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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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줄리에트는 배우로서 성공하고자 뉴욕으로 오지만 3년간 집세를 내기 위한 아르바이트에 급급해 하다가 꿈을 접고 고국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폭설이 내린 날 룸메이트의 옷을 빌려 입고 거리를 건너다 랜드로버에 치여 사고가 날 뻔한다. 운전자는 샘 갤러웨이라는 의사로 아내인 페데리카가 자살한 후 다른 여성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샘에게 호감을 느낀 줄리에트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직업이 변호사라고 거짓말을 한다. 샘 역시 줄리에트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을 어쩌지 못하지만, 자신이 결혼했다는 말을 함으로써 더 가까와지는 상황을 피하려 한다. 줄리에트는 샘과 헤어진 후 갑작스런 충동에 샘이 일하는 병원에 찾아가 샘의 주소를 알아내고 샘의 집에서 둘은 재회한다. 프랑스로 돌아가야 하는 날 샘은 진실을 끝내 얘기하지 못하고 줄리에트는 프랑스행 비행기를 탄다. 상실감에 술집을 찾은 샘은 충격적인 뉴스를 보게 되는데 줄리에트가 탄 비행기가 불시착하여 승객 전원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거짓말로 사랑을 잃은데 자책하는 샘에게 그레이스 코스텔로라는 여자 경찰이 접근하는데, 줄리에트가 비행기 이륙 직전에 갑자기 내려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레이스 코스텔로는 10년 전 의문의 총격사건으로 살해당했으며 그 사건의 영향으로 그녀를 사랑했던 동료 루텔리는 알콜중독자가 되었고, 고아가 된 딸 조디는 마약중독자가 되어버렸다. 그레이스 코스텔로는 우연한 충동으로 비행기에서 내려 죽음을 면한 줄리에트를 다시 저 세상으로 데려가기 위해 온 죽음의 사자었던 것이다. 그레이스 코스텔로는 줄리에트를 다시 데려가는 일 외에 인간세상의 일에 관여해서는 안되지만, 주디가 그레이스의 가방을 날치기 하려한 사건이 일어나 딸이 비참하게 살고 있음을 알게되어 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도 궁금해 한다.

그러던 중 페데리카와 샘, 그레이스가 연관된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페데리카는 마약에 절어있던 엄마 때문에 마약배달 일을 하는데 마약을 가득 싣고 있던 차를 도난당해 마약상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샘은 학비로 모아둔 6천달러를 가지고 마약상을 찾아가 사건을 해결해보려 하지만 마약상과 한 남자가 격하게 다투고 있었다. 남자를 구하기 위해 엉겁결에 쏜 샘의 총에 마약상이 아닌 남자가 맞는 사건이 벌어진다. 샘은 마약상이 죽지 않으면 페데리카는 영원히 도망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을 직감하고 6천달러로 살인청부를 의뢰하고 결국 마약상은 살해당한다. 당시 샘의 총에 맞은 남자는 사실 마약상에 비밀리에 침투한 그레이스였던 것인데, 남자같은 차림새로 샘은 끝내 남자를 죽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레이스가 케이블카에 타 사고사 하기로 예정된 날, 그레이스를 사랑했던 루텔리가 대신 타게 되어 그레이스는 살아남고 샘은 그레이스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으며 소설은 끝이 난다.

 

프랑스에서 85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했다고 하여 읽게 되었는데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어서 당황스러웠다. 댄 브라운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소설은 이런 저런 영화와 드라마를 뒤섞어 놓은 듯 하다. <데스티네이션>에서 전체적인 설정을 차용하고, <로스트>에서 잭과 케이트 대신 샘과 줄리에트를, <24시>의 잭 바우어 대신 그레이스를 집어넣고, <사랑과 영혼>을 적절히 짬뽕해 해피앤딩을 만들면 소설 <구해줘>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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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식모들 -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박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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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는 백삼십킬로의 몸무게와 쥐에 대한 원시적인 공포를 가지고 있다. 집은 한때는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이제는 몰락하여, 아버지는 하녀 시뮬레이션 게임에 빠져있고 형은 가출한 후 사이다를 마시며 돌아다닌다는 풍문이 있다. 천재 동생은 가족을 '버러지'라 부르며 한껏 경멸의 시선을 던지고 엄마는 시난고난하는 할아버지의 누드 그림 모델을 하는 등 한마디로 집안 전체가 정상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강남의 집을 어쩔 수 없이 팔고 강북으로 이사를 하는 와중에 우연히 발견한 수첩에서 수상한 식모에 관한 글을 접하고, 쥐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 어렸을 적 식모 순애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친구 선재와 호스피스 아르바이트를 찾아나섰던 길에 나는 순애와 상면하게 되지만, 순애는 식모들의 역사를 글로 남겨선 안된다는 금기를 어긴 죄로 온 몸이 돌처럼 굳어져 가는 중에 있었다. 순애는 나에게 꿈을 갉아먹는 쥐를 귀 속에 집어넣어 수상한 식모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주면 전 재산을 주겠다는 거래를 제안하고 나는 응낙한다.

