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보는 여자
김이소 지음 / 민음사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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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유한 고객층을 상대로 디자이너의 옷을 파는 A숍에서 일하고 있다. 설악산 여행을 위해 고속도로를 운전하던 중 백미러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던 남자가 관심을 보이자 그와 얘기를 나누고 식사를 한다. 그의 직업은 문화평론가이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몇 번의 만남 후 그가 '나'에게 동거를 제의하면서 '얽매이는게 싫어  결혼은 싫지만 책임은 다하겠다' 고 말한다.

처음 얼마간은 관계가 잘 유지되는 듯 했으나  점차 그가 '나'의 학력과 친구들의 수준에 혐오감을 표명하기 시작하여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나'는 그가 원하는 옷을 입고 그가 원하는 장소에서 예쁜 여자친구 역할을 할 뿐, '나'의 생각이나 취미는 무시된다. 결국 그가 떠난 후 다른 여자와 머물고 있는 집에 찾아가 스스로 머리카락을 가위로 마구 잘라낸 후 교통사고를 내 병원에 입원하고, 정신과치료를 받아보라는 권유에 상담은 받지만 그 상담을 통해 자신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작중 여성들의 공통점은 대상화 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문화평론가인 '그'가 말하는 모습을 좋아할 뿐 내용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도 못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원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장소에 동석한다. '나'의 동료는 불륜상대로 이혼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고 버림 받는다. '나'의 엄마 역시 어렸을 적 남편을 잃은 후 생계를 꾸려오다가 뒤늦게 '아저씨'를 만나 외로움을 달래고 있지만 이를 떳떳하게 생각하지는 못하는 듯 하다.

 

작중에서 '신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의 관람 후 연출가와 나의 대화는 '그'의 허위의식을 드러낸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두 명의 등장인물이 끊임없이 부조리한 대화만을 하는 것을 보며 '나'는 끔찍하다는 느낌을 얘기하지만, '그'는 그녀가 예술을 이해할 능력이 없으며 훌륭한 작품을 매도한 것처럼 불쾌해한다. 하지만 정작 연출가는 그 연극을 보면서 관객이 지루하고 끔찍한 느낌을 받기를 의도하였으나 허위의식에 가득찬 관객은 마치 그 안에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지루하고 끔찍하다고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며 한탄한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감정표현을 직접 하지 않는다. 동일한 상황에 대한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자신이 하는 일 조차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것 처럼 처리하기도 한다. 작가의 시도가 신선하고 성공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또 작중에 '그'와 예술가 무리의 대화 중 '소설은 일단 재밌어야 하며 독자는 재미가 없으면 책을 덮으면 그만'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자신의 작품에는 그런 기준을 왜 적용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소설은 재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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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드의 여왕 (구) 문지 스펙트럼 3
알렉산드르 셰르계예비치 푸슈킨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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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반 폐트로비치 볠킨의 이야기>

 

o 그 일발

 

겉보기에는 러시아인 같지만 이름은 외국식인 실비오는 민간인임에도 불구하고 군인들 사이에서 일원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한때 경기병으로 복무했었으나 무슨 이유인가로 장교의 지위를 버리고 퇴역하였으며, 재산이나 수입이 얼마인지 아무도 몰랐고 책을 꽤 많이 가지고 있으며, 사격의 명수이다. 놀음을 하던 어느날 실비오가 한 장교에게 모욕을 당하자 우리 모두는 그가 장교에게 결투를 신청할 것이라 짐작했지만 이상하게도 실비오는 결투를 피하기만 하여 나는 그가 용기없는 자는 아닌가 하여 실망하고 만다.

어느날 실비오가 편지를 한 통 받은 후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부유하고 고귀한 가문의 젊은이와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는데 그에게 따귀를 맞는 사건이 일어나고 결투가 벌어진다. 젊은이가 먼저 쏜 총알은 실비오를 맞추지 못하고 투구를 꿰뚫고, 내가 젊은이를 쏠 차례가 되었는데 젊은이에게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실비오는 자신의 한발을 나중에 쏘겠다며 그 결투를 미루고 복수심에 찬 하루하루를 보낸다. 편지가 전해온 소식에 의하면 그 젊은이는 곧 아름다운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실비오는 결혼을 앞둔 그가 예전과 같이 자신의 권총을 앞에 두고 아무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지 보겠다며 마을을 떠난다.

