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름방학 직전인 7월 20일, 4학년 미치오는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결석한 S의 집에 유인물과 숙제를 전달하러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치오는 회색 티셔츠에 갈색 반바지를 입고 허공중에 메달려 있는 S의 시체를 발견한다.

학교로 돌아와 담임 이와무라 선생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학교가 발칵 뒤집힌다. 그런데 경찰들이 S의 집으로 출동하니 기묘한 상황이 펼쳐져 있다. 시신과 의자, 밧줄들이 깨끗히 치워진 것이다.

미치오는 이런 사정을 동생 미카에게 설명하고 함께 수수께끼를 풀여보려고 노력한다. 얼마 뒤, 미치오의 방에 거미로 환생한 S가 나타나면서 탐정은 셋으로 늘어나는데...


1975년생인 미치오 슈스케의 주된 작품 성향은 미스터리 계열이다. 초기작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2006년 제6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으로 수상에 실패하지만, 다음 해에 <섀도우>로 대상을 수상한다. <달과 게>가 나오키상을 수상하면서 미스터리 외의 작풍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올린 바 있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불교적 세계관과 서술트릭, 그리고 인간의 악한 본성을 주조로 써내려간 작품인데 구심점 없이 흘러가는 스토리가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단점이 있다.

초반부에 동물들이 앞다리가 부러지고 입에 비누가 물린 채 사체로 발견되는 장면과 아동을 상대로 한 변태성욕을 드러내는 이와무라 선생 이야기까지는 일정한 긴장감이 유지되지만, S가 거미로 환생한다는 설정에서 역시 배가 산으로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술트릭 역시 독자에게 금새 간파당하는 구조인데, 세살인 미카와 수수께끼 풀이를 상의하는 설정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리다.


S가 동물들을 죽인 뒤 다이조라는 늙고 외로운 노인에게 사체를 선물하다가 결국 자신의 시체마저 선물한다는, 한편으로는 엽기적이고 한편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소재와 주제를 걸터듬은 데다가 서술트릭까지 곁들이다보니 난삽한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해 다소 수준이 떨어지는 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짓말하는 혀
앤드루 윌슨 지음, 나중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주인공 애덤 우즈는 미술사를 전공한 뒤 소설을 써보겠다는 꿈을 품고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건너간다. 당초엔 입주과외교사 노릇을 할 예정이었으나, 계획이 틀어져 고든 크레이스라는 은둔 작가의 집에 비서로 들어게 된다. 

그런데 이 고든 크레이스라는 인물이 상당히 괴짜였다. 그는 수십년 전 <토론 모임>이라는 작품을 발표해 평단의 찬사와 대중적 성공 모두를 거머쥐었으나, 그 뒤 절필하고 세상과 담을 쌓은 채 베네치아의 자택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애덤 우즈는 쓰레기 하치장 같은 욕실과 부엌, 서재를 차근히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통의 흥미로운 편지를 발견한다. 한 통은, 라비니아 매든이라는 작가로부터 온 편지였는데 크레이스에 관한 전기를 쓰고 싶으니 허락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다른 한 통은, M.쇼라는 중년여성이 보낸 편지로 '그 아이의 죽음을 잊지 않았다면 빨리 돈을 보내라'는 내용의, 일종의 협박편지였다.

애덤 우즈는 이 두 통의 편지에서 영감을 얻는데, 크레이스에 관한 전기를 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신이라는 점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크레이스를 관찰하면서 M.쇼의 편지에서 암시하는 비밀도 풀고, 라비니아 매든이 그동안 모아온 자료까지 입수한다면 책의 반은 완성한 거나 다름 없었다.


애덤 우즈는 크레이스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핑계를 대고 일주일의 휴가를 얻어 M.쇼와 라비니아 매든을 만난다. M.쇼로부터 크리스토퍼 데이비드슨의 일기장을 얻은 애덤은 크리스토퍼와 크레이스가 동성연인 관계였음을 알아낸다. 크리스토퍼 데이비드슨은 본래 크레이스의 제자였는데, 학교를 졸업한 뒤 크레이스와 함께 살면서 창작활동을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크리스토퍼가 자살해버렸고, 경찰도 사건을 종결처리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엔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였고,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전기의 완성에 필수적인 요소 같았다.

