접 찾아가 해결하기로 했다.


한편, 오크여전사 투라는 반복적으로 꿈을 꾸는데 그 내용은 오크 영웅 브록시가르를 나이트엘프 말퓨리온 스톰레이지가 죽이는 꿈이었다. 브록시가르는 필멸자임에도 불구하고 살게라스의 무릎에 상처를 내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영웅이었다. 그는 세나리온이 축복한 나무 도끼 한 자루를 무기로 사용했는데, 그 무기는 악마조차도 무서워하는 권능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그 도끼를 가진 이가 투라였고, 투라는 말퓨리온 스톰레이지를 찾아가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렇다면 말퓨리온은 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말퓨리온은 에메랄드의 꿈에 들어갔따가 악몽군주에 의해 사로잡혀 두 눈을 제외한 온몸이 나무 가시에 찔리고, 결국 나무로 변해 온몸이 뒤틀리는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말퓨리온은 긴 시간 동안 악몽군주에게서 탈출하기 위해 브록시가르의 도끼를 가진 자에게 사실과는 다른 꿈을 전달하고 있었다. 브록시가르의 도끼를 가진 자는 말퓨리온을 복수의 대상으로 오인하여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찾아와 도끼를 휘두를 것이고, 그 도끼가 악몽군주의 나무뿌리들로부터 말퓨리온을 자유롭게 할 것이었다.

선량한 오크를 속인다는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말퓨리온은 자신이 풀려나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는 사실에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에메랄드의 꿈으로 들어와 자신을 찾을지도 모를 티란데와 의사소통하기 위해 뿌리 하나를 악몽군주 모르게 땅속에서 은밀히 키우고 있었다.


티란데와 브롤 베어멘들이 인간 지도제작자 루칸 폭스블러드를 만나게 된다. 루칸 폭스블러드는 과거 이세라의 첫번째 배우자이자 타락한 용인 에라니쿠스와 관계가 있어 임의로 에메랄드의 꿈을 드나들 수 있었다. 에메랄드의 꿈으로 간 이들은 생명의 위상 알렉스트라자와 배우자 코리알스크라즈, 그리고 에메랄드의 꿈을 다스리는 이세라 등과 연합하여 악몽군주에 대항한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진 악몽군주의 정체는 자비우스였다.

투라의 도끼에 의해 풀려난 말퓨리온까지 합세한 덕분에 자비우스가 판드랄을 현혹해 텔드랏실을 파괴하려는 계획과 스톰윈드를 비롯한 모든 도시를 악몽으로 공격하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간다.

일시적으로 승리는 했지만 악몽군주 뒤에 또다른 어둠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두려움으로 남겨둔 채, 말퓨리온과 티란데는 부부가 된다. 용들은 텔드랏실에 축복을 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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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래프트 크로니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때문에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게임만 했던 유저들도 연대기를 일독하지 않는 한, 도대체 이 스토리가 게임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하물며 청동용 노즈도르무가 시간을 조정하여 미래 영웅을 과거로 불러들이는 상황까지 알게되면 요령부득이다.

과거 게임을 했던 시기(불타는 성전) 정도의 이야기를 읽고 싶었으나 <스톰레이지>도 한참 뒤의 얘기라 일단 연대기 1권을 주문했다. 청동용 노즈도르무의 역할을 이 책이 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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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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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고장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려는 시나는 밥 딜런의 노래 <Blowin' in the wind>를 흥얼 거린 것을 인연으로 가와사키라는 이웃과 사귀게 된다. 가와사키는 스스럼 없는 태도로 나를 대하더니, 대뜸 서점을 함께 습격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옆방의 옆방에 사는 외국인에게 '대사전'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아무리 좋게 들어도 강도짓이었으므로 시나는 한동안 그의 계획이 얼토당토 않은 짓이며 함께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뒤 시나는 모델건을 들고 서점 뒷문을 발로 차며 'Blowin' in the wind'를 반복해서 부르게 된다. 잠시 뒤 가와사키가 서점에서 나왔고,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대사전'이 아니라 '대법전' 이었다.


