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베리 나이트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1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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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8월 12일, 도립 미즈모토 공원 인근 주택가에서 파란 천막지에 쌓인 시체가 발견된다. 도쿄 경시청은 즉시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주인공 히메카와 레이코 경위 역시 수사에 참가한다.

부검 결과 시체는 사망한 지 이틀 남짓 되었고, 사인은 경부 절창의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사였다. 사용된 흉기는 커터칼로 추정되었는데, 특이한 점은 상반신에 판형 유리를 올려 놓은 뒤 거대한 둔기로 위에서 내려치듯 구타한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복부에서 고관절을 향해 36cm 가량 절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얼마 뒤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진다. 성명은 카네하라 타이치, 종합 문구용품 영업사원이었다. 주변의 평판은 성실하고 무난하다는 것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최근 부쩍 일에 의욕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아내와 면담한 결과 카네하라 타이치는 최근 몇 달간 둘째 주 일요일에는 반드시 집을 비웠다고 했다. 그가 살해된 날 역시 둘째 주 일요일이었다.


수사가 잠시 답보에 빠지려는 시점에 히메카와 레이코가 미즈모토 공원 인근에 있는 우치다메 저수지에 꽂혀있는 '수질이 수영에 적합하지 않아 위험함' 이라는 문구를 보게된다. 그리고 연상작용으로 최근 물 속에 서식하는 파울러 자유아메바에 감염되어 사망한 사람을 떠올린다. 사망자는 후카자와 야스유키였고 그는 우치다메 저수지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히메카와 레이코는 시신의 복부에 나 있던 절창이 부패가스를 발생시키지 않으려는 목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가설을 발전시켜 후카자와 야스유키가 시신 운반자였으나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주택가에서 카네하라 타이치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추리했다.

히메카와 레이코의 가설에 따라 우치다메 저수지를 수색한 결과 시신이 한 구 더 발견된다. 발견된 시신의 신원은 나메카와 유키오로 대형 광고 회사 직원이었다. 그런데 나메카와 유키오에 대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발견된다. 최근 일에 의욕이 넘쳤고, 매월 둘째 주 일요일에는 스케줄이 있었다.


수사는 후카자와 유키치의 주변으로 확대된다. 후카자와 유키치는 사망 당시 73만엔이라는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 변변한 직업도 없던 후카자와 유키치가 이런 큰 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시신을 유기하고 받은 댓가가 아니었을까? 시신은 어쩌면 두 구가 아니라 수십 구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

그에게는 유카리라는 이름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공황장애와 화병, 그리고 이인증과 자해행위 등의 증상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었다. 경찰은 유카리와 면담을 원했으나 담당의의 반대로 뜻한 바를 이룰 수 없었다.


단서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튀어나왔다. 성실한 타입의 수사관 오쓰카가 나메카와의 대학시절 친구를 조사하다가 "스트로베리 나이트" 라는 키워드를 얻은 것이다. 오쓰카는 전과자 타쓰미를 통해 "스트로베리 나이트"가 살인쇼를 중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라는 점을 파악하고  관계자 명단 일부도 입수한다. 그리고, 얼마 뒤 토다 조정경기장에서 아홉 구의 시체가 추가로 발견되어 대규모 살인 쇼에 대한 의심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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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 중 하나로 그녀가 형사가 된 이유가 소개된다. 고등학교 시절 히메카와 레이코는 연쇄강간범에게 당한 뒤 두려워 움츠러 든다. 그때 초보 여형사 사타가 최선을 다해 레이코를 응원한 덕택에 조금씩 용기를 찾는다. 

사타는 연쇄강간범 체포에 지대한 공을 세우지만 범인에게 현장에서 살해 당하고 두 계급 특진하여 경위가 된다. 레이코는 자신은 살아서 경위를 달고 사타씨와 같은 훌륭한 형사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라는 다소 진부한 스토리다. 그런데 그 때문인지 히메카와 레이코는 자신이 경위임을 상당히 의식하는 모습이 소설 속에서 빈번히 나온다. 이것이 독자에게 긍정적으로 보일 지는 의문이다.

