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시 베이비
가네하라 히토미 지음, 정유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2004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가 아무런 여과도 없이 자의식을 줄줄 써내려간 쓰레기 같은 글이다. 인간에 대한 통찰도, 글쓰기에 대한 진지함도, 소수자에 대한 어떠한 관심도 없는, 화장실 낙서에 살을 좀 붙여놓은 수준이라고 하면 될까.

 

세 명의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 아야는 22살의 호스티스로 단지 집세를 아끼기 위해 남자 대학동창인 호쿠토와 동거를 하고 있다. 둘 사이 성적인 관계는 없다. 어느날 나간 미팅 자리에서 도모코란 여자가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스스럼 없이 아야에게 밝히고, 화장실에서 아야는 자기도 알 수 없는 충동에 아야와 성적 관계를 먼저 제안한다. 어느날 호쿠토의 직장 동료인 무라노에게 반한 후 절망감에 자신의 허벅지에 과도를 꼽는 자해를 하고, 무라노에게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 차라리 무라노가 자기를 죽여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호쿠토에게 닭과 토끼를 구해다 주고 처참하게 동물들을 죽인다.

호쿠토는 생후 6개월된 아이를 유괴하여 성적 도착을 일삼고, 나중에는 아야가 구해오는 닭, 토끼와 수간을 한다.

무라노는 32세의 이혼남으로 모든 것에 냉소적이며 아야의 성적 제안에도 오케이, 결혼하자는 제안에도 오케이 만사 오케이이지만 마음만은 열지 않는다.

 

먼저 레즈비언이 어떤의미에서 보자면 커밍아웃을 미팅자리에서 술먹다가 불쑥 꺼내는 것부터 말도 안되고, 한번도 그런 경험이 없는 아야가 화장실에서 먼저 제안을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과도로 자해를 한 후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얼굴을 적실 정도이지만 그 순간에도 생에 대한 일말의 관심도 없이 딴 생각을 해댄다. 유괴해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생후 6개월된 아이를 상대로 호쿠토가 더러운 짓을 하고 있는데도 차라리 죽여버리라고 말하고, 심지어는 동물을 구해다 주며 수간을 유도한다.

호쿠토라는 놈은 그저그런 성도착이라고 애써 넘어간다고 해도, 무라노는 32세의 이혼남이다. 이혼을 했다는 것은 온갖 번잡한 절차를 겪어보았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냉소적인 성격이라는 이유로 아야의 결혼 제안에 바로 좋다는 말이 나올까.

 

물론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맥락은 있다. 섹스, 자해, 아동학대 및 유아성애, 동물학대 등 온갖 자극적이고 추잡한 행동들이 나오지만 그 이상의 것들을 등장 인물들이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자의식이 스스로 출산한 광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떤 절망에서 나온 것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야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한 적도 없고, 단지 취직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스티스로 일한다는 설정이다. 그런 그녀가 냉소적인 무라노와 사랑에 빠진 후 거절당할 것이 두려운 상황이 곧바로 자해와 죽음으로 이끌려 간다는 것은 도무지 억지스럽다.

 

역자 역시 이러한 비난을 피해갈 수는 없다. 역자 정유리는 이러한 쓰레기 같은 글을 번역한 데 대하여 변명부터 늘어놓는다.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가네하라 히토미의 두번째 작품이라는 이유로 읽어보지도 않고 번역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번이고 책을 집어던지고 울었다고 한다. 불쾌감 거부감에 울었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등장인물들이 애처로와 울었다고 하는데, 유괴된 6개월된 갓난아이 때문에 울었다는 것이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말미에 부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묘사에 눈을 잃지도, 눈을 돌리지도 말고, 처절하도록 고독하고 나약한 영혼의 절규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달라고 부탁한다. 6개월난 갓난아이를 집에 가둬두고 성적 대상으로 삼는 고독한 호쿠토, 닭의 목을 비틀어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집어넣고 토끼의 얼굴 껍질을 벗겨내고 귀를 뽑아내는 주인공 아야의 나약한 영혼의 절규.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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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코.초상화 범우 사르비아 총서 603
고골리 지음, 김영국 옮김 / 범우사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외투>

 

