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어느덧 일 주일 문학동네작가상 9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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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의 주인공 '나'와 서른일곱살의 유부녀 기연씨의 일주일간 이야기이나, 불륜에 초점을 맞춘 자극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대학교 앞에서 바를 운영하는 기연씨와 기연씨 남편의 관계는 아저씨가 생각하고 있는 것 만큼 순탄한 것은 아닌지 기연씨는 주인공 '나'를 사랑하고 있다. '나'와 기연씨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그 관계의 끝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혼이라든가,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둘 사이에 등장하지 않는다.

작중 인물은 모두 소통에 장애를 안고 있다. '나'는 40살 차이가 나는 아버지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없고, 기연씨 역시 아저씨와 파경에 이른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 듯 하다.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신호씨나 정신이 붕괴되어버린 기연씨의 오빠는 그러한 장애가 외형적으로 드러났을 뿐이지, '나'나 기연씨와 별다른 점이 없다.

어느날 시청 광장 앞에서 끊임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무언가 말을 해대는 노숙자와 시위 때문에 민중가요를 틀어대는 시위자 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며칠 뒤 노숙자가 자살을 하는 것을 '나'는 목격한다. 신호씨는 다니던 일식집을 그만두고 제주도로 떠나고, '나'는 취한 상태에서 여행에서 돌아온 아저씨 앞에서 기연씨에게 한 야릇한 행동 때문에 바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일단의 무리들에게 린치를 당하는데 그들은 스피커를 앞세워 회개하라고 외치던 기독교인들로 보인다.

쉽게 읽히는 이유는 작위적이기 때문이다. 주제를 위해 이야기나 등장인물들이 동원되는 느낌이 크다.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 하기 위해 파경에 이르른 부부관계, 아버지와 대화가 없는 아들, 귀가 들리지 않는 친구, 정신이 붕괴된 오빠, 누군가를 향해 일방적으로 말하는 노숙자와 시위대, 그리고 종교인. 너무나 딱딱 맞아 떨어진다. 노숙자가 자살하는 장면에서 이러한 작위의 느낌은 극에 달한다.

쿨하게 인생을 바라보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함도 갖고 싶은 주인공이 곧 작가 자신이라는 느낌이 강하고 문체가 성긴 느낌이어서 습작의 느낌이 든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식의 이미지 나열로 빠지지 않는 점과 불륜 상황이지만 불륜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진부하게 전개되지 않는 점은 맘에 든다.

제9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데 작가의 다른 작품이 검색되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상을 받고 그 이상을 써나가지 못하는 많은 작가들 중 한명이었을까. 또 다른 작품을 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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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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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공유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가서야 '사실은...' 하면서 범인을 등장시키면 그것은 추리 소설로서 낙제점이다. 독자와 모든 정보를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범인을 알지 못하다가 결말에 가서야 무릎을 치는 것이야 말로 추리소설을 읽는 기쁨이다. 그래서 추리 소설은 단편인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범인을 찾아가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책 전체가 트릭이다. 그리고 그 트릭은 온전히 독자의 선입견에 의한 착각에 불과하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은 어디서부터 속았던 것인지 생각하게 되고, 하나 하나 따져가다 보면 결국 나 스스로 그렇게 단정지었을 뿐 작가가 명확하게 말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주인공 나루세는 경비 아르바이트, 컴퓨터 강사 등을 하며 헬스클럽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즐긴다. 후배인 기요시는 현재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수험준비 중이다. 어느날 같은 클럽에 다니는 아이코씨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클럽에 빠지자 아이코씨를 사모하는 기요시, 그리고 나루세는 문병을 갔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는다. 아이코씨는 탐정 일을 했던 경력이 있는 나루세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이상의 초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은연중 기요시는 십대 후반, 아이코와 나루세는 이십대 초반쯤으로 나이를 짐작한다. 그 짐작 속에서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아무런 부자연스러움도 느끼지 못하기에 그들은 젊은 사람으로 확정된다.

