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의 기사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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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벤치에서 잠이 깬 주인공은 자신이 기억상실증에 걸렸음을 깨닫는다. 골목길에서 기둥서방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던 이시카와 료코라는 아가씨를 도와준 주인공은 그녀와 함께 모토스미요시로 이사하고, 그곳에서 불안하지만 행복한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료코는 주인공에게 이름이 필요할 것 같다며 이시카와 게이스케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녀는 게이스케가 혹시라도 과거의 기억을 찾을까봐 전전긍긍하는데 게이스케에게 아내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료코는 케이크 가게에서 일하고 게이스케는 공장에서 단순 노동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저녁이 되면 찻집에 가서 둘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게이스케가 어느날 집에서 운전면허증을 찾아내면서 불행이 시작된다. 기억상실 후에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이 새빨간 멜론과 같이 보이는 환시를 체험한 후 게이스케는 거울을 못 보면서 살아왔다. 이제는 자신의 얼굴과 본명(마시코슈지益子秀司)을 알게 된 것이다.

게이스케는 지나다가 본 점성술 간판을 기억해 내고 그곳에서라면 자신의 과거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찾아가 본다. 과거를 알아 낼 수는 없었지만 특이한 성(姓)을 갖고있는 사내와 친구가 된다. 그의 성은 당사자가 밝히기로는 미타라이라고 읽지만 '御手洗' 라는 한자는 읽기에 따라서는 '화장실을 씻다' 정도의 뜻이 된다. (나중에 그의 이름이 기요시, 즉 한자로는 潔로 밝혀져 '화장실을 깨끗히 청소하다'가 된다) 특이한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성격의 미타라이이지만 진솔한 성품에 끌린 게이스케는 그와 친구가 된다.

운전면허증의 주소로 우여곡절 끝에 찾아가본 게이스케는 그곳에 최근에 이사온 아주머니로 부터 주소를 하나 받게 되고 그 주소로 찾아가 본 게이스케는 놀라운 과거를 알게 된다. 아내의 일기를 발견한 게이스케는 아내가 이하라라는 인물에게 걸려들어 갖은 능욕을 당한 후 결국 아이와 함께 살해당했음을 알게 된다. 게이스케는 자신의 기록을 통해 이하라의 동료이자 야쿠자였던 야마우치를 살해하고 이하라 역시 살해하려다가 도리어 함정에 빠져 폭행당했으며 그 결과 기억상실에 걸리게 되었음을 알게 되고 복수심에 이하라를 죽이려는 계획을 준비한다.

 

<이방의 기사>는 시마다 소지가 1979년에 완성한 최초 작품이지만 9년이나 지난 후에 발표 되었다. <점성술 살인사건>의 커다란 성공 뒤에 발표되었는데 작가가 처음 쓴 소설이라 그런지 거칠고 불완전한 면이 많다. 기억상실에 걸린 게이스케에게 료코 일가족이 거짓된 과거를 심은 후 이하라를 대리살해하려는 계획은 당시로서는 무척 참신한 아이디어임에 틀림 없다. 또한 갖가지 장치들도 세심하게 고민한 흔적은 보인다. 그렇지만 실행 상 야기될 수 있는 문제들을 너무 우연에 기대어 해결하는 면이 많다.  또 미타라이가 사건의 이면을 알게 되는 과정도 탐문에 의지한다거나 비약을 통해 접근하고 있어 '추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미타라이와 이시오카가 최초로 만난 작품이고 198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5위, 독자 선정 '가장 재미있는 미타라이 시리즈' 1위를 차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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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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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네살의 르네는 부자들이 모여사는 그르넬가 7번지 아파트의 수위 아줌마이다. 키가 작고 못생긴 르네였지만 소박하고 진솔한 성품의 뤼시앵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둘은 짧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뤼시앵이 암으로 죽은 후 그녀는 수위실에서 톨스토이의 이름을 딴 고양이 레옹을 키우며 고상한 문화생활을 남몰래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녀가 가장 근심하는 일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적 수준을 눈치채는 것이다. 그녀는 보통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수위 이미지'에 걸맞게 자신을 꾸미는데 골몰한다.