1839~1841년 집필, 1843년 1월 출판.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볼품 없는 외모의 만년 구등관이다. 동료와 상사들이 그를 한껏 조롱해도 정서하는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며 해나갈 뿐이고, 장난이 너무 심해지면 그때서야 "가만 좀 둬요. 왜 날 못살게 굴어요?" 할 뿐이다. 혹독한 추위를 나기 위해선 외투가 꼭 필요한데 그의 낡은 외투는 이제 더 이상 수선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먹을 걸 줄여 가며 내핍생활을 거듭한 결과 새 외투를 맞춘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벅차오르는 만족감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나 상사가 초대한 모임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날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강도를 만나 외투를 빼앗기고 만다. 파출소 순경은 그에게 구(區)경찰서장에게 가보라고 하고, 다음날 찾아간 구경찰서장은 그를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고 오히려 다른 질문으로 괴롭힌다. '유력한 인사'를 찾아가보라는 동료의 말에 바슈마치킨이란 사람을 찾아가지만 그는 죽마지우 앞에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할 양으로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의 어려움은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호통만 쳐서 되돌려보낸다.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집으로 돌아가 열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고, 그 뒤로 시의 변두리에는 외투를 강탈하는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돈다. 정부의 집으로 향하던 바슈마치킨 역시 유령을 만나는데 그 유령은 다름아닌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였으며, 바슈마치킨의 외투가 가장 잘 들어맞았는지 유령은 그 이후로 출몰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유령들이 출몰한다고 수군거렸는데 그 유령의 실체는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의 외투를 빼앗은 강도였던 것 같다.

 

역자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은 푸쉬킨의 <역참치기>와 아울러 러시아 문학에 처음 나타난 경향으로, 그 후의 러시아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는 모두 <외투>에서 나왔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또한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이 <외투>의 영향을 받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한다.

정서하는 일에 만족하는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의 유령은 바슈마치킨을 만난 이후엔 나타나지 않지만, 강도는 여전히 외투를 빼앗고 있고 힘 없는 사람들 사이에 유령으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은 아이러니이다. 또, 친절하고 온화한 성격인 바슈마치킨이 직책이 높아지자 그 직책에 맞게 변모하여 호통만을 치는 설정은 사람의 성정은 천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처한 조건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아카키 아카키에비치가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기 위해서 파출소 순경부터 유력인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강도를 당하였을 때 어디에 가서 호소하는 것이 적당한지에 대한 답이 없으며 카프카의 <성> 역시 <외투>에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

 

1833~1835년 집필.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어느날 빵 속에 코가 들어있는 것을 알고 기겁을 하는데, 그 코는 다름아닌 팔등관 코발로프의 것임을 알아차린다. 당황한 이발사는 코를 손수건에 싸서 네바 강에 버리고 만다. 한편,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본 코발로프는 자신의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이 밋밋한 것을 보고 기겁을 한다. 경시총감을 찾아가 코를 찾아달라고 말하기 위해 집을 나선 코발로프는 뜻밖에도 자신의 코가 오등관의 차림새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고 본래 자리로 돌아와줄 것을 부탁하지만 코는 시치미를 딱 떼고 도망치고 만다. 신문에 광고를 내어 찾아볼까 생각했지만 신문의 평판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경찰서장 역시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는다. 어느날 경찰관이 잃어버린 코를 잡아와 코는 다시 찾게 되지만 다시 붙일 방법이 없다. 유력한 용의자인 알렉산드라 포드토치나 부인에게 따져 묻는 편지를 보내보지만 답장을 읽어보니 그 부인도 코를 어찌한 것 같지는 않다. 이 기괴한 사건은 장안을 휩쓸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다가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코발로프는 자신의 코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코발로프도 전의 생활로 돌아가 유쾌하게 거리를 쏘다닌다.

 

역자 해설을 보면 이 이야기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고 한다. 온갖 사물에 엉켜 붙은 넌센스를 그로테스크한 수법으로 묘사한 해학 문학이라는 설, 코에 직위의 상징성을 인정하여 주인공 코발로프의 추한 출세욕을 보여준 것이라는 설, 코에 성적 상징성을 인정하여 코의 소실(消失)이라고 하는 그로테스크한 사건은 성적 컴플렉스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프로이트적 해석 등.

내 생각에는 코발로프가 코를 잃어버린 후, 귀가 없다거나 혹은 차라리 팔이나 다리 하나가 없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코발로프는 자신의 직위를 여러사람에게 떠벌리는 것을 좋아하며 그 직위를 이용하기를 염원한다. 그런 코가 오등관의 차림을 하고 돌아다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욕망이 어느덧 실체화 하여 스스로 현현(顯現)한 상태가 된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욕망을 상징하는 코는 더 이상 코발로프의 의지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인다.

