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5
마틴 에이미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영국에서 잘 나가는 CF감독. 런던 서부에 살고, 자동차는 비싼 피에스코.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항상 담배를 물고 있는 상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고, 운동부족으로 과체중이며, 잇몸에 염증이 있어 치과의사의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함. 술을 입에 대면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시고, 자위를 하든 섹스숍을 가든 욕구를 강박적으로 해소해야 함. 여자친구 셀리나 스트리트는 전형적인 금발 미녀인데, 절친 알렉 루엘린에 따르면 그녀는 오래전부터 바람을 피워오고 있다고 함. 대충 이 정도가 주인공 존 셀프를 소개하는 단편적인 문장들이다.

존 셀프의 집안은 어떤가. 부모는 존이 어릴 적에 이혼했고, 그의 아버지는 양육에 들어간 돈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제기한 전력이 있다. 존이 2만 프랑을 쥐어주어 소송은 흐지부지 되었는데, 존의 아버지는 그 2만 프랑을 밑천으로 - 경마에 몰빵해서 운 좋게도 술집 하나를 차릴 정도로 딴다 - 지금은 젊은 스트리퍼 브론과 결혼했다. 


어쨌든 존 셀프가 비행기에서 우연히 영화제작자 필딩 구드니를 만난다. 스물여섯의 필딩 구드니는 존에게 있어 "전주이자, 연락책이며, 친구" 이다. 필딩 구드니는 존에게 그럴싸한 영화를 한 편 제작하자고 제안한 뒤, 작가 도리스 아서를 고용해 시나리오 작업을 맡기고, 당대 최고의 섹시스타와 인기배우를 캐스팅 한 뒤, 존이 느끼기에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돈을 대준다.

존은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와 관계를 맺다가, 헤로인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져 난투극을 벌이고, 그 결과 한 사람이 죽는다"는, 자전적인 요소를 잔뜩 가미한 영화를 찍고자 했다. 하지만 배우들이 저마다 자신의 배역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 데다가, 존 역시 술과 여자에 빠져 허우적 대는 통에 작업은 별다른 진척 없이 질질 늘어졌다. 시나리오 역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때 우연히 만난 사람이 마틴 에이미스라는 작가였다. 존은 도리스 아서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를 영화 작업하기 적합하게 고쳐 달라고 마틴에게 부탁한다. 마틴은 기존의 시나리오는 그대로 둔 채 몇몇 대사만 추가했는데, 뜻밖에도 배우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 배우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들을 기존 시나리오 중간 중간 삽입해줬던 것이다.


그럼 이제 시나리오 작업이 끝났으니 영화가 잘 진행되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존 셀프의 개인적인 일들이 자꾸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먼저 여자친구 셀리나가 존을 떠난다. 존의 주변엔 제대로 된 인간이 딱 하나 있었는데, 마티나 트웨인이라는 오랜 친구였다. 그녀는 교양있고, 점잖았다. 그녀의 남편이 오시였는데, 셀리나는 오시와 오랫동안 불륜관계를 맺다가 마친내 그의 아이를 임신하는데 성공한다. 셀리나는 이를 빌미로 오시에게서 거액의 돈을 뜯어낼 수 있게 되자 존을 헌신짝 버리듯 떠난 것이다.

그럼 남편이 바람난 마티나 트웨인과 존의 관계가 진전되었을까? 그것은 그것대로 잘 되지 않는데, 관계가 끝장난 뒤 우연히 만난 셀리나와 존이 호텔방에서 관계를 맺다가 마티나 트웨인에게 목격당하기 때문이다.(셀리나의 계략이었다)

또, 존은 아버지의 법률적 부인인 브론과도 어쩌다 관계를 맺는데, 그 장면도 아버지에게 들켜 친구처럼 지냈던(사실은 의붓형제) 뚱보 폴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이 사건으로 존은 그가 친부가 아니며, 자신의 친부는 뚱보 빈스였다는 사실(milkman's son 느낌)을 알게 된다.


