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영역의 확장
미셸 우엘벡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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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의 정보 기술자인 주인공 '나'는 회사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으며 취미로 글을 쓰고 있다. 잘생긴 외모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사귀던 여자친구와는 헤어진지 2년이 되었다. 회사에서 농림부에 내다 판 프로그램과 관련한 출장을 명하고 '나'는 관찰자와 같은 태도로 출장을 다닌다.

28살의 못생긴 동료 티스랑과 함께 출장을 다니면서 티스랑이 여자에 대해 끊임없는 갈망하는 상태를 옆에서 지켜본다. 자신은 여자에 대해 별 관심을 나타내지도 않으면서 티스랑을 도와준다. 티스랑이 절대 성공하지 못하리란 것을 아는 '나'는 어느날 티스랑이 관심을 두었던 여성을 가로채간 남자를 죽이라며 칼을 쥐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티스랑은 남녀가 관계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자위를 했을 뿐이고 돌아가는 고속도로에서 사망한다.

우울증이 심해진 '나'는 사회 부적응이 점점 심해지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2개월간의 병가가 끝나면 회사는 나를 쫓아낼 것이고 요양소에서 의사는 내가 2년간 성관계를 갖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요양소를 나온 나는 마자스 국유림으로 하이킹을 떠나며 무언가 새로운 가능성을 느낀다.

 

줄거리를 써놓긴 했지만 줄거리가 명확한 소설은 아니다. <규칙>의 영역과 <투쟁>의 영역을 상정하고 모든 영역에서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인과, 그것을 잘 해 낼 수 없는 상태에서 오는 병리적인 현상을 모자이크식으로 처리했다. 작가는 기존 소설 형식을 벗어났으니 더 잘 해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모자이크가 되는 여러 얘기들 사이의 관계가 느슨하고, 주인공의 의식이 조울증 환자의 그것처럼 널뛰기를 한다. 좋은 평이 많은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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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말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5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권순홍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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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라는 커피숍에서 토머시나 앤이라는 아가씨와 루이지라는 아가씨가 싸움을 벌인다. 둘 사이를 갈라 놓았을 때 루이지의 손에는 토머시나의 머리칼이 한 움큼 뽑혀 있었으나, 토머시나는 그리 아프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토머시나 앤의 사망 기사가 신문에 실린다.

한편 데이비스라는 이름의 여인이 폐렴에 걸려 임종이 다가오자 고먼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한다. 그녀는 신부에게 자신이 알게된 악행의 흔적과 사람들의 명단을 남기고 사망한다. 그리고 그날 밤 신부 역시 살해된다. 공교롭게도 주머니가 터져 신부는 명단을 구두 속에 넣어 두었는데 그 명단을 조사해보니 거기 적힌 사람들 중 일부는 최근에 병에 걸려 사망한 사람들이다. 경찰은 사건 당일 신부를 목격한 사람을 찾자 마을 약사인 오즈번이 증언한다. 그는 꽤 자세히 신부를 뒤따르던 사람에 대해 목격한 바를 이야기하고 경찰은 그 사람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그리고 비너블스라는 부유한 인물이 사건 당일 오즈번이 목격한 사람임이 밝혀지는데, 그는 소아마비 환자였으며 믿을 만한 의사의 진료를 받고 있어 오즈번이 목격한 사람과 동일인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즈번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창백한 말(the pale horse)>이라는 이름의 여관에 사는 세 명의 노파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들은 강령술을 빌어 사람을 원격에서 살해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있다. 이들과 고객을 중개하는 자는 전직 변호사인 브래들리라는 인물로 그는 고객과 내기를 하는 형식으로 사건을 의뢰 받는다. 누군가 사망하길 바라는 자가 브래들리를 방문하면 브래들리는 그 사람이 일정 기간 내에 사망한다는데 돈을 걸고 의뢰인은 오래 사는 쪽에 돈을 거는 것이다. 곧 사망하길 바라는 사람은 자연사 하고 브래들리는 내기에 이겨 돈을 받게 된다