하지만, 말미에 가서 이들이 모두 60대를 훌쩍 넘어선 사람들임을 알게된다. 그래서 책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들춰보게 되고, 작가가 세심하게 쳐놓은 트릭에 완전히 걸려들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작가는 말한다. 사람들은 벚꽃이 피는 것만을 좋아하고 그 이후로는 벚나무를 쳐다보지도 않지만, 벚꽃이 지고 난 후에도 벚나무는 단풍이 들고 모습을 변화시켜 간다고. 60세만 넘으면 인생이 마치 끝난 것처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이제 나는 30세 중반을 넘어섰다.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는 아니겠고, 어쩌면 꽃이 떨어지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힘든 일도 있었고 기쁜 일도 있었지만, 어쨌든 또다른 행복을 맛볼 만큼은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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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의 거짓말
제수알도 부팔리노 지음, 이승수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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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안의 튼튼한 요새에 국왕 암살 음모에 가담한 죄로 네 명의 죄수가 수감되어 있다. 다음 날 단두대에서 처형되기로 예정된 그들에게 콘살보 데 리티스 사령관이 하나의 제안을 한다. 네 명중 한명이라도 '불멸의 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배후 인물을 밀고하면 네 명 모두를 살려주겠지만, 모두가 밀고하기를 거부한다면 예정대로 처형하겠다는 것이다. 나 자신은 X표를 적어넣어 신념을 지키더라도 누군가 한 명만이라도 배신한다면 삶은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이미 신념을 배신하는 것이다. 모두가 X표를 적어 넣는다면 죽음을 맞게 될 것이고, 신념을 지키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자신들의 신념이 죽음을 넘어설 만큼 확고부동해야 한다. 사람이 한 일에 일말의 의심도 없을 수 있을 것인가? 교묘한 제안을 남겨둔 채 사령관은 방을 떠난다.

처형되기 전날 밤에 머무는 위안실로 이송된 그들에게 먼저 방에 와 있던 산적 치릴로가 <데카메론>에서 처럼 서로의 얘기를 하며 밤을 보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한다.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면, 많은 걸 극기한 끝에 맞이한 이 종말이 과연 바람직한 결말인지, 아니면 느닷없이 틀린 음적이 들어가 가락이 맞지 않게 된 건 아닌지 이해하게 되겠지..."

 

o 나르시스 루치로라(학생) : 포악하고 혈기왕성한 아버지는 부유한 포목상이었으며 외국에 나갈때마다 새로운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다가 돌아가셨고 누나 올림피아와 주로 시간을 보낸다. 정원사인 가스파레로부터 오보에와 호른을 배운 그는 가스파레를 흠모한다. 어느날 가스파레를 누나 올림피아가 유혹하다가 후견인이 발견하자 올림피아는 가스파레가 추행을 저지른 것이라 덮어씌우는 사건을 벌인다. 이에 나르시스는 가스파레와 더불어 집을 뛰쳐나온다. 어느날 우연히 에우니체라는 여인에게 반하는데 그녀의 남편은 베니에로 마닌이라는 자로 반역죄로 감옥에 갖힌 처지이다. 베니에로 마닌을 탈옥시켜 에우니체와 도망을 치지만 우연히 만난 사냥꾼들이 수상히 여기자 마닌은 나르시스가 바로 그들이 찾고있는 탈옥범이라고 덮어씌운다. 왕국 감옥으로 압송되던 그를 혁명세력이 습격하여 그는 달아나고 그 혁명세력 사이에 있떤 에우니체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가 단두대에서 기억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그날 밤의 이야기이다.

 

o 콜라도 인가푸(남작) : 혁명가인 쌍둥이 동생 세콘디노가 프랑스로 도피한 후 남작은 여행 중 동생을 만나게 된다. 체스 게임 중 시비가 붙어 왕당파인 피브라크와 세콘디노는 폭풍우가 치던 날 결투를 벌이고 동생은 죽게된다. 동생의 죽음과 유서에 쓰인 '형이 가진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내 일을 상속받아 내가 못 다한 것을 형이 해줬으면 좋겠어'라는 말에 그는 동생이 걸었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무서워한다.