인간관계가 파탄난 뒤에는 재정적인 파탄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주 필딩 구드니는 사기꾼이었고, 지금까지 흥청망청 쓴 돈은 죄다 존 자신의 돈이었다. 그가 술에 절어 사인한 내용은 모두 존의 돈으로 지불하겠다는 내용의 계약서였다. 존은 바닥을 친 자가 으레 하듯, 자살 노트를 쓴다. (자살은 실행되지 않는다)

그 뒤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긴다. 조지나라고... 뚱뚱하고, 힘도 세서 존이 예전에 그러하듯 두들겨 패서 말을 듣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일도 시작했고, 친부 빈스도 만났다. 거지로 오인받을 정도의 몰골이긴 하지만, 지혜라든가 생활이라든가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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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에이미스는 1949년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킹슬리 에이미스 역시 작가로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한 전력이 있으며, <럭키 짐 Lucky Jim> 은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마틴 에이미스 역시 스물 네 살에 쓴 첫 번째 장편소설 <레이철 페이퍼스(73)>로 서머싯 몸 상을 수상했으니, 부자 모두 같은 문학상을 수상한 드문 사례이다.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는 1984년에 발표되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된 필치와 기교를 보여준다. 거친 입담과 외설스러운 말투 이면에 숨겨진 블랙 코미디는 주인공을 밉지 않게 그리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한 자락을 보여준다. 소설을 읽다보면 1991년에 발표된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아메리칸 사이코>가 연상되는데, 아마도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말초적인 욕망들이 대상화된 물건들, 담배나 술, 의류, 자동차, 들이 홍수처럼 책속에서 쏟아지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의 입담이 맘에 들어 <런던 필즈>도 추가로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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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멘타 하인학교 (양장)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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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매우 이상한 소설이 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는 여기서 배우는 것이 거의 없다. 가르치는 교사들도 없다. 우리들, 벤야멘타 학원의 생도들에게 배움 따위는 어차피 아무 쓸모도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훗날 아주 미미한 존재, 누군가에게 예속된 존재로 살아갈 거라는 뜻이다. 우리가 받는 수업은 우리에게 인내와 복종을 각인시키는 데 가장 큰 의의를 둔다. 이 두 가지 특성이 몸에 밴 채로는 성공할 턱이 없다. 아니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쯤 되면 책 제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벤야멘타 하인학교>. 하인을 양성하는 학교가 있는가? 그런데, 가르치는 교사도 없고, 배움도 없으며, 이곳을 거치면 인내와 복종을 내면화한 미미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데, 이런 학교에 왜 가는 것일까? 야콥 폰 군텐 이야기라고 했으니 주인공은 귀족이 분명한데...


이러한 의문들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증폭된다. 주인공 야콥은 주의회 의원의 아들로 뛰어난 가문을 버리고 가출하여 벤야멘타 남매가 운영하는 하인학교에 몸을 의탁한다. 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성공의 개념에서 한참 먼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야콥이 귀감으로 삼고 있는 급우 크라우스는 창의력이나 개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수동적인 인간이고, 굳이 미덕이라는 점을 꼽아 보려 해도 우직하다는 점 정도 밖에 없다. 야콥은 그런 크라우스의 성실함을 한껀 빈정대는 행위를 일부러 반복함으로서 글를 화나게 만들고, 그런 상황에서 흡족함을 느낀다. 


벤야멘타 양은 생도들을 가르치는 선생인데, 그녀는 크라우스를 뛰어난 학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야콥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등 다소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그녀는 소설의 말미에 사망하는데, 자신의 사망을 예언하는 것으로 보아 - 자세한 설명은 나와 있지 않지만 -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왜 자살했을까? 그녀의 자살은 크라우스라는, 한없이 복종적인 존재에 대한 찬양에 머물지 못하고 야콥의 자유분방한 면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까? 벤야멘타 학원에서 능동적인 행위는 곧 파멸로 이어지는 것일까? 알기 어렵다. 작가는 불친절하다.


