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천국 - 1997 제21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호경 지음 / 민음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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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회사원인 김, 군복무중인 하사 박, 그리고 대학생 이가 마약에 중독되어 가는 이야기이다. 

회사원 김은 어느날 구로에서 인천으로 가는 총알택시를 탔다가 교통사고의 증인이 된다. 경찰서에서 택시기사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고, 택시기사로부터 드링크제를 얻어마신 후 세상 모든 것이 시시하고 호연지기가 솟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코 수술을 한 후로 두통에 시달려 왔는데 그 드링크제를 다시 먹으면 두통이 없어질 것만 같고, 어렴풋이 마약성분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택시기사들이 잔돈을 바꾸는 노점 좌판이 마약 공급처임을 알게 된 김은 계속해서 마약을 복용하고 결국 돌출행동으로 회사에서 쫓겨난다.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김은 퇴직금으로 경마를 시작하여 돈을 다 날리게 되고 비슷한 이유로 노숙자가 된 대학생 이와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하는 처지에 떨어진다. 경찰에 잡힌 김은 경찰로부터 갖은 폭행과 구타에 시달리며 한때 자신이 사랑했었던, 그러나 마약에 중독된 후 현실감각을 잃어버리고 강간을 했던 최와 경찰서에서 대면한다.

대학생 이는 서점에서 책 도둑 잡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느날 전철을 타고 가다가 청량리역에서 철로에 여자 지갑이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주우러 갔다가 정체불명의 사내에게 끌려가 주사를 맞는다. 주사를 맞은 이후부터 불쾌한 냄새에 시달리게 되면서 주사를 맞기만 하면 이런 증상이 없어지리라 생각한다. 스스로 청량리 역사의 지하로 가서 주사를 맞기 시작하는 이 역시 돌출행동으로 서점에서 쫓겨나고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지만 거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심각한 중독상태에서 교수를 폭행하여 학교에서 쫓겨난 이는 노숙자가 되어 김과 같이 소매치기를 시작하고 김이 잡혀간 후에는 여장을 하고 돌아다닌다.