몇년 후 내가 가난한 마을로 이사하여 우연히 옆집에 사는 백작과 교우관계를 맺고 있는데 백작의 집에 있는 그림에는 겹쳐진 두개의 총알 자국이 있다. 흥미를 느낀 나는 그 총알 자국의 유래를 백작에게 묻고, 백작의 이야기는 나에게 놀라움을 준다. 백작은 바로 예전의 젊은이었고 실비오는 그를 찾아왔었다. 다시 벌어진 결투에서 젊은이의 총알은 실비오를 맞추지 못하고 그림을 맞춘다. 실비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젊은이에게 '난 만족하네. 자네가 당황해하고 겁먹는 걸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네. 자네에게 날 쏘게 만들었으니 이제 됐네. 자넨 날 평생 기억할 테지. 자네를 자네 양심에 맡기겠네. 라면서 제대로 겨냥도 하지 않고 그림에 총알을 발사하고 집을 떠난다.

 

역자(김희숙)는 실비오가 '결코 사람을 쏘지 못하는 복수자'이며 죽임에 대한 공포가 그에게 사람 쏘기를 막고 있으며, 이 공포야 말로 자신에 대해서는 결코 인정하거나 용서하기 싫었고 그래서 더욱 백작에게서 보고 싶어했던 실비오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일 것이라는 해석을 한다. 그러나 나는 약간 생각이 다르다. 실비오가 만족한 점은 두 가지이다. 백작이 '당황해하고 겁먹었다'는 점과, '날 쏘게 만든' 점이다. 당황하고 겁먹은 백작을 보았을 때, 실비오보다 우위에 있다는 듯 두려워하지 않던 백작이 이미 죽어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기에 굳이 총알을 발사하여 그의 생명을 끊을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또 날 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만족한다는 말은 두번째 결투에서 실비오가 남은 한발을 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제비뽑기를 하자고 하였을 때 백작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실제 먼저 쏘았다는 점이다. 명예와 자존심을 중요시했다면 백작은 제비뽑기 자체를 거부했어야 옳다. 그래서 실비오는 '자네를 자네 양심에 맡기겠네'라고 하며 떠난 것으로 생각된다. 실비오는 그 후 전쟁에 참가한 후 전사한 것으로 나오는데 전쟁은 어찌보면 다수대 다수의 결투가 아니던가. 죽임에의 공포를 가진자가 전쟁에 참가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o 눈보라

 

마리야 가브릴로브나는 부유한 집안의 딸로 프랑스 소설을 읽으며 자란 터라 낭만적인 사랑에 경도되어 있다. 그녀는 가난한 육군 소위인 블라지미르 니콜라예비치와 사랑에 빠졌지만 둘은 집안의 반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블라지미르는 마리야 가브릴로브나에게 집을 도망쳐 자신과 몰래 결혼하자는 제안을 한다. 둘이 만나기로 한 날 심한 눈보라로 블라지미르는 약속한 교회에 제 시간에 갈 수가 없었고 마리야 가브릴로브나는 집으로 돌아온 후 심한 열병에 시달린다. 상심한 부모는 마리야 가브릴로브나의 병이 상사병이라고 생각하여 블라지미르에게 결혼을 허락한다는 서신을 보내지만 그는 부대로 돌아간 후였고, 거절의 내용을 담은 반쯤 미친 답장을 보낸다. 얼마 후 그녀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설상가상으로 블라지미르마저 전사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전쟁이 끝나고 귀환한 멋진 군인들의 갖은 구애에도 마리야 가브릴로브나는 냉담한 태도만을 취한다. 그러나 경기병 대령인 부르민에게만은 마리야 가브릴로브나도 마음이 끌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는데, 어느날 부르민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자신은 결혼한 몸이라 이루어 질수가 없다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1812년, 어느 눈보라가 치는 날 그는 우연히 교회를 지나게 되는데 사람들이 그를 교회로 끌고 들어간다. 부르민을 신랑으로 오인한 사람들과 반쯤 장난어린 그의 행동의 결과 그는 어느 여자와 결혼을 하고, 정신을 잃고 의자에 앉아있던 신부에게 키스하려는 순간 신부가 신랑이 바뀌었음을 알고 다시 기절을 하자 부르민은 그곳을 떠나 목적지로 향한다. 하지만 그가 조롱했던 그 여자에게 아직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내용이다.