한편, 학원의 원장인 벤야멘타 역시 거인과 같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야콥에게 약한 면모를 보인다. 그가 야콥을 대하는 태도는 동성애적 애정의 갈구로 해석될 여지마저 있다. 그러고 보니 야콥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어머니에 대해서만 간간히 꿈을 꿀 뿐. 야콥은 학원 원장을 자신의 아버지로 삼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일까?

벤야멘타 양이 죽자 벤야멘타는 야콥과 함께 사막으로 간다. 그들은 왜 사막으로 가는 것일까? 사막에는 아무것도 없다. 생명이 피어날 수 없는 곳. 그 어떤 것도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곳을 목적지로 하여 떠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3월 14일과 15일 양일간, 운영리스크 점검 출장이 있었다. 춘천우체국에 들렀다가, 190km 떨어진 동해로 이동해서 엘리시안 호텔(이라는 이름의 모텔) 방에서 읽었다.

언젠가, 인간이 세계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거대 프로젝트에 투신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 그 처연함에 대해 찬사를 바치던 시기가 있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단련되는지', '어머니'는 어떠해야 하는지, 해답이 다 있었고, 반박은 '대의'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그 거대 프로젝트는 이해하기도 쉬웠다. '주요한 모순' 이 하나 해결되면, '나머지 모순' 이 저절로 해결되었기 때문에, '주요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싸움에 모두가 투신하면 되었다. 그때 문제가 된 것이 있었다면, '주요한 모순'이 무엇이냐에 대한 동의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을까.


당시의 기준대로라면,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반동 쓰레기 소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세계의 한복판에서 '그 무엇도 아닌 존재'가 되고자 열망하는 것. 이 얼마나 부르주아적인 사치인가. 하지만, 사람은 '무엇이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며, 그렇기에 부조리한 존재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다시 자유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생기는 것 아닐까. 나는 여전히 처절한 부정으로부터 긍정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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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친 사내의 5년 만의 외출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조구호 옮김 / 시타델퍼블리싱(CITADEL PUBLISHING)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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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에서 나름대로 쾌적한 생활을 즐기고 있는 '나'에게 손님이 방문한다. 사회에 있을 때 안면을 익힌 플로렌스 반장, 그리고 반장과 함께 온 수녀는 '나'와 대화를 원했다. 그들이 '나'에게 펩시콜라를 제공했기에 '나'는 기꺼이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6년 전, 그러니까 1971년 4월 7일, 산 헤르바시오의 성 라사로 수녀 학교에서 특이한 사건이 일어난다. 열네 살 난 이사벨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홀연히 실종된 것이다. 정문에는 두 마리의 맹견이 지키고 있었고, 담장은 높았기 때문에 소녀 혼자 수녀학교를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녀의 실종은 부모에게 통지됐고, 경찰이 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틀째 되는 날, 여학생이 기숙사에서 발견된다. 소녀는 아침 기상시간에 그녀의 침대에서 발견되는데, 그간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방귀깨나 뀌게 생긴 소녀의 부모는 경찰에게 사건에서 손 뗄 것을 요구한다.


자, 그럼 플로렌스 반장과 수녀는 왜 '나'를 찾아왔느냐. 6년이 지난 최근, 그때처럼 소녀가 사라지는 사건이 다시 발생했기 때문이다. 플로렌스 반장은 사건을 조용히 조사하고 처리할 사람이 필요했으므로 '내'가 그 일을 처리해준다면 정신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도록 조처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흔쾌히 사건을 맡은 '나'는 일단 누나를 찾아간다. 누나는 '나'를 반기지 않았지만, '나'는 어떻게든 누나의 환심을 사서 그녀에게 신세 지기로 작정한 터였다. '나'의 아버지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가 부상당한 몸으로 퇴역한 뒤 술로 세월을 보내며 가정을 버렸고, 어머니는 자식들을 사랑했지만 습관적인 도벽 때문에 교도소에 갇힌 터라 누나는 '나'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누나의 뚜쟁이를 자처했고, 누나는 여전히 갈보짓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쨌든, 누나를 찾아간 날 스웨덴 청년 하나가 누나의 손님으로 찾아왔다. '나'는 되도 않는 영어로 뚜쟁이 누나와 그치를 연결시켜 주려 애 쓴 뒤, 건달패들에게서 시계와 볼펜을 훔쳐 여관을 찾아든다. 더럽고 냄새나는 여관에 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이 한 명 찾아오는데, 아까 그 스웨덴 청년이다. 청년은 '내'가 문을 열어주니 다짜고짜 권총을 꺼내들어 '나'를 위협한다. 하지만 청년의 숨소리가 심상치 않더니 곧 죽어버리고, '나'는 그의 주머니를 뒤져 마약 따위를 발견한다. 잠시 뒤 경찰이 들이닥치고, '나'는 허겁지겁 자리를 떠 누나의 집으로 피신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엔 누나의 집에 아까 그 스웨덴 청년의 시체가 있고, 경찰이 또다시 급습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하여 탈출하는데 성공하지만, 누나는 현행범으로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만다.