 

o 아제실라오 델리 인체르티(군인) : 유랑극단의 배우였던 어머니는 군인에게 강간 당해 자신을 임신하고 역마차 주막 탁자 위에서 태어난다. 수도원에서 자라던 그에게 아라비토 신부는 어머니의 유물이라며 청금석 손잡이가 달린 톨레도 단검 등을 전해준다. 단검에서 빼낸 쪽지에는 "단검의 주인을 찾아라. 그러면 넌 네 아버지를 찾은 거란다. 네 아버지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라."라는 유언이 적혀 있다. 아버지를 찾아 유언을 실행하기 위해 군대에 들어간 그는 우연히 아버지를 찾아내게 되고 그를 살해한 후 체포된다.

 

o 살림베니(시인) : 민중이 아닌 귀족을 주로 선동하던 그는 마니아체 공작의 집으로 향한다. 여행 도중 머리를 다친 그는 이미 사망한 마니아체 공작집에 머무르게 된다. 그 집에는 공작부인과 부인의 의붓아들인 아마빌레가 살고 있다. 공작부인과 아마빌레 모두가 살림베니에게 연정을 품고 있지만 그는 그 집을 떠나게 된다. 떠나는 그를 배웅하던 중 미망인은 잃어버린 반지를 찾아오라며 의붓아들을 되돌려 보내고 둘은 오두막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산적 살리바가 그를 묶어두고 미망인을 강간한다. 살림베니는 반지가 미망인의 목걸이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미망인이 자신을 유혹했음을 알게 된다. 잠시 뒤 오두막에 들어온 아마빌레는 그 광경을 보고 자살한다. (이 이야기에 대하여 치릴로 수도사는 살리바라는 산적은 시인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며, 실제 정사를 벌인 것은 살림베니 자신일 것이라 지적하자 살림베니는 대단한 통찰력이라고 말한다)

 

네 명의 이야기는 제각각 혁명가로서 죽음을 앞둔 이의 이야기 치고는 세속적이기만 하다. 나르시스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하며 살고 싶다고 외치는 나약한 모습이고, 남작은 혁명적인 활동을 한 것이 동생의 죽음과 자신의 정신적인 공허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 아제실라오 역시 고위장교를 죽인 것이 혁명적 대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복수를 한 것에 불과하였던 것이며, 살림베니는 공작부인과 정사를 벌이고 그 의붓아들을 죽음에 빠지게 만든 파렴치한이다.

그들은 얘기를 마친 후 '불의의 신'이 자신들을 구하러 오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을 하는 지경에 이르자, 그가 궁에서 오랜 기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처지라서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한다. 왕이 아니면 왕의 동생에게 작별을 고하고 오면 되지 않느냐는 치릴로의 말에, 어떻게 불멸의 신이 스스로에게 작별을 고하겠느냐는 말 실수로 불멸의 신의 정체는 다름 아닌 왕의 동생이었음이 밝혀진다. 이때 치릴로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알아야 할 것을 알았다고 외친다. 침대에 누워있던 치릴로의 정체는 사령관 콘살보였던 것이다. 그는 네 명에게 제각각 이야기를 하게 만들어 그들의 신념을 흔들리게 만들고 그 와중에 '불멸의 신'의 정체가 밝혀지도록 연극을 꾸민 것이다. 그들 네 사람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과연 그들은 사령관 콘살보에게 속아 넘어가 신념이 흔들리고 결국 '불멸의 신'이 누구인가 발설하는 실수를 한 것일까? 콘살보는 오히려 그들 네 명에게 속아넘어간 것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었음이 밝혀지는데, 사후 조사를 통해 남작의 경우 죽은 것이 아우가 아니라 형 쪽이며 스스로 자살한 것으로 밝혀진다. 나르시스는 올림피아 누나를 여러 차례 유혹했기 때문에 집에서 쫓겨난 것이며 아제실라오는 치졸한 싸움을 벌이다 상관을 살해했을 뿐이다. 살림베니의 이야기는 이미 콘살보가 그날 밤 거짓말을 하였다고 밝혀냈다. 그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지어내어 콘살보(치릴로)를 속여 '불멸의 신'이 왕의 동생임을 끊임없이 암시하고, 결국 유일한 왕위 계승자를 반역자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소설에서는 삶과 죽음, 의지와 나약함, 진실과 거짓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소설의 결말을 읽고 나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이탈리아 최고의 문학상 스트레가 상 수상작으로 스트레가 상 후보자 전원이 "이렇게 훌륭한 작품과 경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라며 사퇴를 하였다고 한다.