한편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열 두살의 팔로마는 또래보다 별나게 똑똑한 아이로 언젠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있다. 팔로마는 그르넬가에 사는 어른들의 위선을 못 견뎌하고 삶의 부조리를 깨달아버린 이상 더 이상 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느낀다.

어느날 그르넬가에 일본인 오즈 가쿠로씨가 이사온다. 그는 다른 주민들과는 달리 수위인 르네에게도 선입견을 갖지 않고 대하고, 그 이유로 르네가 숨기고자 하는 면을 간파한다. 또한 팔로마와도 친해져 셋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어느날 르네를 가쿠로씨가 집으로 초대하고, 그들은 공통의 관심사로 친숙함을 느끼고 결국 가쿠로씨는 르네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르네에게는 가슴 아픈 과거가 있어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움츠리며 살아왔다. 그녀의 언니는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가난했기 때문에 농락당한 후 죽었고, 뛰어난 지성을 갖춘 르네는 자신의 사회적 계급을 벗어나려 했다가는 언니와 똑같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톨스토이를 읽고 모자르트를 들으면서도 그런 사실들을 다른 사람이 눈치 챌 수 없도록 해온 것이다. 이런 사정을 들은 팔로마는 가쿠로에게 르네의 이야기를 하고 르네는 '당신은 당신의 언니가 아니다'라는 말로 사랑을 고백한다.

르네는 자신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기대로 행복을 맛본다. 하지만 부랑자 제젠이 어느날 술에 취해 도로로 뛰어들자 그를 구하려다가 차에 치어 죽고 만다. 팔로마는 가쿠로, 르네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다시는' 오지 못할 것임을 깨닫고, 그러한 '다시는' 못 올 행복한 기억 속의 '언제나'를 생각하며 불을 지르고 자살하려 했던 결심을 포기한다.

 

책의 프롤로그는 <마르크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팔리에르 씨네 막내가 "마르크스가 내 세계관을 완전히 바꾸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르네는 <독일 이데올로기>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포이어바흐 제11테제를 생각한다.

제11테제가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데 있다" 이지만, 이 소설은 세계를 해석하지도, 변혁하지도 않는다. 마르크스는 단지 르네의 지적 수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소설 속에서 계급이라는 단어가 몇 차례 나오지만 마르크스의 계급은 아니다. 단지 부자는 높은 계급, 가난한 자는 낮은 계급이라는 조잡한 구분법을 사용할 뿐이다. 따라서 마르크스를 인용하면서도 르네가 하는 '노동'이 신성한 것으로 그려지지는 않으며 그저 천한 일로 그려진다.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곧 고급 문화라는 이상한 도식을 소설 전반에 깔아놓고 있다. 그런 이유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이 톨스토이를 읽고 모자르트를 듣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편 일본문화에 대한 작가의 편애를 유감없이 드러내는데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와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호타 유미의 <히카루의 바둑>등을 등장시킨다. 작가가 이들에 열광하고 있는 것을 꼭 말하고 싶었다는 느낌이 든다. 르네와 팔로마의 기호, 생각들이 작가의 생각임을 단숨에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소설적 형상화의 실패이다. 특히나 후설에 대한 장황한 비판이 그렇다. 

팔로마가 천재로 나오는데 어떤 점이 천재인지 역시 모호하다. 팔로마는 작중에서 '조로(早老)'의 느낌을 준다.

 

결국 기껏 프롤로그에서 마르크스를 인용해 놓고도 '돈이 많더라도 예술과 철학을 알지 못하고 이해할 의지가 없다면 그건 제대로 된 삶이 아니고, 가난하더라도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과 지성을 갖추면 훌륭한 삶'이라는 '가진 자의 논리'로 회귀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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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세네카의 기지촌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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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근'이라는 이름을 가진 화자가 초등학교 시절 미군기지 캠프 세네카 주변으로 이사 와서 마흔이 넘어 그곳을 떠날 때까지를 술회하는 내용이다. 화자가 커나감에 따라 마을을 바라보는 어투와 안목이 바뀌는 점이 특이하다.