수상한 식모들의 역사는 단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백일을 참지 못한 호랑이의 후손이 호랑아낙이다. 호랑아낙은 역사의 여러시기 동안 품위 있는 복수를 행하며 전복을 꾀하는데 광해군, 동학혁명을 비롯하여 80년 5월의 광주까지 호랑아낙의 은밀한 복수의지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호랑아낙이 현재에는 수상한 식모들이라는 다소 리버럴한 집단으로 변모하였는데 예전과 같은 품위있는 복수가 아닌 유희에 가까운 개인적 복수의지로 변모된 것이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수상한 식모에 관한 기록 작업이 끝나자 순애가 공중에 메달아 두었던 식칼이 떨어져 순애는 죽고, 한동안 경찰 조사를 받던 나는 순애의 녹음테이프 덕에 누명을 벗는다. 그 후 수상한 식모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나에게 대학시절 동경했던 정아가 찾아오지만 정아는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논문에 넣을만한 그럴싸한 이야기만을 원할 뿐이다. 결국 나는 정아가 듣고싶어 하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결국은 파경에 이른다.

몇 년이 지나 늦긴 했지만 순애의 유산도 받게 되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수상한 식모에 대해 얘기해 달라는 한 여자가 나타난다. 수상한 식모에 대한 얘기를 모두 해준 후 더 이상 그녀에게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 나는 그녀에게서 버림 받는다.

 

제1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다. 기대를 많이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작가는 말미의 인터뷰에서 소설이 친구와 같고 어떤 소설이든지 공감하려했지 분석하려 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나는 서른 중반이 넘으니 소설에 공감만 하려고 하긴 좀 힘든 것 같다. 일단 작가의 역사 인식의 가벼움이 거슬린다. 호랑아낙이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의 배후에 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자리매김이 없다. 곰 역시 여성으로 태어났으니 호랑이를 여성으로 보고 남성성에 반기를 들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러면 지배계급에 반기를 들었다고 해야할 듯 한데 개입한 사건들에 일관성이 없다. 광해군, 동학혁명, 5월 광주는 전복이라는 일관성은 있을 지언정 곰과 호랑이의 대비로 일관하기에는 서로 성격이 너무 다르다. 

문체는 가벼우니 재치와 입담이 가벼움을 대신해야 할 듯 한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소설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풍자와 해학의 기준을 들이대도 고개가 갸우뚱해지고, 참신함의 잣대로 보아도 호랑아낙의 발견에서 그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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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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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염에 걸린 열다섯살의 미하엘은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구토를 한다. 이를 본 서른여섯살의 한나 슈미츠는 소년을 씻겨주고, 성숙한 여인의 에로틱한 모습을 보게 된 미하엘은 한나의 방에서 도망친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오라는 어머니의 말에 다시 한나의 집을 찾은 미하엘은 한나를 도와주다가 석탄가루를 흠뻑 뒤집어 쓰게 되고, 샤워를 마친 후 둘은 관계를 맺게 된다.