'나'는 수녀원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꼼짝없이 살인범으로 누명을 쓰게 생겼다고 생각하여 수녀원의 정원사를 꼬드겨 이름을 하나 얻게 되는데, 메르세데스라는 아가씨였다. 그녀는 이사벨의 절친이라 했다.

메르세데스를 찾아간 '나'는 그녀로 부터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는다. 

6년 전 이사벨이 사라진 날, 메르세데스는 우연히 이사벨의 뒤를 밟게 되었다고 한다. 이사벨은 수녀원 바깥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지하 납골당에 간 것이었는데, 메르세데스는 이사벨이 어떤 남자에게 위협당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다급함을 느낀 메르세데스가 남자를 뒤에서 칼로 찔렀는데 그만 사망하고 만다.

딸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관되는 것을 원치 않은 뻬라쁠라나가 메르세데스에게 수녀원을 나와 외딴 마을에서 조용히 지내도록 요구했고, 그 뒤로 유폐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이 거짓말임을 금방 간파했고, 사실은 이사벨이 남자를 찔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결혼을 앞둔 이사벨이 '나'와 만난 뒤 갑자기 자살해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뻬라쁠라나를 미행해 이번에 사라진 여학생의 부모인 치과의사 내외를 만난 '나'는 그들로 부터 뻬라쁠라나가 아이에게 에테르를 맡게 하면서 이틀만 데리고 있다가 학교로 되돌려보내면 모든 빚을 해결해주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치과의사 내외는 그 이상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사건의 시발점인 지하 납골당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길이라는 판단으로 모험을 감행한다. 하지만 미로와 같은 납골당에서 '나'는 길을 잃게 되고, 거기서 뜻밖에도 스웨덴 청년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누나도 발견하지만 곧바로 의식을 잃고 만다.


플로렌스 경위 등에게 발견되어 의식을 되찾은 '나'는 비로소 사건의 전말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유야무야 되고, '나'의 정신병원 퇴원도 무산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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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인 에두아르도 멘도사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마친 뒤 귀국해 변호사로 활동하지만, 1970년대 스페인 사회의 변화와 개혁의 물결을 지켜보며 일상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바르셀로나를 떠난다. 1973년부터 82년까지 뉴욕에 정착한 멘도사는 UN본부에서 통역과 번역 일을 하며 첫 소설인 <사볼따 사건의 진실(75)>을 발표하여 비평상을 수상한다. 그로부터 4년 뒤 발표된 소설이 <어느 미친 사내의 5년 만의 외출(79)>이다. 작가는 서문을 통해 자신이 가장 애정을 갖는 작품이 이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소설은 피카레스크 소설과 탐정 소설 형식이 결합된 작품으로, <올리브 열매의 미로(82)>, <여자 화장실의 모험(01)>과 함께 동일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3부작을 구성한다.

소설 속 '나'는 이름이 없는데, 이름을 꼭 대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정신병원 의사의 이름 수그라녜스에다가 적당한 명칭을 덧붙여 대충 둘러댄다. '나'는 임기응변에 능하고, 필요한 것들은 그때그때 조달하며, 정신병자이면서도 사건의 이면을 파악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또한, 일종의 체념을 통해 정신병원이 그다지 나쁘지 않는 곳이라는 인식도 가지고 있는데, '정상적인 사회'와 '자유'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정신병원' 을 상정하는 것은 매우 아리러니하다.