주인공 마크 이스터브룩은 이들의 음모를 파해치기 위해서 진저라는 여성과 실제 살인을 의뢰하기에 이른다. 이미 예전에 사망한 이스터브룩의 부인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며 자신과 이혼해 주지 않는 상황을 설정하고 진저가 그 역할을 맡은 것이다. 이스터브룩은 <창백한 말>여관에 가서 그녀들의 강신술을 지켜보고 으스스함을 느낀다. 그런데 얼마 후 진저가 지독한 독감에 걸리는 일이 일어나자 이스터브룩은 혼동에 빠진다.

비너블스가 용의자라는 의심을 품은 이스터브룩은 그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즈번을 그 집에서 만난다. 오즈번은 자신이 아직도 비너블스가 범인임을 확신하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다. 비너블스가 소아마비라고 하며 저명한 의사가 진찰을 해왔다고는 하지만 그를 실제 진찰한 마을 의사는 얼마전 외국으로 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것이다. 런던의 저명한 의사는 시골 의사의 진찰을 바탕으로 약만 조제하는 식이었다면 얼마든지 비너블스가 소아마비 환자로 행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말을 들은 이스터브룩은 비너블스가 <창백한 말>여관의 노파들이 강령술을 하여 원격살인을 하는 연극을 하고 브래들리를 중개인으로 하는 살인조직의 수괴가 아닐까 의심한다.

진저의 병세가 악화되는 가운데 이스터브룩은 사망한 사람들이 모두 설문조사원의 방문을 받았다는 사실과 머리카락이 빠지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그들이 바륨 중독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설문조사원은 살해당한 사람들을 방문하여 그들이 먹는 음료수와 약, 사용하는 샴푸와 비누 등을 조사하고 그 후 수도검침원 등이 방문하여 바륨이 들어있는 동일한 제품으로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바륨에 중독된 사람들은 의사에게 평상시와 달리 이상한 음식은 먹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고 의사는 중독에 의한 외적 발현에 근거하여 폐렴 등의 진단만을 하여 그들은 자연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결국 르죄느 경감과 이스터브룩은 오즈번을 대동하고 비너블스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에 놀라운 사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오즈번 자신이 범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그 살인조직을 운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고, 이에 자신이 언젠가 버스에서 보았던 사람을 신부가 죽던 당일 목격하였다는 진술을 하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버스에서 본 사람이 소아마비환자였기 때문에 그는 더욱 일을 교묘하게 꾸미려 하였고 스스로 꼬리를 드러내고 만 것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중에서는 여러 면에서 독특한 면이 있다. 범인 한 사람이 아닌 일련의 범죄조직이 나오는 점, 포와로나 마플이 아니고 작가 자신을 모델로 한 추리소설가 올리버 부인이 나온다는 점 등이다.

번역이 좀 이상해서 짧은 분량을 읽는데 꽤 오래 걸렸다. 비너블스가 진저에게 뜬금없이 "당신은 살아있는 오리를 내게 줄 뻔했죠, 아가씨"라고 하는데 도통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관용적인 표현인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원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구절이 몇몇 보인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창백한 말(the pale horse)은 성서에서는 청황색말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이의 영문과 구번역, 신번역은 다음과 같다.

 

요한계시록 6장 8절

 

I looked, and there before me was a pale horse! Its rider was named Death, and Hades was following close behind him. They were given power over a fourth of the earth to kill by sword, famine and plague, and by the wild beasts of the earth.

