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선집 1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김광규 옮김 / 한마당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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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다 못을 박지 말자.

저고리는 의자 위에 걸쳐 놓자.

무엇 때문에 나흘씩이나 머무를 준비를 하느냐?

너는 내일이면 돌아갈 것이다.

 

어린 나무에 물을 줄 필요도 없다.

나무는 또 무엇하러 심겠느냐?

그 나무가 한 계단의 높이도 자라기 전에

너는 즐겁게 여기를 떠날 것이다.

 

.......

 

브레히트의 <망명기간에 대한 단상>이라는 시의 일부이다. 나는 이 시를 지금껏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고 착각을 해왔다. 아마도 예전에 이 시집을 읽을 때에 이 시가 가장 인상에 깊게 남았던 것 같고, 그래서 그런 착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또 이사를 가야만 한다. 이삿짐을 부려 놓고, 그 짐을 다 풀기도 전에 다시 짐을 싸야만 하는 삶.

정리되지 못한 채로 피난민과 같이 잠드는 삶

그리고 집이 아닌 방들... 

레마르크의 소설에 나오는 망명자와 같이 지긋지긋하게도 나는 옮겨다닌다.

동네라든지, 이웃이라든지, 가져보지 못한 것들.

이젠 또 어디로 흘러들지... 막막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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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셉션 포인트 1
댄 브라운 지음, 이창식 옮김, 고상숙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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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교베텔스만주식회사...라는 출판사에서 출판된 책이다.

책과는 다른 이야기인데 계양우체국에서 근무할 때 이 출판사 때문에 한동안 골치를 썩인 적이 있다. 우체국에는 신서독점권이라는 것이 있는데 편지를 우체국 외의 다른 기관이나 개인은 보내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몇가지 예외 조항은 있지만 꽤나 까다로운 조항들이다. 그런데 이 출판사에서 한 집중국의 별납 인영을 위조하여 우체국을 통하지 않고(한마디로 우편 요금을 떼먹고) 배달을 했는데 무작위로 책을 우체통에 꽂아놓고 책 안쪽에 책값 지로용지를 꽂아둔 것이다. 그러니 우체국에 반송되는 책들이 날마다 쌓여갔다. 신서독점권 침해의 증거물이니 보관해 놓으라는 지시에 따라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그 많은 책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애물단지처럼 1년여를 보관하다 보니 대교베텔스만주식회사의 책은 쓰레기라는 인식이 박히게 되었다.

책 얘기는 안하고 출판사 얘기만 한 것은, 사실 별 내용은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에 임박하여 음모가 진행되고 이를 해결하는 똘똘한 아가씨와 심지 굳은 미국 대통령 얘기인데 <인디펜던스데이>라는 미국 반공 영화가 생각났다. 그저 그런 내용이긴 했지만 꽤나 속도감 있게 읽힌다.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059572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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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브 디거 밀리언셀러 클럽 66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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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의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작이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매우 불운한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 그의 데뷔작인 <13계단>이 47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았을 때, 심사위원 중 한명인 오사카 고는 "지난 10년간의 란포상 수상작 중에서도 출중한 걸작"이라는 평을 했다. 내가 받은 느낌을 말하자면 최근 10년간 읽은 추리소설 중 가장 뛰어난 수작이라는 느낌이었다.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서사구조를 벗어나지 않기에 묵직한 느낌이며 최신기술로 만들어낸 지문을 오래된 절터의 증거물에서 발견되도록 하는 발상은 독특했었다. 기시 유스케의 <유리망치>가 최신 기술을 난삽하게 추리에 차용함으로써 추리소설의 격을 떨어뜨렸던 것에 비하면 신인으로서 보기 드문 역량이란 생각이다.

그런 다카노 가즈아키가 두번째 장편소설을 냈다. <13계단>과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다카노 가즈아키는 한동안, 아니 평생을 <13계단>이라는,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레이브 디거>를 만일 다른 작가가 썼다면 참 괜찮은 소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는 <13계단>의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가 쓴 또 다른 소설로서의 <그레이브 디거>를 읽을 것이기에, 이 소설의 평가는 야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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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밭 엽기전
백민석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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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판 발행의 <목화밭 엽기전>은 말 그대로 한창림과 박태자의 엽기적인 행각을 그린 소설이다. 

그들의 집은 과천정부종합청사와 서울대공원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과천정부종합청사가 권력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한 법적· 제도적 외형의 완성을 의미한다면, 서울대공원과 동물원은 인간의 야성을 모험과 폭력을 통해 안전하게 조절하는 공간이다.  

