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8
이종호 외 9인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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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김종일) : 운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였기에 백배 공감을 하면서 읽었다. 불쑥불쑥 끼어드는 차량, 일차로 맨 앞에 신호대기중인 차량에 우회전 의지를 나타내며 뒤에서 빵빵대는 차량, 운전을 하다보면 불쑥불쑥 들고 일어나는 불쾌감과 분노. 운전을 하면 모두들 용감해진다고 하지만 꼭 그런것만은 아니다. 물론 용감하지 않았던 일부가 용감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부 운전자는 주눅이 든다. 특히나 나처럼 공무원 나부랭이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쓸데없는 분쟁에 휘말려 들었다가 곤란해지는 것이 싫은것이다. 일방통행은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분노를 꾹꾹 눌러담으며 살아가는 한 소시민의 이야기인데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작가가 공포소설이라는 특정 장르에 한정되지 않고 소설을 써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둔(권정은) : 별다른 개성도 없고 공포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흔한 스토리. "알고보니 내가 한 일이었잖아" 정도.

 

상자(신진오) : 어느날 상자를 하나 갖게 되는데 상자는 버리려 해도 버릴 수 없다. 그 상자는 사람들 되살려내는 힘이 있다. 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는가? 알 수 없다. 알 수 없으니까 부조리하다. 부조리는 공포문학에서 자주 써먹는 수법이다. 부조리 자체는 공포가 아니다. 그냥 답답함이다. 부조리가 공포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세심한 장치가 필요하다.

 

감옥(엄성용) : 아이디어에서 그친 작품.

 

들개(우명희) : 이승우의 <도살장의 책>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공포 포인트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흉포한 입(최민호) : 어릴 때 스티븐 킹의 <금연주식회사>를 읽고 공포문학에 눈을 떴다. 작가도 그런 것일까? 다른 점이 있다면 스티븐 킹이 먼저 썼다는 점. 나중에 쓰는 사람은 더 잘 써야 한다.

 

하등인간(장은호) : 어린시절 <전설의 고향>을 보고 무서움을 느끼면서 한국적인 공포에 다들 익숙해져있다. 말이야 거창하지만 간단히 얘기하면 귀신이 된 '이유', 또는 '한' 이 있고 그것이 해소되면 해피앤딩이 된다. 그런면에서 외국의 공포물에 흥미를 못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어쨌든 주인공이 죽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유', '한', '해소' 그런 것이 없이 그냥 단지 죽어야 한다면 공포는 반감된다. 부조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의 문제로 확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그분들이 나타나 다들 죽어줘야 겠다 하는 상황이 공포스러운가? 공포는 현실적으로 그럴싸하던가, 내 안의 어둠을 반영해야 한다. 둘 중 어느것도 아닐 경우 공상소설이다.

 

아내의 남자(이종호) : 다중인격 얘기는 이제 그만 좀 했으면. 기시 유스케의 <이소라>나 제임스 맨골드의 <아이덴티티> 처럼 떼거지로 인격이 나온다거나 하지 않으면 이제는 너무 진부하다.

 

모텔탈출기(박동식) : 자신의 어둠을 완벽히 위장하고 있는데 이를 누군가가 알아챈다면. 공포를 느끼겠지. 트릭에 의존한 짧은 소설이지만 그런대로 재밌었다.

 

깊고푸른 공허함(김민영) :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다시 읽는 편을 택하겠다. 제목대로 공허했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독서였다. 좀더 인간의 어둠과 무의식을 치열하게 파고든 소설, 매일 부딪히는 상황에서 공포스러움을 발견하는 소설, 그런 작품을 기대했으나 <일방통행> 에서 약간의 가능성을 느꼈을 뿐 다른 소설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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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목요일
존 스타인벡 지음, 박영원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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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벡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의심스러운 싸움> 이다. 사과과수원 노동자들의 불만을 조직하여 싸움으로 발전시킨다는 책 내용에 구미가 동하여 동아리방에서 읽었던 것인데, 사실 내용에 매료되었던 것 보다는 스타인벡의 담담한 어조에 끌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가 그려내는 사람들의 갈등의 원인과 결과를 독자가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도록 어느 수준까지만 그려내는 방식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 후로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 등을 읽으면서 스타인벡의 소설이 국내에 번역된 것이 무엇인지 목록을 만들어 놓고 아껴가며 읽었다.