 

구번역 성서

 "내가 보매 "청확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의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대한성서공회에서 편 표준새번역 성경전서

"그리고 내가 보니, 청황색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사람의 이름은 '사망'이고, 지옥이 그를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칼과 기근과 죽음과 들짐승으로써 사분의 일에 이르는 땅의 주민들을 멸하는 권세를 받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역자의 작품 해설에 추리소설의 성격상 분류가 흥미롭다.

o 본격물 - 수수께끼 풀이 소설이라고도 하며 'Mystery'라고 흔히 표현한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 반 다인 등이 흔히 여기에 속함

o 범죄물 - 범죄자, 범죄행위에 중점을 둠. 아이러 래빈의 <죽음의 키스>나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 등. Crime으로 표시

o 서스펜스 - 공포물이라고도 함. 작품을 읽어나감에 따라 독자가 주인공이라도 된 양 위기의식을 느낌.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

o 하드보일드 - 비정파. 실제 사건 해결을 위해 현장에 뛰어들어 갖가지 경험을 하는 현실적 감각의 탐정 등장

그외 스파이물, 법정물, 코미디물 등이 있으나 분류는 형식적인 것이며 주관적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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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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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그리라'는 화제로 도화서 생도들이 치르는 외유사생에서 하나의 그림이 화원들 사이에서 문제시 된다. 여인이 화면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것 만으로도 파격일 것인데 그 여인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승려들이 쓰는 송낙이라는 모자이다. 화원들은 이 그림이 춘화(春畵)나 다름없다며 분개하고 그림 그린자를 찾아내라는 분부를 단원 김홍도에게 내린다. 김홍도는 그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거꾸로 뒤집힌 그림을 모사하라는 과제를 생도들에게 내는가 하면 아홉개의 점을 한정된 직선으로 이어보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단원은 범인이 혜원 신윤복임을 확신하지만,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드러난 윤복의 자유분방함과 재능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윤복의 형 영복이 자신이 범인이라며 거짓 자백을 하고 형은 단청실로 자진하여 쫓겨간다. 영복은 단청실에서 조선 제일가는 조색법을 알아내어 윤복의 그림에 화려한 색을 더해주고자 한다.

그 후 정조는 10년 전에 두 화원이 피살당한 사건을 재조사하라는 명을 단원에게 내린다. 십 년 전 수석화원 강수항과 그 수종화원 서징이 당한 영문 모를 사건인데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강수항의 화실에서 범인이 그림을 훔쳐갔다는 사실과 서징이 범인을 그렸을지 모를 얼굴 없는 초상화를 남겼다는 사실을 끝으로 벽에 부딪히고 만다.

한편 윤복은 기방에서 가야금을 기막힌 솜씨로 연주하는 정향이라 기생을 알게되고 정향은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 윤복에게 마음을 허락한다. 그리고 정식 화원이 되기 위한 시험을 앞두게 되는데 홍도는 윤복에게 이갑전로(二甲傳蘆)라 쓰고 이갑전려라 읽는 해탐노화(蟹貪蘆花) 그림을 주며 '두 번의 과거에 급제하여 임금의 상을 받는다'는 뜻을 지녔다며 화원에 합격하길 기원한다. 화원이 되는 시험에서 다시 한번 윤복은 화려한 색을 사용하여 여인들이 단오날 그네를 타고 몸을 씻는 단오풍정(端午風情)이라는 그림을 그려 논란에 휩싸인다. 화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조가 손수 합격자를 가려내는데 그 명단에는 윤복이 끼어있다.

정조는 홍도와 윤복의 재주를 높이 평가하고 아꼈기에 그들에게 같은 화제로 다른 그림을 그리는 동제각화(同題各畵)의 경쟁을 시킨다. 그들이 그려온 그림들은 정조를 감탄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서로를 감탄하게도 만든다. 정조는 이들의 그림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더욱 이해하게 되고, 홍도와 단원은 서로의 재능을 더욱 정려하게 다듬는다.

입추가 지나고 임금의 용안을 그리는 어진화사가 예정되어 도화서가 들썩였으나 정조는 홍도와 단원을 어진화사를 치를 화원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한쪽으로 비스듬이 앉은 구도와 웃는 얼굴의 용안을 그린 홍도와 단원의 그림은 도화서 화원과 조정 대신들로부터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결국 윤복이 도화서를 나가 중인으로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김조년에게 몸을 의탁한다. 아버지 신한평의 화실이 자신의 잘못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는 점과 정향이 바로 김조년에게 팔려갔다는 사실 역시 의탁의 이유가 된다. 도화서를 나선 윤복의 그림은 양식을 벗어나 더욱 화려하고 파격적인 모습을 띤다.