2년 전, 부탄에서 온 도르지와 동물 병원에서 일하는 '나'는 한적한 공원에 놀러갔다가 동물들을 학대한 뒤 잔인하게 살해하는 혼성 3인조의 범행 내용을 엿듣게 된다. 주소가 적힌 지하철정기권을 분실하고, 이것을 범인들이 습득하여 사는 곳까지 노출되자 '나'와 도르지의 평범했던 삶은 한순간 망가지고 만다.


작가는 2년 전 일어난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를 차례대로 반복해서 들려준다. 2년 전 이야기가 동물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혼성 3인조 범인과 '나'의 간극이 좁혀지며 긴박감을 더하는 구조라면, 현재의 이야기는 왠지 태평스런 분위기다.

HIV 바이러스, 동물학대, 부탄과 불교의 윤회사상,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는 것 등 몇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며 전개되는 두 이야기가  결말에 이를 즈음에 하나의 슬픈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그 때 어쩐지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가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가는 <골든 슬럼버>에서도 비틀즈의 노래 <골든 슬럼버> 를 테마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그 이미지를 훌륭히 작품에 투영시켜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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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시네마 한국시나리오걸작선 84
유미리 지음, 우병길 각색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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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시네마>


모토미의 가족이 20년 만에 모였다. 영화 촬영 기자재가 집 안으로 들어왔고, 감독은 이런저런 주문을 해대며 지시를 내리기 바쁘다.

모토미의 여동생은 성인 비디오에 두 번 주연으로 출연했고, 이따금 CM에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별볼일 없는 배우다. 어느 날, 얼빠진 감독이 그녀에게 가족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픽션도 아닌"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하자 그녀는 어엿한 배우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가족을 설득해 한 자리에 모았다. 그리고 지금 얼빠진 가족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터무니 없는 가격의 선물을 선사하며 자기 돈 쓰기 바쁜 위인이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견디지 못하겠다며 처자식 있는 후지키와 관계를 갖기 시작했다. 남동생은 성인이 되지 못한 채 빌빌거렸다.

주인공 모토미는 가족과 떨어진 뒤 화훼업체에 취직해 나름의 커리어를 밟아왔다. 그래서 이제 독립된 혼자만의 생활에 만족해 하는 중인데, 이런 되지도 않는 가족 영화 촬영에 동원되자 황당한 심정이었다. 감독은 께느른한 태도로 영화를 촬영했고, 실제 필름이 돌아가고 있는지 의문일 정도로 엉망인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영화 촬영에 집중할 수 없던 모토미는 남자친구 이케와 헤어진 뒤 후카미 세이치라는 늙은 도예공을 찾아간다. 그는 페티시즘에 빠져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여성의 둔부를 찍어대는 엉뚱한 늙은이였다. 하지만 그 늙은이 마저 다른 여자를 집안에 끌어들인 것을 알게된 날, 모토미는 문득 어머니의 말을 떠올린다. "이걸로 너도 혼자가 된 거야, 집을 빠져 나온 거라구".

3월의 끝이었고, 모토미는 썰물같은 바람에 떠밀려 갈 것만 같아 바람과 타협하기 위해 몸을 흔들었다.


<한여름>


여자는 집에서 나온지 사흘째에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녀와 함께 사는 남자는 3년째 두 아들이 기다리는 교외의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그는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

여자는 문득 상념에 빠진다. 중2때가 생각난다. 그녀는 그 해 여름부터 툭하면 학교를 빠지고, 급기야 등교거부에 돌입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바람기를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 나가면서 그녀에게 같이갈래, 아니면 여기 있을래라고 물었다. 여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집에 남게 되었다. 부모가 내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그때 버린 것 같다.

아버지의 정부가 그녀에게 브래지어와 옷을 사주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인가 정부가 사라졌고, 그 뒤로 몇명의 여자가 집을 거쳐갔다.