청목출판사의 <불만의 겨울>을 읽을 때엔 진심으로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여러차례 반복해서 읽는 동안 번역을 개판 오분전으로 해놓았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달콤한 목요일>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발표된 <통조림공장마을>의 후속편 격으로 전후에 발표되었다. 통조림 공장 골목을 뜻하는 '캐너리 로'에 사는 다양한 인간상의 모습들을 그려내는데 기존의 스타인벡 소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환상과 상징이 교차하고 개개인의 의식의 흐름에도 꽤나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통조림공장마을>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생활방식으로 마을사람들의 애정을 받는 닥은 <달콤한 목요일>에서는 참전 이후 마을로 돌아와 혼란을 느낀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해보지만 단편적인 해결책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 그를 걱정하는 맥과 친구들은 항상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닥을 도와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닥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엉뚱한 해결책만을 제시한다.

'캐너리 로'에 흘러들어온 매춘부 수지는 그런 닥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자신의 처지가 닥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닥으로부터 거부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닥을 비난하는 태도를 취한다. 포나는 그런 수지에게 '사람들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실 잘 모른다' 며 수지를 독려한다. 이에 용기를 내는 수지와 주변의 성화에 못이긴 닥은 데이트를 하고, 닥이 수지에게 외로움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기존의 자신의 삶과 연애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 지 모르는 닥은 수지를 밀어내기만 한다.

맥 패거리는 떠들석한 가장무도회를 열어 닥은 왕자 역할을, 수지는 백설공주 역할을 맡겨 약혼시키려하나 그들의 계획은 수지에게 상처만 주게되고 수지는 매춘부를 그만 두고 마을의 버려진 보일러에 들어가 스스로의 삶을 꾸려간다. 그러던 어느날 닥은 수지에게 추근대는 녀석과 싸움을 벌이고 난 다음에야 자신이 원하는 바를 깨닫게 되고 그런 닥을 용서한 수지는 채집여행을 떠난다.

마을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재미가 있다. 이문구의 <우리동네>, 박영한의 <왕룽일가>, 양귀자의 <원미동사람들> 처럼 한 마을의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을 여러차례 반복해서 읽게 되는 이유는 나이를 먹으면서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이웃들의 행동과 태도를 다시 읽는 순간에 비로소 이해하기도 하고, 예전엔 전혀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없었던 얘기를 새로 읽을 때에 무릎을 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달콤한 목요일>을 언젠가 다시 읽게 될 때에, 누구의 얘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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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1.5평 청춘기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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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꽤 오래 대학을 다녔다. 1994년도에 입학해서 내리 10년을 다녔다. 수업을 들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매일같이 동아리방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기타만 쳤다. 학점은 1학년때 0.0 과 선동열 방어율(0.88)을 기록하며 2차례 학사경고를 맞은 뒤로 1.70~1.75의 초저공비행을 해가며 제적만 면했다. 2004년도에 졸업한 뒤에도 6년간을 대학 부근을 떠나지 못하고 얼쩡거렸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취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나에게 '너는 이제 사회인이야' 하고 대학이 등을 떠밀며 졸업장을 내밀었다. 나는 너무 당혹스러웠다.