어른 세계의 비밀을 알게 된 미하엘은 고등학생이 되고 병을 이겨낸 후 또래의 남자애들과 같은 치기어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이런 점이 여학생들에게 호감으로 작용한다. 한나는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줄 것을 요청하고, 책을 읽어준 후 관계를 맺는 것이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된다. 고등학생이 된 후 예전과 달리 또래와의 생활에 시간을 할애하는 미하엘은 어쩐지 자신이 한나를 배신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어느날 수영장에서 놀고있는 그를 한나가 찾아온 것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취를 감추고 만다. 미하엘은 한나가 자신을 떠난 이유가 자신이 한나를 부정하고 급우들과의 생활에 눈을 돌린 배신행위 때문이 아닐까 짐작은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그녀가 떠나버렸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으며, 상실감을 안고 살아간다.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게 된 미하엘은 나치 전범 재판 세미나 그룹에 참석하는데 법정에서 피고 중 한 명이  한나인 것을 알게 된다. 한나는 과거 나치 수용소의 감시원이었는데 유대인들을 감금한 교회에 폭격으로 불이 붙었으나, 잠긴 문을 열어주지 않고 수백명이 타죽게 방치한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한나는 전체적인 재판 진행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종종 불리한 진술을 하고 이에 함께 기소된 다른 여자 간수들이 그녀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다. 증인인 마을 주민들도 자신들이 문을 열어줄 수도 있었으나 하지 못했던 부담감을 덜기 위해 한나가 모든 행위의 책임자였던 것으로 상황을 몰아간다. 결국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도 있었던 보고서를 누가 썼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필적감정을 통해 한나는 혐의를 벗을 수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녀는 모든 사건을 자신이 주도하였다고 시인함으로서 종신형을 받게된다.

미하엘은 문득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고 경악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한나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가 남긴 쪽지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자리를 비웠다며 화를 내었고, 전차 차장으로 승급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를 떠났던 것이었다. 그녀가 책을 읽어달라고 한 이유도, 재판 과정중의 의아한 행동들도, 필적감정을 거부한 것도 모두 같은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미하엘은 이 모든 사실을 재판관에게 말해야 하는지 아니면 한나의 의사를 존중할 것인지 갈등하게 되고 철학자인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하지만 결국 그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다. 평범한 생활을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결혼생활은 파탄나고, 그는 한나에게 책을 읽어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기 시작한다. 수감생활 중 글을 배운 한나가 미하엘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그는 답장을 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흘러 한나가 감형받아 석방이 결정되고 마침내 출감하는 날 미하엘은 한나를 찾아가지만 한나는 그날 새벽에 자살하여 생을 마감한다. 미하엘은 그녀의 방에서 자신의 어린시절 사진을 발견하고 단 한순간도 한나는 자신을 잊지 않았으나, 자신은 그런 그녀를 의심하고 부인해왔다는 자각에 괴로워한다.

 

15세 소년과 36세 여성의 성적인 관계라는 자극적인 설정 자체는 무척 위험스러워 보이지만 외설로 흐르지는 않는다. 이는 한나의 삶 전반이 문맹(약점)을 감추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감정에 충실하는 등 일면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 재판 과정 중 한나를 주범으로 몰아가는 다른 피고들과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전쟁은 모든 이가 피해자라는 잘못된 결론으로 갈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설정이지만, 작가는 이를 훌륭하게 피해 간다.

한나는 재판장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럼 재판장님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원망이나 질책이 아닌 정말로 알 수 없어서 묻는 물음에 재판장은 지극히 피상적인 대답만을 할 뿐이다. 작가는 '독자인 당신은 어떻게 했겠습니까'라고 묻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의도가 깔려있는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미하엘이 잠깐 만났던 여자 중 한명은 미하엘에게, 당신의 이야기에는 어머니 얘기가 없다는 말을 한다. 실제로 소설 자체에도 어머니는 한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한다는 장면 외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또한 아버지에게 한나의 문맹 사실과 관련하여 조언을 구하고 아버지는 그대로 두거나 직접 얘기하는 방법을 권유하지만, 미하엘이 선택한 방법은 두 가지 방법 모두 아니었고 그 후로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인상깊었던 구절

 

o 어릴적 미하엘의 생각

"왜일까? 왜 예전엔 아름답던 것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단지 그것이 추한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느닷없이 깨지고 마는 것일까? 상대방이 그동안 내내 애인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왜 행복한 결혼 생활의 추억은 망가지고 마는 것일까? 그런 상황 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동안은 행복했는데! 마지막이 고통스러우면 때로는 행복에 대한 기억도 오래가지 못한다. 행복이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 때에만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통을 잉태한 것들은 반드시 고통스럽게 끝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일까? 의식적인 고통이든, 무의식적인 고통이든 간에? 그러면 무엇이 의식적인 고통이고 무엇이 무의식적인 고통인가?"