또, 소설은 상호 경쟁하느라 정보를 숨기고 공을 독차지 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 정보원을 매수하는 수사1과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우리나라 정서로 보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짐승의 성>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혼다 테쓰야의 소설을 한동안 피했는데 <스트로베리 나이트>는 드라마로 제작된 적도 있고 하니 정도가 덜하겠거니 하고 집어 들었다. 결론적으로 <짐승의 성>만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스트로베리 나이트>도 하드코어한 편이다. 수수께끼 풀이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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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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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이 넘는 키와 엄청난 왼손 완력으로 고교 시절 이미 프로야구단의 지목을 받았던 최현수. 하지만 정작 프로야구로 넘어간 뒤에는 2군을 전전하다 은퇴한다. 고질적인 왼손 마비증세 때문이었고, 그 때문에 별명은 '용팔이' 었다. 직업 야구 선수로서 치명적 결함이었다.

연봉이 800만원 밖에 안되는데도 장래성 하나를 보고 최현수와 결혼했던 강은주는 남편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판단이 되자 악바리가 되어 돈을 모은다. 몇 년이 흐른 뒤, 강은주는 일산에 전세를 끼고 빚을 얻어 아파트를 장만한다. 이자비용과 당장 살 집은 어찌할 것이냐는 최현수의 물음에, 강은주는 지방근무를 자원하여 사택에 들어가면 된다고 답변한다. 최현수가 야구선수를 은퇴한 뒤 취직한 보안업체는 지방근무 자원자가 모자랐다.


이사가기 전 사택을 보고 오라는 강은주의 바가지를 뒤로 한 최현수는 는적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과거 함께 운동했던 친구가 차린 술집에 가 술을 마시며 자신의 인생이 왜 이리 꼬였는지 괴로워하던 그는 취중에 운전대를 잡는다. 이미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한 버릇이었다.

비가 내리던 그 날, 최현수는 세령댐 부근 도로에 갑자기 뛰어든 무언가를 치고 만다. 여자아이였고, 기묘하게 뒤틀려 버린 몸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했던 여자아이는 상태를 살펴보는 최현수에게 '아빠'라고 중얼거렸다. 최현수는 자기도 모르게 여자아이를 질식시켜 죽인다. 그리고 강물에 빠뜨린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시간들이 지나고, 최현수는 부랴부랴 차를 수리한다. 강은주에겐 사택에 다녀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세령댐 근무를 취소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강은주에겐 씨알도 안 먹힐 얘기였다.


한편, 최현수와 한 집에 살게 될 승환은 사건 당일 날 밤 세령댐에 몰래 들어가 잠수를 하고 있었다. 승환의 아버지는 한강에 빠진 시신을 건져내던 것을 업으로 삼았었고, 아들인 자신도 SSU 출신이었다. 그날 승환은 한 구의 시신이 자신의 옆으로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오영제가 있다. 세령의 아버지이자 하영의 남편. 세령수목원의 상속자로 인근 토지 대부분을 소유한 부자이며, 서울에 메디컬센터 빌딩을 가진 치과의사. 그는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족의 한 부분으로 아내와 딸을 끼워 넣었다. 원대로 되지 않으면 폭력을 통한 '교정'을 가했다.

참다 못한 하영이 집을 나가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오영제는 1심에서 패소했다. 그 분풀이를 딸 세령에게 퍼부었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세령은 엄마가 그리워 엄마의 옷을 입고 화장을 했었다. 오영제는 그런 딸을 '교정' 하였고, 세령은 오영제가 방심한 틈을 타 바깥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최현수의 차에 치여 숨진다.