와세다 1.5평 청춘기는 내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한 책이다. 주인공 다카노와 탐험부 동아리의 이시카와, 나리타 등은 하나 같이 제 멋대로 살아가는 청춘들이다. 자취방에 누워서 학교를 바라보면 마치 출석한 것 같은 뿌듯한 맘이 들어 좋다는 주인공 나리타는 동아리방에 출근하는 것으로 출석을 대신하던 내 학창시절을 떠오르게 했고, 환각 효과를 기대하고 마귀광대버섯과 선인장을 먹는 이시카와의 모습에서는 대학시절 비디오방에서 본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떠오르게 했다.(영화 속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온다며 바나나 껍질을 말려 환각효과를 기대하고 먹는 장면이 나온다)

다카노가 노노무라의 자취방을 떠나게 된 이유는 취직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새로 사귄 여자친구와 좀 더 가까이 있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대학과 자취방이라는 품 속에서 마음껏 어린양을 부리며 사회인이 되길 미뤘던 자신을 깨닫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그는 노노무라를 향해 "많이 배우고 갑니다."라며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취직을 하고 집을 사고 운전면허를 따고, 정말이지 대학시절에 내가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베스트 3를 다 한 지금도 나는 묻는다. 나는 대학시절, 그리고 그 시절의 '방'에 작별인사를 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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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훈민정음 암살 사건
김재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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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를 보면 민족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광기에 사로잡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일에 기꺼이 동참하고 알수없는 분노에 몸을 내맡긴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배했던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을 '일본' 이라는 추상적인 차원에서 답하고, 여기에 만족한다면 세계대전을 휩쓸었던 광기에 동참할 준비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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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청소년 현대 문학선 8
김주영 지음, 정현주 그림 / 문이당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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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주영에 대한 나의 평판은 대단히 호의적일 수 밖에 없다. 이문구가 극찬을 한 글을 읽고 난 후로 더욱 그러하다.

고등학교 때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TV에서 김주영의 <도둑견습>을 극화하여 방영해 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고 포복절도 했었는데 당시에는 그것이 김주영 소설이 원작인지 몰랐었다. 그러던 중 대학 선배가 <도둑견습>의 한 구절을 말하면서 꼭 읽어보라고 했었는데 그제서야 그 드라마가 김주영 소설임을 알았다.

그러던 중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와 <천둥소리>를 읽은 후로 참으로 작가다운 작가라고 흠모해 마지 않다가 <멸치>를 읽게 되었다.

주인공 대섭은, 명포수라 자처하나 실은 헛포수에 다름 아닌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 실망하여 집을 나간 어머니, 그리고 그 둘의 관계에 미묘한 선을 대고 있는 외삼촌 사이에 놓인 존재이다. 아버지와 외삼촌 모두 대섭에게 일정한 책임감을 느끼고는 있으나 그들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대섭에게 드러내 놓고 애정을 표현하는 법은 없다.

대섭의 아버지는 헛포수라는 이름을 떼어 내고 그럴싸한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선 멧돼지를 꼭 잡아야 한다. 멧돼지만 잡는다면 허명을 떨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을 나간 대섭의 어머니도 돌아오리라 생각한다. 반면 외삼촌은 멧돼지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대섭의 아버지를 신뢰하지 않기에 힘을 보태주지 않고 있다. 이 둘 사이를 오가며 관계의 회복을 바라는 대섭을 보면서 아버지와 외삼촌은 어쩌면 대섭의 바램대로 일이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드디어 멧돼지 사냥에 나선다.

결과적으로 멧돼지를 사냥해오긴 하지만 아버지가 쏘아 맞춘 것은 멧돼지의 급소가 아니었고, 멧돼지를 실제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외삼촌의 작살이다. 

이 소설에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대섭이 어머니의 행동이다. 피붙이를 떼어놓고 야반도주를 한 것이 대섭이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에서였다면, 대섭에 대한 애정은 어느정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머니는 끝내 대섭을 찾아오지 않는다. 결국 대섭은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작가 자신의 아버지가 부재했음이 문학적 근간으로 작용하는 것은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쨌거나 대섭은 어른이 될 테고 스스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멧돼지 사냥을 통해 깨닫게 된 삶의 진실은 결국 인간은 언젠가 혼자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아닐까.

 

http://blog.naver.com/rainsky94/80064010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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