 

o 한나의 문제로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아버지와의 대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는 것보다 우위에 두려고 하면 절대 안 돼."

"나중에 가서 그들 스스로 그로 인해 행복해질 경우에도 말인가요?"

"우리는 지금 행복이 아니라 품위와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어...네가 서술한 상황이 그 사람에게 어쩌다가 생긴 것이거나 아니면 유전적인 것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라면 넌 당연히 행동을 해야 한다. 네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이 좋은 건지 알고 있고 그 사람이 그에 대해 눈을 뜨도록 해주어야 한다. 물론 최종 결정은 본인에게 맡겨두어야 한다. 하지만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해. 그사람과 직접 말야. 그 사람 등 뒤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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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날 - 제13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정유리 옮김 / 이레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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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주인공 치즈는 교사인 엄마가 중국으로 간 것을 계기로 도쿄의 먼 친척인 깅코 할머니의 집에서 살게 된다. 대학에 가지 않고 프리터로 일하는 그녀에게는 요헤이라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서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이로 지내고 있다. 요헤이와 헤어질 것을 예감하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 궁금해하던 때에 요헤이가 바람을 피우고 둘은 헤어진다.

역에서 매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후 후지타에게 반해 사귀게 되고 그 무렵 깅코할머니도 호스케 할아버지와 연애를 한다. 할머니 집에서 셋이서 저녁을 먹기도 하는 등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새로운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나타나고 그 순간 치즈는 이별을 예감한다.

후지타가 떠나간 후 임시직으로 일하던 직장에서 정사원 제의를 받은 치즈는 사내 기숙사로 옮기면서 깅코할머니의 집을 떠난다.

 

제136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으로, 딱히 사건이라 할만한 것은 없고 일년간 깅코할머니 집에서의 생활과, 할머니 집을 떠난 후 전철을 타고 그곳을 지나가는 구성이다. 치즈는 아직 사회에 온전히 발을 내딛은 상태가 아닌 불안한 나이이고, 깅코 할머니는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다. 그 둘이 한 공간에 살면서 천연덕스럽게 견제하고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치즈가 집을 떠나던 날 할머니는 눈물을 내비치고 치즈는 그런 할머니에게 "울지 마요"라는 말로 밖에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

관계를 맺게 되면 언젠가 관계가 끝날 것을 미리 예감이라도 하는 듯 그 사람의 사소한 물건을 훔쳐 보관하는 모습, 마음껏 화를 내고 싶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며 아슬아슬 균형을 잡는 모습들을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가 썩 훌륭하다.

곧 죽을것 처럼 울고 불고 감정의 과잉상태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소설로 옮겨 쓰는 걸 보면 유독 불쾌해지는 나이기에 담담하게 치즈와 깅코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도 호감이 간다. 김애란의 소설과 비슷한 분위기도 느껴졌고, 아오야마 나나에의 다른 소설도 읽고 싶어졌다.

누군가 볼만한 소설책을 권해 달라고 하면 단연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과 이문구의 <우리동네>중 하나를 권해왔었는데, 앞으로는 아오야마 나나에의 <혼자 있기 좋은 날>이 추가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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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탑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
P.D. 제임스 지음, 황종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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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서 이제 회복된 달글리시 경감이 옛 친구인 배들리 신부로부터 직업상 도움을 구하는 편지를 한 통 받는다. 신부를 만나기 위해 요양원에 찾아갔지만 이미 신부는 심장마비로 사망한 뒤였다.

신부가 기거하고 있는 요양원의 책임자는 윌프래드 앤스티라는 사람으로 몸이 경직되는 병에 걸렸다가 루르드에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기적적으로 몸이 회복된 인물이다. 이후 그는 요양원을 건설하여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을 돌보며 매년 두 차례 루르드 성지순례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재정상태가 악화되어 요양원을 신탁회사에 넘기거나 매각하는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다. 요양원은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과거가 석연치 않은 종사원들이 고용되어 있는데, 의사 에릭 휴슨은 과거 16세의 여환자와 문제가 있어 협회에서 제명당한 적이 있는 인물이며, 그의 아내 매기는 요양원 생활에 넌더리를 내고 있는 알콜 중독자이다. 한편 간호사 헬렌 레이너는 의사와 불륜관계이며, 간호부장 도트 목슨 역시 과거 환자를 학대한 이유로 병원에서 해고된 전력이 있고, 잡역부 필비는 전과자이다.