그들의 엽기적 행각은 시종일관 인간의 이성적 성취를 부정한다. 한창림은 절대적 힘의 우위에 있는 '삼촌'에게는 스너프필름을 찍어다 바치는 복종을 감수하는 반면, '뷰티풀 피플'의 남편이나 회계사에게는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힘을 통해 증명한다. 작가는 이들의 이런 엽기적인 행각을 그리면서 독자가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없도록 급박하게 전개시키는 한편 의도된 코믹적 상황도 간간히 끼워 넣는다. 그래서 독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구역질을 참기 보다는 오히려 한창림과 박태자의 엽기적 행각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라기까지 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들의 직업이 대학강사와 수학과외강사라는 점이다. 사회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위해 사회구성원을 가르치는 직업에 있는 그들의 본모습이 사실은 뒤뜰에 감금실을 만들어 감금·강간·살인을 일삼는 동물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90년 초 이성과 진보의 믿음은 무너지고 IMF라는 초유의 국가 비상사태까지 경험한 2000년대의 우리사회에서 작가가 이성과 진보보다는 파격과 환상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파격과 환상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폭력을 일삼던 주인공 알렉스가 지배구조의 체계적 폭력에 직면하여 완전한 인간성 파괴를 경험하게 되는 얘기에서 이미 다룬 모티프이다. 알렉스를 고문하면서 알렉스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폐인을 만드는 그 장면을 통해 감독은 구조적 폭력이야 말로 무서운 것이며 개인의 일상적 폭력은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면 여기서 독자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한창림과 박태자의 살인행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이다. '삼촌'으로 형상화되는, 이미 사회구성원에게 내면화되어 일상인들은 인식조차 하기 힘든 폭력과 한창림과 박태자가 미성년을 약취유인하여 강간살인하는 그 폭력은 분명 그 파괴력에 있어서는 다른 것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무척 유사한 그 두개의 폭력 외에 다른 폭력은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즉 '삼촌'과 닮은 것이 아니라 '삼촌'에 맞서는 폭력 말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05715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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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스티븐 킹 걸작선 1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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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캐리>를 산 곳은 동인천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 아벨서점이다. 책 얘기를 하기 전에 아벨서점 얘기를 하려고 한다. 아벨서점을 처음 간 것이 대학교 2학년 때 선배를 따라간 때니까, 이러구러 15년 동안 단골 아닌 단골인 셈이다. 대학 시절엔 주로 사회과학 서적이 많다는 이유로 들락거렸고, 요새는 비교적 깨끗한 책들이 많아서 이용하는 편이다. 그러나 나는 아벨서점을 자주 이용하면서도 아벨서점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은 없다. 

인터넷 서점의 신간 할인코너보다 되려 비싸게 파는 책도 있고, 출처가 의심스러운 책(불투명테이프로 도서관 분류테이프를 가린)들도 보이며, 무엇보다도 헌책을 팔러 온 사람들에게 무척 야박한 값으로 후려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야 장사가 되고 유지가 되겠지만, 그렇다면 그냥 장사를 하는 것으로 족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벨서점의 입구에 붙은 인천문화의 지킴이 운운의 문구는 그다지 공감되지 않는다. 

아벨서점은 책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곳이다. 다만 그 책이 헌책일 뿐이다. 문학을 사랑해서 돈이 되지도 않는데 인천지역 문화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곳이 아니다. 반대 명제로 나 역시 인천의 문화를 사랑해서 아벨서점을 가는 것이 아니다. 단지 깨끗한 헌책을 사러갈 뿐이다. 현상 이면의 본질은 때론 단순한 법이다. 단순한 본질을 이리저리 꼬아서 해석하면 때론 엉뚱한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스티븐킹의 <캐리>와 관련한 비평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가 스티븐킹의 전집을 통째로 아벨서점에다가 팔아놨기에 전집을 사기는 부담스럽고, 뭘 살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김성곤 교수의 해설이 수록된 <캐리>를 집어들었다. 포스트모던 비평의 대명사인 김성곤 교수의 영화비평 모음집을 대학교 때 읽고 '아 이렇게 해석하면 아귀가 들어맞을 수도 있겠구나' 하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김성곤 교수의 해설을 보자. 캐리의 어머니는 원리주의 신자로서 교조주의적 종교를 캐리에게 강요한다. 이는 미국의 비인간적이고 왜곡된 청교도적 전통을 상징한다. 반면 캐리를 놀려대는 학교급우들은 천박하고 타락한 물질주의를 상징한다. 스티븐킹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을 사람을 사회가 어떻게 비정상적이고 파괴적으로 만드는가 극명하게 보여 주는 강력한 사회비판 소설을 썼다고 김성곤 교수는 말한다.

김성곤 교수의 영화비평과 캐리의 비평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문제를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성곤 교수의 주장에 일면 동감하면서도, 전적으로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해묵은 명제라 생각될지 모르지만 토대와 상부구조 얘기를 다시 해보자. 문화적 영역이 토대를 반영하지 않고 독립적일 수가 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소설, 어떤 영화, 어떤 문화이든지 간에 토대를 반영할 수 밖에 없으며 온전한 의미의 상징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상징은 현재의 토대를 반영하며 현재의 의식수준을 넘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상징은 단순하건, 복잡하건 해석 과정을 거쳐 토대의 어떤 부분을 반영하는지 말할 수가 있다. 올해 초 읽은 노엘 칼레프의 B급 스릴러소설 <파리의 밤은 깊어> 조차 이런식으로 비평하면 "자본주의의 왜곡된 사회 질서 속에서 범죄가 테러리즘의 양상을 띠게 되며 그 영향이 미성년에게조차 미칠 수 있음을 예리하게 파해친 사회고발 소설" 이라고 한다해서 틀릴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라는 식의 이분법적 구분도 문제이겠으나, 과도하게 상징에 집착하여 해석하려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 <캐리>를 읽고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아이를 비정상으로 만드는 사회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의식을 느낀 독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혹은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만 <캐리>를 온전히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좀 더 생각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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