윤복의 그림자 놀이하는 버릇을 통해 윤복이 신한평의 친아들이 아니고 죽은 서징의 자식임을 알게 된 홍도는 벽에 부딪혔던 살인사건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하고 윤복을 통해 서징이 죽기 전 종이를 만드는 공장에 드나들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얼굴이 없는 초상화는 사실 얇은 종이를 네 장 겹친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종이를 박리하자 눈을 제외한 인물의 초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대화원 강수항의 벙어리 제자가 눈을 그려넣자 서징을 살해한 범인의 얼굴이 완성된다. 강수항을 조사하던 중 우연히 강수항이 몇몇에게 자진하여 초상화를 그려주겠노라고 제안하였으나 초상화가 얼굴의 한군데가 잘못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이들은 잘 못 그려진 초상화의 잘 못 그려진 부분만을 모아 초상화를 하나 더 완성한다. 그리고 그 초상화가 죽은 사도세자의 용안을 그린 것임을 알게된다. 마지막으로 서징이 죽기전 도화서의 그림 보관소에서 특정 그림을 지목한 것으로 강수항과 서징을 살해한 범인이 다름아닌 김조년임을 안다.

한편 김조년은 정향이 자신에게 마음이 없다는 사실과 윤복이 그림을 통해 자신을 도발하는 것을 눈치채자 홍도와 윤복을 그림대결에 끌어들인다. 윤복이 이겼을 경우에는 정향을 자유롭게 해 줄 것이라는 것과 홍도가 이겼을 경우에는 윤복이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풍문을 잠재워 주기로 하는 이 내기에 김조년은 막대한 재산을 내깃돈으로 건다. 하지만 누가 이기든 양쪽다 상처 투성이가 될 뿐이다. 김조년은 판을 키우고자 하나 유독 박안식 대감만 내기에 참여하지 않는다. 김조년은 박안식 대감을 찾아가 내기에 참가하게 만들고 대결은 성사된다. 하지만 김조년의 예측과 달리 내기는 무승부로 끝나고 마는데 홍도와 윤복은 그림에 무수한 비밀을 숨겨 어느 한쪽이 이길 것 같은 상황이 되면 그림의 비밀을 밝혀 판세를 뒤집음으로서 끊임없는 균형을 이루도록 해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림은 무승부가 되고 박안식이 돈을 건 경우는 무승부였으며, 무승부가 될 경우 김조년은 내기에 참가한 자들의 내깃돈을 모두 물어주기로 하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박안식은 마지막 발악을 하며 정향을 내놓지 않으려 하지만, 윤복과 정향이 불이 잠깐 꺼진 사이 서로 옷을 바꿔입고 밖에서 보이는 그림자에 현혹된 문지기는 정향을 놓치고 만다. 그리고 김조년은 살인죄로 의금부에 끌려간다.

여인으로 돌아온 윤복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린 후, 홍도를 떠난다. 그리고 윤복의 소식은 홍도에게 풍문으로만 들려올 뿐이다.

 