 

<초상화>

 

1833~1834년 집필, 1835년 발표. 개작 후 1842년 발표.

 

어느날 가난한 화가 차르트코프는 시장에서 초상화 한 점을 사게 된다. 어쩐지 미완성품인 것 같았으나 초상화 속 인물의 눈은 이상한 생기를 내뿜고 마치 보는 사람을 노려보는 것 같다. 초상화 때문에 악몽에 시달린 다음 날 집세 독촉을 위해 방문한 경찰서장이 액자틀을 세게 움켜쥐는 바람에 그 안에서 금화가 한무더기 발견된다. 돈문제만 해결되면 예술을 위한 노력에 매진할 것이란 평소의 생각과 달리 차르트코프는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번듯한 아틀리에를 꾸민 후 돈많은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가며 명성을 얻는다. 인물에 내재하는 본래의 매력 따위와 상관없이 그림을 의뢰한 자만을 만족시켜주다 보니 그의 재능은 시들어가고 화풍은 틀에 박히고 만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그에 반비례해 더욱 높아만 가는데, 어느날 같이 수학했던 옛 동료의 그림을 평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화랑에서 수년간을 오로지 예술을 위해서 정진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만다. 자신도 마음을 다잡고 그런 그림을 그리려 해보지만 이미 시들어버린 재능과 굳어버린 화풍을 되돌릴 수가 없다. 비뚤어진 그는 수많은 돈을 써 훌륭한 작품들을 사다가 모조리 찢어버리는 일을 거듭하던 어느날 죽고 만다.

시간이 흘러 이 초상화가 경매에 나오는데 경매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한다. 이 때 한 젊은 화가가 경매를 중지시켜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림의 내막을 들려준다. 초상화의 모델은 지독한 고리대금업자로 이상하게도 그의 돈을 빌린 사람들은 모두 불행해지고 만다. 자신의 아버지는 고리대금업자로부터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요청받고 훌륭한 모델이라는 생각에 작업에 착수하지만 아버지 역시 그림이 완성되어감에 따라 점차 비뚤어지게 된다. 어느날 제자의 성공을 참지 못한 아버지는 콩쿨에 제자와 더불어 작품을 출품하고, 그 작품이 1등을 차지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한 성직자가 그 작품에는 악마적인 것이 깃들여져 있으며 화가의 손이 부정한 기분에 조종되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평을 한다. 모든 사람은 그 성직자의 말이 사실임을 납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그림의 인물들 눈이 모두 고리대금업자의 눈과 똑같은 것이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초상화를 없애버리려 하지만 절친한 친구가 안타까운 마음에 그 걸작을 가져가고 아버지는 수도원에 들어가 참회를 거듭하여 결국은 다시 붓을 손에 쥘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디선가 그 초상화를 본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찢어 없애줄 것을 부탁하고, 15년여가 흐른 후 그 초상화를 발견하게 되었으니, 지금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바로 그 작품이라는 것이다.

 

역자 해설에는 따르면 개작하기 전 작품에서는, 초상화의 고리대금업자는 적그리스도의 화신이며 화가가 경건한 수도사가 되어 수년간에 걸친 기도와 봉사의 결과 마침내 악마의 마력을 이겨내고, 초상화의 노인상이 사라지고 그 그림이 풍경화로 변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악마가 옮겨진 살아있는 그림이라는 모티프는 낭만주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속적인 것으로서 고골의 특질도, 러시아의 특질도 아니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고골의 소설을 읽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고골적인 특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차르트코프가 초상화를 그리면서 고객의 욕구에 맞추어 나가며 자신의 재능을 갉아먹는 부분은 스티븐 킹의 <미저리>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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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서쪽
구효서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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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안정된 직장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주인공 나에게 어느날 허경주라는 서른두살의 여자가 다가온다. 어찌된 속인지는 모르나 이 여자는 주인공인 나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일까지 알고 있다. 심지어는 열여섯살 이전의 기억을 모조리 잃어버렸다는 것 까지 말이다. 여자의 내밀한 제안에 나는 응낙하고, 그때부터 나의 생활은 모든 것이 바뀐다. 심상한 아내의 질문이 두려움을 넘어 짜증으로 이어지고, 부하직원의 불손한 태도도 나를 비난하는 것만 같다.