군복무중인 하사 박은 휴가중에 서울역에서 어떤 여자로부터 사탕을 받아먹고 급작스런 성욕구에 창녀촌을 찾는다. 사탕에 뭔가 들어있었을거란 짐작을 하고 사탕을 건내준 여자를 찾아 혼쭐을 내줘야 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다시 사탕을 받아먹은 박은 귀대하는 기차에서 애딸린 촌 아낙과 기차 화장실에서 성행위를 하다가 사람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귀대 후에도 신병을 성희롱하여 결국 제대 당한다. 여자를 찾아가 분풀이를 하려던 박은 의지와 무관하게 여자와 한패가 되어 서울역에서 사탕을 나눠주는 일을 반강제로 하게 된다. 스스로 서울역 파출소에 걸어갈 수 있음에도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다가, 어느날 벌거벗은 채 서울역 광장을 미친사람처럼 뛰어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평범한 성인 남성이 일반적으로 거치는 과정은 대학을 다니다가 군대에 다녀와서 회사에 취직하는 수순일 것이다. 김, 박, 이는 그야말로 평범하기만 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마약에 접하게 되는 과정도 이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난다. 딱히 의지가 약하거나 비정상적인 사고의 인물이 아니었지만 일단 마약을 접한 후의 그들은 스스로 마약을 찾게된다. 김은 마약을 통해 두통이 사라지고 앞날을 예측할 힘이 생기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고, 이는 온갖 더러운 것이 보석으로 보이고 참을 수 없는 냄새들이 사라지며, 박은 자신이 힘이 세지고 성욕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현실로 돌아온 그들은 벗어나야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계속해서 마약에 의지하게 되고, 사고의 틀이 붕괴되고,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후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김이 경찰에 잡혀간 후 김이 마약중독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고, 마약공급책으로 지목한 좌판에서도 마약이 아닌 미숫가루만 나온다는 점이다. 위약효과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엔 김의 상태가 너무나 심각하고, 마약공급책이 경찰의 급습 사실을 알고 마약을 감추었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또 이가 주사를 맞고 박이 사탕을 먹는 과정도 실제 마약에 중독된 과정이란 걸 의심케 할 대목이 없다. 작가의 의도가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마약에 중독되건, 혹은 중독되지 않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어려운 현재를 그리기 위한 트릭이었다면 약간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오늘의 작가상>은 너무 편차가 심하다. <사람의 아들>, <살아남은 자의 슬픔>,<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와 같은 작품이 있는 반면, 도무지 수상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한 <흰 뱀을 찾아서>, <길 위의 집> 같은 작품도 있다. <낯선 천국>은 김, 이, 박 각자의 얘기로 구성되었으며 때로 인물들이 교차되기도 한다. 김과 이는 접점이 있는데, 박은 따로 논다.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아니면 박을 교차시킬 만한 접점을 만들지 못했는지는 모르겠다. 환각상태에서 인물의 심리는 억지스럽지 않지만, 결말로 갈 수록 소설의 구심점이랄까 하는 것이 흐트러지는 느낌이다. 이는 세 인물 모두 마약에 중독되어버렸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대로만 갈 수 없었던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책 말미에 이문열은 '작가는 분발과 정진으로 내 부족한 안목에 복수하라' 라는 심사평이 있다. 아마 이문열은 이 작품에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지만 오늘의 작가상에는 다른 심사위원의 선정으로 당선이 된 모양이다. 그 후로 작가는 분발과 정진을 했을지 어땠을지 잘 모르겠다. 호기심이 일어 작가가 그 이후에 쓴 책이 무언지 찾아봤지만 몇 권 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 광화문 일대와 서울역 풍경이 많이 나온다. 명동에서 근무하던 때 기억이 많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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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길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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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독서였다. 작중 인물들의 행동에는 아무런 개연성이 없었고, 순간순간의 대사는 발작적이기만 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는 알겠지만, 소설적 형상화에는 완전히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한림 : 친구들에게서 곡을 받아 '먼길' 이란 노래를 부르던 가수 한림은 어느날 모처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다. 곡을 주었던 친구가 반정부인사였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에게 그런 노래를 준 친구를 원망하는 한편, 창녀촌 방 호수까지 대고서야 풀려났던 기억을 넌더리내며 그는 미국으로 이민오고, 정착한 후에는 역마살이 끼인사람처럼 행동하다가 아내의 부정을 기회삼아 이혼하고 삶을 '즐기'고 있다.

 

한영 : 대체적으로 안정적이던 직장을 다니던 그는 어느날 길거리에 줄지어 가는 사람들을 보고 답답함을 느낀다. 우연히 미국 여행을 한 후 막연히 '새로운 시작'을 바라게 된다. 정신박약아를 동생으로 둔 서연과의 결혼에서 장애인 아이가 태어날 것을 두려워하던 그는 마침내 미국 이민을 결심하고 서연과 헤어진다. 떠나기 전 서연을 만나 서연과 함께 가자고 하지만 서연은 한영에게 떠나서 절대로 돌아오지 말라고 하며 거절한다. 8년이 지난 후 미국에서의 삶도 새로울 수 없음을 알게 된 한영은 서연에게 편지를 보낸다.

 

명우 : 대학 2학년 때에 시위로 1년 반동안 옥살이를 한 후에 자폐증 등을 앓는다. 미국으로 여행을 왔다가 비자 기간이 만료되자 형이 영주권 신청을 하든가 당장 돌아가든가 하라는 말을 듣고 돌아갈 곳이 없음을 안 명우는 난민비자를 신청하여 영주권을 획득한다.

 

도무지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 한림의 이혼, 한영의 이민, 명우의 괴로움 모두 수긍이 가지 않는다. 

고래를 잡는다는 둥 옛 꿈을 쫓는 듯한 한림은 왜 이혼을 했을까. 역마살이나, 지긋지긋함 때문인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어느날 트집잡아 하듯 이혼을 해버린다.