 

책 말미에 시칠리아 카타리나 대학의 교수인 눈지오 자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배경이 다른 네 이야기는 한 가지 주제로 모이고 그것을 축으로 하여 돌아간다. 그것은 바로 정체성에 대한 불안한 추구이다. 억압되고 분열된, 혼란스럽고 당황스런, 독창적인 개성이 있는 이야기들은 자유주의 혁명을 대의 명분으로 하면서 개인의 어둡고 지울 수 없는 충동의 파동 위에서, 이데올로기적인 영역에서 무의식의 헤아릴 수 없는 영역으로 쉽게 넘어가는 동기들의 파동 위에서 긍정적인 출구를 찾는다."

 

네 명의 이야기는 그들이 지어낸 얘기와 실제 얘기 모두가 어찌보면 혁명적 대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의 나약하고 어두운 면에도 불구하고 그들 넷은 혹독한 고문에도 배후를 대지 않았으며(어쩌면 배후는 원래부터 없었는지 모른다), 유일한 왕위 계승자를 죽음에 이르도록 한 후 처형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마르크스의 가정사야 워낙에 잘 알려진 일이고 엥겔스의 취미는 고급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었다고 한다. 레닌의 죽음이 매독 때문이었다며 그의 사상 역시 매독과 다르지 않다는 식의 기사도 언젠가 얼핏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러한 저열한 인식에 대한 해답을 어쩌면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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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이진명 옮김 / 책세상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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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본명은 히라오카 키미다케(平岡公威), 농림성 수산국장이던 아버지 히라오카 아즈사와 어머니 시즈에 사이의 장남으로 1925년 1월 14일 도쿄 시 나가스미초(지금의 신주쿠)에서 출생.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졸업 후 대장성(大蔵省) 금융국에 근무.

그가 정치 사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63년 <하야시후사오론(論)>을 발표한 이후이며, 그 이전은 오히려 '전후 세대'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정치에 무관심하였다고 한다. 서른이 되면서 보디빌딩, 복싱, 검도를 하면서 신체를 단련시키고 급격히 육체와 지성을 중시하는 문학 세계로 돌입하게 되는데, '여성적 원리'에서 '남성적 원리'로의 이행, '자기개조의 시도'가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1956년에 발표된 그의 대표작 <금각사>는 현실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하야시 쇼켄(본명은 요켄)이라는 자가 1950년 7월 2일 금각사를 방화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미시마는 그가 말더듬이였다는 점과, 범행 동기 중에 "미에 대한 질투"라고 진술한 부분에 착안하여 <금각사>를 완성시킨다. 영속적인 전통미를 상징하는 금각사는 매력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반발을 일으키는 대상이다. 패전으로 의지할 것을 잃어버린 일본인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름다운 대상밖에 없지만, 아름다움에 의지해 자신감을 회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전통이라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그 전통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은 애증을 불러일으킨다.

불균형과 이상성격을 다루던 그는 '문화 개념으로서의 천황', '문화 전체성의 통합자인 천황'의 권리 회복을 역설하며 내셔널리즘에 기울게 되고, 1970년 11월 25일, 당시 만 45세의 미시마 유키오가 자기를 지지하는 우익 사조직 '다테노카이(楯の會 방패의 모임)' 대원들을 이끌고 이치가야 육상 자위대에 난입하여 평화헌법을 뒤엎을 것과 자위대 궐기를 외친 후 할복자살한다.