 

역자 해설에 따르면 부르민은 그의 이름 속에 '폭풍 burja'이 들어있으며, 사건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힘의 하나가 초인간적인 동기, 즉 눈보라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초인간적인 신비한 힘 말고도 블라지미르의 불완전한 준비, 부르민의 행동 등 산문적인 이유가 가세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푸슈킨이 낭만주의의 특징인 운명과 초자연적인 힘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상대화시키고 산문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낭만주의 소설적 전통을 따른다면 블라지미르와 마리야가 결혼하여야겠지만 푸슈킨은 마리야를 바람 같고 재치 있는 부르민과 맺어준다.

 

o 장의사

 

장의사인 아드리안 프로호로프는 새 집으로 이사를 간다. 얼마 후 술자리에서 '자네의 망자들을 위해 한잔 하라'는 말에 모욕을 느낀 그는 술에 취해 집들이에는 '자신에게 일거리를 주는 이들인 죽은 정교도들', 즉 망자들을 초대하겠다고 중얼거리다 잠이 든다. 그날 밤 그의 집에 정말로 망자들이 잔뜩 들이닥치자 프로호로프는 얼이 빠져버리고, 뼈뿐인 퇴역 근위 중사 표트르 폐트로비치가 자신을 껴안으려 하자 비명을 지르며 그를 떠밀어 버리고 자신도 기절하고 만다. 다음날 잠에서 깬 그는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알고, 트류히나가 죽지 않아 관을 팔 수 없게 되었음을 알고도 기뻐한다. 망자들을 초대하여 집들이를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망자들이 찾아오자 오히려 망자들을 밀쳐내고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이 대비를 이루면서 죽음이 이득이 되는 아이러니한 직업인 장의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푸슈킨의 시에서 '새집'이나 '집들이'는 종종 죽음의 메타포로 등장한다고 한다.

 

o 역참지기

 

늙은 역참지기의 아름다운 딸 두냐가 젊고 부유한 기병 사관 민스키와 함께 페테르부르크로 달아난다. 민스키가 꾀병을 핑계로 두냐와 가까와진 후 두냐를 유혹할 때 두냐는 머뭇거리지만 역참지기는 두냐에게 '나리는 늑대가 아니니까 잡아먹지 않을 거야. 교회까지 타고 가려무나'라며 제 손으로 두냐를 넘겨준다. 하지만 교회에 두냐가 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역참지기는 민스키의 꾀임에 빠졌다고 생각하여 딸 두냐를 찾아나선다. 그들을 태워다 준 마부는 '두냐 자의로 따라 나선 듯이 보였지만 내내 울고 있었다'고 말하는데 역참지기는 '내내 울고 있었다'에만 무게를 두어 두냐가 민스키의 꾀임에 빠졌다는 생각을 더욱 확신한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민스키와 두냐를 본 후에도 딸의 행복을 인정하지 못하고 두냐가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몇년 후 역참지기가 죽고, 그 무덤을 두냐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찾아온다.

 

역참지기는 자신의 믿음에 근거하여 여러가지 상황을 판단하지만 모두 그릇된 판단 뿐이다. 민스키를 오인하여 두냐를 안심시키고, 자의로 따라나선 두냐는 꾀임에 빠졌다고 생각하며, 행복한 두냐의 모습은 인정하지 못하고 버려질 바에는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가 죽은 후 두냐는 유모와 사내아이 셋, 그리고 개까지 데리고 온 것으로 보아 역참지기의 예상과 달리 행복한 삶을 꾸렸던 것으로 보인다.

 

o 귀족 아가씨 - 농사꾼 처녀

 

전형적인 러시아 귀족 볘례스토프와 영국식에 사족을 못 쓰는 무롬스키는 앙숙 관계이다. 무롬스키에게는 장난꾸러기인 딸 리자가 있는데 그녀가 볘례스토프의 아들 알롁셰이에게 농사꾼 처녀 아쿨리나로 변장을 하고 나타난다. 알롁셰이는 농사꾼의 딸이지만 아름다운 아쿨리나에게 반하여 글을 가르쳐주고 편지를 보낸다. 앙숙이던 볘례스토프와 무롬스키가 우연한 사고로 화해를 하고 두 아버지는 자신의 딸과 아들을 결혼시키려 하지만 알롁셰이는 아쿨리나에게 반하였기 때문에 리자가 싫다며 거절하고, 아버지는 한푼도 유산으로 주지 않을 것이라며 알롁셰이를 윽박지른다. 무롬스키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으로 그의 집에 찾아갔다가 리자를 발견하고, 그녀가 아쿨리나임을 알게된 알롁셰이는 그녀의 손에 키스하고 이를 본 무롬스키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귀족 볘례스토프의 이름은 영국식이고 영국식 추종자 무롬스키의 이름은 전형적인 러시아 이름이라고 한다. 아쿨리나는 농사꾼 딸이지만 알롁셰이는 아쿨리나가 귀족의 딸과 같이 총명하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한다. 결국 겉으로 보이는 것과 본질적인 것 사이의 불일치, 그리고 이로 인한 긴장관계를 푸슈킨은 해피앤딩으로 마무리한다.