드라마는 못 보았지만 드라마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원과 혜원의 그림을 이야기 속에 녹여내어 그림을 읽고 해석하는 과정이 흥미롭고, 사도세자의 용안을 그린 초상화를 둘러싼 살인 사건 역시 추리소설 못지 않는 탄탄한 구조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 대결에서 두 화원이 그림에 숨겨둔 비밀들 역시 작가는 솜씨 좋게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너무 잘 들어맞고 해석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된걸까. 기록된 것이 거의 없는 혜원의 삶을 작가의 가정과 상상 속에서 풀어내어 하나의 가설을 제시하고 이야기로 풀어나가니 독자는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난데 읽어나갈수록 하나의 가정으로 출발한 이야기가 추리소설을 능가할 만큼 맞아 떨어지고 마치 동시대의 일처럼 읽히다보니 '과연 역사가 이렇게 딱딱 맞아떨어져도 되는 것일까', '역사 자체의 안개와 같은 모호함은 어찌된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다 보니 너무나 구성이 조밀하고 나무랄데 없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는 '이것은 소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로군' 하는 생각을 갖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역사소설의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피해가는 것 역시 작가의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윤복이 기생 정향을 애틋해 하는 설정은 윤복이 남성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한 트릭으로서는 그 기능을 다했다 할 것이지만, 실상 윤복이 여성이라 했을 때는 고개가 갸웃해 진다. 홍도가 윤복을 마음에 두면서 왜 그럴까 괴로워 한 것은 실상 윤복이 여성이기 때문에 해소가 되지만, 윤복이 여성임에도 정향을 향한 정념에는 과도한 면이 있다. 윤복이 아들로 행세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성에 대한 동성애적 성향이 나타났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것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왜냐하면 권말에 윤복은 자신의 초상을 그리고 여성으로서 스스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물론 동성애적 성향에서 여성성으로 복귀하는 과정으로 억지로 짜맞출 수도 있겠으나 성긴 느낌을 받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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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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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생명보험에서 보전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와카쓰키 신지에게 어느날 한 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자살을 해도 보험금이 나오느냐고 묻는다. 신지는 어린 시절 쓰라린 기억이 떠오른다. 신지가 4학년이던 어느날 6학년이던 형이 학교 후미진 곳에서 동급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다. 하지만 자신도 함께 괴롭힘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형을 모른체 하고 그날 형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것이다. 그 기억 때문에 신지는 여성에게 자살하지 말아줄 것을 간곡하게 설득한다.

얼마 후 고사카라는 남성이 회사로 불만을 제기하고 신지를 찍어서 자신의 집을 방문할 것을 요구한다. 신지는 그 남성의 집을 찾아가는데, 그 집은 온통 썩어들어가는 허름한 검은집이었고 집 안에는 개들이 수십마리나 있었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는 듯 했는데 잠시 후 불만을 제기했던 고사카가 집으로 돌아와 신지를 집안으로 들인다. 집안에서는 무엇이 썩어들어가는지 불쾌한 악취가 가득했다. 고사카는 자신의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왔을텐데 손님에게 인사도 하지 않는다며 아들을 재차 부르다가 대답이 없자 신지에게 아들의 방문을 열어보길 권한다. 신지가 방문을 열자, 그 방 안에는 고사카의 아들이 목을 메어 죽어있다. 충격적인 광경에 놀라던 신지는 문득 고사카가 자신의 아들 시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경찰에게 기이한 느낌을 얘기하자 경찰 역시 살인이 아닌가 의심하고 쇼와생명보험에서는 사고보험금 지급을 사건이 확실히 종결된 다음으로 미룬다. 이에 고사카는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신지를 찾아와 언제쯤 보험금이 나오느냐는 질문만을 집요하게 되풀이한다. 차라리 화를 내거나 폭력을 휘두른다면 마음이 편할텐데 그는 좀처럼 태도에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고사카는 자신의 손가락을 깨무는 자해를 하게 되고 그 와중에 신지는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고사카는 과거에 자신의 손가락을 스스로 절단하여 보험금을 타내려한 경력이 있었고 초등학교 동창인 사치코와 결혼을 하였다. 사치코는 재혼인 듯 한데 죽은 아이는 사치코가 데려온 아이이다. 또한 고사카가 어렸을 적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토끼들이 목메달려 죽는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것과 고사카가 쫓아다니던 여학생이 소풍 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신지는 그 학생을 죽인 사람이 고사카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들이 졸업한 초등학교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문집을 발견한 신지는 심리학을 전공하는 여자친구 메구미와 지도교수, 그리고 조교수에게 보여준다. 조교수인 가나이시는 고사카를 사이코패스인 것이 틀림없다며 신지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고사카와 직접 접촉을 시도하던 가나이시가 실종되었다가 시체로 발견된다.