현실로 돌아온 그녀가 스토커 생각을 한다. 사흘 전 스토커를 따라 그의 집에 갔다. 스토커는 그녀의 존재를 견디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돌아가 주렵니까? 역시 나는 여자랑 같이 살 팔자가 아닌 모양입니다. 게다가, 당신이니까 하는 말인데, 여자 뒤를 밟고 싶고, 뒤를 밟고 있는 편이, 그러니까 음, 발기합니다" 라는 어처구니 없는 변명을 중얼거렸다. 

집에 다 온 여자는 문을 열고 잠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남자는 여자와 헤어지면 죽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곧 여자는 웃는다. 그가 죽었을리가 없다. 웃음은 여자를 옴싹달싹 못하게 하려 한다. 웃음이 여자를 완전히 덮쳐 버리고, 내려 쪼이는 한낮의 햇살 아래로 삼거리가 여자 앞에 한없이 뻗어 있다.


<그림자 없는 풍경>


전학생 야스다 리나에게 마유미가 말을 건다. 마유미는 '가능하면 그녀가 자기한테만은 마음을 열어주면 좋을텐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리나는 이렇다할 대꾸를 하지 않는다. 마유미를 꺼려하는 태도는 아니었지만 굼뜨다는 느낌이다. 마유미는 이상하게 가학적인 심정이 되어 리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친구들과 함께 리나의 팬티를 벗기려 했고, 수영장에 빠뜨려 흠뻑 젖게 만들었다.

담임 다나카는 리나의 모습을 보고 잠시 놀라는 듯 했지만, 실수로 빠졌다는 아이들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방과 후 마유미는 다시 리나에게 치근덕 댄다. 벽쪽으로 몰아부치는 과정에서 리나의 머리에 큰 상처가 생긴다. 피가 흘러 겨드랑이로 흘러 내리자 깜짝 놀란 아이들은 리나를 양호실로 데려간다.

교장은 암묵적으로 폭력사건이 없도록 처리하라고 지시하고, 담임은 아이들에게 폭력이 없었다고 주지시킨다.

양호실에서 깨어난 리나는 센다이 역에서 엄마가 '여기서 꼼짝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라고 신신당부한 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도서실 창문으로 보이는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능목, 그네, 정글짐이 긴 그림자를 한없이 늘어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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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일그러진 가족, 기형적인 남녀관계,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심정, 차별과 왕따 등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다분히 그녀의 체험을 기반으로 쓰여진 것 같다. 

작가는 부모의 별거로 어린 시절 상처 입었고, 재일교포 2세로 일상적인 차별을 겪었다. 그 결과 잦은 자살미수로 여러 차례 정학 처분을 받다 고교에서 퇴학 당한다. 

잠시 연극 활동도 했으나 실어증을 앓는 통에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가 찾은 돌파구가 문학이었다. 17세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하여 1993년 <물고기의 축제>로 일본 최연소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 수상했다. <풀하우스>와 <콩나물>로 113회, 114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오른 뒤, 소설집 <풀하우스>로 제24회 이즈미 교카 상과 노마 문예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중편 3편이 실린 본 작품으로 97년 일본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다. 

재기발랄한 문체와 내면 풍경을 그려내는 솜씨는 뛰어나지만, 의식의 흐름에 자주 의존하다 보니 구성과 줄거리가 주는 안정감은 다소 부족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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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커피
원재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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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는 클래식을 위주로 하는 FM 라디오 채널의 DJ를 맡고 있다. 어느 날, '나'에게 한 여자가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한다. 그녀는 '나'와 같은 체육관에서 운동을 했다. 남자들은 그녀에게 눈길을 빼앗겼다. 그러므로, 그녀의 제안은 '나'에게 있어 다소간의 두근거림을 선사했다.

그날 '나'는 커피를 마시고 난 뒤 아끼는 만년필을 테이블에 두고 왔고, 그것을 습득한 그녀가 다시 전화를 걸어온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나'와 그녀는 햇살 아래서, '아침에 만나 모닝 커피를 마시'는 사이가 된다. 