한영이 이민길에 오르는 것이 '새로운 삶' 에 대한 동경이었다고 한다면, 적어도 어떤 질곡속에서 좌절하고 방황했는지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 여행을 온 후 홀딱 반했고, 때마침 사귀던 서연의 남동생이 정신박약아라서 태어날 아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걸까. 그런 상황에서 결혼도 하지 않은 청년이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결정을 하기는 쉬운가. 단지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본 '줄지어 가는 사람'들에게서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 것이 당시 남한사회의 답답함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너무나 쉽게쉽게 소설을 써나가는 것 아닌가. 게다가 잘 나가는 직장을 때려치우는 이유도 그런 비슷한 느낌 때문이라면 도대체 이 소설에서 '생활'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명우에 와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대학 2학년 때에 1년 반동안 옥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모처를 점거한 농성 때문이었다고 한다. 좋게 봐주려 해도 대학 2학년생이 1년 반 옥살이 후에 미국으로 와서 난민비자를 받는다? 작가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중언부언 늘어놓지만 구차할 뿐이다. 게다가 고등학교때부터 운동권이었을리도 없으니 명우의 활동 기간은 1년 남짓일 뿐이다. 그런 그가 미국으로 난민비자를 신청하는 등의 상황이 신념의 포기, 배신 등의 감정을 느끼며 '말 못하는' 마네킹과의 밤시간 동안을 편안해 할 만큼 설득력 있는지는 아무리 개인차를 감안해도 의문이다.

특히나 한림이 조셉에게 '밤길'을 영어로 가르쳐주어 노래를 부를 때에 "개자식! 영혼까지 팔아먹었어!"라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어떤 면이 영혼을 팔았다는 말일까. '밤길'이란 노래가 남한의 질곡을 표현한 노래인데 외국인에게 유행가 가르치듯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도한 측면이 있고, 영어로 가르쳤기 때문이라면 이건 조악한 민족주의적 시각에 불과하지 않은가. 라 마르세예즈를 한국어로 부르면 프랑스인이 수치심이라도 느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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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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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가 어떤 책이나 영화가 재미있다고 하면 그 책이나 영화를 보지 않았다. 한때는 그 이유가 내 비뚤어진 자의식과 삐딱함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워했다. 남들도 다 좋다고 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는 것은 어쩐지 시시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왕>을 읽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추천한 책이나 영화를 내가 재미없어하면 어쩌나, 아니 시시하거나 최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기껏 추천해준 사람에게 미안하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읽는 책, 보는 영화는 조마조마하다.

 

책은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마왕>

어느날 자신이 다른사람의 입을 빌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음을 알게 된 안도는 뭐든지 스스로 생각해보고 결정을 내리는 인물이다. 패전국인 일본은 고도성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서 큰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고, 커져가는 중국과의 외교마찰에서도 번번히 꼬리를 내리기 일쑤이다. 뿌리깊은 정경유착과 각종 스캔들로 젊은이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이런 일본의 상황에서 이누카이라는 인물이 '5년 내에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하면 내 목을 날리라'는 파격적인 선동을 하며 정치권에 등장한다. 그는 일본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젊은 층에서 광범한 지지를 받는데 안도는 이것이 어쩐지 파시즘의 시작인 것만 같다. 자신의 능력으로 무언가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과의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 일본인 선수가 미국 선수에 의해 살해당하고 일본 국민은 광기에 사로잡혀 미국이 본사인 패스트푸드점과 미국인의 집에 방화한다. 하지만 이누카이의 추종자 중에도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있어, 안도는 결국 살해당한다. <사신 치바>의 '치바' 가 잠깐 등장함.

 

<호흡>

안도의 동생 준야는 안도가 죽은 때부터 메스컴과 인터넷으로부터 벗어난 생활을 한다. 형이 죽은 때부터 10분의 1확률 내에서라면 절대 내기에서 지지 않는 운을 가지게 된 것을 알게 된 준야는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현재 이누카이가 총리대신이 되어 수정헌법 국민투표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다시금 일본이 재무장의 길을 걷게 될 것을 알게 된 준야는 자신의 운을 이용하여 경마를 통해 돈을 모은다.