'나'는 결국 수녀원 사건을 해결한다. 여학생들이 사라진 것은 뻬라쁠라나가 이미 살해한 사람들을 처리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는 살해된 사람을 자신의 딸과 납골당에서 만나게 한 뒤, 딸이 그 사내에게 핍박받다가 살해한 것처럼 꾸밀 작정이었다. 메르세데스는 우연히 딸애를 따라온 탓에 사건에 휘말려든 것이었고, 사건의 진실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나불대는 위험을 막기 위해 뻬라쁠라나는 그녀를 외딴 동네에 유폐시킨 뒤 생계를 지원해온 것이다.

그런데 6년이 흐른 뒤, 또 다른 사내를 살해할 필요가 생겼다. 바로 스웨덴 청년이다. 과거의 사건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수녀원에서 여학생이 사라졌는데, 그 소녀가 바로 치과의사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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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절
찰스 디킨스 지음, 장남수 옮김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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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타운의 스톤 로지에 사는 토머스 그래드그라인드는 철저한 공리주의자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교육 체계를 수립하고 이에 따라 자녀와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가 숭배하는 것은 숫자와 통계였다. 상상력이나 유희 따위는 인류 행복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불필요한 것이었으므로, 철저히 배격했다.

그에게는 두 자녀가 있었는데, 첫째는 딸인 루이자였고, 둘째는 아들인 톰이었다. 루이자와 톰 역시 여느 아이들처럼 호기심이 있었고, 따라서 곡마단 공연 따위를 구경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드그라인드의 지속적인 훈육 때문에 아이들의 호기심들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문제는 그런 호기심이 사그라들면서, 그들의 마음 속 중요한 어떤 것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다.


한편, 그래드그라인드는 학교에서 씨실리아(씨씨) 주프라는 학생을 데려다 키운다. 씨씨의 아버지는 곡마단에서 일했는데, 전성기가 지나 인기가 떨어지자 씨씨를 버려둔 채 메리렉즈라는 이름의 개와 함께 줄행랑을 친다. 그가 도망가는 날, 씨씨를 따돌리기 위해 몸이 아프니 상처에 바를 기름을 사오라고 시켰는데, 씨씨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고 그 기름을 소중히 간직한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혼자 된 씨씨를 그래드그라인드는 데려다 키우며 교육 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그래드그라인드의 바람대로 공리주의자가 되지는 못한다. 다만, 그녀의 본 바탕이 깨끗했으므로 착하게 성장했다.


루이자의 나이가 차자, 그래드그라인드는 그녀에게 자신의 친구 바운더비에게 시집가는 것이 어떠냐고 권한다. 엄청난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그 결혼은 성사된다. 그래드그라인드는 통계적으로 그 정도 나이 차의 결혼은 얼마든지 있었다는 산술적 이유로, 루이자는 목석같은 여성으로 자라나 상대방이 누구든 상관이 없었으므로, 톰의 경우는 매형 될 바운더비를 통해 잇속을 챙길 욕심으로 동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루이자가 시집갈 바운더비는 어떤 사람인가?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어렸을 적에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뒤 온갖 고생을 다한 뒤 결국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그는 수중에 엄청난 부를 거머쥔 은행가였고, 사상적으로는 그래드그라인드와 거의 유사한 입장을 취했다. 다만 그래드그라인드에게서는 다소 품위가 엿보이는 반면, 바운더비에게서는 그러한 품위가 전혀 엿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때로 역겨운 행동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일까? 바운더비는 과거 봉건사회의 지배계급에 속했으나 지금은 몰락한 스파짓 부인을 비서 겸 집사로 삼아 자신의 계급적 성공을 한껏 누리며 거칠 것 없는 태도로 살았다.