한동안 담백하고 건전한 만남을 이어가던 둘이 처음으로 영화를 본 날, 둘은 발작적으로 키스를 하게 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둘의 관계에 정념이 끼어들게 된다. '나'는 그녀를 '파랑'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한편, '나'는 그녀와의 만남을 반복할수록 어렸을 적에 헤어진 정희 생각을 하게 된다. 정희는 정희 엄마가 교도소에서 낳았다고 했다. 행실이 올바르지 못한 정희 엄마가 춘천에서 교통사고로 죽자, 중동에 돈벌러 나갔던 정희 아버지가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돌아오기로 약속한 날짜가 되어도 정희 아버지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마을 사람들은 정희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희 자매를 돌봐주던 마을 사람들의 호의가 차츰 옅어졌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정희는 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는 편지를 남겨놓고 마을을 떠났다. 정희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녀가 누군가에 의해 구조되어 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녀와 소년 시절에 나누었던 우정이 풋사랑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정념이 끼어든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처음에는 '나'와 파랑의 관계가 파국을 맞는다. 하지만 헤어짐은 길지 않았다. 아내가 '나'의 변화를 눈치채고 캐나다로 생각을 정리한다며 출국하면서 아내와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다. '나'는 그 시기에 파랑과 동거를 한다. 꿈과 같은 시간이 흐르고 아내가 귀국하는 날, '나'는 파랑과 일본에 가기로 결심한다. 공항에서 파랑과 조우하기 직전, 나는 차에 치이고 의식을 잃는다.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린다. 잠깐 졸았나 보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시려고 타놓았던 모닝 커피가 차갑게 식은 것 외에는.

전화를 건 사람은 그녀였다. 그녀는 '내'가 만년필을 두고 갔다고 했다. 책상을 바라보니 만년필은 단정하게 책상 위에 놓여져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름이 뭔지, 언니가 있는지 등을 대뜸 묻는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은 김미희이고, 언니가 하나 있었는데 어렸을 적 눈 속에서 길을 잃어 사망했다고 대답한다. '나'는 언니 이름을 묻고, 그녀는 '정희'라고 답한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그녀에게 만년필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고 답한 뒤 전화를 끊는다. 등 뒤로 잠시 잃어 버린 나의 이름을 부르는 듯이 또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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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의 <모닝커피>는 라디오독서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들었던 소설이다. 성우들이 내용을 축약하여 드라마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들려주고, 작가를 평론가가 인터뷰하는 순서가 뒤따르는 식이었는데, 세종시에서 인천으로 가는 국도에서 흥미진진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만, 프로그램에서는 결말 부분의 반전을 암시만 하고 들려주지 않아, 내처 궁금해 하다 읽게 되었다.

작가는 본래 시인으로 <모닝커피>는 소설로서는 처음 펴낸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시어처럼 아름다운 문장이 작품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반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과 구성의 기교는 다소 부족함이 느껴진다.

소설의 결말은 여러가지로 해석할 여지를 남기는데, 이와 유사한 구성의 소설로 송하춘의 <갈퀴 나무꾼들>이 생각난다. 안정된 중년의 남성이 외도의 백일몽을 꾸는 내용이다. 불륜을 소재로 한 소설은 작가의 능력에 따라 속되게 느껴지기도하고, 그렇지 않고 담백하게 읽히기도 하는데 <모닝커피>는 정념을 개입시키면서도 어린시절 헤어진 풋사랑의 이미지를 중첩시키는데 성공하여 속되게 읽히는 것을 교묘히 피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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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박상우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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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자정, 30여평 정도의 실내. 록음악과 담배 연기가 가득 차 있다. X표시가 그려진 셔츠를 입은 남자, 보랏빛 립스틱, 샛노란 헤어밴드, UCLA 티셔츠를 입은 외국인, 검은선글라스, 물빛 원피스, 그리고  Ω 목걸이를 한 남자가 한 테이블에 모여있다. 이들은 메모패드에 펜으로 글씨를 써 의사소통을 하는데, 종잡을 수 없는 감각적 언어들을 맥락 없이 주고 받는다. 성적욕망, 쿠데타, 살육, 카니발... 그런 내용의 말들을 주고 받던 끝에, 카타콤으로 가자는 데 의견이 일치된다. 저주받은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지하 묘지, 그곳은 종말을 뜻하는 곳이 아닌가.