세령호에서 시신이 발견되자 경찰은 오영제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오영제가 세령을 학대했다는 정황만 나왔을 뿐 살해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오영제는 경찰이 헛발질을 하는 동안 '서포터'를 고용해 별도로 조사를 시작한다. 처음엔 사건 당일 잠수를 한 승환을 의심한다. 하지만 CCTV에 나타난 차량 불빛과 새로운 보안팀장 최현수의 등장으로 오영제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었는지 깨닫는다.


오영제가 최현수를 요리하는 것은 무척이나 쉬웠다. 최현수는 자신의 범행을 감당하지 못해 술로 세월을 보냈고, 몽유병 증세까지 보였다. 자해로 왼손이 봉인되고, 오영제가 놓은 덫에 발까지 다친 최현수. 오영제는 서원을 세령호 한가운데 불룩 솟은 한솔등에 묶어놓고 댐 수문을 막아버린다. 물이 차오르면 서원이 죽을 것이고, 물을 빼기 위해 수문을 열면 마을 사람들이 수몰될 것이다. 최현수는 서원을 살리기 위해 수문을 연다. 그 결과 최현수는 희대의 살인마가 되어 사형을 언도 받는다.

7년이 지난 뒤, 형이 집행되고 최현수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 사이 서원은 살인마의 아들로 정상적인 생황을 하지 못하고 쫓겨다닌다. 그러다 어느 날, 승환이 쓴 소설을 읽게 된다. 최현수와 오영제, 그리고 승환과 자신이 주인공인 그 소설의 마지막 장은 엄마인 강은주의 챕터만 비어있었다.

아버지 최현수의 형이 집행되었다는 전보가 배달된 날, 사라졌던 오영제가 서포터와 함께 다시 나타난다. 붙잡힌 승환과 서원은 하영의 전화번호를 미끼로 마지막 도박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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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동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내 심장을 쏴라>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최근 작가들 답지 않게 경험과 취재가 글에 적절히 녹아 있어 진지함이 돋보였다.  그래서 <7년의 밤>을 사 놓고 벼르다 이번에 읽게 되었다.

한번에 쭉 읽어나가지 못하고 자꾸 책을 덮은 것은 그만큼 긴장을 고조시켜 나가는 작가의 솜씨가 훌륭했기 때문이리라. 호흡도 적절하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도 좋다.


그러나 선이 굵은 이 소설은 남성적인 영역에서 자주 취약점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사람을 치어서 보닛과 범퍼 등이 파손된 차를 동네 카센터에 오전에 맡겼다 오후에 찾아온다는 대목이나, 수리된 부분을 보고 15일에서 30일 사이에 수리된 차임을 정비공이 일러준다거나 하는 부분이 그렇다. 작가가 이런 분야에는 경험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또한, 일회용 면도칼의 칼날 부분을 분리한다는 대목 역시 아리송하다. 과거 안전면도기의 면도날을 말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일회용 면도기의 면도날은 별도로 분리할 수 없다.