1954년 발표된 <파도소리>는 그리스 소설 <다프니스와 클로에>에서 착안한 소설이라고 한다.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줄거리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염소를 기르는 어떤 사람이 버려진 사내아이(다프니스)와 여자아이(클로에)를 키우는데 두 아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해적의 침략과 전쟁, 클로에에게 나타나는 많은 구혼자 등으로 그들의 사랑이 여러가지 시련에 부딪히지만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출신이 모두 훌륭한 것임이 밝혀지고 행복하게 결혼한다는 내용이다. <파도소리>의 내용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가난하지만 신실한 청년인 신지는 어느날 마을 부호의 딸인 하쓰에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하쓰에 역시 신지에게 호감을 느껴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아버지의 반대와 야스오의 비열한 행동으로 둘은 시련을 겪는다. 신지와 야스오가 한 배를 타고 출항한 후 신지는 성실함과 자기희생적인 행동으로 선원과 선장의 신뢰를 얻지만, 야스오는 본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주변의 비난을 받는다. 신지와 야스오의 사람됨을 알고자 한 배에 태웠던 하쓰에 아버지는 결국 신지를 사위감으로 맞아들인다.

 

미시마 유키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작품을 통해서가 아니라 1969년 <반혁명 선언>을 발표하고 그해 5월 동경대전공투 학생들과의 토론을 벌였던 극우파 지식인으로서였다. <금각사>를 읽었을 때에는 전후의 그 불안정하고 탐미적인 이상 심리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자위대 궐기를 외치며 할복하였다는, 비록 사상은 다르지만 그 진정성을 존경하고 싶었던 그였기에 이번에 <파도 소리>를 읽었는데, 불안정과 이상심리를 다룬 초기도, 내셔널리즘으로 치달은 후기도 아닌 과도기적 작품이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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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임철우 지음 / 살림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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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시에 할머니의 부고를 알려 온 형님의 전화를 받고 깨어난 '나'는 잊고 있던 어릴 적 고향을 떠올리게 된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하는 낙일도(작가의 고향인 평일도인 듯)에서 지내던 어린시절 이웃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가슴 저릿함으로, 때로는 의뭉스런 웃음으로 다가온다.

 

<생일날 아침>

할머니는 '나'의 생일을 축원하기 위해 큰샘에 갔다가 '벌떡녀'와 한바탕 다툼을 벌인다. 묘하게도 '나'의 집 이웃은 '벌떡녀'와 '뒷간네'로 수상한 소문에서 비롯된 별명을 지닌 아낙들이다. 할머니는 큰샘에 손자의 생일을 맞아 정성을 들이기 위해 새벽부터 길을 나섰지만 '벌떡녀'가 서답빨래를 하기 위해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인자리에서 다툼이 일자 벌떡녀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 할머니는 손자인 '나'의 무탈을 빈다.

 

<우리 이모 옥님이>

옥님이 이모는 '나'의 사촌이모인데 어릴적 병을 앓은 뒤 지능이 모자라게 되었다. 마흔이 다 된 채 혼자서 살고 있는 옥님이 이모가 과연 남녀의 이치를 알까 하는 것이 동네사람들 초유의 관심사였는데 어느날 이 의문이 풀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벌떡녀'의 오빠가 술김에 옥님이네 집에 난입하여 어찌해볼까 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인데, 옥님이의 고함소리에 몰려든 마을 사람들에게 옥님이가 한 말은 "아, 내가 눈을 퍼뜩 떠 본께로 그 나픈 도둔놈이 옷을 훌러덩 빨개벗고는, 나한테 달개들어가꼬 몰래 내 돈을 훔텨 갈라고 하더랑께." 였던 것이다.