화자는 '재근'이지만, 소설의 실제 주인공은 화자의 아버지이다. 화자의 아버지는 재주가 많은 인물로 6.25 전쟁 전에는 남로당 활동을 했고 전쟁이 터진 후에는 한동안 인민군 지원 활동을 했다. 국군이 마을로 오자 한동안 부역자로 도피활동을 하였고, 이 와중에 고향에 두고온 부모님과 큰아들이 우익쪽 인물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부역 혐의를 벗기 위해 이번엔 국군 편에서 참전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군부대에서 일을 한다. 

캠프 세네카가 들어서자 미군이 들어오기 전에 부대 앞에 터를 잡고 집을 지어 약종상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마을은 아무런 행정적 혜택을 받지 못했고 아버지는 마을에 학교와 보건소, 파출소 등이 들어올 수 있도록 애를 쓴다. 이 과정에서 미군 부대가 많은 도움을 주고 초등학교와 고아원은 미군 부대의 장비와 건축자재로 준공이 되어 미군부대장 이름을 세긴 기념비가 건립되기도 한다. 또 아버지는 국회의원과 관(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여당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생계를 미군이 오로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미군이 오래도록 주둔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마을이 제 꼴을 갖춰갈 무렵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 영향으로 미군은 캠프 세네카를 떠난다. 미군이 떠나자 주민들도 차츰 마을을 떠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돌아가시기 직전 아버지는 과거사를 재근에게 유언하듯 말하고, 화자는 당숙을 찾아간다. 그리고 당숙으로부터 6.25전쟁 당시 좌와 우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들으며 자신이 이해하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역사의 이면을 알게 된다.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두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유추해 볼 수가 있다.

 

하나는 미군부대장의 이름이 쓰여져 있는 공적비 이야기이다. 소설의 말미에 전교조 소속의 초등학교 교사가 초등학교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를 뽑아내는 대목이 나온다. 화자가 어린 시절, 마을 사람들은 미군 부대장을 찾아가 초등학교 건립에 도움을 주길 청하고, 부대장은 인도적 차원에서 미군의 물자들을 지원하여 초등학교가 건립된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부대장의 이름을 기념비에 세겨 넣고 미군 부대장은 무척 감격한다. 하지만 전교조 소속 교사는 학교가 외국인의 도움을 받아 지어졌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 되면 자주독립 정신을 배우기는 커녕 사대주의 정신을 배우게 될 것이며 '아, 미국 사람들은 우리를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들이구나'하고 생각할 것이 소름끼친다고 말한다. 화자는 무언가 반박해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입에서 나온 말은 '공적비가 우리 마을 사람들의 것이고 선생님의 것이 아니다'라는 엉뚱한 말이었다.

 

다른 하나는 화자 아버지의 행적과 당숙의 이야기이다. 화자의 아버지는 남로당과 인민군 활동을 했는가 하면 국군 편에서 참전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기지촌 부근에서 미군들의 도움을 직간접적으로 얻어 생계를 꾸리고, 여당 활동을 하기까지 한다. 또한 당숙은 우익 활동을 하고 있는데 당숙모는 여맹활동을 한 죄목으로 잡혀들어가 있다.

 

먼저 공적비에서 화자가 발언한 '우리 마을 사람들의 것'과 '선생님의 것' 사이의 차이가 의미심장하다. 화자는 엉뚱한 말을 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엉뚱한 것 만은 아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의 것'이라는 의미 속에는 전쟁 후에 아이들을 키우고 살아가기 위해 미군의 도움을 받은 것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으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부대 물자와 인력을 내어준 미군부대장에 대한 고마움도 거짓이 아니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의 상황과 생활과 더 나아가서는 마을 사람들의 역사가 담겨있는 것이다.

반면에 '선생님의 것' 은 바로 전교조 교사의 관념 속 개념을 말한다. 전교조 교사가 보기에 미군은 미제국주의의 첨병이며 미제국주의자가 6.25 전쟁의 주된 원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공적비는 나쁜 것이라고 관념속에서 결론 짓는다. 따라서 선생은 공적비를 '그릇된 물건' 치우는 차원에서 버린 것이다. 하지만 화자와 마을사람들에게 있어 공적비는 그들의 삶과 역사가 담겨있기에 '미군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 이상인 것이다.