바람을 피우기 시작한 그때부터 나는 베트남 여행 중 만난 한국인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그에게 편지를 쓴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나에게 얘기해주는데, 온통 붉은 흙으로 뒤덮인 고향 마을에서 건실하게 살아오던 아버지가 자신이 열여섯이 되는해에 '붉은신장' 이라는 까닭모를 증상에 사로잡혀 방탕을 일삼다가, 배꽃이 만발하여 붉은색이 아닌 흰빛으로 가득하는 생명의 시기에 죽어버리고, 그 후 우여곡절 끝에 예금잔고를 찾아 베트남에 와 배 두척을 산다는 내용이다.

선을 정하여 만나던 허경주는 나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어하고, 나는 허경주와는 무관하게 다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한 사내가 자신을 잘 알고 있으며, 몇해 전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형에 관한 얘기를 해주고 싶다고 하는데, 그 얘기는 베트남의 그가 나에게 해준 내용과 똑같다. 그리고 나는 예금잔고를 찾아 배 두척을 살 결심을 한다.

 

소설은 우연과 주술적인 상징에 기대어 전개된다. 소설의 시작부터 자신의 책상에는 위치를 바꾸지 않는 물건이 있다며 척추의 적출물, 천체망원경의 미니어처, 두마리의 목각 코끼리 인형, 그리고 베트남의 그가 준 작은 광물을 꼽는다. 임순만은 해설을 통해 이것이 각각 생명, 정신, 노동의 가치, 세상의 본질 이라고 분석하나, 작가와 해설가 사이에는 그런 교감이 형성되었을지 몰라도 소설을 통한 형상화도 성공하였는지는 의문이다. '붉은신장'이라는 질병도 아니고 증상도 아닌 어떤 특수한 형태의 신내림 같은 것도 그다지 와닿지 않으며, '우연히' 만난 한 사내가 내가 16세 이전에 만났을 뿐인데도 단숨에 알아보는 상황 설정도 억지스럽기만 하다. 이야기들이 우연에 기대다 보니 자꾸만 주술적 상징으로 몰아가지만, 그렇다면 공감이 가야 하는데 억지스럽기만 하다. 특히나 베트남의 그의 이야기가 형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못을 박았으니, 그렇다면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내가 그렇게 살아갈 것을 예감하는 환상인지, 아니면 중년 남성이 일탈한 후엔 그런 삶을 살기 마련이라는 하나의 상징인지 그저 모호하기만 하다. 애드리안 라인의 <야곱의 사다리>처럼 환상과 알수없는 상징들이 현실을 통해 해석되고 이해되는 그러한 과정이 너무 부족하다.

 

구효서의 <라디오 라디오>를 꽤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 고른 소설이었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구효서를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작가가 소설만 써서는 입에 풀칠도 하기 힘들고, 그래서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일이 보통 결심으로는 되지 않는데 자신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가가 소설만 쓴다고 소설이 더 훌륭할 리는 없다. 카프카는 공무원으로 살면서 평생 자기직업을 괴로워했다고 하는데 부조리한 삶에 대한 통찰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지는 않았을까. 이외수의 <들개>에서는 새파랗게 젊은 작가 지망생이 폐교로 찾아들어가 속세와 단절을 끊고 아무런 호구책도 없이 글만을 쓰겠다는 내용이 나온다. 뼈를 깎는 고통이 있을지는 몰라도, 과연 그런 상황에서 쓴 글이 독자와 어떤 접점을 만들어낼까. 공감이 잘 가지 않는 모호한 내용의 소설이 만들어진 것이 그 실체없는 '전업작가'의 길을 걸어서는 아니었을지. 하지만 아직 단정하긴 이른 것 같다. 구효서의 소설은 몇 권 읽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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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문학.판 시 2
이성복 지음 / 열림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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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는 참 이상한 꿈을 가졌다

 

                             외로운 사람은, 또한 신비롭다.

                             그는 언제나 물기에 찬 모습.

                                -고트프리트 벤, 「외로운 사람은」

 

본래 자화자찬 아닌 외로움은 없어서, 아무도 보는 사

람 없는 걸 알면, 그 으악새 슬피 우는 울음 딱 그쳐버리

거나, 자못 심각한 표정 거두시고 헤시시 웃는다. 본래

진기명기 아닌 외로움은 없어서, 한 공주 한 왕자 하고

나서도 고색창연한 연기는 계속된다. 제 연기를 고백하

는 연기, 제 연기를 부정하는 연기. 제 연기를 모독하고

타도하고 끝내 성화聖化 하는 연기. 외로운 사람은 끝없이 풍

선을 불어댄다. 그는 제가 부는 풍선 속으로 들어가려는

참 이상한 꿈을 가졌다.