다음으로 라비니아 매든을 만난 애덤은 크레이스가 전기를 출판하기로 결정했다고 거짓말을 하며 자료를 빼내는데 성공한다. 얼마 뒤 그녀가 귀찮아진 애덤은 그녀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한다. 다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녀의 말, 자신이 크리스토퍼와 꼭 닮은 외모를 가졌다는 말이었다.


다시 베네치아로 돌아온 애덤은 크레이스가 발표하지 않은 원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집안 곳곳을 뒤진다. 크레이스는 크리스토퍼의 아픈 가족사를 소재로 소설을 쓴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가 자살하면서 '만약 크레이스가 자신의 가족사를 소설로 발표한다면, 자신의 일기장과 유서를 언론에 공개하라'는 내용을 어머니에게 유서로 남겼고, 크레이스는 이 유서 때문에 오랫동안 절필할 수밖에 없었다. 

수면제에 취해 크레이스가 잠이 들자 애덤은 서재를 뒤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잠시 뒤 크레이스가 권총을 들고 나타나 둘은 한바탕 격투를 벌인다. 크레이스는 수면제를 먹은 적이 없었다. 그는 그동안 애덤이 벌여온 모든 일에 대해 훤히 알고 있었다.

간신히 크레이스를 제압한 애덤이 크레이스가 남겨둔 힌트에 따라 원고를 찾는다. 원고의 제목은 <거짓말 하는 혀>였고, 주인공은 애덤이었다. 크레이스는 과거 크리스토퍼를 곁에 두고 소설을 썼 듯, 이번엔 애덤을 옆에 두고 소설을 쓴 것이다.


바티스타 델 모로의 <명성에 관한 비유>와 관련한 구절


"저는 세상 사람들이 갈망하는 여자에요. 저를 통해 사람들은 죽은 뒤에도 살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악이나 선이 약탈품이나 영예로운 제국을 얻기 위해 군사를 움직일 때, 저는 전자에게는 불명예, 후자에게는 명예가 된답니다. 악은 제게서 비난만 가져가지만 선은 영예와 승리, 왕관을 가져가죠."


1967년에 태어난 앤드루 윌슨은 저널리스트로 영국 주요 일간지에 글을 써왔다. 2003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삶을 다룬 첫 작품 <아름다운 그림자>로 미국에서 에드거 앨런 포 상을 수상했다. <거짓말하는 혀> 역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주꾼 리플리>에 바치는 오마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치 아다다 (외) 범우 사르비아 총서 314
계용묵 지음 / 범우사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백치 아다다(1935)


아다다는 태어나면서부터 벙어리였다. 정한 곳에 시집가기 어려웠으므로 땅을 지참금으로 묶어 보냈다. 5년간은 남편과 시부모의 사랑을 받았으나, 남편은 벙어리 아내가 슬슬 지겨워졌다. 그즈음 안동현에 건너갔던 남편이 투기 바람을 잘 타서 돈 2만원을 손에 쥔다. 첩과 함께 돌아온 남편은 아다다에게 매일같이 매를 안겨 주었고, 견디다 못한 아다다는 친정집으로 도망쳐온다. 하지만 친접집에서의 구박도 자심해 아다다는 수롱에게 도망친다. 수롱은 벙어리여도 아내가 생겨 좋았다. 둘은 바닷가로 도망치고, 수롱은 그동안 모은 돈을 아다다에게 보여주며 땅을 사서 행복하게 살자고 말한다.