 

다음으로 아버지와 당숙의 진술 부분이다. 아버지와 당숙의 진술에 따르면 좌익활동도, 우익활동도 시대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했던 측면이 있다. 소설에서는 기지촌 색시들에 대해 '너희들이 기지촌 색시들을 뭐라고 하지만 색시들이 있기 때문에 너희 아내와 딸들이 강간당하지 않고 맘 편이 살 수 있는 것을 왜 모르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엥겔스가 공창제도가 부르주아 가족 제도를 유지시키기 위한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결국 전쟁중 좌우 이념 대립과 그후 정치권의 부정부패 속에서 아버지의 삶의 행적이 일관성 없어 보일지는 몰라도 관념 만으로 옳다 그르다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94년에 이 소설이 나왔을 때에 한총련 주류들이 대단히 불쾌해 했던 이유는 자명하다.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볼 때 미군부대장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고마움, 미군이 더 머물러 준다면 생활이 생활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진술 등은 대단히 불편했을 것이다. 아버지와 당숙의 진술이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매우 특수한 경우라면 그들의 불편함에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진술이 우리 역사 속에서 오히려 보편적인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복거일의 보수적인 견해(그는 자유 민주주의의 신봉자인 듯 하다)가 내 견해와 다르다는 점은 별도로,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은 그 자체로 고민할 거리를 안겨 준다. 같은 맥락에서 '홍위군 운운'의 이문열과는 또 다른 느낌의 보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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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컨 브리프 존 그리샴 베스트 컬렉션 2
존 그리샴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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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홉명의 연방 대법원 판사 중 두 명이 살해 당한다. 한 명은 로젠버그라는 이름의 판사로 그는 공화당과 보수주의자에게 있어 재앙과 같은 존재이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분명하지만, 그를 살해할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다른 한 명의 이름은 젠슨, 하지만 그와 로젠버그와의 접점이 모호하다. 젠슨은 오락가락 하는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공화당과 보수쪽에 가까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는 콜은 로젠버그의 죽음을 쌍수 들고 환영할 입장이었다. 두 명의 새로운 법관을 자신들 구미에 맞는 판사로 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 위기를 잘 관리한다면 내년 재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FBI는 그동안 협박편지를 보내던 테러리스트 그룹을 용의선상에 놓고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법대생이던 다비 쇼라는 여학생이 짤막한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그녀는 그 보고서의 내용이 황당하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폐기하려 한다. 하지만 애인인 법대 교수 캘러헌은 보고서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친한 친구이자 FBI 소속 변호사 버히크에게 전한다. 보고서는 결국 윗선으로 올라가 FBI국장 보일즈의 손에까지 가게 되는데 보일즈는 그 보고서를 가지고 대통령과 콜을 곤란하게 해주고 싶어한다. 단순한 스캔들 문제에 휘말릴 것으로 우려한 행동으로 보기엔 과한 '수사중지' 명령을 대통령이 내리고, 다음 날 캘러헌의 차가 폭발한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다비에게는 살해 위협이 끊이지 않고 그를 도와주려던 FBI의 버히크마저 살해당하자 펠리컨 브리프가 진실을 지적했음이 드러난다. '무심코 던진 돌이 개구리를 죽이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 브리프는 루이지애나에서 석유를 발견한 매티스라는 사업가가 석유 발견 사실을 숨기고 주변 땅을 갖가지 법인을 통해 사들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막대한 재산을 그 땅에 투자한 후 몇 배로 회수하려는 순간, 매티스에게 뜻밖의 난관이 닥친다. 녹색연합이라는 곳에서 그 땅이 펠리컨들의 서식지라는 이유로 법원에 개발 중지 소송을 낸 것이다. 수백명의 변호인단을 구성하여 소송에 임했지만 개발 허가는 나지 않았고 소송은 대법원에서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매티스는 대법원에서 환경문제에 민감한 두 명의 법관을 제거하면 공화당이 집권하고 있는 지금, 당연히 보수적인 판사가 재임될 것을 예상하고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 그래섬에게 익명의 변호사가 제보하려 했던 것이 바로 제거할 판사 명단을 추려내는 것, 즉 로젠버그와 젠슨을 죽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의견을 낸 것이 바로 자신의 법무법인의 변호사들이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월요일부터 천안의 교육원에 내려와 있다. 명목상은 청소년 금융캠프의 인솔자 자격으로의 출장이지만, 실상 아이들은 이벤트회사 직원들이 관리하고 있어 인솔자에게 부여되는 정식 업무는 없다. 그렇다고 천안을 벗어나 다른 곳에 가도 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어서 할 일이 아이들 주변을 맴돌면서 책 읽는 것밖에 없다.