 

아침에 차를 몰고 출근을 하는 날엔 최현정의 '세상을 여는 아침'을 듣는다. 라디오니까 목소리만 듣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는 모른다. 그냥 털털한 목소리와 말투로 상상해볼 뿐이다. 목소리라는 것에서 출발하여 외모도 공상해보고 성격도 떠올려본다. 그러다가 이성복 시인의 시집을 다시 읽는다. 시인이 평소 좋아하던 다른 나라 시인들의 시에 말을 붙여보면서 '대체 나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확인' 해보고 싶었다는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에 실린 '그는 참 이상한 꿈을 가졌다' 라는 시이다.

 

자화자찬. 자기가 그린 그림을 스스로 칭찬한다. 자기가 만들어낸 외로움을 자기가 칭찬한다. 외로우니까 우는게 맞지만, 아무도 안 볼땐 자기가 만들어낸 그 외로움의 모양새와 깊이에 스스로 만족하면서, 울기보단 웃는다. 진기명기 아닌 외로움은 없으니 외로움은 거창하다. 공주도 나오고 왕자도 나오고, 나 혼자서 그 외로움의 폭과 넓이라는 무대에서 마음껏 연기를 한다. 혼자서 연기를 하니, 또 다른 나는 그것이 연기임을 알고(고백) 그렇지만 온전히 연기만은 아닌 진정한 외로움도 어느정도 있으니(부정), 그리하여 순수한 외로움이 아니라고 모독하고 타도하다가 끝끝내 성화하는 연기. 외로운 사람은 풍선을 계속 불어댄다. 내 날숨에 의해 점점 커져서 그럴듯 해지는 풍선, 그 풍선은 언젠가 펑 터져버리겠지만, 자기가 부는 풍선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 그것이 사람의 심정일까. 어린애들이 죽을것 처럼 울다가 지쳐, 이제 더 울기도 힘들지만 엄마가 쳐다보니까 억지로 억지로 울음을 짜내는...

'자화자찬 아닌 외로움은 없'다는 인식은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좋을 뻔 했다. 시인은 먼 과거엔 예언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고 하는데, 사랑도 받았을지는 의문이다. 모두가 모른 척 하기로 약속한 것을 날카롭게 꿰뚫어보고 말로 표현해 버린다면, 미움받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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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맥 1부 1
김용 / 새터 / 199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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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교 다닐때 한 여자 후배가 김용의 <영웅문>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무협지를 좋아할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에 왠일인지 물어보니, 치과의사가 치통이 심해 괴로우면 읽어보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손에서 놓을 수가 없더라는 말을 했다.

그래? 하는 심정으로 나도 손을 댔다가 한동안을 폐인처럼 지냈다. 총 18권인데, 당시 돈이 없어서 책을 한권 한권 사다 보니 뒷얘기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 뒤로도 두번인가 더 읽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난 곽정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1부가 가장 맘에 들었다. 사실 이런저런 싸움박질 얘기보다 얽히고 설킨 은원관계와 애정 구도가 너무 짜임새 있었고,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 이후 가장 몰입해서 보았던 소설이었다.

헌책방을 구경갔다가 <장백산맥> 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국내에 출간된 김용의 작품은 대부분 읽어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제목의 책이 있어 너무나 반가와 사가지고 왔다.

일요일날 당직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진도가 잘 안나간다. 내가 그 사이 나이가 들어서일까, 재미도 없다. 아침에 당직을 위해 출근하면서 빨리 당직실에 처박혀 책 볼 생각에 가슴이 다 두근거렸었는데, 2권까지 읽으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뿔싸! 

이 책은 김용의 위작으로 상관정이라는 필명을 쓰는 삼형제(유조현,유조려,유조개)의 <장간행>이라는 작품이란다. 그렇다면 역자인 김찬연이란 주리를 틀어도 시원찮을 놈의 서문은 어찌된 걸까. 자신이 중국여행 중 서점을 방문했는데 김용 코너에서 가장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장백산맥>이라는 작품을 사서 여행기간 내내 읽고 결국 번역까지 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결국, 위작을 팔아먹자니 보통 책 말미에 넣는 역자 서문을 앞에다 넣어, 중국 현지 서점에 신간으로 나온 김용작품인 것처럼 사기를 칠 수 밖에 없었겠지. 92년도 발매이니 아직 살아있겠지? 역자 김찬연.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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