 

<스페이드의 여왕>

 

주인공 계르만은 야심만만한 사나이지만 자신의 야망을 실현할 만한 재산과 배경이 없다. 그는 도박을 좋아하면서도 '여분의 것을 얻길 바래서 꼭 필요한 것을 희생하지 않는' 금욕을 철칙으로 살아가며 근면과 성실로 야망을 이루리라 다짐한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기묘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백작 부인이 3장의 카드를 맞추는 비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백작 부인의 양녀 리자를 이용하기로 마음 먹은 그는 리자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백작 부인의 집에 숨어든다. 백작부인에게 비법 전수를 부탁하나 부인은 이를 거절, 혹은 정말 비법 따윈 없는 것인지, 한다. 권총으로 백작부인을 위협하다가 백작부인이 심장마비로 죽자 그는 리자의 사랑을 이용하여 집에서 무사히 탈출한다.

어느날 꿈에 백작부인이 나타나 세장의 카드 번호, 3과 7과 1을 알려주며 하루에 한번만 도박을 할 것과 불쌍한 양녀와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면 모든 것을 용서해주겠다고 한다. 도박장에 간 그는 첫번째와 두번째 도박에서 승리를 거두고 마지막 도박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드디어 1이 나와 그의 야심은 실현되는 듯 한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1이 아닌 스페이드 퀸이 었으며 백작부인을 닮은 카드 속 스페이드 퀸이 계르만에게 눈을 가늘게 뜨고 싱긋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계르만은 미쳐서 오부호프 병원에 앉아 무엇을 물어보아도 "삼, 칠, 일! 삼, 칠, 퀸!"하고 중얼거릴 뿐이다.

 

역자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은 후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미성년>, 솔로구프의 <작은 악마>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볠린스키는 "러시아 문학은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찬사를 했고, 루카치는 이에 비견하여 "<스페이드 여왕>에 대해서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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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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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치안판사인 주인공 '나'는 30년간 평화롭게 도시 행정에 종사해 왔다. 어느날 검은 안경을 쓴 죨 대령이 야만인들의 위협으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정보부로부터 파견되어 오는데 그는 죄수들을 심문하여 진실을 알아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야만인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두 명의 죄수가 죨 대령에게 심문을 받은 날, 노인은 사망하고 소년의 몸에는 백여개의 칼자국이 남는다. '나'는 그들이 고문당했음을 알지만 진실을 마주 보는데 일말의 주저를 느낀다. 죨 대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어부임에 분명한 사람들을 잡아와 가둔다. 그들은 단지 먹을 것이 있다는 이유로 갖혀 지내면서도 만족하고 그들을 동정하던 도시인들은 그들을 백안시한다. 그들은 군인들에 의해 고문당하고 '나'는 죨 대령의 처사에 분개하지만 그에게 대적하지는 못한다.

어느날 동냥을 하는 눈먼 소녀를 발견한 '나'는 그녀가 고문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음을 알고, 그녀를 '나'의 방으로 데려가 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매일 밤 고문을 당해 부러졌던 다리를 씻겨주고 마사지를 해주지만 정작 그녀에게 언뜻 느끼는 성욕을 표현할 수는 없다. 그는 창녀를 통해서 여자를 느끼고 소녀 곁에 돌아와 눕는다.

그녀를 원래 살던 곳으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나'는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여행 끝에 야만인들을 만난다. '나'는 그녀에게 원한다면 그들에게 되돌아가도 좋지만 다시 '나'와 함께 도시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느냐며 야만인들과 함께 떠나고 도시로 되돌아온 나는 반역죄로 감옥에 갖힌다.