별다른 변화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 사람의 손님이 찾아 온다. 바로 하트하우스라는, 잘생기고, 다소 사기성 농후한 젊은이였다. 그는 사람들의 특성을 파악한 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행동에 돌입한다. 그는 스파짓 부인과 바운더비의 환심을 샀고, 톰의 약점을 파악하여 그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 했다. 또한, 루이자의 외모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욕망을 느껴 그녀를 부추겼다.

그의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스파짓 부인이 하트하우스와 루이자의 밀회현장을 잡기 위해 미행 하면서 긴장이 고조된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스파짓 부인의 예상대로 하트하우스가 루이자에게 온갖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며 유혹해댄다. 스파짓 부인은 자신의 예감이 적중된 데 기뻐하며 계속 그들을 미행한다. 하지만 악천후 때문에 이들을 중간에서 놓치고 만다.

사실, 루이자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었다. 그녀는 하트하우스의 온갖 밀어에도 불구하고 거의 마음에 동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밀어 덕분에 자신의 마음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하트하우스를 따라가지 않고 친정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 그래드그라인드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한다. 그래드그라인드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공리주의적인 이상이, 생명이 있는 인간에게는 기계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게다가 최근 바운더비의 은행에 든 도둑이 사실은 자신의 아들 톰이었다는 것까지 알게 되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루이자는 씨씨의 간호로 점차 회복하지만, 그녀의 결혼생활은 파탄에 이른다.


선량한 노동자 스티븐 블랙풀이 톰의 계략으로 인해 도둑으로 몰려 사망하고, 그와 함께 은행 앞을 서성이던 노파가 바운더비의 노모 페글러부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바운더비는 자신이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멀쩡히 살아있는 어머니를 죽었다며 사기를 쳐온 것이었다.


그래드그라인드는 스티븐 블랙풀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자신의 아들 톰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인쇄하여 거리에 붙이고 다녔다. 어느 날, 씨씨의 아버지와 함께 사라졌던 개 메리렉즈가 돌아오지만 사람들은 씨씨가 슬퍼할 것을 염려해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톰은 외국으로 도망쳤다가 사랑하는 누나를 끝내 보지 못한 채 열병으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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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중 루이자가 씨씨 주프에게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고 있는 지 묻는 대목이 나온다. 루이자는 씨씨에게 선생님의 질문에 잘 대답했는지 묻고, 씨씨는 자신이 자꾸 틀린 답을 말했다며 울먹인다.


"선생님이 자, 이 학급이 하나의 국가라고 가정하자. 이 국가에 오천만 파운드의 돈이 있다면 이 국가가 부유한 나라가 아니냐? 20번 여학생. 이 국가가 부유한 나라이고 너는 부자나라에 사는 게 아니냐? 하고 물었어요."

"뭐라고 대답했니?" 루이자가 물었다.

"루이자 아가씨, 모르겠다고 했어요. 누가 돈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중 얼마라도 제 돈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면 부유한 나라인지 아닌지, 제가 부자나라에 사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 교실이 커다란 도시라고 가정하자, 시민이 백만명인데 일년에 스물다섯명만이 길에서 굶어죽는다, 그렇다면 그 비율에 대한 너의 의견은 무엇이냐? 하고 물었어요. 저는......굶어죽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백만명이든, 백만명의 백만배이든 마찬가지로 견디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어요."


"해난사고에 대한 통계자료가 있다고 했어요. 십만명의 선원......중 오백명만이 익사했거나 불에 타 죽었다는 거에요. 그리고 몇 퍼센트가 죽은거냐고 물었어요." 이때 씨씨는 ... 심하게 흐느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어요. 죽은 사람의 친척들과 친구들에게는-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거에요......"


1854년에 연재되기 시작한 소설에서(당시엔 연재소설이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나오는 대화가, 150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도 되풀이된다.


그(자본가)들은 일하는 아이들을 공부시키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도 파산했고, 작업장을 조사하기 위해 감독관이 지명되었을 때도 파산했으며, 그 감독관이 노동자들을 기계로 다치게 하는 일이 과연 정당한지 의심스럽다고 말했을 때도 파산했다. 항상 그렇게 많은 연기를 내뿜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암시를 받았을 때는 완전히 파산했다.....(자본가들은) 부당한 간섭을 받는다고 느낄 때마다 - 즉 완전히 자유방임으로 놓아두지 않고 행동의 결과에 책임을 묻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 공장주는 반드시 "차라리 재산을 대서양에 처넣겠다"는 끔찍한 협박을 가했다.