대학 1학년 때였나, 이 영화를 누가 보러가자고 했었는데 안 봤었다. 그런데도 책 제목은 잊지 않았다. 당시에 라디오에서 하도 선전을 해댔기 때문이다. 그 성우 목소리마저 기억이 날 지경이다. 너무나 선전을 들어서 나중엔 안 읽으면 큰일날 것 같고, 모두가 읽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더 기를 쓰고 동아리방에 굴러다니던 책을 거들떠도 안 봤다. 이제 읽었다. 나도 조금은 더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그 성우에게 가서 '저도 이제 읽었어요' 하고 보고라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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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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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장기수였다가 '떡공이'들에 의해 강제전향 당한 박동건은 소련의 붕괴와 북한 실태 소식을 접하고 자신이 헛 산 것은 아니었는지 윤혁에게 묻는다. 박동건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전향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음을 윤혁에게 밝히고 끝내 숨을 거둔다.

마찬가지로 비전향장기수였다가 신경정신증을 견디지 못하고 전향서를 쓴 윤혁은 박동건의 쓸쓸한 장례식을 마친 후 보호관찰 담당인 김 형사에게 약속시간을 어겼다는 이유로 한동안 시달린다. 김 형사는 공산권 붕괴가 곧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보증해 준 것처럼 소련과 북한의 모순을 윤혁에게 떠들어 댄다. 하지만 윤혁은 김 형사의 말에 예전과 같은 반박을 할 수가 없고 오히려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느낀다.

윤혁은 부모를 잃은 기준과 경희를 돌보는 한편 감옥에서 알게 된 강민규가 주선해 주는 번역일을 하며 살아간다. 지나간 일들을 글로 남겨보라는 강민규의 권유로 윤혁은 남한에 간첩으로 잠입했던 때부터 담담히 수기를 써내려가는데 그 책이 뜻밖에 잘 팔린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 한 여인이 6.25 전쟁 당시 자신도 큰 상처를 입었으면서 부하를 먼저 치료해달라고 부탁했던 인민군 장교와 이름이 같다며 윤혁에게 편지를 보낸다. 윤혁이 그 장교는 아니었지만 윤혁 역시 초기 공산당들의 자기희생 정신을 높이 사고 있었고 여인 역시 윤혁에게서 그 장교와 같은 품성을 느낀다.

여인의 권유로 윤혁은 기준과 경희를 데리고 보육원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노동을 하면서 삶의 의욕을 느낀다.

 

소련의 붕괴, 특히 북한의 처참한 실상은 일부 반제반봉건주의자들에게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난제였을 것이다. 박동건은 주위 사람에게 민폐만 끼치고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이 '나는 내 의지로 전향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다. 박동건에게 삶의 끝자락에서조차 놓을 수 없었던 것은 이념이었기에 소련의 붕괴와 북한의 처참한 실상에 신념이 흔들리고 건강이 악화되었으면서도 변절자로서 죽고 싶지는 않았고, 그 점을 윤혁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윤혁은 '살아남은 자'로서 이념은 만신창이가 되어 일개 형사에게도 해줄 말이 없었고, '과거의 한 때', 즉 공산당원들이 자기희생을 자랑처럼 여기던 때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를 상징하는 강민규가 시민단체를 만드는 곳에 기부하고, 기준과 경희와 같은 어린아이들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작가 조정래의 이념적 한계와 궤를 같이 하는 소설인 것 같다. 소설에는 경제학이 없다. 경제학이 없으니 인간 본성의 문제에 천착한다. 가장 손쉬운 설명이면서 가장 진실과 동떨어진 설명이다. 그 결과 작가는 시민단체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암암리에 고백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35625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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