카타콤에는 뭉크의 그림이 기괴한 형상으로 변조되어 벽에 걸려 있었고, 그곳에서 물빛 원피스 입은 여자 - 오늘 자신의 아이를 유산시킨- 가 약을 먹는다. 검은 선글라스는 자신의 친구를 살려달라며 외치며 주위를 둘러본다. 그녀는 모두 사라지고 Ω 만 남았음을 깨닫는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빛이 아니라 소리로 다가오는 아침, 구원이 아니라 재앙을 알리는 불길한 경고음 같다.


<내 혈관 속의 창백한 詩>


손바닥에 검은 구멍이 나 있다. 뼈와 피와 혈관들이 들여다 보인다. 잠시 후 검은 물체가 손바닥에서 빠져나온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검은새다. 대략 그런 꿈을 꾸다 깨어난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386컴퓨터, 중형냉장고 등이 보인다. 동거하던 은지의 방을 떠난 지 사십구일만에 되돌아와서 잠이 들었다 깨어난 터다.

형이 오토바이에 다쳐 생사를 넘나들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술을 마시고 은지의 방에 왔다. '엄마'와 '어머니'는 엄연히 다르다. 생모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나'에게 형의 성공을 위해 대학을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형은 고시공부를 준비했고, '나'는 비뚤어졌다. 내가 잠이 들면 '어머니'는 형에게 영양보충을 시켜줬다. 형은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

그러다 은지를 만나 동거했다. 은지는 언제나 돌발적이고 기습적이며 일방적으로 성행위를 요구했다.

은지가 방으로 돌아온 나를 발견하고 발작적으로 화를 내며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갔다. 은지에게도 형제가 있었다. 희진이라는 여동생이었다. 희진을 찾는 남자가 찾아왔지만 은지는 모른다고 답변하며 남자를 돌려보냈다.

다음 날, 은지가 손을 다쳐 붕대를 친친 감고 방으로 돌아온다. 그 손으로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동안, '나'는 은지를 형으로 착각한다.

은지가 지쳐 잠이 들자 '나'는 그녀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 24시간 영업하는 해장국집으로 간다. '견딜 만하다고 하니까/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뭐' 따위의 시를 읊조리며.


<붉은 달이 뜨는 풍경>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난 것은 4월 말경이었다. 최근 잘나가는 여성 시나리오 작가 인터뷰 자리였다. 시나리오 작가는, 후배 시나리오 작가를 남자에게 소개키켰다. 남자는 다소곳한 후배 작가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후로 만남이 있었고, 육체관계가 이어졌다. 여자도 남자가 좋은 눈치였다. 그녀는 남자 경험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여자가 작업을 위해 저수지가 있는 시골의 별장으로 간다. 남자와 여자는 음성메시지를 통해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녀는 작업이 끝날 때까지는 만남을 유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날, 남자는 여자가 보고 싶었다. 음성 메시지에 '만나러 가겠다'고 남긴 뒤 일방적으로 그녀의 별장을 찾아간다. 가는 동안, 남자는 여섯 명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한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여자를 갈아치웠고, 여자가 더럽다고 했다. 그녀의 생모는 동성애자였다.

목적지 부근에서 남자는 여자의 음성 메시지를 듣는다. 그녀는 무작정 자신을 찾아오는 남자가 무책임하다고 했다. 그날, 남자는 여자가 설명한 지리적 특성을 바탕으로 별장을 찾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어둑어둑한 밤하늘 아래, 두 여체가 알몸으로 서로를 껴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두 명 모두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물 그림자를 위한 산문시>


남자가 십구일만에 여자의 집에 방문한다. 남자는 포도주를 찾은 뒤, 햄과 치즈가 겹쳐진 안주에서 치즈만 먹는다. 여자는 '오늘은 햄까지 먹으라'고 말한다.