소소한 부분이긴 하지만 입 안에 난 수포에 혀를 자꾸 대보는 것처럼 걸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7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사람은 미움이든 사랑이든 그렇게 오랜 시간을 자가발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싸이코패스의 이야기다, 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장르소설로서 특정 매니아를 표적으로 한 소설이 아닌 바에야, 작품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오영제에 대한 악마화는 디테일에서 완성되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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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드래건 1
토머스 해리스 지음 / 창해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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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뜨면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가 나타났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범행 대상으로 점찍은 집에 들어가 거울을 깨뜨린 뒤 일가족을 살해한다. 그 과정에서 강간이 자행되는데, 끔찍한 점은 시체가 된 나머지 가족들을 구경꾼처럼 현장에 늘어놓는다는 점이다. 경찰은 그가 피해자를 깨물기 때문에 '이빨요정'이라는 별명을 붙인 뒤 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AB형이라는 점을 빼고는 거의 단서가 발견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이에 FBI의 잭 크로포드는 저 유명한 연쇄살인마 한니발 렉터를 체포한 윌 그레이엄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레이엄이 한니발 렉터를 체포한 것은 어느 정도 우연이었다. 피해자 중 한 명이 한니발에게 치료를 받았던 이력이 있어 질문을 하러 갔다가 <부상자>라는 도해책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한니발은 정신분석학자였기 때문에 그 책은 부자연스러웠다. 표정이 변한 것을 눈치챈 한니발이 그레이엄을 공격하여 큰 중상을 입는다. 그레이엄은 상처가 회복된 뒤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결국 FBI를 은퇴한다. 그리고 지금, 잭 크로포드는 그레이엄이 아니면 '이빨요정'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크로포드의 요청을 마지 못해 수락한 그레이엄은 희생된 리즈 가족과 저코비 가족의 집을 방문해 연쇄살인범의 시각으로 현장을 돌아본다. 그리고 살인마가 맨손으로 눈꺼풀을 만졌을 것이라는 것과, 나무 위에 올라가서 한 동안 망을 봤으며 中 자를 세긴 것 등을 알아낸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그레이엄은 렉터를 찾아가서 도움을 구하지만, 렉터는 상징적인 이야기만 반복할 뿐 직접적인 단서를 주지 않는다.


한편, 어렸을 적 할머니에게 거세 위협을 당하는 등 반복적으로 학대당했던 프랜시스 달러하이드는 할머니가 사망한 뒤에도 같은 집에서 혼자 살았다. 언청이라 발음에 다소 문제가 있었던 그는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청년이 된 후 윌리엄 블레이크의 <거대한 붉은용과 태양을 옷으로 입은 여인>이라는 작품을 본본 뒤 변태 모티프에 집착한다. 등에 거대한 붉은 용을 문신으로 세기고 신체를 단련한 그가 살인을 통해 대인관계에서 느꼈던 모욕감을 떨쳐낸 뒤에는 자신이 신이 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는 필름 현상 회사 직원이었고, 비디오카메라의 보급 덕분에 가족필름의 현상 의뢰는 끊이지 않았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신이 될 기회를 골라잡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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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중간에 누가 범인인지, 그리고 동기가 무엇인지 밝혀진다. 따라서 작품을 좀 더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은 그레이엄(정상인)과 한니발(정신병자)의 차이점에 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작품에 시쳇말로 기레기 하나가 나오는데, 이 자는 '이빨요정'에 의해 살해된다. 흥미로운 점은 윌 그레이엄이 이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이빨요정'은 일가족을 몰살시키기 전 반드시 반려동물을 먼저 처리했다. 그레이엄은 '이빨요정'이 자신을 타깃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자가 자신의 애완동물 처럼 보이도록 사진을 찍어 노출시킨다. 

한니발 역시 이 점을 지적한다. 한니발은 그레이엄이 자신을 체포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레이엄이 자신과 비슷한 부류였기 때문에 사건의 핵심에 다가설 수 있다고 했다. 

감옥 문을 두고 안에 있는 자(한니발)와 바깥에 있는 자(그레이엄)로 구분되어 있긴 하나, 이 구분은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일까? 

'바깥'에 있는 자는 '바깥'에서 일어난 사건을 자꾸만 '안'에 있는 자에게 묻는다. '안'에 있는 자는 자꾸만 '바깥'에 있는 자가 자신과 같다고 한다. 바깥과 안이 사실은 하나와 다름 없다는 인식. 

포스트모던적 성향이 다분히 강한 이 소설은 미스터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이지적인 통찰이 곳곳에 넘쳐나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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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존스의 일기 브리짓 존스 시리즈
헬렌 필딩 지음, 임지현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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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결혼적령기(이 책에서는 20대이다)를 놓친 30대 브리짓 존스가 1년간 쓴 일기인데, 언제나 몸무게, 마신 술, 피운 담배, 섭취한 칼로리, 즉석복권에 소비한 돈을 기록한 뒤 그날 있었던 특기할 만한 사항을 곁들이고 있다.