다음 날 새벽, 아다다는 돈뭉치를 꺼내어 바닷가로 들고 나가 물 속에 훌훌 버린다. 돈이 모든 불행의 씨앗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잠에서 깬 수롱이 아다다와 돈뭉치가 없어진 걸 알고 바닷가로 갔다가 아다다의 하는 양을 보고 화가 나서 아다다를 발길질한다. 아다다는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병풍에 그린 닭이(1939)


아들을 낳지 못하자 시어미가 구박했고, 남편은 얼마 뒤 첩을 봤다. 답답한 여자는 바늘통을 판 밑천으로 굿판에 가서 성주님께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빈다. 하지만 밤중에 나돌아다녔다는 이유로 시어미로부터 욕을 먹고 남편이 안겨주는 매를 맞는다. 견디다 못해 엿장수 늙은이 집으로 도망가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최서방(1927)


농사를 지어 타작을 했으나 지주에게 모조리 빼앗긴 최서방은 눈물을 머금고 서간도로 떠난다


인두지주(1928)


S시 산업박람회에 간 경수는 우연히 사람거미를 구경한다. 그런데 그 사람거미가 경수를 보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알고보니 거미는 한동네에서 함께 자란 창오였다. 창오는 XX탄광에서 사고가 나 두 다리를 잃고 거미의 탈을 쓰고 구경거리가 되어 돈을 벌고 있었다. 경수는 창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함께 하자고 넌지시 권할 작정이다.


캉가루의 조상이(1939)


문보 집안은 대대로 병신이 태어났고, 자신도 그렇다. 미자가 문보를 좋아해 쫓아다니지만 문보는 불행한 유전자를 대물림하기 싫었으므로 편지를 남긴 채 도망치고 만다.


청춘도(1939)


백수나 다름없이 생활하는 '나'와 폐병으로 언제 죽을지 몰라 비애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는 금자에 대한 초상화


붕우도(1934)


'나'와 조군은 막역한 사이지만 어떤 사건으로 틀어져 한동안 냉랭하다. 둘은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싶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빤히 들여다 보이는 수싸움을 한다.


심원(1938)


한 때 큰 뜻을 품고 생활했으나 이제는 아가씨를 내세워 술장사를 하는 성재라는 사내의 이야기


마부(1939)


응팔은 마누라가 돈을 가지고 도망간 뒤로 예쁜 여자만 보면 화가 난다. 그래서 이번에 착실히 모은 돈으로 행랑 영감 딸 닌네를 마누라로 얻을 작정이다. 닌네는 얼굴도 못생기고 애교도 없으니 도망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응팔의 돈을 맡아둔 행랑영감은 딴 속셈이 있다. 종 삼월이를 응팔에게 시집 보내면서 응팔의 돈을 꿀꺽할 심산인 것이다. 행랑영감이 속셈을 구체화하려고 삼월이를 자꾸 권하자 응팔은 행랑영감의 돈을 몰래 훔친다. 다음 날 경찰이 들이닥쳐 응팔이를 끌고간다.


신기루(1940)


정암은 애초에 높은 뜻을 품고 있었으나 생계를 위한 방편으로 시작한 술집이 잘되자 마음이 바뀐다. 폐병에 걸린 하루코를 혹사시켜 돈을 우려내는가 하면, 한군에게 제공하기로 한 자금도 구차한 핑계를 대며 거절한다. 어느 날 왕가를 따라 여자를 사러 간 정암은 도적떼에게 붙들려 돈을 모두 날린다. 정암은 왕가가 어찌 자기에게 이럴 수 있는가 분개하다가, 자신이 한군에게 한 행동도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시골노파(1941)


서울 구경온 시골 노파는 삶을 꾸려가는 일로 몸을 수고롭게 하는 것을 왜 부끄러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묘예(1941)


아들이 장성하고 손주가 무럭무럭 자라남에 따라 할아버지는 갈수록 쇠약해진다. 손주가 처음으로 일어설 때 호미를 들고 일어서자, 할아버지는 손주가 장차 농군이 되어 자신의 뒤를 이을 거라는 생각에 대견해 어쩔 줄 몰라한다.