갖힌 곳에서 한동안은 의연한 자세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음을 믿지만, 고문과 굶주림이 반복됨에 따라 동물적인 본능에 자신의 존엄성이 잠식당함을 느낀다. 그는 폐인과 같이 되어 더 이상 군인들은 그를 가두어 두지도 않는다. 군인들이 야만인들의 볼에 철사를 꿰어 잡아와 벌거벗은 그들의 몸에 회초리질을 하고 망치로 살해하려는 것을 본 '나'는, 자신의 신체가 심각한 훼손을 당해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안된다고 외친다. 그리고 그러한 잔인한 짓을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서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외치고, 그 결과 나무에 목이 메달리고 날개꺽기를 당한다.

계속 그들의 계엄상태가 계속될 것만 같았던 도시에 어느날부터 군인들이 철수하기 시작하고 군인들이 야만인들에 의해 전멸당했다거나, 야만인들이 다른 도시를 점령하여 그곳으로 이동하고 있다거나 하는 소문들만 무성하다. 사람들은 변방을 떠나고 있고 나 역시 떠나야하는지 생각한다. 죨 대령은 초라한 모습으로 도시로 귀환했다가 시민들에게 돌 세례를 받으며 도망간다. '나'는 제국이 평화로운 시기에는 '나'와 같은 행정관을, 제국이 위태로운 시기에는 죨 대령과 같은 군인을 내세울 뿐 근본적으로 '나'와 죨 대령은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제국이 강요하는 것은 흥망성쇠가 있는 '역사'이지만, 사계절이 변화하고 곡식을 키우고 생활하는 삶은 역사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역자 해설을 보면 소설은 콘스탄틴 카바피(C.P.Cavafy)의 시 "야만인을 기다리며(Waiting for the Barbarians)"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하는데, 이 시의 마지막 연은 다음과 같다.

 

어째서 모든 거리와 광장이 그렇게도 빨리 텅 비어지는가?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도 깊은 생각에 잠겨 다시 집으로 향하는가?

저녁이 되었어도 야만인들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이 변경에서 돌아왔다.

그들은 더 이상 야만인들이 없다고 말했다.

야만인들이 없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사람들은 일종의 해결책이었다.

 

야만인들이 일종의 해결책이었다는 말은 무엇인가? 제국은 적(그것이 가상이든 실제이든)이 없으면 내부로부터 붕괴되는 구조이다. 과잉생산에 의한 공황은 제국을 끊임없이 위협하지만 이를 늦추어 줄 수 있는 특별한 상품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무기이다. 무기는 당장에 사용하지 않더라도 쌓아 둘 수가 있으며 그것은 재고가 아니다.억압과 압제라는 공통의 비전을 공유하는 실제하는 적이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냉전시대에 무한정 늘어만 가는 무기들은 시민들에게 든든함과 안정의 이미지마저 줄 수가 있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자 그들은 당황한다. 눈에 보이는 적이 없다면 이 많은 무기들은 누구에게 팔 것이며, 무기를 쌓아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은 '야만인'들이 있다고 말한다. 이라크에 대규모 살상무기가 있으며 이것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소리친다. 이라크에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고 쌓아두었던 재래식 무기를 마구 쏟아부어 재고를 소진한다. 실제 이라크에 대규모 살상무기는 없었지만, 있었을 것 같았다는 말만으로도 전쟁범죄는 면책된다. 야만인들은 실체없는 이미지이지만 그것은 마치 전염병처럼 사람들을 휩쓸고 광기에 휩싸인 사람들에게 이성이나 논리는 반역의 다른 이름이다. 

 