 

<목포의 눈물>

넙도에서 시집을 온 넙도댁은 마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부지런한 아낙이다. 반면에 그의 남편 강주병씨는 대놓고 바람을 피우고 걸핏하면 넙도댁을 때려 초주검을 만들기 일쑤이다. 작은집을 차려놓고 바람을 피우는 강주병씨에게 찾아갔다가 흠씬 두들겨 맞은 넙도댁이 실성하자 강주병씨는 강진에 있는 기도원인지 정신병자 수용소인지에 넙도댁을 보내버리고, 첫날 도망친 넙도댁은 사흘 후 산골짜기 저수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낙일도의 사랑>

봄이 오자 동네 빨래터에 모인 아낙들의 입에서 걸걸한 입담이 오고가던 중 벌떡녀와 응팔이네가 머리채를 쥐어 뜯고 싸우게 되는데, 그날 밤 여편네들이 할일없이 몰려 다니면서 창피스럽게 싸움질이나 하고 다닌다며 춘자 아버지와 응팔이 아버지는 저마다 제 여자들을 늑신하게 두들겨 패준다.

 

<약산 할멈의 기둥 뿌리>

남편을 먼저 보내 외로운 약산 할멈에게 조카 며느리가 교회에 다니자며 끈질기게 설득을 하여 교회에 갔다온 날 약산할머니의 영감님이 꿈에 나타나 '집안 기둥 뿌리 뽑아 묵을 할망구'라며 대뜸 집 기둥 뿌리를 도끼로 찍는다.

 

<곱사등이 별>

반임이는 곱추여서 동네 아이들은 '낙타등'이라고 놀린다. 반임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나이가 몇살인지 정확하지 않다. 어느날 마당 안 양지쪽 담벼락 밑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 반임이는 병든 병아리마냥 몸을 잔뜩 웅크린채 해를 향해 얼굴을 반쯤 처들고 앉아 있었다. 그런 반임이에게 '나'와 친구는 모래를 던지며 놀렸고, 반임이는 겁에 질린 듯 벌떡 일어나려다가 옆으로 픽 고꾸라진다. 대문간에 홀로 나와 앉아서 학교 가는 우리들을 말없이 지켜보곤 하던 그 쓸쓸한 눈빛이나, 곱사등이라고 놀려대는 우리들을 향해 욕을 퍼부어 대다가는 끝내 제 풀에 먼저 엉엉 울음을 터뜨리던 모습을 이제 볼 수가 없다. 반임이가 죽던날 '나'는 반임이의 누렇게 여윈 뺨으로 줄줄 흘러 내리던 그 더러운 눈물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만 같다.

 

<돼지꿈>

'나'의 태몽은 돼지꿈이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날 때에 급한대로 사기그릇으로 탯줄을 끊고 '나'를 받았다. 마을사람들이 달려오자 한껏 자랑스러움으로 넘쳐 외쳐대었단다. "고추여 고추! 아 글씨, 손을 쑤욱 집어넣자마자 토실토실 여문 불알 주머니가 대번에 물크덩하니 잽히지 않겄어? 세상에, 어찌나 오지든지 말이여!"

 

<잘한다, 업순네!>

매일 남편에게 죽도록 얻어맞던 업순네가 신이 내렸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셋씩이나 내렸는데 하필이면 시누이,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내렸다. 신내림굿을 하는 마당에서 시아버지 신이 내린 업순네는 남편의 뺨을 철썩철썩 때려가며 한바탕 호통을 친다. 그런데 바로 그 짧은 순간, 업순네의 입술 가장자리로 희미하게 얼핏 떠올랐다 지워지는 알 수 없는 웃음기를 '나'는 보았다. 남편의 못된 버릇이 다시 도져 업순네를 때리려는 찰나에 업순네는 시어머니 신이 내려 남편의 뺨을 쳐댄다. 어머니 신이 내린 업순네에게 뺨을 맞아가며 남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동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소리를 질러댄다. "잘한다, 업순네! 쳐라! 옳지! 더,더 세게 쳐! 더, 더......"

 

<소동이 아저씨>

옥님이 이모의 큰오빠 삼종씨가 떠돌이 엿장수를 꼬드겨 옥님이 이모와 짝을 지어주려 하지만 소동씨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옥님이 이모에게 방망이로 얻어맞고 쫓겨난다.