출판사에 다니고 있지만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은 아니며, 잘생긴 남자와 짜릿한 연애를 함으로써 퇴물 취급 받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어 하는 브리짓. 

그런 브리짓에게 직장 상사 다니엘 클리버가 명백히 성희롱에 가까운 언사로 추파를 던지는데, 뜻밖에도 브리짓은 그 추파에 홀랑 넘어가 얼마 뒤 잠자리를 갖게 된다. 그리고 나서 다니엘은 역할 다 끝낸 나쁜 남자들이 그러하듯 브리짓을 본체 만체 하다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다.

상실에 빠져 있는 브리짓에게 '2000년대 초반 페미니즘'이 동지로 여길 법한 동성애자 톰이 나타나 위로를 건낸다. 

60의 나이에 '자신을 찾겠다'며 아빠를 버리고 남미 남자 줄리오와 바람이 난 엄마가 모종의 사기사건에 연루되어 곤란에 처하자 소꼽친구 마크 다아시가(그렇다,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이다)가 나타나 도움을 준다. 다시 보니 마크 다아시는 잘생겼고, 돈도 많고, 게다가 브리짓을 좋아하기까지 했단다. 

모리스 마테를링크 만세!  


1999년에 출판되어 꽤 인기를 끌었던 책이다. 2008년에 아벨서점에서 3,500원 주고 샀는데 11년이 지나서 읽는다. 예전에 유행했던 베스트셀러를 읽다보면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요새 출간되었다면, 하, 재밌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을텐데.


책을 읽고 깨달은 점. 


어쨌든 시대를 견디는 힘이 있는 책만이 오래 읽힌다. 시대를 견디는 힘은 사실과 통찰에 있다. 진보적이기만 해서는 시대를 견딜 수 없다. 체르니셰프스키나 진광생의 책은 이제 거의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보수반동 작가 카밀로 호세 셀라의 <벌집>이 읽힌다. 아니면, 허영만의 <오! 한강>이.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54118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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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2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남진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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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 작품은 300여 명의 인물이 연속해서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소와 인물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우연일 뿐 일정한 줄거리도, 특기할 만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벌집" 속의 벌들처럼, 마드리드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그저 살아갈 뿐인 불쌍한 민중을 무작위로 돌아가는 카메라가 마음 내키는 시간 만큼 비춰줄 뿐이다.

카밀로 호세 셀라는 일체의 의문을 제거한 채 오직 카메라에 담긴 피사체만 성실하게 기술한다. 결핵에 걸린 사내, 그런 사내의 병원비를 위해 몸을 팔려하는 여자, 지식인이면서도 자활수단이 없어 걸인처럼 살아가는 마르틴 마르코 등을.

답답하리 만치 짓눌려 살아가는 이들을 쳐다보기만 했던 카밀로 호세 셀라. 그는 억눌린 민중들이 왜 그렇게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는지 일체 관심이 없었다. 비판도, 고발도, 희망도 없는 리얼리즘. 그래서 사람들은 카밀로 호세 셀라의 리얼리즘을 '전율주의'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정의 패배를 간절히 바랬으며, 작품 속에서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기라도 할까봐 안달을 하는, 철저한 보수반동 세력이었다. 그리고 그가 희망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절망을 댓가로 하는 경우 뿐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려낸 마드리드의 모습이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자신이 줄을 대고 싶었던 프랑코 정권으로부터 출판이 금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숙명론적 관점에서 전체주의를 동경하던 작가는 1989년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거세게 불던 시기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And no otehr attitude is to be expected, for there can no "impartail" social science in a society based on class struggle. 

 

'공평무사한' 과학이란 없다. '공평무사한' 문학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벌집에 사는 벌들처럼 연결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537647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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