본사에서 조사하던 고사카의 청구건은 뜻밖에도 지급 결정이 내려지고 경찰에서는 고사카의 알리바이가 확실했다고 답변한다. 납득할 수 없었던 신지는 이번엔 사치코가 위험해질 차례라고 생각하여 경찰을 사칭한 경고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그 편지를 보낸 후 메구미가 기르던 고양이가 목이 잘려서 발견되고 신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끊기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러던 중 신지는 1951년 서독에서 일어난 친자 독살 사건(틸트만 부인 사건)을 책에서 접하고 범인이 고사카가 아닌 사치코일 수도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그리고 심리학과 교수 역시 사치코의 그네의 꿈 작문에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만 있을 뿐 아무런 감정도 들어있지 않다는 분석 결과 내놓자 신지는 그녀가 모든 것을 꾸민 것임을 알게 된다. 그 후 고사카가 양 손이 절단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사치코는 고도후유장해 보험금을 청구한다.

 

영화 <검은집>도 잘 되었고, 소설 <검은집>도 좋다. 영화는 좀더 극적인 측면에 촛점을 맞추어 사치코의 정체를 더 오랫동안 숨겼는데 영화적 어법으로 보자면 썩 괜찮았다는 생각이다. 소설에서는 사이코패스에 관한 신지와 가나이시, 메구미의 견해를 각각 제시하면서 인간 본성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다. 기시 유스케의 <유리망치>는 꽤나 실망스러웠지만 <검은집>은 기대만큼은 되었던 듯 하다. 소설을 읽다보면 일본의 보험업계와 우리나라의 그것이 얼마나 비슷한지 놀랄 정도이다. 심지어 손님들의 양태마저 엇비슷하다. 아마도 일본 우체국 간이보험 등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으로 일본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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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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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의 패색이 점차 짙어지고 러시아 전선에서는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당은 비밀병기를 유리한 공격 지점으로 옮기기 위해 전선을 단축하고 있다고 선전하지만 병사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독일군 병사들은 자신들이 러시아에서 했던 것처럼 러시아군이 독일 국경을 넘어와 똑같은 짓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한 마음이다.

2년간 휴가를 가지 못한 그래버는 이번 휴가가 취소될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리다가 뜻밖의 휴가 통지서를 받는다. 그래버는 평온한 고향 마을을 생각하며 돌아왔지만 집은 폭격으로 날아가 버렸고 부모님의 생사도 알 수가 없었다.당장 잠 잘 곳도 없어져 버린 그래버는 이곳 저곳을 수소문하다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뵈트허라는 휴가병을 만난다. 그래버는 전쟁이 더 이상 전선에 한정되지 않고 독일 국내까지 폭격을 맞는 상황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동창인 알폰스 빈딩 역시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데 그는 돌격대장으로 훌륭한 저택에 온갖 전리품을 쌓아놓고 살아가고 있다. 빈딩은 그래버가 일선에서 오랫동안 참전했다는 점과 자신에게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아첨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래버에게 존경을 표하고 그와 친해지려 한다. 

그래버는 어머니를 치료한 적이 있는 보건위원 크루제를 찾아가면 뭔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크루제는 집단 수용소에 끌려갔고 그의 딸인 엘리자베스 크루제만이 당의 열렬한 신봉자이자 밀고꾼인 리저 부인과 살고 있었다. 그 후 빈딩에게서 좋은 술을 얻은 그래버는 엘리자베스와 함께 마신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녀의 집을 방문하고 둘은 점차 사랑에 빠진다.