여자는 오늘 '푸른 소리' 레코드점에 임시휴업 게시판을 건 뒤 산부인과에 갔다 왔다. 두번째 중절이었다.

남자는 구질구질한 말들을 한바탕 늘어놓으며 술을 먹는다. 그는 "그만 갈게"라고 말한 뒤, "따라오지 마"라고 덧붙인다. 여자는 왜 그가 "따라나오지 마"라고 하지 않고, "따라오지 마"라고 하는지 궁금하다. 얼어붙은 그녀의 맑고 투명한 영혼에 소복이 눈이 내려 쌓인다.


<내 마음의 옥탑방>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그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형의 소개로 취직을 해 마음에도 없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백화점을 상대로 하는 레포츠용품 영업 일이었다. '나'는 영업실적 확인을 위해 백화점 '위'에 올라갔다가, '아래'로 내려오는 일에 정신적 공황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백화점의 안내 데스크 직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손가방을 맡겼던 일을 빌미로 그녀와 차를 한잔 마셨고, 그녀와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 이름은 주희였다.

그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귀던 어느 날, '내가 주희에게 어떤 존재'인지 묻는다. 그녀는 별다른 설명 없이 '나'를 그녀의 집으로 데려 간다. 옥상 위에 위치한 그 방을 그녀는 '옥탑방'이라 불렀다. 그녀는 옥탑방에서 지상을 내려다 보며 '지상의 주민이 되어 미물스럽고 속물스러운 세계에 안주하는 꿈'을 꾼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옥탑방 마당에 레포츠 용품을 펼쳐 아담한 별장을 만들어 주었고, <시지프의 신화> 책도 선물해 준다. 그녀는 그런 '나'의 행동에 무척이나 기뻐한다. '내'가 그녀의 방에서 자고 오는 날이 많아지자, 형과 형수는 은근히 '나'의 독립이 실현되려나 하고 기대하는 눈치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충만한 시간들은 지나가고, 그녀와 나의 삶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5일간의 휴가를 갔다온 주희는 다른 사람이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소아마비 동생은 이모집에 맡겼다고 했다. 그녀가 옥탑방에 돌아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고, '나'는 그녀가 없는 옥탑방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녀가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해보았지만, 그녀는 옥탑방에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시를 한편 남기고 옥탑방을 떠난다.

그녀가 백화점을 그만 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나'는 그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그녀는 편지에 '평생 옥탑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당신과 나의 인생을 상상하기 싫었다'고, 그리고 '옥탑방에서의 당신과 나의 기억을 영원이 간직하는 길은 떠나는 길 밖에 없었다'면서 '내가 사랑했던 시지프여 안녕' 이라고 끝을 맺는다.

얼마 뒤 '나'는 형의 중매로 결혼을 한다. 가끔 '나'는 그녀의 편지를 떠올리며, 혹시라도 그녀를 마주치게 된다면 '자기 운명에 당당하게 맞설 줄 아는 행복한 시지프의 얼굴'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말무리반도>


주인공 '나'는 순수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생계 때문에 건축도면 따위를 그려왔다. 건축경기가 좋던 실절이라 사업은 번창했고, 아내는 '몇년만 더 건축도면을 그리고 뜻대로 하라'며 '나'를 설득했다. 그게 몇차례 반복되는 동안 10년이 흘렀고, 건축경기가 사그라 들면서 사업 역시 쪼그라든다. 모아둔 돈은 아내가 처남과 사업을 벌이다가 모두 탕진해버렸고, '나'는 아내와 이혼한다.

이혼한 뒤 친구의 별장을 찾아간다. 강원도 깊숙한 곳에 위치했는데 마을 이름이 바다윗말이었다. 부근에는 금강산 건봉사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우연히 아름다운 용모의 마을 처녀와 조우한다. 그녀는 선선히 나와 술을 마셨고, 자기 얘기를 털어 놓았다. 그녀의 부모는 실향민이었는데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강원도 산골에 정착한 것이었고, 그녀의 언니는 그런 부모 밑에서 답답해 하다가  마을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을 우물에 투신하는 것으로 풀고 만다. 