 

얼마전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가게 되었다. 조카들이 보고 싶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우연히 조선의 노동자 파업에 지지하는 일본 노동조합의 편지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카우츠키를 떠올렸다. 그가 전쟁 공채 발행을 지지하고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주의 노선을 걸었던 역사는 얼마나 끔찍한가. 이사카 코타로는 그러한 집단 광기를 매우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다만 작가 역시 테러리즘과 엘리트주의라는 서로 닮은 양 극단만을 보고 있어, 대안은 없다. 경마장에 가서 돈을 모은 준야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테러리즘 아니면 또다른 정치인을 후원하는 엘리트주의 둘 중 하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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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8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남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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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살인사건>은 1948년에 300여매 분량으로 이와타니 서점에서 출간되었으며 1953년에 650여매 분량으로 개작되었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1953년의 작품이다. 역자평에는 다음과 같은 프랑스 추리소설계의 거목 부알로 나르스타크의 말이 나온다. "추리소설이란 추리가 공포를 만들어내고 그 공포를 추리가 진정시켜야 하는 이야기이다. 바꾸어 말하면 절대로 합리적인 설명을 찾아내게 되는 일종의 체험된 악몽의 창조이다." 참으로 적절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추리소설에서 사건이 일어날 때에는 해결될 수 없을 것만 같다. 바로 그 점이 공포스럽다. 이성과 합리로 설명할 수 없지만 실제 일어났다는 것, 그것은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하지만 추리를 통해 이러한 공포를 진정시키고 이성과 합리로 되돌아가도록 만드는 것. 따라서 '체험된 악몽의 창조' 라는 것은 그 얼마나 적절한 설명인가.

 

작품은 3자 견제와 관련된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뱀(오로치마루)은 두꺼비(지라이야)를 잡아먹고, 두꺼비는 괄태충(쓰나데히메)을 잡아먹으며, 괄태충은 뱀을 녹여버린다. 마치 가위바위보 처럼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를 3자 견제라 부른다. 문신사에게는 금기가 있으니 이러한 3자 견제를 한 사람의 몸에 새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의 몸에 이 세가지 문신을 새기면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 때문에 문신을 새긴 사람은 죽고 만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신에 있어 일가를 이룬 호리야쓰에게는 한명의 사내아이(쓰네타로)와 쌍둥이 여자아이(기누에, 다마에)가 있다. 알려져있기로 쓰네타로에게는 지라이야가, 기누에에게는 오로치마루, 그리고 다마에에게는 쓰나데히메가 각각 등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문신의 명인인 호리야쓰가 3자견제의 이야기를 모르고 있을리도 없건만, 자식들에게 이러한 문신을 새겼다는데에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장남 쓰네타로는 전쟁으로 남방에 간 뒤 소식이 없고, 막내 다마에는 원폭이 떨어지던 날 히로시마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어 사실상 살아있는 사람은 기누에 혼자다. 어느날 기누에로부터 지라이야, 오로치마루, 쓰나데히메가 세겨진 세장의 사진을 받은 주인공 마쓰시타 겐조는 기누에가 자신이 살해당할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있음을 듣고 집을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밀실이 되어있는 욕실에는 기누에의 팔과 다리만 있을 뿐 몸통은 사라진 후다. 살인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이번엔 기누에의 정부인 모가미 다케조가 흉가에서 권총에 의해 자살한 듯한 시체로 발견된다.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장남 쓰네타로가 나타나자 마쓰시타 겐조는 그에게 3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사건 해결에 도움을 청하고, 쓰네타로는 3일 뒤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하지만 그 역시 살해당한 후 문신이 있던 살가죽이 벗겨진 채 발견된다.