------


1904년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난 계용묵의 본명은 하태용으로 조부로 부터 한학을 배웠고 열다섯이 된 해에 안정옥과 결혼한다. 1920년 소년잡지 현상문예에 공모한 시가 2등으로 당선된 뒤 1921년 상경하여 김억, 염상섭, 남궁벽, 김동인 들과 잠시 교우한다. 중동학교, 휘문고보 등에서 잠시 수학하지만 조부의 반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이 때 4년간 독서에 매진한다.

1924년 시 <봄이 왔네>가 <생장>지 현상에 당선, 단편소설 상환이 <조선문단>에 당선된 뒤 <최서방>, <인두지주>와 같은 경향성을 띤 소설을 발표한다. 일본 동양대학에서 잠시 수학하던 계용묵은 집안이 몰락하자 귀국한 뒤 기존의 작품과는 성향이 다른 <백치 아다다>를 1935년에 발표한다. 이 작품을 필두로 작가는 인생파적 경향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애욕과 물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후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던 계용묵은 1943년 8월 일본 천황 불경죄로 구속된 뒤 석방된 후 같은 해 12월 방송국에 취직하지만 일인과의 차별 대우를 이유로 3일만에 퇴직하고 만다.

1945년에는 정비석과 종합잡지 <대조(大潮)> 창간, 1948년에는 김억과 출판사 수선사(首善社) 창립, 1952년 월간 <신문화> 창간 등 작품활동과 출판활동을 병행하던 작가는 1961년 58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타계한다.


계용묵 소설의 주인공들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잘못 된 결론으로 치닫거나 상황을 회피한다. <백치 아다다>는 돈을 바닷가에 버렸다가 연인의 한 발길질로 죽음에 이르고, <병풍에 그린 닭이>의 주인공은 실컷 매를 맞고 도망쳤다가 인습에 얽메어 제 발로 집에 돌아온다. <최서방>은 지주에게 대들지 못하고 서간도행을 택하고, <캉가루의 조상이>의 문보 역시 편지 한 장 남겨둔 채 도망친다. <마부>의 응팔은 어떤가?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하지 못해 도둑질을 했다가 쇠고랑을 찬다.

계용묵의 소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민중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이 삶의 질곡을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다소 가학적인 성향의 소설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수동적이고 답답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기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임경화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그늘의 계절>에 이은 작가의 두 번째 작품집 <동기>에는 2000년 제53회 일본추리작가협회 단편부문 수상작 <동기>를 비롯하여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 <동기>는 커리어 출신 경찰 가이세 마사유키가 곤경에 처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이세는 일선 경찰들이 경찰수첩을 항시 보관하고 있어야 하는 압박감을 덜어주기 위해 '경찰수첩 일괄보관 제도'를 기안하고, 다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행을 밀어붙인다. 하지만 제도 시행직후 경찰수첩이 통째로 도난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가이세는 상급자와 반대론자의 비난을 한몸에 받으며 좌천될 위기에 처한다. 유력한 용의자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마스카와. 하지만 그가 범인이라기엔 너무나 태연한 태도가 마음에 걸린다. 하나의 죄를 감추기 위해 다른 죄를 저지르는 내용은 그다지 신선한 소재는 아니지만 작가가 독자에게 긴장감을 부여하는 솜씨가 빼어나다.


긴장감에 있어서는 <역전의 여름>이 단연 압권이다. 주인공 야마모토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여고생과 정사를 나눈 직후 여고생이 돈을 요구해와 투닥거리다 실수로 살해하는 바람에 살인자가 되고 만다. 복역기간을 성실히 마친 뒤 사회에 복귀하려고 애를 쓰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내 시즈에와 아들 역시 야마모토를 백안시한다. 그에게 남은 한 가닥 희망은 돈을 벌어 시즈에에게 보내는 일.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자신이 겪었던 일과 매우 흡사한 일로 곤경을 겪는 한 남자의 살인청부. 그 남자는 끊임없이 돈을 보내오고, 마침내 야마모토는 남자의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거액의 돈을 시즈에에게 보내면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서.

살인하는 대목만은 시나리오를 변경하기로 한 야마모토. 하지만 정해진 장소로 간 야마모토는 오히려 칼에 찔리고 마는데... 전화를 걸어 살인청부를 의뢰하고 돈을 보내온 남자의 정체는 누구였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궁금증은 증폭된다.