문체는 간결하고 역사 인식은 날카롭다. 특정한 지역과 특정한 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국이 어떻게 사람들을 광기에 휩싸이게 하고 생활로부터 멀어지게하며 인간성을 파괴하는지, 읽는 내내 공감이 되는 것은 그러한 일들이 유사 이래 늘상 반복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치안판사의 인식, 자신과 죨 대령이 다르지 않다는 인식은 작가의 소설을 매력적이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들과 다르며 그들에 대항해서 싸우는 투사가 아닌, 그들 내부의 공범자가 최소한의 양심의 소리를 내려다가 좌절하고, 그 좌절에도 불구하고 다시 목소리를 내면서 인간성의 파괴에 대항하는 '나'의 모습을 간결한 문체로 묘사하는 솜씨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눈먼소녀에게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나'와, 그녀가 '나'로부터 떠나는 장면에서 통속과 예술의 경계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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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예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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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야요이는 생각할 일이 있으면 가출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 가출은 다른 때와 뭔가 다르다. 가출 후 유키노 이모의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어렴풋한 옛날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고, 유키노가 친언니였음을 깨닫게 된다. 야요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어떤 예감이 들어맞는 일이 많았는데, 유키노언니와 야요이, 그리고 부모님이 함께 여행을 하기 전 무척 슬픈 예감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부모님을 잃게 된다. 부모님을 잃은 후 현재의 부모님이 유키노와 야요이를 키우려고 했으나 유키노는 이를 거절하고 야요이에게는 자신을 이모로 알게 해달라고 한 후 혼자서 쓸쓸히 살아왔다. 잃어버린 기억이었지만 야요이는 그때의 기억에서 오는 느낌에 이질감을 느껴왔고 이번 가출에서 기억을 되찾은 것이다.

언제나 편안함을 느끼던 동생 데츠오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동생'임을 알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유키노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는 유키노의 옛 제자이자 애인인 마사히코를 만나 유키노에 대해 좀 더 알게되었고, 부모님이 사고로 사망한 장소에서 유키노를 찾아낸다. 돌아오는 길에 야요이는 이모와 동생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내 손발로 언니와 애인을 발굴했다고 생각한다.

 

요새 들어 가벼운 소설을 출퇴근 기차간에서 읽고,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쉽게 읽히니까 집어들어 시간을 잘 보내놓고선, 다 읽고 나면 그럴줄 알았다는 식이어서 나 스스로가 한심하다. 나는 요시모토 바나나가 최근 작가인 줄로 생각했는데 작품이 씌인 연도가 1988년이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이니 꽤나 연식이 오래된 작가이다. 초기작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이디어만 있고 생활은 없다. 자극적인 소재, 흥미를 끌만한 출발이지만 출발만 하고 만다. 나는 야요이와 데츠오가 그 후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싶은 나이가 된 것일까. 지지리궁상이든 통속적인 결말이든 어찌되었든 그 후의 '생활'이 있는 소설을 읽고 싶다. 이렇게 써놓고 내일은 또 어떤 책을 읽을지 모르겠다. 그런 삶이 담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읽지 않는 것은, 내가 지금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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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건너뛰기
존 그리샴 지음, 최수민 옮김 / 북앳북스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페루로 평화봉사단 활동을 떠나는 딸 블레어를 배웅하고 난 후 주인공 루터 크랭크는 지하실 서재에서 작년 크리스마스 경비를 계산한다. 자그마치 6,100달러나 썼다는 사실에 경악을 하는 한편 남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그는 올해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크리스마스 당일에 카리브해로 떠나는 크루즈 호를 예약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떠나는 그 여행에 드는 경비는 3,000달러 정도이다. 비용도 절감될 뿐만 아니라 온갖 바보같은 짓에 허비될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가까스로 아내 노라를 설득시켰지만 넘어야 할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트리를 사지 않아서 보이스카웃에게 눈총을 받고, 달력과 케이크를 사지 않음으로서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차례로 적이 되었다. 눈사람 프로스티를 지붕에 세우지 않아 헴록 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 대회에서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그 결과 마을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크랭크는 자유주의 국가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했을 뿐인데도 신문 가제트 일면에 비아냥거리는 기사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그러거나 말거나 꿋꿋이 크루즈 여행을 생각하며 내심 흐뭇한 미소마저 짓던 크랭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평화봉사단으로 떠났던 딸 블레어가 한달도 되지 않아 크리스마스를 지내러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페루에서 만나 한눈에 반한 사위감을 데리고 말이다.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흐뭇함을 즐기던 크랭크와 노라는 이제 뒤늦게 트리를 사고 음식을 만들고 파티에 사람들을 초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트리를 빌리려다가 악의를 잔뜩 품은 경찰관에게 도둑으로 체포될 위기에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마음껏 크랭크를 비웃어주지만, 결국은 크랭크 부부를 도와 블레어와 페루 사위감을 맞는데 손색없는 파티를 마련하는데 힘을 보태준다는 내용이다.

 

헐리우드 영화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존 그리샴의 소설을 읽었고 딱 기대했던 것 만큼이었다. 다만 법정 스릴러물이 아닌 점은 아쉽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852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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