그래버는 엘리자베스를 장교들 전용의 최고급 호텔 '게르마니아'로 데리고 가서 훌륭한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둘은 전쟁과 고발과 죽음이라는 압박감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 애틋한 시간을 함께 한다. 한편 그래버는 양심을 지키다가 학교로부터 쫓겨난 옛 은사 폴만을 찾아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는 자신이 전쟁에서 저지를 죄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 묻는다. 참전이 곧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휴가가 끝나면 다시 복귀해야 하고 그것은 공범이 된다는 것, 하지만 복귀하지 않으면 총살 당하기 때문에 일선으로 안 갈 수가 없으며 가서 아무런 방어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자살행위가 된다는 것, 그 딜레마에 대한 해답은 무엇인지 묻는다. 폴만은 자신도 거기에 대한 대답을 알지 못한다며 괴로워한다.

그 후 빈딩으로부터 다시 초대를 받은 그래버는 그곳에서 친위대원인 하이니라는 자와 알게 되는데 그는 러시아에서 파르티잔들을 불태워 죽인 이야기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한적한 길에서 술에 취한 하이니의 뒤를 걸어가던 그래버는 그를 살해하여 더 큰 죄악을 없애야겠다는 상념에 빠지지만 결국 그를 죽이지는 못한다.

엘리자베스를 두번째로 게르마니아로 데려간 날 호텔이 폭격을 당하고 둘은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그 폭격은 안전하게 보이던 빈딩의 집도 덮쳐 빈딩이 사망한다. 그래버는 한 개인이 누군가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면서도 돌격대장이라는 점에 대해 생각하면서 사람은 아주 작은 면만으로도 죄악을 저지르기에는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후 그래버와 엘리자베스는 결혼하기로 약속하는데 이들은 결혼을 위한 증명서류를 떼는 과정에서 혹시나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와 연관된 일을 트집 잡히지 않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고 아이러니하게도 친위대장이 이들의 증인이 되어 서명을 한다. 대규모 폭격이 거듭되어 엘리자베스의 집이 폭격당해 불타버렸기 때문에 성당에서 밤을 세운 다음 날, 기적처럼 폭격을 피해간 카페를 발견한 둘은 그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마지막 밤을 보낸다. 그래버는 자기가 떠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싫다며 엘리자베스에게 기차역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고 혼자서 기차를 탄다. 그리고 떠나기 직전 역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엘리자베스를 발견한다.

일선으로 복귀한 그래버는 상황이 더 안 좋아졌음을 알게 된다. 러시아인 네 명이 포로로 잡혀오자

친위대 출신인 슈타인브레너는 트집을 잡아 그들을 살해할 생각만 한다. 이를 눈치챈 중대장은 그래버에게 포로들의 감시를 맡기고 그래버는 러시아인들에게 몰래 담배를 건내준다. 그날 밤 전세가 악화되어 독일군은 진지를 버리고 퇴각할 상황이 되고 슈타인브레너는 러시아인들을 죽이기 위해 온다. 그래버가 슈타인브래너를 제지하자 슈타인브레너는 그래버에게 직접 러시아인을 사살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버는 자신은 러시아인을 쏘지 않을 것이며 슈타인브레너 역시 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하자 슈타인브레너가 총을 뽑아들고 그 순간 그래버는 슈타인브레너를 쏘아 죽인다. 그리고 풀려난 러시아인이 도망가기 직전 땅에서 총을 집어들어 그래버를 사살한다.

 

오랫만에 고속버스에서 레마르크의 소설을 읽었다. 예상대로 오고 가는 내내 한번도 손에서 떼지 않고 읽었다. <개선문>, <서부전선 이상 없다>, <그늘진 낙원> 모두 똑같은 경험을 했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레마르크 소설의 주인공은 항상 내가 닮고 싶은 면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 하는 점과 자기 성찰을 하는 점이다. 그리고 다르게 말하면 최악의 상황이 아닌데도 나에게는 그러한 미덕이 없는 것 같다.

한편 레마르크 소설을 읽다보면 우라사와 나오키의 <마스터 키튼>이 자주 연상된다. 오늘 밤에는 <마스터 키튼>을 읽다가 자야겠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3492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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