5%의 주식도 소유하지 않은 자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기업을 지배한다.

그 기업을 처음 설립한 사람은 적산을 싼 값에 불하받아 '자본의 본원적 축적'을 대신했다.

그의 아들은 2조원이 넘는 돈을 차명 관리하고도 실형을 살지 않았고,

최고권력자는 그에게서 40억원(혹은 플러스 알파)을 받아 사면복권이라는 면죄부를 내려주었다. 

아들은 횡령한 돈으로 매입한 별장에서 성매수를 하며 노익장을 과시하다 긴 동면에 들어갔다.

그의 동면은 매우 편리한 기능이 있었는데, 그 기업이 어떤 죄를 저질러도 '그가 했다'고만 하면 만사 OK가 되는 기능이었다.

창립자의 손자는 모든 것은 '아버지가 했다!' 고 되뇌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죄가 없다. 죽은자와, 죽으려는 자가 나쁘다. 

손자도 물론 법원을 들락거렸다. 5%도 안되는 주식으로 기업을 지배하려다 보니 국민들이 투자한 주식의 값을 후려쳐서 합병을 해야했다. 돈을 아끼는 것이 뭐가 나쁜가? 판사는 손자가 기업을 물려받을 이유가 없다(현안이 없다)고 했다. (뭐라고?)

국민들이 들끓자, 댓글부대들이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해외로 공장 다 옮기면 그때 정신 차릴래!"

"국민기업 망하는 꼴 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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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방정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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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소재한 명문 사립중학교 세이카 학원에서는 매년 '재해에 대한 적극적 대응' 이라는 목적 하에 1박 2일 캠프 행사가 진행된다. 학생들의 참여는 자율이고, 교실에서 함께 숙박하며 하룻밤을 보낸다는 정도의 가벼운 행사 내용이므로 딱히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과 달리 문제가 발생하는데, 캠핑 도중 시모야마 요헤이라는 학생이 파랗게 질려 귀가해버린 것이다.

요헤이가 귀가한 사유에 대해 학생들의 대략적인 진술은 다음과 같다.

캠핑을 총괄하는 히노 다케시 선생이 아이들에게 "실제 재해 상황은 태평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물과 식량은 물론 의약품도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따라서 희생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너희는 한 시간 내에 사망할 사람을 정해야 한다", 이렇게 주문했다는 것이다. 만약 사망할 사람을 정하지 못하면 리더인 시모야마 요헤이가 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으로 아이들이 심한 압박감을 느꼈고, 그 후로도 학생들이 고통을 호소했기에 히노 다케시 선생은 이사회의 징계를 받아 해임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히노 다케시 선생은 아이들의 주장이 터무니 없다면서 자신의 결백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아이들의 부모 한 명이 스기무라 사부로라는 사립탐정을 고용해 진상을 알아내달라고 요청하고, 히노 다케시 편에서도 후지노 료코라는 변호사를 고용해 결백을 입증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 둘은 우연히 세이카 학원 앞에서 만나 서로의 사정을 들은 뒤 공동조사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히노 다케시가 현재의 부인과 재혼했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을 철저히 경쟁적으로 교육시켰다는 게 드러난다.

재혼한 부인의 아들 이쿠시와 히노부인이 아이들 중 누군가와 접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수수께끼의 핵심. 선생과 학생들 중 어느 편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숫자를 넣어도 마이너스의 답만 나오는 음의 방정식과 같은 관계가 되어버린 사제지간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130페이지의 짤막한 소설인데 양장본으로 출판하여 10,000원의 가격표를 매기는게 온당한지... <솔로몬의 위증>의 그 후지노 료코가 20년이 지난 뒤 등장하는 설정인데, 소품 정도로 가볍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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