그녀와 말들이 바다로 일제히 뛰어가는 형상을 한 말무리반도를 보고온다. 그녀가 '나'에게 자신을 데리고 멀리 떠나달라고 말한다. '나'는 그녀에게 시간과 장소를 알려준다.

약속시간을 30분 남긴 밤 11시 30분, 안개가 자욱한 바다윗마을 풍광을 보며 '나'는 이것이 모두 허구는 아닌지, 깊은 환상은 아닌지 의심한다. 그러다 문득 여기가 원점이라는 생각이 들자 차를 출발시켜 바다윗말을 떠난다.  


<깊고 푸른 방, 깊고 푸른 빵>


어느 날 나는 '푸른 방'에서 깨어난다. 문은 바깥에서 잠겨 있었고, '나'는 나갈 수가 없었다. 바깥에는 幻이 있었는데, 幻은 '나'에게 빵을 제공한다. '나'는 빵을 먹지 못한다. 어렸을 적, 아버지를 속여 빵을 얻어낸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나에게 그/렇/게/거/짓/말/을/하/다/간/늑/대/한/테/물/려/죽/고/말/거/다. 라고 선언하고, 그 뒤로 '나'는 빵을 떠올리면 늑대의 이빨에 물어뜯기는 것이 연상되어 먹지 못한다. 

성년이 된 뒤에는 여자친구가 매번 만들어주는 빵을 먹지 않았다가 그녀가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결국 나는 어짜피 거짓의 세계로 고통을 받느니, 내가 직접 거짓의 세계로 뛰어들기로 결심하고 소설가가 된다. 그런데 푸른 방에 갇힌 지금 빵 외에는 먹을 것이 없는 것이다.

며칠을 굶다 마침내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지만 아무것도 먹지 못해 힘을 쓸 수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빵을 먹고 힘을 얻어 탈출에 성공한다. 여섯 밤, 일곱 낮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거짓과 참, 현실과 환이 연결될 수 있으되, 그 연결고리가 전적으로 사랑에 힘입게 된다는 것을 이미 당신은 깨달았을 것이라는 환의 메모를 읽은 뒤, 나는 시간과 파국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 환의 세계를 등 뒤로 남기고 빵집을 찾아간다.


<어느 지하 생활자의 수기>


지하에는 '기록자', '침묵자', '명상자' 세 부류의 사람이 살았다. 그들은 해탈의 눈, 즉 제 3의 눈을 얻고자 했다. '나'는 거짓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허구적 방법을 추구하는 기록자였다. 어느 날, 팔부 능선의 마녀에 대해 들은 '나'는 그녀에게 도달하기 위해 진실한 기록물을 들고 간다. 기록물은 마녀가 원하는 기준을 충족했고, '나'는 마녀와 만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나'와 그녀가 교접하는 와중에 그녀가 금기를 깨고 소리를 내고 만다. 그제서야 마녀는 자신이 진짜 마녀가 아니고 기록물을 불편하게 생각하던 지상족들이 자신에게 마녀의 굴레를 씌웠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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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걸고 야만의 폭력과 맞선 80년대의 존재들'을 그려내던 작가가 세기말, 종말론적 분위기를 내뿜는 소설집을 냈다. 제목도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다.

이름조차 없이 특징들로 구분되는 자들이 모여 필담을 나누다가 카타콤을 찾아간다. 생명을 잉태한 여성이 스스로 그 생명을 지운 직후 찾아간 곳이 무덤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작가는 이 소설집을 통해 첫째, 거짓을 통해 진실을 추구하는 소설가의 사명에 대해, 둘째, 그 소설(혹은 순수)과 현실(혹은 속물적인 속세)의 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명시적이지 않은 표현과 상징적 비유들로 막연한 인상에 그치는 작품도 있지만, <내 마음의 옥탑방>은 <마틴 에덴>이나 <위대한 개츠비>가 다룬 불멸의 모티프, 즉 이상적인 사랑과 현실적인 욕망과의 관계에 대해 훌륭히 재해석하여 작품 속에 녹여낸다. 99년도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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