소품 느낌의 <취재원>은 특종경쟁에 매몰되어 거짓 보도를 서슴지 않는 언론과, 출세욕에 눈이 먼 기자의 이야기이다. 소품 느낌이지만 심리 묘사는 쓸만하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밀실의 사람>은 재판 중 졸다가 아내의 이름을 부른 재판장의 이야기이다. 깜빡 졸았을 뿐인 그의 행동이 의외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나중에서야 자신이 졸았던 이유는 수면제를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누가 왜 자신에게 수면제를 먹였을까?


신문기자로 활약하다가 미스터리 작가로 전향한 요코야마 히데오는 조직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갈등에 천착한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드라마적 요소가 강해 <동기>와 <역전의 여름>은 TV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나오키상 심사위원들이 '현실성' 문제를 제기하며 낙선시키자, 나오키상 보이코트를 한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박완서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박완서의 <거저나 마찬가지>는 솔직함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때 공장에 위장취업 하여 노동자들을 의식화하는 데 신명을 바쳤던 선배가, 시대가 바뀌니 기득권으로 편입된다. 그 선배가 '나'에게 '거저나 마찬가지'로 집을 빌려주더니, 나의 노동력을 무상으로 착취하고 급기야 '나'의 존재 가치마저 망각한 채 종 부리듯 한다. '거저 근성'을 고치는 것, 그것이 곧 자존감을 되찾는 출발점이다.


조성기의 <작은 인간>은 두 이야기가 교차한다. 문단의 주류인 남성 소설가와 이제 문단에 발을 디딘 신진 여성 소설가가 불륜관계에 빠져든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의 막간을 '전족' 이야기가 채우고 있는데 사뭇 흥미롭다. 특정 신체 부위에 집착하는 '패티시'와 사상에 족쇄를 채우는 '전족'. 어딘지 닮은 부분이 있다.


이혜경의 <피아간>은 도식적이다. 아버지로부터 가장 혜택을 받았으면서도 아버지를 제대로 모시지 않는 큰아들, 그리고 대척점에 놓여있는 새어머니와 여자인 '나'. 브레히트가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통해 제기한 핏줄 문제는 매번 흥미롭다.


이기호의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은 재기발랄하다. 이웅평이 미그기를 몰고 남한으로 내려오자 전쟁이 난 것으로 오인한 주인공이 편집증적인 아버지가 만든 땅굴로 들어갔다가 우연히 흙맛을 본 뒤 매료되어 흙만 먹고 살게 되고, 그 흙맛을 배고픈 소녀에게도 전수한다는 내용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김중혁의 <무용지물 박물관>이다. 디자인 회사를 차려서 생계를 잇는데 급급하던 주인공이 우연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라디오를 디자인하는 내용인데 발상도 신선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하다. 시각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에 문학이 전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일까에 대한 진지한 성찰. 작품 중에 재미난 내용이 있어 적어본다.


'예술은 집에 가서 하고 회사에서는 디자인을 해라'... 예술은 일종의 진창과 같아서 한번 발이 빠지게 되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한참 진창을 허우적거리다보면 나중에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예술인지 자위행위인지도 분명하지가 않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온몸에 흙탕물이 묻어 있어 어떤 것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예술은 집에 가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집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정이현의 <그 남자의 리허설>은 불만족스럽다. 한때 촉망받던 예술가, 그러나 더 뛰어난 천재의 등장. 아내의 외도(혹은 남자의 상상). 우연한 사건으로 인한 몰락. 너무나 도식적이다. 어딘지 모르게 김영하의 단편 <이사>가 연상된다.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는 아버지의 부재를 다루는 방식이 특이하다. 김애란의 작품은 초기작밖에 읽어보지 못했는데, 천연덕스러운 부분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최근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구효서의 <소금가마니>, 윤대녕의 <탱자>, 하성란의 <웨하스로 만든 집>도 실려 있는데, <2005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던 터라 건너 뛰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