 

<천하장사 황설봉씨>

설봉이 고모부가 낙일도 마을 대항 운동회에 참석만 한다면 씨름으로 일등은 따놓은 당상이다. '나'의 할머니는 그런 설봉이 고모부를 위해 쇠고기를 두근이나 먹이고, 쇠기름만 따로 모아 힘을 내라고 먹인다. 아주 잘생긴 송아지가 쇠똥을 나무위에서 줄줄 흘리는 꿈을 꾸었으니 일등은 도맡아둔 것이라면서. 황설봉씨는 잔뜩 먹고 출전한 대회에서 배탈이 나 설사만 해댄다.

 

<우리 사촌 봉묵이 형>

봉묵이 형은 다리를 전다. 그가 동네 작부인 금옥이와 좋게 지내고, 결혼을 약속한다. 금옥이는 같은 술집에 팔려온 미자가 못내 안쓰럽다. 결국 미자를 도망시키기로 하는데 봉묵이가 힘을 써준다. 미자가 도망간 것을 알고 선표를 끊어주는 봉묵이를 술집 주인이 닥달하자 봉묵이가 말한다. "그 가시내가 아까 읍내까지 선표를 끊었어라우. 읍내에 닿을라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께, 빨리 읍내로 전화를 걸어서 미리 사람을 시켜 길목을 지키라고 하면 될 거신디라우." 미자가 "세상에, 이런 바보 천치같으니. 도와준다고 할 땐 언제구, 읍내로 갔다는 얘긴 왜 해. 이젠 다 틀렸어. 미잔 금방 잡혀올 거라구." 하지만 봉묵이는 히죽 웃음을 흘리기만 한다. "아따. 미쓰 오 양도 참, 이럴 줄 미리 알고 내가 미자한테 슬쩍 가르쳐 주었어라우. 읍내에 닿기 전, 꽃섬에서 일단 내렸다가, 거기서 여수 가는 '갈매기호'로 슬쩍 바꿔 타고 가라고라우. 그러니께 염려 마시요이. 지금쯤 여수 가는 배에서 편히 누워있을 것잉께, 으흐흣." 금옥이는 봉묵이가 대견스럽고 미더운 생각에 혼자 흐뭇하다.

 

<안녕, 칠성이 형>

사람 좋기로 소문난 칠성이 형이 군대에 갔다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칠성이 형 엄마가 군대에 찾아갔지만 자살했다는 말과 함께, 시신을 찾아가면 아무런 보상도 못해주고 안좋을 것이라며 을러대는 통에 그냥 빈손으로 내려오고 만다. 사병 하나와 장교 하나가 칠성이 형의 유골을 가지고 내려오지만 마을 청년들은 그들을 쫓아내다가 결국 서로 주먹질을 해댄다. 칠성이 형의 친구도 울고, 유골을 지고 온 사병도 운다. "다들 왜, 왜 이러는 거래유. 몰라유.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단 말이유. 나도 고, 고향에...... 친구들이랑 어무니가 있는 몸이란 말이유우. 어허엉......"

 

<동백꽃>

옛날 우리 마을과 화포리 사이에 에미끼미 마을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 마을에 젊은 내외가 살았는데 아낙은 어린 여자애 하나를 업고 다니며 행상을 하였다. 어느날 여자애 엉덩이에 조그만 반점이 생겨났는데 그것이 점점 커져서 병원을 데려가보니 소록도에 있는 진료소를 찾아가보라고 한다. 소록도에서 문둥병 검사를 하고 돌아온 아낙은 어린애를 데리고 산으로 간다. 가는길에 동백꽃을 쥐어 주자 아이는 까르르륵 웃는다. 구덩이에 아이를 뉘인 아낙은 도망쳐왔다가 며칠뒤에 그 자리로 돌아가보니 잠든 것처럼 허리를 꼬옥 웅크린 채 어미가 따서 준 동백꽃을 그러안고 숨져 있었다. 열손가락이 죄다 흙이랑 피범벅이 되어 훌렁 뒤집혀 있는채로.

 

전라도 사투리는 언제나 나에게 상반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아련한 그리움과 되돌아가고 싶지 않음. 

5월에 청산도로 여행갈 생각을 했었는데, 낙일도가 바로 그 옆이라고 하니 한번 들러보고 싶어졌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757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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