신부의 방을 조사하던 달글리시는 신부가 죽었을 당시에 영대를 두르고 있었다는 점(고해가 끝나면 영대를 벗는다), 책상의 시건장치가 파손되고 최근 일기가 없다는 점, 그리고 추악한 편지 한 통이 발견되었다는 점 등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신부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니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

신부가 죽기 얼마 전, 빅터 홀로이드라는 환자 하나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데 이 사건 역시 전직 외교관인 줄리어스 코트가 남자 간호사인 데니스 러너의 알리바이를 증명하고 있어 자살로 결말이 나고 만다.

그후로도 요양원장인 앤스티가 검은탑에서 불에 타 죽을 뻔 하고, 환자 그레이스 윌슨이 사망하며 의사의 아내 매기가 자살한다. 어느것 하나 증거가 없고,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달글리시는 방관자적 태도와 직업적인 신념 사이에서 방황한다.

유산으로 받은 신부의 장서를 꾸려 집으로 돌아가려던 달글리시는 뒤늦게 신부에게 도착한 편지를 통해 신부가 자신과 상담하고자 했던 일이 범죄와는 관련 없는 일이었음을 알게 되나, 신문에서 우연히 후원자 명부를 잃어버렸다는 앤스티의 광고에서 그레이스 윌슨의 사망 원인을 알아차리게 된다. 명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레이스 윌슨 뿐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헤로인 제조에 요양원의 생산시설을 이용하고 접선 루트로 루르드 성지순례를 이용하려 했던 줄리어스 코트와 그의 종범 데니스 러너의 소행으로 밝혀지고 달글리시는 다시금 자신의 직업으로 되돌아오지만, 헤로인 밀매와 범죄를 연결짓는 추리의 끈이 너무 허술해 아쉬움이 남는다.

 

1972년 작인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를 지난해 여름에 읽었는데 추리소설의 명쾌함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추천할 만한 책이 아니다. 주인공 코델리아는 탐정사무소를 물려받아 이제 막 일을 시작했을 뿐이고, 신출내기가 겪게 마련인 감정의 동요와 불안함을 작가는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추리 과정도 대단원을 향해 명쾌하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동업자의 자살과 그로테스크하고 도착적인 방식으로 죽은 사체 등이 다른 추리소설과 달리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제목 역시 원제인 An Unsuitable Job For A Woman를 직역하자면 <여자에게 맞지 않는 직업>정도가 될테니, 애초에 타고난 탐정의 이야기를 쓸 생각은 없었던 듯 하다.

지난해 여름 송도쪽의 지하철 역사 안팎에서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를 읽었을 때의 한가했던 기분을 맛보고 싶어, 1975년에 발표된 <검은탑>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분위기는 비슷하다. 400페이지에 걸쳐 작가가 집중하는 것은, 역시나 추리보다는 인간의 양면성 혹은 인간의 어두운 면이다. 예를 들어 요양원장 앤스티는 자신의 재산을 희생해 요양원을 운영하긴 하지만 자신의 침실은 쾌적하고 안락하게 꾸미는가 하면 도색잡지의 콜렉션을 가지고 있고, 환자인 에슐리 홀리스 역시 자신의 불치병으로 남편에게 버림받은 가엾은 여자이나 남편의 미래를 빌어주기 보단 자신을 남편이 다시 받아들여 살아야 한다고 믿는 약간의 이기적인 면도 있다. 탐정 역시 날카로운 추리와 정의에 대한 신념을 가진 전형에서 벗어나 삶의 어두운 면에 괴로워하고 현재의 일에 회의를 품곤 한다. 책 말미의 역자 후기에서도 그녀가 자부심을 가지고 써내려가는 것은 '철저히 훈련받은 전문경찰관의 수완과 완전한 아마추어의 순수한 노력'을 중심으로 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본격문학으로의 미스터리라고 하니, 셜록 홈즈와 같은 탐정을 그녀의 작품에서 기대했다가는 대실망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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