문신수집 마니인 하야카와 헤이시로 박사,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건이 일어나던 날 밤에 기누에의 집을 방문한 다케조의 비서 이나자와 요시오, 한때 기누에와 관계가 있었던 전과자 우즈이 료키치, 그리고 형인 다케조가 죽음으로서 유산을 상속받게 된 모가미 히사시, 살아있을 지도 모를 쓰나데히메의 주인 다마에,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평행선은 만날 수 없다는 상식을 깨기 위해서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며, 음화와 양화의 반전 흑은 백이 되고 백은 흑이 된다는 작가의 힌트는 결말에 가서 비로소 무릎을 치게 만든다. 특히 작가는 끊임없이 독자에게 기대를 품게 만드는 드라마틱한 전개에 무척 능하며 결말에 가서도 독자를 배신하지 않는다. <팔묘촌>의 요코미조 세이지처럼 잔뜩 기대만 품게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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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합
타지마 토시유키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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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아버지의 절친한 옛 친구의 별장이 있는 롯코 산에 놀러가게 된 스스무는 그곳에서 카즈히코와 카오루를 사귀게 된다. 꾸밈없고 활달한 카오루를 사이에 두고 기지 넘치는 카즈히코와 배려심 많은 스스무는 달뜬 첫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카오루의 출생과 카오루 집안의 얘기, 그리고 두 남자아이의 부모 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얘기를 통해 하나 하나 비밀이 드러난다.

 

액자 속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배열하면 이렇다.

 

1935년 도쿄전등에 근무하는 테라모토와 호큐전철에 근무하는 아사기는 그룹의 회장인 코시바와 함께 독일 등 유럽 일대를 시찰하던 중 아이다 마치코라는 미지의 여성을 만난다. 웃지도 말하지도, 슬퍼하지도 놀라지도 않는 그녀이지만 눈빛만은 조용한 태도와 달리 야성미가 있어 세사람은 그녀의 묘한 매력에 빠진다. 시종 아이다 마치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배려를 해주려 하나 그녀는 이를 달가와 하지 않는다. 그녀는 오직 누군가를 기다리는데 정신을 쏟을 뿐이다. 이 여인이 기다리는 사람은 쿠라사와 기쿠오라는 부유한 인물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지만 기쿠오가 변심하여 마치코를 유럽에 보낸 사이 몰래 결혼을 하고 만다.

일본으로 되돌아온 마치코는 우연히 아사기를 만나 전쟁 중 여성 기관사도 모집하는 걸 듣고 코시바 회장에게 부탁해 호큐전철의 기관사가 된다. 이런 그녀에게 히토미라는 여학생이 연정을 품는데 공교롭게도 히토미는 기쿠오의 여동생이다. 무언가 속셈이 있어 히토미에게 접근한 것으로 생각한 기쿠오는 마치코를 죽이려 하나 공습 와중에 오히려 마치코에게 살해 당하고 만다.

기쿠오가 밖에서 낳아온 여자아이가 카오루인데 생모도 죽은데다가 기쿠오마저 죽어 카오루는 계모의 손에 자라나게 된다. 계모는 전남편의 동생인 키요지와 불륜을 저지르고, 막내인 히토미는 선을 봐서 결혼을 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아내를 잃은 아사기는 마치코와 재혼하고 마치코는 평온한 삶을 누리나 했으나, 많은 빚을 지고 있던 키요지가 형을 살해한 범인으로 마치코를 지목하며 돈을 요구하자 마치코는 키요지를 불러 살해하고 끝내 범인은 밝혀지지 않는다.

 

액자 속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인물은 아이다 마치코이다. 그녀의 이름은 소개장에 잠깐 언급되어 밝혀질 뿐 본인 입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마치코에 대한 얘기는 소설 전반에 걸쳐 이름과 성별을 혼란스럽게 하여 등장한다. '롯코의 여왕', '다리를 저는 고모부' 등 트릭을 사용하기도 하며 카즈히코의 어머니인 '마츠아줌마' 라는 명칭으로 힌트를 주기도 하나 독자는 끝내 알아차릴 수가 없다.

 

액자 속 얘기를 풀어나가는 구성과 트릭이 절묘하여 책은 재미있다. 하지만 카오루를 둘러싼 스스무와 카즈히코의 풋사랑 얘기 역시 주변적인 얘기로 그치지 않는 것은 각 인물의 형상화가 뛰어나고 사춘기 이전 아이들의 미묘한 심리를 잘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3498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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